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지난 1년 동안 출판되어 주목받는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 관련 책들. 왼쪽부터 ①『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나 Why Liberalism Failed』, ②『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나 How Democracies Die』, ③『인민 대 민주주의, 왜 우리의 자유는 위험에 처해 있으며 어떻게 구할 것인가 The People vs Democracy: Why Our Freedom is in Danger and How to Save It』
70년 동안에 대한민국을 현재와 같은 자랑스러운 번영의 나라로 이끌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를 헤쳐 나갈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와 시장경제라는 경제 질서는 자유라는 가치를 중심에 둔 자유주의라는 이념의 진화과정에서 숙성된 정치 ․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승전국 미국의 도움과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식견 덕분에 쉽게 얻은 이들 대한민국의 기초의 중요성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무릇 진화라는 것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적자만이 생존하는 냉혹한 경쟁이기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질서도 세월이 흐르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피 흘려 쟁취하고 땀 흘려 노력하면서 가꾸어 얻은 결실인데 우리는 거저 얻었기에 그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귀한 것도 그 가치를 모르면 쉽게 버릴 수 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이라는 세계 정치사의 뚜렷한 이정표들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가 있기까지의 험난했던 과정을 상기시켜 주지만, 상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지식 정보혁명으로 인류를 기아해서 해방시켜주었고 오늘의 번영을 가능케 한 자유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법, 관행, 조직 등의 제도 인프라가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졌는지를 콕 찍어 보여주는 경제사의 이정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것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졌고 지켜졌는지, 또 지금 잘 살게 된 거가 그 덕인지를 알지 못하니 귀한 거라 생각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바깥세상의 상황을 보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위기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2007-8년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자유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미국에서 트럼프의 등장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유럽 대륙 각국에서의 극우세력 약진 등으로 자유주의 위기론이 고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 지난 1년 동안 출판되어 주목받는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 관련 책들의 제목들이 이들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나 Why Liberalism Failed』,『서구 자유주의의 후퇴 The Retreat of Western Liberalism』, 『한 때 그리고 미래의 자유주의자 The Once and Future Liberals』,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나 How Democracies Die』,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Can Democracy Survive Global Capitalism』, 『인민 대 민주주의, 왜 우리의 자유는 위험에 처해 있으며 어떻게 구할 것인가 The People vs Democracy: Why Our Freedom is in Danger and How to Save It』등등. 만일 자유주의의 위기가 한국만이 직면한 한국특유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 원인의 진단과 대응도 자유주의 자체와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 보편적 접근이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는 그 이념이 기초로 삼는 정전(canon)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그 의미도 다양하기에 정의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지만,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이 동의하는 자유주의의 특징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어떤 권위(교회나 국가)로부터도 독립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있으며,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 관용, 법치, 개방성, 진보, 정교분리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역사적 고찰도 도움이 된다. 근대적 원조 자유주의로 인정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그 뿌리가 있고 아담스미스(Adam Smith)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유주의 classical liberalism'의 중심 원리는 공(公, public)과 사(私, private)의 구분에 있다. 타인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의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밀(J. S. Mill)이 제시한 기준이 이 구분에서 나오며, 종교 사상 언론의 자유의 기초이다. 또 생산, 교환과 같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도 거래 당사자들만의 사적 영역이기에 타인의 필수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사적 자치가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경쟁시장의 기초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다른 색깔의 자유주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혁명의 초기 결실인 1793년 헌법 제2조는 정부가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평등, 자유, 안전, 그리고 재산권을 꼽아 평등 지향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노동권과 필요한 사람에게 생존의 수단을 제공할 사회의 의무도 명시했다. 1793년 헌법은 1795년 헌법으로 대체되었지만, 그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혁명가 페인(Thomas Paine)은 권리로서의 기본소득 논리에 근거한 제도를 제안했고, 그 후 유토피안 사회주의자 푸리에(Charles Fourier)와 샤를리에(Joseph Charlier)도 ‘토지배당’이라는 이름의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평등 지향적 좌파 자유주의라는 흐름도 생겨난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공화당 보수 자유주의와 루스벨트(F. D. Roosevelt)이후의 민주당 좌파 자유주의의 이념적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두 흐름이다.
 
두 유형의 자유주의를 구분하는 이유는 자유주의가 실패에 이르게 하는 원인 제공방식과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등이 자유에 우선하는 좌파 자유주의는 그 정도가 심해지면 보다 더 평등해지기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우를 범해 민주주의의 실패로 독재정권이 탄생하면서 자유주의가 종말을 맞게 된다. 이 경로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칼럼을 참조하기 바란다.
 

우파 자유주의는 어떻게 실패에 이르는가? 민주국가의 ‘고전적 자유주의’이념의 정권이라면, 큰 틀의 경제정책기조는 작은 정부, 자유경쟁시장 질서유지(경제규제의 최소화), 자유무역의 세 가지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우파 자유주의 정권 하에서도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다. 재정학에는 19세기 독일 경제학자의 이름이 붙은 바그너 법칙(Wagner's Law)이라는 가설이 있다. GDP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추세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사회주의 실험 중에 지속 불가능한 수준까지 정부지출이 늘어났던 몇몇 국가들의 경우가 아니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또 노동시장의 진입장벽 수준을 보여주는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의 비중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지금 미국 IT대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은 19세기 말 반독점법이 만들어지던 때보다 더 우려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념정당이 선거공약으로 내건 슬로건의 실천력이 추세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슬로건에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지만, 추세는 인간이 본성에 따라 행동한 결과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정치인과 관료를 포함한 기업, 직능단체 등 이익집단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하며 행한 행위들이 의지가 담기지 않은 정책 슬로건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 가정 하에 독립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그래서 자기이익 추구가 정당화 되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모형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불완전한 합리성 하에서 그 설명력이 의심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모형이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보장하는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되던 능력주의(Meritocracy)와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이비리그(Ivy league)나 옥스브리지(Oxbridge)에서 교육받고 전문직이나 학자로서 사회적으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높은 연봉을 누리는 엘리트들이 그들의 특권을 세습하는 ‘세습 능력주의 hereditary meritocracy' Edward Luce, The Retreat of Western Liberalism. 혹은 ’자유주의자지배 liberalocracy' Patrick Deneen, Why Liberalism Failed.로 불리는, 전근대 귀족계급을 자유주의 엘리트 계급이 대체한 사회로 바뀐 것 뿐 이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 신인 트럼프의 미국 공화당 장악이나 영국의 EU탈퇴 결정과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모형은 민주주의 선거시장에서 또 의회라는 판에서 로비를 매개로 벌어지는 이권시장에서 어떻게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들이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는 사실이다. 왜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지를 기대효용으로, 유권자들은 정당의 정책이나 후보자들 검증노력을 하지 않는지를 유권자들의 ‘합리적 무지’로 설명한다. 또 생산자 로비가 소비자 로비를 이기는 현상을 올슨(Mancur Olson)의 ‘집단행동의 논리’로 설명한다.  소비자와 같이 광범위한 대집단의 구성원인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에 나서서 사적으로 얻을 이익은 크지 않다. 따라서 합리적 개인은 남들이 나서기를 바라며, 자신은 무임승차하려 한다. 반면 생산자 단체와 같이 소수로 구성된 이익집단에서는, 집단행동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개인에게 돌아갈 이익이 크기 때문에 각 구성원들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안재욱 외, 『새 경제학 원론』, 301-2쪽.
 
실패의 원인을 알면, 해결책이 보인다. 해결책은 간단한 것일 수도 혹은 실행불가능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합리성 가정이 문제가 되는 많은 경우가 사람들이 이익을 장기적 고려가 아니라 단기적 계산만 하기 때문인데, 이는 장기의 불확실성이나 상호작용의 복잡성에 따른 계산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제 빅 데이터의 사용으로 정보비용이 낮아지면, 이 문제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발상의 전환이다. ‘자유’를 자기이익추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근시안적 이익추구가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쳐 야기할 정치적 파장까지 고려하게 되어 비용-편익의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모든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를 자신들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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