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표적인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올림픽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를 개최했을 때 올림픽의 표어는 라틴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였다.

유일한 직립보행 포유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야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보다 빠르고 강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빠르고 강한 인류만이 먹을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데 보다 ‘높을’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올림픽 육상 종목에 높이뛰기도 모자라 장대높이뛰기 부문까지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얘기다. 사실 높이 오르는 행위는 먹잇감을 구하고 생존하기 위해 달려야 하는 ‘실용성’을 넘어선 추상적인 그 무엇이다. ‘행복’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듯, 높이 오른다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의 하나인 상승욕(上昇慾)과 직결된다.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새는 인류의 첫째가는 동경 대상이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상징은 독수리(정확히는 흰머리수리, Bald Eagle)다. 국장(國章)에도 독수리가 13개의 화살과 올리브를 움켜쥐고 있는 모양이 담겼는데, 이는 미국 독립 당시의 13개 주를 의미한다.

유목민족 몽골의 매, 안데스산맥 인근 남아메리카들의 콘도르도 비슷한 대상이다. 콘도르는 고대이집트에서 발끝에 열쇠를 쥔 형상으로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심벌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실 날지 못하는 새는 더 이상 새가 아니듯, 날아오름을 소망하지 않는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이다. 이러한 ‘높이 날아오름’, 비상(飛上)에 대한 영화가 바로 〈버드맨〉(Birdman,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2014)이다.


압도적인 첫 5분


흔히 영화의 성패는 첫 5분에 결정된다는 업계 속언이 있는데, 〈버드맨〉의 오프닝이야말로 단 한 순간에 관객의 시선을 잡아채는 놀라운 장면이다. 영화는 로켓 또는 유성처럼 보이는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바로 주인공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이 방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공중부양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벽에는 ‘버드맨’ 포스터(관객 눈에는 영락없이 ‘배트맨’ 사진이다)가 붙어 있고, 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귀에 익숙한 ‘배트맨’의 에코 강한 저음이다. “넌 무비스타였어. 기억나? 우리가 있을 곳은 이 시궁창이 아니야.”

오프닝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은 한때 잘나가던 무비스타였으나, 지금은 인기 떨어진 퇴물 배우로 전락해 있는 신세이며, 공중에 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꽤 초현실적인 장면을 담게 될 것을 단박에 알게 된다.

슈퍼히어로 버드맨을 연기하며 스타덤에 올랐던 리건 톰슨은 브로드웨이에서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감독, 연출, 주연을 도맡아 화려한 복귀를 꿈꾼다. 하지만 상황은 자꾸 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함께 출연하는 형편없는 배우는 최종 리허설 때 천장에서 떨어진(사실은 리건이 초능력으로 떨어뜨린) 조명에 맞아 실려 나가고, 그를 대신해 투입된 연기파 메서드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턴)는 제멋대로 굴어 리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연극 제작자 ‘제이크’(잭 갈리피아나키스)는 돈이 없다고 투덜대고, 약물중독으로 재활치료까지 받은 딸이자 리건의 매니저인 ‘샘’(에마 스톤)은 공연을 앞두고 다시 약에 손을 댄다. 함께 출연하는 동료 배우이자 리건의 현 여자 친구인 ‘로라’는 무대 뒤에서 “두 달째 생리를 안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기뻐하는 로라와 달리 리건은 진짜 자기 아이가 맞는지 물어보고, 화가 난 로라는 리건의 뺨을 때리고 가버린다. 게다가 대기실로 찾아온 전부인 ‘실비아’에게 리건은 연극을 위해 말리부 저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로 했다고 이실직고하고, 실비아는 “샘에게 주기로 한 집”이라며 분노한다.

이는 우리도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 아니던가.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런. 영화의 이런 일련의 과정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예술적 시험처럼 하나의 호흡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유려하게 전개된다.


경이로운 촬영기법


사실 〈버드맨〉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부분은 촬영이다. 전체가 16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프닝의 짧은 숏 3개와 후반의 중요한 사건 직후 11개의 숏이 터져 나오는 부분을 제외한 전체가 롱테이크처럼 연출되어 있다.

그것도 정적인 미와 단순성을 강조한 롱테이크가 아니라, 무대 뒤의 좁고 꼬불꼬불한 통로와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 사이를 포함한 온갖 공간을 시종일관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롱테이크다. 다시 말해 긴 호흡으로 상황을 관찰하는 기법이 아니라 밭은 숨을 몰아쉬며 극적인 몰입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탁월한 영상미를 선보인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2003)와 〈신세계〉(감독 박훈정, 2012)의 촬영을 맡았던 정정훈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게 만드는 경이로운 촬영”이라며 감탄하기도 했던 기법이다.

실제로 완전한 롱테이크는 아니고 테이크 중간중간의 편집 포인트가 몇 차례 있는데 특수효과와 조명, 빠른 카메라 패닝 등으로 교묘하게 가려서 정확히 눈치채기 어렵게 해놓은 롱테이크다. 이 작품으로 〈버드맨〉의 촬영감독은 그 전해 〈그래비티〉 (Gravity, 2013)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믿기 힘든 롱테이크 연출은 일차적으로 작품의 소재인 연극이란 무대효과를 살리기 위한 장치이다. 감독 자신은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한 삶처럼 영화를 연출하여 내가 전하고 싶은 바를 이해시키고 싶었기에 그에 적합한 롱테이크 연출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중 이와 관련된 리건의 직접적인 대사도 있다. “이 연극이… 뭐랄까 마치 내가 살아온 기형적인 삶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야. 아주 작은 망치로 끊임없이 불알 두 쪽을 얻어맞는 그런 느낌.”

영화는 시종일관 대중문화의 양면성을 헤집는다. 즉, “사람들은 피와 액션을 좋아하지. 말 많고 우울한 철학 따위엔 관심이 없어”라는 대사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천박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한 작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가령 떨어진 조명에 맞아 실려 나간 배우를 대신할 남자 배우를 급히 물색하기 위해 제작자와 리건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리건 : 배우를 빨리 찾아내란 말이야. 좋은 남자 배우. 우디 해럴슨을 데려와.
제이크 : 〈헝거 게임〉(Hunger Games) 속편 찍고 있어.
리건 : 마이클 패스벤더는?
제이크 : 〈엑스맨〉(X-Men)의 프리퀄(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촬영 중이야.
리건 : 제러미 레너는 어때?
제이크 : 누구?
리건 : 제러미 레너. 〈허트 로커〉(The Hurt Loc-ker, 2008)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친구 말야.
제이크 : 아, 오케이. 그는 〈어벤져스〉(Avengers) 찍고 있어.
리건 : 씨X, 그 친구한테도 망토를 입혔어?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에 대한 신랄한 풍자 장면도 있다. 연극 첫 공연을 앞두고 리건이 분장실에서 5~6명의 기자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여기자 : 그거 사실이에요? 아기 돼지로부터 추출한 정액 주사를 맞았다던데요.
리건 : 뭐라고 하셨지요?
여기자 : 얼굴을 젊게 보이려고 그랬다던데요.
리건 : 대체 그런 건 어디서 읽었나요?
여기자 : ‘@prostatewhispers’라는 트위터에서 봤어요.
리건 : 아니에요.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자 : 저도 알지만, 그런 일을 했나요?
리건 : 아니요. 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자 : 좋아요. 당신이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고 기사에 쓰겠습니다.
리건 : 아니, 아무것도 쓰지 마세요. 왜 당신은 뭔가를 꼭 쓰려고 하지요? 난 하지 않았다고요. 쓰지 말아요.


〈버드맨〉에는 이 외에도 “군인이 되지 못한 남자가 정보원이 되듯 아티스트가 되지 못한 이가 평론가가 되는 법”(A man becomes a critic when he cannot be an artist, the same way that a man becomes an informer when he cannot be a soldier) 같은 블랙유머 대사가 차고 넘친다. 리건이 전부인에게 “우리가 왜 헤어졌지?”라고 묻자 그녀는 시니컬하게 대답한다. “부엌에서 당신이 내게 식칼을 던졌기 때문이지. 그러고는 당신은 한 시간 뒤에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지.”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Amores Perros, 2000)로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 입성하며 ‘천재’ 소리를 들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주요 부문 4개를 거머쥐었다. 이뿐만 아니라 60여 개 시상식에서 162회에 노미네이트되면서 133개의 트로피를 휩쓴 이 놀라운 작품은 스토리, 비주얼, 연출, 연기 등 영화의 모든 요소에서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흐르는 가운데 맨몸으로 뉴욕 마천루 사이를 한 마리 새처럼 날아 오르내리는 마이클 키턴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아낸 신은 〈버드맨〉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그 예기치 못한 ‘희망의 전조’를 목도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여러 감흥 가운데에서도 아마 가장 오랫동안 여러분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브로드웨이 인근 바에서 우연히 만난, 뉴욕타임스의 연극평론가 타비타(린제이 덩컨)와 주인공 리건은 거친 논쟁을 벌입니다.
공연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타비타로부터 호감을 사려는 리건을 그녀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적대적으로 대하는 거지요.
이 둘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연극을 비롯한 예술계에서 평론가와 예술가(연기자) 사이에 얼마나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리건 : 당신의 X같은 리뷰 좀 보자고. “활기 없는…” 이건 낙인일 뿐이오. 주변성… 장난해? 정돈을 위해 페니실린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군. 이건 낙인이야. 당신은 단지 낙인만 찍을 뿐이지. 이토록 X같이 게으르다니. 당신은 X같은 게으름뱅이야. 이게 뭔지나 알아? 당신은 몰라. 왠지 알아? 당신이 낙인을 찍을 필요가 없으면 당신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 당신은 머릿속에 있는 그 하찮은 소음들을 진정한 지식과 혼동하고 있는 거야.
let's read your fuckin' review. "Lacklustre..." That's just labels. Marginality... You kidding me? Sounds like you need penicillin to clear that up. That's a label. You just label everything. That's so fuckin' lazy... You're just a lazy fucker. You know what this is? You even know what that is? You don't, You know why? Because you can't see this thing if you don't have to label it. You mistake all those little noises in your head for true knowledge.

타비타 : 말 끝났나요?
Are you finished?

리건 : 아니! 안 끝났어. 테크닉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 구조에 관한 얘기도 없어. 의도에 대한 언급도 없고. 더 쓰레기 같은 비교로 뒷받침된 쓰레기 같은 의견 더미일 뿐이야…. 당신은 몇 단락을 긁적이지, 하지만 당신 아나? 이 글은 X같이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아. 씨X! 당신은 아무 위험부담이 없어! 아무런! 아무런! 난 X같은 배우야! 이 연극에 내 모든 걸 걸었다고….
No! I'm not finished! There's nothing here about technique! There's nothing in here about structure! There's nothing in here about intentions! It's just a bunch of crappy opinions, backed up by even crappier comparisons…. You write a couple of paragraphs and you know what? None of this cost you fuckin' anything! The Fuck! You risk nothing! Nothing! Nothing! Nothing! I'm a fucking actor! This play cost me everything….

타비타 : 당신은 배우가 아니야, 당신은 연예인일 뿐이지. 그 점을 분명히 하자고. 난 당신의 연극을 죽여 묻어버릴 거야.
You're no actor, you're a celebrity. Let's be clear on that. I'm gonna kill your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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