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어떤 욕망들을 잃어버렸지. 친구들을 잃었고, 단지 길을 건널 용기가 없어서 다른 것들도 잃어버렸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파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누구나 한번쯤 버지니아 울프의 시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파도>는 울프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실험적이고 가치 있는 작품이다. 화법의 실험, 자서전 형식의 묘사 그리고 유영하는 정체성 등 ‘의식의 흐름’에 접근하고 있다. 화법상, 물과 파도의 ‘비인격적인’ 요소와 내면세계 간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김현정 작가는 <파도>에 천착해서 초기 작업부터 의식의 흐름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가의 그림을 보듯 작가 자신이 ‘파도를 위한 시’로 재구성하였는데, 이 시 속에 김현정 작가의 작품 세계가 녹아 있다.
 

하나의 무게가 밤 속으로 떨어졌어/한 조각의 초록/침묵이 소리를 내며 꺼지고 말았다./우리는 눈을 감고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간다./무자비한 나무 밑에서/이름도 없고 순진무구한/행동의 소리가 말한다./필요한 것은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하나의 짓는 소리, 하나의 신음소리인 것을/
 

2007년 <블러시(blush)>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하였는데 애착이 남달라서 작품을 팔지 않고 있다고요? 지도교수와 1년 동안 크리틱(critic)을 하면서 평가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 후 별의별 방법으로 그리다가 결국 휴학을 하고 집에 처박혀서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지요. 그때 나온 작품들입니다. ‘실재하지만 불확실하다’는 물음에서 시작했어요.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팔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 스테이트먼트에 “대상을 내가 몰입한 감각 또는 감정처럼 실재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물질감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요? 대상은 상상한, 영화에서 본, 경험한, 미디어를 통한 장면들을 섞어서 작품을 하게 되었죠. 제가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 장면은 특별성을 갖게 되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지요. 사실 기억에 기반을 두기에 대상을 잘 그리는 것보다 기억에 기초한 상상하는 방식대로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유화라는 소재로 물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평론가들은 작가를 “기억, 감각의 오라(aura)” “기억 저편 어딘가의 그곳” 등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데요? 초기에는 제가 주목을 받지 못해서 평론가의 글은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스테이트먼트를 주로 쓰게 되었지요. 엄청 칭찬을 받았어요.(웃음) 강홍구(작가) 선생은 “움직이는 손에 쥐어진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정착시키려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착이라기보다는 캔버스 위에 자신이 무엇을 보았던가를 기억해보고 다시 경험해보려 한다”고 하셨고, 정수경(미학자) 선생은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세계와 세계 속 대상들을 보고 느끼고 이해한 바대로 그녀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과정이다”라고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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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의 소원
2) 파도
3) 하얀 단어들
4) 감은 눈꺼풀 아래에서
5) On a journey of no return

작품이 잘 팔리는데 요즘 어떠세요? 저는 100% 전업 작가입니다. 일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주로 갤러리 컬렉터 분들이 많이 구입하시죠. 100호는 1000만원, 500호는 500만원 정도 합니다. 힘들 만하면 하나 둘 팔려요. 지속적으로 제 작품을 구매하거나 위층 언니(디자이너)처럼 월세 일부를 보조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정말 고맙고 눈물이 납니다. 

K메디치(K-MEDICI) 같은 작가 후원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해외 전시를 많이 하고 싶어요. 해외 작가 레지던시를 통해 나가기도 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은 일입니다. KIAF, 아트부산에 나간 적도 있어요. 꾸준히 팔려요. 하지만 개인전 형식으로 해야 잘 팔리는 것 같아요. 사실 제 그림은 담담해서 오래 관찰해야 그림이 보이는데 아트페어는 우선 눈에 띄는 센 그림들이 많아서 묻히기 십상입니다.

문학과 회화를 연계한 제목이 인상적인데 맞나요? 연계한 것은 아니고, 시적이고 문학적인 제목을 붙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수없이 많은 인연들로 인한 밤’ ‘같은 온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와 같이 자작시에서 가져오거나 항상 작사가의 마음으로 제목을 붙여요. 관객은 명제가 작품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림 그리기 전 대상을 선택할 때부터 제작 과정상 끊임없는 사유를 하게 됩니다. 그 느낌이 잘 반영되었으면 해서 그렇게 붙여요.

모 기업의 K회장님처럼 컬렉터들은 김현정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열심히 꾸준히 하는 작가로 보시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평가나 인기를 의식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제 작업이 계속 변하면서 살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의식하면 자칫 매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전을 하면 3~5명의 작가가 한 것처럼 보는 분들도 있어요. 소재나 기법이 다양해서 오해를 종종 받곤 하는데 “대표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에 동의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대상을 표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저의 방식인 것이지요.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요즘 젊은 작가들을 보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예전 선배들 보고 욕하면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제가 선배가 되었네요. 존경하는 작가는 스페인의 안토니오 로페스 가르시아(80)예요. 너무 잘 그리는 스페인 국민 작가입니다. 유럽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못 봤는데 몇 해 전 일본에서 그분 전시가 있어서 빚을 내어 보러 갔어요. ‘현대회화의 핵심을 꼭~ 찔러요.’ 회화에 대한 순수한 감동이었어요. 전시를 보는 3일 내내 펑펑 울었어요. 영화도 있는데 꼭 보세요.(진심)

김현정이라는 유명 작가가 둘인데 해프닝은 없는지요? 흔한 이름이에요. 이름을 바꿀까도 생각했는데 작가로서, 작업으로서 분리하면 된다고 보아요. 서로 경쟁하듯 인지도가 쌓이면 좋을 듯합니다. 갤러리에서 가끔 잘못 전화가 오긴 합니다. 무척 반가운 일이죠.(웃음)

올해 전시 계획과 진행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급하게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2019년 개인전을 위해서 2018년은 작업만 할 생각이에요. 2007~2017년 10년간 3년마다 개인전을 했어요. 다양하게 작업을 하고 싶어요.

김현정의 작업은 사실적이라는 표현보다 하이퍼 리얼리즘과 달리 회화적이라고 해야 옳다. 발터 벤야민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 기억 저편에 존재하던 대상을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 있는 시선의 교환 속에서 오라(aura)는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는 오라를 가진 자다. 하지만 현대회화는 안토니오 로페즈 가르시아의 작품처럼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되는 과정에 있고, 결국 화가는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김현정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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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졸업,
2006년 덕성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개인전.
2015년 <파도> 갤러리 버튼, 서울.
2014년 갤러리 잔다리, 서울 외 다수그룹전.
2017년 닻미술관, 광주.
2017년 <12인의 방> 포스코갤러리, 포항 외 다수 선정 수상경력.
2016년 63아트미술관 new artist project 선정,
2014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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