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허인회
아동학대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 학대, 그리고 방임이다. 흔히 방임이라고 하면 아이에 대한 양육 책임을 포기해버리는 유기(遺棄)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유기는 방임의 한 형태일 뿐이다. 방임도 크게 유형이 네 가지나 된다. 물리적 방임, 교육적 방임, 의료적 방임, 그리고 유기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6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전체 아동학대 사례 유형 중 중복 학대를 제외하고 방임은 두 번째로 많이 나타나는 학대 유형이었다. 그나마 이전보다 비중이 줄어든 것이 이랬다. 2015년 통계에서는 방임이 18.6%로 신체 학대 14.5%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방임이 학대의 한 유형이라는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 사회에서 방임 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된 것은 일련의 몇 가지 사건이 있고 나서의 일이다. 2016년 7월 폭염경보가 내린 광주에서 유치원 통학차량에 8시간가량 방치돼 뇌손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동방치 사건은 방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7월 17일 경기도 동두천에서도 어린이집 통학차량 내에서 하루 종일 방치된 아동이 결국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8월 2일에도 경기도 고양시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아동이 방치되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교육 당국이 긴급히 대책을 마련해 내놓았다.
   
   문제는 이런 대책들이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시됐다는 점이다. 잇따라 발생하는 아동방치 사건은 단순히 보육 책임자의 안일한 자세 때문에만 생긴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방임이 아동학대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정부에서는 “아동을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동을 방치함으로써 학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방임이 학대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방임에 해당하고, 왜 그런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다음 여섯 사례는 최근 2~3년 사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일로, 모두 방임 학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돼 조치가 이뤄진 사례들이다.
   
   
   사례 1 6살 은수와 4살 승현이의 집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두 남매의 아버지에게는 저장강박증이 있어 온갖 물건을 집에 들이기만 하고 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매가 작은 몸을 제대로 누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물건들로 가득 찬 집에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남은 그릇, 정체 모를 쓰레기 같은 것도 쌓여 있었다. 남매의 어머니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었다. 위생 관념이 적어 남매를 씻기거나 옷을 빨아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매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은 유치원에서가 전부였다. 저녁에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거나 부모가 입맛이 없을 때는 거르기도 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해 또래 아이에 비해 언어발달 정도도 늦었다.
   
   부모가 남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좁은 집에서 아이들이 답답해 하는 것을 느낀 부모는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놀러 가곤 했다. 가족 간에 대화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몸에서 항상 냄새가 나고 갈아입지도 않은 채 낡은 옷만 입고 다니는 남매를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유치원에서 남매는 늘 놀림감이었다. 결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해 방임 조사를 실시했다.

   
   일반적으로 방임은 ‘부모가 자녀에게 무관심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임은 자녀에게 애정이 있는 부모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방임이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로 정의돼 있다.
   
   <사례 1>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자녀의 양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물리적 방임의 전형적 사례다. 신영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설명이다.
   
   “물리적 방임이란 의식주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거나 아동을 장시간 적절하지 못한 환경에 오래 방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례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고 청결한 환경을 마련해주려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기본적인 것이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방임을 가하고 있는 부모 중에는 자신들이 자녀에게 부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신영호 상담원은 “때로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부모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나면 급격히 상항이 개선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부모의 습관,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좀처럼 개선되기가 어려운 것이 방임 학대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방치된 아동을 ‘학대 피해아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실제로 한 언론에서는 지난해 9월 경기도 수원시의 쓰레기집에서 구조된 남매 사건을 보도하면서 “경찰은 ㄴ씨가 남매를 때리는 등의 학대를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ㄴ씨가 쓰레기장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자녀를 방치한 데 대해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고만 했다. 그러나 이는 방임에 따른 엄연한 학대행위에 속하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일이다.
   
   
   사례 2 초등학교 3학년 서영, 1학년 지영 자매는 편부 가정에서 자랐다. 자매의 어머니는 몇 년 전 가출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 오후에 돌아오는 그는 항상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는데 집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벽지는 누렇게 변색이 됐고 가재도구에는 찌든내가 배어 집 밖에서도 악취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자매는 인스턴트로 식사를 대신했는데 안주도 제대로 먹지 않고 술만 마시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보일러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몸을 씻지 않고 다니는 날이 태반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여름에도 낡은 긴팔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서영이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따돌림을 당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닌다거나 몸에서 지속적으로 악취가 나는 아동은 방임을 의심해봐야 한다. 신영호 상담원은 “피해아동들은 흔히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따돌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거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학대 피해아동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학대 의심 사례로 신고된 2만5878건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1만8700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의 72.3%에 달했다. 신고가 곧 학대를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사 과정에서 방임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판명이 나면 피해아동보호명령제도 같은 응급조치를 통해 피해아동과 보호자를 분리시키기도 한다. <사례 2>에서는 자매를 아버지로부터 잠시 분리시킨 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증상을 치료한 후 주거정리사업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사례 3 초등학교 2학년 동현이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소문이 났다. 길거리에서 욕설을 내뱉고 교실 안에서 성질을 부리는 일은 예사고 물건을 부수기까지 한다. 잠시간의 집중도 힘들어해 학교 수업시간에 거의 앉아 있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이 갈까 동현이를 교실에서 분리시켜도 보고 학부모 상담도 여러 차례 실시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최근에는 FPS(일인칭 슈팅 게임)와 유튜브를 통해 배운 욕설을 사용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동현이의 부모는 동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들어 잘 알고 있지만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사와 전문 상담원들이 부모를 면담하고 동현이가 ADHD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부모는 상담과 진료를 거부하고 나섰다. 동현이 나이대의 아이들에게는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응답한 부모는 급기야 교사와의 연락까지도 단절해버렸다.

   
   의료적 방임은 아동이 자라면서 받아야 할 적절한 의료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신영호 상담원은 “아동에게 만성질환이 있거나 신경정신과적 문제가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치료에 돌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부모도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사례 3>처럼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있는 아동은 어린 나이에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수록 증상이 현저히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적 방임을 행하는 부모는 ‘우리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다’며 치료를 거부하곤 한다. 신 상담원은 “치료가 필요한 아동이 적시(適時)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동 보호의 기본”이라며 “의료적 방임은 상당수 아이의 발달 정도와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사례 4 5살 재석이의 온몸은 짓무른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는 재석이를 두고 어머니가 몇 개월간 ‘풍욕’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자연의학에서는 풍욕은 자연의 바람을 쐬어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아토피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피부가 ‘숨을 쉴 수 있게 한다’며 풍욕을 한다. 맨 처음 재석이의 피부염은 심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이 어머니가 풍욕이 유일한 치료법이라 믿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가렵기만 했으나 피부염이 심해지자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고 결국 입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신영호 상담원은 “의료적 방임으로 의심돼 신고가 들어와 조사해보면 부모의 잘못된 의료 신념이 학대행위로까지 이어지는 피해 사례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치료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인 부모의 의료적 신념만을 고집해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는 사례도 의료적 방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더러 종교적 이유로 수혈 같은 의료행위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신 상담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의료적 방임 행위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최근 문제가 됐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같이 자녀의 질환을 악화시키는 사례는 자주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례 5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윤아·민아 자매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학교에 간다. 자매의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주로 누워서 지내는 편인데 자매도 어머니가 잠이 들면 옆에서 따라 잠드는 버릇을 들였기 때문이다. 대개 자매가 눈을 뜨는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로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수업이 마무리될 때다. 학교에 가 봤자 야단만 들을 것이라는 걸 아는 자매는 “학교에 다녀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 하루 종일 집에서 머무는 편이었다. 윤아·민아는 아직 한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당연히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등교를 꺼리는 편이다. 자매는 집에서 머물며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동영상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식사는 대개 인스턴트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기름지고 짠 음식만 반복해 먹다 보니 자매는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커 얼마 전 체력측정 시간에 고도비만 판정을 받았다. 자매를 진찰한 의사는 이들이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적 방임은 물리적 방임과 같이 진행될 때가 많다. 교육적 방임이란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에서는 초·중등 과정이 의무교육 과정이라 이 시기 학생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2016년 인천에서 11살 아동이 감금돼 있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된 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교육적 방임에 대한 인식은 다른 방임에 비해 많이 개선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례 5>와 같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피해아동이 많다. 박세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의무교육 과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학업성취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동의 사회화 과정과, 살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하게 하려는 목적인데 이를 준수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면서 “이유 없이 아이를 교육기관에서 방치하면 교육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례 6 13살인 민우가 초등학교에 가지 않은 지도 1년이 지났다. 민우의 부모는 “공교육에는 문제가 많다”며 민우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집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학교에 통보했다. 행정기관까지 나서 부모를 설득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 부모의 다짐과는 다르게 민우는 1년이 넘도록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해야 하는 부모는 민우에게 교재만 사주고 집을 비우곤 했다.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쥐여준 스마트폰과 함께였다. 민우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는 재미에 빠졌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언어 구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영상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거나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함께 놀 수도 없었다. 부모가 없는 시간에는 줄곧 스마트폰을 붙잡고 사는 민우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못하는 중독 증상을 보였다.

   

   부모의 차별적인 교육관이 있더라도 교육적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교육적 방임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교육적 방임 사례를 많이 목격한 신영호 상담원은 “의무교육 과정 대신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를 보내겠다고 결심하는 부모도 있는데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의무교육 과정도 대안 교육도 받지 못한 교육적 방임 피해아동을 낳을 수 있다.
   
   교육적 방임 피해아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눈에도 쉽게 띄지 않는다. 방임 판정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다만 박세라 팀장은 “교육적 방임의 결과물로 이른 나이에 심각한 스마트폰, 컴퓨터 중독에 빠지는 아동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 밖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이상 아이들은 지루한 공부 대신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 같은 자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방임 학대의 사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빈곤가정, 한부모가정 같은 사회취약계층에서 방임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이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센터장은 “빈곤이 방임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보통 생각하듯이 의도적인 방임은 전체 방임 사례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결과로서의 방임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빈곤가정이나 한부모가정이 취약한 이유는 생계를 위해 자녀를 물리적으로 방치했을 때 자녀를 책임질 사람이나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생계를 위해 자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편부가정에서 자매가 방치된 일이 있었다. 따로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 자매는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겼다. 아버지는 하루이틀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자녀의 안부를 묻는 등 자녀에 대해 나름의 관심을 쏟았지만, 아동의 양육에는 관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신영호 상담원은 “생계를 잇는 데 신경 쓰다가 아이의 기본적인 생존 문제를 뒷전으로 두는 가정에서 방임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고 말했다.
   
   
   아동 3명 중 1명이 위기
   
   사회적으로 고립된 취약계층에서 자녀 양육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한 사례도 많다. 이는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되는데 경제적·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출산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 본인의 사회적 고립을 가속화하는 알코올중독이나 다른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위험하다. 만약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복지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이런 가정의 아동에게 방임이 일어나지 않도록 돌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마다 각기 다른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는 한국에서는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아동의 수가 공식 통계로 짚이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류정희 센터장은 “여러 통계를 종합해봤을 때 방임 수준이 아니라도 가정에 방치돼 있는 나홀로아동은 전체 아동의 3분의 1이 넘을 것”이라며 “이들 아동에 대한 구제 조치가 없다면 방임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방임 피해는 다른 유형의 학대 피해처럼 장기간에 걸쳐 아동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학대 피해아동의 문제를 연구해온 안동현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연구자들이 실험실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먹을 것만 주고 방치한 쥐와 운동과 놀이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쥐의 뇌 구조를 살펴봤을 때 활발하게 활동한 쥐의 뇌 연결회로는 정교하고 풍부하게 발달했는데 그렇지 않은 쥐의 뇌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구조로 변화했습니다. 방임을 비롯해 학대 피해아동의 뇌 구조를 보면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옵니다. 특히 방임은 아동이 자라면서 필요한 자극, 돌봄을 받고 대화를 나누는 최소한의 자극도 부족해 대뇌의 발달이 늦어집니다.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동의 피해는 평생에 걸쳐 지속될 겁니다.”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보면 방임 피해아동에게서는 학습 문제와 섭식 문제, 무력감 같은 정서적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섭식 문제로 인해 신체적으로 발달이 늦어질 뿐더러 또래 아이들과 같은 학습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정서적인 문제까지 겪게 된다. 이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다.
   
   
   국가가 아동을 방임하고 있다
   
   방임이 심각한 학대행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인식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정부도 최근 들어 ‘방임도 학대’라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있고 예전보다 방임에 대해 인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식개선과 신고만으로는 결코 방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방임을 가장 심각한 아동 문제 중 하나로 간주한다. 지난해 10월 미국령인 괌에서 한국 법조인 부부가 자녀를 40여분간 차량에 둔 채로 쇼핑을 하러 갔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잠시간의 아동 방치라 할지라도 엄격하게 처벌해 아예 아동을 원(原)가정에서 분리시키는 조치를 취할 때가 많다. 문제는 엄벌주의 미국에서도 방임 사건이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다. 류정희 센터장의 설명이다.
   
   “미국 아동복지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위탁가정에 대한 예산입니다. 미국은 방임에 대한 엄벌주의로 나가다 보니 아동을 분리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하는데 원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이 위탁가정이나 시설을 떠돌면서 생겨나는 부작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신고와 처벌은 당장의 방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실제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통계를 보면 방임 학대의 재학대 비율은 22.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한 번 방임 문제를 일으킨 보호자는 다섯에 하나꼴로 다시 아동을 방임한다는 얘기다. 방임 문제가 원가정의 경제적·정서적 문제와 맞닿아있다 보니 원가정에서 분리시키는 분리보호 비율도 높은 편이다. 성 학대를 제외하고는 분리보호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인데 피해아동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처벌로만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결국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 아동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회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강화하고 부모에게 경제적·정서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아동만은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게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해결책을 민간에 미뤄두고 있다. 전국 각지 62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 위탁경영시설이다.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올해 아동학대 예방 및 사후관리 예산은 254억32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12억원 줄어들었다. 아동학대 방지 예산이 보건복지부의 일반 회계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범죄피해자기금과 복권 판매기금 등을 통해 조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 중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10억원에 불과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각지에 마련돼 있고 제도도 갖춰져 있지만 이를 실천할 물리적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 특히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에 대한 처우는 일반 사회복지시설의 절반에 불과하다. 인력은 말할 것도 없이 부족한데 처리해야 할 업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세라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신고가 들어오는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거기다 민간 기관이기 때문에 상담원의 행위에 법적 강제성을 가지지 못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 운영기관으로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방임 사례를 직접 조사하고 조치할 수 있지만 공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방임 가해 보호자가 상담원을 피하면 그뿐, 사건이 반복돼 발생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류정희 센터장은 방임을 해결하기 위해 ‘투 트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사회취약계층의 아동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이런 보호 시스템을 공공이 책임지고 실행해야 합니다. 방임이 학대라는 인식을 제고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다시는 방임으로 피해받는 아동이 없도록 국가와 사회가 양육자의 책임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국가가 아동을 사회적으로 방임하는 셈”이 된다. 가정에서 방임된 아동이 사회에서도 방임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주간조선은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시한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을 준수합니다. 피해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을 임의로 각색했습니다. 또한 피해아동을 직접 인터뷰하는 대신 전문 상담원과 관계 기관의 도움을 받아 아동 방임 학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기울였습니다. 보도 기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홈페이지(www.korea1391.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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