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떡볶이에 대한 이야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누구든지 마주 앉아 떡볶이를 함께 먹고 나면 급격히 친해진 기분이 들곤 한다. 학교 다닐 때 떡볶이 한번 같이 먹은 친구는 ‘친한 친구’라고 말할 법한 사이이고, 친해지려면 하굣길에 떡볶이 먹는 게 일상이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 앞에는 떡볶이집 3~4곳이 나란히 있었는데, 떡볶이 맛에 따라 친구 집단도 나뉘었다. 내 취향은 양념이 진득하게 배어 떡이 불을 때까지 끓인 떡볶이에 쿨피스 같은 새콤달콤한 음료를 꽝꽝 얼려 내놓던 가장 오른쪽 집. 간혹 친한 친구가 가운뎃집으로 손잡고 이끌고 가면 다음번에는 꼭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집으로 안내하곤 했다.

먹방, 쿡방이 유행이 된 요즘에는 ‘전국 떡볶이 맛집 TOP 10’ ‘OOO가 꼽은 떡볶이 맛집’ 같은 순위 정하는 일이 자주 눈에 띄곤 한다. 사실 이 글 역시 오랜 ‘떡볶이 인생’ 중 추천할 만한 떡볶이집을 골라 소개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떡볶이 입맛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결코 줄 세우기로 떡볶이 맛집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각자의 기억과 경험, 취향이 한 데 뒤섞여 결정되는 게 떡볶이 맛집이다.

그건 마치 덕후의 취향에 다른 사람이 딴지를 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드래곤볼〉을 만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H2〉야말로 가장 훌륭한 만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제아무리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이 만화가 대단하다’ 같은 시상식을 하더라도 덕후에게는 각자의 중요한 점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떡볶이는 그런 음식이다. 만드는 규칙도 없다. 고추장을 넣은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 쌀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멸치육수로 양념을 만드는 사람, 설탕 대신 천연 시럽을 쓰는 사람, 떡볶이는 그 어떤 음식보다 다양한 조리법을 가진 음식이다. 거기에 대고 네 취향이 틀렸다느니, 거긴 맛이 없다느니 얘기하는 일은 별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떡볶이를 하나 꼽으라면,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던 ‘행운분식’의 치즈라볶이다. 대학 앞 메인 상점가 중간 즈음에 숨어 들어간 듯 있던 낡은 분식집의 떡볶이. 넓은 쟁반에 진득하게 끓인 떡볶이와 라면 사리 위에 모차렐라 치즈가 살짝 얹어져 나오던 떡볶이를 먹고 밥까지 비벼 먹고 나면 배가 터질 듯 불렀던 기억이 있다. 한데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가 먹어봤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났다. ‘그때’는 왜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는지. 지금은 없어져 버린 행운분식의 떡볶이가 문득 그리워진다는 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만나자”고 말할 때가 됐다는 거다.



신흥떡볶이

시장 귀퉁이, 20년 한결같은 맛


‘달인’을 찾는다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떡볶이집이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달인의 풍모보다 20년 전 어느 재래시장에서 만났을 법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떠들썩한 분위기에도 조용히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떡볶이를 끓이면서 그때그때 물을 넣고 설탕을 넣고 손맛으로 요리하는 떡볶이에는 그 흔한 어묵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떡과 대파만 넣고 만든 떡볶이는 맵다기보다 약간 달곰한 느낌이다. 국물이 진득하기는 한데 텁텁하지는 않다. 딱히 비법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또 막상 이런 떡볶이를 찾아보라 하면 떠오르는 곳이 별로 없다. ‘신흥떡볶이’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콩나물국이다. 포장 하지 않고 가게 안에서 먹으면 떡볶이 한 그릇에 콩나물국 한 그릇이 나오는데 이 조합이 좋아 찾는 사람도 많다. 메뉴는 단출해서 떡볶이와 라면뿐이다. 순대도, 김밥도 없다. 종종 떡볶이 한 그릇에 라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가는 오래된 이웃 상인들이 보인다.




신토불이 떡볶이

텁텁 아닌 칼칼, 매운 떡볶이의 정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창 화제가 된 ‘떡볶이 국물에 비벼 먹는 핫도그’ 게시물을 읽었다. 이 집에서 먹어야 하는 게 그거다. 핫도그 하나 시켜놓고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게 ‘신토불이’의 숨겨진, 그러나 누구나 아는 인기 메뉴다. 처음 대학에 진학했을 때 ‘신토불이’ 근처 큰아버지 댁에서 일 년 가까이 신세를 졌는데 우연찮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떡볶이집을 발견해 이끌리듯 들어간 게 첫 만남이었다. 밀떡을 사용하는 ‘신토불이’의 떡볶이는 칼칼한 매운맛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듣기로는 직접 농사지은 청양고추로 고춧가루를 내 양념에 쓴다는데 떡볶이를 먹어보면 안다. 인공적인 매운맛이 아니라 고춧가루에서 올라오는 칼칼함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느낌. 고추장을 많이 넣지 않았는지 텁텁하기보다 가볍게 칼칼한 맛이 느껴진다. 요즘 유행하는 매운 떡볶이와는 또 다른 매운맛이다. 매운 떡볶이의 정석을 찾고 싶다면 ‘신토불이’에 가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가게가 좁고 찾는 사람은 많으니 때를 잘못 맞추면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셀프하우스

직접 다진 마늘이 걸쭉


고등학교 앞에 있어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라면 추억 한 가닥 없을 수 없는 떡볶이집이다. 졸업생인 친구 손에 이끌려 찾았다가 마늘떡볶이의 매력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씩 찾곤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떡볶이집의 특징은 ‘마늘’이다. 설명에 따르면 직접 마늘을 다져 넣는다고 하는데 떡볶이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면 다진 마늘이 걸쭉하게 딸려 올라오고, 떡볶이를 다 먹고 나면 마늘 냄새가 한동안 입에서 가시지 않을 정도다. 주인아주머니가 마늘을 좋아해 이렇게 만들었다는데 마늘 맛을 죽이지 않기 위해 고추장 양념은 거의 쓰지 않는 듯 묽은 고춧가루 양념이 주를 이룬다. 떡에 양념이 많이 배지 않고 첫맛이 맵게 느껴지지 않아 숟가락으로 떠서 먹기에 좋다. 애초에 떡볶이를 내올 때도 숟가락으로 떠먹으라고 국물을 가득 담아 준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집의 기본은 셀프서비스다. 물도, 수저도, 음식도 직접 날라야 한다. 판매대 앞에 가격대별로 떡볶이 양이 얼마나 되는지 견본이 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다.




마포원조떡볶이

가래떡 사이사이 양념이 진득


내가 알던 맛집이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오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이제 저기는 못 가겠네’일 것이다. ‘마포원조떡볶이’는 바로 옆에 있는 ‘코끼리 분식’과 더불어 TV에 나온 집으로 유명하다. ‘코끼리분식’이 즉석떡볶이 형식인 데 반해 여기 떡볶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떡볶이다. 가래떡을 길게 반으로 잘라 오래 끓인 양념에 푹 절여 나온다. 쌀떡 특유의 쫄깃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집 떡볶이에 대한 거부감은 적다. 하도 오래 끓여서인지 떡 사이사이에 양념이 배어 진득한 느낌이 든다. 양념은 고추장과 물엿이 기본이라는 게 확 느껴진다. 걸쭉한 국물에 진한 붉은색, 보통 ‘떡볶이’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떡볶이다. 좀 달다는 느낌도 있지만 매콤한 맛이 강한 요즘 떡볶이에 질렸다면 생각날 만한 맛이다. 식사 시간에 먹으려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에이, 놀랄 만한 맛은 아닌데’ 하고 실망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기다렸다가 먹도록 하자. 워낙 많은 사람이 찾는 탓인지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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