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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8월 2일 개봉

믿고 본다는 말은 그가 가진 연기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적어도 송강호는 그렇다. 그가 작품을 보는 안목까지 믿고 본다는 말이다. 때문에 그가 작품을 선택할 때는 대중이 그의 선택을 주목하는 시선까지 함께 쏟아진다. 선택한 작품의 촬영이 마친 뒤에는 그래서, 어떻게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진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는가, 사람들이 그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마음의 흔적이 있는 곳에 한국 영화의 궤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병사 오경필을 맡았을 때나, <살인의 추억>의 시골 형사 박두만을 연기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여기에서 그곳으로 간 사람이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에서 관객을 부르는 사람이었다. <변호인>의 송우석이 법정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할 때 감동이 선연한 이유는, 그가 그 문장이 가진 무게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관객에게 토스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그래서다. 관객은 그가 데려다 줄 거기에서 그가 감당했을 무게를 짐작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가 데리고 간 세상은, 엄혹했고 때로 비정했으나 그가 그 세상에 보여준 태도는 엄중했고 다정했다. 비정한 세상에 던지는 그의 다정한 말들, 이를테면 밥은 먹고 다니냐..”같은 말들은 그냥 말이 아니었다. 밥이었다.
 
그가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왔다. 아니, 택시를 몰고 왔다. 택시란 어떤 공간인가. 택시는 기사의 것이되 기사의 것이 아니다. 손님이 부르는 곳에 서서, 손님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 1980년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광주에 간다. 그 땅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땅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핸들을 잡는다. 그에게는 그 곳에 가려는 손님이 있고, 그 손님이 주는 택시비로 키워야 할 딸이 있을 뿐이다.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참상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외신 기자 위르겐 힌스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을 태우고 광주에 내려간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다. 장거리 손님을 만나 운수 좋은 날이라 여겼던 만섭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운전을 하게 된다. 송강호의 인물들은 그렇다. 어떤 운명에 영문을 모른 채 던져진다. ‘송강호가 웃고 있으면, 영화는 슬프다는 속설은, 어쩌면 운명의 속성인지 모른다. 기가 막히게 운수가 좋았던 그 기사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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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2시간은 만섭의 택시를 타고 함께 다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 것처럼 아프더군요. 영화 속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야 드문 일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일단 너무 잘생긴 배우가 택시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그것부터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가짜같죠. (일동 웃음) 제가 앉아있으면 달라요. 그건 제가 가진 어떤 소시민성때문일 겁니다. 만섭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거대한 비극 앞에선 평범한 사람이죠.
 
<사도>를 함께 했던 유아인이나, <밀정>을 함께 한 공유는 송강호라는 배우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가 가진 어마어마한 연습량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송강호는 무엇을 연습합니까.
-......이번에는 연습하지 않았습니다(웃음). <사도>에서는 노인의 느낌을 내기 위해, <밀정>에서는 일본어 연기를 위해 연습했죠. 제가 내는 소리에 믿음을 갖고 싶었거든요. 만섭은 연습보다는 준비가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만섭이 되어 반응하고 말하기 위한 마음의 단계를 준비했습니다. 많은 이들을 관찰하고, 그 안에 있으려고 했죠.
 
그 안에 있다보면, 아픈 순간이 오지 않나요. 기술시사 때는 제법 많이 울었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몰랐습니다. 촬영이 이어지니까 각 장면에 집중했었죠. 다 찍고 나서 기술시사를 하는데, 아마 금남로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을 겁니다. 주먹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노래를 부르던 이 순수한 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일이 떠오르니까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1980년에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폭도가 진압됐다는 뉴스를 듣고 안도하면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게 되고, 그 만큼의 부채감이 제 안에도 남았던 거 같아요.
 
28년 전, 손석희 앵커와의 인연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냈습니다. 작품을 고를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실화인가 아닌가, 역사를 다루는가 아닌가에 대한 계산이나 고려는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이 인물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일을 겪을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는 있었죠. 배우로서, 또 예술가로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표현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더 그럴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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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쇼박스

 
<택시운전사>는 결국 도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기사는 기사로서의 도리를, 기자는 기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이야기죠.
-만섭이 U턴해서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딸에게 전화를 하죠.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그래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냥 가면 안온한 삶이 기다리는데, 손님을 데리러 다시 그 땅에 가는 겁니다. 저는 그것이 도리이고,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배우의 도리는 어떤 걸까요.
-(한참 생각하다가), 거창하게 도리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를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그건 제가 스물 셋에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붙잡았던 겁니다. 의미없이, 혹은 의미를 모른 채 연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물 셋에 처음 했던 작품은 어떤 건가요?
-민족극이었습니다. 마당놀이 형식이었지요. 89년도였고, 저희를 불러주는 곳에 찾아가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 때 손석희 앵커도 처음 만났습니다. MBC 총파업 때였고, 손석희 앵커는 당시 교육부장으로 있었죠.
 
그럼 처음으로 연기자의 꿈을 꾼 건 언제였나요?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제가 살던 곳은 너무 시골이라 TV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TV가 없었던 게 아니라, 우리집에 TV가 없었죠. (잠시 침묵) 그러고 보니 1980년이네요. 이런.., 그 때 이야기는 연기 처음 시작하고 신인 때 인터뷰 할 때 빼고는 처음 하는 것 같아요. 옛날 생각 나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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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출연한 류준열, 토마스 크레취만

 
정답보다 더 정답같은
 
1980, 어떤 땅에서는 눈 뜨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왜 그러는지..”라고 묻는 청년과, “여기 일은 우덜에게 맡기고, 서울 양반은 언능 가시오라고 말하던 슈퍼집 주인이 함께 사라진 날이다. 청년은 결국 대학가요제에 나가지 못했고, 슈퍼집 주인은 다시 슈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해, 다른 땅에서는 한 중학생이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학생은 자라, 배우가 됐고, 광주로 갔다.
   
송강호는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 등 한국 영화의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다. 이들은 송강호와의 작업을 고대하고, 송강호를 위해 시나리오의 빈자리를 남겨 둔다. 이들에게 송강호는 그저 배우가 아니라 영화적 동지다. 제 각기 색깔이 다른 이들이 한결같이 송강호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송강호는 팔을 내젓다가도 그건 아마 정답이 아닌 정답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신중한 답을 내놓았다. 정답이 아닌 것 같지만 정답같은, 정답보다 더 정답같은 어떤 정답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송강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정답보다 더 정답같은 순간이 있다. 그건 아마 그가 인간에 대해 그리고 영화에 대해 가진 정다움때문일 것이다. 정답게 정답에 접근하는 이 배우가 올 여름, 택시를 타고 왔다. 그 길의 끝에 만나게 될 풍경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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