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지난 8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선군절’을 맞이해 북한군 특수부대의 백령도 및 대연평도 점령 가상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하였다. 김정은은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지난 9월 10일 미국의 NBC 방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포괄적인 북핵(北核) 대책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외교적, 군사적 조치를 종합한 이 안은 사이버 공격, 정보 공작, 감시 강화 외에 전례 없는 내용도 검토 대상이라 밝혔다. 백악관과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한 기사였다.    NBC는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선제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았지만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보고 최대한 강력한 비군사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하면 북한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트럼프 행정부에 통보하였다고 한다.    이 방송은 한국이 요청한다면 전술핵 재배치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이 지난 30년간 추구하였던 한반도 비핵화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국은 또 유럽에서 사용하는 지상(地上) 이지스 SM-3 미사일 요격용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 측에, 만약 북한에 대하여 기름을 끊는 것과 같은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이 자체 핵무기 계획을 추진할 것인데 그럴 경우 미국은 이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백령도 점령 훈련과 전술핵 재배치 검토. 현재로선 가상(假想)이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한 상황에선 평소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도 실제로 일어난다. 이런 때는 상상력을 동원한 예측을 할 필요가 있다. 다음부터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김정은의 불면(不眠)의 밤    김정은은 자신감과 불안감 사이에서 불면의 밤을 보낸다. 3일 전, 버티던 중국까지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안에 찬성, 기름을 끊겠다고 통보해 왔다. 어제는 유엔 안보리가 자신을 반(反)인류범죄자로 규정,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기로 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외국에 나갈 수 없고 나갔다가는 체포된다. 중국은 물론이고 꿈에 자주 보이는 어린 시절의 그 스위스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사항을 보고하는 노동당 국제부장부터 분노보다는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김정은은 측근들이 요 며칠 동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사에는 무지한 여동생 이외에는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독재자의 절대고독을 실감한다. 그는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에 현재 상황을 조용히 정리해 보자고 메모를 하기 시작하였다.    1. 수소탄의 소형화엔 성공하였지만 미국을 때릴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은 재(再)진입 기술 개발이 늦어져 실전(實戰) 배치에는 1년이 더 걸린다.    2. 괌, 오키나와, 일본을 사정권에 둔 중거리 미사일은 핵탄두의 소형화에도 성공, 현재 40기가 전략군에 배치되어 있다. 핵탄두는 분리하여 노동당이 관리한다.    3. 서울 등 한국을 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은 100기를 뽑아서 핵탄두 장착용으로 개조하였다. 현재 60개의 핵탄두를 분리, 보관하고 있다.    4.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핵탄두는 모두 100여 개로서 50~150kt의 폭발력을 가졌다. 이를 몽땅 한국에 쏟아 부으면 5000만명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김정은은 핵 발사를 명령할 때 쓰게 되어 있는 암호 코드를 외어보았다. 별실의 입력용 키보드를 만질 때마다 쾌감과 함께 전율이 왔다. “이것만 누르면 남조선은 사라진다. 동시에 나도…”)      ‘당장 급한 불은 기름 부족’  김정은은 선군절(8월 25일)을 맞아 북한 특수부대의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을 참관했다. 사진=뉴시스  5. 남한 정세는 늘 그렇지만 복잡하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서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하고, “우리 허가 없이는 한반도에서 그 누구도 전쟁을 할 수 없다”면서 미국에 제동을 걸 때는 예상대로 김대중·노무현 다루듯이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였지만 그 뒤 달라졌다.    (문 대통령이 아베와 만나 북한에 기름을 끊어야 한다면서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기로 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사나운 트럼프의 압력에 무너졌군”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평화냐, 전쟁이냐의 구도를 만들면 겁 많은 남조선 사람들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줄 거야”라는 기대는 접지 않았다.)    6. 이미 두 달 전부터 북한노동당으로 들어오는 외화 유입이 크게 줄었다.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을 제재하겠다고 발표하기 직전 이들 은행에 열어두었던 북한 계좌를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싱가포르 등지로 옮기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제재 때처럼 외화를 싸 들고 다니면서 핵무기 개발 부품을 사들이고 당 간부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사야 할 판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충성은 달러에서 나오는데….    (매일 비행기로 날아오던 파리의 아이스크림 수송도 김정은이 나서서 못하게 했다. 특별 관리 대상 500명에게 주는 벤츠, 롤렉스 선물도 올해엔 어렵게 되었다.)    7. 해외에 나가 있는 약 10만명의 노동자들이 보내는 자금도 차단되었다. 급료가 노동자 본인에게 지급되지 않고 정권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노예노동으로 규정된 탓이다. 연간 약 5억 달러가 날아갔다.    8. 당장 급한 불은 기름 부족이다. 탱크나 항공용으로 6개월 정도는 비축하였지만 인민생활용으로 돌려쓰지 않으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이게 식량 가격 폭등으로 연결되면 소요 사태의 가능성도 있다. 주민의 80% 이상이 시장에 생계를 의존함으로써 당의 책임이 경감된 것은 다행이지만 물가를 통제할 수 없으면 여론이 악화된다.    (김정은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여론이 무서운 줄 알았는데 시장이 커지니 여기에서도 여론을 신경 써야 하다니”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김정은이 이날 밤 내린 결론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였다. 인민군 총참모부에서 올린 보고서는 1941년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결행하는 데 단유(斷油)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 최고사령관의 결단을 청원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군의 인도지나(印度支那) 진주(進駐)에 보복하기 위하여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다. 그때 일본은 석유 수요의 80%를 미국 석유회사로부터 사들이고 있었다. 석유 비축량은 1년분 정도였다. 미국의 석유 금수령(禁輸令)은 그동안 개전(開戰)에 반대해 왔던 해군을 강경론으로 돌려놓는다.    기름과 돈줄이 끊어진 상태에서 몇 년을 버틸 것인가? 그는 비로소 자신이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북한은 고구려를 민족사의 정통으로 앞세우고, 신라를 민족반역 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비방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여 왔다. 어느새 북한도 연개소문 시절의 고구려를 닮아 세계최대강국과 불화하더니 고립무원이 되었다. 김정은은 “그럴수록 혁명적 낙관주의에 서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나에겐 핵이 있고, 인질이 된 한국이 있다. 그리고 백령도….”    “그렇다. 백령도 기습 상륙 작전을 벌인 다음, 핵카드를 꺼내 돌파구를 만들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백령도 점령 작전 뒤 핵카드 꺼내다  북한군 특수부대는 지난 8월 25일 김정은이 참관하는 가운데 국군과 흡사한 복장을 하고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을 실시했다. 사진=뉴시스  한 달 뒤 김정은은 막다른 심정으로 백령도 침공 작전을 명령한다. 박헌영 같은 남한의 종북좌파 세력이 협조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기습을 받은 백령도의 한국 해병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날씨가 나빠 공중지원을 받지 못하여 3개 사단의 북한군에 상륙을 허용하고 말았다. 약 3000명의 한국군이 포로로 잡혔다. 수천 명의 주민도 적치하(赤治下)로 넘어갔다. 이때 백령도에 관광차 왔던 중국 국적의 조선족 100여 명이 죽었다. 김정은은 백령도 점령에 성공한 다음 특별 성명을 발표하였다.    요지는 ‘이로써 서해 북방 한계선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 만약 적들이 반격하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겠다’.    김정은은 포로로 잡은 군인과 민간인은 협상을 통하여 풀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3일 뒤 한미군은 합동으로 보복 공격에 나섰다. 백령도를 점령한 북한군과 대안(對岸)의 북한군 군단 사령부, 잠수함 기지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백령도 수복을 위한 상륙 작전은 미국이 급파하기로 한 두 척의 항공모함이 도착한 이후로 예정되었다.    다음날, 김정은은 북한군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최후통첩을 한다.    “현 위치에서 휴전하자. 계속 도발하면 우리는 한국의 한 도시를 핵으로 공격하겠다. 미군이 개입하면 괌과 오키나와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은 북의 통첩이 공갈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 핵실험을 한다. 서해의 무인도를 향하여 50kt짜리 핵탄두 실물을 장착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 실제로 파괴한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 유엔 회원국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응징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한다.      한미, 전술핵 사용 가능성 선언  지난 6월 24일 오후 ‘6·24 사드 철회 평화 행동’ 참가자들은 사드배치에 반대하며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포위 행진을 벌였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대한 북한의 침공을 미국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 공동 대응할 것을 분명히 하였다. 두 대통령은 또 북한이 핵사용으로 위협하였으므로 미국도 확장억지 정책의 원칙에 입각, 북한에 대하여는 핵무기 사용 권한이 있음을 선언하였다.    두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에 전술핵이 이미 배치되어 있음을 공개한다. 두 나라가 비밀리에 미군기지 안에 전술핵을 반입하였고, 전시(戰時) 상태인 지금부터는 미군과 한국군이 공동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한국에 배치된 전술핵은 150kt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수소탄으로서 전폭기에 의한 정밀 타격이 가능하고 지하를 뚫고 들어가 터지므로 김정은이 숨어 있는 지하시설에 대한 파괴력을 최대화시키는 반면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어 방사능 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해설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있는 20만명의 미국인을 대피시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군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징후를 30분 전에 포착할 수 있고 그때는 선제공격으로 파괴할 것이다. 이 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이므로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하였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일본 정부는 유엔군 후방사령부의 관리하에 들어간 7개 주일(駐日) 미군기지로부터 발진하는 항공기와 군함이 한국에서 작전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였다. 이때 만주 지역에 배치된 중국군이 압록강 접경지대로 전진,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이 현지에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중국, 김정은에게 최후통첩    백령도 침공 6일 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텔레비전에 나타나 입장을 표명한다.    “우리는 수개월 전에 이미 북한이 무력 공격을 당하면 북한을 지원할 것이고 북한이 먼저 공격을 하여 반격을 당할 경우엔 중립을 취할 것임을 미국 측에 알렸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우리는 한반도 사태에 무력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북한 당국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선언을 취소하고 백령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할 권한이 있음을 선언한다. 한국에는 약 100만명의 중국 국적자가 머물고 있음을 북한 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의외로 차분하게 반응하였다. 국제사회가 신속하게 대응하고 한미군(韓美軍)이 백령도 수복 작전을 시작한 데다가 비상계엄령이 전국에 선포되었기 때문이었다.    전국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이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다. 행정뿐 아니라 사법(司法)도 계엄사령관 지휘로 넘어간다. 계엄사령관은 국방장관이 장성 중에서 추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방장관은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하였다. 합참의장은 연합사령관과 함께 대북(對北) 전략을 지휘해야 하므로 육군총장이 맡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행정과 사법까지 계엄사령관 지휘하로 넘어가고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을 통하여 보고를 받아야 함으로 자연스럽게 계엄사령관이 권력의 새 축이 되었다.    일부 종북 시위대가 반전(反戰) 시위를 하려다가 군대가 출동하기 전에 시민들의 뭇매를 맞고 흩어졌다. 좌파 시위꾼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핏발이 돋았다. 한국의 좌파가 벌여온 관념의 유희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였다. 그는 “지식인은 전쟁이란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 궤변을 끝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고 했다. 전쟁에 직면하면 생존투쟁을 에너지로 하는 애국심이 계급투쟁론을 누른다는 말이 실증(實證)되는 순간이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생활 좌익으로서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은 살길을 찾아 숨는 길을 선택하였다. 남로당의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북한군이 남침하면 20만명의 좌익들이 궐기,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였으나 전쟁이 나자 소멸되었던 현상의 재판(再版)이었다. 종북 세력에 기대를 걸었던 김정은의 계산은 허탕이었다.      계엄사령관의 결단    계엄사령관이 맨 처음 취한 조치는 반국가 활동자 예비 금속령이었다. 그는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기무(機務)사령관을 불러 지침을 내리는 자리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준 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였다.    “나는 기무사령관을 지낼 적에 먼 데서나마 종북 세력의 발호를 걱정하면서 이날을 준비하였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한국의 반역자들이 돈, 정보, 정책으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미국은 1953년에 율리우스 로젠버그 부부를 간첩죄로 사형 집행하였습니다.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고 사형된 유일한 경우입니다. 과학자인 로젠버그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 정보를 수집하여 소련 정보기관에 제공했었죠.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한 어빙 코프먼 판사는 준엄하게 논고했습니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계엄사령관은 쪽지를 꺼내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피고인들의 범죄가 살인보다 더 악질이라고 간주한다. 살인은 피해자만 죽이지만 당신들은 소련이 과학자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1년 먼저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벌여 5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생겼고, 100만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고인들의 반역으로 더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 피고인들의 반역은 역사의 흐름을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어놓았다. 우리가 핵무기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을 매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피고인들의 반역에 대한 증거이다.    율리우스 로젠버그가 주범(主犯)임은 분명하나 처(妻) 에델 로젠버그도 책임이 있다. 성년(成年)의 여자로서 남편의 추악한 범죄를 막기는커녕 격려하고 도왔다. 피고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신념을 위하여 자신들의 안전뿐 아니라 자녀들도 희생시켰다. 목적 달성을 위한 사랑이 자녀들에 대한 사랑보다 앞섰다.’      ‘가장 큰 적폐는 북한의 핵무장을 도운 적폐’    계엄사령관은 이런 날이 올 때를 오래 기다린 사람 같았다. 그는 쪽지를 뒤집더니 뒷면에 메모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바탕인 자유민주주의의 존립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소위 대역(大逆) 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시킬 때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결정문의 보충의견에 써넣은 문장이었다.    계엄사령관은 수사 책임자들과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의미 있는 말을 덧붙였다.    “적폐 중 가장 큰 적폐는 북한의 핵무장을 도운 적폐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적폐를 제쳐두고 반역자가 애국자를 사냥하는 것을 적폐 청산이라면서 도와준 검사·판사는 없는지 모르겠네요. 간첩을 골키퍼로 세워놓고는 축구를 할 수 없잖아요?”    검찰총장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력감에 사로잡힌 김정은    백령도 도발을 명령하였던 김정은은 중국이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무력 개입을 예고하는 데 충격을 받았다. 서울 등 대도시에 중국 국적자가 100만명, 미국 국적자가 20만명, 일본 국적자가 6만명이나 체류 중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핵사용을 운운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백령도 점령 작전을 기획한 부서에선 한국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고려 대상에도 넣지 않았던 것이다. 핵사용 위협이 바로 중국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것도 알 리가 없었다. 김정은은 처음으로 무력감(無力感)에 휩싸였다.    압록강을 넘어 진격할 태세를 갖춘 중국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휴전선에 배치된 70만 병력 중 30만명을 빼내어 북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만큼 서울에 대한 장사정포(長射程砲) 타격 능력이 약해진다. 김정은은 이제 문명세계가 자신을 포위망에 가두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허수아비들을 데리고 전쟁놀이를 해왔음도 알게 된다. 전쟁은 군인이 일으키는 경우보다 전쟁을 모르는 독재자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다. 전쟁을 정말 두려워하는 이는 군인이다. 전쟁의 무서움을 잘 알고 전쟁이 났을 때 피해를 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지휘부도 그런 점에선 다른 점이 없었다.    중국군이 압록강 도하(渡河) 준비를 마친 날 저녁 북한중앙방송은 북한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이름으로 ‘중대 보도’를 내놓았다. 아나운서는 군복을 입은 남자였다. 발표 요지는 이러하였다.      김정은 해임  작년 2월 김정은의 대전차유도무기 현지 시찰을 수행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원 안). 사진=뉴시스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조국을 위기에 빠트린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물어 김정은을 모든 직책에서 해임하기로 결의하였다. 백령도 작전은 김정은이 정치국의 동의 없이 혼자서 결정한 좌경맹동주의적 과오였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수령이 선포하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선노동당 정치국은 조선인민군이 백령도에서 철수하도록 명령하였으며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약속한다.”    한미연합사는 백령도에서 북한군이 철수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계 언론은 김정은의 생사(生死)에 대하여 추측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의 소식통을 인용하는 글이 많았는데 대체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주동한 궁정 쿠데타로 그림을 그렸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흐루쇼프가 비밀경찰 두목 베리아를 제거할 때처럼 황병서가 직접 권총을 들이대어 김정은을 체포하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며칠이 지나도 김정은의 생사 여부와 행방에 대하여는 확인된 정보가 잡히지 않았다.    쿠바 미사일 사건 이후 처음 전개된 핵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세계 사람들이 안도하는 가운데 주식 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였다. 바쁜 곳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였다. 북핵을 도운 적폐 세력 수사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의 수사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사건의 명칭에 ‘적폐’라는 말을 넣을 것을 지시하였다. 대통령은 수사가 일단락될 때까지 계엄을 해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북한군이 백령도에서 철수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긴급 전화 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새로운 6자 회담을 제안하였다. 공동 발표문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양국 정상(頂上)은 한반도의 미래가 통일되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이기를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이란 말을 넣고 싶었으나 시진핑 주석이 반대하였다. ‘자유롭고’라는 말을 받아주었으니 ‘강력하고’는 빼자는 것이었다. 통일 한국의 핵무장을 경계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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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산

이 무식한 사람이 글 몇 쪼가리 썼더니 힘은 못주고 욕만 자꾸 한다면서 비난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할 말은 좀 해야겠다. 요즘 들어 나라 걱정을 하시는 분들과 언론들에서 남한에 “전술핵 배치문제”를 놓고 말들이 적지 않다.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지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허덕이던 북한이 대한민국이 준 쌀을 먹으며 대한민국이 바친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2006년 10월에 첫 핵실험을 한때로부터 1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때부터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할 때까지 미국과 한국은 도대체 11년 동안 뭣을 하다가 이제 와서야 전술핵 타령들인가?   미국이나 남한이나 다 똑 같이 바보들만 모여서 정치를 한다.   북한이 처음 핵개발을 시작 했을 때에 남한에다가 전술핵을 당장 배치하든가 아니면 동시에 한국도 핵무기 개발을 준비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중지하도록 막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북한과 중국이 파놓은 깊은 함정에는 안 빠졌을 것 아닌가.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제는 한국에 전술핵배치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방어무기인 사드 몇 기 들이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정부가 중국, 소련, 종북 좌파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과연 미국의 전술핵무기 반입을 강행 할 수가 있다고 보는가?   당사자인 한국의 정부가 전술핵배치를 반대하는데 미국정부인들 어쩌겠는가?   한미동맹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현 남한 정부가 존재하는 한 전술핵배치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   나라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북한과 팽팽하게 대치하던 보수정권 때에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친북 정권이 들어서니까 전술핵배치문제를 들고 나오는 미국의 군사가들과 일부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모든 것이 바로 될려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도록 도와준 지난 “햇볕정부” 에 대한 엄중한 법적 처벌과 함께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데도  미국과 중국, 소련이 침묵하는 한 우리 대한민국도 자체로 핵을 개발하자고 이 나라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어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정작  해야 할 일들 앞에서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야 되지도 않을 “전술핵배치”를 논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뒷북치기다.   그래도 이 나라에서 공부깨나 했다는 분들이  전술핵무기배치 문제를 “동맹결속 수단”이요 “정부 여당에서도 나오는 검토여론" 이요 하면서 “정교한 논의” 가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어리석은 꿈 깨시라. 아직도 이 한국 땅에서 애국을 위하여 뭔가를 이루어 낼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자체가 어리석은 망상이다.   방법은 오직 둘 중의 하나다. 북한의 독재 정부를 제거하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뒷북이나 계속치며 말로만 애국하다가 "고려연방제-적화통일" 에로 가는 길이다. 선택은 바로 당신들, 이 나라의 애국적 국민들의 몫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까지도 이 나라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얼마나 무섭고도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다.

박승준

▲ 북·중 간 송유관 가압시설. photo 조선일보9월 3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은 북한과 가까운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 동북 3성 주민들의 신변에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환경 안전에도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북한이 5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불안감에 대해 언급을 않던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6차 핵실험 직후에는 공개적으로 걱정스럽다는 말을 했다. 겅솽(耿爽) 대변인은 핵실험 다음 날인 9월 4일 브리핑에 나와 처음으로 상세하게 불안감을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을 보호하는 데 고도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관련 부문은 앞으로 이 실험이 중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면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중국 경내의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다 취할 것이다.”      겅솽 대변인은 북한이 하필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관하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 때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한 데 대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은 브릭스 정상들이 중국 남부 항구도시 샤먼(厦門)에 모여 개막식을 하고 있던 시간에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조선(북한)이 언제 하더라도 핵실험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희망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확고히 반대한다. 내가 방금 설명했듯이 중국 외교부는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는 조선대사관의 책임자에게 엄정한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원유의 90% 이상을 중국이 공급하기 때문에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너무도 간단히 북한의 핵실험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 중국은 국제사회에 얼굴을 돌린 채 파이프 잠그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중국 외교부나 중국의 지도층들은 그동안 마치 벙어리나 된 듯 이에 대한 설명을 기피해왔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9월 3일 오후 4시쯤 온라인에 올린 사설을 통해 비교적 상세한 속내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우리 중국이 일단 조선에 대한 석유 공급을 완전히 단절하거나 중·조(中朝) 국경을 봉쇄한다고 해서 조선의 핵 활동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정적이다. 오히려 중·조 관계가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대립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중·조 간의 대립은 일정한 기간 동안 조선반도를 둘러싼 최고의 모순을 돌출하게 될 것이다. 중·조 간의 대립이 발생할 경우 현재 미·조 대립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고도의 긴장 국면을 조성할 것이다. 워싱턴과 서울은 그동안 조선 핵 문제의 외연을 중국으로 확대하려는 기도를 해왔다. 그런 상황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될 것이다.”      환구시보의 사설은 중국의 국익에 관해 이런 속내도 보여주었다.      “조선 핵 문제의 근원은 한·미 동맹의 군사적 압력이 평양에 엄중한 불안감을 조성한 것이다. 평양은 핵을 보유하는 것을 정권 생존의 유일한 보장책으로 보는 착오를 범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자기 안전의 관건으로 생각하는 착오도 범했다. 중국은 이런 복잡하고 첨예한 도박 속에서 언제든 함정에 빠져들 위험을 안고 있다.… 중국은 대국(大國)이다. 중국의 어젠다와 이익은 글로벌한 것이어야 한다. 조선반도의 문제는 중국 주의력의 전부가 될 수는 영원히 없는 일이다.…”      환구시보의 논리는 중국 지도층과 지식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연결되는 석유 파이프를 잠그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해서 결론지었다.      “조선의 새로운 핵 활동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국 사회는 조선의 핵 활동에 대해 엄청나게 화가 나더라도 절대로 충동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중국은 결코 조선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금지나 극단적인 제재 수단에 가벼이 동의해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환구시보의 사설은 그동안 잘 드러내 보이지 않던 두 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나 원유공급 중단을 늘 흐지부지해오던 이유가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한국전쟁 참전이나 그 무슨 혈맹(血盟)이라는 용어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냉철한 국익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이라는 결정에 대해 북한이 보여줄 반응을 중국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1992년 한국과 수교를 하자 북한이 이후 8년 동안 모든 고위층 교류와 경제 교류를 끊었고, 한국과의 수교 직후인 1993~1994년에 닥친 홍수와 가뭄의 자연재해 때문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었는데도 북한이 중국에 식량원조 한번 요청하지 않으면서 김정일의 지도로 ‘고난의 행군’을 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김정은은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이후 권력을 잡자 김정일을 가장 측근에서 보좌하던 대표적인 친중파(親中派)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흔적도 없이 사살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것을 보고 중국 지도자들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한마디로 발끈하는 북한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비교적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기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심성에 그런 북한은 마치 목을 줄로 묶어놓으면 제 성질을 못 이겨 죽어버리는 살쾡이로 비친 것이다.      그런 반면 한국의 지도자들은 귀여운 강아지 시추 정도로 비쳤을 것이다. 주권 사항에 속하는 사드 배치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정간섭적 발언을 해도 공개적인 국제회담장에서 화 한번 내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와 정계 지도자들이 “한국인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는 귀신, 외부의 적과 싸우는 데는 등신”이라고 자조하는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외교부 사람들은 자기네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해도 화를 내는 한국인을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신기해하고 있다. 우리는 왜 북한과 한민족인데 북한처럼 중국에 살쾡이로 비치지 않는 것일까.

조한범

북한 독재자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DB     트럼프 대통령의 롤러코스터식 북핵대응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한국의 대북정책이 유화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북한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했으며, 미국의 압도적 국력과 군사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자각해야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핵문제는 미국 외교안보정책에서 가장 우선적인 위협으로 취급되어왔다. 유럽과 중동을 우선했던 전례에 비추어 이례적인 일이다. 그 만큼 북핵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행정부의 대응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  군사공격가능성을 내포하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위에 올려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이후 대화를 강조했고, 한반도 8월 위기의 진행과정에서 초강경 자세로 선회했으며,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다시 즉각적으로 유화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적 언급에 일본열도를 넘어가는 화성-12형 발사로 응수했으며, 이에 대해 트럼프대통령은 다시 “대화는 답이 아니다”며 즉각 반응했다. 6차 핵실험 이후에는 군사옵션을 사용하게 되면 “북한 아주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오바마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우리를 답답하게 했다면 말폭탄을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롤러코스터식 북핵 대응은 우리를 혼란케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대응이 북한에게 잘못된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대남·대외협상에서 ‘순환형 도발전략’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도발을 통해 긴장을 조성하고 이를 지렛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을 도출하며, 필요시 협상의 파기와 함께 다시 도발을 야기하는 방식이다. 그 동안 체결된 수 많은 남북합의와  북핵관련 합의가 파기된 이유이다. 따라서 도발과 협상을 반복하는 북한의 행태에 대한 일희일비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 8월위기’의 진행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불사를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냈지만 주한미군의 특이동향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미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비행 이외에 김정은이 압박을 느낄 만한 실제행동도 취해지지 않았다. 북한은 핵 무기로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공격이 현실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화된 북·미간 대립의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역사상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의 고조로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한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은 압도적 힘의 우위에 입각한 대응자세로 북한에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대북제재의 역설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대북제재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수출의 1/3이상을 차단하는 고강도 유엔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가 발효된 상황에서도 화성-12형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독재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한 경우를 찾기는 매우 어려우며, 제재피해의 대부분은 일반 주민들에게 집중된다. 후세인 치하 이라크에 대한 제재의 피해는 유아와 임산부 그리고 취약계층 등에 집중되었으며 최고 집권자를 포함한 지배층은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코앞까지 다가온 연합군에 대항해 초등학생의 손에 총을 쥐게 하면서도 정권유지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모든 독재자들의 특성이며, 핵미사일을 정권의 최대 생존무기로 삼고 있는 김정은이 제재에 굴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김정은의 가속화된 핵 개발행보는 무모한 도발이라기보다 치밀한 계산과 준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매체들은 금년 벽두부터 자력자강을 화두로,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헤쳐 나가자”고 다그치고 있다. 김정은은 금년 신년사에서 생소한 ‘탄소하나화학공업’을 강조했으며, 이는 석유가 아닌 북한에 풍부한 석탄을 이용해 화학공업의 기본원료를 생산하겠다는 의도이다. 원유금수조치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인 셈이다. 북한에 대한 원유의 전면금수는 북한 정권은 물론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과 아울러 극심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이 경우에도 북한정권이 백기투항하거나 협상을 선택할지는 의문이다.     북한 내 소요사태 등 우발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 결과의 불확실성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모두에게 돌아간다. 김정은이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 및 전쟁위협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한국사회의 피로감을 증대시킴으로써 전략적인 우위를 점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북제재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무기개발의 의지와 능력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북제재만으로 김정은 정권이 궁극적인 비핵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적 희망일 뿐이다.   전술핵 재반입론의 함정     핵무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수단은 핵무기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도 북핵위협의 증대에 따라 전술핵의 재반입에 대한 지지여론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을 공동관리하는 나토(NATO)식 핵 공유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한 전술핵의 재반입과 핵 공유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NATO의 핵 공유메커니즘은 미국의 전술핵과 동맹국의 투발수단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최종적인 통제권한은 미국이 배타적으로 독점한다. NATO의 경우에도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이 “워싱턴을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를 도와주겠느냐”는 회의적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며, 해답은 아직도 없는 상태다. 한반도에 전술핵이 재반입된다고 해도 핵무기의 사용여부는 우리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된다. NATO가 공유하고 있는 미국의 전술핵은 미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발사코드가 입력되지 않는 한 절대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당장 전시작전권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 아닌가?   전술핵은 지상발사 ICBM, 잠수함발사 SLBM, 핵투발 전략폭격기 등 핵 삼원체제(Nuclear Triad)가 구축되기 이전의 구시대적 무기체계로 주로 1950-60년대 개발된 개념의 핵무기이다. 전술핵은 항공기 투하 폭탄, 단거리 탄도미사일, 야포 포탄, 핵 배낭 및 지뢰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생존성과 효율성이 낮지만 미국은 해외 현지에서 즉각적인 핵 공격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술핵을 운용했다. 그러나 핵 3원체제의 구축으로 미국은 원거리 핵 투사능력과 함께 2차 핵 보복능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고, 따라서 해외의 미군 주둔지역에서 전술핵을 대부분 철수했다. 미국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핵 3원체제로 한반도에 대해 충분히 핵 확장억제력을 제공할 수 있다. 현대전에서 전술핵은 효용가치가 소멸된 구 시대적 무기체계로 전략적 의미가 거의 없다.     전술핵의 재반입으로 발생할 부작용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술핵의 재반입과 동시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한반도비핵화원칙은 파기되며, 북한의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아울러 전술핵이 배치된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의 잠재적인 핵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자체의 ‘핵 카드’ 즉 핵 주권의 활용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되 북한의 핵무기가 실전배치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조건부 자위적 핵무장’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현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유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적으로 동맹에만 의지했던 국가들이 어떠한 어려움에 처했는지는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1991년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된 전술핵의 철수를 결정한 것은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국제질서변화의 결과였지 한국의 안보상황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도출했지만 이때부터 북한은 핵개발을 본격화했으며, 결국 오늘의 핵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김정은이 고통스러워할 수단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권력유지를 위한 생존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핵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할수록 김정은 자신이 고통스러워 지며, 권력과 정권이 불안정해진다는 점을 깨우쳐 주어야한다. 이제 대북제재를 넘어 김정은에 대한 직접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할 시점이다.   김정은이 추구하는 핵무기는 한반도 전체를 핵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수 있는 동시에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을 일거에 무용지물화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이다. 우리에게는 그 위협이 실제화되기 전에 미리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명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무기위협의 실제화 이전에 이를 사전에 제거할 의지와 능력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제거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참수작전이다.     지금의 참수작전은 ‘도발을 하면’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제 이 등식을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려 할 경우’로 바꾸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한 이후에는 재래식무기로 이를 억제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핵무기의 특성상 실제도발을 한다면 우리에게 참수작전을 시도할 기회조차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핵무기의 배치를 실제화하려 할 경우 자신과 정권의 안녕이 보장되지 않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정은을 타겟으로 하는 맞춤형 대응전략을 공개 비공개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발전켜나가야 한다. 아울러 김정은의 측근들에게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동반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렛대로 강경한 대남·대외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내부로부터의 저항과 제동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과 북한을 분리하는 접근 전략을 구사해야한다. 어느 경우에도 북한의 주민은 같은 한 민족이자 통일을 위한 우리의 동반자라는 점에서 김정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대화해야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북핵위기의 심각성과 핵무기 보유시도의 파국적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스스로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설득해야한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그리고 중동의 재스민 혁명 모두 내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련 동유럽의 체제전환에 있어서 외부세계의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재스민혁명에서도 SNS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모두 독재정권의 변화에 있어서 진실을 알리고 전파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제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민족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시장화와 민주화만이 북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을 북한주민들에게 전해야 한다. 4·19와 5·18, 87년 민주화 투쟁의 경험과 의미를 전해야 하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경우 대통령도 탄핵하는 우리의 저력을 전수해주어야 한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 택시운전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때문이다. 김정은정권이 끝내 기대를 저버린다면 우리가 택시운전사가 되어 북한의 동포들에게 북핵문제의 위험성과 진실을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안하는 대화와 협력을 무시한다면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며, 북한에게 일방적인 비핵화 협상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경고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의 행보를 여기에서 막지 못한다면 북핵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우리가 ‘운전석’에서 해야할 일을 진정으로 고민할 때이다.

김태산

요즘 이 나라에는 학부모들이 잠을 못들게 하는 참혹한 학생들의 폭행사건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가해자 학생의 처벌수위를 높이자는 반향들이 나온다.   물론 옳다. 범죄자의 처벌은 인정에 머무르지 말고 강해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또 다른, 더 큰 범죄를 생산해 내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 걱정이 없고, 세계의 앞장에 서서 나아가는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국가의 위상을 흐리게 하는 크고 작은 범죄가 줄지 않는다. 그 원인은 바로 사형제도를 없애고 인권이란 단어를 저희들의 정치 목적에 역이용하는 자들 때문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수준은 선진국 국민들의 수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데 사형제도 부터 없앤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 가해자의 인권만 존재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인권타령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학생들 사건 문제이다. 이번의 여중생 폭행사건들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이 나라 어른들부터 책임을 져야할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 학교들에서 일어나는 이런 무서운 사건들은 단순히 해당 학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계와 정부가 책임을 지고 풀어야 할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사건은 연이어서 터져 나오는데 어느 인간 하나도 책임을 지는 자가 없다. 모든 것이 가해학생들 만의 잘못이란다. 참으로 답답하다. 응당 학교 교장은 물론이고 해당 교육감, 정부의 교육계 수장들도 옷을 벗기고 법적 책임을 물어서 수갑을 채워야 마땅한 일이다.   놀러가다가 사고를 당해서 사망한 학생들의 책임을 물어서 현직 대통령 까지 탄핵시켜 감옥에 가둔 대한민국 국회와 새로운 정부는 왜 이번의 학생 사건은 책임은 지려고 안하는가? 더우기 3-4년간 나라의 중심에 천막을 치고 끝까지 싸우고 대통령도 탄핵시킨 이 나라의 국민들은 왜 이번 사건에는 입을 다물고 모른체 하는가 말이다. 누구의 자식들만 귀하고 또 누구의 자식들은 귀하지 않다는 뜻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이런 이중 잣대는 어느 인간이 말들었는가 말이다.   학교는 나라의 미래를 키우는 곳이라고 말들만 하면서 학교와 학생들을 책임진 자들은 지금까지 뭐했는가? 단순히 철밥통만 지키는 자들인가? 지금 학교의 꼴들을 보라.   학생 교육의 무기인 교원들의 교권을 몽땅 빼앗아 버렸기 때문에 신성한 학교에서 선생들이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수난의 장소로 변해 버렸다. 인간을 사랑하는 정신을 심어주는 인성교육과 어른과 사회를 존중하는 도덕교육은 눈을 아무리 비비고 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온 나라의 구석구석은 학생들의 흡연장으로 변해버렸고, 말리는 어른들은 매를 맞을가봐 무서워서 못본 척 해야 하는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 과연 학생들 자신들인가? 아니다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이 교육계를 점령하고 벌인 하나의 반국가적인 교육혁명의 후과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키워낸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자라나서 나라의 정권마저도 저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으로 바꿔 버렸다. 이 나라를 세계가 부러워할 만치 잘사는 나라로 만든 어른들은 이제는 “아무 쓸모도 없는 불편한 구닥다리” 존재의 대접만 받고 있으며 이 나라를 구해낸 민족의 영웅들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다.   한반도에는 “손톱눈 곪는 줄은 알아도 염통이 썪는 줄은 모른다” 라는 어리석은 자들을 일갈하는 좋은 속담이 있다. 이 나라의 어른들과 정치가들과 정부가 꼭 그 꼴이다. 역적들이 이 나라의 교육계를 뒤흔들어서 나라의 근간이 무너져 가고 있는데도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과 국록을 먹는 높은 간부들은 이것을 알려고도 안한다.   작은 집도 무너지려면 오래전부터 징조들이 나타나는 법이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가들이고 대통령이라면 이번 여중생 폭행 사건의 겉만 보지 말고 본질부터 잘 살펴서 제발 이 나라의 교육계에 깊이 박힌 잡벌례들을 청소해버리고 후대교육정책을 마땅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김태산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들을 섬기지 말라.”   성당이나 교회에 가본 사람이라면 교인이나 신도로서 지켜야할 10계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하늘과 부처를 믿는다고 목사, 신부, 장로, 전도사, 스님 등등의 교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공연히 “붉은 마귀”의 우상을 섬기며 그 마귀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적지 않기에 욕을 해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하나님을 섬기면서 점 집이나 찾아다니고 제사 같은 것이나 주관을 한다면야 미친 자라고 혼자 생각을 하면 될 일이겠는데, 이 대한민국에서 2중 생활을 하는 교직자들은 붉은 공산마귀를 섬기면서 하는 짓거리 마다 꼭 대중을 휘동해가지고 나라를 망하게 할 역적질들만을 골라서 하기에 욕을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자들은 공산마귀를 섬기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행동들을 더 크게 하기위하여 또 자기의 정체를 숨기려는 목적으로 목사나 신부, 스님의 가면을 뒤집어썼다는 결론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북한 2천만 백성들만큼 “붉은 공산마귀”를 충성으로 섬긴 사람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섬기던 수령이라는 “우상님”은 자기에게 충성하면 영생하고 배신하면 쓸모없는 고깃덩이가 된다고 설교를 끊임없이 해댄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그 공산 마귀를 대를 이어가며 가정도, 목숨도 다 바쳐서 지키고 믿고 따랐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영생하기는 고사하고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죽고, 가족들은 뿔뿔이 갈라지고, 자식들은 되놈들에게 팔려가고, 그래서 나도 고향 떠나 타향살이 10년이 넘었다.   한국의 한심한 인간들아 믿을 것을 믿고, 섬길 것을 섬겨야 할 것 아닌가?   공산 마귀들 때문에 탈북자들이 3만이 넘게 이 나라에 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척하고 일부 목사라는 인간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바친 돈 긁어가지고는 붉은 마귀를 찾아가서 절하며 바치고 돌아와서는 “북한에도 가정교회가 있다”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을 감싸주는 헛소리나 줴치고... 신부라는 자들이 평신도를 휘동해가지고 나라의 군사기지 건설 반대 데모나 다니고.. 주일 예배와 미사에서는 교인들 앞에서는 공산마귀를 찬양하고 자기나라 정부를 반대하도록 부추기며 나라를 마귀에게 바치려고 별의별 악착한 짓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스님이란 자들도 변질되어 마귀를 섬기며 불당을 반국가 범죄자들의 은닉처로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이렇게 목사, 신부, 스님의 가면을 쓰고 역적 짓을 하는 자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서 그들을 막아낼 방법도, 힘도, 교단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한국의 종교계가 중심을 잃고 통째로 흔들린다.   내가 대학 시절에 김일성이 대남담당 김중린 비서에게 내린 교시내용,  “... 남조선 젊은이들을 맨날 아스팔트에만 내몰지 말고 똑똑한 애들을 선발하여 공부를 시키라. 그렇게 키워서 교육계는 물론 정계와 법조계, 언론계에 계속 박아 넣으라. 특히 종교계를 장악 하는게 매우 중요해. 교회에는 성경책 하나만 끼고 가면 누구도 의심을 안 해. 그렇게 해서 남조선의 수많은 교인들을 우리 쪽으로 포섭해야 돼. 통일은 가까이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준비를 해야 되...”를 전달 받았던 생각이 난다.   사실 그 당시에는 “저런 식으로 해서 언제 남조선을 통일한단 말인가?” 하는 막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수십 년 후에 내가 정작 한국에 정착하여 이 나라의 현실을 보니 김일성이 정말 몸서리 칠 정도로 영악한 사람이었음을 매 순간,순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국민들과 정치가들만은 지금 자기들이 죽은 김일성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그 진실을 알려고도, 인정하려고조차 안 한다. 참 안타까울 정도로 어리석은 국민이고 한심한 정치가들이다.    그리고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인간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아무리 북한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다 해도 어찌 일 푼의 양심가책도 없이 자기나라를 배반하는 역적 짓을 서슴없이 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그 보다도 역적질을 하고도 살아남는 그 제도가 더 풀기 어려운 숙제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이후 자유민주주의라는 연막 속에서 정치, 군사, 사법,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반역세력들을 매우 빠르게, 매우 많이도 길러 냈다. 하늘을 믿는다는 자들이 붉은 마귀를 섬기고도 두렵지도 않은가? 이런 자들 때문이 이 나라가 이제는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역적질을 하겠으면 이제는 교직의 가면 즉 하늘의 가면을 벗으라.

김태산

북한이 강도 높은 핵실험을 또 했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규탄을 해봐야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식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저들의 앞선에서 미국을 견제 해주니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안타까운 건 미국과 한국뿐 일 것 같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도 아니다. 우선 미국이 안타까울 일도 그리 없다. 미국은 정은이가 “괌을 때린다.”, “미본토를 때린다.” 하고 떠들지만 정작 미국을 때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정은이? 바보 아니다. 가만히 있는 미국을 핵미사일 몇 기로 때려봐야 미국을 망하게 할 수도 없거니와 그 후과는 자기가 죽는 길이라는 걸 잘 안다. 정은이의 모든 행보는 오직 미군을 남한에서 내보내기위한 수법이다. 미국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바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또 이번에는 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무조건 때린다고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해본다. 정은이가 미국을 때리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아는 미국이 굳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없는 작은 북한을 때려서 쓸데없이 중국과 소련을 긴장시키려고는 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한국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북한의 핵 때문에 한국도 전혀 바쁠 것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현 정부는 “햇볕정책”의 뒤를 이은 정부로서 “고려민주 연방제” 를 지지하는 것만큼 북한이 핵을 완성하든, 미사일을 발사하든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   그저 뭔가 하는 척 하면서 국민의 눈을 가리고 언론은 장악하고, 정적들만 제거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미군이 나가든가 아니면 “북미 평화협정”이라도 체결이 되면 자연스럽게 “고려연방제”를 실시하고... 얼마 후에 “우리민족끼리”를 부르짖으면서 “남북적화통일”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핵실험으로 달라지고 빨라지는 것은 오직 하나 “적화통일”뿐이다.   한 가지 명백히 알아야 할 것은 “고려연방제”가 실시되어도 “적화통일”은 안 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바보가 아니면 역적이다.    아마도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이 되면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를 독재자라며 반대하던 사람들의 인식만큼은 확 바뀔 것이다. “적화통일”이 되어도 반독재 데모를 할 수 있다고 보는 바보들과 무식한 국민들이 북한의 진짜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에 도취한 무식한 남한의 국민들은 그 때에 가서야 자기들 손으로 어떤 무서운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남기며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나는 북한독재를 제거하고 한반도를 구원하려면 남한에 제2의 이승만, 박정희가, 미국에는 제2의 맥아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나라를 지킬 어떤 방법도, 정치 세력도 이 남한 땅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제2의 맥아더가 되기를 바래본다.

김태산

뉴스를 보니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쪽에서 몇몇 진보적이라는 단체들과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서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 없는 2차 송환과 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행사를 주관한 단체들이야 이런 행사를 벌여서 보안법을 철폐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느라고 벌인 일이겠지만, 거기에 따라 나가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비전향장기수 어르신들의 행동이 참으로 딱하기에 내 생각을 글로 몇 자 써본다   1993년3월 교도소에서 34년간을 복역하면서도 끝내 전향을 하지 않았던 유명한 이인모씨가 처음으로 송환되어갔다. 이인모에 대한 북한의 배려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대단했다.   평 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최고급 단독 주택은 물론 북한 최고의 김일성 훈장과 공화국 영웅칭호도 수여하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라 부르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산 모범으로 “민족과 운명” 이라는 예술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내세워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양강도 파발리 소학교를 “이인모 소학교”로 명명해주었고 김씨 가문과 동등하게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받는 것은 물론 미국에 까지 보내서 신병치료를 해주었다.   이인모 역시 비전향 장기수답게 당과 수령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수령에게 충성할 것을 독려하는 글들과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장문의 글들을 연속 써냈다. 그가 쓰는 글들은 노동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곤 했다. 40여 년간을 적들의 감옥에서 꿋꿋하게 지켜왔던 그의 충성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전체 간부들과 국민들은 이인모 따라 배우기에 끌려 다니느라고 적지 않은 땀을 뺐다.   수령에 대한 충성심 문제를 놓고는 중앙당의 간부들에게도 서슴없이 일갈을 하는 이인모 앞에 높은 간부들조차 마주서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김정일은 이인모가 가보고 싶은 곳은 모두 가보도록 막강한 권한도 주었다.   거침없는 충성의 일로를 달려 나가던 이인모가 자기 일생의 반을 빼앗아간 감옥생활이 떠올랐던지 어느날 갑자기 북한의 “교화소”를 한번 보겠다고 하였다. “이인모 동지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 주라.” 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었던지라 간부들은 그를 데리고 사리원시에 있는 “국제교화소”로 갔다.   사리원에는 “7호교화소”와 “국제교화소”가 있다. 7호교화소는 일반교화소로서 시설과 대우가 너무 열악하여 절대로 공개를 못한다. 그러나 “국제교화소”는 죄를 지은 외국인들과 항일투사가족들, 그리고 비서국 대상 간부가족들만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나름대로 시설도 괜찮고 죄수들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 인권단체들이 교화소를 보자고 찾아오면 서슴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이인모는 “국제교화소”를 돌아보는 장시간동안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의 말도 없다. “사람 못 살 남조선”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인모가 아마도 너무 감동을 먹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북한 간부들은 참관을 끝내고 마당에 나오자 “이인모 동지 돌아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자신에 넘쳐 물었다.  한참동안 먼 곳을 응시하던 이인모는 드디어 북한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리는 핵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나는 이런 곳이었다면 34년은 고사하고 3년도 견디어내지 못 했을거야.” !!! ???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이인모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마침내 그는 간다온다 소리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이인모의 교화소 행적과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 되었다. 김정일은 분노하여 말했다.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 돼” ...   그 때부터 이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았고 마침내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버리고 충성의 길을 택하였던 공산주의자에게 차려진 쓸쓸한 종말이었다.   그 후부터 이인모에 대한 선전은 남한의 언론매체들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김정일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는 그의 시신을 애국열사릉에 안치시킴으로서 “광폭정치”의 선전효과를 지금도 톡톡히 보고 있다.   물론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2000년 9월에 송환된 63명의 장기수들은 선발된 선전용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유란 없고 평양시민들과 같이 600그램의 쌀 배급과 배정되는 몇 가지 생활필수품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헤어졌던 가족들에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나 남한에서 전향을 했던 분들은 아무리 강압에 못 이겨 전향을 했다고 해도 북한 땅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찬밥 신세가 된다.   ......... 나는 교도소란 곳을 가보지 못하였다. 도대체 남과 북의 교도소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기에 그렇게도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던 이인모가 경악을 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니 그보다도 사실은 북한에서 살 때에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김정일의 “판결문”과 같은 말...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돼” 가 이 남한에 와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니까 더 심금을 울린다.   자루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듯이 자유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는 독재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김정일 자신이 직접 밝혀 주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변절도 하지 않았고 북한에 충성을 했으니 돌아간다면 아마도 특별대우를 해 줄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자유를 버리는 그 순간부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후회를 몰아 올 것이다. 북한이란 나라를 국가전복 행위를 한 간첩도 살려준 자유대한민국처럼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이 부모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재를 뿌리자고 이글을 쓴 것이 아니다. 두 제도를 살아본 사람으로서 북한의 감춰진 진실을 권해 드리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자유를 버리면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이 된다.”는 것이 내가 찾은 진리다.

김태산

남북한 두 제도를 살아본 사람으로서 남한의 현실이 점차 북한을 닮아간다고 글 한편을 썼더니 극력 부정하는 분들이 적지를 않다. 물론 나는 북한에서 살던 사람으로서 부족한 점도 많고 글도 잘 못쓴다. 그러나 내가 가진 지식능력 안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남-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적을 뿐이니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남한 분들은 탈북자들 앞에서 “대한민국은 법치국가” 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같이 무식한 자는 “법치국가”라는 개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남한의 법률활동은 독재국가인 북한과 같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도 법률은 존재 한다, 그러나 법위에 “조선노동당”이 존재하고 또 그 노동당위에 “수령”이라는 독재자가 군림한다. 그래서 북한의 법은 겉으로는 “국가와 인민대중을 위한 법이다” 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정적을 제거하기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즉 독제체제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제거하는데서 북한의 법은 칼이 되고 북한의 법기관들과 법 일꾼들은 아무런 준법의식이나 법적인 양심도 없이 오직 독재자의 졸개로서 “법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들”일 뿐이다.   물론 반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계도 북한을 닮아서 법이 정적제거에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말해서 법은 만민에게 평등해야한다는 원칙을 벗어나서 특정세력에게만 유리하고 상대세력은 무조건 죽이기 위한 불공평해 보이는 법정 판결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가?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북한에서는 노동당과 수령이라는 존재가 법위에 군림하여 법을 조종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법계가 하는 행태들을 보면 분명히 그 어떤 막강한 배후세력의 컨트롤을 받는 것은 분명한데 그 배후세력의 실체를 잘 모르겠다. 적지 않은 변호인들과 판검사들, 즉 대한민국의 법조계가 하는 행태들을 종합해 보면 애국, 애족과는 관계없이 거의 다가 대한민국의 어느 정치세력의 이익과 함께 북한의 독재정부가 바라고 좋아할 일들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친북 종북적인 성향을 가진 단체나 개인들의 이익을 위한 판결은 물론, 북한을 돕는 결과가 나온다. 대한민국의 사법계가 뒤에 숨은 고첩들을 통해서 북한의 지령을 받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정답은 5천만 국민들이 함께 찾아야할 숙제이다. 하기야 교육계와 노동계, 종교계, 정치계, 언론 모두 북한을 닮아가는 판국에 법조계라고 해서 아니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리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애국자라고 자처하는 인간들 속에 “악법도 법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는 무식하고도 한심한 논리를 펴는 자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애국자라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는 허황되고 속빈 소리만 하면서 파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깊이깊이 헤아려 보아야 할 때이다.

박승준

▲ 선즈화 상하이 화동사범대 교수선즈화(沈志華·67) 교수는 상하이 화동사범대 소속의 저명 역사학자다. 주로 중국과 소련, 중국과 북한의 현대사를 연구해왔다. 중국 내에서는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년에 들어서는 주로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갈등사를 연구해왔다. 그는 1999년에 ‘중·소 동맹과 조선전쟁 연구’, 2009년에는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연구’, 2015년에 ‘1948~1960년 중국 속의 소련 전문가들’이란 책을 출판했다.      선즈화 교수가 8월 초 중국과 북한의 1950년대 갈등을 다룬 ‘최후의 천조(天朝): 마오쩌둥, 김일성과 1945~1976년 중·조(中朝) 관계’란 책을 홍콩 중문대학출판부에서 냈다. 중국 내 사정에 밝은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중·조 관계의 역사적 진상을 복원해놓았다’는 제목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       “당대 중국과 조선 관계는 조선전쟁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온 ‘천조(天朝) 관계’, 다시 말해 천자국과 주변국가 관계에 영향을 받았으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는 같은 사회주의 진영 내에 속해 있으면서 소국을 이끄는 대국으로서 중국이 조선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원칙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는 크게 보아 중국과 소련 사이의 사회주의 주도권 다툼이 배경에 작용하고 있으며 “마오쩌둥은 폴란드와 헝가리 사태를 겪으면서 소련이 수정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원래는 아시아의 사회주의 주도국으로서의 지위만 확보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전 세계의 사회주의 주도국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중국과 북한 관계에 영향을 미쳐 불간섭주의 색깔이 짙어지게 됐다”고 아주주간은 설명했다.      선즈화 교수는 이 책의 출판과 관련 아주주간과 인터뷰를 갖고 “1956년 8월 김일성이 친중 노선의 연안파(延安派)를 숙청할 때 중국은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했으며 최근 김정은이 친중 노선의 장성택 일파를 숙청할 때도 중국은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는데 역사적으로 북한 내부의 친중파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시대에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의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소련이 폴란드와 헝가리에 무력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에 대해 내정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는 바람에 1956년 북한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할 때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선즈화 교수는 “1956년 8월의 연안파 숙청과 최근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은 서로 다른 사건”이라며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중국의 지도자는 마오쩌둥이었지만,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 때 중국 지도자는 현 당 총서기 시진핑으로,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 때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인데 아무 대처도 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 지도자들이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즈화 교수는 자신의 저서 ‘최후의 천조: 마오쩌둥, 김일성과 1945~1976년 중·조 관계’에서 1950년 6월 25일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면서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주더(朱德)의 명령으로 국민당 최대의 저항세력인 대만 지역에 대한 수복을 목표로 수십만의 군사들을 대만섬 건너편에 집결해 두고 있었다. 당시 대만섬으로 패퇴한 장제스(蔣介石)는 죽음을 각오하고 공산당군의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보고를 받고 장제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측근들에게 했다. “이는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증거다.” 장제스는 손에 들고 있던 닭수프 그릇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조선이 마오에게 참전을 요청하건 말건 마오는 참전할 것이 분명하다.… 대륙의 조선전쟁 참전은 곧바로 우리를 공격할 여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리더로 군림하려 하는 마오쩌둥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있던 장제스는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중국공산당의 참전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19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당 대회를 거치면서 김일성은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 작업을 시작해 전국 각지에 기념비와 초상화를 세우고 영화와 가곡, 저작 등을 통해 자신을 미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안파의 핵심으로, 한국전쟁 초기에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면서 마오쩌둥과 김일성 사이를 연결했던 이상조는 “조선 인민 혁명 박물관이 김일성의 개인 역사박물관으로 변했다”는 보고를 베이징으로 했고, 이에 대응해서 김일성은 이상조와 또 다른 연안파의 거두로 황푸군관학교 출신인 최용건을 ‘반당집단’으로 규정해 숙청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잡은 직후인 1978년 9월 덩샤오핑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은 김일성이 개인숭배를 위해 거대한 금빛 동상을 세워놓은 것을 보고 “이 동상 세우는 데 우리가 원조한 인민폐가 얼마나 들어갔을까”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나중에 귀국해서 “더 이상 조선에 대한 원조를 늘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는 일화도 선즈화 교수의 ‘최후의 천조’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김일성의 개인숭배 조장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못했으며, 북한은 경제적으로도 중국이 주문하는 개혁 작업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중국을 대신해서 미국과 싸우는 역할을 해주면 중국은 꼼짝 못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던 김일성이 북한의 가장 주요한 전략을 반미(反美)로 표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선즈화 교수는 하고 있다. 선즈화 교수의 저서는 우리 외교와 통일 분야 당국자들이 꼭 읽어 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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