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훈

서울대병원에서 ‘3시간 대기, 3분 진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국립 서울대병원부터 일인 진료시간을 15분으로 늘려서 실시한다고 한다. 국민들 입장에는 너무너무 국민을 사랑하는 제도개선으로 볼 수 있다. 3시간 기다려서 겨우 3분 진료하던 아쉬움과 불만을 15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진료를 꼼꼼히 봐 주도록 정권이 나서서 제도화해준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서울대병원이야 국립이니 적자가 나더라도 국민세금으로 메워 줄 것이고, 진료하는 의사는 진료환자 숫자에 상관없이 월급이 나오니 3분 간격으로 환자에게 시달리던 것을 15분 간격으로 시달림이 줄어들었으니 환자나 의사나 병원이나 모두가 ‘윈윈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의 본질적 원인을 모르고 이런 정책을 자랑스럽게 실시하면 정말 아마추어 정권이 되고, 과거 3분 진료로 불만을 가진 분이 15분 동안의 긴 시간 진료를 받고 행복해 하는 모습만으로 판단하면 광우병 연출에 가까운 고의적 현실 왜곡이 된다.   이유는 이렇다. 서울대병원에 진료 받고자 하는 숫자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므로 당장 대기시간이 단순계산으로도 평균 5배 늘어날 것이다. 3분 진료가 15분 진료가 되었으니 환자가 더 몰릴지도 모른다. 또 대기시간이 늘어나서 결국 진료를 못 본 환자들이 당장 3분 진료라도 받게 해달라고 집단 항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수학이 아니라 산수만 공부한 사람이라도 당연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렇기 때문에 중증환자가 아니면 서울대병원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정책담당자들은 이야기 한다.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 될 것이면 이미 대학병원에 몰리는 환자문제가 벌써 해결 되었어야 한다. 더욱이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지금보다 대기 시간을 5배 늘려서 대학병원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안 오도록 하는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라면 솔직히 목적을 알려야 한다. 진짜 목적은 숨긴 채 국민을 위해서 3분 진료를 15분 진료로 제도화 한다는 측면만 알리면 그것은 대국민 사기다. 따라서 이런 대답은 삶이 피곤하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는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은 수준의 말이다.   사람을 죽여서 현행범으로 붙잡힌 살인자도 체포와 수사와 처벌에 인권이 있다. 이것은 여론조사로도 바뀔 수 없는, 민주 비민주의 현재의 가치를 뛰어 넘는 인권에 관한 정부의 민주 문명사회의 상징적 규범이다. 살인자라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른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법에 정한 제재를 제외하고는 살인자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어떤 부자유나 어떤 제재도 있을 수 없다.   봉건제도 하의 대감 집에서 부리는 종에게도 어떤 일을 시키면서 일의 목적을 설명하고 성실히 일을 수행할 것을 명령하지, 일 하나 하나를 몇 분에 혹은 몇 시간 간격을 처리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예라 하더라도 일을 맡은 주체가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맡은 사람이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처리해나가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의사는 비싼 등록금에 6년 대학공부하고 노예보다 못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4~5년 거쳤을 뿐 아니라 그것도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국가고시를 쳐서 실력이 확인된 전문가이다. 입으로만 대중에게 어필해서 인기투표 하듯이 수시로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선출직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지상 최고의 가치인 국민건강을 지키는 전문직의 진료행위를 하는 의사를 감옥에 잡아 놓은 살인범죄자 만큼도 배려하지 않고 의사를 봉건시대 노예만큼의 대접도 하지 않는,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부서질 때 까지 돌아가야 하는 대량생산 기계 부속품으로 여기는 무식하고 뻔뻔한 마음이 아니면 이런 일을 구상할 수도, 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의사도 15분 진료를 당연히 하고 싶다. 국민은 대기시간을 최대한 줄이길 원한다. 그 해결책이 고작 서울대병원의 3시간 대기, 15분 진료정책 뿐인가. 이는 한 마디로 의료정책 담당자의 눈 감고 아웅 하는, 국민과 의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이다.   의사도 국민이다. 의사를 최소한 배려하는 것도 자랑스러운 정부의 책임이다.

진세훈

의사는 수술을 했으면 당연히 치료를 해야 하고, 그 치료과정에서 수술 후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 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대비해야 한다. 또한 환자는 수술을 받았으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서 치료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좋은 수술 결과를 얻기 위하여 의사의 치료 지시에 협조해야한다. 사실은 해야 한다고 할 것도 없이 환자입장에서는 의사가 나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과 정성을 쏟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최근 들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전신마취를 하고 비교정술을 하신 분이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회복된 후 “약 잘 먹을 테니 퇴원 시켜달라”고 하시더니 그 길로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남겨도 계속 연락이 없었다. 혹시 불의의 사고라도 당하신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주소를 근거로 동네 파출소를 연결해서 특별히 알아봐달라고 했더니 아무 일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해서 허탈했던 적이 있다. 그러곤 2일 후 전화가 와서는 “친구가 상담하러 갈 테니 잘 부탁한다”고 한다. 수술했던 의사로서 황당한 일이라서, “치료 받으러 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환자를 소개한다고 하느냐”고 핀잔을 줬더니, “원장님이 수술을 잘했으니까 치료 안 받아도 깨끗하게 낫지 않았느냐”면서 원장님 실력을 더 믿게 됐단다. 참 어이없는 논리의 황당한 믿음이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후에 치료가 꼭 필요한 큰 수술의 경우에도 이럴진데 수술이 간단하고 거의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는 수술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여드름이나 상처로 파여진 함몰흉터가 생긴 경우에 그동안 프락셀같은 레이저 치료를 많이 시술해 왔으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미 2014년 대한미용성형외과 학술대회에서 공개적으로 “프락셀은 함몰흉터에 효과가 거의 없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함몰흉터를 주사로 간단히 치료하는 자가진피재생술을 시술한다. 자가진피재생술은 시술할 때 통증이 마취주사의 통증보다 훨씬 적기도 하고 마취주사를 놓으면 함몰된 흉터가 부어버려서 모양이 변하고 차라리 수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예 마취를 하지 않고 시술한다. 뿐만 아니라 ‘안면부 노출부분은 소독만 철저히 하면 항생제를 먹지 않아도 항생제 복용한 경우와 염증의 가능성에 차이가 없다’는 논문을 근거로 항생제 처방도 안하고 주사바늘 만으로 시술하기 때문에 진피층의 손상이 적어서 시술 후 48시간이면 완전 회복된다고 밝혀져 시술 후 2일이면 치료가 끝난다.   이렇게 자가진피재생술 같이 치료가 간단한 시술의 경우는 치료 받으러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료예약시간이 지나서 “왜 안 오시냐”고 전화를 하면 “그 먼 곳을 어떻게 가요!” 호통치기도 하고, “그래도 치료는 받으셔야지요” 하고 말씀드리면 “가면 뭐해 줄 건데요” 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심지어 “그래도 혹시 부작용이 생기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겨우 치료 받으러 오신 분들 중에는, 물론 대부분이 그렇듯이 “아무 이상이 없어서 치료가 끝났습니다” 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면 수술결과도 좋고 아무 부작용도 없어 다행스럽고 의사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것도 없으면서 왜 먼 곳까지 오라고 했냐”고 화를 내는 분도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의사의 권위를 존중해주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의사의 말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용일 뿐이라고 여긴다. 의사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어서 내가 편리한 대로 선택하는 것이 더 옳다는 사회 분위기의 표현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섭섭하다.   그래도 의사가 되기 위한 의과대학은 왜 최고의 경쟁률을 유지할까? 딴 업종은 의사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하면 ‘헬 조선’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천국 만들기’는 의사가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우태영

사람들은 누구든지 행복을 원한다.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 속 깊이 행복감을 느끼려하는 목적이 아닐까? 행복을 연구하는 서양의 학자들은 최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40% 가량은 심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유전적인 요소나 외붕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이는 마음을 다스리기에 따라서는 행복을 증진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미국의 경제 전문 온라인 언론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하바드 등 주요대학 심리학 교수들이 실시한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9가지 방법을 도출해냈다. 다음은 그 내용.   1. 인간관계가 핵심적인 요소.  지난 70년간 수백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임상연구를 실시한 대부분의 연구들을 보면 가장 행복한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은 그들이 신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  많은 연구 결과 남들보다 행복한 사람들은 더 많은 돈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심지어는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더욱 행복해졌다.   3. 생활에 필요한만큼 돈은 충분히 있어야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행복감은 연봉이 7만5천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상승한다. 물론 이 수치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4. 가끔은 속도를 늦추는 삶 길을 걷다 길 옆에 피어 있는 장미꽃 향기를 맡으려 다가가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뭔가 좋은 것을 보면 감상하기 위하여 잠시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 친절한 행동은 행복을 증진시킨다. 친구들에게 진절을 베풀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남들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땀을 흠뻑 흘리며 운동하는 것 열심히 땀흘려가며 하는 운동은 몸매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학자들의 연구결과 육체적인 운동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행복감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은 또 정신적인 고통도 감소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7. 재미(Fun)가 중요하다.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는 물질적인 것들보다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같은 돈을 쓰더라도 뭔가를 사들이는 것보다는 뭔가를 체험할 때 더 행복해진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또 등산화나 새 책을 살 때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때 행복해졌다는 것.   8. 명상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9. 친구들과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부담없는 친구들과의 사교는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특히 행복한 사람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것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강력한 효과를 미친다.

진세훈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유별하여 7살이 되면 같은 자리에 합석도 금한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남녀 간의 접촉을 금하던 시기에도 결혼은 해야 하니, 남녀 간의 배필을 구하는 방법 중에 중매결혼이란 제도가 있었다. 양가 부모가 서로 사돈이 되기로 술자리에서 약속을 하면 심지어 그대로 따르기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걸 계약결혼이니, 인신매매에 준하는 비인륜적인 적폐라고 배웠다. 나 자신도 또한 그렇게 느꼈다. 나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무조건 결혼해야 그런 폐쇄된 사회에 살지 않은 현실을 너무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비인간적이지만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혼이라는 문제를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리고 상대를 확인조차 못하고 평생의 반려자를 맞아야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속성이 아무리 치마 두른 여자만 만나면 성욕이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 임신을 시키고 자손을 얻는데 별 무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생에 가장 중요한 배우자를 정하는 문제는 요즘 금과옥조 같이 되뇌는 민주 비민주를 논하기 이전에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첫 번째 항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정신적인 이상형을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는 것은 지옥에 버금가는 고통일 수 있다.   신랑 신부 양가집안을 오가던 중매쟁이가 여자집안에 가서는 신랑 될 사람이 점잖고 과묵해서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남자가 말이 많고 이런 저런 일에 잔소리 하는 사람 보다 과묵한 사람이 좋다고 하며 승낙을 받아낸다. 반면 여자집안에 가서는 규수가 밖에 쏘다니지 않고 항상 집안에서 뜨개질이나 책을 읽으며 지내는 조신한 규수라고 소개하여 양가 결혼 승낙을 받는데 성공한다. 막상 결혼식 날 보니 신랑은 벙어리고 규수는 앉은뱅이 여서 양쪽 집안에서 중매쟁이에게 항의를 했다. 이에 중매쟁이는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냐”는 우스개 얘기가 있다.   이젠 세월이 흘러 결혼은 멀티연애를 훨씬 지나 동거해서 살아보고 결정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러고도 워낙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혼한 자식들이 잘 살고 있냐”는 말과 “손자 봤냐”는 말은 물어보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블라인드(Blind) 채용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 지원서에 출신 지역, 신체조건, 학력과 같은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항목을 기재하지 않고 직무와 관련된 정보를 토대로 채용하는 것을 말합니다’라는 내용을 봤다.   위의 기사를 다시 결혼에 적용해보자. 신랑 신부의 출신지역, 직업, 학력, 집안, 미모, 부모의 학력, 경제력, 집안내력 등 결혼의 핵심적인(?) 목적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결혼의 핵심 목적인 자식을 얻고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여성의 생식기가 정상인지 임신을 위한 배란이 정상적인지를 알아 보기위해 월경이 정상인지만 확인하고,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변 조건을 모두 무시하고 발기기능의 확인과 정자의 상태만 확인한 뒤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될 것 같아 걱정된다.   부자들끼리 결혼으로 부가 세습되고, 학벌 좋은 사람들끼리 결혼으로 두뇌가 유전되고, 좋은 조건을 찾는 결혼으로 기득권이 고착화되니, 이걸 혁파하는 블라인드(Blind)결혼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근본적 방법이 될까? 블라인드(Blind)채용이 공평의 실현이 될까? 과연 이게 최선일까? 차별과 차이의 간극까지 없애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무리 공평한 사회라도 엄연한 차이는 존재한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에서 증명한다.

전영미

, 윌리엄 메릿 체이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다이어트 권하는 광고투성이다. 어서 그 뱃살을 빼버리라고, 2주만 투자하면 5㎏은 빠진다고. 그러고 보니 조만간 휴양지에서 수영복 입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긴 하다. 하지만 짧은 기간 무리하게 강행하는 다이어트는 어김없이 요요현상을 불러오고 피부 탄력만 망칠 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이젠 정말 주사를 맞거나 시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건가? 그런데 이상하다. 수영복 입을 일을 앞두고 몸매 때문에 다이어트한다는 남성은 못 봤다.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왜 우리만 다이어트를 해야 하지? 여성의 몸에 대한 미(美)의 기준은 시대와 사조에 따라 달라져 왔다. 다산을 상징하는 풍만한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고대를 지나 금욕적인 중세시대에는 납작한 몸매를 아름답다고 여겼다. 르네상스시대가 되면서 다시 풍만한 몸이, 산업혁명 이후로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다시금 날씬한 몸매가 아름답다고 정의됐다. 그 후 1950년대에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다시금 아이를 잘 낳을 것 같은 풍만한 몸매가 인기를 끌었지만, 2000년대는 몸에 딱 맞는 기성복이 잘 어울리는 마른 몸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여성의 몸은 시대별로 미의 기준이 풍만과 마름을 오갔다. 그에 비해 남성의 몸은 어떤가? 시대를 불문하고 그 기준은 별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모두가 수긍하는 가장 아름다운 남성의 몸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여성의 몸만 이렇듯 미의 기준이 수시로 바뀌어야 했을까? 그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미의 기준을 규정짓는 주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인류를 지배해온 것은 남성이다. 심각한 성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양성평등이 시대적 화두인 이때 우리야말로 스스로 마인드를 바꿔야 할 때라는 것이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날씬한 몸매를 갖든 풍만한 몸매를 갖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근사한 옷을 입고 싶어서, 매일 샤워하면서 나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싶어서 몸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단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로 날씬한 몸매에 집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리하게 몸매를 만들다가는 소중한 내 몸이 망가진다. 게다가 근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한번 손상이 되면 회복도 어렵다. 그러므로 내 몸을 가꾸는 것에 있어서는 건강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샤워를 하면서 내 몸을 찬찬히 살펴보자. 누르면 아픈 곳은 없는지, 없던 착색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이상한 응어리가 잡히지는 않는지. 그런 것들을 발견한다면 진료부터 받아야 한다. 내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체력과 취향에 맞는 운동으로 몸의 체지방은 감소시키고 근육과 탄력은 늘리며 좋은 음식들을 적당한 양으로 섭취해 내 몸에 영양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몸은 저절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필자는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셀룰라이트를 치료하러 갈 것이다. 셀룰라이트가 단순히 울퉁불퉁 보기 싫은 피부 미용 질환이 아니라 기능을 잃은 아프고 병든 살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요가를 배우러 갈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몸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스트레칭 방법을 배우는 것은 물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호흡법과 명상법도 익혀두고 싶기 때문이다. 다이어트한다고 무리하게 식사를 거르거나 폭식을 하고 나서 후회하기보다는 어떤 음식이든 세끼를 제때 소식하는 습관을 들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 습관들을 가급적 오래도록 실천할 것이다.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

진세훈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며 더 큰 꿈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하고 발전해 나가는 훌륭한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고 느낀다. 현실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도전한다.   만일 지금의 현실이 힘들고 지옥이라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힘들었던 지난 얘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리라 믿는다.   현재의 나의 겉모습은 강남역 사거리 성형외과 전문의 개업 28년째 의학박사, 전직 강북삼성병원 성형외과 과장이다. 이런 조건이면 대부분의 사람은 전혀 어려움은 없었을 거라 여긴다. 더구나 그동안 치료하기 어려웠던 깊은 주름과 함몰된 흉터를 간단히 주사로 치료하는 자가진피재생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내고, 최근 미국 특허청에서 시술방법에 대한 특허까지 받았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같은 의사끼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분명히 어려운 시기가 2번 이상 있었고, 그땐 나의 현실이 너무나 힘들었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밤늦게 잠들 때만 되면 잊고 싶었던 현실이 떠올라, ‘지금 잠들고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잠들기를 4~5년은 했던 것 같다.   그럴 때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었던 원동력은 희망과 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좌충우돌의 절박한 노력에서 이루어 졌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나에게 의미 있는 성공을 가져다준 것 같다. 어쩌면 힘들다 힘들지 않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 나를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거라 생각한다.   ‘살인 빼고는 다해봤다’는 어떤 선배가 28년 전 나에게 해줬던 말이 큰 힘이 되었다. 그 선배는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느낄 때 지옥의 천장을 바라보며 행복한 천당이 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할 땐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천당이니 천국이니 행복이니 그런 사치스런 생각할 겨를이 없이 정신없이 지옥의 밑바닥을 후벼 파고 있으니 천당의 찬란한 빛은 지옥의 밑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더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분명히 우린 지난 50~60년 동안 과거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발전을 이루었을 뿐 만 아니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살아남아 있으니 우리의 성공은 증명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소음 에어컨과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가동하는 더운 계절에는 과거의 대한제국 황제폐하도 누리시지 못했던 호사를 누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단지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지금의 풍요로운 조국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이 취직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일까? 자신 주변의 여유 있는 사람들 같이 멋진 결혼과 TV에서 보는 아름다운 집에서 신혼을 맞이하지 못해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유 때문일까?   난 역설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멋진 미래를 이루겠다는 희망과 무지개 같은 화려한 꿈 때문에 헬조선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멋진 미래를 설계하는 희망과 무지개 같은 꿈을 향해 쫒다 보면 꿈과 희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노력은 하지만 저 꿈이, 저 아련한 희망이 언제 이루어질까 하는 조급한 마음만 생기고, 그 목표를 위해서 더욱 더 힘을 내서 도전해야 할 때 차라리 힘이 빠져 지쳐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전쟁을 위한 군사작전에는 빠짐없이 세밀한 작전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전쟁개시 30초 만에 전쟁은 작전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단지 머리속의 상상 만으로도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전쟁상황에 임기응변의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지금 비록 노년의 문턱에 섰지만 나에게도 성공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성공의 계획은 세우되 더 절박함으로 무장하고 더 무서운 집념으로 문제를 노려보고 젊은이 대신 내가 나선다는 심정으로 도전하고자 한다.   지금의 나의 현실이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지옥의 밑바닥에 천국이 등을 맞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세훈

수련의 시절, 하루에 3시간만 중간에 깨우지 않고 재워주면 1년 내내 혼자서 당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에 몰두한 적이 있다. 여기서의 당직이란 밤에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밤에 당직서고 낮에 근무도 하는 그런 형태의 병원 당직이다.   수술실에서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잘 보이지도 않는 맨 뒷자리의 인턴 1~2년차 수련의지만 까치발하며 앞사람 머리와 머리사이, 손등과 손등 사이에서 수술시야를 놓치지 않으려고 졸린 눈을 부릅뜨던 시절 ‘저 수술을 내가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가져본 적이 아니었다. 불과 2~3년만 지나면 주임교수 수술을 보며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은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다 4년차 초가 되면 그렇게 우습게 보이던 수술이 주임교수 명령으로 내 책임 하에 해야 할 때 적잖은 당황스러움을 겪기도 했다. 수술 전 날, 밤새워 수술 공부하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 하듯 상상수술을 하며 준비했어도 비장할 정도의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이것도 순간이다. 4년차 말이 되어 교수님들의 가르침으로 성공적인 수술을 몇 달하고 나면, ‘나같이 수술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1, 2년차 선생들의 아부성 칭찬이라도 한번 들으면 착각이 확신이 되고, 이땐 거의 정신적 극치감에 달한다.   이런 착각속에 나의 실력이 저 두꺼운 영어와 컬러그림으로 가득한 원서 덕분이라 믿으며, 내가 공부 열심히 한 결과물이라 여기던 시절에는 ‘외과 의사로서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두꺼운 전공 원서와 열심히 노력한 결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밤새워 당직 서며 수술 부위가 아프다고 쉴 새 없이 불러대는 입원환자를 치료하는 나의 모습과 수술실 한쪽 구석에서 차가운 김밥 한 줄로 아침 겸 점심으로, 또 저녁으로 허기를 때우던 상황과 응급실에서 얼굴이 술병에 난자당하고도 난동부리는 술 취한 환자를 달래고 얼러서 밤새워 꿰매며 아침에 뜨는 해를 응급실 창문으로 맞으며 그 환자가 평온히 잠들어 있는 장면들이 겹치고 겹쳐져서 그나마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거의 10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수련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고 퇴근하던 날 주임교수께서 말씀하셨던 ‘전문의 따고 10년은 수술해봐야 내가 잘하는 수술이 어떤 것이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어떤 수술인가를 알게 된다’는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서구의 어떤 인문학자가 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림을 보고 재질을 설명하고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을 보는 것이 컵을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본 것의 20% 정도 밖에 정보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컵을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았다 하드라도 컵을 직접 만들어 본 것과 비교하면 또 20% 정도밖에 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컵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과 그림과 책의 설명으로만 이해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그동안 치료하기 어려웠던 깊은 주름과 함몰흉터 수술방법을 새로 개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여 인정받고 성형외과학회 학술 심사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다 하드라도 지금 성형외과전문의로서 진료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영어로 가득찬 책이 아니라 많은 교수님, 그리고 주변의 많은 분들, 심지어 응급실에서 싸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동 부리던 환자들의 도움도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책에서 배우면 지식이 되고 사람에게 배우면 지혜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진세훈

얼마 전 뉴욕 맨하탄에 갔다.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식에 온 가족이 출동해서 축하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미국은 가족의 경사라고 할 만큼 친인척 모두 모여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가족행사였다. 거기다 아들 녀석이 뉴욕 아이비리그에서 쿰 라우데(Cum Laude)로 졸업한다니 기쁨이 배가 되어 모르는 척 할 처지도 못 됐다.   세계적인 메트로시티라고 하지만 서울보다 별 차이 없어보였다. 우뚝 솟은 빌딩들도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시큰둥한 마음은 시차를 적응하지 못한 피곤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서울도 세계적인 수준과 견줘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였다.   뒷골목을 중심으로 이틀간 택시를 타고 돌아다닌 결과, 우리와 다른 점은 빌딩 숲속에 어느 구석에도 에어컨 실외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식건물인 대형건물에서는 중앙집중식 냉난방을 사용하는 듯했다. 반면 조금 오래된 우리나라에서 1960~70년대에 쓰던 창문형에어컨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아직도 이런 에어컨을 사용하느냐고 물으니, 뉴욕은 실외기 소음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시끄러운 구형 에어콘을 창문에 끼워서 머리맡에 달고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다른 외국의 삶의 규칙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면 벌금을 부과한다. 엄청난 수의 비둘기와 그 배설물로 인한 피해(문화유산 훼손 등)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유적지 주변 ‘힐’ 착용을 금지한다. 유적지 보호를 위해서 라고 한다. 그리스 갈 때는 유적지를 위해서라도 운동화는 꼭 챙겨야겠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셀카를 금지 한다. 절벽 등 위험지역에서 셀카를 찍다가 인명사고가 자꾸 일어나는 바람에 셀카 금지구역을 16곳이나 지정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껌 씹기 및 판매 금지한다. 금지 조치 전까지 껌 자국 제거 및 손상 복구에 매년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 싱가포르에서 껌을 씹다 적발되면 벌금형이다. 아마 반복하다 걸리면 태형도 당할 듯하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운전은 무조건 두 손으로 해야 한다. 코가 간지러워 긁느라 운전대에서 한 손을 떼다 걸리면 한화로 최대 82만 원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에서는 전구 교환은 전문가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오직 정식 인증을 받은 전기 기사만 전구 교환을 할 수 있다. 어길 시에는 어김없이 벌금 부과 된다. 아마도 성질 급한 사람은 전구가 터지면 새집으로 이사 가는 사람 생길 듯하다.   스위스는 밤 10시 이후 변기 사용을 금지한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과시킨 법안이라고 한다. 그럼 볼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기에 우리나라 요강을 수출하면 대박 날 듯하다.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법이 생기고, 범죄자 나쁜 놈 악한이 발생한다. 무인도에 혼자 사는 로빈슨 크로소가 법이 없다. 그러니 어기려야 어길 수도 없다. 또한 지킬 법도 없다.   역으로 선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악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는 ‘악’해질 수도 없고, ‘선’해 질수도 없다.   본디 선악은 필요에 따라 생겼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현실을 법으로 알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진세훈

기업은 좋은 재화를 생산하여 최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선발, 최대한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기업 생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유능한 직원을 전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뽑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 왜냐하면 월급을 많이 줄 수 있고, 복지혜택도 베풀고, 회사가 계속 존속하여 발전함으로 직원들의 꿈을 회사 내에서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유능한 직원을 뽑고 싶어도 도대체 지원을 해야 하는데, 아예 나타나지를 않는다. 월급도 적고, 복지혜택도 적고, 장래성도 떨어지고, 미래에 자신의 꿈을 펼치려 해도 그때까지 회사가 존립할 가능성도 낮고, 없어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에서의 근무인력도 마찬가지다. 유능한 인력은 ‘빅5 대형병원’에서 모두 뽑아가고, 그나마 남은 인력도 대형병원에 자리가 생기면 옮겨가겠다는 ‘정거장’ 자세로 근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직원을 뽑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 놓고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개인의원으로서 소규모 사업체 정도인 나는 능력 있는 직원 뽑기를 포기하고 사랑해 줄 직원을 뽑기로 방향을 달리 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사연이 있다. 1년 전쯤 친구의 병원에서 마음이 상냥하고 유능한 직원이 집안일로 몇 달만 쉬겠다고 임시휴직을 허용해 달라고 원장에게 이야기했다. 그 원장은 “조그만 병원에서 개인 사정 모두 봐주면 누가 일을 하느냐”고 그 직원을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그 직원을 특별히 배려해서라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두게 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직원 간 협조도 안 되기 시작했다며 그 친구가 하소연했다.   마음이 유능한 직원은 그 개인 한 사람의 업무능력만이 아니라 그 직원의 근무 자세로 인해 다른 직원이 영향을 받아서 열심히 하게 된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직원을 부끄럽게 만들고, 병원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식을 직원 간에 공유시킨다는 면에서는 기술보다는 마음이 유능한 직원의 가치가 훨씬 커질 수 있다.   심리학 실험 중에 서로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뇌파검사를 하면 뇌파의 패턴이 서로 따르게 나오는데,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캄캄한 컨테이너 박스에 두 사람을 같이 들어가게 하여 뇌파검사를 하면 15분 만에 뇌파의 75% 패턴이 비슷한 유형으로 나온다는 사례가 있다.   마음이 유능한 직원의 좋은 기운이 텔레파시로 같은 공간에 근무하는 다른 직원에 꼭 퍼질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뒤떨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이 NASA에 특별임무를 주고 전체 연구원들이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했다. 어느 날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 빗자루를 들고 있는 잡역부를 만났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신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잡역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잡역부가 쓰레기를 치우면서도 지금 이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인간이 달에 가는 프로젝트의 중요한 한부분이라는 마음자세로 일을 하는 구성원이 있는 조직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능한 직원을 뽑거나 나 자신부터 유능해 지려고 노력하기보다 마음이 유능한 사람으로, 즉 부족하지만 병원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사람과 즐거움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우선, 나 자신부터 부족하고 못났음을 드러내고, 나는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광고하고, 사소한 도움이라도 감사히 받아들여서 극복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못나도 한사람 빠짐없이 모두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철들자 노망할까 걱정이긴 하다.

진세훈

  애완동물 시장규모가 2013년에 이미 1조를 넘어서서 2017년 2조8,900억 원을 예상할 정도가 됐다. 전국 가구 중 17.9%가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통계다. 키우는 강아지를 미팅을 시켜주고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도 있다고 하니 사람이 만들어준 세상이지만 동물과 사람이 구분이 안 되고, 사람의 생활을 닮아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퇴근하면 자식들은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마누라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하느라 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혼신의 힘을 다해 반갑게 아는 체 맞이해주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밖에 없다는 친구도 있다. 이러니 예쁘할 수밖에 없으며, 강아지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친구는 딸들이 장성하고 나면 딸아이 방에 들어가기도 조심스러운데 강아지는 딸아이 품에 안겨 목욕도 같이할 정도니 딸아이에게 사랑받는 강아지가 부럽기까지 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동물을 성형외과 병원 상담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런데 진료실에 강아지를 데리고 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 모두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그런 환자는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환자는 이런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반려견이라고 하지만 환자진료실에까지 데리고 오는 행위를 양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강아지를 예쁘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담실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지적하는 것도 제법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물학대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양 물끄러미 쳐다보는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된 말로 강아지 성형 상담할 날이 별로 멀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강아지 장례식을 치르고 온 어떤 친구는 강아지 장례식장에 가서 염, 수의, 널, 화장의식, 납골함, 납골묘 등등 끝도 없는 강아지 장례절차를 자신도 모르게 딸과 마누라 이끌림에 따르다, 순간적으로 몇 년 전 그의 아버지 장례식 때 딸과 며느리인 마누라가 얼마나 슬퍼했나 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만 소리를 지르고 나와 버렸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개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현상이 보편화 됐다. 그런데 개한테 물려서 심한 흉터가 생겨서 오는 환자가 있다. 주로 입 주위가 물어뜯긴 경우가 많다. 성형수술을 하고도 입주변이라 많이 움직이는 부분이다 보니 함몰흉터가 생긴다. 남은 흉터의 모양이 상당히 심각해서 조심히 물어본다.   “이렇게 주인을 심하게 물어뜯은 개를 어떻게 했나요?” 아마도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거나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다.   그분들은 “어른들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을 물은 개는 죽여야한다고 말씀하시지만 키운 정으로 죽일 수는 없어 시골 친척에게 보냈거나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친구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무도 죽이거나 팔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그렇게 물어뜯겠으면 아마 맞아 죽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개가 사람보다는 더 배려 받는 것 같다.   그리고 개한테 물어뜯긴 기억으로 치가 떨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을 것 같아서 또 물어 본다.   “지금은 개를 키우시나요?”   “그럼요. 조금 작은 강아지를 키워요.”   “그렇게 심하게 물려서 곤혹을 치르고도 또 개를 키우세요?”   “남자 사귀는 것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남자에게 상처를 받고도 얼마 안 있어서 또 다른 남자를 만나잖아요. 사람한테 받은 상처보다는 상처가 적은 것 같아요”   그동안 개에게 물려 치료받으러 온 환자는 모두 젊은 여성들이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개와 사람의 관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 같이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개가 사람보다 더 배려 받는 이유를 생각하며 살자’고.
10개더보기

TODAY`S 칼럼

TODAY`S FUN

TODAY`S 뉴스&이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