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인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음 정류장은 도시샤(同志社) 대학 앞입니다."   교토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던 필자는 안내 멘트에 귀가 번쩍 뜨였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도시샤(同志社) 대학은 시인 윤동주(1917-1945)가 다녔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차 확인하자 운전사는 ‘내려서 뒤쪽으로 조금 돌아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서정문에서 바라본 도시샤 대학 도시샤 대학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에서부터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이 대학은 한 청년의 뜻(志)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쇄국의 일본을 개방하려는 의지로 미국에 건너가서 ‘일본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자’가 됐다. 청년의 이름은 니지마 조(新島 襄, 1843-1890). 그가 1875년 도시샤 대학(同志社英學校)을 설립했던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학교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서 캠퍼스는 고즈넉했다. 갑자기 이방인(異邦人)이 된 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신세를 졌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윤동주 시비(詩碑)가 어디 쯤 있나요?”   “똑바로 가시다가 우측으로 돌아가세요. 저기 지붕 끝이 뾰족한 건물 앞에 있습니다.”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 나란히 있어   경비원의 말대로 건물사이로 들어가자 나무아래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의 시비가 나란히 있었다. 비(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일본어와 한글로 쓰여 있었다.  과 을 간행하여 현대시의 확립에 기여하였으며, 유능한 시인을 문단에 등용시키기도 하였다. 1945년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현, 이화여자대학)의 교수와 경향신문의 주간을 역임하였고, 을 비롯한 산문집을 간행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옥천군, 옥천문화원, 정지용 기념사업회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 모교에 시비를 세웠다. 조각된 시는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이다.>   정지용 시비사실을 토대로 한 글이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윤동주 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동주에 대한 글도 일본어와 우리말로 쓰여 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윤동주 시비의 글   다소 어눌한 한글 표현이지만,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필자는 혼자서 시비에 새겨진 빛바랜 서시(序詩)를 읽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비  필자는 읽고 또 읽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詩)였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필자는 ‘주변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필자가 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와 윤동주   “인간의 얼굴은 하나의 줄기위에 핀 일 순간의 꽃이다./ 바람과 새가 날라다 준 종자처럼/ 여기저기 흩어지고, 피고 지는 존재/ 인간도 식물과 별로 다를 게 없느니….”    일본의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가 쓴 라는 수필에 담긴 내용이다. 그 책에도 ‘윤동주에 대하여’라는 글이 있다.     누군가가 그린 윤동주의 작은 액자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1990년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씨를 도쿄에서 만났다고 한다. 시인은 윤인석 씨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함께 ‘아우의 인상화(印象畵)’란 시를 소개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살그머니 작은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슬픈, 진정코 슬픈 대답이다...”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윤인석 씨가 큰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이에 공감한다”고 했다.   윤동주의 시비(詩碑)는 한국산과 교토(京都)산의 돌로 세워졌다. 양국화합의 의미를 두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한일 간의 간극(間隙)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을 윤동주를 추모하면서 뚜벅뚜벅 도시샤 대학 교문을 나섰다.

김동연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사진=위키미디어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승리를 최선의 승리라고 정의했다. 이것을 보고 근래에 와서는 평화적 협상 등이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는 손자병법의 내용을 보고,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려면 전쟁을 할 것과 같은 강함을 보여주었을 때 약한쪽이 전쟁을 하지 않는 것(When one force is a great deal stronger than the other, an estimate may be enough. There will be no fighting: the weaker side will yield at once)”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투를 위한 것이고 전쟁을 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즉 전쟁을 할 것과 같은 준비없이 전쟁이란 쉽게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항시하고 있다. 여성도 의무복무를 수행할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중요한 잣대인 군사력(capability)과 의지(will), 모두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국들은 섣불리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마크 밀리(Mark Milley) 미국 육군 참모총장도 작년 7월 기자회견에서 “전쟁이란 육군, 해군, 공군과 같은 군대가 하는게 아니다. 전쟁은 국가가 싸우는 것이다. 전쟁이란 국가 전체의 확고한 신념(commitment)을 요하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결국 국민의 단합된 의지가 적의 사기 및 전쟁의지를 꺾을 수 있는 핵심이자, 전쟁을 위한 필수요건인 셈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하는 연유를 확인해봤다. 먼저 4가지 사례를 살펴보고 미국의 대북 강경대응의 배경을 확인한다.   사례 1: 러시아 선박을 건드리면 안됨을 몸소 깨달은 해적   최근 이런 예는 러시아 해군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0년 소말리아 해적이 러시아 컨테이너 선박을 납치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배에는 5천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석유가 있었다. 러시아는 해군을 급파하여 인질로 잡힌 선원들을 구조한 뒤, 소말리아 해적을 포로로 잡아오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해적들을 체포한 뒤 러시아로 데려와 재판을 받고 러시아 감옥에서 징역을 살게된다. 한국도 아덴만에서 석해균 선장을 공격한 해적들을 국내로 데려와 무기징역 등으로 처벌한 바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국제법의 모호성을 이유로 “자국의 세금으로 이들을 감옥에서 먹여줘야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들을 작은 배에 풀어줬다. 배는 무동력 상태였으며, 항해를 위한 항법장치도 부서버렸다. 이후 망망대해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로도 해적의 본국송환을 거부하고 유사한 방법으로 해적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민간 선박이 공격을 받는 경우에는 기관포는 물론 각종 포(包)등을 소형 해적보트에 퍼붓는 식으로 해적을 소탕했다.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은 러시아 선박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사례 2: 북한이 가장 두려워 하는 백골부대, 박정인 장군   한국의 백골부대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강력한 대응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1973년 3사단의 박정인 장군이 사단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북한군이 철책 표지판 작업중이던 아군을 향해 기습 사격을 가했다. 이로 아군측 수명이 사망 및 부상 당했다. 곧장 박정인 장군은 북한의 사격에 포격으로 맞대응한다. 포격으로 북한측 초소를 박살냈다. 뿐만 아니라, 그날밤 박 장군은 사단내 모든 트럭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DMZ 한계선까지 북진하도록 했다. 당시 북한은 전쟁이 일어나는줄 알고 비상동원령까지 내렸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일인 3월 7일을 기념해 ‘3.7 완전 작전’으로 불린다. 그러나 당시 군이 과잉대응을 했다는 이유로 박 장군은 해임됐다. 이 사건이후 북한은 백골부대가 지키는 지역으로는 도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탈북자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측에서 백골부대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F-15K 편대가 비행중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사례 3: 분단이후 처음 전투기 무장 발사 지시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2015년 8월을 전후해 북한은 연이어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을 이어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DMZ 목함지뢰도발 사건이다. 아군측 순찰지역에 북한이 목함지뢰를 매설해 우리측 군인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우리군은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것으로 도발에 강경대응했다. 그러자 북한은 확성기에 포격을 가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방송중단은 없다며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후 북한은 실제로 우리측 대북확성기를 향해 조준포격을 가했다. 이후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전군에 전쟁 준비단계에 돌입했다.   당시 기자가 공군관계자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우리측 공군 전투기에는 분단이후 거의 처음으로 무장 발사 허가 지시, “체크 아머 핫(Check Armor Hot)”이 하달됐다. 이 지시는 선공격하라는 지시가 아니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무장을 발사해도 좋다는 지시다. 그런데 아무리 군사대비태세가 격상되어도 공군 전투기의 무장 발사 지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보통 유사 상황에서 경고성 비행이나, 공중경계에 들어가며 무장발사 허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무장이 실수로 발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장을 잘 관리하라는 의미로 “체크 아머 콜드(Check Armor Cold)”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당시 무장 발사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이런 무장 발사 지시는 합참의장이나 군 통수권자의 지시 없이는 불가하다고 알려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공군 전투기가 무장을 발사 가능한 상태로 준비(lock)해두면, 북한 전투기에서도 한국측 전투기의 무장이 발사 준비에 들어갔음을 인지할 수 있다. 결국 전쟁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꼬리를 내린 건 북한이었다. 당시 8월말 북한은 고위급 인사를 남측으로 급파하여 대화를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사례 4: 박정희 전 대통령,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   1976년 8월 18일 벌어진 판문점 도끼 만행도 북한의 사기를 꺾은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북한측은 총기가 없는 비무장상태로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UN)과 작업에 참여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나무를 자르지 말라며 위협을 가했다. 미군이 가지치기를 지속하자 북한측은 현장에서 가지치기에 사용하던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했다. 도끼만행 사건 직후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미친 개(북한)는 몽둥이가 약이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라”며 즉각 강경 군사행동에 돌입, 북한에 보복작전을 준비한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도 강경대응에 나서긴 마찬가지였다. 리처드 스틸웰(Richard Stilwell) 사령관은 당시 일본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곧장 한국으로 왔다.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그가 당시 일반 여객기가 아니라 전투기 후방석에 탑승하여 급히 한국으로 왔다는 점이다. 북한의 행위에 대해 미군과 우리군은 즉각 데프콘 3를 발동하고 북한의 행동을 규탄했다. 이후 한국과 미군은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에 돌입, 미국 전략무기인 F-111과 F-4 전폭기, B-52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공군의 F-5와 F-4를 출격을 지시하여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도와줬다. 이후 북한측은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김일성이 직접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유감 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바넷의 커브.   워싱턴에서 힘 얻고 있는 강경대북압박의 군사이론, ‘바넷의 커브’   이렇듯 앞서 여러 상황에서 보았듯이 강한 군사력과 의지는 적을 두려움에 몰아넣고, 적의 싸울 의지조차 꺾어버림을 알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강경군사압박과 관련된 내용이 남북, 미북대화를 앞두고 워싱턴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것을 뒷받침하는 미국 국방학계의 이론은 ‘바넷의 커브(Barnett’s Curve)’다. 로저 바넷(Roger Barnett)은 미국 해군대학의 교수이며 전쟁 전략 전문가다. 그의 이름을 따 바넷의 커브로 불리는 이론이 있다. 여기서 커브는 그래프를 의미한다. 즉 바넷 박사가 만든 그래프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 그래프는 X선과 Y선이 있고, L 자 모양의 곡선을 그린다. Y선(세로)은 긴장도(Intensity)를 나타내고, X선(가로)은 전쟁가능성(probability)을 나타낸다. 이 때 긴장도 곡선이 올라갈수록 전쟁가능성은 낮게 표시되고 반대로 긴장도 곡선이 낮아질수록 전쟁가능성은 높아진다. 사실 이 이론은 미국과 구소련 냉전시대를 대변하던 이론이다. 냉전이 지난 이후 미국 군사학계가 분석한 결과, 미국과 구소련이 서로 앞다퉈 군비증강을 하던 시절이 사실 가장 전쟁가능성이 낮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양국간의 동일한 힘의 균형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균형이라는 것은 동일 능력에 준한다.   가령 구소련이 핵무기를 가지면, 미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구소련이 생화학무기를 가지면, 미국도 생화학무기를 가져야 한다. 즉 적이 가지는 카드와 동일한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 적의 능력과 동일한 능력으로 적의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아도 적이 1이라는 힘을 제시하면 이를 0으로 만들려면 동일한 1을 제시하여 1을 -1로 제거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과거 냉전과는 다른 산술이 오간다. 북한은 핵을 손에 쥐었지만, 한국은 핵이 없다. 과거 주한미군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한 것도 일종의 이 바넷의 커브에 준하는 대응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현재 북핵 위협을 카운터(counter)하여 무력화할 능력이 없다. 또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중인 우리정부는 유사시 핵무기 개발도 원천불가한 상태로 가고 있다.   미국 항모전단이 이동중이다. 사진=위키미디어   긴장이 완화될수록 오히려 전쟁가능성 높아져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방어(defense)와 억제(deterrence)는 불가능하다는게 바넷의 커브가 가지는 이론이다. 방어란 적을 제거(defeat)혹은 패배하게 만드는 힘을 말한다. 억제란 적을 처단(punishment)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현재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동등한 힘을 갖추지 않고서는 북의 위협에서 방어도 억제도 할 수 없다. 현재로선 주한미군이 유일한 힘이다. 북한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바로 북한의 생화학 무기와 대량살상무기(WMD)이다. 북한의 생화학능력과 대량살상무기에 준하는 동일 능력이 없는 한국은 바넷의 커브로 보면 긴장국면은 완화되지만 전쟁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이는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국방 운운하며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북한으로부터 막아낼 군사적 수단을 모두 잃게 된다. 결국 긴장이 완화되어 전쟁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적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어 긴장이라는 상황조차 발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마치 맹수 앞의 먹이감이 된 꼴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1988년 미국 장기전략 위원회에서 작성한 억제의 차별>이란 보고서에서도 심층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 냉전시대 핵 전략가 앨버트 볼스텔라(Albert Wohlsteller)가 위원장을 맡아 작성됐다. 보고서에 참여한 위원으로는 헨리 키신저도 포함됐다.   “우리의 이익을 제3국에서 방어하기 위해서 미국은 저강도 분쟁을 더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이런 전쟁에서의 적은 항상 어디에나 있고 항복하지 않는다 (to defend its interests properly in the Third World, the United States will have to take low intensity conflict much more seriously. It is a form of warfare in which "the enemy" is more or less omnipresent and unlikely ever to surrender).” 중략 “우리는 더 넓은 범위의 분쟁에 맞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난해하고, 저강도 긴장과 높은 전쟁가능성이 널리 퍼진,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형태의 분쟁까지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we need to fit together strategies for a wide range of conflicts: from the most confined, lowest intensity and highest probability to most widespread, apocalyptic and least likely).”   보고서는 긴장이 낮아지는 형태에서 전쟁가능성이 높아지기때문에 여기에 맞는 향후 미국의 대응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북한처럼 지속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적이 저강도 도발 등을 이어나가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바넷의 커브를 토대로 현재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급파한 항모전단이 긴장을 높이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는 가장 안전하고, 전쟁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또한 미국의 힘이 북한의 힘을 넘어서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먼저 꼬리를 낮추고 대화국면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북한의 입장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먼저 이를 모면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셈이다. 앞선 4가지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북한이 가지는 힘보다 강한 힘으로 압박하면 할수록 북한은 높아지는 전쟁가능성과 위협때문에 자구책을 찾을 수 밖에 없게된다. 따라서 오히려 우리측이 저강도 군사대응으로 북을 대하면 대할수록 북한측에 더 힘을 실어주는 셈이고 우리 스스로 한반도내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행위임을 직시해야 한다.  

김동연

이란의 마지막 왕, 샤. 사진=위키미디어 현재 이란은 북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사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이 이란의 것을 함께 해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과거 부시정부는 북한과 함께 이란도 악의 축(Axis of Evil)로 규정한바 있다. 현재는 적으로 분류된 이란이 한때는 미국의 우방이었던 적이 있다. 한미동맹처럼 미국과 이란은 각별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란을 중동의 친미를 기반으로 삼고 다른 중동내 악의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한순간에 미국은 우방인 이란을 잃어버렸다. 1970년대 말까지 이란은 모하메드 레자 샤 팔라비 (Mohammad Reza Shah Pahlavi)가 통치했다. 샤(Shah)는 이란에서 왕을 의미하며 실제 모하메드 레자 샤 팔라비는 이란 팔라비 왕조 출신의 왕이자 통치자였다. 그는 이란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됐다. 당시 미국정부에서는 그를 샤라고 불렀다.   미국과 손잡은 이란의 우익정권, 샤    샤는 일찍이 10대부터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문물을 배웠고 서방의 신문물 받아들여 서구식 선진화를 꿈꿨다. 1953년 미국의 지원으로 백색혁명(White Revolution)을 일으킨 샤는 민족주의자였던 모사데그 정권 몰아내고 이란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 그가 집권한 이후부터 샤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파격적인 선진화를 추진한다. 당시 중동권에서는 보기드문 여성의 참정권 보장은 물론이고, 토지개혁, 농업화에서 산업화로의 전환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이때 산유국 이란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세금도 걷지않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70년대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국가였다. 당시 전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이란의 테헤란이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이란의 여성들은 형형색의 미니스커트와 나팔바지를 입고, 남자들은 유명가수처럼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렀다. 도로의 차들도 유럽의 폭스바겐 등이 즐비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파격변화에 1970년대말 이란의 국민들과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CIA의 보고서에서 이란의 경제지표를 보면 취업난이 심각했고, 인구중 3분의 1이 30세 이하 젊은이들이었다. 점차 사회적으로 문제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대학생들이 때때로 데모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나왔지만, 당시 CIA의 보고서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77년 11월 18일 작성된 CIA의 〈주간요약보고서(weekly summary)〉에서 이렇게 쓰여있다.   “샤의 통치에 있어 그는 아무런 내부 위협이나 정치적 반대파가 없는 상태다. 그는 향후 10년을 통치할 가능성이 높다(There is no serious domestic threat or political opposition to the Shah’s rule. he would seem to have an excellent chance to rule into the next decade).”   CIA가 이란내 샤의 반대세력이 싹트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샤는 대학생 데모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데모의 규모도 점차커지고 경찰과 군을 동원하면서까지 막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중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CIA는 샤의 몰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계엄령을 선포하는 상황에 도달했음에도 샤가 여전히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1979년 1월 시민들의 혁명에 국가는 무너졌다. 혁명의 수장인 호메이니에게 통치권을 물려주고 샤는 이란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그는 이란 땅을 밟지 못한채 타국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는 당시 암을 앓고 있었고, 암 때문에 잦은 두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CIA는 그가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CIA는 연이어 빗나간 예측보고서를 계속 작성했으며, 실제 샤가 좌익세력인 호메이니가 주도한 시민혁명으로 추방당하기 직전까지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샤를 몰아내고 시위로 정권에 올라온 호메이니. 사진=위키미디어 샤 정권 붕괴 예측 실패한 CIA의 후회와 교훈   샤 정권 붕괴이후 약 넉달이 지나, 1979년 6월 CIA는 사후 분석보고서를 만든다. 앞서 CIA가 왜 잘못 예측한 것인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왜 샤의 집권붕괴 예측에 실패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급비밀(Top Secret)으로 분류된 150장 분량의 보고서다. 보고서의 제목은 《국가 분석 센터의 이란 내란 1977년 중순~1978년 11월 실적 분석보고서》 다. 보고서는 이 보고서의 목적에 대해서 “1977년 여름부터 1978년 11월까지 샤 정권이 생존하지 못할 것임이 명확했음에도 왜 그런 실적을 냈는지, 당시에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검토해본다”고 적혀있다.   보고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란은 전례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수집된 정보를 잘못 해석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당시 보고서가 데모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그 데모를 만든 세력과 샤의 반대세력에 대한 분석에 소흘했다는 점을 꼬집었다(the conditions under which the opposition would split; the depth of the feelings against the Shah). 뿐만 아니라, 당시 수집된 현장정보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도가 높은 정보들이 포함되지 않고 무시됐다. 이런 정보를 간과하면서 정확한 분석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작성된 보고서들은 상당수가 잘못된 정보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뿐 아니라 다른 관련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이란 비밀정보국 사박(SAVAK)이 미국 CIA와 반대파 좌익 세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사박은 반대파 진영에 대한 상당량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미국측에 이를 보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외부로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추측이 있다.   이란의 샤 정권 붕괴 사건은 미국 CIA의 역사상 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CIA는 이런 실패의 교훈을 토대로 발전했다. 해당 사건은 CIA 내부적으로도 교육자료로 활용하며,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과거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난 당 대표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박근혜 탄핵을 지켜봤을 미국 CIA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이던 2016년말부터 2017년 3월 탄핵이 결정될때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란의 지도자 샤를 연상케 한다. 당시 박 대통령의 임기중 여러차례 촛불시위가 있었고, 세월호를 기점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인 좌익진영을 주축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시위가 거세졌다.   세월호 이후 2015년부터 시위는 점차 거세졌다. 광화문 거리에는 민주노총 등이 민중총궐기 집회 등을 열었다. 민노총, 전농 등 53개 8만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당시 국정농단과 탄핵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이다. 집회 참가자들을 쇠파이프 등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 수십대를 집회 참가자들이 때려부섰다. 버스의 유리창을 깨고, 일부는 경찰버스의 기름통에 불이 붙은 천을 집어넣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과격 폭력 시위가 거듭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데모에 참가한 반정부 대세력은 이들의 청와대 행을 막는 경찰을 향해 과잉진압이라고 했다. 이 장면이 다수의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어 보도됐다. 한때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숨어들어가는 사건도 있었다.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 태블릿 PC가 언론을 통해 등장,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기폭제가 됐다.   과연 미국 CIA가 현재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란의 샤 정권 붕괴 예측 실패를 딛고 일어난 CIA가 한국의 박근혜 정권 붕괴 과정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2월 27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과 벌금 1천185억원을 구형했다. 이 구형이 내려진 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녀 사냥(Witch Hunt)’이라는 단어 하나만 달랑 올렸다. 한국에서 검찰이 해당 발표를 하고 불과 몇시간이 지난 뒤였다. 당시 발표시간은 한국시간으로는 오후였지만 미국 동부는 이른 새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경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트위터를 게재했다. 미국 대통령은 매일 수시로 CIA 국장으로부터 각종 정보 보고를 받는다.

장상인

“당신의 내면, 존재의 중심 깊은 곳에도 역시 바깥으로 발산되는 숨겨진 힘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비한 에너지를 ‘영혼’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천재성‘이라고 한다. 카를 융(Carl Jung)의 학설을 따르는 분석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self)라고 불렀다.”   ‘스티뷰 도나휴가’의 저서 에서 전하는 운명론이다. 그는 20대 때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여행을 통해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그의 나침판 론은 특별하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그 자체가 엄청난 미스터리이니까. 그러나, 언젠가 그 나침판이 당신을 ‘집’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태어난 도시나 마을이 아닌 당신 자신만의 집으로 말이다. 당신의 나침판은 계속해서 당신을 올바른 삶의 방향과 목적으로, 그리고 당신이 누구이며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이끌 것이다.”   ‘여행은 쉬지 않고 끝없이 건너야하는 끝없는 사막의 연속이 아니라, 언제나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지치고 힘든 여정일지라도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권력과 연애의 성쇠   “안개서린 봄의 산 저만큼 멀리 있건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꽃향기를 전하는 구나.” “매미 허물같이 무상한 이 세상 같도다/ 사쿠라꽃(벚꽃)은 피었다 했더니/ 어느새 지고 말았으니.”    벚꽃이 장관인 일본 일본의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들어있는 벚꽃에 대한 노래다. 벚꽃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너무나 빨리 지는 것이 흠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벚꽃을 ‘삶의 기쁨과 무상(無常)의 상징’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오오누키 에미코(大寬惠美子)’는 저서 에서,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권력과 연애의 성쇠(盛衰)’로 결론지었다. 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사쿠라(櫻)꽃은 대개 1-2주정도 피어있으나, 거센 바람과 비를 만나면 단지 몇 분 만에 떨어지고 만다. 이 짧은 시간에 전개되는 드라마가 은유(隱喩)로서의 사쿠라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호소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생을 생각해 보면, 사쿠라처럼 권력에도 연애에도 성쇠(盛衰)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여의도의 강둑을 화려하게 뒤덮던 벚꽃이 비바람을 만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던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새 정부 인사들의 ‘낙마(落馬)’가 벚꽃같다.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명이 피고 졌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거센 비바람을 만난 인사는 꽃을 피운지 며칠 만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무상(無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비바람을 탓하랴.’   호수 주변의 벚꽃“사쿠라꽃의 애상(哀想)은 지고(至高)의 권력·부(富)·사랑 같은 것으로 표현된 현란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그 덧없음을 통감하는 것”이라는 ‘오오누키(大寬)’ 박사의 말이 백번 옳다. 고위 공직자라면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력(耐力)이 있어야 할 것이며, 스스로를 뒤돌아봤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 화살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야당은 ‘인사 검증 팀을 문책해야 한다’며 청와대의 검증(檢證) 시스템을 도마 위에 올린다. 언제나처럼.   검증(檢證)의 사전적 의미는 ‘가설이나 사실, 이론 등을 검사하여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청와대 인사 검증 팀이 사실에 대해 ‘참인지, 거짓인지’를 사전에 철저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필자는 검증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검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본인만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백마 타고 오는 지도자는 언제나 올 것인가?   일본의 오늘, 우리의 오늘“나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실제인가, 가짜인가? 종이로 만든 허구? 신(神)의 모습을 닮은 허상? 재로 만든 팬터마임? 무대에 등장한 실재하지 않는 존재? 적의를 품은 마술사가 빨대로 불어대는 비눗방울?”   이태리의 유명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소설 속에 들어있는 한 구절(句節)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봄이 왔으나, 우리에게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감 있는 지도자는 백마를 타고 ‘언제 나타날 것인가?’ 사람들의 나이는 점점 늘어나는데...내년 봄의 벚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김동연

38노스는 폐쇄결정 이후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사진=38노스의 홈페이지 캡처 국무총리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미국의 대북전문프로그램, 38노스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중단 이유가 실적이 저조했기때문이라고 했다. 이 중단으로 38노스는 문을 닫기로 했다. 정부는 지원중단의 배경으로 논문의 수가 적고, 실적이 좋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다. 미국 워싱턴에서 38노스의 역량(peformance)에 감히 토를 달 사람이 있을까. 이미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38노스의 역향력은 인정받고 있다. 그 목적이 학술이던, 사업이던, 외교이던, 누구라도 대북정보를 얻고자 한 사람이라면 한번이라도 38노스의 자료를 거치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38노스가 정확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대북 인공위성 사진 분석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아마도 미국의 3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정보기관 다음으로 가장 정확한 이미지분석(IMINT analysis)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최대 해상도가 제한적인 상업위성사진을 토대로 말이다. 분석을 맡은 전문가들 중 일부는 전직 CIA 요원들도 포함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 등과 관련된 논문, 기사 등에서 38노스는 빠지지 않고 인용되고 있다. 국내 뉴스에서도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한다거나, ICBM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경우, 매번 38노스의 분석내용을 애용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38노스의 예상과 같은 결과가 반복됐다.  상근 직원은 3명 밖에 안되는데도 새로운 정보 올라오고 3개국어로 자료 제공  국내 언론에서는 38노스가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단순히 싱크탱크라고 부르거나, 대북소식통, 대북전문매체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하나, 38노스는 존스홉킨스 대학 산하 한미연구원(USKI)이 운영하는 프로그램명이다. 즉 싱크탱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유를 들자면 큰 회사가 싱크탱크라면, 그 회사안에 마련된 일종의 태스크포스(TF)팀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 규모와 역량이 작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게 작은 태스크포스는 그동안 모든 예산을 상부의 별다른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해왔다. 기자가 2016년 인터뷰한 38노스의 제니 타운 공동대표는 자신의 업무가 연구이지만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재단의 문을 두드린 끝에 지원금을 받아왔다고 말한 바 있다.  일단 38노스의 역량을 논하기 전에 정부가 38노스를 단순히 싱크탱크로 치부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체급자체가 싱크탱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실제 상근직원은 단 3명뿐이다. 그런데 그 중 대표직을 맡은 조엘 위트는 외부 업무 등이 많아, 실제론 2명이 상근 직원으로 보는게 맞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즉 고작 2명 밖에 안되는 직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거의 매일 온라인에 올리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영문으로만 공개되던 분석내용을 요즘에는 일어와 한국어로 번역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38노스가 10여년간 변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그 발전의 노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초창기 38노스는 개인 블로그와 같은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번듯한 정보창구가 됐다.    기자가 38노스의 공동대표를 인터뷰했을 당시 던진 질문중 하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있기에 그 많은 자료들을 그렇게 상세하게 분석하느냐” 였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상근직원이 고작 3명” 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적은 인원이 운영하는 38노스를 여타 유수 싱크탱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논문의 수가 적다는 식의 폄하는 비논리적이다. 38노스에서 근무중인 유동적 인력인 인턴의 수를 다 합쳐도 10명 안팎이다.    38노스가 최근 공개한 영변 핵실험장 재가동 인공위성 분석사진. 사진=38노스 캡처 미북대화 앞두고 38노스 등이 영변 핵시설 재가동 공개하자, 발끈한 북한  또한 예산의 절반가량이 월급이라는 정부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38노스는 사안별 아웃소싱(out-sourcing) 형태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특정 사안이 있을 때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분석 등을 의뢰한다. 가령 전직 정보기관 전문가에게 의뢰를 맡기는 식이다. 학계나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분석을 의뢰하는데 이런 전문가들을 푼돈을 주고 운영할 수 있을까. 여타 다른 싱크탱크들이 제공하는 급여와 비슷한 급여를 주고 있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즉 예산에서 월급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월급이라는 것도 외부 전문가 분석 의뢰건 등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38노스가 직원급여로 들어가는 급여만 보면 그리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정부가 지원한 금액이 얼마나 부족했기에 지원금의 상당액이 급여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서도 지원금을 늘리지 않았단 말인가.  38노스의 예산 중단의 배경으로 북한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준비하는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공위성이 항상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공개되다보니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압박과 미북 대화 등을 앞둔 마당에 무언가 제대로 대비를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최근 38노스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있다는 인공위성 분석자료를 발표했다. 미북대화를 앞두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정은의 주장이 씨알도 안먹히게 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를 두고 최근 조선중앙통신은 “인공위성으로 보는게 실제와 다르다”는 식의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주장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등 뒤에 칼을 숨긴 범죄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믿을 것인가. 전과가 많은 범죄자의 결백하다는 주장을 믿을 것인가. 이런 와중에 38노스의 폐쇄를 가장 반길 것은 북한임은 자명하다.    38노스의 검색량.(빨간원) 사진=구글 캡처 싱크탱크 실적 계수에서 포함하지 않는 논문 개수로 38노스 평가한 정부  정부가 38노스의 실적을 논문의 개수 등으로 폄하하고, 실적은 주관적인 견해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전세계 싱크탱크의 실적을 평가하는 기관 등이 있고, 이런 기관 등의 검증기준이 있기때문이다. 일종의 싱크탱크 실적 계수(Think Tank Performance Index)가 있다. 국제개발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에서는 싱크탱크의 실적을 언론의 인용수, 학계의 인용수, 웹사이트 방문자 수, 웹사이트 방문 트래픽양, 소셜미디어 팬의 수로 측정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논문의 개수는 없다. 이 기준으로 보면, 38노스는 싱크탱크가 아님에도 웬만한 유수 싱크탱크의 실적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38노스는 싱크탱크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리스트에는 없다. 일단 국내 언론에서 38노스의 인용건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내 유수 싱크탱크를 언론에서 거론한 횟수보다 많다. 구글에 38 North를 치면 검색건수가 무려 5억 7천만여개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 는 약 1백만개다. IISS(국제전략연구소) 약 1백만개, 브루킹스 연구소 4백만개, 랜드연구소(RAND) 9백만개다. 세계 유수 싱크탱크들조차 38노스의 약 6억개의 검색결과 수는 앞서지 못한다. 이 검색양의 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실제 빅데이터 측정에서 검색되어 나오는 수를 반영하여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 대선 결과 등을 예측할때도 구글 검색이후 나오는 검색된 데이터 수를 반영하여 실제 당선자를 예측한 사례도 있다. 따라서 38노스의 검색량은 그만큼 인용된 기사와 논문의 수가 많다는 의미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38노스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리는 내용, ‘38 노스는 계속 된다 (38 North will continue)’를 올려놓은 상태다. 최근 워싱턴 싱크탱크 및 학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이번 대응을 두고 외교적 결례라는 등 다양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김동연

목발을 치켜든 남성의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그런 그의 모습에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군 장성들, 의원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미 의회 국정연설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발을 치켜든 남성은 탈북자 지성호씨다. 북에서 어릴 적 달리던 기차에 두 다리를 잃은 뒤 목발로 탈북한 사람이다. 그런 지성호씨는 현재 탈북자들을 돕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탈북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의 오벌오피스(oval office)에 모였다. 세계 언론 앞 유창한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에서 북송되는 탈북자들을 막아주시고, 자유를 누려야 마땅한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세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건넨 탈북자도 있었다. 이현서. 그녀는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라는 책을 쓴 탈북작가다. 해당 책은 영어로 작성되었으며,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다. 그녀가 7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탈북 과정에서 중국 등에서 북송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가명을 쓴 것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현서씨. 사진=VOA 영상 캡처   이현서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떨친 탈북자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그녀는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진행하는 TED(이하 테드,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미국 비영리재단의 강연회)에서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전달한 바 있다. 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빌 게이츠,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 등 유명인이 서는 강연회로 유명하다. 이런 국제적인 강연회에서 이현서씨는 탈북작가로서 북한 인권 등에 대해 강의한 바 있다.    기자가 이현서씨를 처음 접촉한 것은 그녀가 미국 워싱턴에 방문했을 때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였다. 그녀와의 인터뷰 진행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워싱턴 일정을 마친 뒤에도 여러 개의 해외출장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미국 외에도 다수의 국가에서 이현서씨를 초청, 그녀의 북한 인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녀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방문한 펜스 부통령과도 한국에서 만났다.    이현서씨와의 일문일답이다.      국제 강연 TED에 서고,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출간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  TED에서 강연 중인 탈북작가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월간조선》 독자들을 위해 이현서씨,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사람들이 저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저는 가끔 ‘9세입니다’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저의 프리덤 에이지(freedom age,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기간)입니다. 저는 고향을 함경남도 함흥에 둔 탈북자 이현서입니다. 대다수의 탈북자가 그랬듯이,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약 11년 동안 숨어 지내다 2008년에야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남한에서의 삶이) 비록 쉽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복수전공 했습니다.    그 뒤로는 ‘TED’라는 국제적인 유명한 스피치 무대에 남북한 최초로 초대받아, 북한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TED 웹사이트와 유튜브(Youtube)를 통해 공개된 제 강연 영상의 조회수가 1843만이 넘을 정도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TED라는 무대가 저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제가 2년 전 영어로 출간한 저의 35년 인생을 담은 자서전, 《The Girl with Seven Names(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가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1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의 자서전은 35개 국가에서 해당 국가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한때 저는 ‘채널 A’의 탈북자들의 방송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탈북 강연을 주로 하다 보니, 지금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저를 더 많이 찾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북한 인권 운동가 혹은 탈북작가로 활동하며,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누리는 자유가 나에겐 영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 9년간 한국(남한)에서 자유를 누린 소감은.    “제가 서두에 밝혔듯이 저의 프리덤 에이지는 9세라고 했죠. 제 인생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 것이 고작 9년밖에 안 되다 보니 사실 가끔은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믿기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로 표현하자면, ‘surreal(비현실적)’ 한 느낌을 받습니다.    기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이 질문과 유사한 지금 제가 누리는 자유에 대한 제 소감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대답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미 (북한에서) 너무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았기에, 가끔 마주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 행복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햇살 따뜻한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그 광경을 서울의 어느 커피숍에서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큰 행복을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18년 동안 저는 (당시 북에서) 우리의 적국이었던 남한에서 지금처럼 이렇게 커피를 마실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또 제가 그렇게 중국에서 방황하고 쫓기면서도 꿈에라도 와보고 싶었던 우리의 반쪽 땅인 남한에 이제는 제가 와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 믿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에라도 얻은 이 자유가 너무 소중하며,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모든 이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유가) 그렇지 못하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에 가족을 두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눈엣가시처럼 북한의 인권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저는 수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정말 영원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 탈북을 한 시점이나 북한에서 하시던 일 등 북한에서 있었던 생활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탈북을 할 당시에는 북중 국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한국 드라마나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몰래 들어오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무렵 저는 밤마다 집에서 몰래 텔레비전으로 중국 채널을 시청하게 되었죠. 집이 국경지역이다 보니 중국 채널들이 잡혔기 때문이죠. 북한에는 채널이 단 하나밖에 없는데, 중국은 정말 다양한 텔레비전 채널을 갖고 있어 당시에는 중국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에서 외부 미디어 콘텐츠 시청은 불법입니다. 제가 몰래 텔레비전을 제 방에서 보던 그때도 불법이었죠. 그래서 저는 방에 숨어 텔레비전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밤마다 커튼과 두꺼운 담요로 창문을 가리고 중국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매우 발달된 현대 도시들을 보면서 어쩌면 북한이 지상낙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점차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탈북한 1997년 말은 당시 북한에서 거의 300만명이 굶어 죽어 나가던 대아사(大餓死) 때였습니다. 북한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죠. 저는 그때 국경을 사이에 둔 채로 두 나라(중국과 북한)를 보면서, 완전히 서로 다른 블랙과 화이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한 눈은 시장에 넘쳐나는 꽃제비들과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영혼들… 정말 어둑컴컴한 북한의 현실을 보았어요. 다른 한 눈은 너무나도 컬러풀한 또 다른 세계, 눈 앞에 펼쳐진 생생한 중국을 끝없이 쳐다보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증폭했습니다. 그러고는 텔레비전이 아닌 중국을 직접 내 눈으로 경험하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싶다는 커다란 욕망으로 인해 어느 겨울밤, 가족한테도 비밀로 한 채 혼자 압록강 국경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일주일 후에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굳게 다짐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제 고향 땅과의 마지막 순간이었고,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14년이라는 긴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꿈의 나라 같았던 그 화려한 중국이 사실은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저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또 수많은 세월을 숨어서 지내야 하는 그런 곳인 줄은 꿈에서조차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만나는 사실은 하루 전에 알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서전을 전달 중인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이번에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을 면담을 하셨는데, 그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죠.    “백악관과 제(탈북자) 사이를 이어주시는 관계자분이 워싱턴DC에 계십니다. 그분이 1월 초부터 이메일로 저에게 대단히 중요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니 빨리 프로필(자기소개서)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여러 곳으로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니 그분에게 답장을 거의 한 달 동안 못 했어요. 제가 하도 연락이 안 되니 결국 그분이 1월 말 즈음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죠.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미국으로 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어요.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고, 나중에 워싱턴DC에 도착하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설(국정연설) 초대와 관련된 초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연두교설이 있기 하루 전에서야 연두교설에 우리가 참석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팅도 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엄마(모친도 이후 탈북함)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처음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감정은 굉장히 복잡했어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의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고 계시는 분이시라, 혹시 대통령과의 미팅으로 인해서 제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걱정도 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비록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하루 전에 알았지만 그 자리서 바로 만나겠다는 확답을 백악관 측에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약 하루 동안 대통령과의 면담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세계에서) 제일 파워 있는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시고, 우리 모든 탈북자가 바라는 걸 이루어줄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의 탈북자 북송 문제를 어쩌면 대통령께서 해결해 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면담에 참석하겠다고 결정을 내렸어요.    당시 이런 과정을 우리 엄마도 모르셨습니다. 제가 늘 다니는 해외출장 중의 일부라고만 생각하셨죠.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엄마의 지인분들을 통해서 듣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엄마의 친구분들이 엄마에게 카톡으로 지금 네 딸이 트럼프 대통령 만나는 걸 봤다는 식으로 내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매우 놀란 순간이셨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에 긴장해 손이 차가워지자… 트럼프 대통령 ‘왜 이리 손이 차냐’고 물어  TED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 중인 이현서씨. 사진=유튜브 캡처   — 면담 초대를 받은 직후 미국에서 제공한 편의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죠.    “미국 백악관에서 항공권을 보내와 한국에서 출발한 3명의 탈북자와 함께 미국으로 갔습니다. 숙소는 백악관에서 아주 가까운 호텔로 이미 예약을 해주셨더군요.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 있기 직전에는 맥매스터(McMaster)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 인사들과 오전 9시부터 비공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우리 탈북자 8명이 호텔 앞으로 나오자, 백악관에서 보낸 경호원 4명이 저희 주변을 앞과 뒤에서 보호해 주며 백악관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저는 사실 백악관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을 정말 만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어요. 왜냐면 대통령은 바쁘신 분이시고, 혹시 모를 더 급한 일이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못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죠. 특히나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작년 12월 무렵 미국 시카고에서 강연에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행사에 초대된 강연자들이 대략 50명 정도이고 그중의 한 분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는 몇 개월 동안 그 행사를 고대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해외출장으로 오바마 대통령만 오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런 기대 같은 걸 안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실제로 만남이 성사되었고, 당초 대통령과의 미팅은 30분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께서 우리 탈북자들과 악수하고 인사를 하는 등 모두 50분의 시간을 함께하셨습니다. 저도 여러 해외출장을 통해서 주요 국가들의 정상분들을 여럿 만난 경험이 있지만 보통 그런 리더들과의 면담시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탈북자들과의 미팅 바로 뒤에 다른 스케줄이 있으셨는데도 무려 20분을 더 우리 탈북자들과 머물며 탈북자들의 스토리에 귀 기울여주셨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합니다.”    —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소감은.    “사실 제 스스로도 너무 놀랐던 점은 트럼프 대통령을 봤던 그 첫 순간 저의 반응입니다. (탈북자들) 8명이 처음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한 백악관 관계자분들이 다 기다리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백악관 관계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3분 정도 지났을 무렵, 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집무실 테이블 앞에 대통령께서 손에 서류를 들고 읽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을 본 첫 순간 정말이지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안 믿겨서 머릿속이 온통 백지장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아우라(aura, 기운)에 혼(魂)이 잠시 나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분(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었고 (대통령께서)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악수를 건네셨어요. 제 차례가 되었을 때까지도 저는 그분 손을 잡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너무 놀라서 입이 안 열렸던 것 같아요. 대통령을 보고 너무 긴장해 제 손이 차가운 얼음장같이 변했는데 그런 제 손을 잡더니 손이 왜 이리 차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너무 긴장해서입니다’라고 아주 짧게 답변을 했었습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저는 제가 고개를 돌렸을 때 봤던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과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딸 이름 부르듯이 ‘현서’ 불러준 펜스 부통령… 어린아이처럼 기뻤다  펜스 부통령과 경기를 관람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웃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펜스 부통령과 한국에서의 만남은 어땠나요.    “백악관에 갔을 때는 펜스 부통령께서는 없었는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팅이 끝난 직후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평창올림픽 오프닝 때 펜스 부통령께서 오시니 지성호씨와 제가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백악관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북유럽의 자서전 출간 행사로 출국했습니다. 거기서 일주일 머물다 한국으로 귀국, 바로 다음날인 9일 천안함 기념관에서 펜스 부통령을 만났습니다.    뉴스의 영상에도 여러 번 나왔지만 제가 펜스 부통령을 만난 그 순간 너무 좋아서 어린아이처럼 뛰었습니다. 제가 당시 펜스 부통령께서 들어오는 문을 등지고 서 있었죠. 그래서 펜스 부통령의 입장을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 ‘현서!’라고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아보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펜스 부통령께서 제 이름을 불러주시다 보니 순간 너무 감격해서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기뻤습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의 눈에서 우리 탈북자들을 마치 아버지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함께했던 다른 탈북자분들도 아버지를 만난 듯 정말 편안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은 30분이 예정되었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대북제재를 말씀드리고자 펜스 부통령과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이 내용을 들으시던 부통령께서는 제가 매우 스마트하다며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추천서도 써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 이번에 미국이 탈북자들을 불러 모은 연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으로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셨는지요.    “저도 사실 백악관의 미팅 참석 요청 전화를 받고 나서 정말 의아했어요. 전혀 기대나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께서 우리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정말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 이제는 더 이상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북한 인권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중국도 함께 강력하게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천안함 기념관에서 펜스 부통령과 이야기 중인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미국 수뇌부의 많은 관료(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 폼페오 CIA 국장 등)도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요.    “수뇌부와는 아침 9시 비공개 미팅이 있었습니다. 현 문재인 정부에서 바뀐 한국 내 탈북자들의 인식, 북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머지 답변 생략)     이 질문에 대하여 탈북작가 이현서씨는 상세히 답변해 주었으나, 국가안보 및 국제관계 등과 저촉되는 부분이 있어 《월간조선》은 일반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답변의 일부만을 공개하기로 한다. 또한 당초 백악관에서 비공개로 설정해 놓은 미팅의 취지상 그 내용을 외부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 현재 워싱턴 내 분위기는 ‘한 번만 더 북한이 위협적인 도발(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을 한다면 무언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 팽배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전직과 현직 미국 고위 관료(존 볼턴 전 국제안보차관) 등도 북한의 꼼수인 시간 끌기나 추가 도발에 더 이상 휘말리지 말고, 미국이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른바 코피전략(bloody nose)을 준비 중이라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들었던 느낌은 분명히 평창올림픽 후 그 어떤 중대한 결정을 백악관 집무실에서 내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답변 중 미국 측과의 비공개 미팅 등에 관한 부분은 비공개라는 본래 취지에 맞춰 《월간조선》은 한미동맹관계 및 국가안보상 밝히지 않기로 한다. 또한 이 답변 내용이 적(敵)을 이롭게 한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 탈북자들에게 “북한 스스로 군사력 강하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    — 미국 관계자들을 만나본 결과,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북한과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 같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거나 잘 모른다거나 어떻게 보시나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북한의 특히 김가(金家) 정권 밑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들에 대해서 (미국 수뇌부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미디어에 공개된 대통령과의 24분의 내용 외에 비공개로 진행된 20여 분간의 대화 중 나온 트럼프 대통령께서 던진 질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우리(탈북자들)에게 ‘북한 정권이 자국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떠드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때 그 질문에 제가 이렇게 답을 했어요.    ‘북한 군부에는 군인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군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그것은 북한의 텔레비전에는 절대 공개 안 되는 영화로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영화다. 해당 영화는 북한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영화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력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북한 군부는 그 영화 한 편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지구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오판을 가지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북한의 군부가 외부세계에 대한 군사력 저평가로 인한 오판으로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리 지금 외부의 미디어 콘텐츠가 북으로 유입되어 북한 주민들의 김씨 정권을 향한 충성심이 약해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현재 이 지구상에서 북한 사람이 가장 북한 정권에 세뇌된 사람들이기에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당과 수령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이 바로 북한 군인들이 가진 정신력이다. 그들의 이러한 정신력은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남한의 젊은이들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습니다.    제 답변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제 대답을 좋아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보편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꺼냈는데 아마도 북에서 자라난 사람인 제가 가지는 인식과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북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 일각에서는 미국의 수뇌부가 한국(남한)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나요.    “이 부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로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 북한과 함께한 평창올림픽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태도나 방식에 (미국이) 의구심을 나타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미국은 절대로 두 번 다시 북한의 선전공세(attractive propaganda)에 속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현재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평화협정의 그 어떠한 진전도 기대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미국은 절대로 남북의 대화로 무언가의 진전을 기대할 일이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남북대화를 통해 진전된 모습을 기대하는 한국 정부를 나이브(naive·순진하게)하게 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상낙원… 베네수엘라의 안일한 안보의식으로 영원한 자유도 없어  미 국정연설 도중 목발을 치켜든 탈북자 지성호씨. 사진=TV조선 영상 캡처   — 귀하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공화국의 표본이자 상징인 미국을 방문했고 그 국가의 수장(트럼프)을 만났습니다. 반대로 귀하는 앞서 언급한 권리 및 가치와는 반대되는 국가인 북한에서 살다 왔습니다. 극과 극을 경험한 셈인데,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저는 주로 미국이나 영국으로 강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 가끔 일부 사람들로부터 ‘공산주의에서 살아본 제가 느끼는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질문을 제게 던지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여기며 불평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한국에서도 여러 번 접하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 세상에 누구나가 100%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분명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스템 속에서도 문제점들이 많죠. 하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둔갑한 독재국가에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아주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언론의 자유, 발언의 자유,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그곳에서 살아본 저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사실은 김일성이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지상낙원. 즉 모든 주민이 이밥에 돼지고깃국을 먹을수 있는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그 나라가 바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이나 미국을 경험하면서 제일 놀랐던 부분은 사람들이 동물 보호 를 외치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인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 그곳에서 태어난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인도에 모두 3번 강연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북한의 여성 인권 상황이에요. 가부장적인 사회인 북한에서 남성의 인권도 없는데 여성의 인권이라니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지금 제가 찾은 이 자유,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너무 소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주의가 북한보다 훨씬 도입되었고 북한보다 더 부유했던 지난날의 베네수엘라가, 현재는 모든 것이 다 파괴가 된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너무 익숙해져서 국가안보에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영원한 것 또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무조건적으로 북한에 비위 맞춰줄 때 아니야”  김정은이 약전기계공장을 시찰 중이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 이번 방미를 통해서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나, 한국의 대북정책 등에 대하여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이번 방미에서 제일 중요한 사안은 북한 인권 문제였습니다. 저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비위를 맞춰줄 게 아니라, 대북정책과 북한 인권에 관해서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는 그런 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분명히 우리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당사국인 우리보다 다른 국가들이 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북한 인권 결의안을 체택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약한지 의문이에요. 특히 현 정권에서는 왜 (북한 인권이) 금지어가 되었는지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당사국인 현 정부가 좀 더 앞장서서 당당하게 북한에 요구할 건 요구하고,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필요한 건 해주고 밸런스를 맞추는 정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미국이 향후 탈북자 인권의 개선의지 등을 가지고 있던가요.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미팅 당시 (탈북자들에게) 이야기했듯이, 이미 미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위한 노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더 관심 가지고 해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 트럼프 정부는 전례 없는 대북압박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 평창올림픽에 앞서 미국의 항공모함 3척을 다시 한반도로 보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대북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이번 트럼프 정부의 전례 없는 대북압박 전략은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효과를 높이 평가합니다. 미국의 그 어떤 행정부도 이번 트럼프 정권만큼 북한과 중국을 압박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현재 북한 수뇌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북한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이 정말 북한을 선제공격할지 아닐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북한은 불안한 상태에 처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처음으로 한가닥의 희망을 느꼈습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탈북자 신변보호 해주는 제도 마련 시급해    — 이번 면담 전, 면담 중, 면담 후에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든지, 종북단체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사실 2013년 TED 강연 후 갑자기 양지(陽地)에 너무 노출되어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학교 가는 것조차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경찰청에 신변보호 요청만 하면 보호를 해주겠다는 제의가 두 차례나 있었죠. 그런데 대학생인 제 곁에 누가 항상 저를 따라다니고, 수업시간에도 누가 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거절했습니다.    설마 이한영과 같은 사건(김정은 처조카 암살)이 요즘에도 일어날까 하는 생각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절차상,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신변보호를 제공해 주는 서비스 자체가 없다고 과거 국정원을 통해서 들은 바 있습니다. 저처럼 해외로 자주 강연을 다니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셈이죠. 그 후로는 사설 경호업체 인력과 함께 해외로 가기도 합니다. 과거 2016년 중국 베이징에 탈북자 최초로 공개강연을 갔을 때는 당시 정부에서 일부 도움을 준 바 있습니다.    최근 백악관 방문 및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이후부터는 제 발언이 국제적으로 더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특정 국가를 방문하기에 앞서 여러 번 해당 국가의 방문을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지난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부터는 해외출장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국제행사의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일정을 취소하기도 합니다.”    이현서씨는 앞으로도 북한인권운동을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본지에 인터뷰 답변을 전달한 직후 해외로 출국했다.⊙

배진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김정은과의 정상(頂上)회담에 전격적으로 응했다. 그동안 그가 북한에 대해 쏟아대는 거친 언사들을 보면서 오매불망 ‘북폭(北爆)’을 고대하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여튼 미북(美北)정상회담 발표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던 3월 13일, 트럼프는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인사를 했다. 온건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갑자기 경질한 것이다. 후임으로는 군(軍) 출신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했다.    트럼프는 언뜻 보기에 정반대로 보이는 사인을 동시에 보냈다. 도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인가, 평화인가? 내로라하는 국제전략가들까지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저서들을 보면, 그가 왜 그러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트럼프는 ‘협상가’, 조금 속되게 말하면 ‘장사꾼’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즐긴다. 그는 부동산 사업가로 한창 잘나가던 1987년에 펴낸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대통령은 마땅히 ‘협상가’ ‘장사꾼’이어야 한다고 공언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큰 거래가 성사되도록 만드는 유능한 협상가일 뿐이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원제: Time to get tough)》)    협상가도 그냥 협상가가 아니다. ‘투사’다.    “나는 기업인이기 때문에 항상 거래라든가 계약에 묻혀 사는 사람이다. 큰돈과 큰 이권이 걸린 세계경제무대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들과 늘 협상을 하고 또 거래를 한다. 경제계를 누비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는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이다. 협상 테이블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까지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끝까지 싸우는 그런 전투적이고, 악랄하고, 포악하고, 극악무도한,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투사’들이다. 미국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거래의 기술’  트럼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거래의 기술》과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킬까? 그는 《거래의 기술》에서 11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내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라면서 자신의 삶과 거래의 지침으로 11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트럼프가 제시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그가 미북정상회담에 어떻게 임할지를 점쳐 보자.      1. 크게 생각하라    〈나는 크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이 말대로라면 트럼프는 김정은과 ‘빅딜(big deal)’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과거 6자 회담을 비롯한 북핵 관련 대화들은 몇 개의 단계를 상정하고 단계마다 미국과 북한이 작은 양보를 주고받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크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트럼프는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와 미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대신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을 받아들이겠다고 할 수도 있다.      2.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나는 긍정적 사고의 힘을 믿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거래를 할 때는 보수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즉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    이는 트럼프가 북한에 빅딜을 제안하더라도 그에 대한 환상에 빠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고 핵무기 및 ICBM 폐기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요구할 것이다.      3.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나는 또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한 가지 거래에만 몰두하지도 않고,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나는 최소한 대여섯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일을 추진시킨다. 왜냐하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더라도 무언가 복병이 될 만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발언이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트럼프는 작년 8월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미국을 더 위협하면, 북한은 전 세계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지난 3월 6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는 “북한과의 대화에서 가능성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모든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세계가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헛된 희망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 방향이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전쟁과 대화,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4.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작년 11월 7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방한은 ‘시장조사’였을 수 있다. 사진=뉴시스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그럴듯한 시장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나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아무에게든 직접 물어보아 얻는 결론이 항상 자문회사의 조사결과보다 유용했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트럼프는 CIA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매일 접하고 있다. 그럼에도 작년 11월 방한(訪韓)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주한미군 기지를 돌아보았다. 얼마 전에는 탈북작가 이현서씨를 비롯한 탈북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트럼프는 이를 향후 한반도 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시장조사’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5. 지렛대를 사용하라    〈거래를 할 때 가장 나쁜 자세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일이다. 그런 태도를 보이면 상대방은 전의(戰意)에 불타게 되고, 당신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힘을 내서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고, 당신이 힘을 내면 낼수록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은 커진다.… 때로는 상상력과 세일즈맨으로서 자질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서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대화에 나선 것은 ‘최선의 방법은 힘을 내서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작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했을 때 한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북한에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내가 장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빅딜’ 카드를 제시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면 북한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할 것이다.      6. 입지보다 전략에 주력하라    〈중요한 것은 좋은 입지가 아니라 최선의 거래이다. 좋은 거래를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듯이 부동산의 위치도 선전이나 심리적 효과에 따라 얼마든지 좋다고 판단하도록 만들 수 있다.… 내 말의 요점은 꼭 좋은 곳의 땅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항상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면 입지조건이 나쁜 땅을 사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쫄딱 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제일 좋은 입지의 땅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과도한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단순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방을 코너로 몰아서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의 거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저쪽에서 요구하는 값보다 훨씬 싼값으로 구입할 때만이 그 호텔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던 사람이 트럼프다. 이로 미루어볼 때 트럼프는 김정은과 거래하면서 핵폐기 등에 대한 명백한 약속을 받아내고, 그 약속이 검증되지 않는 한, 과도한 양보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 언론을 이용하라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    트럼프의 대북 발언은 ‘화염과 분노’와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핵협상’으로 극과 극을 오갔다. 이는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려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진의가 어디 있는지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8.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신념을 위해 싸우면 때로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기는 해도 대개는 최선의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리버럴 언론들의 영향으로 트럼프를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는 미국적 가치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는 말로 미루어볼 때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을 원칙을 무너뜨려가면서까지 ‘협상을 위한 협상’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9.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라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잠깐 동안은 흥분시킬 수도 있고, 그럴듯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온갖 언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좀 떠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사람들은 끝내 허실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최고의 입지에, 최고의 자재를 써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건물들을 지어 성공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도 ‘최고의 물건’으로 만들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미북정상회담이 ‘최고의 물건’이 될 수 없고 자기에게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이를 주저없이 깨 버릴 수도 있다.      10. 희망을 크게, 비용은 적당히    〈쓸 만한 가치가 있으면 돈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적정 규모 이상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요즘에도 나는 청부업자가 부당하게 액수를 늘린다고 생각되면 5000달러나 1만 달러짜리라 할지라도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그 정도 하찮은 거래 때문에 골치를 썩어요?” 내 대답은 이렇다. “만일 내가 1만 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25센트짜리 전화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사업을 접어야죠.”〉    트럼프는 북한에 과도한 양보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돈 드는 일은 한국과 일본에 전가(轉嫁)할 것이다.       11.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내게 돈은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진정한 재미는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평화무드가 한창 조성되고 있는 판에 온건파인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강경파인 폼페오 CIA 국장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남북한을 비롯해 누구나 ‘이제는 대화와 평화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허를 찔러서 게임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면서 더 큰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트럼프의 대외관계 7원칙  1999년 대우건설의 여의도 트럼프월드 1차 분양 홍보차 방한한 트럼프. 그는 ‘최고의 물건’을 제공하는 사업가였다.  앞의 11가지 원칙은 ‘사업가’ 트럼프가 기업경영을 하면서 도출해 낸 것들이다. 트럼프는 2011년에 나온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에서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로 다음 7가지를 드는데, 그것이 미북정상회담에서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항상, 사과란 없다.    이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협상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이나 일본의 이익은 희생될 수도 있다.    둘째, 최강의 화력과 병력을 준비한다.    트럼프는 대화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항공모함 전단이나 B-2폭격기 등 전략자산들을 전개하는 등 대북위협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길 수 있는 전쟁에만 참전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큰 부담 없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북한과 쉽게 전면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넷째, 우방에 충직하고 적들을 의심한다.    이는 역으로 미국에 충직한 우방에는 미국도 충실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의심이 가는 나라는 고생 좀 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섯째, 기술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린다.    이는 평소 국방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첨단무기를 확보하고 미래전에 대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을 쓸 경우, 이는 드론, 사이버전 등을 동원한 첨단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섯째,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위협에 대비한다.    이것이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이유다. 북한이 100개에 이르는 다량의 핵탄두와 미국 본토를 제대로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갖추기 전에 이를 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현재와 과거의 참전군인을 존경하고 지지한다.    트럼프가 군 출신 인사들을 국가안보보좌관(맥매스터), 대통령비서실장(존 켈리), 국무장관(마이크 폼페오 내정자), 국방장관(제임스 매티스), CIA 국장(마이크 폼페오) 등으로 중용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앞으로도 미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에서 군 출신 인사들의 의견을 경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군 출신 인사들은 성향상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과도한 양보를 하는 것이나, 아니면 미북정상회담 자체에 대해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회담 잘 풀리면 김정은과 친구가 될 수도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면 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트럼프는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얻어내기 위해 세게 나갈 것이다.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사업을 할 때, 트럼프는 거친 건설업자들을 상대하면서 그들보다 더 거칠게 나가곤 했다.    “앞으로 나 말고 당신들에게 일거리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다 파산해도 나는 건물을 지을 사람이야! 나한테 잘해줘 봐! 이번 일 제대로만 해봐!”     트럼프는 김정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할지 모른다.    “이번에 성과가 없으면, 앞으로 나 말고 당신들하고 대화하려는 미국 대통령이 있을 것 같아?”    협상이 잘 된다면 트럼프는 의외로 김정은과 잘 통하는 사이가 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화끈한’ 스타일의 지도자를 좋아한다. 트럼프도 1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갑작스럽게 어떤 사람들은 나의 최고의 친구가 된다.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다.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만일 정상회담이라는 쇼 무대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장난’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미북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이 ‘간보기’ 차원에서 추가로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한다든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트럼프는 가만히 있을까? 아마 참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먼저 공격을 받으면 더 강하고, 더 사납게, 그리고 가장 이상적으로는 눈 사이를 정확히 공격하여 반드시 되갚아주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장상인

-권력자의 ‘착각’과 ‘만용’이 종국에는 파국 불러-400여 년 전 슨푸성의 이야기가 차라리 울림 있어   미투(#MeToo)-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하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치부(置簿)돼왔던 치부(恥部)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온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유명 인사들. 그들은 권력을 무기로 약한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등 몹쓸 짓을 일삼아 왔다. 종국에는 목숨까지 던지는 가해자들의 극한 상황들을 접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하나 짚어 봤다.   불타라 여름의 십자가 남쪽하늘 높이밤의 어둠을 비추는 별자리는 눈물의 상들리에마치 무지개처럼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일본의 유명 밴드 ‘서올던스타스(Southern All Stars)’가 작사·작곡한 노래 이다. ‘전설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오다 줄리아의 유배지 찾는 일본인들...자발적으로 제(祭)에 참석해    2008년 5월 18일. 필자는 도쿄 출장 중 다케시바산바시(竹芝棧橋) 선착장으로 갔다. 오시마(大島)·고즈시마(神津島) 행 선박이 깃발을 펄럭이며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끔한 제복을 입은 선원들의 움직임이 무척 분주했다. 출항 시각인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수녀들과 할머니 신자들도 있었다. 한눈으로 봐도 ‘오다 줄리아 제(祭)’에 가는 발걸음이었다. 정각 7시가 되자 동해기선 소속의 제트선(船)은 우렁찬 뱃고동을 한바탕 울리더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배는 도쿄만(東京灣)을 뒤로하고 속도를 냈다.    두 시간쯤 달리던 배는 첫 번째 기착지인 오시마(大島)에 도착했다. 이 섬은 오다 줄리아가 최초로 유배됐던 곳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이 오르고 내리더니 잠시 기항했던 제트선은 다시 뱃고동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망망대해. 따르던 갈매기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 고즈시마!’  저 멀리 가물가물 큰 섬이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 고즈시마였다. 도쿄로부터 정확히 4시간이 걸렸다. 직선거리로 178㎞인데도 일반 객선으로는 13시간 반이 걸린다. 서울에서 예약한 우메다(梅田)라는 여관에 짐을 풀었다.   ‘임진왜란의 피해자’...신앙과 정절을 지킨 그녀의 넋을 기려   도쿄 성당에서 온 신부와 신자들의 미사는 ‘오다 줄리아’의 겐쇼우비(顯彰碑) 앞 작은 광장에서 열렸다. 겐쇼비는 숨어있는 선행을 밝혀 세상에 널리 알리는 송덕비를 의미한다. 미사를 주재한 도쿄 교구(敎區)의 우라노 유우지(浦野雄二) 신부는 잔잔한 목소리로 강론을 했다.     “오늘 우리가 오다 줄리아 님의 겐쇼우비(顯彰碑) 앞에 모인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400여 년 전 조선에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정벌에 따른 피해자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이 섬에 유배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줄리아 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합시다.”      신자들은 성호를 그으며 머리 숙여 기도했다. 필자는 도쿄 하치오지(八王子) 성당에서 단체로 온 도미자와 히테코(富澤日出子·67) 할머니와 쓰카모토 세치코(塚本世智子·54)씨에게 물었다.     “얼마 전 성당의 주보에 난 줄리아님의 글을 읽고 감동해서 이 제(祭)에 참석했습니다. 그 시대에 자신의 신앙과 정절을 지킨 숭고한 조선 여인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최근 줄리아 님의 전설 같은 사실을 접하고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무리해서 오기를 잘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필자는 “연약한 시녀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용을 베푼 권력자에게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고 화답했다. 유배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참석자들은 미사를 마친 후 버스에 분승해서 ‘아리마’ 전망대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가다가 정상 부근에 이르러 도보로 갔다. 대형 십자가 아래에는 ‘줄리아 종언(終焉: 임종)의 섬’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우도성에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 동상-항상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다 줄리아도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느낄 수 있었을까. 외딴 섬에서 외로움과 고난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겠는가.   오다 줄리다의 묘지  마을로 내려오자 인구 2000명 남짓한 작은 섬마을 골목마다 태극기가 휘날렸고 곳곳에 매달린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오다 줄리아의 묘지에는 커다란 태극기와 일장기가 꽂혀있었다. 묘비 중앙에 새겨져 있는 田(전)자는 “십자가를 감추기 위해 그렇게 표기했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설명이 있었다. 필자는 오다 줄리아의 묘지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오다 줄리아의 묘지 주변에는 작은 석상들이 많았다. 고즈시마에 유배돼 스러져간 이름 모를 사람들의 묘지였다. 고즈시마는 그만큼 열악한 일본 밖의 땅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400여 년 전으로 되돌려 슨푸성(駿府城)에서 벌어진 일을 스토리로 엮어 봤다.   일본을 천하 통일한 권력자...최소한의 양심과 관용 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저 아이가 누구의 시녀더냐? 참으로 절색이로구나! 저 아이를 불러오너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지목한 시녀는 다름 아닌 ‘오다 줄리아’이다.  정확한 나이나 가족관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596년 5월 일본에서 활동하던 베드로 모레홍(Petro Morejon)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됐다. ‘조선에서 오다’에서 ‘오다’라는 성(姓)을 얻었다는 설(說)이 있으나, 세례명 ‘줄리아’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558-1600)가 처형당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후궁의 시녀로 전락했다.   “그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줄리아입니다.”“줄리아? 그럼 너도 기리시탄(크리스천)이더냐?”“그러하옵니다. 기리시탄입니다.”“허허. 이 궁(宮)에 기리시탄이 있었다는 말인가. 여봐라! 궁에 있는 기리시탄들을 모두 색출하라.”    이에야스(家康)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궁(宮)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며칠간의 수색 끝에 14명의 공복들이 크리스천으로 밝혀졌다.   “저들을 모두 감옥에 가두어라.”  그런 가운데서도 이에야스는 줄리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다시 줄리아를 불렀다.   “기리시탄을 버려라. 그렇다면 너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겠노라. 그리고, 너를 나의 측실에 봉하겠노라”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분의 뜻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에야스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느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독한 아이로다. 썩 물러가라.”    이에야스는 진노했다. 궁 안은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혹독한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   “이에야스님의 심기를 거스렀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오늘날도 잊히지 않아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닌가. 그런데, 한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에야스는 부하들에게 ‘오다 줄리아’의 신상에 대해서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양녀이자 기리시탄이라고 합니다. 궁에서도 몰래 기도하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고 합니다.”   오다 줄리아가 성(城)에서 몰래 기도했던 탑 “뭐라? 고니시(小西)의 양녀? 참으로 기분 나쁜 아이로이구나. 저 아이를 당장 멀리 일본 땅 밖으로 내쫓아 버려라. 40년 유배형이다.”    결국 줄리아는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이즈(伊豆)제도에 있는 오시마(大島)로 유배를 떠난다. 궁의 문무백관을 비롯해서 궁안의 모든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일개 시녀인 그녀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본 최고의 권력자와 맞대응을 했으니 말이다. 1612년 3월  슨푸성(駿府城)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심의 표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의 유훈(遺訓: 죽은 사람이 남긴 훈계)은 4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노라.”    사람은 권력이나 재산 등 외적 평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인지하는 내적 평가가 중요하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권력을 과신한 나머지 연약한 여인들을 유린(蹂躪)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장상인

-닭의 건강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본의 양계장을 찾다   2017년 8월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린 살충제 달걀 파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일본은 어떠할까?’   간토(関東)지방 도치기(栃木)현에서 최고의 달걀을 공급하는 이나미(稻見) 상점을 방문한 후에 이 회사와 거래하고 있는 양계장을 찾았다. 안내는 ‘무루이 고이치(室井光一·51)’ 공장장과 ‘혼자와 가즈히로(本澤一宏·25)’ 사원이 했다.   나스시오바라(那須塩原) 시가지를 벗어나 고불고불 소로를 지나고, 고개를 넘어서 도착한 곳은 숲 속에 자리한 ‘와타나베 팜(Farm)’. 현으로부터 3년 연속 우수상을 받은 양계장이었다. 진입로에서 부터 눈이 내린 듯 하얀 소독약이 질펀하게 뿌려져 있었다. 필자의 검은 구두가 순식간에 흰색으로 변했다.   365일 소독약을 뿌리는 양계장의 진입로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AI(조류인플루엔자)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양계장의 책임자 ‘와타나베 시게루(渡邊茂·35)’씨가 필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말했다.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자, 닭들을 만나러 가시죠.”   ‘꼬끼오! 꼬끼오!’   오후 세시인데도 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듯 수탉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향수어린 닭 울음이었다. 와타나베(渡邊)씨가 닭장의 문을 열자 약 200평 크기의 공간에 닭들이 꽉 차 있었다. 미국산 보리스 브라운(Boris Brown)이었다.   와타나베 팜 양계장의 내부 보리스브라운은 노른자가 진한 데다 흰자까지 탐스러운 갈색 달걀을 낳는 품종으로 정평이 나있다. 암탉들 사이에 기골이 장대한 하얀 수탉들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높은 곳에 올라서 감시하고 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수탉들  “저기를 보세요. 하얀 수탉들이 암탉들을 수 십 마리씩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은 공간에 갇혀서 알만 낳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공존하는 모습들이 좋아보였다.   총 1만 마리를 키우는 양계장   필자는 와타나베(渡邊)씨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다.   “여기에 있는 닭은 몇 마리가 되나요? 저 닭들은 나이를 알 수 있을까요?” “이 공간에만 1000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나이는 대체로 24세입니다.”   필자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닭의 나이는 일주일이 일 년입니다. 전문 용어로 24주령(週齡)이라고 합니다.” 그는 '닭은 병아리로부터 17세, 즉 17주가 되면 알을 낳기 시작한다'고 했다. 필자가 다시 질문했다.   보리스 브라운의 특성과 모이에 대해서 설명하는 와타나베 씨 “닭의 모이 중 특이한 것이 있나요?”   “저희 양계장은 탄산칼슘과 인산칼슘, 파프리카, 아스타크산틴(astaxanthin), 제올라이트(zeolite)와 해초, 목초산, 뽕나무 이파리, 쑥과 포도가루, 야자 깻묵... 등 '이나미 상점'의 매뉴얼대로 합니다. 단지, 닭의 건강을 위해서 고춧가루를 먹이는 것이 특징 중의 하나이지요.”    필자는 놀랐다. ‘닭의 건강을 위해서 고춧가루를 먹인다’는 사실이 신기해서다.   먹는 물건·환경이 변하면 신체도 변해   와타나베 씨는 “닭 한 마리당 140g의 먹이가 주어진다"면서 "아침에 한 번만 준다"고 했다. '좋은 모이를 주기 때문에 제법 많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와타나베 팜의 닭은 총 10,000마리. 닭의 먹이와 건강관리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양계장이었다.   닭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와타나베 씨 “닭들의 움직임만으로도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닭들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많이 모자랍니다만, 가업(家業)의 승계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서 넘치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양계장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필자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먹는 사람이 기뻐하면 좋겠다는 것.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는 모리사와 아키오(森澤明夫)의 소설 에 들어 있는 한 대목을 떠올려봤다. 주인공 ‘무라타 지로’와 양계장의 주인공 ‘와타나베 시게루’가 오버랩(overlap)되어서다.   “먹는 물건·환경이 변하면 신체도 변합니다. 사람도 닭도 마찬가지입니다”는 와타나베씨의 말도 끌림이 있었다.

박종선

해결이냐 파국이냐. 바야흐로 북핵문제가 종착점으로 치닫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고비다. 목전의 두어 달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여기에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946년 뉴욕 출생인 그는 편향적인 발언을 일삼고 스캔들을 달고 다닌다. 언행은 거칠고 공격적이다. 심지어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여러모로 다소 비상식적인 인물로 비치는 것이 우리의 평균적 정서다. 미국에서조차 또라이니 허풍쟁이니 하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혹독한 경쟁과 검증을 극복하고 미합중국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이다.       과연 그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그는 40대 초반에 이미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삶과 성공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바로 ‘트럼프:거래의 기술’(Trump:The Art of the Deal·1967)이다. 이 책은 무려 1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어 ‘deal’은 다루다, 매매하다, 거래하다, 협상하다 등등을 두루 가리킨다. 그는 자서전 제목에 이 단어를 넣어 자신의 독특한 인생관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좋아해서 거래를 한다.… 나는 거래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거래의 기술’을 필두로 그는 거의 스무 권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대부분이 공저(共著)라서 모두 그가 직접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책마다 그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한결같이 ‘거래의 기술’에 언급된 내용을 부연하거나 상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래의 기술’이 그의 삶과 사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단서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는 ‘거래의 기술’을 대통령선거 캠페인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그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위대한 협상가다”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외국과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아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호소가 이른바 ‘성난 화이트 아메리칸(Angry White American)’의 표심을 예리하게 자극했다. 이처럼 ‘거래의 기술’은 그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 변두리에서 주택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따라서 그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직선적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교사의 얼굴을 때려 멍이 들게 한 적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주류에는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자신의 성장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유일한 일류 딱지인 ‘와튼스쿨’ 학력을 항상 자랑했다. 이런 콤플렉스가 다소 허풍을 떨고 과장을 즐겨하는 그의 기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독특한 기질을 오히려 삶과 사업의 활력소로 삼았다. 특히 그는 변두리 개발업자인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맨해튼 중심부에서 자수성가해 보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1971년 25세 때 드디어 맨해튼에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얻었다. 그는 어렵사리 사교클럽에 가입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불과 몇 년 후 그는 기상천외한 거래를 통해 낡은 대형호텔을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재개장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트럼프타워 건설, 카지노사업 진출, 트럼프파크 건설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인 부동산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호텔 사업을 처음 결심할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27세(1973)에 불과했으며, 실제로 호텔에서 잠을 자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만제곱피트에 달하는 그 괴물 같은 (코모도어)호텔을 사려 하고 있었다.” 그는 속수무책 퇴락해가는 대형호텔을 살리기 위해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한 큰 그림을 그렸다.       그의 구상은 복잡한 협상이 필요했다. 그는 소유주와는 가격 협상을, 뉴욕시와는 감세 협상을, 은행과는 대출 협상을, 하얏트호텔과는 공동운영 협상을 동시에 벌였다. 3년을 씨름한 끝에 드디어 이 협상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그는 오로지 사업구상과 협상을 통해 맨주먹으로 이 호텔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하얏트호텔과 지분을 반씩 나눠 가졌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지렛대를 또 다른 지렛대로      이 성공이 바로 트럼프 신화의 다딤돌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크게 생각하라(Think Big)’는 신념을 얻었다. 그는 남이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으로 커다란 협상판을 만들었다. 그는 거기에 모든 문제를 풀어놓고 자기 주도로 일괄타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쪽과의 합의를 저쪽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저쪽과 합의를 또 다른 지렛대로 사용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통 큰 면모는 협상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조건을 바꿔가며 협상을 질질 끌지 않았다. 대담한 제안을 하고는 곧바로 가부(可否)를 압박했다. “협상에서는 너무 약삭빠르게 굴면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으며, 시간적으로도 가능한 빨리 매듭짓는 것이 유리했다. 그 가격으로 사거나,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런 스타일은 대개 디테일을 놓치기 쉽다. 나중에 그런 디테일이 악마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에게도 성격상 그런 우려가 농후하다. 그러나 그는 평생 협상으로 이골이 난 인물이다. 결코 서둘러 사인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매입가에 관해서는 합의를 보았으나,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가 수천 가지는 될 것이다.”      그는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고 강조한다. 겉보기에는 정말 멋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이 옳다는 바를 고수하기 위해 거칠게 싸웠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시 당국과 소송전도 불사했다. 그는 손해가 두려워 싸우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본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신념’이란 바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교사를 구타한 것도 크게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자립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며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그의 사업이나 협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를 이용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철저하게 응징했다.”       그는 그에게 맞설 기색이 보이면 아예 초장에 거친 대응을 통해 상대를 후려갈겼다. 대선 캠페인 때 보잉 CEO가 그의 중국 정책을 문제삼았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보잉이 공급하는 대통령 전용기 값이 너무 비싸다”고 비판하고 ‘주문취소’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자 적어도 업계에서는 그의 통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또한 그는 거래를 할 때는 일을 추진시킬 지렛대를 잘 사용하라고 주장한다. “코모도어호텔을 구입할 때 나는 호텔 주인을 설득해서 그들이 호텔을 폐업할 의사가 있음을 공표하게 했다. 그들이 발표를 한 뒤에 나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호텔이 문을 닫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강조하면서 다녔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후 이례적으로 대만 총통과 통화를 했다. 여차하면 ‘하나의 중국’도 안중에 없다는 엄포였다. 요즘도 북핵문제와 FTA 재협상이 걸려 있는 우리를 상대로 갖가지 관세폭탄을 쏟아놓고 있다. 이처럼 호시탐탐 지렛대를 만들어 거래를 주도하려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특히 그의 말은 수시로 냉온탕을 오간다. 우리는 도대체 그의 의중이 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바로 그가 원하는 바이다. 그는 상대가 자신의 의중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처신이 몸에 밴 사업가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결코 정치가로 변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정치는 단순히 사업의 연장일 뿐이다.       그가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낡은 호텔의 재건사업이었다. 그때 하얏트호텔 측과 호텔 운영권 협상이 도무지 진척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협상 당사자가 실권자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최고책임자를 수소문하여 그와 담판을 지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요한 협상을 하려면 최고위층과 만나야 하는 법이다.”         “그는 교착상태를 지독히 싫어한다”      그의 자문변호사였던 조지 로스가 트럼프와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처럼 협상하라’(Trump-style Negotiation·2006)를 썼다. 거기에 트럼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착상태다. 그는 거래가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 채 무한정 끄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이처럼 그는 늘 최고위층과 만나 신속하게 담판을 짓는 방식을 선호했다. 또한 조건을 여러 번 바꿔가며 승강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는 과감한 조건을 제시해 ‘Yes’든 ‘No’든 곧바로 결론을 내려는 스타일이다. 이런 협상관이 이번에 김정은의 회동제의를 전해 듣고 ‘즉석에서’ 수용한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협상 스타일이 국제정치무대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공무원들과 무수하게 충돌했다. 특히 뉴욕시 당국은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 재건공사를 몇 년째 질질 끌며 예산만 낭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자비(自費)로 몇 달 만에 마무리하겠다고 제안하여 그대로 실행했다. 이런 경험 등을 통해 그는 공무원과 정치인의 무능과 안일을 극도로 혐오하게 됐다.       그는 지금도 정치를 ‘트럼프 스타일 비즈니스’처럼 하고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도 조직을 이용하기보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해치운다. 그는 바탕이 여전히 사업가다. 어디서나 사업가는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 자신도 “나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거의 모든 일을 마다않고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엄연한 ‘현실’이다. 어설픈 도덕적 판단은 백해무익하다. 우리는 그를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독특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독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하여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의 외교적 진전은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언급한 것은 적절하다. 그처럼 자기과시적인 사람에게는 그런 배려도 필요하다.       그는 미국이 협상을 잘못 맺어 국익을 잃었다며 워싱턴 정치를 공격해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도 이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기존의 협상을 흔들어 국제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그의 ‘거래의 기술’이 그의 정치적 운명의 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머지않아 김정은과 담판에 나선다. 그의 성격상 단판으로 끝내려 할 것이다. 그는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속내를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판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기가 한 말을 태연히 뒤집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그는 정치인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사업가적 카드를 준비할지도 모른다. 우리로선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는 평생 부동산 사업을 해온 사업가다. 우리는 여전히 사업적 거래와 국제정치적 거래가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본다. 이런 생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미 협상이야말로 ‘트럼프 스타일 정치’에 대한 본격적 시험대이다. 행운일지 불행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운명이 그런 시험대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작년 6월 전직 농구선수인 데니스 로드맨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때 그가 ‘거래의 기술’을 가져간 것이 외신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 김정은은 밤낮으로 ‘거래의 기술’를 열공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를 알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거래의 기술’을 읽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트럼프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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