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경하는 검사님.
  변호사인 저는 30년간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려놓고 평범한 변호사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 세월을 거쳐 오면서 뇌리에 깊이 각인된 모자(母子)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사건으로 입건되어 검사님 앞에 배당된 백순희와 그 아들입니다. 대략 십오 년 전 일이었을 겁니다. 악덕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모자는 삶의 마지막에 몰려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작은 미용실을 하던 박순희는 사채업자에게 남편의 빚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이단종교에 빠진 남편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단체 속에 들어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모자는 악덕 사채업자에게 쫓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서민에게 주는 고통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대충은 짐작하실 겁니다. 더 이상 미용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는 찜질방을 전전했습니다. 몇푼 가지고 있던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찜질방에서 어린 아들은 라면을 먹이고 엄마는 건빵 한 봉지를 찬 물에 타서 불려 먹었습니다. 모자의 삶은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모자는 마지막에 서울역 앞의 노숙자 센터를 찾아가게 됐습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모자는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모자를 만난 가장의 광기어린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장은 노숙자가 된 아내와 아들의 뺨을 때리며 욕을 했습니다. 감성이 예민해 보이시는 여검사님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가족이라는 게 뭔지를 회의하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의 절벽 꼭대기에 섰던 모자는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약을 사먹고 죽을 돈도 없었습니다. 번개탄을 피워놓고 목숨을 끊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모자는 지난날 기억 속에 있던 퇴계로의 대한극장이 있는 빌딩의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면 실패 없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어린 아들이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마지막으로 미용실 단골손님이던 그 사모님 집을 한번 찾아가 보자. 계시면 도와달라고 해 보자.”
  
  아들의 말에 엄마는 단골손님이던 한 오십대 여자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자식들한테 갔는데 집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아들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돈을 찾아보았습니다. 천원짜리 지폐 세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거면 버스비는 간신히 될 것 같았습니다. 모자는 버스를 타고 단골손님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모자는 골목 안의 그 집 대문에 달린 인터폰의 벨을 눌렀습니다. 다행히도 그 여자는 집에 있었습니다. 전날 미국에서 귀국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십만 원권 수표 한 장을 주머니 속에 살짝 넣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사채업자 문제만 해결되면 내가 미용실 내는 보증금은 빌려 줄께요.”
  
  변호사인 저는 이 무렵 우연히 이들 모자의 사연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채업자를 상대로 법원에 이미 빚이 없다는 채무 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갚은 이자만 해도 원금의 몇배가 넘었습니다. 법정에서도 사채업자의 독기는 대단했습니다. 판사 앞에서도 드러누워 거품을 품으면서 자해행위를 했습니다. 당황한 판사가 법정 경비원을 부르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변호사인 저에게 하는 패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린 모자가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요즈음 같으면 장기(臟器)라도 요구했을 악마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변호인은 이 모자에 대해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 가족으로서의 마음의 연대가 끊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이혼판결을 받아 주었습니다. 가장의 존재 때문에 극빈자에게 국가에서 주는 도움조차 받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작은 미용실을 하면서 모자는 다시 안정을 찾았습니다. 사채업자에게 쫓길 때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들은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청화대학에서 중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아들은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다시 미용실을 차린 엄마에게는 찾아오는 고객들이 이제는 신(神) 같이 보였습니다. 뼈를 깎아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정성으로 대했습니다. 미용실에 점점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몸이 부서져라 미용실 안에서 일만 해 왔습니다. 고객들은 모자에게 밥을 먹게 해 주고 아들의 공부를 하게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미용사인 엄마는 여성들의 피부 마사지로 전문미용 분야를 바꾸었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정성스러운 마사지는 고객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부유층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유층 손님을 받다 보니 운전면허증이 필요했습니다. 요즈음의 고객들은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가서 모셔 와야 하는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운전면허증을 딴 아들이 차를 운전해서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엄마는 틈틈이 운전면허 필기 시험 책을 구해 공부했습니다.
  
  2.
  
  2014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인지 모자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자는 함께 서울 강남의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아들도 가는 길에 1종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등록절차를 밟았습니다. 취업시험을 볼 때 자격증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유리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자는 면허시험장에서 학과교육을 받고 확인증을 받았습니다.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모자는 면허시험장 근처의 작은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된장찌개와 밥을 시켜 놓고 먹으면서 엄마가 아들에게 걱정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마사지 일은 고객들이 낮에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행시험을 치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오십대 쯤의 마르고 얼굴이 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모자의 얘기를 옆에서 들은 듯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강남의 운전면허 시험장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행시험도 어려워요. 직장인들은 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운전면허를 따려고 들 합니다. 하루에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데가 있어요. 알려드릴까요?”
  
  모자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러나 수상했습니다. 시험장 근처에서 배회하는 엉터리 사설학원 수강생을 불법으로 모집하는 삐끼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거 혹시 불법 아니예요?”
  박순희가 경계하면서 물었습니다.
  
  “불법이라뇨? 절대 그건 아니죠. 정식으로 인가된 인천의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필기시험과 주행시험을 보고 면허증을 따는 건데 그게 무슨 불법입니까. 다만 지방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아서 하루에 된다는 거죠. 인천에서 일단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중에 서울로 적을 옮기면 됩니다. 서울에서 시험을 치나 인천에서 치나 면허증의 효력은 마찬가지예요. 바쁜 직장인들이 다 이렇게 땁니다.”
  그 남자의 말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에서 면허증을 따려면 어떻게 해야죠?”
  박순희가 물었습니다.
  
  “여기 쪽지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연락을 하세요. 그러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겁니다. 언제 가실 겁니까?”
  남자는 번호가 적힌 쪽지를 한 장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사흘 후쯤 가죠. 저희가 그 분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잘 해주면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돈을 약간 주시면 될 거예요.”
  
  사흘 후 모자는 인천에 있는 면허시험장 근처로 가서 쪽지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 후 반팔 초록색 셔츠로 된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박순희는 시험장 이층에 가서 필기시험을 치렀습니다. 63점으로 합격했다는 통보가 나왔습니다. 박순희는 시험장 일층으로 내려가 절차에 따라 장내 기능시험과 주행시험의 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오자 장내 기능시험에서 통과했습니다. 1종 대형으로 면허를 바꾸려는 아들 김주용은 코스테스트에서 실수 없이 합격했습니다. 그 다음이 주행시험이었습니다.
  
  대기실에 있다가 순서가 되자 박순희는 면허시험장의 차에 탑승했습니다. 동승한 시험관 앞에서 주행을 했습니다. 박순희는 긴장을 한 채 핸들을 잡고 주행코스를 돌았습니다. 주행에서 합격을 하자 시험관은 도장이 찍힌 확인증을 주면서 이제 면허증을 발급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박순희는 안내를 해주었던 초록색 반팔티를 입은 남자에게 식사나 하라고 건물 밖에서 십오만 원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날 있었던 일의 전부입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8년 3월의 어느 날입니다. 박순희씨한테서 변호사인 저에게 핸드폰이 왔습니다.
  
  “경찰서에서 불러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우리가 불법으로 운전면허증을 땄다는 거예요.”
  “주행시험을 볼 때 시험관이 봐줬어요?”
  
  “저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주행시험시간이 돼서 차에 올랐는데 워낙 긴장을 해서 핸들을 잡고 차를 움직이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차에 시험관인 사람이 올라탔어요. 나중에 도장이 찍힌 확인증을 줬어요. 그게 다인데 모르겠어요.”
  박순희의 대답이었습니다.
  
  “혹시 실수를 했는데 봐주지는 않았어요?”
  “긴장해서 운전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모르겠어요.”
  
  변호사인 저는 박순희의 아들 김주용을 바꾸어 달라고 해서 물었습니다.
  
  “주용이, 너는 그날 무슨 테스트를 받았지?”
  “코스 테스트를 받았어요. 군대에서 버스도 몰고 그래서 다 통과했어요. 특별히 다른 건 없었어요.”
  
  “담당 경찰관이 무슨 죄라고 하는 말이 없었어?”
  “엄마와 제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라고 했어요.”
  
  미세먼지가 안개같이 도심의 빌딩 사이를 가득 채우던 2018년 3월29일 오후 2시경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서부검찰청에 도착했습니다. 일층 민원실에서 변호인 선임계에 날짜도장을 받은 후 검찰청 입구에서 전자출입증을 교환하고 918호 최근영 검사실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수사관에게 선임계를 제출했습니다.
  
  “기록에 잘 편철하겠습니다.”
  친절하고 밝은 수사공무원의 태도였습니다. 전에는 종종 검사실에 선임계를 제출해도 직원의 부주의로 그게 도중에 없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검사실의 가운데 최근영 검사님의 명패가 보였습니다.
  
  “박순희와 김주용 사건이 오늘 배당된 것으로 통보가 왔는데 무슨 죄로 입건이 된 겁니까?”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의 사람들은 공무원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뇌물을 먹은 겁니다. 뇌물을 먹고 주행시험에서 감점을 할 걸 하지 않은 거죠.”
  
  3.
  
  변호사인 저는 아직 기록을 보지 못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박순희와 김주용을 통해 그날 있었던 일만 대충 들었을 뿐입니다. 십여 년 동안 박순희 모자를 보아 오면서 그들은 정직한 성격의 사람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피의자가 된 박순희 모자에게 정말 뇌물을 준다는 범죄적 고의나 그게 아니라면 막연하더라도 그런 인식이 있었나 변호인으로서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 사건은 운전면허 시험장 주변의 불법한 조직이 속칭 삐끼를 이용해서 던진 낚시 바늘에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간 모자가 걸려들었다고 보여집니다. 박순희는 불법이 아니냐고 하면서 의심을 했습니다. 불법이면 거절할 명확한 태도였습니다.
  
  면허시험장에서 본 초록색 반팔 티의 남자에게 박순희 모자는 봐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모자는 지금도 자신들의 실력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녁이나 드시라고 준 십오만 원의 성격도 그게 과연 뇌물성을 가진 것일까 의문입니다. 박순희 모자는 범의가 없거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극히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박순희 모자는 불법조직의 유혹에 걸려든 피해자인 면이 있습니다. 아들인 김주용은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시작부터 먹구름이 낄까 심하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검사님,
  한번 이 모자에게 법의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법의 여신은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 저울로 정의와 죄를 달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그 저울에 한 가지를 더 달아보시면 어떻겠나 건의드리고 싶습니다. 이 모자의 순수한 영혼의 무게를 한번 측량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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