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

“뭐 학교가 이 따위야!”      교무실 문 앞에서 한 아이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을 하다가 깜짝 놀라 아이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지각한 자기를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했는데 5분을 기다려도 안 온다는 것이었다. 벌점 주신다고 했으면 벌점이나 주지 왜 오라가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씩씩댔다. 그 학생은 급한 업무를 해결하느라 5분 늦은 선생님에게 “5분이나 늦으면서 왜 학생의 지각에 대해 뭐라 하느냐”고 마치 훈계하듯 따지고 들었다.      내년부터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사용하던 벌점제도가 일선학교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2018~2020년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따른 조치다. 사실 벌점제도가 그다지 유효하지는 않다. 벌점이 많이 쌓였다고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고등학교 진학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벌점에 무감각해진 아이들은 학교규칙을 어겨 지도를 받아야 할 상황이어도 당당히 “그냥 벌점을 받겠다”고 한다. 벌점을 받을 테니 귀찮은 잔소리는 하지 말란다.      학부모들도 벌점에 무감각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처음 벌점을 받은 학부모들의 반응은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어떤 학부모는 자신이 몰랐던 자식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 변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점을 받으면 학부모 역시 벌점을 아예 무시하거나 도리어 벌점을 주는 학교나 교사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벌점이 너무 많이 쌓인 학생의 학부모는 선도위원회에 참석하여야 한다. 이곳에서는 자녀의 문제행동에 대해 담임교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가벼운 징계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다짐의 각서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선도위원회에 참석해야 할 대부분의 부모들은 미안해하거나 민망해하기보다는 자신을 오라고 한 학교 측에 불쾌감을 표하거나 아이의 일탈행동이나 불성실을 학교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어떤 부모는 약속 시간을 잘못 알고 일찍 와서는 담당 교사에게 “지금 사람 불러 놓고 뭐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내기도 하고 “우리 아이는 특목고 진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벌점이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은 교사들이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분을 못 참고 덤비는 아이들이 많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모와 합세하여 학교를 공격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수업 중에도 큰소리로 쌍욕을 연달아 해대는 아이들이 꽤 있지만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도 심하게 야단칠 수 없다. “선생님에게 한 것도 아닌데요” 하면 “그래도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이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면 되겠니?” 혹은 “그렇게 예쁜 입에서 그런 욕은 안 어울린다” 등으로 끝내야 한다. 자신들의 욕 문화에는 익숙하면서도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교육청과 인권위에 신고한다고 난리다. 학생에게 별로 교육적이지 못한 벌점을 주고 싶어하는 교사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막상 벌점조차 없어지면 눈앞에서 대들고 보란 듯이 질서를 무시하는 학생들을 어찌 통제할지 눈앞이 깜깜해진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허정환

‘우리 지역에 몰아넣는 야비한 특수학교 설립, 절대 반대.’      우리 학교 교문 앞에는 ‘특수학교 설립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 학교는 내년에 대대적인 변동을 앞두고 있다.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단지 내 49개 학급의 대형학교 형태로 바뀌게 된다. 지금의 초등학교 자리에는 특수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 역시 님비현상으로 골이 깊다.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장애우 학부모가 무릎까지 꿇은 서울 강서구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지만, 우리 동네엔 안 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장애를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학교에서 장애인의날을 맞이해서 장애체험교육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시각장애체험(눈을 가리고 흰 지팡이로 보행하기), 청각장애체험(말소리 내지 않고 대화하기), 지체장애체험(휠체어 타고 학교 둘러보기), 시지각장애체험(거울로 비치는 미로 통과하기) 등이다. 체험 후 학생들의 소감문을 보면 내용은 엇비슷하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다’ ‘장애인들이 불쌍하다, 그래서 도와줘야겠다’가 대부분이다.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의 소감문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장애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던 장애체험교육활동이 결국 장애는 불편하고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게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학년 유경이가 쓴 소감문은 조금 달랐다.      “같은 반 우석이를 보면서 말 없이 친구를 때리고, 수업 중에 소리를 질러서 생각주머니가 작아서 동생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우석이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나라면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웃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우석이는 언제라도 웃고,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행동을 한다. 하느님께서 우석이를 만들 때, 생각주머니를 작게 만든 대신에 마음주머니는 크게 만드셨나 보다. 왜냐하면 우석이는 언제나 친구라도 울거나, 힘든 순간에 먼저 뛰어가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유경이의 소감문을 보면서 답을 찾았다. 장애학생들을 지도하고 만나다 보면 아이들을 통해 배울 때가 많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 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민서, 늘 함박웃음을 짓는 우석이, 희귀병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과제를 땀을 흘려가며 해결하려는 현민이, 넘치는 식탐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에게만큼은 먹을 것을 양보하는 우준이…. 항상 조건 없이 친구들을 좋아하고, 순수한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것에 욕심내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내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학부모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저 플래카드 문구는 누가 썼을까요? 저 사람들은 과연 하루라도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본 적이 있는 걸까요?”    허정환      경남 창원 웅천초등학교 교사

김미경

사춘기 아이가 유독 힘든 이유는 그때쯤 우리도 ‘엄마 사춘기’를 맞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엄마 왜 나를 낳았어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엄마, 나 집 나가고 싶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저 역시 사춘기 아이의 인생 문제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겨웠죠. 아들보다 서른 살이나 더 많은 제가 아들의 문제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어느 순간은 아들보다 더 두려워했으니까요. 둘째가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하던 날도 저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미치겠다. 저놈 자퇴하면 중졸인데 나 어떡하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내 나이가 아이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데 왜 난 열다섯 살 아이의 문제도 해결을 못 할까? 엄마로서 자존감 나이가 있다면 내가 혹시 아들보다도 못한 게 아닐까?’ 엄마인 내가 사춘기 아이의 문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들보다 자존감 나이가 낮다는 증거였습니다. 결국 저는 자존감의 나이를 내 나이답게 높이는 수행을 통해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나갔지요. 아들과 함께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저는 엄마로서 자존감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반면 제 친구 중 하나는 아이가 자퇴했는데 우울증 약을 달고 삽니다. 아들보다 더 벌벌 떠는 수준의 엄마 자존감 나이로는 아들의 문제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거죠. 우리 주위에 보면 꽤나 많은 엄마들이 아이보다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후배는 지금도 엄마로 인해 입었던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엄마가 어려서부터 딸들이 자신의 기대치만큼 자라주지 않을까봐 늘 전전긍긍했고 자주 신경질을 내며 별것 아닌 문제도 늘 야단을 쳤습니다. 부당한 야단을 들으면서 딸은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의 부당한 대접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온갖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수년간 그렇게 분노하며 엄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던 후배는 다행히 그 힘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웠지요. 지금은 수많은 청년들의 멘토로 살고 있는 그녀가 제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보니 엄마라는 여자가 제대로 보여요. 우리 엄마는 정말 자존감이 낮은 여자였어요. 아직도 엄마는 집안에 일이 생기면 자식들보다 더 불안해하고 아주 부정적인 결론을 내려요. 감당할 힘이 없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엄마를 일곱 살처럼 대해요. 조금이라도 불안하게 만들 이야기는 입을 다물고, 고민이 있어도 엄마와는 상의하지 않아요.” 엄마가 엄마답기 위해서는 신체 나이만 먹을 게 아니라 스스로 자존감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40대면 40대에 걸맞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 잘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자존감도 나이와 걸맞은 수준이 됩니다. 저도 가끔 아이들과 여러 문제를 상의하고 해결해나갈 때마다 늘 생각하지요. ‘지금 몇 살짜리 자존감으로 이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혹시 내가 내 아이들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엄마는 아이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든든한 게 아니에요. 아이보다 두둑한 자존감 나이를 먹어서 든든한 것이죠. 든든한 엄마를 둔 자녀와 빈약한 엄마를 둔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삶을 대하는 기본자세가 다릅니다. 아이가 매사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하다면 엄마인 나의 자존감 나이를 먼저 들여다보라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오늘만큼은 꼭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자존감 나이는 과연 몇 살인가?’

유슬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전국 시도 부교육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입 동시 실시 관련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하고 있다_뉴시스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고교 입시를 치르는 2018년 12월부터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의 학생 우선 선발권이 사라진다. 대신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한다. 교육부는 11월 2일 이런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우선 선발권이 있는 외고, 자사고, 국제고의 우수 학생 선점을 해소하고 고교 서열화를 완화한다는 취지다.   교육부는 “기존의 특수목적고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인재양성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왔다. 자사고는 국·영·수 기초교과의 비중이 높고 외고와 국제고 졸업생은 수능에서 비전공 외국어를 응시한다거나 비어문 계열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우선 선발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입 동시 실시는 초중등 교육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일반고 역량 강화도 함께 병행한다. 2018년부터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듣고 학점을 취득하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할 예정이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기 위한 교과중점학교 확대,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 등도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일반고 역량 강화, 적성을 찾아주고 인성을 길러준다     결국 적성에 맞는 교육을 맞춤식으로 처방할 수 있는가가 일반고 역량 강화와 특수목적고등학교 정상화의 핵심이다. 외고, 자사고, 국제고가 각 학교의 특성에 맞는 인재가 아닌, ‘우수인재’의 몰빵 현상이 나타난 이유도 학교의 특성과 학생의 적성이 제대로 매칭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의 진로 탐색과 적성 강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자극에 열려있어야 한다. 일반고든 특목고든 이 부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남양주에 위치한 동화중, 고등학교는 매년 가을음악회를 연다. 올해 연주회는 10월 17일 학교 내 화록동산에서 열렸다. 이는 학생의 진로탐색 과정의 일부인데, 음악을 통해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 인성 교육을 겸한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예체능 교육은 그만큼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동화학교의 경우 이 비용의 대부분을 학교가 부담한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악기의 80% 정도는 학교 소유다. 음악 교사를 비롯해 각 분야의 교사들이 파트별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동화중학교 윈드 오케스트라는 주로 관악기를, 고등학교의 라온 오케스트라는 현악기와 타악기까지 아우른다.   지난 10월 17일 화록동산에서 열린 열린 동화고 가을 음악회, 가을의 소리  동화학교에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지는 이제 10년 정도 되어간다. 처음엔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100여 명에 이르는 학생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인 오전 7시 50분에 모여 악기를 조율하고 합주를 연습한다. 대부분의 과정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가르쳐준다.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값없이 준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결국 교육의 성패는 아이들의 적성을 개발하고, 자율성을 길러주는 데 있다. 동화학교의 가을음악회는 이제 구리, 남양주시의 대표 행사가 됐다. 이들보다 앞서 동화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일반고 역량 강화의 해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는지 모른다. 적성을 찾아주고, 인성을 길러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들려온 동화중고등학교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홍익희

보통 나라들은 국가가 멸망하면 50년 내지 100년도 안되어 역사에서 그 흔적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2000년 가까이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생활을 했음에도 민족적 동질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교육의 힘’으로 역사에서 사라질 뻔 했던 민족을 구해낸 한 위대한 학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탈무드에 소개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그 학자입니다.    그는 서기 66년부터 70년까지의 ‘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유대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聖殿)이 불태워지고, 결국 국가를 잃어버리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져 "디아스포라"(그리스어,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유대의 파멸을 초래한 이 끔찍한 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로마제국 중흥기의 영웅 '카이사르'는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처음 유대 나라를 로마제국으로 편입할 때 대단히 우호적인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 최고 제사장에게 종교적 통치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군사적 방어권도 허락했습니다.    주요 항구 '야파'와 해상무역권을 돌려주었고, 그리스인과 해상교역의 경쟁관계에 있는 유대인에게 경제적으로 그리스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습니다. 덕분에 유대인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당시 유대인 인구는 바빌론의 1백만을 포함해서 대략 8백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서기 66년의 반란은 지금의 트리폴리인 ‘카이사리아’에서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큰 소송에서 그리스인이 승소한 직후에 발발했습니다. 승소한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며 승리를 축하하는 동안 로마군 수비대는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예루살렘에서도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로마총독 플로루스가 유대인들의 체납된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 성전에서 17탈렌트의 금화를 몰수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몰수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신성한 성전을 모독한 행위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들의 종교를 건드리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성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로마 수비대를 급습해 병사들을 참살했습니다. 그 뒤 급파된 시리아 주재 로마군마저 성난 폭도들에게 참패당해 퇴각했습니다. 이에 로마황제 네로는 로마제국 최고의 명장인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영국 정복에 참전했던 제10군단 등 최정예 3개 군단과 다수의 외인부대를 주면서 유대를 정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탈출   베스파시아누스는 부대를 이끌고 유다왕국을 공격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째 되던 해인 68년에 그는 유다왕국 대부분을 점령했지만 유대 열심당 정예군들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예루살렘만은 함락시킬 수 없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예루살렘 도성을 포위하고 주민들이 굶주려 항복하기를 기다렸습니다.  ▲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 그 무렵 강경파인 열심당의 무장투쟁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예견하는 한 유대인 평화주의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유명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였습니다. 바리새파였던 그는 상황판단과 통찰력이 뛰어난 학자로 유대전쟁이 결국에는 대학살로 막을 내리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임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민족의 독립보다는 유대교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평화를 얻기 위해 항복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이 강경파인 열심당에 의해 거절당하자 그는 유대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골똘히 생각한 끝에 마침내 길은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자신이 직접 로마군 사령관과 모종의 타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포위되어 있던 예루살렘은 아비규환이었고, 사람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하루에도 수천 명씩 죽었으나 아무도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자신의 확신을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탈출계획을 짰습니다. 제자들은 길거리로 나가 옷을 찢으며 슬픈 목소리로 위대한 랍비 요하난이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은 열심당원들에게 존경하는 랍비의 시체를 도심 외곽에 매장하여 도시에 전염병인 흑사병이 돌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랍비가 든 봉인된 관을 메고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막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장군을 만나 머지않아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뒤,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유대 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조그만 학교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자기가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에 놀랐지만 예언이 이루어지면 호의를 베풀기로 약속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과 랍비학교 개교   같은 해 로마황제 네로가 자살했습니다. 그 뒤 세 명의 정치군인들이 왕위에 올랐으나 모두 몇 달 만에 살해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유대 원정군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가 군대에 의해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었고 서기 69년 로마 원로원이 그의 즉위를 허락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랍비의 예언이 성취된 데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랍비는 당시 로마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에 즉위한 베스파시아누스는 후임사령관인 아들 '티투스'에게 약속을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 파멸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도시에 유대학교 ‘예시바’를 세우도록 허락받은 것입니다. 이로써 유대 교육과 문화유산이 소멸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로마-유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로마제국 최초의 티투스 개선문의 부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예루살렘 공방전 당시 성 안에 어림잡아 27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있었는데, 포로로 잡힌 유대인 수는 9만 7천 명이었고, 예루살렘 공방전 과정에서 사망한 유대인은 무려 11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제1차 로마-유대 전쟁으로 인해 유대 민족 태반이 전멸했습니다. 독립전쟁이 실패로 끝나자 전쟁을 주도한 열심당과 자객당, 상급제사장· 대지주· 귀족 중심의 사두개파, 쿰란 수도원 중심의 에세네파가 모두 소멸되고 오직 바리새파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유대교는 사두개파의 소멸로 예배를 이끌 제사장 곧 사제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후 유대교는 사제 없이 평신도들이 지키는 종교가 되어 평신도 모두가 성경을 읽고 돌아가면서 강론을 하기 위해 글을 익혀야 했고 이후 유대 공동체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인 랍비가 이끄는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새파를 이끌고 텔아비브 남동쪽 약 2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로 갔습니다. 거기서 율법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고 율법학교를 개설했습니다. 를 가르쳐 매년 소수의 랍비를 길러내어 유럽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 마을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시나고그를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전쟁으로 패망한 유대인들의 생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교육은 곧 신앙입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나라는 비록 망해서 없어졌지만 예시바를 통해 유대교와 전통이 전승되기만 한다면 유대 민족은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민족을 살려낼 교육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지켜낸 것입니다.   유대에서는 랍비를 길러내는 율법학교인 예시바 1학년을 ‘현자’라 불렀고, 2학년을 철학자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최고 학년인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생’이라 불리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겸허한 자세로 배우는 자가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으며, 학생이 되려면 수년 동안 수업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율법의 기존정신, 정의와 평등    이러한 전통 속에 율법학교를 졸업한 랍비들은 스스로 ‘평생학생’이라는 자각을 품고 평생 공부하며 살았습니다. 랍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대인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학습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랍비들은 교육을 통해 율법의 기본정신 곧 ‘정의와 평등’ 개념을 유대인들에게 철저히 각인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정의란 공동체 내의 약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능력껏 돈을 벌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습니다. 돈은 자본주의의 효율을 활용해 벌지만 그들은 이를 개인이 쓰지 않고 공동체에 다 내놓아 필요에 의해 나누어 썼습니다. 곧 분배는 공산주의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가 2000년 가까이 버텨온 힘입니다. 이러한 원형이 현재에도 살아 있는 게 이스라엘의 키부츠입니다.    또한 평등이란 개념은 세상에 통치자는 하느님 한 분이며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나이 고하, 직위 유무에 불구하고 서로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사상에 입각해 그들은 도전적으로 질문하고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는 ‘후츠파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 창의성의 근원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비록 뿔뿔이 흩어져 디아스포라 생활을 하면서도 교육을 통해 그들의 언어와 전통과 정체성 곧 민족혼을 2천년 동안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칼 보다 무서운 게 펜’이라는 사실을 역사에서 증명한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이렇듯 교육의 힘이 단절의 위험에 처한 민족혼을 구해내어 그들의 동질성을 지켜내고 이를 토대로 더욱 융숭한 발전을 이루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교육의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공동체의 전통과 정체성은 물론 공동체의 미래도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김경원

우리 학교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구부와 태권도부가 있다. 그곳에서 많은 학생 선수들이 전문 스포츠인을 꿈꾸며 멋진 미래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도 우수한 학생선수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다 해왔다.      교육을 논할 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운동부에는 그 말이 가끔 사치로 여겨진다. 학생들의 대회 결과는 상위학교 입학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선수생활 내내 평가기준으로 따라붙는다. 또 학생선수들은 학교의 명예를 걸고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학생이니 학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과거 학생선수들의 훈련은 성인 못지않게 고강도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하루종일 훈련에 매진했다. 수업은 거의 형식이었고, 수업 시간에는 모두 잠자기에 바빴다. 그들은 지적 성장이나 또래 문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운동에만 전력을 다했다. 이런 방식의 선수 육성은 어린 학생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후 정상적인 교육을 위하여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몇 해 전부터 학생선수 선발이 해당 지역 내로 제한되었으며 기숙사 운영은 금지되었다. 모든 학생선수는 기초학력을 위하여 정상적인 수업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슈는 학생선수들이 ‘최저학력제’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전국 단위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의 경우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의 다섯 과목에서 최저학력제가 적용된다. 학기말 성적에서 각 과목별로 학년 평균의 40% 이상을 받아야만 전국 단위 대회에 출전 가능하다. 구제책은 있다. 온라인 교과 콘텐츠인 e-school을 이수하거나 과목별 보강을 받으면 시도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라도 전국대회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천재적인 실력이라도 기초학력 미달이면 출전 길이 아예 막혀버린다. 선수 개인으로서도 국가로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수업 결손에 대한 학습권 보장을 위해 e-school과 보강 수업을 통해 기초학력 신장에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학생선수는 최저학력제를 통과하지 못했다. 해당 학생들이 대회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전해 들었을 때 학생들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매우 컸다. 목표와 자존감을 잃었다. 그중 한 명은 학습 지능이 다소 부족한 특수교육 대상자이다. 사회성이 약하고 학습능력에 한계가 있어 또래집단과 어울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타고난 신체조건이 탁월하다. 어찌 보면 그에게 학생선수는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그 학생에게 ‘너는 학습 능력이 없으니 네가 잘하는 운동을 그만둬라’는 얘기와 같다.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모든 것에 부족해도 어떤 한 가지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학생들. 그들에게는 그 관심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특별한 재능을 지닌 학생들을 위한 좀 더 깊이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김민희

지난호 주간조선에 보도한 이유남 교장선생님과 두 자녀 이야기는 반전 드라마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자녀를 공부기계로 만들려는 완벽주의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은 흔하디 흔하지만 이 가족의 스토리는 너무 드라마틱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유행어를 빌리자면 “이게 실화냐?” 반응이 절로 나오더군요.      두 자녀는 엄마의 자랑거리에서 숨기고 싶은 치부 같은 존재로 전락합니다. 전교 1등을 도맡아하던 엄친아 남매가 나란히 자퇴를 선언하더니 순둥이였던 아이들이 폭군처럼 변하고, 삶을 포기한 듯 폐인이 됩니다. 자해소동과 응급실행, 교통사고와 수술 등 역대급 드라마 뺨치는 사건과 사고가 수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다 신기하게도 서서히 변해갑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찾아가더니 지금은 그 누구보다 충만한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계기는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때문에 아팠던 겁니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확인하고 재촉하는 ‘독재형 엄마’ 때문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던 아이들은 ‘코치형 엄마’로 바뀌자 서서히 변해갑니다. 그 변화 과정이 하도 신기해 마법 같더군요.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쳐”라며 죽일 듯 엄마를 밀쳐내던 아이들은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제 엄마라는 게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      지난주 이유남 교장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번 울컥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진솔하고 절절하더군요. “나는 부모가 아니라 감시자였다. 엄마가 아니라 원수였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각자의 방식대로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지요. 부모로서 자신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며 원망하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울화통이 치밀 때가 많았지만 자신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고쳐나갔습니다. 엄마의 반성으로 아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셈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이유남 교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국에서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기사 잘 읽었다면서요. 다들 자기 얘기 같대요. 우리 집 같아서 깜짝 놀랐다, CCTV 틀어놓은 줄 알았다, 눈물이 났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각종 특강과 방송국 출연 요청도 쇄도했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기사에 대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역시 “내 얘기 같다”는 피드백이 많더군요.       이유남 교장은 코칭 전도사가 됐습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코치형 부모가 되어야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깨우침을 전파합니다. 이제 교육계에서 그는 꽤 유명합니다. 경험을 녹인 절절한 특강은 감동과 가르침이 남다릅니다. 그는 “문제아는 없다, 문제부모만 있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코칭 기본은 내려놓음이고, 가장 훌륭한 코칭 스킬은 믿음과 기다림이다.”

오봉학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맑아 창밖 풍경이 잘 보이는 완연한 가을아침이다. 모처럼 창밖으로 북악산을 보며 철민(가명)이와의 일을 회상하는 여유를 가져본다.      철민이는 일명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병원을 다니며 심리치료를 받고, 지금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철민이가 1학년 때 참가한 가을 사생대회 및 백일장에서의 일화는 유명하다. 철민이는 이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은 전혀 쓰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끼얹고 물총에 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쏘고,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며 큰소리로 “오리 꽥꽥” 하고 외쳤다. 철민이는 행사장에서 방송으로까지 주의를 받았다. 덕분에 다음해부터는 백일장 장소를 바꾸었다.      철민이가 3학년 때 우리 반에 배정되었다. 학급에서의 철민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제대로 끝마치지도 못하였다. 함께하는 조별 작업을 특히 어려워했다. 감정 표현을 적절히 못 하고 종종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선생님이나 급우들에게 내뱉었다. 갑자기 교실을 벗어나거나 이유 없이 다른 학생의 일을 방해하고 식당에서도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들어 종종 다툼이 일어났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는 의자에 앉아 있기를 힘들어했고 엎드려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철민이는 장점도 많이 있었다. 감정 살린 노래를 잘 부르고 목소리가 크고 우렁찼다. 얼굴과 몸짓으로 감정 표현을 잘하였다. 심부름을 시키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듯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질문이 많았다.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식물이 자라면서 보이는 작은 변화를 잘 알아차렸다. 다른 학생들의 감정 변화도 잘 읽는 것 같았다. 나는 교사와 학생들과의 협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철민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철민이 스스로도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철민이의 장점은 잘 살리고 단점이 되는 행동은 줄여나가기로 했다. 자리부터 배려해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로 앉혔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갈 때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적고 철민이에게도 편리했다. 잘못된 행동을 한 후에는 반드시 사과하기로 하고, 학생들은 철민이의 과도한 반응에 침착하게 대해주기로 했다. 반 체육대회의 응원단장은 에너지가 많은 철민이 몫이었다. 철민이는 모두가 놀랄 만큼 훌륭하게 응원단을 구성하고 이끌었다. 특색 있는 분장과 복장으로 와서 과장되고 큰 몸짓 큰 목소리로 응원하니 효과 만점이었다. 독창의 기회를 자주 갖도록 음악 선생님이 도와주시고, 방과 후에도 성악반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민이의 노력만큼 행동이 점점 좋아졌다. 학생들과의 어울림도 자연스러워졌다. 결국 노래 재능을 잘 살려 예술 계통의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철민이는 뮤지컬을 하고 싶다며 새벽에 일어나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등교했다. 밤 12시까지 공부와 노래, 춤 연습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칭찬도 많이 듣게 됐고 약도 끊게 되었다. 이제 철민이는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해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김미경

강의에 가면 엄마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거 있어요? 꿈이 뭐예요?” 그럴 때 적지 않은 엄마들이 이렇게 말해요. “저는 별 욕심 없고요. 우리 애만 잘됐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잘된다’의 기준은 물론 하나입니다. 최소한 ‘인 서울’. 잘되면 소위 말하는 스카이. 애가 좋은 대학에 가면 그 집 전체가 그냥 잘된 거로 치지요. 반면, 애가 인 서울에 실패하면 그 집 아빠가 아무리 잘나가도 주변에서 이런 소리나 듣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 올라가면 뭘 해? 애가 그 모양인데.” 비교적 입시전쟁의 외곽에 있는 아빠도 그런데 중심부의 엄마들은 오죽할까요. 엄마로 살아온 20년 세월이 오직 입시 하나로 평가되니 자칫하면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남편한테 ‘당신이 집에서 한 게 뭐냐’는 소리를 듣게 생겼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엄마들이 다 애들 공부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것이지요. 애들 대학에 부모의 인생 점수가 달렸으니 ‘애만 잘되면 다 잘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한 것은 다 잘되려고 하는 일이 반대로 집안 전체를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동창 A는 전형적인 대치동 엄마였습니다. 학교에서 학원까지 가는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늘 자신의 차로 아이를 실어 날랐지요. 차 안에는 아이가 먹기 좋게 한입 크기 음식으로 만들어진 도시락이 있었고, 바쁠 때는 A가 비닐장갑을 끼고 아이에게 먹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인 남편의 월급에서 절반 이상을 첫째 아이에게 몽땅 투자했죠. 가끔은 노후 준비도 못 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돼 남편이 한마디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아내의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고3 때 아이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면서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체력이 약한 데다 예민한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자 불안 증세를 보인 것이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매사에 날카로워지면서 가족들과 끊임없이 부딪쳤고 아버지와 몸싸움까지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노후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투자한 아들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결국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아이는 입시에 실패한 채 집에서 나와 외롭게 혼자 살고 있습니다. 집은 아이 하나만 잘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에요. 3분의 1만 크고 온 남편도 커야 하고, 제대로 커보지도 못하고 결혼한 엄마도 어른답게 커야 합니다. 엄마 아빠도, 아이들도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행복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소중한 권리를 빼앗아서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받은 사람도 뺏긴 사람도 억울해집니다. 하나가 잘되기 위해 나머지가 억울하고 힘들다는 것은 집안의 밸런스 자체가 이미 깨졌다는 얘기예요. 몸뚱이로 치자면 팔 하나만 비대하고 나머지 손발은 너무 작은 모습이지요. 몸의 일부만 커져 버리면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병들어가듯이 가족도 순환하지 못하면 병들어버립니다. 결국에는 언젠가 문제가 터지고 그 대가를 아프게 치러야 하죠. 부모 병원비가 천만원만 나와도 가족들이 10년간 연을 끊어요. 다른 형제들이 많이 받은 자식을 향해 혼자 다 받았으니 병원비도 혼자 해결하라며 등을 돌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모두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누군가 넘어졌을 때 손을 잡아줄 여유가 없는 거예요. 반면 누구 하나 억울하지 않게 잘 큰 집들은 순환이 잘됩니다. 집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도 감정의 순환, 배려의 순환, 이해의 순환이 되기 때문에 금방 회복해나가지요. 가족 중 누군가 힘들면 여유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고 끌어줍니다. 가족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공평하게 성장했으니 책임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지요. 모두가 억울함 없이 건강하게 골고루 큰 집에서 결국 괜찮은 아이가 나옵니다.

강재남

1990년대 말 중·고 남녀공학에서 여학생 전교회장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중학교에서도 한 여학생 후보가 남학생 후보들을 제치고 학생회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 후보는 학생복지에 대해 현실감 있는 공약을 앞세워 남학생 후보들을 압도적 표차로 제쳤다.      당시만 해도 여학생 학생회장이 뽑힌 것 자체가 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만 해도 회장·반장은 남자, 부회장·부반장은 여자로 미리 정해놓고 선거를 했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남자 회장, 여자 회장으로 어정쩡하게 나누어 뽑아놓고 대표 1명이 필요하면 남자 회장을 먼저 찾았다. 그런 시절을 거쳐 21세기를 눈앞에 두고서야 남녀가 정정당당하게 표로 겨루는 시대가 왔으니 기삿거리가 될 만도 했다.       오히려 요즘의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실에서는 남학생들을 압도하는 여학생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요주의 대상인 여자 아이들을 선생님들은 농반진반으로 ‘기 센 언니들’이라고 부른다. 기 센 언니들은 대부분 목소리도 크고 욕도 잘한다. 화장은 마스카라까지 완벽하게 하고 온다. 화장을 덜한 날에는 연예인처럼 검은 마스크를 쓰고 와서는 하루 종일 벗지 않는다. 말 한번 잘못 걸면 욕설과 고함이 돌아오니 솜털이 보송보송한 남학생들은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중학교만 해도 남녀 간의 덩치 차이가 별로 없다. 가끔은 극성스럽고 무서운 여학생들의 횡포에 눌리다가 선생님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남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요즘 학교 안의 기 센 언니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 우리 사회의 ‘레드라인’을 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부산 중학생 폭행사건, 강릉 여고생 폭행사건,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등의 주범이 모두 앳된 소녀들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가장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인간 사회의 가장 저급한 해결 수단인 폭력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교실에 날벌레 한 마리만 들어와도 반 전체가 비명을 질러대서 수업을 할 수 없었던 여학생 교실을 생각하면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일들을 여학생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질 않는다.        교사들이 여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엄청 운좋은 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여학생들이 일으키는 말썽이라고 해봤자 친구를 왕따시키거나 일진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 현장에서도 기 센 언니들이 저지르는 말썽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센 언니가 직접 때리기도 하고 좀 덜 센 언니에게 때리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자신의 지시를 잘 따랐는지 동영상을 찍어서 현장 중계를 하는 것은 거의 필수다. 조폭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여학생들의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퇴근하려고 교문을 나서는데 교실에서 뺀질대던 기 센 언니 둘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사복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아이들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어디 가니? 학원?” 고개를 끄덕인다. “수업 시간에 딴짓만 하고는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을 간다고?” 두 녀석이 씩 웃는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대답이 이상한가 보다. 이 아이들도 제대로 가르쳐서 졸업시켜야 할 제자들이라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진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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