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게임에 내러티브를 넣으려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회사를 차렸죠. 1998년입니다. 그러니까 근 20년 다 되어갑니다. 물론 사업에는 재능이 없어서 결국 문을 닫았고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래에는 스토리 장르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할까 연구했죠. 특히 매체와 스토리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이대영 중앙대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대형 행사 기획 및 연출 전문가다. 건국 65주년 국군의 날 행사 총감독,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집행위원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력을 가진 그는 문학, 연극, 영화, 방송, 게임 등 콘텐츠 분야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21세기 디지털 콘텐츠의 변화 양상 및 작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최근 《스토리텔링의 역사》라는 책을 냈다.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대영 교수는 집필 동기에 대해 “학부 시절부터 좀 다른 형태의 문학을 하고 싶었다”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연극의 양식이 크게 달라지면서 극작술의 기법과 형태도 크게 변했는데 일련의 역사를 살피다가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호모사피엔스의 스토리텔링 역사가 어떻게 시작됐고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통사적으로 압축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매체 중심으로 기술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오토리(Otory)’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스토리(story)’에서 S 대신 처음과 끝이 없는 알파벳 O를 넣어 만든 신조어다. 그는 ‘오토리’에 대해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해 끝이 없는 이야기의 체계”라고 개념화했다.

“스토리의 S는 선으로 이어져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선(線)은 어떤 점, 즉 노드(node)와 노드를 연결한 겁니다. 서사(敍事·narrative)는 노드와 노드를 연결하며 사건을 풀어가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스토리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작가와 감독이 결정했어요. 이제는 방식이 바뀔 겁니다. 독자가 직접 참여하여 연결하는 방식으로요. 그것을 끝이 없는 이야기, 즉 오토리라고 말한 겁니다.”

오토리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오토리텔링의 기법은 신화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한다. 흡사 성경과도 같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누가복음,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등 제자들이 기술한 예수의 행적을 보면,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조금씩 다르게 기술돼 있는데 오토리텔링이 바로 이와 유사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세계 각국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대홍수’ 이야기를 봐도 성경에서는 ‘노아’가 중심인물이지만, 그리스신화에서는 에피메테우스가 그 역할을 하죠. 이처럼 유사하면서도 각각 다르게 기술됩니다. 한 사건(node)에서 서로 다른 사건으로 다(多)방향으로 전개되는 겁니다. 그것을 연결하는 이야기 전략과 내러티브 기법이 바로 오토리입니다. 현재 대학원에서 제자들과 오토리의 창작방법론을 연구하고 있어요. 21세기에 맞는 오토리가 곧 나올 겁니다.”


“창조적 지식인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


이대영 교수는 사회·경제 전 분야에 걸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문화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미래의 예술형태에 관해 연구하며 창작기법과 IT기술이 접목된 기술특허도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예술에 대해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인공지능이 장착된 전자 초상화(electronic portrait) 같은 게 등장할 겁니다. 이것은 곧 죽은 선조들의 초상화죠. 인문학에서의 죽음은 기억과 추억의 상실을 의미하죠. 초상화는 기억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후손들과 대화도 가능하고 경험도 나눠주고 그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사실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지요. 그것을 설계하는 일, 그 알고리즘을 해결하는 것이 창조적 지식인들의 몫이죠. 즉 작가와 예술가들의 몫입니다.”

그는 “연극이 지금처럼 한 공간에서 벌어지지 않고 다(多)공간에서 동시에 작동되는 연극도 등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이 미래의 직업체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연구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이 기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함으로써 경제·경영·비즈니스 환경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일상화될 때 문화예술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이 교수는 “예술가들, 즉 창조적 지식인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거 원시시대에는 빠르게 달리고 사냥을 잘하고, 힘이 센 사람들만이 대접받았고,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이후 정보화시대에는 지식노동자들이 대접을 받았지요. 인공지능이 모든 직업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미 법령과 판례를 통째로 외워서 말해주는 인공지능 로봇도 나왔지요. 그러나 예술가들의 활동은 매우 감성적이며 직관적이지요. 그 생각과 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을 만들 수가 없어요. 로봇 예술가는 등장하겠지만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교수는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자신이 향후 집중해야 할 연구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화했다고 한다.

“예전의 언어는 말이었고 그 이후 문자라는 기호가 등장했지요. 요즘 코딩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는데 프로그래밍 언어가 과거의 문자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중화되면 인간은 문자를 버리고 구비전승의 시대로 갈 가능성이 높아요. 책이 사라지는 거죠. 책이 아닌 시대, 책에는 물론 e북도 포함되고요. 문자로 된 것이 전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인터넷 매체도 비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아직 문자시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스토리텔링의 역사》에서 제시한 ‘오토리’, ‘오토리텔링’이 좀 더 많이 연구되고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스토리의 시대에서 오토리의 시대로 가는 거죠. 이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습관과 풍속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대영 교수는 몇 해 전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과 함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수년간 장애인, 탈북자들과도 공연했다. 탈북자와 장애우의 연극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저소득층이나 노약자, 탈북자나 장애인, 재소자 들은 문화에서 소외된 그룹이라 할 수 있어요. 이들에게 문화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특히 탈북 청년들을 돌보면서 아, 먼저 남북 간의 문화 차이를 해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극을 택했죠. 탈북청년인권연합 모임에 대한민국 청년들을 모아서 ‘남북동행’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문화소통을 시작했는데, 해마다 연극 및 콘서트 공연과 자전거 투어 등을 함께하면서 탈북 청년들은 잃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죠. 우리 남한 대학생들은 탈북 청년들을 보며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했고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리고 재소자들의 경우에는 연기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인내하고 희망을 품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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