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개 트레일 중
하나인 라우가베구르 트레일 55km


아이슬란드는 많은 해저 화산들의 분출로 생긴 섬이며, 지구상의 섬 중 인간의 발길이 가장 늦게 닿은 곳이다. 바이킹의 정착 이후 이어진 아이슬란드의 역사에는 언제나 풍요로운 자연이 있었다.
 
소리 없는 음률을 밤하늘에 아름답게 적어내는 오로라, 푸른빛을 발하며 바다 위로 유유히 떠다니는 빙하 조각, 만년설을 녹여내려는 듯 지면 위로 쉴 새 없이 뿜어 나오는 증기와 화산은 아이슬란드를 얼음과 불의 섬으로 만들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황홀한 대지 위로 이어진 ‘라우가베구르 트레일Laugavegurinn trail’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개 트레일 중 하나로 뽑았다. 이 트레일은 최북단 랜드만나라우가르landmannalaugar에서 쏘스모르크Þórsmörk까지 55km를 걷는 3박4일 코스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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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강풍을 동반한 눈·비가 지나가고, 이를 이겨낸 하이커에게 알프타바튼의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최남단 스코가르Skógar까지 77km의 풀코스를 걷는다면 2010년 화산 분출로  유럽 영공을 폐쇄시켜, 서부와 북부 유럽의 항공여행에 혼란을 야기했던 에이야퍄들이외퀴들Eyjafjallajökull 화산도 볼 수 있다. 나는 아이슬란드에서의 짧은 일정에 맞추기 위해 3박4일 코스를 2박3일에 완주하기로 했다.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출발해 3시간 남짓 달려 랜드만라우가르에 도착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산장 앞에는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부분을 피해 군데군데 텐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랜드만나라우가르에는 온천이 있어 하이커 외에도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타월을 걸치고 노천탕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지나 본격적인 트레일로 들어서자 흙 속의 붉은 철분과 화산재, 용암의 흔적인 검은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유황웨이브sulpher wave가 나타났다. 브레니스테인살다Brennisteinsalda라는 이름의 이 산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듯 지면 사이로 유황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흐라픈틴뉘스케르Hrafntinnusker산장에 가까워지자 만년설이 나타났다. 비는 진눈깨비로 바뀌면서 추위가 엄습해 왔다. 하루 종일 빗속을 걸은 탓에 따뜻한 산장에 도착하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주인은 바람이 많다며 건물 바로 뒤편을 배정해 줬지만, 아무런 풍경을 볼 수 없는 곳이라 허락을 구한 후 산장에서 떨어진 곳으로 짐을 옮겼다.
 
궂은 날씨와 추위 때문에 점심식사를 걸렀지만 주위의 멋진 경치를 보니, 허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책을 나섰다. 만년설로 치장한 언덕 위로 구름이 걷히며 뽀송한 하늘색이 드러났다. 빙하수가 시냇물이 되어 흐르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자 빙하동굴이 나타났다.
 
표면은 톰과 제리가 좋아하는 하얀 에멘탈치즈(커다란 구멍이 나있는 노란 치즈) 같아서 천장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받아 맑은 하늘색을 띠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텐트로 돌아오니, 멀리 누군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 길을 따라갔다. 그곳엔 한층 맑아진 하늘과 굽이굽이 계곡에 쌓인 만년설에 석양빛까지 더해져 불과 2시간 만에 세상을 뒤바꿔 놓았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외계 행성 같은 아이슬란드의 독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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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도중 세 개의 강을 만나는데 다리가 없으므로 맨발로 지나야 한다. 하이커들의 지친 발을 치유해 주듯 시원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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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나타난 오솔길은 수고했다며 마지막 디저트로 달콤한 블루베리를 선사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따사로웠던 석양의 여운을 간직한 채 텐트 문을 연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밀려드는 찬바람은 반사적으로 텐트 문을 닫게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바람은 쉼 없이 텐트를 흔들어댔다. 우모복을 챙겨 입고 나가자 검은 대지 위에 흰 눈이 빵 위에 뿌려진 슈가파우더처럼 쌓여 있었다. 부지런한 하이커들은 세상을 몽땅 집어 삼킨 듯한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서둘러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 심해진 찬바람에 두 볼이 에이는 듯했고 눈을 뜰 수 없었다. 결국 어두운 날씨에도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욱 거세져 앞서가는 하이커의 배낭커버까지 벗겨질 정도였다. 간신히 몸을 가누며 오르는 언덕길은 아슬아슬한 곡예 길로 변했다.
 
바람 지옥을 벗어나자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작은 고깔 모양으로 솟은 산들이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중심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 끝엔 빙하에 덮인 고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량한 흙길이 끝나고 촉촉한 이끼를 밟으며 하산하는 길에는 바이킹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양들이 옹기종기 엉덩이를 맞대고 이끼를 뜯어먹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내려가 닿은 곳은 작은 호숫가의 알프타바튼Alftavatn산장이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아름다운 호수를 산책하며 하루를 묵고 싶지만, 아쉬운 발길을 재촉했다. 언덕에 올라 뒤돌아보니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목화 솜 같은 구름이 떠있고, 나지막이 자리한 알프다바튼호수 옆 빨간 지붕의 산장이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언덕을 내려가니 트레일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강 중 가장 낮은 강이 나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 빼고는 발목까지 오는 수심을 건너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이커를 인도하는 길은 스토라술라Stórasula 산기슭으로 이어졌다.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은 흐반길Hvanngil산장까지 밝게 비춰주었고, 덕분에 오전의 축축한 기분을 말끔하게 말려주었다.
 
황량한 자갈밭을 따라 엠스튀르Emstur로 향했다. 하이커들을 위해 좁다랗게 내놓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두 번째 강이 나왔다. 이틀 동안 내린 비 때문인지 수심도 깊어 보이고 물살도 세, 건너편에는 몇 대의 차량이 멈춰 선 채 깊이만 가늠하고 있었다.
 
한 운전자가 물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용감하게 강으로 들어섰다. 거친 물살은 그의 무릎 위까지 덮쳤지만 그는 이쪽으로 건너왔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는데, 때마침 나타난 노부부의 캠핑카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다리를 놔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연 그대로를 즐기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노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해는 사라지고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피곤함과 더불어 무료함이 몰려 올 때쯤 길 끝으로 미르달스예퀴들Mýrdalsjökull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얼음은 커다란 칼데라(화산 폭발  후 생긴 분지)와 함께 활화산인 카틀라Katla산을 품고 있었다. 멋진 경치를 보니, 발걸음에 다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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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설경과 부드러운 능선이 조화로운 풍경 아래 텐트를 쳤다. 고요해 보이는 풍경과 달리 텐트 폴이 누울 정도의 강한 바람이 일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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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특유의 감미로운 밤하늘. 밤마다 펼쳐지는 오로라 쇼는 트레킹 마니아들이 라우가베구르 트레일을 걸어야 하는 아름다운 이유를 만들어 준다.

엠스튀르에 도착했을 때 미르달스예퀴들의 빙하 아래 자리한 붉은 지붕의 보트나르Botnar산장은 5~6채의 건물이 있음에도 너무나 작아 보였다. 아이슬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아이스 캡Ice cap(화산을 덮고 있는 빙하)다운 웅장함이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26km의 장거리를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검은 화산재가 묻은 텐트를 그대로 패킹하고, 트레일의 종착지 쏘스모르크로 향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빗물로 미끄러웠고, 불어난 계곡물은 굉음을 내며 세차게 흘러갔다.
 
길 위에 나타난 노란 잎의 작은 나무들은 검은색 대지와 초록색 이끼에 지친 안구를 정화시켜 주었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미르달스예퀴들에서 흘러나오는 세 번째 강이 나왔다. 두 번째 강보다는 넓었지만, 수심이 얕아 무리 없이 건널 수 있었다.
 
강을 건너 오솔길로 들어서자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작은 숲길이 펼쳐져 있다. 오랜만에 보는 숲이 반가웠다. 군데군데 보이는 블루베리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평균 기온 섭씨 10°C 안팎에서 자란다는 블루베리가 알프스에서는 해발 3,000m 가까이 올랐을 때나 맛 볼 수 있었는데 해발 300m에도 미치지 않는 이곳에 자라고 있다니 과연 얼음의 나라다웠다. 오솔길은 그대로 쏘스모르크까지 이어졌고, 언덕을 하나 더 오르내린 후에야 종착지인 스카그피요르드스칼리Skagfjörðsskáli산장에 도착했다.
 
바람을 피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언덕 위에 얼룩처럼 피어 있는 초록색 이끼들, 유황 웨이브 사막의 사이사이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증기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화산, 그리고 화산을 덮고 있는 아이스캡은 SF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가 될 만큼 신비로운 외계 행성의 느낌이었다. 그 옛날 바이킹이 이 척박한 땅에 정착할 생각을 했다는 게, 아이슬란드의 자연만큼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트레킹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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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시즌  도로가 열리는 6월 말부터 10월 초까지가 걷기 좋은 시기이며 기상 조건에 따라 9월 초에 닫히는 경우가 있으니 홈페이지를 통해 잘 확인해야 한다.
 
찾아가는 길  TREX(아이슬란드 버스 이용권)의 ‘트레일 패스’를 이용하거나, 레이캬비크 익스커션(Reykjavik Excursions)의 ‘하이커스 여권’을 구입하면 레이캬비크와 랜드만라우가르·쏠스모르크·스코가르의 각 들머리를 잇는 버스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미리 예약하면 숙소로 픽업이 가능하다.
 
악천후일 경우 운행을 중단할 수도 있으므로 기상예보와 버스 회사 홈페이지를 체크해야 한다. 온천욕으로 트레킹을 마무리 하고 싶다면 랜드만라우가르를 날머리로 정하는 것이 좋다.
 
교통편 예약 사이트 www.re.is/iceland-on-your-own
 
산장 이용  트레일에는 9~16km 간격으로 산장이 있다. 산장은 아이슬란드 여행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극성수기(8월)에는 서두르는 것이 좋다. 흐라픈틴뉘스케르산장 이외에는 샤워가 가능하다. 산장 숙박객이 아닌 경우 부엌 사용 시 사용료(1인당 500크로나)를 내야 한다. 식료품을 구입할 경우 랜드만나라우가르 산장 (매우 비쌈) 이외의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준비물  기상 변화가 심하고, 기온차가 심하므로 보온과 방수에 신경 써야 한다. 트레일에는 3번의 도강渡江이 있으니 걷어 올리기 편한 하의를 착용하되, 샌들이나 아쿠아 슈즈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산장을 이용하더라도 개인 침낭은 챙겨야 한다.
출처 | 월간산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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