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서는 최근 2020학년도부터 사용할 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을 마련하여 세 차례의 공청회를 마쳤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율을 종전의 약 5:5에서 2.5:7.5로 조정하고 집필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아마도 집필자의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로 보여 진다. 그러나 과거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나 국정교과서 파동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교과서 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의 주인은 학생이며 학생들의 입장을 도외시한 교과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교과서 집필에는 집필 기준이 있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집필 기준이 양면성을 띠고 있다. 기준이 지나치게 세세하고 구체적이면 교과서별 차별이 없어져 굳이 여러 종으로 발행할 이유가 사라진다. 반면 집필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집필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면 교과서마다의 차별성이 확연하여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가 다르다는 것이지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교과서별 차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비교적 구체적이고 세세한 집필 기준에 의해 발행된 현행 7종 교과서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빈약한 집필진 - 부실 교과서는 필연
 
2015년 국정 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에 “민간이 발행하는 검인정교과서들은 모두 집필진 전원은 물론, 내용을 검토하는 연구위원과 검증위원들의 명단까지 공개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은 공개에 자신이 없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고백이다. 정부가 집필진의 명단을 숨긴다면 우리는 집필진이 부실하거나 편향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당시 교육부에서는 집필진의 숫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역사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였음에도 각계의 반발과 공세는 누그러들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렇다면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대해 비난을 퍼부은 측에서는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언급했어야 공평하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낸 바가 없다.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훨씬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였거나 전문성이 뛰어났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렇지가 않다. 아래가 현행 7종 검정 교과서의 집필진이다.
 
출판사
교수연구원
교사
기타
전체
대표집필자
전근대
근현대
금성출판사
2
2
4
 
8
근현대
동아출판
1
1
5
 
7
근현대
리베르스쿨
0
0
4
1(영어)
5
교사
미래엔
0
2
6
 
8
근현대
비상교육
1
1
6
8
근현대
지학사
2
2
4
8
근현대
천재교육
2
2
5
9
근현대
국정(2015)
11
10
6
27
 
 
이를 보면 모든 검정 교과서의 필진 중에는 비전문가인 교사가 교수보다 훨씬 많다. 더구나 7종 교과서의 모든 교수 수를 합해도 국정교과서 교수 수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검정 7종은 고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을 아우르는 긴 역사를 다루는 부분에 많아야 두 명의 전문가가 전부다. 리베르스쿨의 경우 교사 1명이 고대와 중세(고려)를 집필하는가 하면 국권상실기를 다룬 5단원은 영어과 출신 회사 대표가 전담하였다. 7종 교과서 전반에 걸쳐 오역(誤譯)과 오류(誤謬), 그리고 왜곡(歪曲) 서술이 만연(蔓延)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성 - 중구난방(衆口難防)의 다른 표현
 
검정 교과서 발행은 기본적으로 ‘다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르지 않다면 굳이 여러 종의 교과서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정 제도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대로라면 이 ‘다름’은 곧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라는 뜻이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는 차별 교육이고 공정하지 못한 교육일 뿐이다.
 
옹관묘(甕棺墓) 서술을 보더라도 옹관(甕棺) 사진을 실어놓고 버젓이 ‘독무덤’이라 하는가 하면, 어떤 교과서는 신석기 시대, 어떤 교과서는 철기시대의 무덤 양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서는 신석기시대 무덤 양식으로 알고 답을 쓰면 오답이라는 국편의 답변을 받은 바도 있다. 암각화(巖刻畵)에 대해 두 면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일부 교과서에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 어떤 교과서에는 암각화라 하고 어떤 교과서에는 바위그림이라 했다. 학생들마다 서로 다르게 배우는 것이다.
 
1882년 조미 조약의 관세에 대해 비교적 높은 관세율을 적용했다는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낮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했다는 교과서도 있다. 또, 관세를 부과한 사실만 서술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 1894년 갑오개혁 때의 개국기년(開國紀年) 사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서술은 이어진다. 처음으로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개국기년을 사용했다는 교과서, 개국기원을 사용했다는 교과서, 아예 서술이 없는 교과서도 있다. 이 경우는 아예 서술이 없는 경우가 차라리 낫다. 개국(開國)은 연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개국기년은 1894년이 아닌 1876년부터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마다 다른 서술에다 엉터리라는 오명까지 덮어썼다.
 
출판사
단원 제목 - 1945년 무렵
금성출판사
신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과 국제 사회의 움직임
동아출판
한국의 독립을 준비하다.
지학사
광복을 준비하는 움직임
리베르스쿨
국내외의 건국 노력과 국제 사회의 움직임
비상교육
건국 노력과 국제 사회의 움직임
미래엔
무장 독립 전쟁의 전개와 건국 준비 활동
천재교육
민족 운동 세력의 결집과 건국 준비
 
건국(建國) 논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단원 제목만 보더라도 건국 준비, 건국 노력, 독립 준비, 광복 준비 등 비슷한 듯 다른 용어를 쓰고 있다. 더구나 금성출판사는 건국이란 말이 거슬렸는지 ‘신국가 건설’이라는 이해 불가의 용어를 썼다. 신(新)이라는 글자가 ‘신세계’, ‘신세대’, ‘신여성’과 같이 추상적으로 사용되는 글자인데다 건설은 또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렇듯 다양성은 곧 중구난방(衆口難防)과 동의어다.
 
역사 왜곡 - 채택율에 숨겨진 비밀
 
출판사
면수(부록제외)
채택률(2014)
미래엔
364
33.2%
비상교육
404
29.4%
천재교육
363
16.0%
금성출판사
431
7.5%
지학사
407
6.1%
리베르스쿨
385
4.1%
동아출판
330
3.6%
 
교과서의 분량과 채택율도 문제다. 분량의 경우 가장 많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가장 적은 동아출판사 교과서와의 차이는 무려 100쪽이나 된다. 학생 입장에서 학습 부담 면에서는 동아출판 교과서가 유리할 수 있으나, 그만큼 배우는 내용이 적다는 점에서는 불리하다. 학생 입장에서는 공평하지 않다는 뜻이다.
 
문제는 채택율이다. 채택율이 높은 교과서는 내용이 충실하고 오류가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채택율의 차이에는 더 큰 역사 왜곡이 도사리고 있다. 가령 1948년 건국이 다수설이고 1919년 건국이 소수설이라 하더라도 채택률이 낮은 교과서에 다수설이 실리고 채택율이 높은 상위 3개 교과서에 소수설이 실릴 경우 소수설은 그 순간 다수설로 둔갑한다. 같은 또래 중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3개 출판사의 교과서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조일수호조규 무역규칙의 항세(港稅)에 관한 서술은 또 다른 왜곡을 보여준다. 채택률 하위 교과서에는 항세 부분이 아예 서술되지 않은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상위 3개 교과서에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서술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역규칙에서 무항세 허용으로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무역규칙 7칙에는 상선(商船)에 대해서는 배의 크기에 따라 항세를 차등 부과하였으며, 일본 정부 소속 선박 즉 관선(官船)에 대해서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두었다. 당연히 서술하지 않은 교과서가 차라리 올바른 교과서이지만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3개 교과서로 공부하니 오류도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게 된다.
 
오류 수정 - 애초에 불가능
 
검정 교과서의 오류가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오류가 있는 교과서는 검정 과정에서 거르면 되고, 나중에 문제가 있으면 그때마다 수정하면 된다고들 한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진 않다. 한때 교육부에서 오류 수정을 권고했을 때 집필자들은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시도”라며 수정 권고를 거부한 적이 있다. 그 성명 발표를 보는 순간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집필한 교과서조차 제대로 안 읽는 모양이다.’고 혼자 중얼거린 적이 있다. 솔직히 현행 검정 교과서는 오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집필자들이 수정 권고를 거부한 것을 보면서 과연 학자적 양심이나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필자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교과서 출판사와 국사편찬위원회에 교과서 오류에 대해 수없이 많은 민원을 제기하였으며 상당 부분 수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제 제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마다 오류가 예상 외로 많은데다가 혼자 8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별 교과서의 단순 오류는 그나마 쉽게 수정하지만, 모든 교과서에 있는 학설 오류는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 경우 출판사는 국편에 책임을 미루고, 국편은 개별 출판사에 대해 관여할 입장이 아니라고 또 미룬다.
 
신라의 국사(國史)와 백서의 서기(書記)는 역사서가 아닌데도 역사서로 가르치고 있다. 진경산수(眞景山水)는 존재할 수도 없는 용어임에도 실경산수(實景山水) 다음에 등장한 산수화로 가르치고 있다. 동국진체는 최초의 학설 제기자가 초보적인 한문을 오역하면서 제시한 황당한 용어임에도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고 있다. 1894년 고부민란 때 전봉준이 집강(執綱)에게 돌렸다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은 통문도 아닌 잡기(雜記)라는 지적에도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모든 교과서에 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親政) 시작을 선포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 등 정사(正史)에는 1866년 2월 13일 조대비가 철렴(撤簾)하고 고종의 친정을 선포했음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편에서는 1873년 흥선대원군 하야와 친정 선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필자에 요구에 최익현의 상소 중 ‘종친의 반열에 속하는 사람들은 단지 지위를 높이고 녹봉을 후하게 주어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함께 하도록 하고 나라의 정사에는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부분을 근거라고 제시하였다.
 
평가 문제 - 다양성 강화는 평가 불가의 길
 
집필자의 자율성이 보장될수록 교과서별 서술의 출입(出入)은 점점 더 심해진다. 서술의 출입이란 어떤 책에는 있고 어떤 책에는 없는 것을 이른다.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해도 어떤 시험에서도 문제가 없으려면 모든 교과서에 공통으로 서술된 내용을 출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한 학생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지문에는 현행 7종 중 3개 교과서에만 수록된 ‘수탈’이라는 단어와 어느 교과서에도 없는 ‘수탈 정책’이 출제되었다. 이에 대해 수차례의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그때마다 ‘현행 교과서와 학계의 통성을 근거로 출제했다.’는 답변만 계속 하고 있다. 현행 7종 교과서는 시험 출제자에게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곳곳에 오류와 서술 출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행 검정 국사 교과서는 다방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몇 안 되는 집필진으로 인한 오역과 오류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다양성을 빙자한 역사 왜곡과 중구난방식 서술은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서로 다른 학설을 서로 다른 교과서에 실어놓고 다양성이라 강변(强辯)하고 있는 것이다. 검정제로 발행되는 여타 과목에서 서로 다른 학설을 서로 다른 학생에게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 국어 과목에서 학생들마다 다른 문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국사 학계에서는 이러한 것이 마치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하나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도 하나다. 다양한 역사 인식을 추구하려면 하나의 교과서에 담아서 가르쳐야 한다. 서로 다른 교과서에 서로 다른 사실이나 대립된 학설을 실어 가르치는 것은 국론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친한 친구끼리도 학교가 다르면 서로 다른 교과서로 서로 다는 내용을 배우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현행 검정 7종 교과서는 폐기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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