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2018.11.01. / photo by 뉴시스
  대법원은 지난 1일 병역법위반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에 대해 전원합의체판결로 무죄를 선고했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양심적 병역거부’의 일종으로 보고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 아울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남용되지 않도록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여야 하고 삶의 일부가 아닌 삶의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는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소정의 기간이 경과하도록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판결로 이 병역법규정은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데 병역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하므로 병역의무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고,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고 하면서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을 위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고 판시한 바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없이는 국민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였는데 국민개개인의 자유도 정치에 참여해야하고 그 참여의 결과로 보장된 자유를 획득하고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강조되는 공화주의 헌법원리에 부합되는 판결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판결에서는 공화국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는 퇴색되고 반면에 개인의 내심의 신념에 따른 행동의 자유 즉 개인적 자유주의가 강조되었다.
 
 이 대법원판결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의 다섯 가지로 한정하여 규정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는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법의 병역종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바 있으나 국회가 병역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병역법의 계속적용은 인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이유로 병역법상의 병역종류조항은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고 병역자원의 효과적 확보와 효율적 배분 그리고 국가안보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당한 입법목적을 가진 법률규정이라고 보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는 병역자원의 감소를 논할 정도가 아니고 이들을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교도소에 수감할 수 있을 뿐 병역자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므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국방력에 의미 있는 수준의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통해 대체복무제도입을 국회에 촉구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을 통하여 입법부인 국회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촉구한 것이었으며 국회는 이 판결에 따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입법부의 병역법개정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병역법위반이라는 실정법위반자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기존의 판례를 변경해버렸다. 실정법을 위반하여 기소된 자에 대하여 실정법을 무시한 무죄선고는 대륙법체계인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가진 권한을 넘는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하여 ‘병역법 개정’을 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했다. 이는 명백히 헌법상 원리인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행위이자 월권이다.  한마디로 이번 대법원판결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판결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가정체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여러 가지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위험한 판결이 틀림없다. 그리고 앞으로 대법원이 실정법위반자에 대한 무더기 무죄판결이 쏟아 낼 때 이를 실질적으로 저지할 다른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는 등골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판결임에도 이러한 점을 자각한 정치권과 언론계의 직업적 양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법원이 병역법을 법이 아닌 법으로 만들어 버렸다. 헌법재판소가 수십년간 헌법불합치판결이라는 형식으로 법적안정성이라는 법의 이념을 지키고자 했던 수 많는 노력을 한순간에 뒤엎어 버린 것이 이번 대법원판결이다. 헌법재판소가 수 많은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음에도 현재까지도 법령이 제정되거나 개정되지 아니한 채로 국가의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는 사례가 무수히 많았다. 국민들은 헌법불합치결정에도 불구하고 입법적 조치없이 세월만 보내는 국회를 탓하기 보다는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되는 시기를 기다리는 시민적 인내를 보여왔다. 이러한 시민들의 인내는 성숙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의 훌륭한 덕목이 되어 대한민국의 공화주의가 버텨왔지만 이제는 참고만 지낼 국민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왜 위헌결정을 하지 않고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는지를 진정 망각한 것 같다.
 
 국민 개개인이 민주적 방식으로 정치적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그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하여 선출된 대표가 제정한 법률을 준수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그 법률이 정한 자유를 누릴 때 민주공화국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민주적 정통성이 국회보다 약한 대법원이 국회의 권능을 쉽사리 압도한 것이 이 번 판결이다. 국회가 대체입법을 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실정법을 무시하고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은 흔히 강학상 논의되는 영미법계의 사법적극주의와도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에 속한다.
 
  법의 이념이라고 한다면 법적안정성과 정의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유명한 법철학자 라드브루흐는 법이 구속력을 가지는 이유는 법적 안정성때문이기는 하지만 현저하게 정의에 벗어나는 법에 대해서는 구속력을 박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정의에 현저히 반한 법률이란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투입된 법률’에 국한된다고 했다.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안전보장만큼 중요한 가치가 더 있을지 의문이다. 라드브루흐의 입을 빌리자면 대법원은 병역법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투입된 법률’로 매우 정의롭지 못한 법률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판결은 대한민국을 심각한 국가정체성의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나서는 국민이 마치 호전적이고 살인자 취급을 받는 국가,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이 정의롭지 못한 법률이 된 국가가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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