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핀 꽃’ · ‘세 번 건넌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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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핀 꽃'의 표지
8월 27일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에서 필자의 사무실로 소포가 왔다. 발신자는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작가인 김민환(73)씨였다. 내용물은 소설 <눈 속에 핀 꽃>(중앙 books)이었다. 수줍듯 미소 짓는 매화 두 송이와 눈을 맞추며 책장을 열었다.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필자가 만난 적도,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는 관계이기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소설<눈 속에 핀 꽃>속으로
 
소설의 첫 장 ‘1월 1일 0시 5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됐다.
 
“가을비가 스쳐갔다. ‘영운’은 마당으로 나갔다. 햇살이 비에 젖은 구절초 꽃잎을 어루만지자, 구절초는 얼른 보라색 꽃잎 뒤로 눈물을 감추고 해를 향해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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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에 물을 주면서 일상을 여는 김민환 작가
소설이 사랑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듯싶었다. 구절초의 꽃말이 ‘순수·모성애(母性愛)·우아한 자태’이기 때문이다.

잠시 구절초(九節草)에 대해 들여다본다. 이 화초가 구절초로 이름표를 단 이유는 ‘아홉 번 꺾인다’는 설(說)과 ‘9월 9일(음력)에 약효가 가장 좋다’는 설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자생하는 국화과의 다년생풀로 약재(藥材)로도 쓰인다.
 
소설은 필자가 예상한 대로 대학 시절 영운의 첫사랑 윤희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고, 오지랖이 하늘을 찌르는(?) 딸이 어머니(윤희)의 과거를 들춰서 첫 사랑의 남자(영운)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연애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막무가내 소포로 보낸다.
 
영운과 윤희는 어떻게 만났을까. 대학 시절 독서 팀에서 만났다.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인연의 끈이 너무 팽팽해서 끊어진 것일까. 두 사람의 인연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소설에는 그 당시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던 시대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난, 학생운동, 노동운동, 이념, 저항...그런 것 들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내린 사랑의 정의도 남다르다.
 
사랑은 그리움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내 곁에 그가 없어도 그를 내 마음에 담는 것일까?...안개처럼 말없이 다가와 나를 휘감는 그리움, 그게 사랑일까?...안개가 쌀뜨물처럼 짙었다. 그래. 그리움이 이만큼 진했던 적이 내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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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작가(사진: 중앙 books)
소설을 통해서 참된 사랑은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언론의 인터뷰에서 자전적 실연 소설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민주화 투쟁을 하던 영운은 선언문을 쓰는 역할을 했다. 작가 지망생이라서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독재는 망한다. 민중이 반드시 망하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뒤늦게 영운에게 알리는 윤희의 딸 수민의 말도 가슴을 저미게 하다.
 
“우리 집 가훈이 뭔지 아세요?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산다’입니다.”
 
서슬이 시퍼런 시대(엄동설한)에 꽃을 피운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는 치매를 앓다가 훌쩍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윤희도, 탁탁한 현실 세계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분노한 시인(詩人)들도 ‘눈 속에 핀 꽃, 매화(梅花)’로 마무리했다.
 
일본 소설 <세 번 건넌 해협>의 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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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한글판)의 표지
2012년 대한해협을 ‘세 번이나 건넌 사나이’의 억울하고 서러운 스토리(story)인 소설 <해협>(나남)을 접했다. 원제는 <세 번 건넌 해협>으로 일본에서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하하키기 호세이(帚木蓬生)의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팩션(fact+fiction)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허구)을 보탠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하시근(河時根)’이다. 그는 17세 때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본의 탄광으로 끌려간다. 첫 번째 건너는 해협이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한국이 해방의 날을 맞는다. 하시근은 배가 부른 일본 여인을 대동하고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가까스로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탄다. 두 번째 건너는 해협이다. 그리운 고향의 집.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반기지만 형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호령한다.
 
“너, 이놈아! 우리 집안이 일본에 의해 그토록 핍박을 받았는데도, 일본 년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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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탄광으로 끌려간 광부들의 루트(사진, 일본의 평화자료관)
훗날 일본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이 와서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데려간다. 하시근은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둔다. 재벌 회장이 된 하시근은 탄광촌의 폐석더미를 없애려는 N시장의 개발정책을 반대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간다. 세 번째 건너는 해협(海峽)이다.
 
하시근이 본연의 임무를 마치고 일본의 아들과 만나는 장면도 눈물겹다.
 
“아버지! 연락하려 해도 한국과 일본이 너무 멀었습니다. 어쩌면, 두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일지도 모르지요.”

“어머니는 어떻게 살다가 돌아가셨느냐?”

“홀로 행상을 하시면서 저를 교사로 만들었습니다. 북으로는 돗토리(鳥取)현, 남으로는 구마모토(熊本)현까지 일본 전국을 돌면서...”
 
하시근은 이 세상에 없는 ‘사토 치즈(佐藤千鶴)’와 눈앞에 앉아 있는 일본의 아들 ‘도키로’
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보를 터뜨린다.
 
<‘사토 치즈’가 재혼도 하지 않고 여자의 몸으로 홀로 아들을 교사로 키워낸 것에 비하면, 나의 성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시근과 ‘사토 치즈’의 사랑은 <눈 속에 핀 꽃>의 영운과 윤희 보다는 몇 걸음 더 나갔지만 시작과 끝은 매한가지다.
 
“사랑은 그대들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햇빛에 떠는 가장 여린 가지들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뿌리까지 내려가 대지에 엉켜 붙은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하기에.”라는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린 지브란(1883-1931)의 정의처럼.
 
하하키기 호세이(帚木 蓬生) 작가와의 만남도 책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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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키기 호세이 선생의 친필 사인
필자는 내친 김에 <세 번 건넌 해협>의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帚木蓬生)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 해협을 건넜다. 2014년 1월 29일이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모리야마 나리아키라(森山成杉木)’라는 이름의 의사(병원장)로 살고 있었다. 서로 시간이 없기에 질문에 돌입했다(필자 칼럼 2014. 2. 19일자 참조).
 
▶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본의 탄광에서 생(生)과 사(死)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주인공 하시근(河時根)의 스토리는 눈물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테마로 소설을 쓰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시나요?
 
“이 지역은 본디 탄광촌입니다. 제가 의사가 돼서 이 마을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환자 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재일교포 등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토록 아픈 사실자체를 까맣게 몰랐습니다. 묻힌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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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의사인 하하키기 호세이 선생
▶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다른 시각을 내보입니다만, 굳이 이토록 밝힌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생의 <세 번 건넌 해협>을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반대로 일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는 않으셨나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 소설로 제14회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 문학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일본 독자는 오히려 ‘자신의 인생사와 흡사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소설화했을 뿐 거짓으로 꾸민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한 역사는 잠깐 그럴듯해 보일 뿐 진정한 생명력을 얻지 못합니다.”
 
병원 앞까지 나와서 작별 인사를 하는 선생의 얼굴은 따스한 햇볕을 받자 더욱 생기가 돌았다. 나이를 잊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하하키기 호세이(현 71세) 선생의 인생이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책을 통해서 일본의 유명 작가와 만난 것도 특별한 인연의 끈이 있는 것일까.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김민환 작가와는 일면식도 없으나, 필자가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 ‘영훈’과 ‘윤희’의 인연에는 턱없이 못 미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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