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 뉴시스
‘프로젝트 사파이어(Project Sapphire)’는 미국이 카자흐스탄이 보유했던 옛 소련의 고농축우라늄(HEU)을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반출하기 위해 벌였던 비밀 작전명이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우크라이나·벨라루스와 함께 갑작스럽게 핵무기를 물려받게 됐다. 미국과 나토 등의 압박을 받게 된 카자흐스탄은 경제 지원 및 체제 보장 대가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핵무기 1410개, 대륙간탄도미사일 104기, 전략핵폭격기 40대 등을 러시아에 넘겼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는 핵무기 24개를 제조할 수 있는 HEU 600㎏이 우스트-카메노고르스크 핵물질 보관소에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부는 1994년 7월부터 카자흐스탄 정부와 3개월간 협상해 모든 HEU를 미국 본토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HEU 비밀운송 작전이 수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미국 정부는 1994년 10월 8일 핵 전문가 31명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해 핵물질 보관소에서 1032개의 용기에 담긴 HEU를 448개의 항공 운송용 컨테이너에 나눠 담는 작업을 벌였다. 이 작업은 매일 12시간씩 계속됐고 같은 해 11월 11일에야 마칠 수 있었다. 이어 미 공군의 초대형 전략수송기 C-5 3대가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이 컨테이너들을 싣고 20여시간 비행한 끝에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로 옮겼다. 당시 비행시간은 C-5 수송기로서는 역사상 가장 길었다. 빌 클린턴 정부는 11월 23일 카자흐스탄에 2700만달러를 주고 HEU를 구입했다고 발표했다.
   
   카자흐스탄의 사례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HEU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도 적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1992년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1993년 10월 IAEA 안전조치협정에 각각 가입하는 등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국제사회는 소련이 관리해온 HEU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미국 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소련 출신 장성이 HEU를 팔겠다는 제의를 카자흐스탄 주재 대사관에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자흐스탄 정부는 HEU 반출에 적극 협력했다. 카자흐스탄 정부처럼 HEU를 숨기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더라도 핵물질이나 핵무기에 대한 정확한 신고와 사찰 및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완전한 핵 폐기는 불가능하다.
   
   
   북한, 강제사찰 수용할까
   
   그렇다면 카자흐스탄과는 달리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꺼려온 북한이 6·12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약속하더라도 이를 100% 믿을 수 있을까. 과거 사례를 볼 때 북한의 약속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 영변 핵시설을 사찰했던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북한은 1994년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하자마자 두 가지 중대한 약속 위반을 했다”면서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고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반출해 별도 시설에서 가공한 뒤 현재와 같은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지적했다. 핀란드 출신 핵 전문가인 하이노넨 전 차장은 1983년부터 27년간 IAEA에서 안전조치와 사찰을 담당했었다. 하이노넨 전 차장은 “제네바 합의는 사찰과 검증의 측면에서 볼 때 허점이 너무나 많았다”면서 “IAEA 사찰관들은 북한이 허용하는 영변 핵시설 이외엔 아무 곳도 접근할 수 없었고 북한은 어디에 무슨 시설을 운영하는지 신고할 의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하이노넨 전 차장은 “북한이 모든 핵 활동에 대해 자진 신고하고 언제, 어디든 접근할 수 있는 강제 사찰을 허용하느냐가 미·북 정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노넨 전 차장의 지적처럼 미국의 전직 관리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에 대한 무제한 사찰과 검증만이 북한 비핵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사찰과 검증은 북한이 모든 핵 시설 위치와 핵 물질의 양과 보관장소 등을 상세히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은 과거에 이런 시설을 은닉한 채 국제사회에 정확한 목록을 전달하지 않았다”면서 “사찰과 검증의 핵심은 북한이 스스로 관련 시설을 공개하고, 사찰단이 직접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강제사찰 수용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면서 “북한의 신고 내용이 충분치 않거나 의심 가는 추가 장소나 시설을 사찰단이 불시에 방문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북한이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모든 지역을 사찰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100%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가 모두 깨진 이유는 검증과 사찰 문제 때문이었다”라면서 “북한이 핵 시설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한 사찰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최고위급 관리로선 처음 북한을 방문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워싱턴포스트와 회견(5월 31일자)에서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도출돼도 이에 대한 철저한 사찰과 검증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과거 클린턴 정부가 북한이 핵무기 한두 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사실을 몰랐다”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의 핵 관련 시설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점에서 검증과 사찰 등을 다 마치려면 6개월~1년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북한이 현재 얼마만큼의 핵탄두와 핵물질을 갖고 있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추정치만 존재하며 그 수치도 편차가 크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플루토늄 40〜50㎏과 고농축 우라늄 600〜700㎏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재료로 히로시마급 원자폭탄(15kt·1kt은 TNT 1000t 위력) 수준의 핵무기 30〜40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20~60개의 핵탄두와 40~100여개의 핵시설을 갖고 있다고 보도(5월 6일자)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2010년 11월 방북했을 당시 북한은 2000대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를 근거로 했을 때 북한은 연간 최대 40㎏의 HEU를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1기 생산에 HEU 15~20㎏이 들어가기 때문에 연간 2개 정도의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핵 소형화 기술까지 확보했다면 핵탄두 보유량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대부분 북한이 제6차 핵실험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하기 이전에 이미 탄두중량 700㎏ 정도인 노동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핵탄두를 소형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정은이 지하시설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바라보고 있다. photo KCNA

   또 다른 변수 ‘땅굴의 나라’
   
   북한은 말 그대로 ‘땅굴의 나라’이다.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USAINSCOM) 와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땅굴 굴착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북한은 593부대, 667부대, 744부대 등 땅굴을 전문적으로 파는 군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미얀마,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 등에 땅굴 굴착 기술을 수출했는가 하면, 핵 공격과 벙커버스터 방어를 위한 이중 돔형 기술까지 개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는 한·미연합 전력의 정밀 타격에 대비해 평양 인근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지하벙커를 구축해놓았다. 북한은 핵무기를 비롯해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들을 지하시설에서 생산하거나 보관하고 있다. 게다가 장사정포와 각종 로켓, 야포, 탄약 등을 휴전선 일대 지하갱도에 은닉해놓고 있다. 지하 군 시설만 1만1000여개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또 지도부용 땅굴도 구축해놓았다. 평양 삼석구역 대성산 국사봉에 있는 지하벙커는 인민군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로, 유사시 군 수뇌부를 위한 대피시설로 활용된다. 대성산 북쪽으로 이어진 자모산에도 김정은이 애용하는 특각(전용별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핵 공격과 벙커버스터를 막아낼 수 있도록 지하 100m 깊이에 임시지휘소가 마련돼 있다. 이들 지하벙커는 강화 콘크리트와 강철재로 건설됐다. 지하벙커는 핵과 미사일 전력을 총괄하는 전략군과 일선 주요 부대를 김정은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통신망, 물과 식량 등 전쟁물자, 회의실, 핵·화생방 방호시설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 지하철에도 지하 300m 깊이의 거대한 지도부 전용 땅굴이 있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이처럼 수많은 땅굴들에 핵무기를 숨길 수 있다. 핵폭탄의 직경은 6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비확산센터(CNS) 소장은 “북한이 핵탄두를 직경 60㎝, 무게 200~300㎏ 정도로 소형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핵탄두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생산량 확인이 불가능한 HEU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HEU이다. 북한이 검증에 협조할 경우 그동안 추출된 플루토늄의 양은 오차범위 3% 이내로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의 신고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용이한 셈이다. 하지만 HEU는 생산량 확인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민간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지난 5월 25일 북한이 영변 외에도 자강도의 강성지역에 HEU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미국 정부는 이 비밀 핵시설에 6000~1만2000개의 P2형 원심분리기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P2형 원심분리기는 2010년 영변 우라늄 시설에서 목격된 것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은 이 시설에서 수년간 원심분리기를 가동했을 것”이라면서 “이 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SIS는 보고서에서 영변 이외에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로 북한의 부품 조달 정보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미국과 서방 정보기관들이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부품들의 조달 흐름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2002~2003년 8000개에서 1만2000개, 2008년 2000개, 2010년 1000개의 P2형 원심분리기 제조용 부품을 획득한 기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품 조달 기록으로 볼 때 북한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숫자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 미국 핵 과학자인 헤커 박사가 영변 핵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선군혁명특별지구’ 자강도를 주목해야
   
   자강도는 산지가 도(道) 면적의 98%를 차지할 정도로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다. 북한 정권은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군수산업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왔다. 이 지역의 군수산업 공장들은 지하에 건설돼 있으며, 북한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모든 행적 기록물도 지하 저장고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자강도를 ‘선군혁명특별지구’로 지정하고 주민들의 출입 등을 비롯한 통제 조치를 철저하게 취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은 자강도의 지하 시설에 핵무기를 은닉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확실하게 실현하기 위해 IAEA 수준을 넘는 사찰과 검증을 추진할 계획이다. 트럼프 정부는 유엔 안보리 산하에 핵무기폐기감시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안보리 산하에 핵무기폐기감시위를 두면 북한이 과거처럼 사찰을 거부할 경우 곧바로 강력한 경제·군사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원회에는 사찰 경험이 많은 IAEA의 인력이 참여해 기초 사찰→핵무기 폐기→핵시설 폐기와 폐쇄→불시 사찰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감시 및 감독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하이노넨 전 차장은 “북한의 비핵화 절차는 과거 어느 사례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며 이는 IAEA의 역량을 뛰어넘는다”면서 “유엔 안보리 산하에 새로운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IAEA에는 북한 핵시설을 사찰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IAEA는 현재 180개국에서 조사관 300여명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80여명은 이란 태스크포스 소속이다. 이란 핵 사찰을 담당했던 핵 과학자인 어니스트 모니즈 전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북한 비핵화 사찰은 이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하게 제거하고 이를 검증하려면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 및 검증은 역대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며 “미국뿐만 아니라 IAEA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들과, 역량과 전문지식을 가진 다른 전문가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용어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가 도출됐다고 하더라도 무제한의 사찰과 검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CVID를 달성할 수는 없다. 김정은이 과연 ‘통 큰 결단’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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