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라시아브 언덕에서 바라본 사마르칸트 풍경
“사마르칸트! 발음이 혀끝에서 막 구르는 것이 아름다운 이름이네.”

“그런가요?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니 이름도 중요하지요.”

“실크로드는 흔히 꿈과 낭만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름에도 그러한 느낌이 녹아있는 것 같아.”

“그래서 사마르칸트를 일컬어 ‘동방의 로마’, ‘실크로드의 진주’라고도 합니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핵심 도시다. 이름만으로도 황홀함이 묻어나는 것은 설렘 가득한 나만의 느낌일까.

사마르칸트는 지리책이나 역사책에 수없이 거론되는 도시다. 그리고 ‘황금의 도시’, ‘세계의 거울’, ‘동방의 낙원’, ‘실크로드의 진주’ 등의 찬사가 뒤따른다. 이는 사마르칸트가 꿈과 낭만이 넘치는 곳으로 세계인의 흠모를 받은 도시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 하면 곧 ‘사마르칸트’를 떠올릴 정도로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실크로드를 여행하기에 최적기인 오월 중순. 그토록 보고팠던 실크로드의 꽃이자, 동방의 로마라는 사마르칸트로 향한다. 오밀조밀한 골목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고 여러 민족이 뒤섞인 바자르에는 각종 물건이 흥정을 기다리고 있는 곳. 파란 하늘보다 더 푸른 모스크 돔과 화려한 문양의 실크 옷을 걸친 여인들이 있는 곳.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을 간다는 설렘에 어느덧 나는 신드바드가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잠시, 또다시 검문소가 나타나 나의 아름다운 환상을 깨버린다. 요 며칠 우즈베키스탄에서 체험한 일에 비추어 검문 순서를 예상한다. 경찰은 운전기사와 안내인을 처음 보지만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할 것이다. 그들은 면허증을 보여줄 것이다. 경찰은 면허증에 이상이 없으면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을 것이고, 트렁크를 열어서 짐을 보자고 할 것이다.

외국인이 타고 있으면 여권을 보자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여권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펴보며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 것이다. 경찰은 시간이 남아돌고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니 급한 쪽에서 적당히 달러를 쥐여주면 반갑게 인사하며 즉시 보내줄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별의별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이것저것 캐물으며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안내인의 재치와 파워가 필요할 때가 바로 이때다. 검문은 일 분도 안 되어 끝났다.

“어찌 된 일이야? 이토록 빨리 검문이 끝나다니.”

“올 때도 이 길로 와야 하는데, 저 경찰이 내일도 근무래요. 해서, 협상했죠.”

“어떤 협상을?”

“5불 주고 내일 낮에 돌아올 때는 검문하지 않기로 했어요.”

“협상은 잘한 거지?”

“그럼요!”

천여 년 전에 이 길을 오간 카라반들은 얼마나 많은 통행세를 내고 다녔을까. 참으로 그때나 이때나 달라진 것이 별반 없는 인간 세상이다. 어쨌거나 사마르칸트로 가는 실크로드 비용도 냈으니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야겠다. 새벽녘, 귀한 비의 축복도 받았으니 좋은 일이 많으리라.

“여기는 길이 좀 이상하지요?”

“그러네. 왜 도로가 직선이 아니고 구불구불하지?”

“카자흐스탄 영토여서 돌아가는 거예요.”

“웬, 카자흐스탄 영토가 이곳까지 있지?”

“스탈린이 지도 위에다 선을 그어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실크로드에는 사막만 있는 게 아니다

초록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실크로드의 들녘.
구소련 시절 스탈린은 각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을 자의적으로 선을 그어서 구분하였다. 그것이 1990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국경선으로 굳어졌다. 이곳은 눈에 띄는 이정표도 없고 국경 검문소도 없어서 카자흐스탄 영토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채 지나가게 된다.

“종종 통행을 폐쇄할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한 시간가량을 돌아가야 해요.”

“실크로드 통행료도 냈으니 걱정이 없네.”

한바탕 웃으면서 얼마를 달려왔던가. 어느새 불모지는 보이지 않고 끝 모를 평원은 초록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대지는 촉촉하고 공기는 더욱 신선하다.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실크로드가 사막과 폐허만이 아닌 이토록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길임을 안다면 누구도 실크로드의 참맛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2500여 년을 이어져 온 역사적인 길을 달리고 있노라니 그야말로 감회가 새롭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꿈과 소망을 가지고 이 길을 오갔을까. 낙타 행렬을 이끈 카라반, 구도의 삶을 찾던 사람들, 생사의 길을 걷던 군인들. 인간의 희로애락을 수없이 포용했을 이 길을 그저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서글퍼진다.

여행의 참맛은 찬찬히 걸으며 보고 느끼는 것에 있으련만 일정과 시간을 정해놓고 바삐 움직여야 하니 말이다. 과거로의 여행은 과거의 시간처럼 움직이는 것이 유효하지만, 보다 많은 과거를 탐색하려는 현재의 욕심이 때때로 이를 방해하곤 한다.

2500년 전부터 이어진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
사마르칸트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경 제라프샨강 유역에 살던 소그드인들이 오아시스 도시를 건설하며 시작되었다. 요충지는 곧 병가필쟁지(兵家必爭地)라 했던가. 사마르칸트는 비옥한 토지와 동서 교류의 중심지에 위치한 까닭에 일찍부터 수많은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4세기에 있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은 이곳 사마르칸트를 넘어 인도까지 향하였다. 이때 사마르칸트는 서구에 ‘마라칸다’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무제(武帝) 시기에 장건이 이곳을 다녀간 이후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5세기인 남북조시대에는 강국(康國)이라 불렸다.

사마르칸트를 탄생시킨 소그드인들은 이익이 있는 곳이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소그드인은 타고난 상인 기질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는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그리하여 7세기 초,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 스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서역 일대를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변모해 있었다.

하지만 실크로드 무역의 요충지인 사마르칸트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길목을 차지한 자와 길목을 빼앗으려는 자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름만큼 낭만적이거나 행복한 여유를 누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마르칸트는 호시탐탐 새로운 주인을 노리는 자들에 의해 파괴와 건설을 반복하였고, 그 사이에 터줏대감들은 멍들어갔다.

8세기 초, 실크로드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사마르칸트는 아랍인의 이슬람제국에 그 주도권을 넘겨줬다. 이 시기 인도를 여행하고 소중한 기록을 남긴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는 1세기 만에 새로운 주인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약소국으로 전락한 사마르칸트의 초라함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소그드인들의 투철한 상인정신은 실크로드 국제도시로서의 사마르칸트의 위상을 공고히 하였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

사마르칸트를 대변하는 사원의 코발트블루 돔.
13세기 몽골의 침입은 사마르칸트를 회생 불능의 도시로 파괴했다. 그로 인해 실크로드 무역을 이끌던 소그드인의 위상 또한 사라져 갔다. 사마르칸트가 부활한 것은 14세기 티무르왕조가 수도로 정하면서부터다. 터키계 후예였던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도시로 재탄생시킨 공로자이다. 오늘날 회자하는 ‘사마르칸트의 영광’이란 말도 티무르제국의 전성기에 생겨난 말이다.

사마르칸트는 각종 문화의 중계지 역할도 수행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으로 탄생한 헬레니즘 문화와 아랍제국으로 인해 자리 잡은 이슬람교 등이 사마르칸트를 거쳐 가는 실크로드 상인들에 의해 동서양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서양 문화의 가교 역할은 비단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지명에서도 나타나는데, 사마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란 뜻이고, 칸트는 페르시아어로 ‘도시’라는 뜻이니, 빼어난 지리적 입지조건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은 과거에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리라.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에 취할 즈음, 차는 어느덧 목화밭 너른 평지를 지나 여러 차례 고개를 넘는다. 이따금 길을 막고 지나가는 가축들을 재촉하는 방울 소리가 오히려 실크로드의 편안함을 안겨준다. 산은 건조한 바람에 초록빛 융단을 벗어 던지고, 검고 강인한 속살을 자랑한다. 타지키스탄에서 발원한 제라프샨강은 풍부한 수원으로 목적지인 사마르칸트가 멀지 않았음을 알린다.

“우와! 저 도시가 사마르칸트야?”

“네, 맞습니다. 사마르칸트를 보신 첫 소감이 어떠세요?”

“대단해. 하늘색과 같은 돔들이 미나레트와 함께 늘어선 것이 마치 동화 속 마을을 보는 듯하네.”

“이제 언덕을 내려가시면 더 자세하고 화려한 장면들을 보실 수 있어요.”

“그렇겠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한 말이 딱 맞네.”

“뭐라고 했는데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 하나만 빼고는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지.”

그렇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말처럼 사마르칸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찬탄할 것이다. 대왕보다 더 흥분된 마음으로 사마르칸트로 들어선다. 코발트블루의 커다란 돔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햇빛을 반사한다. 푸른 하늘이 이슬람 고유의 첨탑인 미나레트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푸른 하늘과 푸른색 돔들이 내 마음마저 푸르게 물들인다. 순간, 처마지붕의 건축에만 익숙해 있던 내게 이국 문명의 색다른 충격이 강하게 전달된다.

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 이러할진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본 사마르칸트는 어떠했을까.

지금 사마르칸트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티무르제국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구르에미르(티무르의 무덤), 샤히진다(귀족들의 공동묘지), 레기스탄(중앙광장), 비비하님(티무르 왕비의 성원) 등의 건물이 모두 이때 지어졌고,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이들 유적의 대대적인 보수를 마쳤다. 그것은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우즈베키스탄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티무르’를 우즈베크 민족의 시조로 추앙하는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려한 코발트가 내뿜는 신선한 충격을 잠시 가슴에 접어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한 충격을 온몸으로 느끼고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발걸음은 폐허인 채로 방치된 그 옛날의 사마르칸트 도성지인 아프라시아브로 향한다.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발걸음이 가벼운가. 바로 1400여 년 전,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고구려의 글로벌 흔적이 확연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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