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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공식사이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이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구한말 바람 앞 등불의 운명인 한성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청년들이 누구는 펜으로, 누구는 총으로, 누구는 회의와 관망으로 각자의 세계를 마주한다. 주옥 같은 명대사가 많다. 극 중 미국 해병대 대위로 분한 이병헌의 대사다. “전쟁을 하다 보면 말입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적국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 해 멸망한 역사 속 수많은 나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드라마가 우리들의 민족감정을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각색한 역사왜곡이 여기저기 거슬리긴 해도, 나 역시 간만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다. 캐릭터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목하고픈 인물이 있다. 조선땅에서 임금 다음으로 돈이 많다는 만석꾼 집안의 3대 독자 김희성(변요한 분)이다. 김희성은 동경 유학을 마치고 마지못해 돌아온 한성에서, 그저 도박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철부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신을 설정한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그의 집안이 대를 이어 쌓아온 악행 때문이다. 타고난 착한 천성 때문에 집안의 탐욕을 대물림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집안을 배신하고 망국의 현실과 싸우기에는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이 김희성이다. 그런 그가 극의 후반부에 달해서는 민족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신문사를 차린다. 순 우리말로 펴내는 신문이다. 희성은 밤마다 의병으로 변신하는 옛 정혼녀를 남몰래 후원하기도 한다. 희성 집안의 부유함 역시 조선 땅 곳곳을 넘어서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의병들의 간이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김희성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극중에서 다소 가볍게 그린 점이 없지 않지만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중앙학원, 동아일보를 설립한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이다. 인촌은 전라북도 고창에 터를 잡은 거부(巨富)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 집안의 든든한 지원으로 청년 시절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 해로부터 4년 후, 일본 최고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한다. 김성수의 가문이 드라마 속 김희성 집안처럼 대를 이으며 소작인들을 착취해 부를 쌓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동경 유학을 마친 청년 김성수는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보다는 적극적으로 ‘식민지 조선’ 이라는 조건 앞에 맞선다. 그 결과가 전술했듯 한민족의 청년 지식인들을 길러낸 민족 학교 설립이었으며,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조선인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민족지 동아일보의 창간이었다.
 
이 인촌이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김성수의 친일행위 인정과 이에 따른 건국훈장 박탈이 결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고려대학교 앞 도로명인 인촌로와 전북 고창의 인촌로 명칭을 각 지자체가 직권으로 변경했다는 내용이 주요 언론을 탔기 때문이다. 이 소란은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살아계셨다면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날 일이며, 식민지 시대 한성의 역사를 살아낸 분 들어도 웃을 일이다.
 
독립운동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1930년 전까지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개한 항일 게릴라 무장투쟁이 있었으며, 이승만·안창호 등 미국에서 공부하고 국제사회에 우리 민족 독립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설파한 언론․외교투쟁이 있었고, 진정한 대한의 독립은 조선인의 근대화와 실력 양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실력양성운동이 있었다. 대개 외교투쟁과 실력양성운동은 동시에 진행 됐는데, 김성수는 특히 후자였다. 인촌은 중앙학교(現 중앙중․고등학교)를 경영하며 낮에는 학도를 길러냈고 밤에는  학교의 숙직실을 3.1운동 준비 공간으로 제공했다. 일제 치하 동안 뒤로는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줄을 대주었으며 청년 지식인들의 유학길을 후원 했다. 일제 패망 직전에 친일에 가담한 경력이 있다고 하지만 식민지 기업인의 한계였다. 만약 김성수가 내놓고 일제에 부역질을 했다면 해방 후 조선인들로부터 가장 먼저 돌을 맞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해방정국에서 그 누구도 김성수를 친일행위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범 김구 선생 산하의 한 단체는 인촌의 1945년 행적을 두고 ‘부득이 끌려다닌 자’로 구분했다.
 
인촌의 건국 이후의 행적도 살펴보자. 김성수는 호남 지주들을 기반으로 해 현재 민주당의 원류격이 되는 한민당을 창당한다.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의 과제는 농지개혁이었는데, 골자는 제헌 헌법에 명시됐듯 ‘국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재산권 갖게 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좌파인 죽산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사회주의식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지주들로부터 빼앗듯 사들인 농지를 농민들에 분배하듯 되판 것이다. 헐값에 사들인 농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준 뒤 5년에 걸쳐 상환토록 했다. 당연히 기득권을 가진 호남 지주들이 결사 반대 했다. 이때 김성수가 나선다. 지주들로 하여금 일신의 부귀보다는 건국 초기 혼란한 조국에 민족적 결단을 유도한 것이다. 지주들의 불만을 정리한 김성수 덕분에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 농지개혁을 통한 지주들의 경제적 기득권 해체는 훗날 산업화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다른 제3세계 국가의 경우 농지개혁에 실패하여 국가가 경제 성장을 주도할 수 없었다. 경제권이 지주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그랬고 남미 국가들이 그랬다. 
 
역사는 후대의 사람들이 일차원적으로 선과 악을 단순하게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시대에 누가 친일을 했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식민지 시대의 인촌이 어떠한 역할을 했고 어떠한 몫을 짊어졌는지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난도질을 그만 멈춰야 할 때다. 이것은 선대의 지난한 노력 끝에 물려받은 이 땅과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염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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