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성

  ‘자유를 찾아가는 죽음의 길 탈출’ 연재가 나가고 나서 글을 잘 읽었다는 전화가 왔다. 나보다 더 힘들게 온 사람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연재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연재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18살의 어린 소년의 북한 삶을 통해 조금이라도 북한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걸로 나의 연재는 성공했다고 본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연재다. 이번 호에는 기억에 대해 써 볼까 한다. 누구나 태어나서 첫 기억이 있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대부분 행복·불행·충격적인 사건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의 첫 기억은 1994년 7월 9일 김일성의 죽음이다.    이날 우리는 휴가 중이었다. 아버지가 다니던 수송반(자동차 회사) 직원들과 가족들이 모두 소풍을 떠났다. 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지만, 김일성 사망 전까지는 주민들의 생활이 괜찮은 편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 배급이 나왔고, 노임(월급)도 정상적으로 지급됐다.      심각한 표정의 안전원 “당의 중대발표 있다”    이른 아침 우리는 다른 가족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소풍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2시간 남짓 달려 함경북도 회령시 창효리에 도착했다. 그곳엔 넓은 저수지가 있어 가까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소풍을 자주 오곤 했다.    우리는 강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은 배를 타고 낚시하러 나갔고, 여자들은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뛰어놀았다. 정말 즐거웠다. 오랜만에 나온 소풍이었고, 맛있는 고기를 먹을 생각에 더욱 신났다. 그러나 그 달콤한 시간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저 멀리에서 사람 하나가 헐레벌떡 우리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때 쯤 우리는 놀랐다. 창효리 안전원(경찰)이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동무네 어디서 왔네?”라고 물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답했다. 안전원은 숨을 가다듬고 “지금 당장 짐 싸서 돌아가라. 당에서 중대발표가 있다. 그러니 빨리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9살 소년 ‘안전원’이라는 꿈을 포기하다  북한 안전원.  북한에서 안전원이라는 직업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국가안전보위성이 그 위에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주민 통제는 안전부에서 한다. 나도 어린 시절 안전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9살에 그 꿈을 접었다. 북한에서는 개인의 능력보다 그 집안 출신 배경을 우선시한다.    당시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는 이랬다. 1997년 추석으로 기억한다. 군복무 중이던 막내 삼촌이 휴가를 받고 집에 왔다. 제대를 앞둔 삼촌은 입당(조선노동당 가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음식을 준비해 산소에 갔다. 성묘를 마치고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먹었다. 어른들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삼촌이 머뭇거리면서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했다.    삼촌: “아버지 우리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할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삼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그거이 갑자기 왜 물어보네?”    삼촌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입당을 앞두고 하루는 부대 정치지도원(북한 군부대에서 당 비서 역할을 하는 사람) 호출로 사무실로 갔다. 그가 삼촌에게 문서 하나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문서에는 우리 집안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고, 위에 빨간 글씨로 ‘적대계층’이라고 적혀 있었다. 북한에선 주민들을 계층별로 분류한다. 크게 3가지 계층이 있다.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순이다. 핵심계층은 해방 전 김일성과 함께 싸운 사람들과 그 자녀들,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동요계층은 일반 주민이라고 보면 된다. 적대계층은 지주나 자본가의 자녀나 월남 인사가 있는 가족, 또는 김일성과 북한 정권에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적대계층에 들어가게 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그 자손들까지 출세를 하지 못하고 평생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집안이 적대계층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말아 피우시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시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얘기는 이랬다. 집안 대대로 평양 중심부에서 살았지만 할아버지 동생, 즉 나의 작은할아버지로 인해 함경북도 산골짜기로 추방당했다. 1950년대 김일성이 반대세력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시기 작은할아버지는 친구들과 몰래 소련(러시아)을 다녀왔다. 당시 작은할아버지의 친구들은 소련파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었다. 작은할아버지와 친구들은 무사히 다녀왔다. 이후 친구 중 한 명이 북한 정권에 발각되면서 작은할아버지도 감옥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모진 고문에 시달리던 작은할아버지는 감옥에서 운명을 달리하셨다. 그 일로 인해 당시 평양중앙검찰소(한국의 검찰청)에서 고위직에 종사하시던 할아버지는 직위를 박탈당하고 온 가족이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몰려 추방당했다.      ‘8월 종파사건’에 연루된 집안    작은할아버지는 ‘8월 종파사건’에 연루된 것이었다. 1955년 4월,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자신이 주도하고 있던 대부분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을 주문 받았다. 귀국한 김일성은 노선을 수정하지 않았다. 곧이어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난한 연설이 공개되자 김일성은 3차 당대회를 앞두고 비공개 석상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부가 과도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야만 했다. 개인숭배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에둘러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벗어나 동유럽과 이른바 비동맹 외교를 추진하려는 계획을 확정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연안파와 소련파는 김일성이 위기에 몰려 있다고 판단하고 망설였던 계획을 꺼내 들었다.    김일성이 동유럽을 순방하는 동안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김일성의 당 위원장 자리를 박탈하고 내각총리만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 연안파와 소련파의 계획이었다. 김일성을 실각시킨다는 것도 아니고 권한을 일부 제한한다는 계획을 합법적인 방법, 즉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결정한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우선, 연안파와 소련파가 합작을 했지만 중앙위원회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일성의 만주파와 그에 우호적인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김일성이 외유 중일 때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이면 중앙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 연안파와 소련파의 정세인식 수준이었다.    1956년 8월 2일로 계획되어 있던 중앙위를, 김일성이 급거 귀국하자 강행하지 못하고 8월 30일로 연기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의 윤공흠이 안건에도 없는 정치연설을 통해 김일성의 경제정책 오류와 개인숭배를 비판했지만 강제로 끌려 나가고 말았다. 북한에서 8월 종파사건(8월 중앙위 전원회의)이라고 부르는 이 반나절의 에피소드로 연안파와 소련파는 영원히 사라졌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리 집안이 평양에서 살다 내려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몰려 추방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삼촌도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이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명예회복을 위해 중앙당에 상소 편지도 보냈고,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해 직접 소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북한정권은 할아버지를 평양으로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한다.    얼굴도 보지 못한 작은할아버지의 잘못 아닌 잘못으로 인해 한 소년은 꿈을 포기해야 했다. 적대계층의 집안은 대대손손(代代孫孫) 출세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북한 사회 원리를 너무 일찍 알게 된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공부를 시켜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고 해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가족이 탈북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남한에 정착해 아버지는 “니들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당신이 겪은 수모와 고통의 고리를 자식들 대에 끊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사망  김정은 사망 소식을 들은 북한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다.  우리는 안전원의 명령에 따라 짐을 챙겨 돌아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울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도착하기 바쁘게 각자 집으로 향했다. TV에서는 이미 김일성 사망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리춘희: “우리의 전체 노동계급과 협동농민들, 인민군 장병들과 청년학생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2시 급병으로 서거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옷을 차려 입고 분향소를 찾았다. 극장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추모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들은 모두 통곡을 하며 김일성을 불러댔다.    나는 극장 앞에 놓인 김일성 사진 앞에 꽃을 놓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슬퍼서 운 것이 아니라 옆에서 어른들이 우니까 나도 운 것 같다. 한참을 울다 보니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엎드린 채 옆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꼬집었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으나 우는 시늉이라도 내야 했다. 나는 분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추모는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어린 나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선물’이었다. 북한 정권은 매년 김일성·김정일 생일에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 등 간식을 선물했다.    나를 비롯한 북한 어린이들은 이 선물을 김일성이 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김일성이 죽으면 선물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김일성의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라 선물을 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에 더 눈물이 났다. 선물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11살까지 모든 어린이에게 제공된다. 이것이 북한의 선물정치다. 아니 세뇌교육의 시작이다. 이렇게 태어나서부터 세뇌교육을 시키면서 김일성에게 충성을 하게 만든다. 이 같은 세뇌교육이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김일성을 신(神)으로 믿게 만들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신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충격에 심장마비로 인해 죽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 1994년 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북한정권은 이것을 이용해 김일성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 울고 있다고 선전했다. 나는 그 선전을 믿었다.    북한 정권은 김일성 사망 이후 3개월을 애도기간으로 정해 놓고 유희, 오락, 술, 노래 등을 금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숨어 몰래 술을 마시다 걸려 정치범 수용소에 간 경우도 있다. 특히 인민무력부 간부들 중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적발돼 공개처형당한 사례도 있다.      김일성 사망 미스터리… 김정일 암살설까지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  김일성이 죽은 뒤 북한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돌았다. 김일성이 치료만 받았으면 살 수 있었으나 김정일이 아버지를 죽음의 길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유언비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보니 그것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물론 정말 김정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주민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돌았다. 만약 이것이 알려지게 되면 관련자들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소문은 이랬다. ‘김일성이 묘향산 휴양소에서 쓰러졌는데 그때라도 직승기(헬기)를 띄워 평양으로 이송했다면 김일성은 살았을 것이지만 김정일의 지시로 직승기는 뜨지 않았다’는 것이 소문의 전말이다. 근거는 없다. 그냥 당시 북한에서 떠돌아다니던 소문일 뿐이다.    남한에 온 뒤 우연히 2016년 1월호 《월간조선》 ‘김일성 심장 주치의 “김정일(金正日)은 김일성의 죽음을 유도, 방치했다”라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북한에서 소문으로 돌았던 이야기를 기사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기사의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김일성의 죽음에는 사망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의혹’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 의혹의 중심에 아들 김정일(金正日)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실상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권력 전면 재(再)등장을 두려워해 모살(謀殺)했다는 것이다. (중략) 김정일은 1974년 2월 13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위원이 된다. 김일성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김정일은 1980년 10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이 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지만,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추대된 1974년부터 사실상 실권을 행사해 왔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북한 관련 정보 소식통들이나 전문가들은 김일성 사망의 배경으로 김일성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사실상 북한을 통치해 오던 김정일이 아버지의 재등장이 가시화하자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던 것이다.    기사에 보면 김정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말에 신빙성이 있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직후 빠르게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시작했고, 곧바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신이 됐다.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보면 김정일이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인해 김일성을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날의 기억…    1994년 7월 8일 한 독재자의 죽음. 지금도 가끔 이날의 일들로 인해 악몽을 꾼다. 24년 전 그곳에선 아직도 한 소년이 커다란 영정사진 앞에 엎드려 억지로 울고 있었다. 울어야 했다. 울지 않으면 나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꼬집으면서까지 울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슬프지 않지만 슬픈 척해야 하고, 울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사회. 그곳이 북한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도 죽었다. 북한은 또 다시 특별방송으로 이 소식을 알리고, 남한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전역이 또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길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하는 주민,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서 김정일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친구가 물었다.    친구: “자기들을 억압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근데 왜 저렇게까지 우는거야? 저게 가능해?”    가능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배웠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북한에서는 가능하다. 설령 슬프지 않아도 울어야 한다. 울어야 산다. 그리고 즐겁지 말아야 하면 즐겨서도 안 된다. 또 김씨 일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라고 강요한다. 그곳이 북한이다.(계속)⊙

김동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차량, 캐딜락 원. 사진=구글 검색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남과 북의 양 정상은 차량을 타고 회담장인 판문점으로 이동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의전용 차량으로 벤츠를 애용해 왔다. 이미 김정일은 벤츠 애호가로 알려졌을 만큼 여러 대의 벤츠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회담에 김정은이 타고 나타난 차량은 벤츠의 최상위급에 방호기능을 더한 차량이다.    이 차량은 2010년경 북한으로 수입된 차량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은 미화로 약 310만 달러어치, 우리 돈 약 35억원에 달하는 외제차량을 북한으로 수입해 갔다. 이 차량 목록 중에는 독일 아우디의 최고급 수퍼카인 R8도 포함됐다. R8은 미드십엔진(Midship engine)의 차량으로 엔진이 차량 중앙에 장착된 고성능 차량이다. 당시 수입된 모델은 기존 R8의 엔진인 V8을 V10으로 업그레이드한 모델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아우디 R8 외에 아우디의 최상급 스포츠세단인 RS6 내지는 스포츠쿠페 RS5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합하자면, 북한이 당시 유럽의 최고급 사양의 차량을 대거 수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수입된 차량 중 하나가 바로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 등장한 벤츠 S600 풀만가드(Pullman Guard)다. 풀만가드에서 풀만(Pullman)은 벤츠의 롱바디 타입의 세단을 의미한다. 일반 세단보다 더 길게 만든 것이다. 가드(Guard)는 총격 등을 막아내는 방호능력을 탑재함을 의미한다. 즉 풀만가드란 리무진 형태의 세단에 방호능력을 갖췄다는 말이다.      김정은 벤츠의 성능과 김정은의 휘장   미국은 대통령 전용 마크를 자동차의 측면에 부착한다. 사진=구글 검색  김정은이 판문점에 타고온 벤츠 풀만가드는 사용자 주문 형태의 차량으로 옵션 등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기본급 차량의 가격은 12억~15억원 정도다. 김정은의 차량은 2011년형 정도의 차량으로 벤츠가 마이바흐 라인업을 구축하기 이전 모델로 W221 기반이다. 김정은의 벤츠 풀만가드는 최상위 모델인 S클래스 롱바디의 리무진을 베이스로 만든 차량이다. 따라서 차량의 길이부터가 6356mm로 6m에 육박하는 초대형 세단이다. 엔진은 V12 트윈터보다. 최대출력은 510마력으로 웬만한 수퍼카에 달한다. 실린더가 12개이니 당연히 고배기량인 5500cc다. 엔진의 최대 RPM은 6000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크밴드는 1900~3500RPM에 맞춰져 있다. 의전차량의 특성상 중저속 주행이 많아서 비교적 중저속 구간에서 최대 토크를 낼 수 있게 엔진을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차량의 크기도 크기지만 방탄으로 설계되다 보니 차량의 무게만 5톤에 가까운 4500kg이다. 해외 벤츠 관련 포럼 등을 통해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제로백은 약 7.9초로 알려졌다. 시속 0km에서 80km까지 가속은 5초대로 알려졌다.    이 차량의 독특한 점은 전륜부 브레이크에는 트윈 캘리퍼(twin-caliper)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캘리퍼는 브레이크 디스크를 움켜쥐어 마찰로 차량의 바퀴를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일반적인 차에는 바퀴당 1개의 캘리퍼가 장착된다. 그런데 이 풀만가드에는 전륜 바퀴당 두 개의 캘리퍼가 장착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류부에는 총 2쌍의 캘리퍼가 있다. 그만큼 무거운 무게를 감당해 낼 제동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방호 측면에서는 웬만한 권총부터 돌격소총까지 막아낸다. 또한 수류탄 공격이나 급조폭발물(IED)도 막아낼 수 있다. 폭발물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료탱크는 특수 보호막으로 싸여 있다. 심지어 외부 폭발 등으로 연료탱크가 관통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료탱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연료탱크가 유사시 폭발되지 않고 감싸지는 물질로 제작됐다.    차량 내부에는 비상용 안전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비상버튼을 누르면 차량 외부로 위험을 알리는 알람이 작동되고 차량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가 작동된다. 차량의 창문을 내리는 전원은 차량의 중앙전력장치에서 분리된 별도 시스템으로 작동되어 VIP가 유사시 언제든지 창문을 내리고 올릴 수 있다. 차량 내부의 인터폰을 통해 외부로 연락을 할 수도 있다.    이 차량의 측면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 전용 휘장이 장착됐다. 금색 내지는 구리색으로 보이는 휘장인데 이것은 북한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 마크다. 김정은의 차량에는 이 마크가 장착된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 휘장을 특별하다며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휘장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 대통령의 차량인 캐딜락에도 장착된 것이다. 캐딜락의 측면에는 미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휘장, ‘Seal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를 장착한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 그림을 따라 이 영문이 동그랗게 둘러싼 모양이다. 북한이 미국의 의전차량을 흉내 내어 장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런 휘장을 의전차량에 장착해 왔다. 북한은 이런 휘장을 김정일 시대에는 부착하지 않다가, 김정은 집권하에 자신의 의전차량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남북회담에 나온 김정은의 새로운 벤츠, 지바겐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 등장한 북한측 벤츠 SUV, 지바겐. 사진=방송 캡처  지난 1차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김정은이 타고 온 차량이 아니라, 김정은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온 차량들이다. 특히 김정은의 벤츠 앞에서 길을 터주는 호위하는 차량이 눈에 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SUV 인 지바겐(G Wagon)이다. 이 차량에는 김정은이 차에 오르고 내릴 때 문을 여닫는 역할을 맡은 수행원이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탑승한 벤츠 풀만가드의 앞에서 길을 먼저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해당 지바겐은 전면부 디자인에 주간등(LED)이 탑재되어 페이스 리프트를 거친 모델로 2012년 이후에 생산된 것이다. 따라서 차량의 연식은 2014년식 정도로 추정된다. 차량의 등급(Trim)은 G클래스 중 G500으로 보인다. 5500cc 8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여 최고출력 약 390마력(2014년식 북미형 기준)을 뿜어낸다. 차량의 무게는 약 3톤이다. 몸집에 비해 비교적 날렵하여 제로백은 약 6초다. G500은 북미형 기준으로 환산하면 가격이 약 1억4000만원 정도다. 국내에서는 이 모델보다 상급 모델인 G63 AMG가 약 2억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G500의 연비는 약 5~6km/L정도로 그리 좋지 않다. 차량의 목적이 험로주파 등을 위해 개발되어 강한 힘을 토대로 거구의 몸집을 움직인다, 북한이 가져온 지바겐에 방호능력을 탑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은 장기적인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벤츠의 최상급 SUV를 가져왔다는 것은 그동안 김정은의 호화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북한이 보유한 지바겐이 어느 국가에서 구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시장에서 판매하는 모델을 북한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싱가포르에 나타난 김정은의 새로운 벤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것과 동일 차량   싱가포르에 도착한 김정은 전용차 행렬, 뒤에 마이바흐 62가 보인다. 사진=방송 캡처  지난 미북회담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전용 벤츠를 수송기까지 동원해 싱가포르로 가져갔다. 그런데 미북회담에 앞선 남북회담에서는 공개된 바 없는 새로운 벤츠 1대가 추가로 공개됐다. 북한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싱가포르에서 숨겨 두었던 새로운 벤츠를 공개함으로써 북한의 경제력 등을 과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미북회담에 앞서 국내외 언론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모든 회담 비용 등을 다른 국가에 부탁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북한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만한 내용이 연거푸 나온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전용기를 대여받기는 했어도 항공기를 무려 3대나 가지고 싱가포르로 갔다. 이것은 미국의 규모에 준하는 것이다. 즉 북한도 미국과 대등한 수준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숨겨 뒀던 벤츠의 최고급 모델인 마이바흐(Maybach)62를 공개했다.    이 차량은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S600 풀만가드 차량 바로 뒤에 따라붙었다. 이 차량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생산된 차량으로 김정은의 차량은 2011년 모델로 추정된다. 이 차량은 벤츠가 마이바흐를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구축하여 판매를 하던 시절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름조차 벤츠가 붙지 않고 단독으로 마이바흐로 불린다. 차량에 부착된 엠블럼도 벤츠가 아니라 전통적인 마이바흐 엠블럼을 부착한다. 이 마크는 영문 M자를 겹쳐 만든 형상을 하고 있다.    차량 가격은 기본형의 시작가가 약 5억원이며 실제 옵션 등을 추가하면 7억원에 육박할 수 있다. 마이바흐는 출시 당시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 모든 사양을 구매자가 주문하며,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마이바흐만의 특이점은 지붕이다. 지붕에는 파노라마 선루프가 장착되어 있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적용된 유리는 스마트 글래스로 평상시에는 반투과 형태지만 스위치를 눌러 전력이 흐르면 곧장 빛이 투과되는 투명으로 바뀐다. 마이바흐 62는 5500cc 자연흡기 V12 엔진을 탑재하여 제로백은 4초대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이 마이바흐는 너무 고가이기 때문에 판매량 저조로 2013년을 끝으로 단종됐다. 미국을 기준으로 2010년 판매된 마이바흐는 60여대에 불과했다.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는 마이바흐를 흡수하여 최고급 라인업에 특화시켰다. 김정은이 가져온 이 마이바흐도 김정은이 직접 타고 다니는 S600 풀만가드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전용 휘장이 부착됐다. 이 차량의 방호능력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방호능력은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 회담에서 이 차량에는 김정은의 수행원 등이 탑승했다.    이 차량과 동일한 모델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영화배우 배용준도 구매했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및 중소기업 오너 중에서도 이 차량을 구매한 사람이 제법 있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이 차량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마이바흐와 접촉사고를 낸 경차 운전자의 사진이 온라인에서 퍼져 나가면서다. 당시 네티즌들은 댓글로 ‘저 경차 오너는 앞으로 평생 저 차 수리비를 물어줘야겠다’는 등의 내용이 올라왔다.      2차 남북회담에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새로운 은색 벤츠   제2차 남북회담때 문재인 대통령이 타고간 은색 벤츠. 사진=방송 캡처  반면, 문재인 대통령이 타고 간 벤츠는 김정은의 벤츠보다 신형인 W222 기반의 차량으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가드(Guard)다. 이 차량은 풀만(Pullman)이 아니라 그냥 가드 모델로 차량의 길이가 풀만가드보다는 짧지만 우수한 방호능력을 갖춘 차량이다. 길이가 짧기 때문에 실내 공간이 적어 편의성 면에서는 김정은의 의전차량보다 떨어지지만,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고 기동성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차량의 가격은 7억~12억원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소 기습적이라고 볼 수 있었던 제2차 회담에서는 새로운 벤츠를 타고 갔다. 이 차량은 지금까지 청와대의 의전행사에서는 노출되지 않았던 차량이다. 차량의 색상이 은색이었는데, 의전용이라 보기 힘들고 긴급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이 차량에 대한 언론의 노출도 최소화시켰다.    앞선 1차 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차량을 타고 회담장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수초에 불과한 매우 짧은 영상만 공개됐다. 아마도 언론의 분석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공개된 모습을 토대로 분석해 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량은 앞선 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가드와 동일한 차량이며 색상만 은색으로 차이를 보인다. 방호능력 면에서도 동일하다. 방호능력은 문재인 대통령의 벤츠가 VR10급이며 김정은의 벤츠는 VR9급으로 남측 차량이 한 단계 위급이다. 방호 면에서 둘의 차이는 7.62X54mm 저격용 탄을 막을 수 있는지 여부다. 문 대통령이 갑자기 은색 벤츠를 타고 간 배경에는 여러 추측이 있으나, 일각에서는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전에 두 정상이 만난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벤츠를 고수했다. 청와대는 벤츠 외에도 에쿠스(제네시스 EQ900) 등이 있지만, 벤츠를 타고 간 것이다. 이는 북한측이 벤츠를 타고 오기 때문에 급을 맞춘 것이다.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도 판문점을 지나 북한을 갈 때 평소 애용하던 BMW의 최상급 의전차량인 BMW 7 시리즈 시큐리티 모델을 벤츠 S클래스로 바꿔 타고 간 바 있다.      트럼프의 파격 제안, “내 차 타 볼래?”   캐딜락 원의 조수석 문이 열린 모습에서 문 두께가 보인다. 사진=방송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공수해 간 전용차량, 리무진 원은 캐딜락 원(Cadillac One)으로도 불린다.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처럼 차량을 부르는 것이다. 이 차량의 방호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확한 제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미국은 북한과 달리 방송을 의식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다 찍지 못하게 통제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이 차에서 내리는 장면은 다 공개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장면은 카메라의 각도상 문이 열리는 안쪽을 잘 찍지 못했다. 아마도 보안 등의 이유로 사전에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차량의 문 두께 등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풀만가드보다도 더 두꺼워 보인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 두께는 되어 보인다.    탱크킬러라 불리는 RPG-7 정도의 대전차 로켓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장갑(裝甲)이 상당히 두껍다. 공개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장갑은 티타늄과 강철 등을 섞어 만들었고, 심지어 세라믹도 함유됐다. 세라믹을 장갑에 섞은 이유는 로켓포를 비롯한 대구경 탄환이 탄착 후 열을 발생시켜 장갑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차량 내부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혈액형과 동일한 피도 가지고 다닌다. 유사시 긴급 수혈을 위한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혈액형은 구하기 어려운 Rh- 인 이유도 있다. 이외에도 차량 운전자가 사용하는 선바이저 등에는 실시간으로 통제센터로부터 각종 정보를 받고 연락을 취하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전장의 탱크 운전사가 가지는 기능과 유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이 때문에 이 차량의 조수석 등에는 경호원이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중화기가 상시 탑재되어 있다. 따라서 휴대하고 있던 권총이 여의치 않으면 즉각 문에서 기관총을 꺼내 쏠 수 있다. 이 기관총이 발사할 수 있는 무장은 유탄과 최루탄으로 알려졌다. 차량의 무게는 김정은의 벤츠보다 무거운 약 5톤에서 6.5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의 차량에 관심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차를 타 볼 것을 권유하는 듯한 장면도 나왔다. 다소 즉흥적인 성격의 두 정상이 예정에 없던 문답이 오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이 실제 차에 오르지는 않았다. 만약 김정은이 차에 올랐다면, 자신이 탑승 후 차에 남길 지문 등 신체정보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참고로, 트럼프가 타고 다니는 의전차량은 트럼프 당선 이후인 2016년경 백악관이 교체한 것으로 기존 모델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앞서 오바마 정부에서 사용하던 캐딜락은 한 행사에서 턱이 높은 지역을 지나다 차가 걸려 차를 긴급히 교체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장면을 사람들이 SNS에 올리면서 한때 백악관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김정은 전용차 주변 경호원들이 함께 뛰는 이유는?    김정은 전용차와 트럼프 전용차의 가장 큰 차이는 디코이(Decoy)다. 디코이는 동일한 차량, 항공기, 헬기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의전 및 경호용 유인물(誘引物)을 뜻한다. VIP가 탑승하는 탈것과 동일한 물체를 하나 더 준비함으로써 유사시 공격자의 입장에서 어느 차량에 실제 VIP가 탑승했는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대통령 전용 탈것은 1대 이상 만든다. 보통은 3~5대까지 만들고 한 번에 보통 3대 내외를 운용한다. 이번 미북회담장에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도 2대가량의 캐딜락 원으로 이동했다. 어느 차량에 트럼프가 탔는지 구분이 어렵다.    반면, 김정은은 이러한 디코이를 구비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 전용차량이 12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고가인 탓이다. 이 때문에 항시 1대의 김정은 차량이 다른 벤츠 차량과 이동하는데 생김새가 달라 구분이 쉽다. 즉 김정은이 탄 차는 항상 노출되어 있고 어느 차에 탔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북한이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김정은 차량 주변에 10여명의 경호원이 함께 뛰는 형태로 방어하는 것이다. 공격자의 입장에서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량은 공격이 어렵지만 저속에서는 차량에 대한 사격 등이 용이해진다. 이때 북한은 경호부대를 투입한다. 결국 이것은 최고의 경호법이 아니라 똑같은 차를 2대 굴리지 못하는 김정은의 어쩔 수 없는 최고의 차선책인 셈이다.⊙

정광성

  선배와 점심을 먹게 됐다. 선배가 물었다. “자유와 평등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유’를 선택했다. ‘자유’, 참으로 친근하면서도 낯선 단어였다. 10여년 전까지 ‘자유’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나다. 그러던 내가 자유를 처음 맛본 것은 탈북과정에서다.    2006년 3월이었다. 중국 기차 내부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들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몸이지만 차마 쓰레기 더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나의 귀에 “꼴에 자존심은 있나 보네”라는 말이 날아와 꽂혔다. 브로커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린 마음에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북송되면 18살 어린 내가 겪게 될 온갖 수모와 창피를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순간 어떠한 장면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탈북과정에서 처음 맛본 ‘자유’의 달콤함    중학교 3학년(15세) 때로 기억한다. 2교시가 끝나고 전체 집합 종이 울렸다. 반 친구들과 나는 조금 놀랐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쉬는 시간에 학교 전체가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체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왔고, 뒤에 한 학년 선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를 따랐다. 교장은 연단에 올라서서 화난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이랬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만들어 준 좋은 나라에서 학생에게 맡겨진 공부는 하지 않고 자본주의 썩어빠진 사상에 물들어 자신의 부모와 학교 친구들을 버리고 중국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자리에 모인 교사들과 학생들은 모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한 학년 선배가 몰래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잡혀 북송돼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고 나와 학교로 돌아온 것이었다. 북한은 살인죄와 체제 비판죄가 아니면 미성년자들은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 그 선배도 미성년자여서 풀려났지만 감옥보다 큰 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장은 연단 밑에 있는 선배를 위로 불러 세웠다. 그 뒤로 교장은 해당 선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교장은 교육자로서의 체통을 버리고 이성을 잃은 듯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교장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북한에서 교장이라는 직책의 권위는 높았다. 그런데 학생 한 명으로 인해 시내 중심가 학교 교장에서 시골 학교 교장으로 좌천되게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교장은 그 사건으로 인해 600여 명이 재학하던 학교에서 100명도 안 되는 시골 학교 교장으로 내려갔다.      호상비판  탈북자를 막기 위한 북한측의 경계가 삼엄해지고 있는 가운데 신의주 근교의 압록강 둑을 걸으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 병사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교장의 비판이 끝나자 선배는 전교생 앞에서 자기비판을 시작했다. 그 선배는 고개를 숙인 채 울면서 1시간 남짓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기비판을 했다. 이어 학급별로 한 명씩 연단에 나와 그 선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먼저 같은 반 친구가 나왔다.    “먼저 같은 반으로서 동무가 이렇게 되기까지 잘 이끌지 못했던 저와 담임선생님 이하 반 친구들은 깊이 반성 중에 있습니다. 평소에 동무의 잘못을 보고도 눈감아 줬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충호 동무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호상(互相)비판을 하겠습니다. 충호 동무는 당과 수령님의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나라와 가족을 배반하고 중국으로 도강을 했습니다. 이것은 반역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학교 청년동맹(15세부터 가입할 수 있는 북한의 조직) 차원에서 큰 벌을 내릴 것을 제기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을 구하러 갔던 발걸음이 반역으로까지 번졌다.    후배들은 더 심했다. 1학년 학생이 연단에 올라가 이렇게 말했다.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선배가 미국과 남조선 놈들의 책동에 놀아나 나라와 가족을 배신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선배로 보지 않고 반역자로 보겠다. 이렇게 머릿속이 썩어빠진 사람은 우리 학교에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당장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학년생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들도 선배를 비판하기에 열을 올렸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가능하다. 학교 선배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까지도 대중 앞에서 비판할 수밖에 없는 곳이 북한이다. 성(姓)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은 ‘충호’였다. 외모가 출중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선배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선망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 선배의 얼굴이 생각나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브로커의 지시에 따라 의자 밑으로 들어갔다. 의자 밑은 생각보다 더 한심했다. 쓰레기와 먼지에 고약한 냄새까지 났다. 참아야 했다. 선양(瀋陽)을 출발해 4~5시간 정도를 그 상태로 이동했다. 브로커는 우리가 화장실을 자주 간다는 이유로 물도 주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 위에 누워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마치 사람이 아닌 동물이 된 것 같았다. 고향에 있을 때 부모들을 잘 만난 덕에 힘든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잘살지는 않았지만 하루 세끼 밥은 굶지 않고 조금이었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러다 어느새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끝내는 탈북길에 올랐다. 아니, 정확히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아빠 찾아 삼만리    북에서 운전기사로 일하시던 아버지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일을 그만두고 장사의 길에 오르셨다. 오직 북한 정권을 위해 일하시던 아버지가 장사를 시작한 것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2004년 돌연 장사를 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난다는 말씀을 하시고 집을 나선 이후 한동안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아버지 소식을 알게 됐다.    중국에 계신다고 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다른 지역으로 장사를 떠나신 아버지가 중국에 있다니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후 아버지가 보낸 브로커를 따라 두만강을 건넜다. 이것이 탈북의 이유였다.    순간 중국 공안의 발소리가 났다. 신분증 검사를 위해 우리 일행들 쪽으로 다가왔다. 신분증 검사는 선별적으로 이뤄졌다. 나는 긴장되어 몸을 더욱 움츠렸다. 그곳에서 발각되면 100% 북송된다. 돌아가면 감옥에는 가지 않겠지만 한 학년 위였던 충호 선배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죽기보다 더 싫었다. 다행히 공안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안도의 한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더욱 서러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점심이라곤 빵 두 개로 해결하고 기차에 올랐다. 저녁 때가 되자 기차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러나 우리를 인솔하는 브로커는 잠을 잤다. 자는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다음 목적지까지 우리를 무사히 안내하는 책임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돈을 최대한 아껴 자신들의 마진을 남기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아기 어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 어머니에게까지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았다. 일행 중 한 분이 참다못해 밥을 먹자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기차에선 위험하니 베이징에 도착해서 먹자고 했다.    그렇게 밥도 먹지 못한 채 4시간을 의자 밑에서 버텼다. 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화장실이 급해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브로커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참아 보기로 했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무작정 기어가 의자 밑을 탈출했다. 그곳을 나오는 순간 나는 다른 세계를 보았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를 뻔했다. 같은 기차 안이지만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와 먼지투성이로부터의 탈출은 환희 그 자체였다. 특히 좁은 의자 밑에서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곳을 나온 순간 나의 몸은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때 그 감정과 느낌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나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  2007년 11월 17일 중국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하던 성룡이가 힘에 겨워 울고 있다. 8살 성룡이에게는 장장 18시간의 산행길이 힘겹기만 하다. 사진=한용호 AD  화장실에 다녀온 후 브로커는 다시 들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북한에서 억압받고 살아온 한 소년이 중국으로 탈출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나의 투쟁으로 인해 다른 일행들도 의자에 앉아 편히 갈 수 있었다. 의자 밑과 위는 천국과 지옥 그 자체였다. 2시간 정도 의자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해서 한반도 북쪽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태어나 보니 김일성·김정일이 통치하고 있는 북한이었다. ‘나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당시 내 처지가 그랬다. 전쟁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거나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켜 줄 나라가 없었다.    우리는 늦은 밤이 돼서야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시는 불빛들로 화려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일행은 역사 근처에 방을 잡고 식사를 했다. 꿀맛이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기차에서 겪은 일부터 태어나 북한에서 받은 교육들, 내가 본 중국의 모습 등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머릿속을 가장 지배했던 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이었다. 태어나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교육, 즉 세뇌교육을 통해 당에 충성하는 소년으로 자라 왔다. 하지만 내가 수년을 배워 온 것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되자 더욱 화가 났던 것 같다. 뒤에 자세히 얘기를 하겠지만, 북한을 탈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이나 제3국에서 북한의 진실을 마주하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한 번씩은 느껴 봤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006년 3월 북한을 출발해 같은 해 8월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중국과 제3국에서 보냈던 5개월은 50년보다 더 길었던 것 같다. 그동안 목숨을 잃을 아찔한 순간도 많았지만 또 행복한 날도 있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일 것이다.    처음 아버지가 보낸 브로커와 두만강을 건너면서 중국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북한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탈북을 했다. 중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을 보게 됐다. 별천지였다. 북한에서 갓 넘어온 촌놈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브로커를 따라 개인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한국에 계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중국 어느 지역에 있으니 그 아저씨(브로커)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다음 날 나는 다른 브로커에게 넘겨졌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를 따라가야 했다. 그 사람의 집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나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북한 출신들이 있었다. 신변상 그들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그들도 나와 함께 무사히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5개월간의 탈북  2009년 12월 9일 오후 제61차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이하여 북한인권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서울 시청광장에서 한국정부와 UN의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적극 노력을 촉구하며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공안들에 잡혀 강제 소환되는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검은 두건을 쓰고 밧줄에 묶여 공안과 북한 인민군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재현한 사람들은 실제 북한에서 탈북한 여성들이다.  7일 뒤 나는 그들과 탈북 길에 올랐다. 우리는 브로커와 함께 옌지(延吉)의 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선양까지 이동해야 했다. 3월 중순이지만 옌지 쪽에는 눈이 내리며 추웠다. 특히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에 들지 않는 게 좋다. 특이한 행동을 해서도 안 되며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거의 벙어리 수준이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동하는 중간중간엔 중국 공안들의 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신분증이 없으면 잡히는 것이다. 나는 출발하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만약 공안에게 잡히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도 도망칠 것이다. 그러다 총에 맞아도 좋다. 북송은 절대 당할 수 없다는 각오인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어떤 분들은 몸에 독약을 품고 떠난다고 했다. 만약 공안에 잡히면 약을 먹고 죽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북송에 대한 탈북민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버스가 한참을 달리다 갑자기 멈췄다. 당황했다. 혹시 벌써 신분증 검사를 하나 싶어서 긴장감이 돌았다. 손에 땀이 나면서 입술이 말라 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긴장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공안은 오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밖의 상황을 살펴보니 빙판길에 버스가 뒤집어져 있었다. 이로 인해 뒤의 차들이 발이 묶인 것이다. 상황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일행들에게 알려줬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안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30분 지나서야 사고 차량을 치우고 다른 차들도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더 큰 산이 있었다. 3시간가량 달렸을까. 버스가 갑자기 또 멈췄다. 순간 ‘사고 때문인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늘이 나의 기대를 질투라도 하듯 창밖으로 공안 초소가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까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 꼼짝없이 잡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안은 버스에 올라탔고 앞쪽에서부터 신분증 검사를 시작했다. 어쩔줄 몰라 브로커 쪽을 보니 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공안은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왔다. ‘만약 잡히면 뛸 수 있는 데까지 달아나 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심판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공안이 내 두 번째 앞쪽을 검사하던 중 버스 기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뭐라고 했다. 물론 중국어로 말했고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던 공안이 우리 쪽까지 오지 않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공안이 내리고 버스가 출발하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나중에 브로커에게 버스기사와 공안이 나눈 대화를 물어봤다. 이랬다.    버스 기사: “아까 오다가 버스가 사고 나서 1시간 지체됐다. 빨리 가야 하니까 대충 하고 보내 달라.”     공안: “대충하면 어떻게 하나. 제대로 해야 한다.”    버스 기사: “도착 시간 늦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공안: “알았다 내릴 거다.”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이후 무사히 선양에 도착했고, 선양에서 기차로 베이징, 베이징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옌지를 떠난 지 꼬박 3일 만에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른 브로커에게 인계됐다. 참으로 거래 물건 같았다. 둘이 전화로 만나 우리를 인계하는 순간 받는 사람은 위안화를 상대에게 건넨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광경이 펼쳐진다. 참담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브로커에게 이끌려 그의 집(아지트)으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 15일 정도 묵은 뒤 제3국으로 가기 위해 중국 국경마을로 이동했고, 태국으로 입국했다.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까지 오는 과정은 다양하다. 내가 왔던 경로인 중국-태국-대한민국으로 오는 경우와 몽골을 거쳐 오는 과정, 캄보디아로 오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중에 어느 것 하나 쉬운 경로가 없다.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벅차고 힘든 길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중국 국경을 빠져나와 태국으로 탈출했다. 태국에서 본격적인 대한민국 입국 절차가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불법 입국했다는 의심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태국의 수도 방콕 난민수용소에서 3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방콕 난민수용소에 도착하면 유엔(UN)에서 나와 북한사람인지를 확인한다. 간혹 중국 조선족 사람들이 북한인으로 가장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다음 절차는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추가 신원조회를 하면 절차는 끝이 난다. 모든 인터뷰가 끝나면 여권이 만들어지고, 여권이 발급되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게 된다.    한국에 와서 12번째로 맞는 여름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잠시 잊고 산다. 나도 마찬가지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소중하게 얻은 자유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내게 항상 있으니까. 언제라도 누릴 수 있으니, 나도 언젠가부터 자유가 당연한 것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와 먼지투성이 속에서 얻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계속)⊙

도희윤

미·북 회담이후 북한의 비핵화 논의에 대한 본말이 전도되어 오히려 북한의 종전선언, 평화협정에 대한 공세가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는 형국이다. 숨죽여 정세를 살펴보던 국내 종북 세력의 본격적인 행동도 북의 공세에 적극 부응하여 돌격대를 자처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제법 신바람이 난 낌새도 느껴지는데 점점 공세의 수위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선언, 평화협정은 사실 북한과 종북 세력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 진영은 내적으로는 통일선언, 다시 말해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한반도내 공산침략세력을 제압하고, 對 中共, 對 蘇聯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작금의 과정이 너무나 개탄스럽지만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자유진영이 개탄스럽다고 하는 것은, 2천만 북한노예주민을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같이 세계사에 유례없는 자유인으로 함께 번영할 기회를 놓쳐, 통일의 완수로 나아가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또한 원하는 바라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 전쟁 국군포로, 민간인 납치피해자등 전쟁의 종료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국민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며, 전쟁이라는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고자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말끝마다 내세우는 미군철수 등의 전제조건이 있듯이, 자유진영은 전제조건으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 짓고 가야만 하는 국가적 책무로써 전쟁의 시작과 끝이 명확히 정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구 소련의 기밀문서와 중국 공산당의 비밀자료에 모두 언급되어 있듯이, 6.25전쟁은 김일성의 치밀한 사전준비에 의해 야기된 민족적 비극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북침이니 남침유도설이니 이 모든 거짓선전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이 3일 만에 자신의 수도를 빼앗기는 전쟁을 미치지 않고서야 저지를 리가 만무하다는 차원에서도 이미 답은 나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전쟁 수년전부터 ‘남조선에서 인텔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라는 담화문을 통해, 공산정권의 잣대만으로 사유재산 몰수, 지주, 종교인, 친일파 등의 죄명으로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하여 부족한 전문 인력을 충원하려는 전시 납치계획까지 만들어둔 것을 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실행했는가는 명백히 드러난다.   실제 전쟁 시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납치된 인원들이 10만 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유엔 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 바, 이들 납치피해자의 남아있는 가족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6.25 전쟁을 끝내려면, 민간인 납치피해자 10만 여명에 대한 소재 파악과 생사여부, 북한에서의 생활, 남은 가족, 유해 송환 등이 모두 이루어져야하고, 납치로 인한 피해보상을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사죄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절규한다.   또한 북한에 억류된 전쟁 국군포로 가족들은, 아오지 탄광 등을 연연하며 죽지 못해 살아야했던 아버지의 원혼을 조금이나마 달래드릴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나서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이런 자국민의 아픔들이 종전선언 협상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질 때, 비로소 새로운 화해와 협력, 평화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래의 글은 1950년 10월 피랍치인사가족회 대표단이 평양형무소 내벽에서 발견한 납북자의 무명시(無名詩)다. 이를 읽고서도 죄스러움이 남아있지 않는다면 ‘이게 나라냐’ 라는 비판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자유여, 그대는 불사조 우리는 조국의 강산을 뒤에 두고 홍염만장(紅焰萬丈) 철의 장막 속 죽엄의 지옥으로 끌려가노라 조국이여 UN이여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구출하여 준다는 것은 우리의 신념이라...

도희윤

평북 동창리 서해미사일발사장, 평양인근 ICBM 발사장 해체의 소식과 미군 유해 55구의 송환으로 온 세계가 난리다.  그동안 꿈쩍 않던 김정은이 비핵화의 행동에 본격 돌입했다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미국은 종전선언(終戰宣言)에 나서야한다고 연일 압박하는 형국이다.   필자가 느끼기엔 왠 뜬금없는 호들갑인가 여겨지는데, 우선 비핵화의 시작은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의 해체에서부터가 아니라, 신고부터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해체로 호들갑을 떠는 그곳은 말 그대로 실험장 내지 발사장이기 때문에, 실험이 끝났으면 치우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이동식 발사대까지 모두 갖춘 마당에 외부 폭격에 노출된 발사장은 있어나 마나 한 게 아닐까.   문제는, 비핵화에 대한 자신들의 신고서를 먼저 작성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에 따라 구체적인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IAEA의 복귀도 긍정적인 행동의 하나일 테고 말이다.   핵무기를 몇개나 어떻게, 어디에, 어느 정도의 성능으로 만들어 은닉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실체를 우선 보여주고, 향후 이를 국외 반출, 폐기 등을 어느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서 진행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국제사회에 제시부터 해야 그때서야 비로소 비핵화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은 영변의 냉각탑 폭파쇼와 똑같이 진짜 해야 할 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온갖 보여주기 쇼로 자신들이 얻을 종전선언이라는 목표에만 집착하며 시간 끌기에 매달려있는 모습인데,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순서상 정확한 신고가 우선임에도 이를 뒤로 미루고, 현란한 해체쇼나 유해 송환 등의 생색내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분명 감춘 의도가 있을법하다.   결국 신고서를 제출하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그동안 확보하고 있던 내역들과 비교 분석 할테고, 그러면 국제사회를 기만하려고 작정한 자신들의 속내가 빤히 드러날테니 그것이 무서워 이런 쇼로 덮어 보려는 게 아닐까.   여기에 놀아나는 한국은 더욱 가관이다. 핵무장한 적을 코앞에 두고 최전방인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의 철수 추진에서부터, 지휘부의 보신주의적 거짓말과 기회주의적 하극상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밑바닥을 보는 느낌이다.   북한은 내부 비밀강연에서 '핵은 선대 수령들이 물려준 우리의 고귀한 유산으로 우리에게 핵이 없으면 죽음'이라고 강조했다는데, 이것은 결코 핵 포기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하는 것은, 북한이 줄곧 주장하는 종전선언(終戰宣言)의 함의(含意)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론은 종전선언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출발한다.   세계사의 어떤 전쟁도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은, 누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이의 재발방지와 책임소재를 따져 그에 상응한 전후 배상 등의 대가가 따랐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도 6.25 전쟁의 침략당사자임을 부인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미국을 비롯한 UN군의 참전이 애초부터 잘못된 내정간섭, 즉 한반도의 내전(內戰)에 부당 개입한 것으로 오히려 미국과 UN에게 6.25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는 파렴치한 전략을 감추지 않고 있지 않은가.   비핵화의 순서가 잘못되면 모처럼 조성된 북한 핵무기의 폐기라는 절호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며, 그릇된 종전선언(終戰宣言)은 6.25 전쟁의 국가유공자들과 UN참전국의 명예를 실추함과 동시에, 모든 전쟁의 책임을 공산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킨 자유진영이 그대로 받아오게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동연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재산통제국(OFAC)이 적발한 북한 선박에 대한 공해상에서의 선박 대 선박 교류 행위. 사진=미국 재무부 캡처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을 판문점에서 만났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시종일관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 한반도의 평화무드를 만들었다. 회담중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맛을 좀 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에서는 냉면이 불티나게 팔리는 진풍경이 연출되는 등 주적인 북한에 우호적인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판문점 선언을 살펴보면 남북간 철도사업부터 시작하자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남북간 경제교류 및 지원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가령 어떤 방식으로 대북지원을 할 것인지, 언제부터 지원을 시작할지, 어느분야부터 지원 및 교류의 물꼬를 터야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은 없었다. 또 남북회담을 성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북한을 지원하기에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여론의 분위기도 살펴야 했다. 따라서 섣부른 대북지원은 특히 미국의 대북제재 속에서 미국 수뇌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다.    판문점 선언이후 곧장 대북지원한 한국정부?    그런데 실제 우리정부의 계획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행동으로 대북지원을 보여준 듯한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5월 3일, 남한이 북한에 기름을 직접 제공해주는 정황이 포착된 사실을 미국의 외교안보 소식통을 통해 기자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고 약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에 기름을 지원해 준 것이다.     그동안 대북지원의 역할은 줄곧 중국이 도맡았다. 육로를 통한 물자지원은 물론, 해상에서의 기름 지원 등도 모두 중국의 몫이었다. 실제로 과거 중국의 선박이 해상에서 북한 선박 옆에 나란히 서서 기름을 옮겨주는 장면이 여러 차례 포착된 바 있다. 2017년 11월 미국 재무부 예하 해외재산통제국(OFAC)은 중국 선박이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물건을 선적하는 모습을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 여러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과 함께 미국은 새롭게 북한의 선박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고 그 명단도 공개됐다. 금성 5호, 소백산, 릉라 1호 등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국적의 선박이 해상에서 북한 국적 선박에 급유해주는 장면이 일본의 해상자위대에 포착, 미국 등에 이 사실이 보고됐다.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에 기름을 제공한 최초의 사건이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 정상. 사진=화면 캡처   대북제재 명단에 이름 올린 북한선박과 옆구리를 맞댄 한국선박    2018년 5월 3일, 밤 12시, 상하이에서 동쪽으로 약 330km 가량 떨어진 해상에는 두 척의 선박이 불을 켠채로 옆구리를 맞대고 있었다. 두 배 위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남산 8호(MAN SAN 8)와 제이홉(Jey Hope)호였다. 전자인 남산 8호는 북한 국적 선박이고, 후자인 제이홉은 한국 국적의 선박이다.    북한의 남산 8호는 1982년 일본 키시모토 조선사에서 제작된 유조선(Crude oil tanker)이다. 적재 가능한 최대중량은 3150톤이다. 즉 기름 3000톤 가량을 싣고 이동이 가능하다. 소속은 북한 합장강 해운사이며, 이 해운사는 2018년 2월 미국 재무부가 추가로 제재를 가한 북한의 해운사 중 한 곳이다. 해운사의 주소지는 북한 평양으로 등록되어 있다. 당시 이 해운사가 미국의 제재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 해운사 소속 선박도 함께 제재 대상이 됐다. 제재 선박명단을 살펴보면, 남산 8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남산 8호는 북한 서해지역에 있는 남포항을 기점으로 드나드는 배다. 만약 급유를 했다면 약 3천톤 가량의 기름이 북한에 전달되었을 수 있다. 선박 대 선박 물물교류 문제 제기한 일본    한국 국적의 제이홉은 2008년 국내 광성조선소에서 제작된 유조선(oil/chemical tanker)이다. 이 배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동중국해 지역을 자주 이동하는 배이다. 국내에서는 제주와 여수 등으로 입항한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선박기록 등을 살펴보면 이 배의 국적을 북한으로 표기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이 두 선박의 수상한 움직임을 일본 해상자위대가 포착한 것이다. 일본은 즉각 이 사실을 미국 등에 알리고 한국정부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은 해당 행위는 유엔 대북제재(UNSCR) 위반 행위인 선박 대 선박 교류 (Ship-to-Ship-Transfer)라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 소식통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일본측으로부터 질의를 받은 한국 외교부는 해당 사안에 대해 진위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뒤 해당 행위는 선박 대 선박 물자교류 행위가 아니며 단순 오해로 보인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일본측이 그럼 왜 선박 두척이 서로 옆구리를 맞대고 있느냐고 반문하자, 잘못 본 거 같다는 식으로 사실자체를 완강히 부정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사안이 포착되면, 외교부는 조사단을 꾸려 심층 조사에 들어간다.   그후 보통 수주에서 수개월의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질의한 일본정부와 유엔 등에 사실을 확인해준다. 가령 해당 선박들이 왜 해상에 있었는지, 물자를 교류했는지 여부의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질의를 받은 뒤 한국 정부의 태도는 외교관례상 적법한 절차도 아니었고, 논리적 근거없는 부정만 거듭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한국의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을 스스로 깎는 결과를 초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등에서 한국정부가 직접 대북지원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일본 내에서 확산된 한국정부의 대북지원 의혹    이와 관련된 내용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외교부장관)과 오노데라 방위상(국방부장관)의 발언에서도 이어졌다.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일문일답이다. 한국 선박의 의심스러운 행위가 적발된지 약 2주만인 5월 15일 외무성의 기자회견장에서 고노다로 외무상에게 한 기자가 질의한다.    일본기자: “선박 대 선박 교류의 대책마련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다. 일각에서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에 대한) 선박 대 선박 교류에 대한 연루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알려달라.”    고노 외무상: “일본 자위대가 대한민국(한국)국적의 유조선이 북한 선박에 가깝게 다가간 상황을 확인했다. 이후 이 내용이 한국측에 보고됐다. 이에 한국정부가 조사를 한 뒤 해당 국적 선박을 확인해본 결과 선박 대 선박 교류가 아니었다는 답변을 한국정부로부터 받았다.”    일본기자: “그럼 이 말은 우리(일본)정부가 한국정부는 이 사안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인정(확인)해준 것인가?”    고노 외무상: “우리(일본)는 한국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일본기자: “현재 대북대화(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정부는 앞으로도 선박 대 선박 교류에 대한 대응방안(countermeasure)을 강구할 것인가?”   고노 외무상: “가데나 공군기지 관할이 아닌 우방국 소관의 선박 대 선박 교류에 대한 저지활동(measure)은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국적의 선박들이 이 선박 대 선박 교류 저지를 위한 대응 활동에 도움을 제공중이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위한 단호한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마지막 외무상의 발언은 동북아의 우방국인 한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유엔 대북제재 이행을 위한 강한 노력을 하는 반면, 한국은 남북대화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마나 전투지원함(좌)이 미국 군함(우)과 훈련 중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일본 해상자위대 제1해상대대 소속의 하마나 전투지원함이 불법적인 선박 대 선박 교류활동 포착    방위성에서도 같은날 기자회견이 있었다. 방위성에서는 보다 더 심층적인 문답이 오갔다.    일본기자: “선박 대 선박 교류에 대해서 질문하겠다. 지난 5월 3일 북한 유조선이 한국 유조선과 공해상(international water)인 동중국 해상에서 나란히 서 있었다. 의심스러운 선박 대 선박 교류활동이 있었다. 이 행동은 남북회담 직후에 있었는데 이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향후 일본 국방성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가지 덧붙여 묻자면, 한국 정부로부터 들은 답변이 있는가?”    방위상: “북한의 대북제재 회피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속 추진되어 왔으며, 선박 대 선박 교류 저지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앞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보다 더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 결의안에 부합하고자 일본자위대는 정기적인 감시 및 경보 활동을 지속, 유엔안보리 결의안 위반행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특히 이런 감시 활동 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해상자위대 제1해상대대에 하마나 전투지원함(토와다급, 사세보항 모기지)을 투입하여, 지난 5월 3일, 한국 선박과 북한 선박이 동중국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교류 행위를 적발해냈다. 해당 내용은 관계부처에 공유했다. 심층분석을 통해 우리 일본정부는, 이 행위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 행위인 선박 대 선박 교류 활동으로 결론지었다.   곧장 일본정부는 신속하게 한국정부에 이 사실을 알렸음은 물론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한국정부로부터 한국정부 주도의 조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고, 한국 국적의 선박이 불법적인 선박 대 선박 교류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를 전달받았다. 일본은 향후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 및 CVID 이행을 포함한 대북압박 활동에 지속 기여할 것이다.”    일본기자: “선박 대 선박 교류 사건과 관련하여, 방금 국방상께서 한국정부측으로부터 한국 선박은 불법적인 선박 대 선박 교류활동이 없었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럼 선박끼리 서로 맞댄 상황에서도 아무런 물물교환이 없었다는 말인가?”    방위상: “일단 우리 일본정부는 북한 국적 선박과 한국 국적 선박이 함께 공해상에 나란히 있었음을 확인했고, 이것은 의심스러운 선박 대 선박 교류 행위임을 확인(confirm)했다. 이후 우리는 이 행위에 대해 한국정부에도 확인을 받고자 한국정부에 사실을 알린 것이다. 한국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일본)에게 알려오기를 의심스러운 선박들의 선박 대 선박 교류가 있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것이다.”  선박 대 선박 급유 의심을 받고 있는 한국의 제이홉 호. 사진=구글 검색 일본 방위상, “공해상에 두 선박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보기 드문일”    일본기자: “만약 이것이 불법적인 선박 대 선박 교류행위가 아니라면, 이와 관련된 세부 자료가 있는가? 가령 왜 선박끼리 나란히 서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 말이다.”    방위상: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공해상에서 선박끼리 나란히 서 있는 행위가 흔한일(ordinary act)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기자: “언제 한국측으로부터 이 답변을 들은 것인가?”    방위상: “한국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에 조사결과를 전달했다. 하나, 이 내용의 시점을 상세히 밝히는 것은 외교적 상호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밝힐 수 없다.”    일본기자: “일본 정부는 이 내용을 유엔 안보리의 제재위원회에 보고할 것인가?”   방위상: “일단 나란히 서 있던 선박끼리 무슨활동을 했는지에 대해 일본측은 한국측에게 선박 대 선박 교류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한국측은 선박 대 선박 교류가 없었다며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아직 유엔 안보리에 해당 문제를 보고하지는 않은 상태다.”    일본기자: “방위상께서 언급했듯이 공해상에서 두 선박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일본은 한국정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할 것인가?”   방위상: “이 문제에 대해 한국측으로부터 상세한 보고서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국측이 선박 대 선박 교류를 완강히 부인한다는 사실이다.”    일본기자: “그럼 이말은 현재 국제사회의 선박 대 선박 교류활동 감시공조체계에 불협화음(misalignment)이 있다고 봐야하나?”    방위상: “그런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분석, “선박간 물자교류 할 때 선박은 해수면에서 움직임 없다”    일본기자: “그럼 일본정부는 이 의심스러운 선박 대 선박 교류 활동에 대한 스탠스를 뒤집을수도 있나?”    방위상: “우리의 시각은 공해상에서 두 선박이 함께 나란히 서 있는 것이 흔한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측의 설명은 의심스러운 두 선박이 선박 대 선박 교류를 했다는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기자: “이와 관련된 정보가 이미 있다. 당시 두 선박의 움직임을 보면 선박이 해수면에서 위 아래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런 특성은 화물을 실을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한국이 선박 대 선박 교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당시 선박간 물자 교류가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인가?”    방위상: “나도 모르겠다. 한국 정부는 선박 대 선박 교류가 없었다고 확인했다는 것이다.”   일본기자: “내 생각에 한국정부의 답변은 그 의심스러운 선박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 것처럼 보인다. 향후 일본정부는 이와 관련된 답변을 한국측에 추가로 요청할 것인가?”    방위상: "이 부분은 외무성이 외교 채널을 통해 처리해야할 사안으로 생각한다."    앞서 문답에서 방위상은 정확한 한국정부측의 답변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 기자가 일본과 미국의 외교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의 확인 요청이후 불과 수일만에 답변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빨리 불을 끄는 형태의 성의없는 조사를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여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심층조사 등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태다. 이미 미국에서도 이런 내용을 감지했으며, 싱가포르 미북회담전 일본의 아베총리와 트럼프의 만남에서 이런 내용이 언급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의 이러한 불법적 대북지원 사실을 인지한 뒤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 폐기라는 카드를 내놓고, 한국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기대를 저버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신 일본에 대한 동북아 책임론이 향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지난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과거 평양에서 성사되었던 만남때와 달리 만남의 장소가 판문점이다 보니 양측 모두 차량을 이용해 만남의 장소인 판문점으로 와야 했다. 김정은은 이번 판문점 방문에 사용한 차량은 앞서 중국에서 시진핑을 만날때와 동일한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만가드를 사용했다.   북한 김정은의 벤츠는 2010년 중국 통해 들어간 차량, 가격은 약 15억원   대북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차량은 2010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수입된 차량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의전용 벤츠와 함께 북측으로 유입된 유럽산 자동차는 미화로 약 310만 달러, 우리돈 34억원 어치다. 벤츠 풀만가드 외에도 아우디 R8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디 R8은 아우디가 양산하는 차량 라인업 중 가장 고가의 수퍼카로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MR layout)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이 소유한 아우디 R8은 개선된 모델로 V10 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판문점에 타고온 벤츠 풀만가드는 사용자 주문 형태의 차량으로 옵션과 차량의 방호능력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기본급 차량의 가격은 약 12~15억 정도다. 김정은의 차량은 2011년형 정도의 차량으로 마이바흐로 편입되기 이전 모델로 W221 기반이다. 이 때문에 차량의 이름도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만가드(Pullman Guard)다. 문재인 대통령이 타고간 벤츠는 김정은의 벤츠보다 신형인 W222 기반의 차량으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가드(Guard)다. 이 차량은 풀만(Pullman)이 아니라 그냥 가드모델로 차량의 길이가 풀만 가드보다는 짧지만 우수한 방호능력을 갖춘차량이다. 길이가 짧기때문에 실내 공간이 적어 편의성면에서는 김정은의 의전차량보다 떨어지지만,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고 기동성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차량의 가격은 7~12억 정도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가져온 벤츠 차량들이 보인다. (빨간 원 안) 방호능력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벤츠가 김정은의 벤츠보다 한수 위   두 차량모두 유사시 돌격소총, 수류탄 등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으며, 가스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외부 공기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기능 등이 탑재되어 있다. 차량의 타이어는 터지더라도 주행이 가능하다. 북한 김정은의 벤츠는 VR 9급(VPAM기준)의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웬만한 API(장갑투과소이용)탄을 막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벤츠는 신형이라 김정은의 벤츠보다 한단계 위인 VR10 급의 방호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참고로 차량용 방호능력 중 VR10 이 최상이다.   유럽 한 차량방호 업체분석에 따르면 둘의 차이는 7.62X 54mm 저격용 탄을 막을 수 있는지 여부다. 이 외에 2010년 개선된 방호기준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후속모델인 문재인 대통령의 차량은 이 새로운 기준에 맞춰 설계됐다. 반면, 김정은의 차량은 이 기준이 등장할 무렵 제작된 것으로 일부 방호능력이 문재인 대통령 차량 대비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김정은의 의전 차량과 동일한 모델을 사용중인 국가 정상으로는 인도, 아르메니아 정상 등이 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김정은 의전차량과 동일모델이나 길이가 짧은 가드 모델을 탑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을 육로로 방문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의전차량을 검정색 벤츠 S-Class 로 바꿔타고갔다. 당시 이 장면은 전세계 외신들을 통해 보도 됐다. 청와대는 당시 청와대 의전 차량으로 BMW 740 Li 시큐리티를 구매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종 이 차량을 타고 다닌바 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평소에 타던 BMW 의전차량 대신 벤츠 모델로 바꿔서 평양에 타고 간 것이다. 이는 김정일이 벤츠 광(狂)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김정일의 의전차량과 동일한 벤츠 사의 차량을 고른 것이다. 이번 판문점 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타고 다니는 벤츠와 합(合)을 맞추려고 벤츠 모델을 탑승하고 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벤츠 풀만가드는 최상위 모델인 S 클래스의 롱바디의 리무진을 베이스로 만든 차량이다. 따라서 차량의 길이부터가 6356mm로 6미터에 육박하는 초대형 세단이다. 넓은 실내공간 확보를 위해 휠베이스도 4215mm로 설계된 차량이다. 엔진은 V12 트윈터보다. 최대출력은 510마력으로 웬만한 슈퍼카와 같은 마력수치다. 실린더가 12개이니 당연히 고배기량인 5500cc다. 물론 벤츠 내에는 6300cc 급의 더 높은 고배기량의 엔진도 있지만 연비 등을 고려한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엔진의 최대 RPM은 6000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크밴드는 1900~3500RPM에 맞춰져 있다. 의전차량의 특성상 중저속 주행이 많아서 비교적 중저속 구간에서 최대 토크를 낼 수 있게 엔진을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차량의 크기도 크기지만 방탄으로 설계되다보니 차량의 무게만 5톤에 가까운 4500kg이다. 무게 때문에 일반적인 S 클래스의 AMG 처럼 제로백(0-100km 도달시간)이 4초대로 빠르진 못하다. 해외 벤츠관련 포럼을 통해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제로백은 약 7.9초로 알려졌다. 제로백은 8초에 가까우나 0km에서 80km까지 가속은 5초대다. 그런데 5톤에 가까운 무게를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성능이다.   이 차량의 독특한 점은 전륜부 브레이크에는 트윈 캘리퍼(twin-caliper)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캘리퍼 안에 피스톤의 수를 말하는게 아니라 캘리퍼 자체가 2개가 달렸다는 말이다. 캘리퍼는 브레이크 디스크를 움켜쥐어 마찰로 차량의 바퀴를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대부분의 차에는 바퀴당 1개의 캘리퍼가 장착된다. 그런데 이 풀만가드에는 전륜부의 각 바퀴당 두개의 캘리퍼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차량의 무게를 고려해 재빠른 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설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보기드문 경우로 왜 풀만가드가 우수한 의전차량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총기뿐 아니라 보병이 사용하는 수류탄 공격 및 급조폭발물(IED)에 대한 방호능력도 있으며, 폭발물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료탱크는 보호막으로 쌓여져 있다. 또 외부 폭발 등으로 연료탱크가 관통이 되더라도 이 연료탱크는 폭발이 되지 않도록 탱크 자체적으로 감싸지도록 고안됐다.   이외에도 차량에는 비상용 안전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비상버튼을 누르면 차량 외부로 위험을 알리는 알람이 작동되고 차량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가 작동된다. 차량의 창문을 내리는 전원은 차량의 메인보드에서 분리된 별도 전력공급으로 운영되어 VIP가 유사시 언제든지 창문을 내리고 올릴수 있다. 차량 내부의 인터폰을 통해 외부로 연락을 할 수도 있다.   판문점에 등장한 북한의 구형 벤츠(W140)과 우측의 신형 벤츠(W221). (빨간색 원 안). 사진=영상캡처 러시아의 푸틴 정상이 타던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만가드(W140)는 한때 민간기업을 통해 유럽에서 판매된 적이 있다. 해당 차량은 킬로수가 1만 킬로도 안되는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해당 차량은 중고차량임에도 러시아의 정상이 탑승했고 최상의 관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약 14억원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매자의 신원은 알려진 바 없다.   푸틴이 타는 모델과 동일한 모델을 김정일이 애용했었다. 이 모델은 90년대 말까지 제작된 차량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 구형 벤츠가 등장했다. 이 차량과 함께 북한 고위급 번호판을 장착한 일반 S-class (W221) 2대 이상가량도 김정은의 의전용 벤츠와 함께 이동했다. 여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북한의 벤츠 SUV 지바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이 대동하고 나타난 벤츠는 김정은의 풀만가드를 포함하여 약 5대다.   두 정상이 모인 판문점은 벤츠의 집합소였다. 마치 남북 벤츠 회담을 방불케 했다. 두 정상은 자신들이 탑승하고 간 의전차량 외에도 수행차량도 벤츠 여러 대를 대동했다. 우리측도 문재인 대통령의 벤츠와 함께 약 2대의 벤츠 S 클래스(W222)를 더 가지고 갔다. 그 주변으로는 경호 차량들이 함께 이동했다.   북한이 이번 판문점 회담에 가져온 지바겐. 사진=영상 캡처 새롭게 등장한 북한의 벤츠 SUV, 지바겐   이번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김정은이 타고 온 차량이 아니라, 김정은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온 차량들이다. 특히 김정은의 벤츠 앞에서 길을 터주는 호위하는 차량이 눈에 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SUV 인 지바겐(G wagon)이다. 이 차량에는 김정은이 차에 오르고 내릴 때 문을 여닫는 역할을 맡은 수행원이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탑승한 벤츠 풀만가드의 앞에서 길을 먼저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해당 G 바겐은 전면부 디자인이 주간등(LED)가 탑재되어 페이스 리프트를 거친 모델로 2012년 이후에 생산된 것이다. 따라서 차량의 연식은 2014년식 정도로 추정된다. 차량의 등급(Trim)은 G 클래스 중에서 최상위 모델인 G63 AMG는 아니고 그 바로 아랫급인 G500으로 보인다. G 클래스의 하위급인 G350보다는 윗급이다.   5500cc 8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여 최고출력 약 390마력(2014년식 북미형기준)을 뿜어낸다. 차량의 무게는 약 3톤이다. 몸집에 비해 비교적 날렵하여 제로백은 약 6초다. 국내에서는 현재 판매하지 않는 G500은 북미형 기준으로 환산하면 가격은 약 1억 4천만원 정도다. 국내에서 판매중인 최상위 모델인 G63 AMG는 2억정도에 판매되고 있으며 AMG는 8기통 엔진에 트윈터보를 장착하여 약 560마력에 제로백이 5초다.   북한이 호위차량으로 가져온 G500의 연비는 약 5~6km/l정도로 벤츠의 모델 중 연비가 좋지못한 축에 드는 모델이다. 차량의 목적이 험로주파 등을 위해 개발되어 연비주행이 아니라 강한 힘을 토대로 거구의 몸집을 움직이는 형태라 다른 모델 대비 기름을 많이 먹는다. 북한이 가져온 지바겐도 방탄 등의 장갑을 장착이 가능한 차량이다. 그러나 북한이 해당 호위차량에도 방호능력을 탑재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장기적인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벤츠의 최상급 SUV를 가져왔다는 것은 그동안 김정은의 호화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특히 해당 지바겐은 의전차량인 풀만가드에 비해 연식이 신형이기 때문에 북한에 지속적으로 고가의 유럽산 수입차량이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한 지바겐이 어디 국가에서 구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시장에서 판매하는 모델을 북한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G500모델을 중국에서는 판매하고 있다.   지바겐은 국내에서는 연예인 차량으로 각광받고 있다. 각이 진 투박한 외모가 레트로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다. 또한 투박한 외모와 달리 실내 공간이 넓고 승차감이 비교적 안락하다. 국내에서는 원빈, 홍진영, 김종국, 차범근 등이 타고 있다.   남측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으로 가는 길에 등장한 한대의 경찰차가 눈길을 끌었다. 경찰차로는 보기 드문 의전용 경찰차로 현대자동차의 2세대(VI) 에쿠스가 등장했다.   특사단이 탑승한 벤츠(빨간 원 안), 김정은이 남측 특사단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구글 캡처 대북 특사단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탄 벤츠   남북 정상회담에 따라온 벤츠 중 투박한 디자인의 구형 벤츠 S 600 풀만도 있는데, 이 차량은 북한에서 남측 대북특사단이 방문했을때 등장한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방북하여 김정은을 평양에서 만났다. 당시 김정은이 직접 특사단을 배웅했다. 이 때 차량에 탑승한 특사단을 향해 손을 흔들던 김정은의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특사단이 탑승한 차량이 과거 김정일이 탑승했던 의전차량인 구형 벤츠 풀만가드로 보인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악수중인 김정은의 뒤로 구형 벤츠가 보인다. 사진=구글 캡처이 동일한 구형 벤츠차량으로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도 의전을 제공했다. 북한에서는 이 구형 벤츠를 북한을 방문하는 외부 인사들에게 의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북한은 이 구형 의전용 벤츠를 최소 2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차량의 문 두께 등을 보면 방호능력을 갖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설령 방호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 방탄 정도만 제공될 가능성이 있다. 즉 해당 벤츠는 김정일이 사용하던 차량과는 다른 차량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와 동일한 연식의 모델을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주체코 북한대사도 사용하고 있다.   김평일(우측)의 벤츠. 사진=구글 캡처태영호 전 공사의 벤츠   북한은 과거 김정일 집권시절 김정일이 벤츠를 좋아하여 많은 수의 벤츠를 북한내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고위간부들에게까지 상으로 벤츠를 하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재외공관에서 운용되는 차량도 벤츠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가 머물던 주영국 북한 대사관은 태 공사에 따르면 외교관은 3명 정도가 거주했다. 태영호 공사는 한 달 월급이 100만원 남짓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 영국 북한 대사관에는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 1대(W220)와 3세대 E 클래스(W211) 1대, 총 2대의 벤츠를 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대의 벤츠 외에도 1대의 승합차가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승합차는 영국에서 김정철(김정은의 형)이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할 때 사용했던 차량이다. 빠듯한 월급으로 비교적 연비효율이 떨어지는 고배기량의 구형 벤츠를 운용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주베트남 북한 대사관에서도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W202)를 운용 중이다. 이 차량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된 차량으로 벤츠에서 개발한 최초의 C 클래스 모델이다.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 중 거의 유일하게 베트남의 북한 대사관이 벤츠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C 클래스를 운용하고 있다.   북한 대사관의 차들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애용하는 자동차는 단연 독일산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츠 중에서도 E 클래스와 S 클래스를 주로 사용해 등급상 중형세단 이상의 차량을 애용함을 알 수 있다. 벤츠 다음으로는 미국산 프리미엄 세단인 캐딜락과 링컨을 좋아한다.   북한 정권은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권 국가를 찬양하면서도 민주 국가의 표본인 미국과 독일의 차들을 애용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도 자체 개발한 고급 자동차가 있음에도 북한에서는 타지 않는다. 북한은 과거 햇볕정책 등을 통해 국내 자동차 기업의 기술을 이어 받아 북한산 자동차, 휘파람 등을 개발 및 생산한 바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북한 차가 최고의 차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북한 고위간부는 아무도 타지 않는다.

정채관 박사(교육학)

   5월 9일(수)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회의원 박경미, 통일연구원 공동 주최, 「북한의 교육정책 현황과 교육분야 남북교류협력의 과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조정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했고, '북한 교과별 교육과정 현황 및 남북교류협력 방안' 주제로 '국어'는 권순희 이화여대 교수, '영어'는 정채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수학'은 나귀수 청주교대 교수, '과학'은 신원섭 서울 동일초등학교 교사, '정보기술'은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했다.      나는 이번 국회 세미나에서 ‘북한 영어교육 정책변화, 2013 영어과 교육강령 분석 및 통일대비 교육협력방안’을 주제 발표했다. 우선 전체적인 북한의 외국어 정책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역대 북한 지도자의 교육 배경을 살펴보자.   1. 역대 북한 지도자의 교육 배경      김일성 위원장은 칠곡 창덕소학교, 만주 푸쑹소학교를 졸업했고, 중국 길림 육문중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유학파로 중국어가 능숙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 남산소학교에 입학한 후 만경대 혁명자유학원에 편입하였고, 삼석인민학교에 진학하여 평양 제4인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평양 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수 국내파로 대학 재학 중 소련, 폴란드, 동독, 중국 등을 여행했고, 비공식적으로 미국, 프랑스 등도 여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소학교 과정은 개인 교사를 통해 교육을 받았고, 스위스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농구 등 미국문화에 너무 심취한 것을 우려한 북한 당국에서 독일어로 수업하는 스위스 베른 공립중학교 7학년(남한의 중학교 1학년에 해당) 편입 후 9학년에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온 후 개인 교사를 통해 김일성종합대학 학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같은 시기에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종 학력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 모두 스위스에서 조기 유학한 영어와 독일어가 능숙한 해외유학파다.   2. 북한 외국어교육 정책      김일성 위원장 집권기(1912-1994)의 주요 외국어교육 정책은 전쟁 준비다. 김일성 위원장은 미·일제국주의자들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하고, 영어나 일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들을 붙잡아 놓고 '손들어, 총을 버리고 투항하면 쏘지 않는다.' 등 간단한 군사 용어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집권기(1994-2011)의 외국어교육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해외나라와의 교류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사상의 전파이다. 핵 개발을 위한 외국어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집권기에 특히 중학교에서의 외국어교육이 강조되었고, 대학생들에게 외국어 원서를 읽도록 했다. 북한은 2008년, 즉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기 3년 전에 소학교(남한의 초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시작하였다.      2010년 12월 11일 북한은 영국과 정식 수교후 북한 영어교육 개선을 위한 전략적 연대를 체결한다(김정일 위원장 사망 1년 전). 북한은 영국문화원을 통해 영어 원어민 교사를 수급받아 김책공대 등 평양의 주요 대학에서 북한 엘리트를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하였다. 또한, 북한은 북한의 영어 교육과정, 영어 교재개발, 영어교사 양성 등 북한 영어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단행한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연 이러한 사업을 누가 주도했냐는 점이다. 참고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몇 년 전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기(2011-현재)는 김정일 위원장 집권기에 시작된 북한 영어교육 개선 과제를 대폭 강화하며, 북한 외국어교육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히 혁명적인 일이 벌어진다.     3. 북한 영어교육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전과 후로 나뉜다.      북한은 2013년 교육강령(남한의 교육과정)을 선포하고 2014년 4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북한의 교육강령은 법적 조치다. 북한의 학교 현장에서 교육강령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위법이며, 북한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교육강령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적어놓은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선포된 북한의 2013 교육강령은 본격적인 ‘김정은 키즈’를 키우기 위한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강령에 북한은 2014년부터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남한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 현장에서 다른 외국어는 가르치지 말고 영어만 가르치라고 했다. 또한, 북한에서는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보다 영어를 더 가르치라고 수업 시수를 정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기 북한의 영어교육 정책의 큰 변화는 영국인들의 참여이다. 북한 인민들에게 북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하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북한 영어과 교육강령과 영어 교과서를 제작할 때 영국인들을 참여시켰다. 그 결과 특히 영어 교과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수준으로 질이 높아졌고, 무엇보다도 과거와 달리 김일성 위원장, 김정일 위원장 등의 우상화나 주체사상 등 정치·사상적인 내용이 상당 부분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언하였듯이, 북한에서 교육강령은 공장으로 치면 제품 생산 매뉴얼이다. 그만큼 체제유지와 당에서 원하는 선군혁명인재를 키우는 성스러운 지침서이다. 여기에 외국인이 투입되고 교과서 제작에도 외국인을 투입하고, 영국 교재를 교과서 참고문헌에 명시한 것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4. 전쟁 준비하듯 전 인민을 상대로 영어교육, 그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전쟁 준비하듯 전 인민을 상대로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북한은 영국문화원을 통해 수급받은 영어 원어민을 김책공대를 비롯한 평양의 주요 대학에 투입하여 영어 수업을 하다가, 이를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어 원어민들을 북한 영어교사 양성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투입함으로써 학교 현장의 영어교육 수준을 높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국가안전보위부 성원들을 차례로 평양에 집결시켜 6개월 동안 필수적으로 영어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영어교육에 적극적인 이유가 뭘까? 예전에 모 언론사 기자는 나와 인터뷰를 하며 핵 개발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핵 개발 관련 해외 기술서를 읽기 위해 영어는 유용하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은 이미 미국과의 회담을 계획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4.27 남북 정상회담 전과 후에도 북한이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남한이 받는 식이었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에 미국에 무엇을 주겠다고 하면 미국이 받는 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모든 카드는 북한이 쥐고 있다. 즉, 남한이나,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북한 주도로 자신들이 실현하려고 하는 것들을 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이 남한에 제공했던 개성공단과 같이 미국에 공단 하나가 아니라 몇 개, 아닌 몇 개의 지역을 제공하며 북미 합자 회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2015년 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약 5만3천명 정도였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끼리니까 언어적으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 합자회사를 세워 공장을 운영하면 북한 근로자들이 영어를 알아야 한다.만일 북한이 개성공단의 10배가 넘는 면적을 미국에 제공한다면? 북한은 이미 몇 년 전에 비핵화 선언을 계획했고, 그 이후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해서 하나씩 진행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북한의 천연자원 개발을 북미가 함께 할 수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영국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미 북한에 들어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만 북한의 천연자원 개발을 하도록 내버려 둘리 없지 않겠나. 중동 오일 개발을 미국만 한 게 아니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근로자 한두 명이 아니라 매우 많은 숫자의 북한 근로자가 영어를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내 부친이 1970년대 대우자동차를 다닐 때 GM에서 미국인 기술자가 와서 뭔가를 가르쳐줄 때처럼. 당시 우리나라 분위기는 '출세 하려면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였다.    북한은 이미 이러한 설정을 해 놓고 2013년 영어과 교육강령과 영어 교과서를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영어교육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주장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북한 영어교육 정책변화를 연구하면서,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전쟁 준비하듯 국가적으로 영어교육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누군가가 개성공단에 있는 회사를 가리켜, 저임금에 성실하고 근면한 근로자가 일하는 노조가 없는 회사라고 했다. 누가 이런 회사를 탐내지 않겠나? 북한은 이미 많은 근로자를 해외에 파견한 바 있고, 북한 근로자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부지런할 뿐 아니라 애국심이 강한 근로자로 알려졌다.       비핵화 선언 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원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가진 최고의 무기는 핵폭탄이 아니라 똑부러지고, 성실하고, 근면하며, 충성심 높고, 영어까지 잘하는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6월 12일이 되면 알겠지.   13 May 2018정채관 박사(교육학) 조선pub 칼럼니스트/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BEng(Hons) Birmingham MSc Warwick EdD Warwick Cert Oxford Email: ckjung@gmail.com ◆ [정채관 박사의 영국 & 영어 이야기] 니가 가라, '혁신' 도시 ◆ [정채관 박사의 영국 & 영어 이야기] 육아휴직은 미친 짓이다◆ [정채관 박사의 영국 & 영어 이야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심과 키워드

김동연

 남북의 정상이 마주 앉아 이야기 중이다. 사진=화면 캡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판문점의 분계지점을 양 정상이 넘어갔다오는 행동, 김정은의 평양냉면을 북에서 가져왔다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김정은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렸다. 적국의 수장이자 적대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김정은을 마치 친근한 젊은 지도자로 보는듯했다.   그러나 선전과 화전양면전술에 능한 북한은 앞선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당시 북측 김정일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2007년 10.4 선언이 있고, 남북회담 약 1년뒤인 2008년 금강산을 방문한 남한의 관광객 박왕자씨는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번 남북이 함께 만든 판문점 선언을 보면 북한이 이번 남북회담을 대하는 진정성이 투영되어 있다. 그것이 정말 북한의 진심인지, 아니면 앞서 실패한 두번의 남북회담과 같은 것인지 말이다. 내용을 뜯어보면 후자에 가깝다.   판문점 선언에는 일반인들조차 무심코 넘기기엔 애매한 북한 용어들이 대거 포함됐다. 그 용어의 정의를 알고 있다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녕 양측이 함께 만든 것인지, 북한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인지 의심이 갈만한 표현들이 군데 군데 발견된다. 본 분석에 앞서 놀라운 점은 판문점 선언의 영문판이다. 영문판을 보면 한글판과 달리 공산주의식 혹은 북한식 표현 단어는 모두 빼버리거나 삭제됐다. 이 점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1. 민족과 민족적   이번 선언문 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민족이다. 북한의 헌법을 보면 민족이란 단어가 약 20회 가량 나온다. 실제 북한 헌법의 서문 중 나온 한 대목이다. 북한의 지도자를 민족의 태양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   북한 헌법을 포함한 북한의 공식문서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가 민족이다. 민족이란 프레임은 북한이 장기간 사용해온 대남정책이자 북한식 통일의 기반이다. 북한이 대외선정용으로 사용하는 매체의 이름조차 민족이 들어가 있다. “우리민족끼리.”    그럼 왜 민족이란 용어에 북한은 집착하는가? 민족을 강조하는 것의 기원은 2차세계대전 히틀러때나 스탈린때에도 등장하는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독일만의 단합을 만들고 독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끄는 기반으로 만들었다.   또한 북한이 민족성을 강조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민족이 아닌자들은 모두 한반도 문제에서 발을 빼야 한다. 북한이 눈에 가싯처럼 여기는 주한미군 철수가 바로 이 단일 민족성이라는 프레임에 포함되어 있다. 미군 철수는 김정은 정권뿐 아니라 이미 3대에 걸쳐 북한이 주창해온 대남전략이다. 이번 선언문에 무려 10회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서두에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 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는 민족의 형용사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적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상당히 난해한 표현이다. 민족을 형용사적으로 사용하는 문장 구성은 보기드문 것이다. 일례로 어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표현할 때 “이것은 상당히 민족적이다.” 라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이런식의 표현은 북한적 표현으로 북한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로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등에서 북한의 주체사상 찬양의 성과 등을 표현할 때나 사용하는 표현이다.    위 문장에서 민족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민족적 화해에서 민족적을 빼고, 읽어도 문장은 매끄럽게 연결된다.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화해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 여기에 민족이란 표현을 집어넣음으로서 남북의 화해에 제3자(미국)는 모두 빠지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넣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족이란 표현이 영문에서는 사라졌다. 초반에 유사한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한번 나온다. 남과 북을 피의 관계라는 Blood relation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 한글판에 민족이란 말이 10회 강조된 것과는 상반된다.      2. 우리 스스로와 과시하였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표현은 민족이라는 표현에 연장선으로 “우리 스스로”라는 표현이다. 민족과 마찬가지로 남북의 문제를 남북이 해결해야한다는 점을 연거푸 강조하고 있다.   민족이란 표현의 방점을 찍는 곳은 아시안게임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전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 이 부분을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아나운서가 지금 바로 읽어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이다.   과시한다는 표현 자체도 한국식 표현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이것은 주체사상에 도취된 북한에서 자국의 강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선전할 때나 쓰는 형태의 문장이다. 여기서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란 표현은 히틀러의 나치 시절 뮌헨 올림픽에서 독일인종의 우월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겠다고 하던 표현과 상당히 유사성이 있다.   민족성을 과시하는 행태는 현재 국제사회에서 맞지 않는 전체주의적 사상이다. 여기에는 한국인종만을 우월시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반(反)국제화(Anti-Globaization)를 지향하고 타 인종이나 다른 사상에 반대하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다양성의 인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교류와 무역을 반대하고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민족이란 표현은 영어로 하면 ethnic 이고 민족의 슬기와 재능은 “ethnic superiority”나 “ethnic ingenuity”가 된다. 이런 표현은 미국이나 나치에서 벗어난 독일 국민들이 들으면 혀를 내두를만한 내용이다.     3. 자주와 해방   자주라는 표현 역시, 북한이 민족과 함께 애용하는 표현이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이 자주적인 사회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 내용은 북한 헌법의 서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내놓으시고 여러 단계의 사회혁명과 건설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공화국을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나라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이번 남북의 문제도 남과 북이 알아서 해결하자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역시나 민족과 같은 맥락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개입을 원치 않음을 강력히 전달하고 있다.   그다음은 공산주의식 표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이라는 표현이다. 해방이란 표현은 주로 공산국가가 전쟁 중에 정복한 도시를 “해방했다”라고 표현한다. 즉 나쁜 악의 세력(민주주의 등)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다고 표현한다. 영어로도  “We liberate the city” 라는 식으로 사용된다. 이 해방이라는 표현은 남한에서는 보기 드문 표현이며, 일반인들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선언문에서 그 쓰임을 보면, 모든 해방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라고 하고 있는데, 아마도 남한식으로 바꾸자면 약속 정도라는 표현이 맞을듯하다. 모든 해방들을 이행했다는 표현은 북한식 표현이다. 그리고 선언에서 해당 해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즉 이번 남북 회담 이전에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은 무언의 절차 등을 남측이 잘 이행했음을 북한이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본 내용은 회담의 당사자끼리만 알고 있는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영문으로 번역한 내용에서는 해방이라고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어로 보면 해방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는 Revolution, Liberate, Free 등이 사용된다. 이는 명백히 공산권의 용어다. 이 때문에 공산권의 군부세력, 공산권의 영향을 받은 중동의 테러집단 등은 인민해방군, 인민해방전선, 해방전선 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영어로 봐도 People’s Liberation Army, People’s Liberation Front 등으로 불린다. 민주국가에서 자국의 군대 명칭에 해방군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해방이란 용어와 연결된 내용으로는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영문 선언문에서 8.15일 광복절을 National Liberation Day라고 작성했다. 광복절의 민주적 표기는 National Independence Day 라 할 수 있다. 미국도 독립기념일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공산권의 표현에 가까운 방식을채택했다. 남한은 광복절이라 칭하는 날을 북한에서는 해방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4. 적대행위로 규정된 대북선전: 확성기와 전단 살포   남북은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적대행위라면서 연이어 따라서 든 예시다. 적대행위의 예로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꼽았다. 이 두 행위에 해당하는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 남한이다. 이 두 행위를 적대행위의 예로 들었고, 북한이 그동안 펼친 적대적 도발 행위인 미사일 발사, 핵 실험, NLL 침범, 어뢰 및 지뢰 공격, 테러 행위, 인권 유린 등에 대한 예는 하나도 없다.   반면, 남한이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한 대북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해야 한다. 이미 앞서 판문점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탈북한 군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탈북의 이유를 남한의 대북선전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들어보았거나 보게된 남한의 선전물을 보고, 자신이 북한 정권에 속고 살았음을 깨닫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탈북자 유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남한의 대북선전을 일제히 중단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북이 진행해온 대남선전은 그동안 그 효과가 거의 없었다. 북한의 대남선전으로 월북한 사례는 70년대 이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해당 행위를 중단해도 북한은 잃을게 없고, 대북선전을 해온 남한만 잃을게 많은 구조다.   본 선언에서 북한의 적대행위로 지정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북한은 언제든지 이 모호성을 빌미로 재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      5. 비핵화의 대상   선언문 말미에 나온 비핵화에 대한 부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비핵화의 대상이라 함은 단연 북한이다. 만약 남한이 비핵화의 대상이라면, 미국이 펼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 (CVID)"의 대상에 북한과 함께 남한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CVID 정책은 북한만을 겨냥한 것이다. 남한이 비핵화에 동참할 이유가 없음에도 이 선언문은 남과 북이 노력해야 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행하도록 만들었다.   북핵폐기라는 정확한 지칭도 없다. 북핵의 피해자인 남한이 가해자인 북한의 비핵화에 함께 노력해야 하는 셈이다. 있지도 않는 핵을 포기해야하는 남한을 함께 집어넣음으로써 북한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의 책임을 남한에도 전가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처리 문제 등의 사안에 남한도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언문에 남과 북이 노력하자고 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한반도 비핵화 프레임에는 보이지 않는 2가지가 더 숨어 있다.   첫째, 주한미군의 전술핵 남한 배치 둘째, 남한의 원자력 기술   그동안 주한미군은 북한의 핵무장 프로그램을 카운터하기 위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왔다. 그런데 이번 선언을 통해 더 이상 주한미군이 남한에 전술핵을 배치하여 대북 억제력을 제공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는 원하면서도 공격의 대상인 남한이 자신들의 핵능력을 무력화시킬 수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인 남한의 원자력 기술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은 핵무장을 하지 않는 국가이지만, 뛰어난 원전기술을 바탕으로 유사시 핵무장을 한다면 길어도 2년 이내에 무장이 가능한 국가다. 이는 국내외 원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분석한 내용이다. 최단기간으로는 6개월 이내에 무장이 가능하다고 했고, 최장으로 잡아도 2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기 때문에 남한은 더 이상 원전기술 등을 유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즉 탈원전 정책과 판문점 선언을 추진함으로서 유사시 핵무장의 단초를 제거하는 것이다.     위 사안 외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남북한 철도 관련 사업 부분이다. 선언에서 1차적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했는데 여기에 몇 개의 단계적 조치가 더 뒤따르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또한 이런 부분에 대한 남측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앞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양측은 군사적 충돌이 없는 평화를 유지하겠다고 했음에도 북한은 항상 대남도발을 자행해왔다. 따라서 안보적인 차원의 합의가 빠진 상태로 여러가지 사안들이 처리됐다. 북한의 시장 경제 개방이나 통일을 위한 단계적 프로세스에 대한 언급도 모두 빠져 있어 향후 이것이 얼마나 북한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은 판문점 선언의 한글과 영문 전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 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해방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   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⑥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 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며 5월 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①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18년 4월 27일  판 문 점 대한민국대통령 대통령 문재인 조선민주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영문    "During this momentous period of historical transform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reflecting the enduring aspiration of the Korean people for peace, prosperity and unification, President Moon Jae I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Chairman Kim Jong U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held an Inter-Korean Summit Meeting at the 'Peace House' at Panmunjom on April 27, 2018. The two leaders solemnly declared before the 80 million Korean people and the whole world that there will be no more war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hus a new era of peace has begun. The two leaders, sharing the firm commitment to bring a swift end to the Cold War relic of long-standing division and confrontation, to boldly approach a new era of national reconciliation, peace and prosperity, and to improve and cultivate inter-Korean relations in a more active manner, declared at this historic site of Panmunjom as follows: 1. South and North Korea will reconnect the blood relations of the people and bring forward the future of co-prosperity and unification led by Koreans by facilitating comprehensive and groundbreaking advancement in inter-Korean relations. Improving and cultivating inter-Korean relations is the prevalent desire of the whole nation and the urgent calling of the times that cannot be held back any further. 1) South and North Korea affirmed the principle of determining the destiny of the Korean nation on their own accord and agreed to bring forth the watershed moment for the improvement of inter-Korean relations by fully implementing all existing agreements and declarations adopted between the two sides thus far. 2)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hold dialogue and negotiations in various fields including at high level, and to take active measur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agreements reached at the summit. 3)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establish a joint liaison office with resident representatives of both sides in the Gaeseong region in order to facilitate close consultation between the authorities as well as smooth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the peoples. 4)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encourage more active cooperation, exchanges, visits and contacts at all levels in order to rejuvenate the sense of national reconciliation and unity. Between South and North, the two sides will encourage the atmosphere of amity and cooperation by actively staging various joint events on the dates that hold special meaning for both South and North Korea, such as June 15, in which participants from all levels, including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parliaments, political parties, and civil organisations, will be involved. On the international front, the two sides agreed to demonstrate their collective wisdom, talents, and solidarity by jointly participating in international sports events such as the 2018 Asian Games. 5)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endeavour to swiftly resolve the humanitarian issues that resulted from the division of the nation, and to convene the Inter-Korean Red Cross Meeting to discuss and solve various issues, including the reunion of separated families. In this vein,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proceed with reunion programmes for the separated families on the occasion of the National Liberation Day of Aug 15 this year. 6)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implement the projects previously agreed in the 2007 October 4 Declaration, in order to promote balanced economic growth and co-prosperity of the nation. As a first step, the two sides agreed to adopt practical steps towards the connection and modernisation of the railways and roads on the eastern transportation corridor as well as between Seoul and Sinuiju for their utilisation. 2. South and North Korea will make joint efforts to alleviate the acute military tension and practically eliminate the danger of war on the Korean Peninsula. 1)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completely cease all hostile acts against each other in every domain, including land, air and sea, that are the source of military tension and conflict. In this vein, the two sides agreed to transform the demilitarised zone into a peace zone in a genuine sense by ceasing as of May 2 this year all hostile acts and eliminating their means, including broadcasting through loudspeakers and distribution of leaflets, in the areas along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2)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devise a practical scheme to turn the areas around the Northern Limit Line in the West Sea into a maritime peace zone in order to prevent accidental military clashes and guarantee safe fishing activities. 3)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take various military measures to ensure active mutual cooperation, exchanges, visits and contacts. The two sides agreed to hold frequent meetings between military authorities, including the defence ministers meeting, in order to immediately discuss and solve military issues that arise between them. In this regard, the two sides agreed to first convene military talks at the rank of general in May. 3. South and North Korea will actively cooperate to establish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Bringing an end to the current unnatural state of armistice and establishing a robust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is a historical mission that must not be delayed any further. 1) South and North Korea reaffirmed the Non-Aggression Agreement that precludes the use of force in any form against each other, and agreed to strictly adhere to this agreement. 2)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carry out disarmament in a phased manner, as military tension is alleviated and substantial progress is made in military confidence-building. 3) During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4) South and North Korea confirmed the common goal of realising, through complete denuclearisation,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 South and North Korea shared the view that the measures being initiated by North Korea are very meaningful and crucial for the denuclearis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agreed to carry out their respective roles and responsibilities in this regard.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seek the support and cooperation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for the denuclearis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two leaders agreed, through regular meetings and direct telephone conversations, to hold frequent and candid discussions on issues vital to the nation, to strengthen mutual trust and to jointly endeavour to strengthen the positive momentum towards continuous advancement of inter-Korean relations as well as peace, prosperity and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is context, President Moon Jae In agreed to visit Pyongyang this fall. April 27, 2018 Done in Panmunjom Moon Jae In President Republic of Korea Kim Jong Un Chairman State Affairs Commission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김성민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말하던 이야기, 북한노동당 대남전략의 핵심인 ‘종전’(終戰) 이야기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신조 일본총리를 만난자리에서 “그들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고, 이로서 종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북에서 말하는 종전의 의미를 트럼프대통령이 모르는 모양이다.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또 벗겨도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노동당대남전략의 본질을 곁에서 설명해 줄 사람도 없는 듯하다. 북한이 말하는 ‘종전’은 ‘남조선에서의 미군철수’를 의미한다. 때문에 하루빨리 정전(停戰)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남조선주둔 미군의 주둔(駐屯)근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온 북한이다.  북한에서 생활하는 세 살 난 아이도 아는 이 이야기를 인민군정치장교였던 나도 가르친 적이 있다. 더하여 북한의 모든 초, 중, 고급학교 교과서들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남조선이 아닌 미국임을 역설한다. 즉 역대 어느 남조선정부도 미제의 괴뢰가 아닌 게 없어서 평화협정의 체결은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 왔다.   그래서 반듯이 미국과만 해야 한다던 종전논의가 드디어, 문재인정권의 중재아래 시작된 모양새다. 과거에도 문재인대통령은 ‘제도화를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를 주창하면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 견고한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가슴에 와닿지 않아 구름위에 뜬 이야기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불쑥, 미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현실감 있게 다가온 꼴이다.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자’고 외쳐온 전 북한군 군인으로서, 미군이 없는 한반도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하다. ‘미국만 없으면 조국통일은 시간문제다’고 말해온 북한의 한 주민으로서도 논의 중이라는 종전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나아가 노동당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은 민족의 재앙이란 생각에 잠을 이룰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반도의 비핵화’와 이른바 ‘평화협정’이란 말 뒤에 숨겨진 북한의 속임수를 문재인정권이 모른 척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마저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행정부가 지난 25년간의 정책적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하며 정말로 북한의 핵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정권과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핵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북한이 정말 원하는 건 핵을 통한 체제보장이고 이를 발판으로 한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다. 그래서 애써 만든 핵과 미사일을 없애겠다는 건 승냥이가 양으로 변한다는 말이고 앞으로는 절대 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비자연적인 환경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이같은 이유로 지난 11일 ‘북한의 외교책략,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라는 제하의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한국연구재단의 이성윤 교수의 이야기에 주목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발제문을 통해 “북한은 정권 종말이 오기 전 까지는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확신에 찬 주장을 내 놓았다.  정권이 멸망하기 전에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미 의회 청문회 장에서 꺼낸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핵 폐기를 말하기에 앞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 한편으론 북한인권문제로 대변되는 국군포로, 전시-전후 남북자 송환문제를 대화테이블위에 올려놓고 김정은을 압박해야 한다.  이러한 인권문제의 제시 및 해결움직임이 김정은정권의 변화를 재는 척도로 되고 북한민주화의 단초로 작용한다는 건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단지 미국을 위협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종전문제의 논의를 기쁘게 생각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의 사전준비를 더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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