‘선영아 사랑해’. 2000년 3월, 거리 곳곳에 정체 모를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전봇대에도, 지하철 광고판에도, 나무 기둥에도 ‘선영아 사랑해’가 도배되다시피 했다. 세상 모든 선영이들과 선영이를 아는 사람들이 술렁였다. 처음엔 돈 많은 한 순애보의 프러포즈이겠거니 했다. ‘선영이는 좋겠다’ ‘그런데 도대체 선영이가 누구야?’ 누군가는 동창생 선영이를, 옆 반 선영이를, 누군가는 옆집 누나를 떠올렸다. 또 누군가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추억했다.

얼마 후 선영이의 정체가 드러났다.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miclub.com)’의 광고였다. 호기심을 극대화한 티저광고 기법으로, 지금이야 식상하리만큼 일반화됐지만 당시로는 파격이었다. 광고 카피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의 출현을 내심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소 김빠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이 땅의 선영이들은, 선영이를 아는 지인들은 이유 없는 설렘을 안고 지냈다.
 
“백혈병을 앓던 아이 중에 선영이가 있었어요. 면역력이 약해 병실에서만 지낸 아이였죠. 그 아이가 병원 밖에 붙어 있는 ‘선영아 사랑해’ 플래카드를 보고 뜨겁게 울었대요. 세상이 자신을 감싸주는 느낌이었다고 해요.”

‘선영아 사랑해’ 광고카피를 탄생시킨 주역이자, 천연주의 화장품 ‘아이소이’를 탄생시킨 이진민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금강기획,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제일기획에서는 최연소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카피를 히트시키며 ‘스타 카피라이터’로 명성을 날렸다. 1999년엔 국내 최초로 ‘영국런던광고제’ 위너로 선정됐다. 같은 해 ‘마이클럽닷컴’ 합류 제안을 받았고, 평소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합류했다.

포털사이트 오픈과 동시에 공개된 ‘선영아 사랑해’는 선풍적인 인기였다. ‘선영’이라는 평범한 이름과 ‘사랑해’라는 낡고 닳은 말.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힘은 컸다. 어딜 가나 ‘선영’이가 화제였다. 캠퍼스와 들판에 봄꽃이 만발하는 3월, 선영이는 봄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됐다. ‘특별함의 힘’이 아닌 ‘평범함의 힘’을 절감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영아 사랑해’는 많은 이의 기억 속에 또렷하다. 그런데 왜 하필 ‘선영’이었을까? 이진민 대표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을 위한 따뜻한 프러포즈였다”며 말을 이었다.

“선영이는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하는 착한 이름이에요.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대명사 같은 이름으로 느껴졌죠.”


평범함의 특별함

‘선영아 사랑해’는 사실 선택받지 못한 카피였다. 마이클럽닷컴 측이 의뢰한 광고대행사에서는 애초에 다른 카피를 제안했다. 인터넷 환경에 어울리는 최첨단의 절제된 카피. 이 대표를 포함한 창립 멤버들은 그 카피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이 차가운 미디어로 느껴졌어요. 따뜻한 미디어로 느끼게 하고 싶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긴밀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미디어로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대행사에서 제안한 카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에 한 사원이 ‘다른 것도 있는데’ 하며 탈락한 후보군을 보여줬어요. 그중에 ‘선영아 사랑해’가 있었죠. 이거다 싶었습니다.”

지금이야 ‘평범함의 특별함’이 강조되는 시대지만 그때는 달랐다. 지금이야 나와 결이 닮은 무명인의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지만, 그때는 달랐다. 자기계발서 전성시대였고, ‘노력하면 된다’는 성공신화로 무장한 유명인들의 콘텐츠가 서점가를 휩쓸 때였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평범함의 힘’을 강조하는 카피는 다소 모험이었다. 시대를 앞서서 읽은 카피는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에잇, 시대를 앞서 읽었다니요. 과찬이에요. 우연의 일치였고, 운이 좋았어요. 제 인생관 자체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거든요. 평소 생활신조를 따랐을 뿐이에요. 아이를 낳아보니 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군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자기 아이 소중한 줄 알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는 그의 인생관은 경영철학에도 녹아들어 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아이소이’ 본사에는 ‘아시아 NO.1 천연화장품 회사를 위한 우리의 자세’ 7가지 덕목이 게시돼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 고객 〉 직원 〉 임원’이다. 고객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직원, 임원을 가장 하위에 둔다는 얘기다.

“직원이 가장 소중해요.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이 전부입니다. 젊은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 회사잖아요. 직원들이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나는 CEO로서 나쁜 짓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우리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잘해줘서 늘 고맙고, 더 잘해주지 못해 늘 미안합니다.”

지난해 11월 말 아이소이는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회사 워크숍을 다녀왔다. 이벤트 담당은 임원들의 몫이었다 한다. 이 대표는 “우리 임원 세 명은 사내 프로모션팀”이라며 웃는다. 워크숍에서 진행된 스피드퀴즈, 요리대회, 카톡퀴즈 등을 임원들이 기획했다.


어쩌다 CEO

‘어쩌다 CEO’. 이 대표 스스로 밝히는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는 자라면서 단 한순간도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이소이’ 창업은 ‘피부 트러블’이 계기가 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드름에 시달리던 그는 우연히 ‘불가리안 로즈 오일’의 효능을 알게 됐고, 천연성분의 힘에 매료됐다.

마이클럽닷컴에서 10년간 근무한 후 나와서 처음 한 일은 독일의 한 천연화장품 수입이었다. 4톤의 장미에서 단 1kg만 생산되어 ‘액체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불가리안 로즈 오일’을 수입한 건 그다음 일이고, 천연성분 화장품 회사를 차린 건 또 그다음의 일이다. ‘화장품 회사를 차리겠다’는 계획보다 ‘천연성분의 효능을 여성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계획이 먼저였던 셈이다. 아이소이는 심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 성분 안전도 평가단체인 EWG 인증을 국내 브랜드 최초로 획득했다.

“불가리아 공인 최고 로즈 오일을 고집해서 원가가 많이 들어요. 우리 제품의 원가는 평균 35%,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55%에 달합니다. 해외 수출길을 넓히려면 원가를 낮추라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대표가 탄생시킨 카피 ‘선영아 사랑해’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어울린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아이소이’ 매장은 3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3층으로 향하는 계단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선영아, 결혼 안 해도 사랑해’ ‘선영아, 화장 안 해도 사랑해.’ 카피를 유심히 보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다 아름답잖아요.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작은 꽃 한 송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선pub 모바일 웹 이용방법
메일 보내기 닫기
보내는 사람
보내는 사람 메일
받는 사람 메일
제목
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