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팀원들과 오른 해발 3,976m의 과테말라 화산
 
“진짜 용암을 볼 수 있어!”

과테말라의 정보를 찾던 아내의 이 말에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과테말라의 옛 수도인 안티구아는 손꼽히는 커피 산지로 유명하지만, 우리는 아카테낭고 화산Volcano Acatenango·3,976m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아카테낭고 화산에 올라 캠핑을 하면 옆에 솟은 푸에고 화산Volcan Fuego에서 분출하는 용암을 생생히 볼 수 있다고 하여 기대되었다.

평소처럼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고 지도와 GPS만으로 길을 찾아 오르려 했다. 하지만 한 달 전 등산객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로 과테말라 정부는 가이드 없이 오르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최소 비용으로 여행하는 우리 ‘두두부부(자전거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여행 하는 양희종·이하늘 부부의 애칭)’는 어쩔 수 없이 마을 곳곳을 돌며 가이드를 알아보았다. 가격은 130케찰(약 2만 원)부터 1,000케찰(약 15만 원)까지 다양했다. 이곳에서 가이드 일을 했던 친구 브라이언에게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화산 아랫마을로 간 다음 그곳에서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주인 여행 친구 브라이언에게 자전거를 맡기고 아카테낭고 화산으로 향했다. 브라이언의 충고대로 물 7리터를 챙기고 맥주 두 캔도 짊어졌다. 트레일 입구인 라 솔레다드La Soledad마을로 가기 위해선 파라모스Parramos마을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사람과 짐으로 꽉 찬 치킨버스(미국의 스쿨버스 차량을 개조해 만든 과테말라의 버스)를 갈아탄다는 게 부담되었지만 별일 없이 한 시간 반 만에 트레일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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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테낭고에서 본 일출.

입구에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온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얼마 전 멕시코 오리사바를 산행할 때와 달리 유럽에서 온 이들이 많았다. 배낭여행을 왔다가 투어 코스로 많이 오는 듯했다.

브라이언이 소개해 준 현지 가이드를 찾았다. 그에게 친구 추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하니 400케찰에 개인 가이드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금액이었다. 사실 우리는 장비와 식량도 다 있었기에 법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가이드의 필요성은 크지 않았다. 결국 흥정 끝에 그의 동생이 가이드 하는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가격은 두 명 합해서 100케찰. 교통비까지 합하면 가장 저렴한 가이드 투어 상품 가격의 절반 비용이었다.

함께 산을 오를 가이드와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 팀은 가이드 2명을 포함 총 17명이었다. 미국, 멕시코, 독일, 스웨덴, 프랑스,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아카테낭고 화산은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입산비 50케찰을 내야 했다.

준비를 마치자 가이드는 간단한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해발 3,600m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오를 거예요. 6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오전 11시, 다국적으로 급조된 아카테낭고 화산 원정대는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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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베이스캠프에 친 우리의 텐트와 가이드 투어 텐트들. ②아카테낭고 화산 정상에서 푸에고 화산을 배경삼아 찍은 양희종 이하늘 부부의 웨딩 사진.

천둥소리 뿜어내는 푸에고 화산

시작부터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화산재에 발이 푹푹 빠져들고, 모래와 작은 돌멩이가 끝없이 신발 안으로 들어왔다. 인원이 많다 보니 속도는 더뎠다. 게다가 산행 초보자가 많아 30분 걷고 20분 쉬는 방식의 운행이라 답답했다. 몇몇은 등산화를 신고 나름 제대로 된 등산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운동화에 편한 옷차림이었고, 심지어 러닝화에 청바지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과테말라 현지 가이드들은 히말라야 네팔의 가이드와 느낌이 비슷했다. 배낭과 등산화를 착용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듯 오래되어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낡은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동네 뒷산을 뛰어놀듯 쉽게 올랐다.

산행은 속도가 느려 지루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국적의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5시간을 쉬엄쉬엄 올라 해발 3,600m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가파른 경사면을 계단식 논처럼 깎아 여러 개의 캠프 사이트가 조성되어 있었다. 사이트당 4인용 텐트 5동을 일렬로 칠 수 있는 크기이며 캠프파이어를 위한 공간도 있었다.

산행 내내 “쿠룽 쿠룽”하는 천둥소리 비슷한 것이 계속 들렸는데, 바로 푸에고 화산의 울음소리였다. 원래 이곳 캠핑 사이트가 푸에고 화산이 잘 보이는 명소지만, 안타깝게 구름에 가려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해넘이가 시작되자 구름이 점차 걷히며, 눈앞에 불을 뿜는 공룡 같은 푸에고 화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고 거대한 산이었다. 활화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두워질수록 기온은 더 쌀쌀해졌다.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한 후 팀원들은 따뜻한 장작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타들어가는 장작 주변에 둘러 앉아 라면과 코코아로 몸을 녹이며 다국적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크르릉, 쾅쾅!”하고 푸에고 화산이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화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푸에고는 타들어 갈 듯한 붉은 용암을 뿜어내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장면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들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Oh my God! Unbelievable!” 등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원정대가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해 가는 무시무시한 활화산 같았다. 푸에고의 붉은 울음은 밤새 계속되었다. 그렇게 아카테낭고 화산 원정대의 첫날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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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길과 그림 같은 운해. ②화산재로 뒤덮여 발이 푹푹 빠지는 아카테낭고 산행길. ③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아카테낭고 화산을 찾았다.

“곧 출발할겁니다. 일출 보러 올라가실 분들은 서둘러 준비해 주세요.”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가이드가 텐트를 돌며 말했다. 10명으로 추려진 아카테낭고 화산 ‘일출 원정대’는 각자 장비를 챙겨 길을 나섰다. 어둠으로 캄캄한 세상에서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화산재를 가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길은 험난했다. 정상 부근이어서 그런지 경사는 훨씬 험해졌고 발은 더 깊게 빠져만 갔다. 곳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 격렬히 걷고 있음에도 한기가 돌 정도였지만, 다행히 조금씩 동이 터오고 있었다.

“10분만 더 올라가면 됩니다. 힘내세요.”

가이드는 지쳐가는 팀원들을 달콤한 말로 계속해서 독려했다. 산행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도 꽤 힘든 구간이었다. 경사도 경사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발을 딛을 때마다 계속 무너져 내리는 화산재였다. 게다가 정확한 트레일(산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려올 때 전경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냥 발 딛는 곳이 트레일이었다. 한참을 오르다 위를 바라보니 정상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다.

“해냈어요! 수고했어요!”

가이드는 팀원들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정상에 올랐다. 아카테낭고 정상에 오르니 제일 먼저 한가운데 움푹 파인 웅덩이가 보였다. 오래전 화산이 분출하며 만들어 놓은 흔적이었다. 웅덩이 둘레로 트레일이 이어져 있고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환상적인 360도 파노라마 경치가 펼쳐졌다. 해발 3,976m, 과테말라의 화산 중 세 번째로 높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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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티구와에서 타고온 치킨버스. 치킨버스는 과테말라의 이동 수단으로 미국 중고교 스쿨버스를 개조한 것이다. (아래)산행 초반에 나타나는 정글 같은 숲.

면사포를 쓰고 우리만의 웨딩 사진 촬영

아카테낭고 정상에서 본 풍경은 또 다른 세계였다. 으르렁거리던 푸에고 화산도 발아래로 보였고, 안티구아에 우뚝 솟아 있던 아구아 화산Volcan Agua도 저 멀리 내 발아래에 있었다. 세상은 아직 추운지 보송보송한 구름 이불을 덮고 있었다. 멀리 붉은 해가 솟으며 구름 이불을 걷어내려 하고 있었다. 햇볕에 조금은 따뜻해졌지만 바람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 조금 밑으로 내려가 바위에 기대앉아 일출을 기다렸다.

작년 여름에 오른 미국 휘트니에서도, 얼마 전 오른 멕시코 오리사바산에서도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올랐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 해돋이를 시작부터 보지 못했다. 물론 중간에 봤다 해서 일출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가 함께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처음이었다.

“올라온다!”

누군가 소릴 질렀고,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시끄럽던 푸에고 화산도 눈치가 보였는지 잠시 울음을 멈춰 주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아카테낭고 화산을 즐겼다. 우리는 준비해 간 면사포를 쓰고 우리만의 웨딩사진을 찍었다. 2015년 혼자 미국 PCT(4,300km)를 완주하고 북미 자전거 여행을 하다 지난해 여자친구(이하늘)가 미국으로 합류해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끝없는 여정의 신혼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함께 여행하며 의미 있는 장소에서 찍기 시작한 우리 부부만의 기록 방식이었다. 이어 가이드가 하산을 위해 모여 달라고 소리쳤다. 함께 오른 우리 원정대는 푸에고 화산을 배경삼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데낄라 꼰 리몬~” 하고 나와 하늘이가 외쳤다. 몇몇 친구들이 킥킥 거리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진 찍을때 “김치~” 하는 것처럼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조금 쉽고 빨랐다. 아니 무척 빨랐다. 우리는 올라온 트레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지만 가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푹푹 빠지는 화산재를 쿠션삼아 뛰어 내려갔다. 하이킹할 때 보통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트레일을 벗어나거나 질러가지 못하게 하는데 이곳에서 그런 개념은 아직 없는 듯했다. 그냥 눈앞에 있는 모든 곳이 길이었다. 뛰어 내려가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화산재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라 시야를 흐리게 했다.

우리는 먼지를 피해 천천히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나름 피한다고 노력했지만 온 몸은 화산재로 뒤덮여 있었다. 기름 진 삼겹살이 너무나 간절했지만 목구멍에 낀 화산재는 따뜻한 과테말라산 커피로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휴식 후 텐트를 걷어 산을 내려갔다.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쉬엄쉬엄 내려와 정오가 되기 전에 트레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1박2일간 정들었던 원정대원들과 이별했다. 팀원들의 셔틀버스가 떠나고 치킨버스를 기다리는 자리는 조금 쓸쓸했다. 안티구아의 호스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마지막으로 맥주 한 캔을 들고 침대에 몸을 뉘자 비로소 아카테낭고 산행이 끝났음이 실감났다.
출처 | 월간산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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