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흔

 2005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경기대회 때 방문했던 북한 응원단 모습. / 인천시청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익숙한 장면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긴장고조 후 대화와 화해의 손짓. 1993년 북한 핵문제가 공개적으로 불거진 이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돼온 장면이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이런 단순하고 뻔한 전술 하나로 북한은 남한과 국제사회를 통해 핵개발 시간벌기와 대북지원, 체제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챙겨왔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대화의 칼자루는 항상 북한이 쥐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북한이 원하는 날짜에, 북한이 원하는 장소에서, 북한이 원하는 사람과 만나는 회담을 반복했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통일부 장관과 적십자사 총재가 김정일의 압력에 해임되거나 교체된 사건도 있었다. 대화라고 할 수조차 없는 거의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모습과 저자세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에 극심한 반감과 함께 패배감에 젖었다.   퍼주기로 대변되는 햇볕정책이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그 많은 현금과 물자를 퍼주고도 좌파 정부는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 한번 요청하지 않고, 국군포로 문제,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 강제수용소 문제, 북한 내 인권탄압 문제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했다. 2003년 탈북한 김태산 전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은 “북한을 변하게 하려던 햇볕정책은 철저하게 북한에 역이용당한 정책이었다”며 “남한이 준 쌀은 군대와 노동당 간부들, 독재의 하수인들만 살찌웠을 뿐이며 그로 인하여 국민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또다시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하였다”고 햇볕정책을 결산했다.   2008년 소위 우파 정부가 들어섰지만,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본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7월 일어난 박왕자씨의 금강산 피살 사건을 계기로 부문별 한 대북 퍼주기를 중단했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만행 이후에도 김정일의 엄청난 달러 박스인 개성공단은 중단시키지 않았다.   이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핵개발을 멈추지 않자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경수를 두었지만, 그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개성공단 폐쇄도 그 본질은 우리가 선택한 카드가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선택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그전에도 개성공단 가동을 5개월이나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적이 있다. 개성공단은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항상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불편한 존재였다. 개성공단이 없어짐으로써 북한 주민이 받는 생활고 따위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남북 대화와 중단을 비롯한 한반도의 긴장조성과 화해분위기까지 오직 북한의 필요에 따라 관리되고 조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김정은 정권 교체시기 북한은 끊임없이 NLL을 도발하고 결국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벌여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북에 의해 조성된 의도적인 긴장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긴장국면을 이용해 북한은 내부 체제 결속을 다지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남으로부터는 현금과 물자를 얻어내기 위해 금강산 관광재개와 5·24 조치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이번에는 남한 정부에서 쉽게 응해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 군사 회담을 덜컥 제안했지만, 북한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너희는 아무 때나 부르면 쫓아 나올 상대이니 우리가 필요할 때 부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8개월을 지켜본 북한이 드디어 계산이 끝났는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섰다. 회담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주제로 상대를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될 성질의 것이었다면, 애당초 사태가 이 지경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를 동정하거나 이해할 이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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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존경하는 후배가 있다. 대학시절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3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공안기관은 그를 괴롭히기 위해 잡범들 방에 넣었다. 강간의 위험도 있었고 동상에 걸려 발이 썩는 등 많은 고통이 있었다. 석방이 되도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그를 받아주는 업체는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잠시 출판사를 하기도 했다. 가난과 병이 그를 따르기도 했다. 한쪽 신장이 약해지고 시력까지 없어져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그는 절망과 죽음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다.     그는 해외언론사의 현지 기자업무를 대행하다가 한겨레신문사가 생기면서 기자로 입사했다. 그는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세상을 보는데 균형을 잡고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한겨레신문의 주필을 마치고 나왔다. 이따금씩 사무실로 놀러오는 그에게서 여러 얘기를 들었다. 미국과 트럼프에 대해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그는 미국에 대해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미국의 정계 배경에 힘을 쓰는 몇 개의 그룹이 있어요. 군수산업을 장악한 그룹, 금융그룹, 석유 메이저 그룹 등이 있죠. 부시 대통령은 군수산업이 밀어주는 대통령이었어요. 전쟁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죠. 오바마는 뒤에 금융을 잡고 있는 그룹이 받쳐주고 있어요. 이 그룹들이 미는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정책이 달라지는 거예요. 미국은 대통령의 배경이 어떤 그룹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바뀔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6·25전쟁은 어떤 시각으로 해석해?”   내가 물었다.    “미국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몇 개가 있는 것 같아요. 세계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 있고 중도의 석유 메이저 그룹을 보호하기 위한 비즈니스 전쟁이 있고 그 외 종교적, 문화적 우월의식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보죠. 미국의 경우 2차대전이 끝나고 전쟁군인이 돌아오면서 미국경기가 침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미국경기를 살려준 게 한국전쟁이죠. 미 국방부가 예산을 올렸는데 대통령이 거부했다가 한국전쟁 때문에 네 배를 올린 국방비가 책정됐어요.”     “맥아더는 핵으로 만주까지 폭격하자고 미국 대통령에게 제의했는데 그건 어떻게 봐?”    “소련이 1949년 핵 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치고 들어갔을 거예요. 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가 모르지만 소련의 역할이 큰 면이 있어요. 전쟁에서 소련인이 3천만 명이 죽었어요. 대단한 희생이죠.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독일을 이기지 못했다면 미국의 승리도 없었을지 몰라요. 그렇게 승리를 하고 미국과 소련은 세계를 갈라먹게 된 거예요. 미국과 소련은 유럽도 만주도 갈라서 차지하고 싶었어요. 만주를 차지하지 못한 데는 모택동의 담판이 중요한 역할을 했죠.”    후배인 그의 머리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대화의 방향을 국내 문제 쪽으로 돌려서 물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통진당을 해산했는데 그건 어떻게 봐?”   “우리 사회에 어차피 좌파 쪽으로 뿌리를 깊게 박은 사람들이 있어요. 청계천의 빈민들을 데려다가 성남 벌판에 버려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잖아요? 좌파들이 있는 근본원인에는 그런 원죄들이 있는 겁니다.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이 잡고 누르니까 더 튀면서 주체사상파가 탄생하기도 했죠. 제가 보기에 통진당 해산은 무리가 있었어요. 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어요. 그렇게 되니까 권력 쪽이 급히 헌법재판소를 움직여 정당을 해산시켜 버린 면이 있죠. 그런 식으로 누르면 일본의 적군파 같이 앞으로 폭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통진당 대표였던 이정희 변호사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의견도 대변해주는 그런 소수정당이 필요하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변한 겁니다. 그 뒤에 주사파 골수들이 있었는데 꼭두각시 노릇을 한 면도 있어요.”     “그러면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   내가 물었다.    “내가 취재하러 북한에 몇 번 가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라고 하면 국민들을 보호하고 또 입에 밥이 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수백만을 굶겨죽이면 벌써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은 거죠. 김정일 체제로 세습할 때 그건 사회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고 반대의견을 낸 사람들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잖아요? 군사독재를 하는 봉건왕조국가로 지금 옛날의 전쟁같이 농성(籠城)체제에 있는 상황이죠. 평양을 중심으로 있는 소수의 봉건귀족을 제외한 나머지 인민들을 각성시켜야 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좌파 우파 정권하면서 말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노무현 대통령 보세요. 입으로는 좌파 같은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지만 시리아에도 파병을 하고 미국과 FTA협상도 하고 소고기도 들여오고 대통령이 되어서의 현실적인 행동은 달랐잖아요? 정권을 잡고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보고 타협을 해 나가야 하는 거죠. 이론적으로 대들 때하고 권한을 가지고 실제로 일할 때는 달라지는 겁니다.”    그에게서 또다른 의견들을 많이 들었다. 민주주의란 뭘까. 보통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하는 말들이 모여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다. 여러 가지 상반된 의견들이 서로 부딪치고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그런 사회가 민주사회가 아닐까. 여러 가지 농도의 다른 의견이라면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들어보는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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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포니

 나는 18개월 전부터 통역 담당자인 이유리씨와 함께 흥남철수작전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당시 피란민들을 만나왔다. 나는 그분들이 얼마나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를 알게 됐다. 또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사실적이면서도 격정적인 그들의 슬픈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90세 넘는 어르신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 헤어지는 그 순간과 그날들을 회상하면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당시 자신의 어머니께서 했던 말을 들려줬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한국에서조차 잊혀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삶은 인간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내가 인터뷰한 30여 명의 피란민 중 그 누구도 비통해하거나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그분들의 모습은 긍정적이며 용서하고 감사해 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다. 세상에 감사해 했던 것이다.      미군과 한국군에 감사    피란민들은 미군과 한국군이 그들을 마침내 살렸고 또 그들 덕분에 자신들이 자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데 대해 감사하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종종 현봉학 박사와 에드워드 포니 대령, 레너드 라루 선장, 제임스 도일 제독,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언급했다. 이 사람들은 대규모의 민간인 해상탈출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인물들이었다.    피란민들은 또 장진에서 흥남으로 가기 위해 ‘다른 방향에서 피란민들을 위해 싸웠던’ 미 해병대, 국군 장병들, 영국 왕실 특공대를 회상하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개마고원의 눈 덮인 산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비로소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의 용맹함이 없었더라면 탈출은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열띠게 설명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떠날 수 있게 허락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의 이타적인 행동 덕분에 그들이 살아남게 됐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뒤에 남은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고모와 삼촌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걱정은 지금껏 그들의 머릿속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가족들이 총살형이나 구금, 가혹한 노동 조건이나 기근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공포의 북한 체제에서 수십 년을 살아야만 했을 것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몇몇 피란민을 만나고 나서 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1950년 흥남의 겨울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해서도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피란민들과 100만명에 이르는 그들의 자손들을 보면서 ‘인간의 선함’을 알게 됐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취임연설에서 했던 여섯 마디(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는 사람들을 고결하고 용감한 결정으로 이끄는 본능과 믿음, 가르침에 대한 언급이라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대가  에드워드 포니 미 해병대 대령. 그의 아들과 손자 네드 포니(필자)도 미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3대 해병대 장교’를 기록했다.  피란민들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려 했다. 그들이 남한에 정착해서 성공하기 위해 직업을 갖고, 학교에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들려줬다.    그들은 남한으로 온 후 몇 달 혹은 몇 년간 지속됐던 격동의 시기에 거제도와 부산, 그리고 남해안의 다른 중소도시에서 어떻게 피란 생활을 보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발을 디딘 사람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자유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유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북한의 독재와 박해, 공포로부터 탈출한 사실을 기억했다.    흥남철수작전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손자인 나는 이 이야기에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 포니 대령은 이 작전을 맡아 그의 팀원과 함께 10만여 명의 군인과 35만 톤의 무기, 탄약과 보급품, 1만7500개의 차량과 10만명의 피란민을 미 해군 전함과 상선에 함께 수용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미국 군사(軍史) 전문가로 유명한 로이 애플먼(Roy Appleman)은 이 작전에 대해 “미국 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수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봉학 박사와의 만남  네드 포니는 1998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소재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후원으로 한국을 3주 동안 여행하며 역사와 문화를 공부했는데 그에게 기회를 줬던 사람이 바로 현봉학 박사다.  1998년 나는 미국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한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고교 역사교사였던 나는 한국과 한국전쟁에 대해, 더 나아가 흥남에서 나의 할아버지가 했던 일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나는 그 무렵 현봉학 박사를 만났다. 미국에 살던 현봉학 박사는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는 전쟁 중 나의 할아버지와 함께 흥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함흥 출신으로 흥남에서 16km가량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고, 1950년 미 제10군단 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에 의해 발탁, 미군 통역과 민사 업무를 담당했다고 했다.    현봉학 박사는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나의 할아버지와 함께 일했다고 했다. 그 이후 두 분의 우정은 계속됐고, 그 우정은 가족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현봉학 박사는 나의 할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포니는 전쟁 당시 같이 일했던 한국 사람들에게 강한 동료심을 보여주었다”며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포니도 이 나라를 사랑했다”고 했다.  ‘한국판 덩케르크’ 흥남철수작전은 미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수작전이었다. 피란민 10만명의 삶은 인간 회복력과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이 본격화되면서 현봉학 박사와 포니 대령은 당시 북한 피란민들을 반드시 구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현봉학 박사의 동향인이기도 한 수만 명의 북한 주민들은 살기 위해 흥남으로 달려왔다. 대부분의 미군 관계자는 그렇게 대규모의 시민을 군함에 태워 탈출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고 한다. 수많은 논의 끝에 현봉학 박사의 설득으로 미군은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현봉학 박사의 집념이 빛을 발한 것이다.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 그날은 철수작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미 10만명의 어른들과 아이들은 구출된 상태였다. 화물선과 기타 수많은 작은 배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 남한으로 떠났다. ‘한국판 덩케르크(Dunkirk)’는 이렇게 성공한 것이다.      1950년 12월, 선한 사람들의 용감한 행동  네드 포니(왼쪽에서 두 번째)와 현봉학 박사의 딸 ‘헬렌 현’과 ‘에스더 현’은 흥남철수 당시 배에서 태어난 ‘김치5’이경필(맨 왼쪽)씨로부터 2014년 12월 감사패를 받았다.  현봉학 박사를 알게 된 후 10년 동안, 나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포니 대령은 1965년 내가 두 살이었을 때 돌아가셨다. 현봉학 박사가 흥남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나의 할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현봉학 박사는 내가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고맙게도 내 제자들과 동료들은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특히 한승경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그는 내 가족과 나를 도와주고 있으며 그의 도움과 우정에 매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현재 현봉학 박사와 포니 대령은 전쟁 당시 흥남에서 보여준 용감한 행동에 대해 찬사를 받고 있다. 2005년 거제도에 흥남철수작전 기념비가 세워졌고, 2010년에는 한국군 해병대가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포니 대령의 업적을 기리고자 포항 해병대 사단 안에 ‘포니 길(Forney Road)’이라는 도로를 만들었다.    현봉학 박사는 200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에 그의 동상이 들어섰다.    나는 현봉학 박사와 포니 대령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흥남철수작전의 진짜 ‘주연’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통해 수많은 영웅이 탄생하지만 엄청난 무력 충돌에 의해 얼마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수많은 피란민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 영웅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흥남철수작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때의 군인들과 피란민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백 년 전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선한 사람이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악(惡)의 승리만 있을 뿐이다”고 했다. 어둡고 차가웠던 1950년의 12월, 선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악의 승리를 막는 결정적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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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귀순병 당시 상황 재현 그래픽. 사진=TV조선 영상 캡처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을 통해 북측에 있던 경계병이 남측으로 탈북했다. 이 과정에서 북측이 남을 향해 달아나는 군인에게 총질을 했다. 여러 보도를 통해 북측은 약 40여발을 발사했고, 이 중 약 4~5발 가량이 탈북 군인의 몸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북한 귀순병사는 국내에서 치료 중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설명하는 국방부와 언론의 내용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럿 나온다. 이번 사건은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무력도발사건이자 총기가 사용된 최초의 사건이다. 특히 남북한 모두 비무장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공동구역 내에서 북한이 무려 40여발의 총질을 한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권총뿐 아니라, AK-47과 같은 돌격소총까지도 북한은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이것은 북한측의 단순 무장을 넘어선 중무장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도끼 만행사건도 그 사건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도끼를 범행의 도구로 사용한 사건이다. 당시 북한측은 총기가 없는 비무장상태로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UN)과 작업에 참여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미군이 가지치기를 지속하자 북한측은 현장에서 가지치기에 사용하던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했다. 살인에 사용된 무기가 도끼인 점은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공동경비구역의 상황을 대변해준다. 도끼만행 사건 직후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 “미친 개(북한)는 몽둥이가 약이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라”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북한의 행위에 대해 미군과 우리군은 즉각 데프콘 3를 발동하고 북한의 행동을 규탄했다. 이후 한국과 미군은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에 돌입, 미국 전략무기인 F-111과 F-4 전폭기, B-52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미군의 작전을 도와 우리 공군의 F-5와 F-4를 출격시켜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엄호해줬다. 이후 북한측은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김일성이 직접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유감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 폴 버니언 작전은 일단락됐다.   이번 사건이 북한 병사가 귀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앞선 도끼만행사건처럼 직접적인 위해가 없다는 점을 두고 여론의 해석이 분분하다. 일반 여론에서 나오는 주장을 종합하면 크게 5가지다. 1. 북한측이 발사한 총알은 남측 경계선을 넘어왔나. 2. 북한측이 남북한 경계선을 넘었나. 3. 북한측이 직접 우리측을 공격할 의도가 있었나. 4. 우리측은 귀순병의 탈출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나. 5. 정부의 대응 방안   첫째, 북한측의 총알이 남측 경계선을 넘어왔나? 북한은 무조건 남측향해서도 발포하라는 지침 있어 귀순병사는 탈출과정에서 지프차량을 타고 남측경계선 지역으로 달려왔다. 달려오다가 경계선을 불과 10미터 남짓 남겨두고 차량의 바퀴가 배수로에 빠졌다. 즉 차량으로 탈출하려다가 마지막에 차량이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귀순병은 차에서 내려 남측을 향해 달렸고, 총을 맞고 경계선을 지나 남측내 50미터 지점에서 쓰려졌다. 남측 방향으로 달린 병사의 후미에서 총을 발사했기 때문에 총알의 방향도 귀순병과 같은 남쪽이다. 정황상 총알이 남측으로, 또 남측으로 넘어왔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 한 종편방송에서 귀순병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중 “북한측 경계병들에게는 남쪽을 향해 도망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해당 사람이 남측을 넘어가더라도 반드시 사살하라”는 지침이 하달되어 있다고 했다. 안 소장은 과거 남북이 대치하는 휴전선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인물이다. 즉 이 말은 북한이 남측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이 귀순병사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우리측 군인 2명정도가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여, 귀순병을 구출했다고 했다. 포복으로 다가갔다는 사실 자체가 남측 진영에 대한 사격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다. 북한이 남측을 향해 총질을 해댄 것은 북한의 여러 과거 도발과 마찬가지로 남측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자 도발이다. 특히 유엔사 관할지역에서 남측을 향한 총질은 한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유엔의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다.   둘째, 북한군이 남측 경계선을 넘었나? 영상 확인한 군 내부자의 증언 귀순병 사건이 있은 직후 국방부는 관련 CCTV 영상과 TOD 열감지장비로 촬영한 영상 등을 곧장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영상공개를 연기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영상에서 북한군이 우리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면 굳이 국방부가 유엔사를 설득하면서까지 영상을 연기할 이유가 없다”며 공개연기 결정에 대해 국방부를 질타했다. 귀순병 영상을 두고 KBS가 해당 영상을 직접 확인했다는 군 내부자를 통해 영상안의 내용을 말하기도 했다.   해당 군 내부자에 따르면, “북한 경계병이 귀순병을 따라오면서 사격을 하는데 집중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명이 추격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측 경계선을 넘어까지 따라 들어왔고, 이후 자신이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서 다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군 내부자의 말대로라면, 영상 안에서 북한군이 우리측 진영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 부분 때문에 국방부가 영상 공개를 미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북측이 발포한 총알뿐 아니라 북한군이 물리적으로 우리측 진영을 넘어오기까지 했기때문에 북한의 행동은 분명 정전협정 위반이며,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로 간주된다.    귀순병 상황 그래픽. 사진=채널A 영상 캡처 셋째, 북한이 우리군을 공격할 의도가 있었나? 구출(救出)과 포복의 의미도 모르는 국방부   언론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남측으로 총질을 했어도 우리군을 조준할 의도는 없었다며 북을 두둔하고 있다. 이 질문은 질문부터가 그 의미가 잘못됐다. 남측을 넘어 총알을 발사한 마당에 북한이 우리군을 공격할 의도를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연평도 포격도발을 한 북한이 포를 연평도를 향해 쏘았어도, 우리군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도 성립되기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대를 향해 당신이 내 목숨을 위협해도 당신 마음은 안 그렇지 않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북한이 쏜 수십발의 총알이 날아오는 동안 총을 발포한 북한군을 일일이 찾아가 “지금 누구한테 쏘는 거냐? 설마 지금 우리군을 보고 쏘는 것은 아니지?”라고 묻는 꼴이다. 빗발치는 총알의 발사 방향과 발사한 사람의 마음을 읽고 대응하는 군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휴전상태에서는 실수로 발포한 총성 한발에도 즉각 공격태세에 돌입하는 것이 군이다. 본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의 심정과 의도를 묻는 태도는 안일한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대변해 준다. 그리고 이미 우리측 진영으로 넘어온 귀순병을 포복으로 다가가서 구출했다는 상황 자체에서부터 우리 군은 앞선 40여발의 총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 총알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포복으로 다가간 것 자체가 군으로서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 진영에 대한 확고한 대비태세와 완벽한 임전무퇴(臨戰無退) 정신을 새기고 있는 군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 땅의 안보를 최전방에서 지키는 우리 군이 귀순병을 포복으로 구출한 것은 여론의 질타를 받을 일이다. 이 말은 곧 귀순병이 굳이 목숨을 걸고 경계선을 넘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해당 귀순병이 북측 땅에 있을때와 남측 땅에 있을때와 다른 것이 없기때문이다. 적진에 쓰러진 우리 군을 구하러 갈 때 사용하는 것이 포복이다. 그런데 현재 언론에서는 오히려 우리군이 잘 구조했다는 칭찬을 하고 있으며, 누가 먼저 구출했냐에만 왈가왈부하고 있다. “구출”이라는 표현조차 부끄럽다. 제대로 된 조치였다면, 우리군도 총기로 무장하고 일부에서는 혹시모를 추가교전에 대비해 경계엄호를 하고, 걸어가서 우리 진영에 쓰러진 귀순병을 부축해서 데려왔어야 한다.   구출(救出)이란 위험에 빠진 자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출이란 표현을 함으로써 우리 군은 우리 진영에 대한 위험요소부터 제거하지 못했음을 입증한 셈이다. 우리 군 스스로도 우리군 진영에 대한 위험을 제거하지 못했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군 스스로도 민망한 포복과 구출이 동원한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지금도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우리 군인들은 언제든 날아올지 모를 북한군의 총알이 두려워 항시 포복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는 우리집 안방에서조차 강도의 침입이 두려워 두리번 거리는 꼴이다. 이번 상황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북한군 앞에 우리군은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태다.   넷째, 북한 귀순병의 탈출과정 알고 있었나? 관측 장애물 필히 제거한 군의 전통 이 부분에 대해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CCTV 영상과 관련하여 잘 관측되지 않는 지역이 있다는 말을 했다. 또 TOD 열영상장비를 통해서 보고서야 귀순병이 쓰러져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판문점은 수풀이 우거진 곳이 아니며, 그 규모가 여의도만큼 큰 규모도 아니다. 그런데 이 지역을 관할하는 우리 군이 굳이 TOD 열영상장비까지 동원하고서야 귀순병이 쓰러져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지프차가 우리쪽을 향해 돌진하다 배수로에 빠지는 과정만 보더라도 과연 이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만한 사건일까. 이 과정이 조용하게 벌어졌을까? 또 40여발의 총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안 우리군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는 말인가? CCTV로 보이지 않는 지역이 있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차폐지역이 있다면 애당초 제거를 했어야 한다. 이미 도끼만행사건과 같은 일을 겪은 마당에 보이지 않는 지역을 방치했다는 말과 같다. 당시 도끼만행 사건도 우리군의 초소에서 북측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관측을 가로막는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그만큼 우리군이 관측에 애를 쓰는 지역이 공동경비구역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차폐지역을 방치했다면 이 역시 군의 안일한 대비태세를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부터 이 지역에서 관측 방해물은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판단하여 필히 제거하고 조치를 취하는 곳이다. 그런데 차폐지역이 있다는 말은 국방부의 영상공개 연기 등을 두고 미심쩍은 의심만을 증폭시킬뿐이다.   다섯째, 정부의 대응 방안 이번 사건은 엄중히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측을 향한 총질, 경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들어온 북한군 등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과거 도끼만행사건처럼 북한으로부터 유감표명 및 재발방지 등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당연한 우리측의 권리이자, 이번 북한의 행동은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앞둔 마당에 이런 부분이 남북간에 흐지부지 종결되어 버리면, 오히려 국제사회는 불안요소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방한을 꺼릴 이유가 커 보인다.   앞서 프랑스 대표단 등은 평창 대회 참여를 심사숙고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의 안보가 확실히 보장된다는 점을 이번 귀순병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 근해에는 미국의 항공모함이 3대나 들어온 마당이기 때문에 과거 도끼만행 사건때보다도 더 신속한 유사 폴 버니언 작전도 수행이 가능한 상태다. 귀순병 사건은 유엔사 관할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분명 한미동맹에 대한 도발의 대가를 확고히 알려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태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9월 1일 러·중 천연가스관 건설 공사 기공식에 참석해 가스관에 ‘시베리아의 힘’이라고 쓰고 있다./ 뉴시스북한과 관련이 된 현 정부의 대형 정책구상을 놓고 시비를 한번 해 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잘 돌아가던 원전을 폐기하고 러시아에서 부터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설치한단다. 내가 보기에는 현 정부에는 무식한 사람들만 모여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의 한국 정부가 꼭 그 격이다. 나의 눈에는 한-러 정부의 가스관 정책을 놓고 북한의 김정은이와 유치원 애들까지 뭐라고 비웃을지가 환히 보인다. 더도 말고 “놀고 있네” 라고 비웃을 것이다.   왜냐면 북한은 자기 영토나 영해를 통과하는 그 어떤 가스관 설치에 대하여 어떤 누구와도 심도 깊은 토의를 한 적도 없거니와 설사 수백억 달러를 던져준다고 해도 절대로 승인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북한 땅에 가스관을 설치하려면 반세기가 넘는 동안 공사를 해놓은 수백-수천 개의 크고 작은 군사용 터널들을 절대로 피할 수도 없거니와, 전국의 수많은 군사기지와 지하 군수공장들의 비밀을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마 가스관을 바다에 묻는다고 해도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공해상에 가스관을 묻는다면 말은 달라질 것이다.   둘째로 북한땅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세로 쭉 째고 가스관 매설 작업을 하려면 남한의 최신식 건설 장비들이 투입되고 보지도 못하던 최고의 자재들과 보조장비와 인력들과 건설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을 실은 수송차량들 수백 대가 매일 북한의 도로들을 휩쓸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남한의 각종 자동차 수십-수 백 대와 인원들, 때에 따라서는 헬기까지 북한 지역들을 휩쓸고 다니는 그 자체가 바로 김정은이가 제일 실어하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침투이자 대대적인 대북 선전인데 김일성 때부터 2중, 3중으로 쳐놓았던 모기장을 걷어내고 승인을 하겠는가?   북한을 방문한 여행자의 행동 하나도 흠집을 잡아서 투옥하고 고문하여 죽이는 판인데 2천만 국민들의 눈앞에서 매일 같이 벌이는 발전된 자본주의의에 대한 직관적인 선전을 과연 허락하겠는가 말이다.   셋째로 북한이 남한을 타격하기 제일 좋은 조건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남한의 모든 도시들이 가스화 되었다는 점이다. 즉 포탄 한발로 전 도시를 날려 보낼 수 있다고 장담을 하고 있는데 과연 화약처럼 위험한 가스관을 북한 땅의 시작부터 끝까지 통과시키려고 하겠는가?   넷째로 북한의 육지와 근접한 영해에는 바다 속 수중별장을 비롯하여 그 자체가 김씨 가문의 호화별장들과 군사시설로 뒤덮혔는데 과연 북한이 영해 가까이에서 가스관 설치작업을 승인하리라고 보는가? 절대로 아니다.   남한에서 좌파 계열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면 마치도 자신들이 북한 국민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이득이 될 문제들을 제안만 하면 북한의 독재자는 너무 좋아서 그냥 덥석 덥석 받아 물 것이라고 어리석은 착각들을 하고 있다. 독재자를 전혀 모르는 무식하고 단순한 인간들이다.   어려서부터 인류에게 필요한 공부는 안하고 북한의 서적들만 읽으며 아스팔트에 뒹굴어서 그렇게 무식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면 정치적인 야심만 꿈꾸지 말고 원리적이고 정상적인 생각들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명백히 말 하건대 한-러 가스관 설치 문제는 문재인 정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지 말고 응당 그 문제의 당사자인 북한과 먼저 심중하게 토론을 끝낸 후에 결정을 해도 하고, 러시아와 토론을 해도 했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본다. 이제 북한이 가스관 통과를 반대하면 추진하던 원전 폐기 결정은 어쩔 셈인가?   대한민국 정부는 부끄러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으면 대북 관련 문제에서만은 탈북자들 의견을 조금만이라도 들어보라.

김태산

27일 오후 북한 당국에 나포됐다 6일 만에 무사히 귀환한 경주 감포 선적 39t급 복어잡이 어선 '391 흥진호'가 강원 속초시 속초해양경찰서 부두에 입항하고 있다. / 뉴시스오늘은 여담 같은 이야기를 해본다.   북한이 경제난으로 한창 허덕이던 1999년 중반 어느 날 아침 출근시간이었다.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은하 무역지도국” 정문 바깥 마당에는 낯선 지프차 한 대가 정차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건장한 사나이들 서너 명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한창 출근하는 정무원들로 붐비는 정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9시가 지나자 정문은 인적이 끊기고 각 사무실들에서는 아침 조회 겸 독보를 하느라고 은하무역지도국 정문 안마당이 조용해졌다. 이때에 지프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나이들 세 명이 정문을 통과하여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가공수출 4무역관리국 사무실로 향하더니 조회준비를 한창 하고 있던 김영수 국장을 데리고 나와서는 지프차에 구겨 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4국장 김영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 나가서 해외의 무역회사들과 연간 수백만 달러어치의 대규모적인 피복임가공 수출계약들을 체결하고 돌아옴으로서 완전히 침체되어가던 북한의 피복임가공 수출계에서 혜성과 같은 존재로 떠오르며 중앙당 김경희 부장의 총애도 받던 능력자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중국에 나가서 면담을 하고 계약을 맺었던 그 무역회사들은 바로 남조선의 회사들이었던 것이다. 김영수 국장은 북한정권이 이제 얼마 못가서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앞으로 북한 정권 붕괴 후 해야 할 일들과 제기되는 문제들 까지 남조선 사람들과 합의를 비밀리에 맺었다 한다.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승승장구를 할 것만 같던 그에게는 어느날 그의 앞으로 갑자기 날아든 종이 한 장 때문에 지옥문이 열렸던 것이다. 어느 날 북한의 모든 무역회사들이 외국과 통하는 전화와 팩스를 종합적으로 감시하고 관장하는 “평양통신센터” 로 “대한민국 통일부 장과 강인덕”의 이름으로 된 팩스 한 장이 날아들어 왔다. 북한의 보위부 전체에 전무후무한 최대의 비상이 걸렸다.   팩스 내용인즉... “존경하는 김영수 국장님 ..귀하 앞.. 우리는 귀하와 한 약속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니 출하 날자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대한민국 통일부장관.” ...뭐 이러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위부는 김영수를 체포하였던 것이다.     나는 남한에 와서 조사를 받을 때에도 왜 남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동업자들을 죽게 만드냐?“고 말을 했으나 조사관들은 무덤덤한 태도였다.   나는 그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서야 남한에 북한 간첩들이 박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야 그 사건의 의문도 풀었다. 김영수 국장이 남한의 모 기관 기업들과 미래의 사업계약을 맺고 수많은 돈까지 받아 챙겼던 작전은 그렇게 허무하게도 김영수의 체포로 막을 내렸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부터다.    보위부에 잡혀간 김영수 국장은 빼도박도 못 할 증거 앞에서 할 수 없이 100% 실토를 했다. 남조선으로부터 받은 돈도 집안에 숨겼다는 자백을 받은 보위부는 증거를 찾기 위하여 영수의 집을 수차례 집중 수색 했으나 그들은 달러는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보위부는 자존심을 굽히고 영수 국장에게 돈을 집밖의 어디에 숨겼는가고 심문을 들이댔다.   그때에 영수국장은 웃으면서 자기하고 집에 같이 가야만 찾을 수가 있다고 했다한다.   보위부 성원들과 집에 도착한 영수 국장은 부엌에 있는 냉동고로 다가가서 냉동고의 문을 열더니 냉동된 고깃덩어리들을 꺼내서는 그것을 녹여보라고 했다.   과연 얼마 후에 그 고깃덩어리들 속에서는 수십만 달러가 나왔다. 그리고  영수 국장은  독재자가 보내는 길로 갔다.   오늘 이글을 쓰는 원인은 요즘에 “흥진호” 라는 배가 북한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그 배에는 제철도 아닌데 냉동된 복어들이 3.5톤씩이나 들어 있었다고 한다. 혹시 대한민국의 해당 조사 기관들이 다른 것은 다 조사를 하면서도 그 냉동 된 복어창고나 박스들을 무심하게 지나치지는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써보는 것이다.   통례적으로 북한군은 중국의 어선들을 잡으면 그들이 잡은 고기와는 물론 어구와 기름까지 다 뺏어내고 돌아갈 기름만 조금 주어서 쫓아낸다. 그런데 흥진호는 오히려 수많은 복어를 냉동까지 해서 보내준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하기사 세상이 다 된 세상인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야 입이나 아플 뿐 뭔 필요가 있겠냐 만은 늙은이가 그냥 심심풀이로 해보는 소리다.

김태산

보잘 것 없는 내가 그런 사람과 수준이 같다고는 볼 수가 없겠지만 같은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서 오늘은 쓰기 힘든 글을 한 번 써 본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냈다는 태영호씨가 31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 연구소'에서 “북한은 변화의 대상 일 뿐 파괴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좀 답답하고도 의심스러운 강연을 하였다고 한다.   즉 그의 말은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는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 이라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는 북한 국민들이 각성을 해서 자체로 북한을 변화시킬 때 까지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압박은 하되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때리지는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때가 몇 십 년 후가 되더라도 김정은 정권이 자체로 멸망 할 때까지 독재를 계속 연장해주자는 소리다. 나의 견해로는 태 전 공사가 '햇볕정책론' 자들의 입김을 맞았는지, 아니면 어디서 파견된 사람인지를 매우 분간하기 어렵다.   그는 강연회에서 북한을 때리지는 말고 변화를 시키되 그 방법으로는 북한에 외부정보를 대량적으로 유입하여서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외부정보 유입은 나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전직 외교관다운 입장에서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절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 첫째로 북한 정보유입의 중요 근거지인 남한에는 현재 좌파 정부가 들어서서 그나마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행하던 대북 사업마저도 언제 막힐지 모를 위태로운 상태에 처해있다.   둘째로 한국의 선교사들과, 인권 투사들과, 탈북 단체들이 대북 활동의 발판으로 삼고 있던 중국도 현재는 한국인들을 모두 추방하거나 잡아가두는 최악의 수준이다.   셋째로 현재 북한에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반정부 데모로 이끌만한 야당과 정치조직이 하나도 없으며, 북한은 세계 유일의 감시와 체포와 처형을 공공연히 벌이는 정보정치 독재 국가이다.   모두가 다 아시는 실례를 하나 들어 보면, 중국은 자유롭게 개혁개방이 되고 국민들의 언론과 활동의 자유가 허용된지 40여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공산당의 독재와 전횡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 참고 해야 할 공산 독재의 샘플 국가다.   이런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한국의 TV나 숨어서 몇 번 본다고 해서 그들이 몇 년 내에 국민들 자체로 들고 일어나서 독재 정권을 뒤엎는다고 볼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그렇게 쉽게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내걸고 반정부 투쟁을 할 수가 있다면 자본주의 현실을 제일 많이 현지에서 체험한 수 천 명이 넘는 북한의 재외 공관원들과 수 만 명의 해외파견 노동자들부터 모두가 망명이나 탈출을 했어야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주장한 태공사의 강연대로라면 10년 아니면 30년? 얼마나 더 북한 국민들이 독재에 시달리고 한국과 주변 나라들과 미국은 북 핵위협과 공갈과 무력도발을 참고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현실은 북한과 중공이 이 한국을 저들의 부속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그것을 과연 태공사가 못 느낀다면 그는 외교관의 초보적인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미국대사관 앞에서 자유롭게 데모를 하는 친북 분자들의 행패를 모른 척하는 이유는 뭔가?   그리고 핵무기와 대량살상용 화학 무기를 가지고 같은 동족은 물론 주변 나라들과 미국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은 오직 김정은 독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란 말인가? 다른 나라들은 그것을 반격할 자위적인 권리조차도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북한 독재자의 그 횡포를 참고 견디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강연을 하고 설교를 하는 사람의 눈에는 미국이 단순히 북한 땅 전체를 파괴하고 국민들을 죽이자고 하는 평화파괴적인 국가로만 보이는 것인가? 북한 핵으로부터 한반도와 동아세아와 나아가서는 세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겠는가?    내가 보건대는 탈북자로서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아니 절대로 할 수가 없는 발언들이라고 본다. 그의 발언은 왜서인지 진실로 북한의 독재를 차버리고 온 사람답지도 않은 발언이며,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북한에서 박해를 받으며 사는 사람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뭔가?

이안 부루마

북한이 얼마나 어리석은 독제체제인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다. 김정은은 머리의 옆과 뒤를 바짝 쳐올리고 머리를 위로만 기르는 1930년대식 푸딩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이는 북한 체제의 설립자인 할아버지 김일성과 닮아보이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구식 모택동작업복을 입고,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이다. 김정은 자체가 거의 만화 주인공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서 그는 전능한 천재로 공인되며, 무슨 신(神)처럼 숭배된다. 외부에 보일 때에도 그는 주위에 항상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최고위 군장교들을 비롯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김정은은 웃거나, 박수를 치거나,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물론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북한에서의 삶이란 전혀 즐거운 것이 못된다. 가뭄이 주기적으로 닥쳐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잔혹한 노동수용소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정치범이 20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고문당해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언론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의 신성한 지위를 부인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살아남으려면 김정은에게 주기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무슨 종교를 믿는 신도들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래야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동조한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처럼 그 사람들은 뭐가 더 좋은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규범을 반사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일부 북한 주민들은, 아마도 많은 주민들이, 김씨 왕조를 받드는 사이비 종교(cult)를 순진하게 믿을 것이다. 이 사이비 종교는 다른 모든 사이비종교들처럼, 또는 진정한 종교들처럼 다른 문화, 종교, 그리고 전통들로부터 가져온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씨 숭배(Kim cult)는 스탈린의 개인숭배,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 유교의 조상 숭배, 토착적인 샤머니즘,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의 천황 숭배 등의 각각에서 뭔가를 차용하였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백두산은 한국 최초의 왕조를 건설한 단군이 4,000여년 전에 사람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신성한 장소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친애하는 지도자로 알려진 김정일(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불렸다)이 태어나자 겨울이 봄으로 바뀌었으며,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졌다고 북한에서는 알려져 있다. 전부 다 황당한 이야기들이지만, 어떤 신앙에서든지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통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 주민들이 세계 다른 지역의 신앙인들보다 더 괴이쩍은 것은 아니다. 특정한 신앙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데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버림받은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 가운데 많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교들은 신의 눈으로 본 평등을 제시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김씨 숭배는 다른 종교들보다 포용성이 적다. 사실 그 핵심은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인식이다. 이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외세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신성한 민족주의적 감성이다.      폴란드는 스스로 민족을 위하여 순교하는 강력한 기독교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강대국들에 의해 지배당했던 역사가 있다. 한국을 지배했던 강대국들은 주로 중국이었으며, 러시아도 포함된다. 일본도 16세기의 잔인한 침략 이후 가장 주목할만한 지배국이었다. 미국은 후발주자였다. 북한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공식적인 증오는 가혹한 한국전쟁 때문에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외세의 억압에 대한 오랜 기억으로부터도 나온다.     외부 강대국들의 지배 때문에 한국역사에서는 외세와의 협력과 저항이라는 양극이 생겼다. 한국에 있었던 여러 왕조들의 지배세력 일부는 외세강대국들과 협력하였으며, 일부는 저항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인 자신들 사이에 상호간의 깊은 증오가 뿌리내렸다.   김일성의 경력은 처음에는 외세의 협조자로서 시작하였다. 그는 스탈린에 의해 북한 괴뢰공산정권의 지도자로 발탁되었다. 이 때문에 2차대전 중에는 일본에,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과 남한의 친미 협력자들에 저항하는 영웅이라는 김일성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데, 이는 정치적일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기도 하다.  외세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김씨 왕조를 지키는 것은 성스러운 책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것이 정치를 덮치게 되면 타협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람들은 이익이 충돌할 때 타협할 수 있지만, 성스러운 것이라고 간주되는 사안에 관해서는 타협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개발업자이므로 모든 일은 타협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사업하는 데 성스러운 것은 없다. 그가 협상을 하는 방법은 상대방에 대해 엄포를 놓거나 협박을 하여 압도하는 것이므로, 북한에 대해서도 “완전히 파괴한다”고 다짐하는 발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을 실천하려면 북한 주민 2천만명 이상이 죽어야 한다) 김정은이, 자신의  신민에 대한 성스러운 수호자로서, 이러한 트럼프의 협박에 설득되어 협상장으로 나올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김정은과 그의 독재체제의 일부 신하들은 굴복하는 대신 스스로 말살당하는 길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사이비종교 집단이 자살로 막을 내리는 경우는 그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실현 가능성이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가 적대적으로 트윗을 날리고 허풍을 담은 발언을 할 때마다 그의 각료들은 조심스러운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므로 김정은은 트럼프의 발언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트럼프는 위협만 할 뿐이지, 협박을 실천으로 옮길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김정은은 어떤 무모한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괌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이 벌어지면 미국은 어떤 형식이든지 대응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김정은이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북한 주민들에게뿐만 아니라, 북한 국경으로부터 35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면서, 김정은 컬트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 수백만 한국인들에게도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다.

도희윤

감옥이라는 곳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감옥 안에 있어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수감생활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도 부지기수로 그 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겨울철만 되면 사소한 범죄를 일부러 저질러 감옥 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하겠다.   감옥에서 제일 중요하고 관심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교도소에 도착하는 죄수들은 오로지 문을 통해서만 자신이 생활할 수감장소로 이동할 수가 있다. 그것도 인상적인 것은 거의 모든 문들이 철창문이라는 사실이다. 저녁에라도 도착할 즈음이면 모두가 각자의 수감장소로 이동한 이후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철창문 소리만 ‘철컹, 철컹’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간단한 자신의 생활용품만 소지한 채 그 문 사이로 들어가는 기분은, 아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참으로 묘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중요한 감옥문이 일반 아파트나 주택처럼 안에서도 밖에서도 모두 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죄수들을 가둬놓는 감옥은 감옥이 아닐 테고, 흉악범이 득실거리는 감옥안도 힘센 자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약육강식의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질게 자명할 것이다. 그래서 감옥문은 죄수가 들어가 있는 안쪽에서는 절대 열 수 없도록 시건장치가 오직 바깥에서만 존재하도록 만들어져있다. 결국 밖에서만 열도록 되어있는 게 모든 교도소의 감옥문인 샘이다.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각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접 경험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옥 안에서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그자체가 권력이자 힘이요,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 권력은 교정당국이 가지고 있고 현장에서는 교도관이 이를 행사한다. 상식적으로 감옥은 대부분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거나 잠시 유보되는 특수지역이다. 여기에서 권리라 함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와 자유의지에 입각한 표현의 자유, 정당한 노동의 대가나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 결사의 자유 등등 일 것이다.   이제 북한이라는 사회에 이같은 일반사회의 감옥을 한번 비교해보자. 무엇이 다를까. 아니 무엇이 같을까를 찾는 것이 훨씬 빠르고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규모의 차이 외에 별반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나라의 교도소와 북한사회일 것이고, 오히려 선진국이나 대한민국과 같은 교도소와는 비교 자체가 의미없을테니 말이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 외에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면,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서 죽는 북한사회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나라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공통점은 일반감옥과 마찬가지로 안에서 열 수 있는 열쇠마저 없다는 점인데, 김정은을 제외한 그 누구도 당국의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그래서 몰래 빠져나오고 도망쳐오는 것이 바로 탈북이다.   흔히들 북한주민들에 대해 저토록 처참한 노예의 삶을 살면서도 제대로 한번 저항해보지 못하느냐고 의문점을 갖는다. 분명한 사실은 파리보다 파리 잡는 파리채가 많은 게 북한이고, 굶주림과 공포를 동시에 지속하는 사회는 지구상 북한밖에 없다. 그것도 1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거의 한결같이 그렇게 해온 나라는 북한이 유일무이하다. 그래서 북한내부의 저항세력들이 깊이 뿌리내리기가 어렵고 그들의 좌절감이 너무나 클진대, 우리는 부끄럽게도 이런 노예사회를 지척에 두고서도 제대로 그 감옥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밖에서만 열 수 있는 북한이라는 노예감옥의 문을 그대로 두고서 어떻게 한민족이니 우리민족끼리를 입에 담을 수가 있겠는가.   북한의 저항 작가 반디선생은 자신의 시집 맨 마지막 작품제목을 ‘꿈’이라고 썼다.  이 시를 보면 그래도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옥문이 열리기를 바라고 또 이루려는 절규의 꿈 말이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새 세상 밝았다 새날이 왔다.                                              자유의 종소리 뎅뎅 울리고, 저 하늘의 새들도 훨훨 춤춘다.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사슬소리 채찍소리 소름 치더니, 철창문 열렸다 활짝 열렸다.                                             벗들아 자리차고 일어나거라, 자유의 저 종소리 못 들었느냐.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자갈을 물었던 입 맘껏 벌리고, 부르고 싶던 노래 맘껏 부르자.                                           빼앗겼던 눈과 귀도 마음껏 열고, 이 세상 넓은 세상 맘껏 맛보자.                                       아, 만세 만세 만만세 자유 만만세!’

이동복

 북한의 소위 수소폭탄 및 ICBM 개발 성공 주장으로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엉뚱한 핵전쟁의 전운(戰雲)이 감도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각종 장사정포와 방사포 등으로 무장한 북한군 포병에 대한 경각심이 새삼 증폭되고 있다. 마침 미국의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The Buzz' 최근호(2017.9.25.)에 게재된 카일 미조카미(Kyle Mizokami)라는 안보 전문가가 쓴 북한의 포병에 관한 글이 필자의 눈을 끈다. 그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참고가 되기 바란다. - 李東馥   어느 나라의 군대에서나, 포병은 보병과 기갑병 및 포병으로 구성되는 혼성 군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도가 북한군 포병의 사정거리 안에 위치해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북한군의 야포와 다연장포는 서울을 며칠 사이에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한 대량살상 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문은 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인가? 북한군 포병의 화력이 과장되어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냉전 시기 북한은 남한 재침략 목표의 일환으로 지나치게 포병을 위주로 하는 거대한 군사력을 건설했다. 북한군의 포병사령부는 예하에 1만2000문의 야포와 107mm 구경 이상의 다연장포 2300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다수의 야포들은 122, 130, 152 및 170mm 구경으로 되어 있으며 다수의 다연장포는 구경이 240mm이다.       한반도의 지형에서는 포병은 특히 유용하다. 한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풀이 무성한 산악 지형은 직사화기의 시야(視野)를 제한한다. 이 때문에 산간 지대의 반대편 사면(斜面)이나 계곡에 위치해 있는 적군(敵軍)의 목표를 타격하는 데는 곡사포나 로켓포 및 박격포 등 곡사 화기가 훨씬 효과적이다. 더구나, 산악 지형에서는 장사정포에 의한 후방으로부터의 지원 사격이 제한되기 때문에 국지전(局地戰)에 투입되는 소단위 부대의 작전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화력 지원이 절실하기 마련이다.       북한군의 포병은 평시(平時) 포병사령부에 포괄적으로 편성되어서 총참모부 작전국 제4과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전시(戰時)에 대부분의 중포(重砲)를 보유하고 있는 개별 포부대들은 부하된 침략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야전군(野戰軍) 군단에 배속된다. 북한군은 일반적으로 연대/여단 단위로 포병의 지원을 받는다. 예컨대, 한 개의 보병연대는 3개 보병대대에 더 하여 18문의 120mm 중포로 구성된 1개 포병 대대와 9문의 107mm나 140mm 포로 구성된 1개 다연장포 대대의 화력 지원을 받는다. 이 같은 배치로 연대들은 전장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본부로부터의 지원이 없이도, 각기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차상위(次上位)의 작전에서는 한 개의 북한군 사단이 보통 3개 야포 대대, 12문의 152mm 포로 무장된 1개 곡사포 대대와 각기 18문을 보유한 2개의 122mm 곡사포 대대 및 카츄샤 트럭에 탑재된 12문의 122mm 다연장포로 구성된 1개 다연장포 대대로부터 화력 지원을 받는다. 그 결과 전방에 투입된 북한군의 야전 사단은, 야포의 포문 수로는, 상대하는 미군이나 한국군보다 훨씬 더 강력한 포병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군은 이에 더하여 통상 군단 단위로 배치되어 있는 보다 큰 구경의 야포와 다연장포를 보유한다. 1개 북한 군단에는 각기 12개의 포병 대대가 배속되어 있는데 이는 보통 각기 6개의 야포와 다연장포 대대가 배속되어 있는 미군 군단의 2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북한군 군단 배속 야전포 대대들은 18문의 악명 높은 170mm 구경 ‘곡산’ 곡사포로, 그리고 다연장포 대대들은 18문의 240mm 방사포로 무장되어 있으며, 전시에는 이들 포대들이 2개 또는 그 이상의 군단포병단으로 재편되어서 가령 DMZ(비무장지대) 돌파 등 중요 작전을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계는 2010년11월 북한이 서해 NLL(북방한계선) 남쪽의 연평도에 대한 포격을 감행했을 때 북한군 포병의 실체에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 포격의 준비 조치의 일환으로 북한군은 12문의 122mm 다연장포로 구성된 1개 포병 대대를 연평도 대안(對岸)의 강녕반도로 이동 배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같은 규모의 포병은 사단 급 포병으로, 38노스(38North)에 의하면, 인근에 위치해 있던 33 보병사단의 사단 포병이었다.       11월23일,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서 도합 170발의 122mm 다연장포탄과 함께 인근 연안 포대의 76.2mm 해안포탄을 연평도를 향하여 쏘았다. 한국군은 초기에는 대포탄 레이더의 고장 때문에 대응 사격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고장이 수리되는 대로 북한군의 다연장포대로 반격을 가했다. 이 포격에서 한국의 민간인 2명과 해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군의 다연장포 부대들이 288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발사된 것은 170발이었으며 이 가운데 80발만이 연평도에 착탄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주변 바닷물 위로 떨어졌다.       북한군은 그동안, 특히 군단 단위의 170mm 곡사포와 240mm 다연장포 및 300mm 다연장포를 대량살상 용으로 성능을 개량했다. 북한은 미국의 클린턴(Clinton) 행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무렵인 1990년대 초반부터 이미 휴전선으로부터 불과 25 마일 밖에 위치한 서울을 공격하여 ‘불바다’로 만듦으로써 최소한 1백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살상할 수 있는 규모의 포병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衆論)이었다. 서울을 포격하여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북한군의 파괴 능력에 대한 두려움은 그 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2011년에 이루어진 노틸러스 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 같은 공포의 시나리오에 찬 물을 끼얹었다. 비록 이론적으로는 북한군이 보유하는 엄청난 규모의 포병 화력이 대규모의 인명 피해를 남한측에 가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 작전 상황 하에서는 그 인명 피해의 숫자가 훨씬 적은 것으로 축소되리라는 것이다.    북한군이 보유하는 엄청난 수의 야포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 실제로는 700여 문의 중포와 다연장포, 그리고 이에 더 하여 보다 신형인 300mm 다연장포만이 서울을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보유한다. 거기다가, 실제 상황에서는, 그 가운데 약 3분의 1만이 최초 발사에 참가할 수 있으며 최초 발사 이후에는 재장전을 위하여 일단 동굴 진지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발사 속도가 현저하게 감속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서울의 경우에는 북한의 그 같은 포격으로부터의 인명 피해가 감소될 수 있는 다른 요인들도 있다.  첫째로 서울 일원에는 많은 방공 시설이 되어 있어서 유사시 빠른 시간 안에 지상에 노출된 인구 밀도가 감소될 수 있다.  둘째로 북한군의 노후화된 군수 및 병참 능력은 북한군이 포탄을 재장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셋째로는 북한군의 기습적인 최초 포격이 시작되는 즉시 북한군 포대에 대한 미군과 한국의 집중적인 공·해·지(空·海·地) 합동 응징 공격으로 북한군의 후속 포격 능력이 급격하게 소멸될 것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북한군은 개전과 동시에 전략적 장벽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북한군은 일단 서울 포격에 포부대를 동원한 뒤에는 그 위치의 노출과 이에 대한 한·미 양국군의 응징 포격과 폭격으로 북한군의 남으로의 진격을 지원하는 포병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이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에 한·미 양국군에 의한 공중·지상·해상에서의 반격은 북한 김정은(金正恩) 정권의 종말을 가져 올 것이다. 북한군이 서울에 대한 포격으로 큰 인명 피해를 강요할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가져 오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북한의 입장에서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손해나는 장사일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결코 채택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선택은 서울을 상대로 그들의 포문을 여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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