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경 폴 크루그먼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쓴 암호화폐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칼럼을 읽었다. 내가 <화폐혁명>을 쓰면서 원고를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세계적인 석학이라 불리는 교수의 단견이 안타까워 그의 논지를 정면 반박하는 글을 써서 <화폐혁명> 책의 마무리 글에 가름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그가 비트코인에 대한 그간의 회의적인 입장을 바꾸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다행이다.


앞으로 세계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터무니없이 많이 풀어놓은 유동성과 이를 단도리하기 위한 미국의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심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이미 신흥국들부터 몸살을 앓기 시작했으며, ‘2020년 위기론’이 자꾸 불거지는 이유이다. 독자들을 위해 나도 여기에 <화폐혁명>의 마무리 글을 공개하여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와 향후 통화제도의 변화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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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폴 크루그먼의 입장변화) 
폴 크루그먼의 변신 "비트코인은 악마”→"가치 있는 것” 
 
“지난달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 블록체인 관련 콘퍼런스인 체인엑스체인지(ChainXChange)가 열렸다. 메인 무대에서는 ‘디지털 이코노미’를 주제로 패널 토론이 한창이었다. 한 패널의 발언에 관중석이 술렁였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NYT)의 인기 칼럼니스트다. “금은 죽었다. 비트코인은 금보다 유용성이 크고, 앞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관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개발자의 말이었다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가 크루그먼이다. 그는 “비트코인은 악마”라고까지 했다. 지난달 초에 게재한 NYT 칼럼에서도 “투기 세력이 비트코인이 가치가 없다고 집단적으로 의심해 버리면 비트코인은 쓸모없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중앙일보 고란 기자, 2018.9.8.) 
 

 
<화폐혁명>의 마무리 글 
마무리하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같은 유명한 경제학자조차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뉴욕타임스》 사설을 아래 말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암화화폐와 관련된 또 다른 요인이 하나 있다. (…) 사악한 정부가 그들의 돈을 몽땅 훔쳐간다는 환상에 기초한 컬트 같은 게 있다. (…) 비트코인은 파국으로 끝날 것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다.” 
 
컬트는 신비주의 종교집단을 의미한다, 사악한 정부가 돈을 훔쳐간다는 사실은 환상도 아니고 신비주의 집단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반박하고자 이렇게 기나 긴 글을 썼다. ‘사악한 정부가 그들의 돈을 몽땅 훔쳐간다는 환상에 기초한 컬트 같은 게’ 역사적 실제에서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인류사에 있어서 돈의 발명은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돈은 대부분 진보의 근원이었다. 이를 통해 교환과 분업과 협력이 가속화되어 문명이 발전했다. 화폐의 발명 이후 돈의 형태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지폐가 디지털화되어 가상화폐가 등장했고 2009년에는 드디어 탈중앙화 암호화폐가 선보였다. 암호화폐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기존 화폐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기에,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다. 
 
이 문제가 바로 인플레이션의 위험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다루었다.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포함하여 끝이 없을 것 같던 많은 인류 문명들을 망하게 한 것은 인플레이션이었다. 화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하고, 화폐 가치를 절하시키면서 결국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마침내 화폐는 신뢰를 잃고,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그 문명은 함께 붕괴되었다.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역사는 반복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 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안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지난 세기만 해도 독일, 그리스, 미국, 헝가리, 북한 등의 나라들이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일반인들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은 물론 인플레이션 자체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정부로 하여금 어느 누구의 찬성투표도 없이, 그리고 케인즈의 말을 빌리면 “백만 명 중의 어느 한 사람도 감지할 수 없는 방법으로” 조세를 부과할 수 있다. 때문에 정부의 재정수입 원천으로서의 인플레이션은 항상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밀튼 프리드먼은 그의 《화폐 경제론》 에필로그에서 이런 말로 마무리를 했다. “화폐는 너무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에만 맡길 수 없다. (…)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이라는 명제는 수백 년 동안 학자들과 실무자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명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화폐 가치의 변조 – 국민의 참여 없는 조세 –에 의해 국민들을 수탈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면서 정부당국은 자기네가 결코 그러한 짓을 하고 있지 않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결과적으로 초래되는 인플레이션은 온갖 다른 나쁜 요인의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명제가 무시되는 까닭은 개인의 상황파악과 사회적 상황파악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이든 정부의 통화발행이든 소득증가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은 축복이지만 통화증발은 저주가 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밀튼 프리드먼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침체 시 중앙은행의 무리한 금리인하와 신용창출은 경기의 단기적 회복을 위해 인플레이션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꼴이다. 더 나아가 민간중앙은행을 갖고 있는 국가의 통화정책이 금융세력들의 이익에 따라 휘둘리고, 이들의 이득을 위해 유동성을 무책임하게 늘림으로써 세계 경제를 잠재적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이로 인해 각 나라마다 피곤한 환율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그간 달러의 패권을 이용해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많은 횡포를 벌여왔다. 
 
이런 상황을 참다못해 몇몇 자유주의자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화폐혁명을 일으키고자 만든 결과물이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중앙집권을 타파하고, 임의로 발행량을 늘리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총발행량 사전 설정을 통해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미국의 화폐 역사에 봤듯이, 다수 민간은행들의 화폐발행으로 인한 화폐의 범람 역시 많은 문제를 노출하기도 해 이 또한 문제가 없지는 않다. 
 
중앙은행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많은 대안들의 시도 중 그나마 최선책이었다. 또한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과 은행들의 부분지급준비제도는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고 특히 경제위기 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순기능이 있어 경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실은 인정해야한다. 따라서 많은 암호화폐 찬양론자들이 이야기하듯 무조건적으로 현대 금융통화제도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화폐발행과 신용창출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정치적 구조이다. 적절한 수준의 화폐발행과 신용창출로는 금융세력이 만족하지 않으며, 끝없는 부의 창출을 위해 계속적으로 통화량을 늘리려 한다. 오늘 날 미국의 금권정치 구조에서는 정부가 금융세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암호화폐의 탄생은 의미가 크다. 정부 주도의 화폐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없는 민간화폐가 공존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두 종류의 화폐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서로의 장단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다. 더 크게는, 기존 화폐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대안이 생긴 것이다.
 
화폐는 애초에 중앙집권의 통제 없이 생겨났다. 화폐 발행량, 유통량, 환율이 모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후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와중에 화폐는 경제의 힘에서 정치의 힘으로 넘어갔다. 
 
이 체제에 도전하여 혁명을 일으킨 게 암호화폐다. 기존 화폐를 조절하는 기득권자들은 화폐발행 독점권을 잃으면 그만큼 힘을 잃게 된다. 이로써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감행하던 인플레이션이 감소하고, 더 나아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완화될 단초도 마련했다. 이 두 과제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임을 감안할 때 암호화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암호화폐의 미래
 
향후 암호화폐의 미래를 감히 유추해 보았다. 앞에서 암호화폐의 발전단계를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로 구분했다. 하지만 이 말은 ‘핍박기, 투쟁기, 대세기’로 바꾸어 부르는 게 이해가 더 빠를 수 있다. 
 
도입기의 암호화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핍박을 받을 것이다. 우선 사기성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과 함께 의구심의 눈에 많이 시달릴 것이다. 현재도 부정의 시각과 긍정의 시각이 확연히 나누어져 다투고 있다. 
 
기득권 세력인 유대금융자본은 암호화폐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것이다. 우선 헤지펀드들이 선물시장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일정 테두리 안에 가두려 할 공산이 크다. 이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이합집산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있다. 현재의 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다툼에 국가발행 암호화폐들이 가세할 것이다. 
 
그 뒤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제블록별 암호화폐가 중국 주도로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브릭스는 무역거래에서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13년에 브릭스 통화안정기금 발족과 2016년 브릭스개발은행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브릭스 암호화폐가 순조롭게 순항을 시작하면 파급효과가 예상외로 클 수 있다. 이어 중남미연합과 아프리카연합 같은 지역 암호화폐 그리고 이슬람 암호화폐 등이 탄생해 이 싸움에 가세할 공산이 크다. 결국 기존의 법정화폐와 탈중앙화 암호화폐 그리고 중앙화 암호화폐들이 3파전의 세력 다툼을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입지가 많이 축소될 것이다. 
 
이틈에 탈중앙화 암호화폐가 어느 정도 세력을 키워 성장기로 진입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정부와 유대금융세력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 모른다. 또 암호화폐가 화폐로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변동성을 키우고 여러 문제를 노출시킬 것이다. 실제로 비트코인 주도 세력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 몰려야 일치단결하여 그간 이해다툼에 밀려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할 것이다. 
 
그러다가 달러가 반달러 세력의 협공에 취약성을 보일 때, 혹은 인플레이션에 휩싸일 때, 혹은 달러가 제법 규모 있는 평가절하를 시도해야만 할 상황에 몰릴 때, 이때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선호하게 되어 힘의 구도가 바뀔 수 있다. 
 
실제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존 통화가 실패할 경우에만 암호화폐가 화폐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대학의 위르겐 폰 하겐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통화가 아주 불안정하게 돼야 암호화폐가 매력적이 될 것입니다. 금융시스템에서 암호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불안정성의 원인이 아닌 결과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시기 이후를 암호화폐의 대세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세기가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는 시장이 결정할 것이다. 결국 달러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곧 암호화폐가 스스로 힘을 배양하여 득세하는 게 아니라 달러가 자충수를 둘 때 비로소 세력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러가 자충수를 두고, 암호화폐가 세계화폐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세계화폐의 자리를 차지하는 암호화폐가 꼭 미국이나 중국, 유럽에서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암호화폐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우리가 지지한 암호화폐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기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이다. 그럴 때만이 암호화폐가 불러올 화폐혁명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미지의 시대가 열리다
 
2009년 암호화폐가 탄생한 이후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누구나 암호화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암호화폐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이는 달러가 금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신용화폐가 되었을 때도 현대자본주의에서 벌어질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달러 체제가 만들어낸 금융자본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부채 시스템에 묶여 발행되는 달러의 영속성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상위 1%가 소득과 부를 독점하고, 국민의 90%가 중산층을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는 사회가 자본주의를 지속시킬 힘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케인즈는 생전에 불로소득생활자들의 안락사를 요구했다. 이자율의 점진적 인하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 취임 다음 날 모든 은행의 영업정지를 발표하고 감사에 착수해 부실을 도려내고 가망 없는 은행들을 퇴출시킴으로써 금융의 신뢰를 회복시켰다. 또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절반을 가져가자 자본주의에 일대 수정을 가했다. 이른바 조세정의를 앞세우고 부자증세를 단행했다.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였다. 이를 통해 상위 10%의 소득을 30% 초반대로 낮추어 이를 서민 복지확대에 써 소득불평등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이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정부는 금융세력들의 반대로 이 중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대신 무제한의 유동성 살포로 금융위기를 임시 땜빵 하듯 유동성 장세로 처방했다. 그로 인해 금융자산 증가속도가 근로소득 증가속도를 두 세 배 이상 앞지르면서 소득불평등과 부의 편중을 극도로 심화시키고 있다. 
 
확실한 것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위 1%의 독식체재로는 자본주의가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90%가 하류화 물결 속에 익사당하는 사회는 더더욱 자본주의가 버텨낼 수 없다. 선거가 금권에 휘둘리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영속 가능하지 못하다. 불로소득 증가속도가 근로소득 증가속도보다 몇 배나 빠른 사회는 영속 가능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지금과 같은 금융자본주의는 영원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암호화폐가 탄생했다. 달러 체재 곧 금융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새로운 화폐가 등장한 것이다. 선택은 시장의 몫이다. 그런데 시장은 또 개인 몫들의 합이다. 역사의 행위자가 될 것인지 방관자가 될 것인지도 개인의 몫이다. 결국 개인의 몫의 합이 우리 사회의 미래이다. 이 세상의 미래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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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을 쓰게 된 것은 출판사 대표의 강력한 권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공동저자가 있어 가능했다. 공학을 전공한 그 공동저자는 다름 아닌 나의 둘째 아들이다. 책 쓰는 내내 암호화폐가 처한 현실과 미래에 대해 둘이 같이 토론했는데, 특히 아들이 아버지의 오버 성향을 견제해 균형감각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이로써 모처럼 부자가 공동 저술한 책이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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