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토메의 엔도슈사쿠(遠藤周作) 문학관 탐방기
 
장맛비가 오락가락한 지난 달 28일. 나가사키(長崎)를 간 김에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문학관을 다녀왔다.
 
버스를 타기 전 75-6세쯤 돼 보이는 할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필자가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을 간다고 하자, 반색을 하면서 ‘자기 집이 바로 근처인데, 단골 치과에 오느라고 나가사키 시에 왔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버스가 와서 할머니와 작별을 고(告)하고서 차를 탔다..
 
버스는 우리네 인생처럼 고개를 넘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서 ‘사쿠라의 사토(櫻の里)’ 터미널에 필자를 내려놓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버려진 심정이었으나, ‘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오겠지’ 여유를 부렸다. 보이는 건 나무와 산 그리고, 언덕뿐이었다. 터미널에서 40분을 기다리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극단적으로 ‘이대로 생을 마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운 바다였다.
 
미치노 에키(道の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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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노 에키 정류장
드디어, 엔도슈사쿠의 문학관 입구에 도착했다 정류장의 이름이 ‘미치노 에키(道の驛)’- 석양의 언덕 소토메(外海).
 
‘미치노 에키(道の驛)’는 우리의 휴게소이다. 일본 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으로 1,145개 정도 된다.
 
나가사키 현에도 11개가 있다. 거기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레스토랑, 농수산물 시장과 정보 센터까지 있다. 언덕은 저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상상만으로도 석양(夕陽)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살피던 중 언덕아래 자리한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 건물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의 모습(?)’ 그러한 기분이었다. 70여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 자체가 저절로 품격이 느껴졌다. 입구에서 표를 사고서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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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관 전경

낯익은 성가(찬송가)가 잔잔하게 필자의 귀에 들어왔다. ‘엔도 슈샤쿠’의 사진과 도서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돼 있었다. 문학관 입구의 글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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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사진
“산간에 고요히 늘어선 작은 교회.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 한 낮에 반짝이는 바다도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입니다. 빛과 어둠,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곳 소토메(外海)는 작가 ‘엔도 슈사쿠’의 ‘마음의 고향’이자 ‘제2의 고향’입니다.”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55년 ‘하얀 사람’으로 제33회 ‘아쿠다가와’ 상을 탔고,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 준이로‘ 상을 수상했다.
 
소토메는 그 당시 잠복(潛伏) 크리스천이 많은 고난의 마을이었다. 그의 소설에 의해서 이곳에 문학관이 세워지게 됐던 것이다.
 
문학관은 상설관, 기획관 등이 있는데, 그의 탄생 95주년을 맞이해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푸르른 바다(海)...소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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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메의 바다

문학관 유리창으로 바라본 바다는 여전히 푸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잠시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사람들의 노력이 본받을 만했다.
 
“하느님! 하느님은 왜 침묵하시나이까?”
 
90도의 펄펄 끓는 온천에 거꾸로 매달으면서 ‘배교하라!’고 외치는 막부의 ‘갑질’-그러면서 순교자의 길을 걷는 사람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서 일본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 ‘침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서 가자, 이사 가자.
 천국의 궁전으로,
 천국의 궁전이라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신자들은 숨이 끊어질 듯 한 목소리로 성가(찬송가)를 불렀다.
 
관리의 '갑질'이다.
 
“백성들은 가엾은 자들이오. 그런데, ‘저 사람들을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신부인 당신의 태도에 달려있소이다.”
 
“저더러 배교(背敎)하라는 말이지요?”
 
관리의 말을 듣고서 신부는 기도했다.
 
“전능하신 아버지,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모든 이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소서.”
 
신부는 기도하면서 생각을 바꾸려고 했으나,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의 다음 기도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주님, 당신은 왜 잠자코 계십니까?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까?”
 
‘페레이라’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을 받고서 배교를 했다. 그리고서 또 다른 신부, ‘로드리고’ 마저 배교하고 말았다. 소설 ‘침묵’은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상을 받지는 못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하고 있을까?”
 
문학관을 나선 필자는 다시 버스를 타고 더 깊은 시골에 갔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 곳에 ‘엔도 슈사쿠’의 비(碑)가 외롭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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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비(碑)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
 
비(碑)에 새겨진 글을 읽고서 고개를 들자 여전히 바다는 푸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갈매기와 까마귀들이 어우려져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자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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