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살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상하이 시민들. photo 차이나데일리
지난 6월 28일, 상하이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다.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 쉬후이구의 세계외국어소학교(초등학교) 앞에서 한 남성이 식칼을 휘둘러 초등학교 4학년 학생 2명이 즉사하고, 다른 학생 1명과 학부모 1명이 중상을 입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행인들에 의해 제압된 살인범은 29살의 청년실업자 황(黃)모씨. 상하이 공안국에 따르면, 후난성(湖南省) 출신의 범인 황씨는 후난성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에 일자리를 못 구해 각지를 전전하다 6월 초 상하이로 흘러들어왔다.
   
   결국 계속된 구직난과 생활고로 사회에 앙심을 품은 범인 황씨는 이제 10살밖에 안 된 무고한 아이들을 상대로 식칼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관방을 전전하던 범인이 버스를 타고 식칼을 품은 채 학교 앞까지 찾아온 사실도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사건 직후 학교 앞에는 선혈이 낭자한 채 비명횡사한 아이들을 추모하는 학부모와 교직원, 시민들이 가져다 둔 꽃다발과 인형, 장난감들이 줄줄이 놓였다.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죽은 학생들을 추모했다.
   
▲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제압된 범인 황모씨. photo 바이두

   끔찍한 살인사건이 터진 세계외국어소학교는 상하이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 초등학교다. 원래 공립학교로 출범해 2004년 상하이를 모항으로 하는 중국 최대 민영항공사 길상(吉祥)항공의 모회사 쥔야오(均瑤)그룹이 인수해 사립으로 전환한 학교다. 원저우(溫州) 출신의 쥔야오그룹 창업자인 고(故) 왕쥔야오(王均瑤)와 왕쥔진(王均金) 형제가 차례로 이사장을 맡았다. 이 학교의 현 이사장인 왕쥔진 쥔야오그룹 회장은 “6000만위안(약 100억원)을 들여 학교를 인수했다”며 “인수 당시 ‘백년 명문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유명세 덕분에 이 학교는 연간 최대 10만여위안(약 1670만원)에 달하는 학비에도 불구하고 입학하려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연간 학비 10만위안은 지난해 기준 상하이의 1인당 연간 가처분소득 5만8988위안(약 985만원)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때문에 이 초등학교는 상하이 외 다른 지역에서도 ‘귀족학교’라는 유명세를 누렸고, 졸지에 ‘사회에 대한 복수’를 노리던 29살 청년실업자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귀족학교’란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범인이 학부모인데 찬조금 문제로 학교 측과 다투다가 복수를 했다” “범인이 원래 교직원이었는데 학교 측과 마찰이 있었다”는 등등의 유언비어마저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위챗) 등을 통해 급속히 유포됐다. 급기야 상하이 공안국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웨이신 등으로 유포한 부동산 중개업자 등 8명을 잡아들이기에 이르렀다. 현지 언론에는 “이 사건을 과도하게 보도하지 말라”는 ‘보도지침’까지 하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으로 상하이의 학부모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나다. 막대한 학비를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공산당 간부 자녀들과 부잣집 도련님을 뜻하는 ‘홍얼다이(紅二代)’ ‘푸얼다이(富二代)’들이 다니는 학교로 소문이 난 학교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져서다. 다시 말해 상하이의 어느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란 사실이 증명됐다. 상하이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지난 일주일 내내 사건의 발단이 된 청년실업과 빈부격차, 아동안전 등이 어디를 가나 화제가 됐다.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지역감정에 편승해 성정(性情)이 괄괄한 후난(湖南) 사람들에 대한 성토와 함께 “이제부터 칼을 들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을 지키겠다”는 학부모들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상하이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서울 강남의 학부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최근 폐지됐지만 그간 상하이의 학부모들은 ‘독생자(한자녀) 정책’에 호응해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소황제(小皇帝)’처럼 애지중지 키워왔다. 하나뿐인 자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좋은 초등학교에 보내자는 일념으로 시작됐다. 시험을 쳐서 입학하는 고등학교, 대학교와 달리 명문 초등학교는 학부모가 학교 주변의 집을 소유하면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수 있다.
   
   
   방탄 무장 보안원 철통 경계
   
   이런 입학제도는 ‘중점소학(초등학교)’으로 지정된 상하이 108개 초등학교 주변 집값을 끝없이 밀어올렸다. 필자가 거주하는 상하이 푸둥(浦東)의 아파트 바로 앞에도 푸둥에서 손꼽히는 명문 초등학교가 있다. 아침 등교시간과 오후 하교시간은 벤츠, BMW부터 오토바이,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늘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다.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아동유괴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혼자서 등하교하는 학생은 1% 미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하교 시간 학교 앞에서는 방탄조끼에 방탄헬멧을 착용한 학교 보안원들이 이순신 장군의 장검만큼 긴 곤봉과 둥근 방패를 들고 경계를 편다. 가끔씩 경찰들까지 지원근무를 나오는데 도대체 학교 앞인지 군부대 앞인지 헷갈릴 정도다. 상하이의 주요 초등학교 정문에는 이런 중무장 보안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살인사건이 터진 세계외국어소학교 앞에도 보안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결국 범인은 보안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정문에서 130m 떨어진 지점에서 아이들에게 식칼을 휘둘렀다.
   
   비록 명문 초등학교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지만 이번 사건으로 상하이 학부모들의 명문 초등학교 선호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는 구(區)별로 초등학교 입학제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구에서는 ‘5년1호(戶)’ 제도를 운용 중이다. 5년간 1개 호적(호구)에만 입학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호적지와 거주지가 일치해야 우선권이 주어지는 등의 각종 제약도 있다.
   
   이 같은 까다로운 입학 조건 탓에 초등학교 입학연령인 만 6세가 되기 전에 미리 명문 초등학교 학군에 해당하는 집으로 이사해 안정적으로 5년 조건을 충족하려는 학부모들도 넘쳐난다. 소위 ‘학구방(學區房)’으로 불리는 집들인데, ‘학구방’에 해당하는 아파트 단지에는 초등학교 입학을 노린 전입수요로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가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원조국다운 현상이다.
   
   상하이 학부모들의 ‘학구방’ 선호현상은 부동산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상하이 일부 학구방의 1㎡당 매매가가 12만위안(약 2000만원)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온 지도 오래다. 한국식 평(3.3㎡)로 환산하면 무려 6600만원에 이른다. 한국의 ‘학구방’에 해당하는 서울 강남구의 3.3㎡(평)당 아파트 매매가(약 4000만원)를 훌쩍 넘어서는 숫자다. 한국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언급했다는 ‘중국식 토지공개념’에 대한 칭송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탁상공론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집값을 천정부지로 밀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은 서울이나 상하이나 모두 교육열이다. 요즘은 “명문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아이의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財力)”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상하이에서도 많이 나온다. 중국공산당의 발상지인 상하이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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