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 리조트 깔끔한 산길 따라 가는 여름 야생화 산행 코스

다시 고한에 왔다. 속없는 산이 있는 곳. 1960~1970년대 속을 죄다 파내 만든 연탄으로 아랫목을 지펴준 산. 가난한 이들을 품어주고 나라의 성장 원동력이 되었던 산. 이제는 손주 돌보듯 레포츠 시설로 웃음꽃을 주는 산. 여름이면 야생화 천국으로 지친 현대인의 답답한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산.

백운산에게도 어미가 있다면 분명 “저리 속없이 살아서,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누?” 하며 걱정하겠지만, 풍상고초 속에서도 순하고 바른 초록의 신념을 지켜왔다. 속없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삶이 더 의미 있음을 싱싱한 숲과 수려한 야생화로 보여 주고 있다.

고한 백운산보다 ‘하이원 하늘길’이 더 유명하다. 2011년 하이원리조트에서 만든 백운산 하이킹 코스가 하늘길이다. 몇 년 전부터 트레킹 페스티벌과 트레일러닝 대회가 꾸준히 열려 하늘길의 미모를 알리고 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늘이 맑은 날, 하늘길 들머리인 하이원 마운틴콘도 앞에 선 이는 이은주씨와 이재승(슬로우 아웃도어팩토리 대표)씨. 이은주씨는 고한 31년 전통의 노두산악회 회원이라 백운산을 훤히 알고 있어 든든하다.

일본잎갈나무 숲에서 거대한 녹음에 접속한다. 곧게 뻗은 늘씬한 잎갈나무는 키 작은 식물들과 어울려 이상적인 숲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과거 우리 산하가 헐벗은 시절, 조림수로 들여와 온 산을 푸르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금은 일본이 원산지라는 이유만으로 베어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곳도 있다. 이미 우리 식생에 자리 잡은 나무를 단기간에 모두 베어버린다면 생태계는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잎갈나무는 수십 년 동안 우리 땅에 적응하면서 토착화되었다. 원산지가 어디든 나무에는 죄가 없다.

잎갈나무잎이 깔린 푹신한 산길은 보기만 해도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복병처럼 갑자기 덮쳐오는 풀 냄새, 기분 좋게 온 몸을 휘어감아 걸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상쾌한 시작이다. 곤돌라로 오를 수 있는 산을 걸어서 오른다는 희미한 불만은 산행 시작 5분 만에 사라졌다.

하늘길은 하나의 산길이 아니라 여러 코스가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마운틴콘도에서 출발해 하늘마중길을 거쳐 도롱이연못을 거쳐 마운틴탑에서 야생화를 구경하고 처녀치마길을 따라 하이원호텔&골프장으로 하산하는 코스. 하이원 무료 셔틀버스나 하이원 곤돌라를 타고 마운틴콘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편리하다.

흰 꽃의 향연으로 야생화 산행이 시작된다. 여름 구절초라고도 불리는 샤스타데이지가 발랄하게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그늘진 나뭇잎 속에 숨은 여인은 함박꽃나무 꽃. 한 그루에 겨우 한 두 송이만 겨우 핀 것이, 수줍은 소녀마냥 청아하다.

산길 곳곳에 아기자기한 샘터가 있지만 식수로는 부적합해 손을 씻는 것으로 시원함을 체험한다. 눈에 띄는 점은 나무 목탁을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해 놓은 것, 멧돼지가 많아 퇴치용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호기심에 누구나 한두 번 두드리게 된다.

신갈나무 둘레에 목책이 쳐 있다. 신갈나무가 이렇게 거대한 것은 드물다. 게다가 속이 비어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속은 썩어 모두 게워 내었지만 겉의 물관을 이용해 푸른 잎을 틔운, 끈질긴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 준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야생화 초원 펼쳐져

한낮의 태양을 잊을 만큼 짙은 숲에서 깨어나게 하는 건, 빛의 전망대다. 처음 너른 풍경을 보여 주는 둥근 데크전망대.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색 왕국, 숲내음을 이리저리 싣고 다니는 바람의 흔적이 좋다.

이은주씨가 과거 탄광이었던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막장에서 나온 광부들이 보았을 풍경, 그들이 느낀 바람과 공기,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을까. 이 풍경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실감한다.

숲과 너덜을 지나자 다시 전망대다. 그 뒤로 폐광에서 나오는 금속성분 계류를 자연정화하는 시설이 있다. 너른 임도를 잠시 따르나 싶더니 다시 산길로 든다. 주능선으로 올라서는 길.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도롱이연못을 지나쳤나 싶은데, 한없이 고요한 잎갈나무숲에서 신비로운 연못을 만났다. 주능선 해발 1,125m에 연못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요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도 놀랍다.

연못은 1970년대 갱도가 무너지면서 지반침하로 생긴 물웅덩이다. 남편이 탄광에서 일할 때 화절령 일대에 살던 여인들은 이 연못의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다고 한다. 탄광이 무너져서 유독가스가 연못에 뿜어져 나오면 도롱뇽이 죽고, 도롱뇽이 살아 있으면 남편도 무사하다고 믿었다.

큼직한 하얀 들국화, 샤스타데이지가 길섶에 수북수북 피었다. 설레는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진정시키며 임도를 지나 좁은 원시림 속으로 든다. 자작나무숲에서 잠깐 호흡을 고르고 그대로 올려치니 곤돌라가 쉼 없이 오르내리는 하이원탑이다. 일행을 반기는 건 양떼, 먹이를 달라고 하는 듯 목책 안의 양 몇 마리가 다가와 얼굴을 들이민다.

초록색 양탄자를 울퉁불퉁한 곳에 펼쳐 놓은 것만 같은 첩첩산중의 놀라움. 민둥산과 노목산이 드러나고, 금대봉으로 이어진 대간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키 슬로프 앞에 서자, “와!”하고 절로 감탄이 튀어 나온다. 색색의 야생화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강원도의 힘 있는 고산줄기가 멋진 선을 그어 놓았다. 고들빼기, 갖은 색깔의 수염패랭이, 병꽃나무, 샤스타데이지, 토끼풀, 벌노랑이, 미나리아재비가 온 사면을 가득 채웠다.

한국 산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야생화의 물결에 놀란다. 1,330m의 산정에서 만나는 야생화 초원이라, 더 큰 감동이다. 지긋한 연세의 등산객 무리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기념사진 찍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야생화 초원을 떠나 백운산 정상 마천봉으로 향한다. 관광지를 떠나 산길로 들자 익숙한 고요가 친구처럼 반겨준다. 이끼와 양치식물이 많은 원시림을 지나자, 숲 속의 데크전망대가 나타난다. 정상이다. 나무가 높아 경치는 약하지만 산행이 거의 끝나감을 알려준다.

지나온 하이원탑 너머로 먹구름이 몰려온다. 내리막 산길에 체중을 실어 빠르게 내려서자 임도가 나타나고, 곧장 유럽 궁전 같은 하이원호텔과 골프장이 산행이 끝났음을 알려 준다.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간다. 그 때의 광부들은 어디 갔는지,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던 여인은 어디 있는지, 아빠의 검은 얼굴 꼭 끌어안던 아이는 얼마나 잘 컸는지 궁금하지만 백운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대답을 대신하듯 비가 쏟아지고, 검은 나비 한 쌍이 아주 천천히 날아간다.

▲ 1 숲이 우거진 등산로를 빠져나오면 하이원탑의 시원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마운틴콘도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 2 하이원탑을 정상으로 착각하곤 하지만, 실제 정상은 2㎞ 떨어진 곳의 마천봉이다.



[산행 길잡이]

‘하이원 하늘길’이라 하면 걷기길처럼 느껴지지만 1,400m대 산을 오르는 길이다. 걷기길이 아닌 산행이다. 다만 고도 983m의 하이원 마운틴콘도에서 산행을 시작해, 1,132m의 하이원호텔에서 산행을 마칠 수 있어 수월하다. 산길은 정비가 잘되어 있지만 임도가 섞여 있고, 하늘길 또한 외길이 아니므로 길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정표가 많으므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만 기억하고 있으면 어렵지 않다.

산행 들머리는 마운틴콘도 최상단의 대형 버스주차장이다. 곤돌라 타는 곳을 지나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가면 등산 안내판이 있는 하늘길 입구가 있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이정표의 ‘하이원호텔’ 방향, 현지 등산안내판의 주황색 ‘고원숲길’로 가야 도롱이연못에 닿는다. 연못을 지나서는 임도(운탄고도)를 버리고 하이원탑 방향 산길로 가야 한다. 그래야 산행의 백미인 야생화 초원을 만날 수 있다.

하이원탑에는 화장실과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정상 지나 하산길에는 갈림길이 있는데 밸리콘도 방향이 아닌, 하이원호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마운틴콘도에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곤돌라를 운행한다. 이용료는 왕복 1만5,000원.

등산지도 167페이지 백운산 등산지도 참조.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신고한행 버스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 40~50분 소요. 우등 2만5,100원. 일반 1만9,300원. 청량리역에서 사북역과 고한역으로 가는 열차가 1일 6회(7:05, 9:34, 12:36, 14:30, 16:36, 23:20) 운행한다. 4시간 소요. 산행 날머리인 하이원호텔&CC에서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고한역과 들머리인 마운틴콘도를 경유한다. 호텔 출발 시간 4:30, 6:30, 7:50, 9:05, 9:55, 10:35, 11:15, 12:35, 13:15, 13:55, 14:35, 15:15, 15:55, 16:35, 17:15, 17:55, 18:35, 19:15, 20:35, 21:15, 21:55, 23:15, 00:25, 1:40, 3:00.

출처 | 월간산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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