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잠복(潛伏) 크리스천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보며
 
“잠복(潛伏) 크리스천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군요.”
 
일본의 지인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71)씨가 짤막한 문자 메시지와 함께 니시니혼신문(西日本新聞) 기사 하나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지난 3일자의 조간신문에 게재된 기사였다.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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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문학관 사진)
▼ “종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형태가 있다”고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는 썼다. 하느님 아버지가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분노·심판·처벌하는 것과, 이에 반해 어머니처럼 인간의 실수를 용서하고 슬픔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 잠복(潛伏) 크리스천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후자였다. 대대로 내려온 성화(聖絵), 성상(聖像) 중에서 성모의 그림 ‘마리아 관음(観音)’이 많아서다. ‘어머니의 종교’를 더욱 필요로 했던 것이다.
 
▼ 순교자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없는 비애(悲哀)가 있다. 빚(負)이나 열등감도 있다. 후미에(踏み絵)를 강요당하는 괴로움과 그 다리의 통증, 고통의 여러 가지를 성모 마리아는 이해하고 용서해 준다. ‘그들은 그렇게 바랐다’고 작가 엔도(遠藤) 씨는 해석을 덧붙였다.
 
▼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이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성직자 부재의 금교(禁教) 시대- 발각되면 엄벌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200년 이상 비밀리에 이어간 신앙의 릴레이는 기적이었다.
 
▼ 이 역사에 ‘영웅’은 없다. 주인공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불교를 가장하면서도 성모에게 구원을 청하기도 했다. 슬프고 나약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관철하는 힘이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졌다. 이러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감과 놀라움을 배가(倍加) 시킨다.
 
▼ 다른 한편으로 결정 후 후예(後裔)들에 의해서 엄숙한 종교 행위를 ‘관광’ ‘지역 진흥’과 세트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당황의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흥행이 아닌 내면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까. 세계유산등록과 동시에 안아야 할 어려움이다.

짧은 글이었으나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특히, “역사의 주인공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었다”는 것과 “엄숙한 종교 행위를 ‘관광’ ‘지역 진흥’과 세트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세계문화유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잠복(潛伏) 크리스천의 의미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15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1506-1552)에 의해서 크리스천(가톨릭)이 많아졌으나, 19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금교령에 의해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 1637년에 야기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の乱)’으로 막부(幕府)의 강력한 제재에 의해 일본의 기독교가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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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인형으로 재현된 잠복 크리스천(아마쿠사)

1644년 이후 일본에는 가톨릭 사제가 한 사람도 존재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불교 신자로 위장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이들을  ‘잠복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잠복 크리스천은 지극히 소단위의 집단으로 비밀리에 기도문을 만들어서 암송했다. 이 기도문을 ‘오라쇼(라틴어 Oratio)’라고 했다. ‘기도’의 의미란다. ‘오라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으로,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함께 외우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그들만의 행동통일 강령이었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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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관음상 후미에(아마쿠사)
아무튼, 잠복 크리스천들은 메달이나 로사리오, 성상·성화, 십자가 등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자체적으로 세례를 주면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켰다. 막부(幕府)시대가 종말을 고(告)하고 메이지(明治) 시대에 종교의 자유가 시행된 데도, 그들은 크리스천으로 복귀하지 않고 토속적 신앙의 형태로 전승하기도 했다.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의 아마쿠사(天草) 지역의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 금교 시대의 신자들을 ‘잠복 크리스천’이라고 하고, 메이지 이후 토속화된 신자들을 ‘숨은(隱れ) 크리스천’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역사와 믿음에 대한 가치가, 6월 30일 중동의 바레인에서 열린 제42회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의해서 정식으로 등재된 것이다.
 
 
 
후미에(踏み絵)란 무엇인가.
 
후미에(踏み絵)는 에도(江戶) 막부가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의 성화를 밟게 하여 신자를 색출하는 방법이었다. 잠복 크리스천으로 의심되는 사람 중 성화를 밟은 사람은 배교(背敎)를 인정받아 살아나고, 주춤거리거나 밟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을 맞았다. 후미에는 크리스천을 색출하는 잔인한 도구였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나가사키에서 이와 같은 후미에를 본 후 소설 <침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 <침묵>의 마지막 부분으로 들어가 본다.
 
“신부님! 기치지로입니다.”
 
“이제는 신부가 아니다. 빨리 돌아가는 게 좋다. 들키면 귀찮아진다.”
 
“저는 신부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성화 판에도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성화 판에 나도 발을 얹었다. 그때 이 다리는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백 번도 더 머리에 떠올린 얼굴 위에, 인간 중에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 위에...그 얼굴은 지금 성화 판에서 마멸되고, 움푹 파여, 슬픈 눈으로 이쪽을 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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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밟는 신부 로드리고(영화 '사일런스'에서)

“이 세상에는 약자가 있습니다. 강자는 그 어떤 고통에도 굽히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겠지만, 저 같은 약자는 성화 판을 밟으라고 관리들이 고문하면...”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주인공 기치지로와 결국은 배교할 수밖에 없었고,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일본 이름까지 하사받은 ‘로드리고’ 신부와의 대화 내용이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약한 자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강자들의 배려일 것이다. 필자가 얼마 전 나가사키의 소토메(外海)에 있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을 다녀온 후 다뤄본 테마(Thema)이다.
 
등장인물과 나(작가)와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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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메 문학관에 게시된 영화 '사일런스' 포스터
<소설가는 자신 속에 있는 여러 인격을 각각 독립시켜서 그것을 작중인물로서 그려나간다. ‘침묵’에 대해서 말한다면, 페레이라, 기치지로, 로드리고는 모두 나이며, 이노우에 치쿠고노카미(막부의 관리)도 역시 나 자신이다...내가 나가사키를 걷기 시작했을 때 등장인물들은 아직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그들은 내 마음 속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작가 엔도 슈사쿠가 ‘침묵의 소리(김승철 譯)’에서 밝힌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된 갈등(葛藤)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설혹 나를 배신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당신이 옛날 믿고 있던 그 신앙은 자신감이나 재판하는 강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위해서 존재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가 1968년에 발표(新潮 1월호)한 단편 소설 <그림자>에 묘사된 ‘버림받은 자의 슬픔’도 강자가 아닌 약자이기 때문에 겪어만 하는 비애(悲哀)일  것이다.
 
‘왜? 약(弱)한 우리가 고통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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