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아침이었다. 그날따라 감기 기운이 돌았다. 주부 A씨는 6살배기 아이를 등원시키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어린이집에 갔더니 아차, 5분 지각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지각 사유서’였다.

A씨는 아이를 옆에 두고 늦은 이유를 써내려갔다.

“아침에 몸이 좋지 않아 등원 준비를 제때 할 수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와서…(중략)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예고 없이 늦으면 사유서 제출

서울의 한 대학 부설 어린이집 얘기다. 이곳 학부모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어린이집 측에서 지난 5월 중순부터 시행한 ‘등·하원 시간 변경 사유서’ 때문이다. 등·하원 시간 변경을 미리 고지하지 않을 경우 이 사유서를 내야 한다. 예컨대 사전 고지 없이 당일 5분 늦었을 경우, 늦은 이유를 적어 내야 아이를 비로소 보육실로 보낼 수 있다. 등원 시간은 오전 10시다.

사유서상에는 “어린이집은 필요 시 증빙서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유고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고지하고 있다. 더불어 “유고 인정이 어렵거나 사유서 제출이 반복될 경우 ‘어린이집 세칙’에 따라 공식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공식적인 제재’라 함은 심한 경우 퇴소 조치까지 이른다. 요컨대 미리 얘기하지 않고 자주 늦을 경우 퇴소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이집, “안전사고 예방 차원”

이 어린이집은 왜 ‘지각 사유서’를 만들었을까. 이는 지난 4월 중순 발생한 안전사고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게 어린이집 측의 설명이다. 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일과 시간 중 사라졌고, 3시간 뒤  모처에서 발견된 것. 당시 학부모 상담 기간이었는데, 조사 결과 다른 학부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이 아이가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어린이집 측에서는 즉각 후속조치를 마련하고, “대학본부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사항과 어린이집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부모님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고 각 내용을 동시에 진행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본부에 협조를 요청한 사항은 펜스 교체, CCTV 노후화 개선 그리고 인력 충원이다. 아무래도 부설 어린이집이다 보니 비용 등이 발생하는 세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본부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어린이집은 자체 후속조치도 마련했다. 교사 및 원아 교육, 안전 매뉴얼 재정비 그리고 문제의 ‘등하원 시간 관리’다. 등하원 시간 관리 방법으로 늦거나 일찍 하원할 경우 사유서를 쓰도록 한 것. 어린이집 측은 “안정적인 보육 과정 운영과 안전한 보육 환경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부모들 생각은 달랐다. “지나친 조치”라는 반응이다.

학부모 A씨는 “3시간 동안 미아가 발생한 후속조치로 ‘지각 사유서’를 쓴다는 게 과연 온당하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는 “아이가 나간 사고가 마치 학부모들의 부주의 탓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강요하는 것 같아 몹시 불편하다”면서 “등원 시간이 각기 달라 아이 안전이 걱정된다면 현관에서 인솔해 나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비단 해당 어린이집 학부모뿐만 아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주부들은 이구동성으로 “과한 조치”라고 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주부 C씨는 “두 아이를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고, 주변에 학부모도 많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면서 “특히 아이를 둘 이상 키우면 정시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워킹맘 K씨는 “아이가 불시에 아픈 경우도 있고 특히 워킹맘의 경우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데, 그때마다 사유서를 내야 한다는 건 비효율적인 대처”라고 말했다.
 

물리적 보완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

익명을 요구한 한 보육 관련 협회 임원 S씨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안전사고 예방 조치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아가 발생한 것이 출입문 개폐에 따른 것이었고, 원생마다 등원 시간이 들쑥날쑥하면 그만큼 출입문 개폐가 수시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사유서 제출이 이 사건과 무관한 대처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또 “이런 사고가 한번 나면 안전관리를 제일로 여기는 어린이집 차원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고, 최대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서 “다만 노후시설 보완 등 물리적 보완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부도 B씨는 앞서 어린이집이 학부모를 소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규정을 정하고 시행한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S씨에 따르면 어린이집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규정을 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니다.

S씨는 이어 “사유서 항목이 다소 엄격한 감이 있지만, 이는 학부모 측과 조율해 수정 보완하면 된다”면서 “이처럼 어린이집과 학부모 간 대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최선의 해결안은 ‘대화’”라고 조언했다. 그는 “오는 6월 운영위원회 혹은 당장이라도 임시 소집을 해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원만한 조율점을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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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지난 4월, 어린이집에서 미아가 발생한 것과 관련 몇 가지 조치를 마련했다. 펜스와 CCTV 교체, 인력 충원 그리고 원아의 등하원 시간 관리를 위한 ‘등하원 시간 변경 사유서’다. 사전 고지 없이 등(하)원이 늦을 경우 사유서를 제출해주길 바란다.”
 
학부모
“지각 후 사유서를 써 내는 것이 안전사고 예방과 어떤 관련이 있나. 어린이집 측 불찰로 인한 사고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냐.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늦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때마다 사유서를 써야 한다는 건 과한 처사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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