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인

-日, 잠복(潛伏) 크리스천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보며   “잠복(潛伏) 크리스천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군요.”   일본의 지인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71)씨가 짤막한 문자 메시지와 함께 니시니혼신문(西日本新聞) 기사 하나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지난 3일자의 조간신문에 게재된 기사였다.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엔도 슈사쿠(문학관 사진) ▼ “종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형태가 있다”고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는 썼다. 하느님 아버지가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분노·심판·처벌하는 것과, 이에 반해 어머니처럼 인간의 실수를 용서하고 슬픔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 잠복(潛伏) 크리스천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후자였다. 대대로 내려온 성화(聖絵), 성상(聖像) 중에서 성모의 그림 ‘마리아 관음(観音)’이 많아서다. ‘어머니의 종교’를 더욱 필요로 했던 것이다.   ▼ 순교자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없는 비애(悲哀)가 있다. 빚(負)이나 열등감도 있다. 후미에(踏み絵)를 강요당하는 괴로움과 그 다리의 통증, 고통의 여러 가지를 성모 마리아는 이해하고 용서해 준다. ‘그들은 그렇게 바랐다’고 작가 엔도(遠藤) 씨는 해석을 덧붙였다.   ▼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이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성직자 부재의 금교(禁教) 시대- 발각되면 엄벌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200년 이상 비밀리에 이어간 신앙의 릴레이는 기적이었다.   ▼ 이 역사에 ‘영웅’은 없다. 주인공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불교를 가장하면서도 성모에게 구원을 청하기도 했다. 슬프고 나약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관철하는 힘이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졌다. 이러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감과 놀라움을 배가(倍加) 시킨다.   ▼ 다른 한편으로 결정 후 후예(後裔)들에 의해서 엄숙한 종교 행위를 ‘관광’ ‘지역 진흥’과 세트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당황의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흥행이 아닌 내면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까. 세계유산등록과 동시에 안아야 할 어려움이다. 짧은 글이었으나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특히, “역사의 주인공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었다”는 것과 “엄숙한 종교 행위를 ‘관광’ ‘지역 진흥’과 세트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세계문화유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잠복(潛伏) 크리스천의 의미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15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1506-1552)에 의해서 크리스천(가톨릭)이 많아졌으나, 19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금교령에 의해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 1637년에 야기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の乱)’으로 막부(幕府)의 강력한 제재에 의해 일본의 기독교가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밀랍인형으로 재현된 잠복 크리스천(아마쿠사) 1644년 이후 일본에는 가톨릭 사제가 한 사람도 존재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불교 신자로 위장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이들을  ‘잠복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잠복 크리스천은 지극히 소단위의 집단으로 비밀리에 기도문을 만들어서 암송했다. 이 기도문을 ‘오라쇼(라틴어 Oratio)’라고 했다. ‘기도’의 의미란다. ‘오라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으로,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함께 외우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그들만의 행동통일 강령이었던 듯싶다.   마리아 관음상 후미에(아마쿠사) 아무튼, 잠복 크리스천들은 메달이나 로사리오, 성상·성화, 십자가 등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자체적으로 세례를 주면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켰다. 막부(幕府)시대가 종말을 고(告)하고 메이지(明治) 시대에 종교의 자유가 시행된 데도, 그들은 크리스천으로 복귀하지 않고 토속적 신앙의 형태로 전승하기도 했다.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의 아마쿠사(天草) 지역의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 금교 시대의 신자들을 ‘잠복 크리스천’이라고 하고, 메이지 이후 토속화된 신자들을 ‘숨은(隱れ) 크리스천’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역사와 믿음에 대한 가치가, 6월 30일 중동의 바레인에서 열린 제42회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의해서 정식으로 등재된 것이다.       후미에(踏み絵)란 무엇인가.   후미에(踏み絵)는 에도(江戶) 막부가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의 성화를 밟게 하여 신자를 색출하는 방법이었다. 잠복 크리스천으로 의심되는 사람 중 성화를 밟은 사람은 배교(背敎)를 인정받아 살아나고, 주춤거리거나 밟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을 맞았다. 후미에는 크리스천을 색출하는 잔인한 도구였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나가사키에서 이와 같은 후미에를 본 후 소설 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 의 마지막 부분으로 들어가 본다.   “신부님! 기치지로입니다.”   “이제는 신부가 아니다. 빨리 돌아가는 게 좋다. 들키면 귀찮아진다.”   “저는 신부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성화 판에도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성화 판에 나도 발을 얹었다. 그때 이 다리는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백 번도 더 머리에 떠올린 얼굴 위에, 인간 중에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 위에...그 얼굴은 지금 성화 판에서 마멸되고, 움푹 파여, 슬픈 눈으로 이쪽을 보고 계신다.”   성화를 밟는 신부 로드리고(영화 '사일런스'에서) “이 세상에는 약자가 있습니다. 강자는 그 어떤 고통에도 굽히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겠지만, 저 같은 약자는 성화 판을 밟으라고 관리들이 고문하면...”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주인공 기치지로와 결국은 배교할 수밖에 없었고,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일본 이름까지 하사받은 ‘로드리고’ 신부와의 대화 내용이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약한 자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강자들의 배려일 것이다. 필자가 얼마 전 나가사키의 소토메(外海)에 있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을 다녀온 후 다뤄본 테마(Thema)이다.   등장인물과 나(작가)와의 관계는? 소토메 문학관에 게시된 영화 '사일런스' 포스터   작가 엔도 슈사쿠가 ‘침묵의 소리(김승철 譯)’에서 밝힌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된 갈등(葛藤)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설혹 나를 배신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당신이 옛날 믿고 있던 그 신앙은 자신감이나 재판하는 강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위해서 존재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가 1968년에 발표(新潮 1월호)한 단편 소설 에 묘사된 ‘버림받은 자의 슬픔’도 강자가 아닌 약자이기 때문에 겪어만 하는 비애(悲哀)일  것이다.   ‘왜? 약(弱)한 우리가 고통스러울까?’

김동연

매티스 국방장관과 아베총리. 사진=위키미디어   싱가포르 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유리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서 가장 큰 수확은 아무래도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거칠게 항의해왔다. 조선중앙방송을 통해서도 한미연합훈련을 적대행위 혹은 전쟁연습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이를 반기는듯하다. 국내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섣부른 조치라며 미국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환영하며, 한국의 독자적 훈련까지 중단을 요구, 이미 일부는 국방부를 통해 중단을 추진중이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한미의 모든 군사훈련은 중단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훈련을 하지 않는 군인만 한국에 남게 되는 것이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인이 유사시 쓸모가 있을까. 미국의 한미연합훈련 결정의 배경은 무엇일까.   워싱턴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세가지로 관측된다. 1. 한미연합훈련중단은 미국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나?    첫째, 한미연합훈련은 중단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한반도의 정국을 미국이 테스트 해보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카드를 던졌을 때 남한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를 보려고 한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대해 한국의 여론이 반길 것인가? 아니면 우려할 것인가?   미국내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보수진영이 추진한 태극기 집회와 진보진영이 추진한 촛불 집회를 지켜봐왔다. 특히 매티스 국방장관의 방한때 대규모로 등장한 태극기 집회 세력을 보고 워싱턴도 놀랐다. 당시 매티스 장관은 태극기 집회 인파에 다가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여론의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한반도의 여론을 훈련중단을 통해 지켜볼 심산이었다. 보수 진영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계기로 심각성을 깨닫고 미국과의 협조를 강화하자는 바람이 국내 여론에서 불 것인지 보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나온다면, 미국의 입장은 한국의 여론 등을 빌미로 훈련 중단에서 훈련 축소 등으로 방향을 돌릴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국내 여론은 미국의 예상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반기를 든 보수진영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극히 일부의 매체에서만 우려하는 목소리만 나올뿐이다. 주요 언론과 여론은 한미훈련중단에 무관심하거나 반기는듯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정국을 최종적으로 가늠하는 잣대로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2. 반드시 재도발할 북한을 간파한 미국의 대북압박 카드    둘째, 훈련 중단은 북한의 꼼수를 간파한 미국의 묘수다. 워싱턴내에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이미 북한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항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항상 다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미북간 대화를 통해 평화무드를 꽃피우다가도 돌연 북한은 미국의 뒤통수를 치는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도발 시점이 언제인지를 모를뿐 이러한 북한의 추가 도발은 예견된 일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언젠가는 다시 도발할 것을 알고 있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카드를 뽑았지만, 이 카드의 실효성은 북한에게 달린 것이다. 북한이 재도발을 하게 되면, 다시 훈련은 재개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다시 도발을 했기 때문에 미국은 다시 훈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한 명분이 생긴다. 따라서 이 훈련 중단이라는 카드는 사실 북한에게 득이 되는 카드가 아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북한에게 CVID 이행에 대한 부담을 떠안기게 된 카드다. 북한도 스스로 재도발하면, 미국이 언제든지 한미연합훈련 재개를 해도 할말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사실 이 훈련 중단의 책임은 북한이 쥐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의 입장에서 연합훈련 중단은 북한을 배로 압박하는 묘수인 것인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싱가포르 해군이 지난 2015년 모여서 해상 훈련을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3. 한반도에 대한 워싱턴의 지정학적 재구성     셋째, 훈련중단은 한반도를 포함한 지정학적 재구성의 의미가 있다. 한반도는 과거 한국전부터 지정학적(geopolitically) 요충지다. 일례로 에치슨 라인(Acheson Line)을 들 수 있다. 한반도는 공산권 확장을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군사적 중요성은 워싱턴 내에서도 익히 알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급성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국의 역할은 몇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의 중요성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이 일부분 바뀌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현재 한국정부의 모호한 외교적 스탠스를 들 수 있다. 친중, 친러 형태의 외교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문재인 정부를 워싱턴에서도 재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정부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를 자주 방문하는 등 여러가지 사업 등을 구상중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한국을 대신하여 일본의 역할이 확대 및 강화되는 양상이다.   이를 대변하는 한가지는 주한 미국대사로 선택된 해리스 제독을 들 수 있다. 해리스는 일본통으로 일본 수뇌부를 비롯한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내 구성된 미군기지의 역할과 방향을 파악 및 통제하고 있다. 최근 연이은 미일 정상회담도 이러한 일본중심적 한반도 작전 개편의 일부분을 뒷받침한다.   아베와 트럼프가 연거푸 만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고, 한미일 3국 정상간 비공개 대화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한반도는 불과 5년전 한반도의 구성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훈련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한미간 전시에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유사시 손발이 맞지 않는 한미 장병을 대신하려면 분명 미일연합훈련이 이런 공백을 메워야만 한다. 아직 대외적으로는 미일연합훈련이 과거와 동일한 규모라고 하지만, 이면을 보면 한미연합훈련 중단으로 늘어난 부담을 메우려는 미일의 노력이 감지된다. 이것은 최근 일본과 미국의 군사소식통과 언론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요미우리 신문은 6월말 사설을 통해 미일 동맹 강화가 새롭게 변한 한반도 국면에 필연적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 미일의 국방 수장인 매티스와 오노데라간 오고 간 대화에서도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송영무 국방장관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물론 한국의 독자적 훈련(해병대 훈련 등)마저도 중단을 내세우고 있어 미일간 국방적 조치와 한미간 국방조치가 완전히 다른 기로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미일 국방 수장간 대화 직후 매티스가 언론에서 밝힌 발언에서도 미일의 중요성 강화를 확인 할 수 있다. 매티스는 “우리(미일)의 동맹은 여전히 철갑을 두른듯 확고하다. (Our commitment to this alliance remains ironclad with a long-term ally).” 매티스가 Ironclad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부분을 주목할만하다. 매티스 국방과 아베 총리가 만나고 난 직후 아베의 군사적 중요성을 담은듯한 발언도 주목할만하다. 그는 “미일동맹은 일본의 평화와 안보뿐만 아니라 지역적 번영을 위한 초석이다”라고 말했다. 군사적 자위권을 보유한 일본이 더 이상 자국의 안보뿐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서의 역할이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방일에 앞서 방한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몸살로 면담조차 성사되지 못했다.   외교적 스킨십 외에도 미일의 군사적 스킨십도 강화되는 추세다. 가장 대표적인 훈련은 6월 8일부터 16일까지 성사된 미일인(美日印)해상 훈련이다. 3국이 모여서 대북 및 대중도발의 억제력 제공 훈련을 처음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번 훈련은 괌을 기점으로 진행된 것으로 미국의 태평양함대의 인도-태평양 작전지역 확장 및 남중국해에서 지속되는 중국의 도발, 그리고 북한의 도발까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훈련에는 미 7함대 소속의 레이건 핵추진 항공모함과 오하이호급 핵추진 잠수함까지 동원된 대규모 훈련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이 훈련에 포함된 대잠 대응 훈련이다. 적의 잠수함을 적발하는 즉시 요격하는 훈련내용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유사시 북한의 잠수함 전개도 제거하는 능력을 강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잠훈련을 통해 3국이 해당 지역에 대한 수중 작전까지도 숙달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훈련에서 대북억제력 확보차원에서 포함되어야 할 한국 해군은 빠져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출범이후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미국의 오하이호급 핵추진 잠수함의 부산 입항을 거부한 전례가 있다. 이 군사적 훈련을 보면 워싱턴의 동북아 구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추진중인 대북 대화 무드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이 대화의 실효성이 바닥을 드러나는 순간,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향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장상인

-소토메의 엔도슈사쿠(遠藤周作) 문학관 탐방기   장맛비가 오락가락한 지난 달 28일. 나가사키(長崎)를 간 김에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문학관을 다녀왔다.   버스를 타기 전 75-6세쯤 돼 보이는 할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필자가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을 간다고 하자, 반색을 하면서 ‘자기 집이 바로 근처인데, 단골 치과에 오느라고 나가사키 시에 왔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버스가 와서 할머니와 작별을 고(告)하고서 차를 탔다..   버스는 우리네 인생처럼 고개를 넘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서 ‘사쿠라의 사토(櫻の里)’ 터미널에 필자를 내려놓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버려진 심정이었으나, ‘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오겠지’ 여유를 부렸다. 보이는 건 나무와 산 그리고, 언덕뿐이었다. 터미널에서 40분을 기다리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극단적으로 ‘이대로 생을 마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운 바다였다.   미치노 에키(道の驛)   미치노 에키 정류장 드디어, 엔도슈사쿠의 문학관 입구에 도착했다 정류장의 이름이 ‘미치노 에키(道の驛)’- 석양의 언덕 소토메(外海).   ‘미치노 에키(道の驛)’는 우리의 휴게소이다. 일본 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으로 1,145개 정도 된다.   나가사키 현에도 11개가 있다. 거기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레스토랑, 농수산물 시장과 정보 센터까지 있다. 언덕은 저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상상만으로도 석양(夕陽)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살피던 중 언덕아래 자리한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 건물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의 모습(?)’ 그러한 기분이었다. 70여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 자체가 저절로 품격이 느껴졌다. 입구에서 표를 사고서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이 안 된다’고 했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 전경 낯익은 성가(찬송가)가 잔잔하게 필자의 귀에 들어왔다. ‘엔도 슈샤쿠’의 사진과 도서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돼 있었다. 문학관 입구의 글을 옮겨본다.   엔도 슈사쿠의 사진 “산간에 고요히 늘어선 작은 교회.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 한 낮에 반짝이는 바다도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입니다. 빛과 어둠,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곳 소토메(外海)는 작가 ‘엔도 슈사쿠’의 ‘마음의 고향’이자 ‘제2의 고향’입니다.”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55년 ‘하얀 사람’으로 제33회 ‘아쿠다가와’ 상을 탔고,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 준이로‘ 상을 수상했다.   소토메는 그 당시 잠복(潛伏) 크리스천이 많은 고난의 마을이었다. 그의 소설에 의해서 이곳에 문학관이 세워지게 됐던 것이다.   문학관은 상설관, 기획관 등이 있는데, 그의 탄생 95주년을 맞이해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푸르른 바다(海)...소설 속으로-   소토메의 바다 문학관 유리창으로 바라본 바다는 여전히 푸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잠시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사람들의 노력이 본받을 만했다.   “하느님! 하느님은 왜 침묵하시나이까?”   90도의 펄펄 끓는 온천에 거꾸로 매달으면서 ‘배교하라!’고 외치는 막부의 ‘갑질’-그러면서 순교자의 길을 걷는 사람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서 일본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 ‘침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국의 궁전으로, 천국의 궁전이라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신자들은 숨이 끊어질 듯 한 목소리로 성가(찬송가)를 불렀다.   관리의 '갑질'이다.   “백성들은 가엾은 자들이오. 그런데, ‘저 사람들을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신부인 당신의 태도에 달려있소이다.”   “저더러 배교(背敎)하라는 말이지요?”   관리의 말을 듣고서 신부는 기도했다.   “전능하신 아버지,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모든 이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소서.”   신부는 기도하면서 생각을 바꾸려고 했으나,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의 다음 기도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주님, 당신은 왜 잠자코 계십니까?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까?”   ‘페레이라’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을 받고서 배교를 했다. 그리고서 또 다른 신부, ‘로드리고’ 마저 배교하고 말았다. 소설 ‘침묵’은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상을 받지는 못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하고 있을까?”   문학관을 나선 필자는 다시 버스를 타고 더 깊은 시골에 갔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 곳에 ‘엔도 슈사쿠’의 비(碑)가 외롭게 서 있었다.   침묵의 비(碑)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   비(碑)에 새겨진 글을 읽고서 고개를 들자 여전히 바다는 푸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갈매기와 까마귀들이 어우려져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자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장상인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부터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大改造)에 의해서 화려하게 부활됐다. 곳곳에 산재되어 있던 사찰들이 강제적으로 이전되어 ‘데라마치(寺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필자가 ‘데라마치’를 찾았을 때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척 붐볐다. 필자의 방문 목적지는 혼노지(本能寺)였다.   혼노지 본관의 전경 오다 노부나가 최후의 사찰   “인생 오십 년 천하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즐겨 불렀다’는 노래다. 가사만으로도 전생으로 얼룩진 노부나가(信長)의 인생역정이 느껴진다. 알려진 바와 같이 혼노지(本能寺)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깊은 관련이 있다.   노부나가가 자결한 본노지의 표지석   사찰의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지금의 혼노지는 화재를 겪으면서 윤회(?)한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오다 노부나가의 묘(廟)에 대한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최후를 맞았던 혼노지는 교토시 나카교구(中京區)에 있다. 골목길 건물 모퉁이에 ‘혼노지 흔적(址)’이라는 표지석 하나가 흘러간 역사의 무상함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혼노지(本能寺)의 변(変)'에 대하여   1582년 6월 일본의 역사를 또 한 번 바꾼 ‘혼노지의 변(変)’- 부하 장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반란을 일으켜서 ‘오다 노부나가’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裝八, 1907-1978)의 소설 를 빌어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미쓰히데(光秀)는 ‘노부나가(信長)만 제거하면 천하가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인간의 야심 위에는 인간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커다란 역사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놈! 천하는 너 같은 자가 쉽게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노부나가는 언제나처럼 미쓰히데를 무시했다. 그가 왜? 주군을 배반했을까. 의문점이 많다.   일본의 기록이나 역사책에도 그 이유에 대한 설(說)이 많다. 하지만, 평소 노부나가의 말에 의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미쓰히데가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다든지, 수치심을 안기는 노부나가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 때문이었단다. 시쳇말로 상관의 ‘갑질’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기록은 없다.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노부나가의 목을 베어라. 그리고 날이 밝거든 그 목을 산조(三條)다리 밑에 효수하여 교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외치면서 주군에게 칼을 겨눈 아케치 미쓰히데-그에게 동정표를 던지는 일본인들도 많다. '말에 의해 받은 상처가 컸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노부나가의 묘(廟) 결국 아키치 미쓰히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1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노부나가가 배를 가르고 그대로 침소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화염이 노부나가의 유해를 송두리째 삼켜 버려서다. 노부나가의 목을 거리에 내걸고 천하를 움켜쥐려던 미쓰히데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결론을 뒤로하더라도 ‘혼노지의 변’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들의 삶일 듯 싶다.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의 연고의 땅(地)’   혼노지 입구에 있는 '조선통신사의 땅' 안내문 혼노지는 조선통신사와도 관련이 많다. 통신사들이 에도(江戶)로 가기 전 숙박을 하는 사관(使館)이었다. ‘조선통신사의 연고의 땅(地)’이라는 안내문에 눈이 쏠려서 자세히 읽어봤다. 간단한 글이었으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장려(壯麗)함에 있어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도다.”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혼노지(本能寺)를 보고서 에 남긴 말이다. 실제로 (김찬순 譯)에 담긴 글을 옮겨본다.     화려함을 느끼게 하는 혼노지의 본관 18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조선의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던 신유한이 ‘무적(無敵)’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장엄하고 화려(壯麗)했을까. 실제로 혼노지의 아름다움은 다른 사찰에 비해 화려하다.   신유한이 제술관으로 뽑혀서 일본에 가면서 그의 심정을 토로한 글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와 닿는다. 인생의 단면(斷面)이 깃들어 있어서다.   “나의 일생의 운명이 헛소문 때문에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가 하였다. 조물주가 나를 희롱하여 과거에 뽑힌 뒤로 백 가지 파란과 모욕과 고생을 갖추 겪었는데, 지금 또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득한 바닷길에 나서게 되었구나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겪을 재난이 가시지 못한 탓이어늘, 더 누구를 원망하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언행을 똑바로 하는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겸손한 자세야 말로 남의 오해를 불식(拂拭)시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박현도

  “국민은 정권 전복을 원한다(앗샤으브 유리두 이스까딴 니담).”    2011년 1월 튀니지 벤 알리의 24년 독재정권이 민주화 시위로 무너지면서 시작된 이른바 ‘아랍의 봄’ 때 독재정(獨裁政)이 만연한 중동(中東) 지역 국민들이 애호하던 구호다. “개도 국경을 넘어야 짖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 감시가 철저한 시리아에서도 3월 6일 남부 도시 다라에서 청소년들이 이 말을 담장에 썼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아이들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자 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같은 달 15일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와 시리아 최대 도시 알레포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현(現)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가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이듬해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스스로 대권(大權)을 거머쥔 이래 무려 41년간 부자(父子)세습 독재에 지친 시리아 국민들이 ‘아랍의 봄’에 힘입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시리아의 반(反)정부시위는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국민들을 말로 어르고 달래거나 총칼로 협박하며 자리를 굳건히 지키려 했다. 반정부 시위대 또한 강대강(强對强)으로 맞섰다. 그 결과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지난 7년간 시리아를 휩쓸고 있는 내전(內戰)이다.      시리아, 제3차 대전의 震源 되나?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 가족. 뒤편 왼쪽에서 두 번째가 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단순하게 보면 시리아 내전은 민주적인 정치개혁 없이 정권을 유지하려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이에 반대하는 반정부 세력의 다툼이다. 한 꺼풀 더 벗겨 들어가 보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유지해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초승달(Shia Crescent)’ 지대를 수호하려는 이란과 이를 막으려는 반이란 국가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억압자에 반대한다는 이슬람혁명정신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선주민(先住民)을 내쫓고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타파를 국시(國是)로 삼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를 확보해야만 반이스라엘 무력(武力) 투쟁 선봉에 선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친(親)이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수호에 전력(全力)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아라비아반도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제거하고자 애쓰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란과 시리아의 관계를 파탄 내고자 반군(反軍)을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반군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 이스라엘은 내전이 시작된 이래 약 100여 차례에 걸쳐 조용히 시리아 공습을 감행했다.    시리아 내전은 국내적으로 보면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다툼, 지역적으로 보면 친이란과 반이란의 대립이다. 더 나아가 시리아 내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 타르투스(Tartus)에 건설한 해군기지를 수호하고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꿈꾸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대립이기도 하다. 형세가 마치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칸 반도와 같아서 시리아 내전이 자칫 잘못하면 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기반은 전 국민의 약 11%에 달하는 200여만 명의 알라위(Alawi)파 사람들이다. 아버지 하페즈부터 아들 바샤르까지 알아사드 부자 정권이 1971년 이래 무려 47년 동안 존속되고 있는 것은 이들 알라위파의 단결에 힘입은 바 크다. 시리아가 독립하기 이전까지 이단(異端) 종파로 낙인찍혀 박해와 멸시를 받았던 알라위파 사람들이 시리아 정권을 유지해 왔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힘은 군권(軍權) 장악에서 나온다. 북한이 그러하듯 말이다. 이들이 시리아 정부군의 65%를 차지하고 고위 요직을 꿰차고 있기 때문에 장기 독재체제가 가능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소수(少數)이면서도 알아사드 부자 정권을 어언 반세기 동안이나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건가?      알라위 혹은 누사이리    알라위는 시아(Shia)파다. ‘시아’는 아랍어로 ‘파(派)’나 ‘당(黨)’을 뜻한다. 시아는 원어로는 시아트 알리(Shiat Ali)라고 하고 이를 줄여 시아라고 하는데, 알리파, 알리당, 즉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알라위’라는 말은 아랍어는 알리(Ali)라는 이름의 형용사 형태로 ‘알리의’라는 뜻을 지니고, 형용명사로 알리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알라위나 시아나 사실상 같은 말이다.    알리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가리킨다. 시아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기 전 632년 마지막 메카 순례를 마친 후 가디르 쿰에서 일행과 헤어지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를 지도자로 여기는 이들이여, 보라, 여기 알리가 너희의 지도자다”라고 하면서 알리를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로 임명했다고 믿는다. 시아들의 믿음과 달리 그는 무함마드 사후(死後) 24년이 지난 65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4번째 칼리파, 즉 예언자의 대리자가 됐고, 661년 정적(政敵)의 칼에 암살당한 비운의 지도자다.    알리는 예언자의 딸 파티마와 결혼, 하산과 후세인 두 아들을 두었다. 오늘날 시아파 다수를 차지하는 12이맘 시아파는 알리를 첫 번째 이맘, 하산을 두 번째 이맘, 후세인을 세 번째 이맘으로, 후세인의 직계 후손을 네 번째부터 열두 번째 이맘으로 여긴다.    이 글에서 지칭하는 알라위는 원래 역사적으로 보면 알라위라는 말보다는 ‘누사이리(Nusayri)’로 불렸다. ‘누사이리’는 ‘누사이르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누사이르는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 알나미리를 가리킨다. 그는 9세기 바그다드에서 시아파 열번 째와 열한 번째 이맘 추종자였다고 한다. 시리아가 프랑스보호령이던 시대인 1924년에 당시 여러 지역 경찰 업무를 맡고 있던 경찰총수가 아랍어로 《알라위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알라위라는 말을 사용한 이래 누사이리가 알라위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시아와 알라위  1938년 안티오크. 알라위 남성.  시아파는 형성 과정에서 주요 인물, 특히 알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정통파와 과장(誇張)파로 나뉜다. 정통파와 달리 과장파는 알리의 신성(神性)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아랍어로 굴라트(Gulat)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누사이리’, 즉 ‘알라위’는 알리를 신으로 숭앙하기 때문에 과장론자들로 불렸다. 엄밀히 따지면 알리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알라위는 대단히 영적(靈的)이고 비의적인 해석을 채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인간 알리를 신으로 과장하여 섬기는 자’들로 간주하여 이단시했다.    알라위는 신론(神論)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소 독특하다.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204/5~270)의 유출론(流出論)의 영향을 받았다. 유일신에서 나온 다양한 자연세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기에 유출론은 유일신론자들이 크게 환영했다. 태양에서 여러 갈래의 햇빛이 나오지만 해와 햇빛이 동일하지 않듯, 유일신에서 세상이 유출되지만 세상이 신이 아니기에 이슬람과 같이 유일신론을 견지하는 종교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사상도 없을 것이다.    알라위는 창조주 유일신이 본질(마으나 ma‘na), 이름(이슴 ism), 문(門・바브 bab)이라는 세 가지 양식을 취한다고 본다. 이 셋을 신성의 세 형태라고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신성의 세 가지 표현양식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과 유사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알라위가 십자군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본질은 뜻, 의미라고도 하는데 창조되지 않고 영원하다. 유출의 근원이다. 이름은 본질/뜻, 의미에서 처음으로 유출되는 것으로 신성한 빛에서 유출된다. 문은 본질/뜻, 의미에서 두 번째로 유출된다. 이름은 신성을 숨긴다. 문은 신성으로 이르는 길이지만 신성 그 자체는 아니다. 알라위는 문을 통해 신성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    태초에 알라위의 영혼은 신을 둘러싸고 찬양하는 빛이었으나 신에 불복하여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던져져 물질적 육체를 지니고 윤회(輪回)에 휩싸이게 됐다. 죄인의 영혼이 들어간 동물은 섭취가 금지되고, 죄의 결과로 창조된 동물은 먹을 수 있다. 신의 본질을 믿으면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별이 되어 다시 천상의 궁극자를 향하는 여정에 오를 수 있다. 여성은 사탄이 지은 죄악의 결과물인바, 천상여행을 할 수 없을뿐더러 종교의례 참여도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남성 중심의 신앙이다.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만이 참가하는 알라위 종교의례는 일정한 연령에 이른 자들만이 내부적으로만 은밀하게 행하기 때문에 외부인이 알 방법이 없다. 종교사상도 의례도 밀의적 요소가 강하다. 종교지도자나 학자들이 신앙해석을 제공하지 않기에 연구자들은 지금도 기존에 발표된 문서에만 의존할 뿐이다.    외부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신이 예수로 육화(肉化)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알라위가 신이 알리로 육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알라위가 이슬람 내에서 이단으로 갖은 박해와 공격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시아와 알라위의 화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시리아 알라위 매사냥꾼.  알리 이후 2번째 이맘부터 11번째 이맘은 각기 자신의 가르침을 전해줄 문을 지니고 있었다. 알라위의 창시자인 누사이르는 11번째 이맘의 문이다. 이란과 이라크에서 다수를 이루는 12이맘 시아파와 달리 알라위는 12번째 이맘의 대리자를 따로 인정하지 않고, 누사이르가 문으로 계속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이 점이 무엇보다도 12이맘파와 알라위를 갈라놓은 지점이다. 오늘날에는 양측이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하페즈 알아사드 집권 당시인 1973년에 알라위 지도자들은 알라위가 12이맘파와 같은 믿음을 공유한다고 선언했다. 12이맘파 법학자 무사 알사드르는 알라위를 12이맘파로 인정하는 법해석을 내렸다.    현대 12이맘파가 알라위를 포용한 것과는 달리 무슬림 사회는 일반적으로 알라위를 배척했다. 아무리 영적이고 비의적인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그 뜻을 깊게 새길 수 없는 대다수 사람에게 알라위의 종교사상은 오해받기 딱 좋았다. 한발리 법학자 이븐 타이미야(1263~1328)는 “알라위를 유대인, 그리스도교인보다 더 이단”이라고 하면서 이들이 무슬림 사회에 끼친 해악이 몽골군과 십자군보다 더 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무슬림 앞에서는 자신들이 시아파요, 예언자 집안사람들에게 충직한 척하지만, 사실 그들은 신과 예언자, 성스러운 경전, 의무나 금지사항, 보상과 징벌, 천국과 지옥, 또는 무함마드 이전에 오신 사도들이나 이슬람 이전의 종교 중 하나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무슬림들에게 알려진 신과 신의 사도들의 말씀을 자신들이 고안한 우의적인 방식으로 해석하여 비의학(秘義學)이라고 부른다.”    말리키 법학자 이븐 바투타(1304~ 1369)는 알라위가 사는 지역을 지나면서 이들이 알리를 신으로 믿고, 예배도 세정례도 단식도 하지 않으며, 맘룩 술탄의 명령으로 지은 모스크를 동물 축사로 쓴다고 기록했다. 한때 술탄이 이들을 모두 죽여 버리려고 했다가 농사에 필요하다는 재상의 건의에 따라 제거 계획을 포기했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분할통치  현재 알라위 분포도.  알라위는 오늘날 알라위산(山)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퍼져 살았다. 시리아 지도에서 서쪽 지중해 연안이 이들의 집중 거주지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산악거주민으로 천대받던 알라위의 삶에 볕이 든 때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다.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를 두려워하던 프랑스는 소수(少數) 종파를 보호하면서 ‘나누어 다스려라’는 고전적 통치법을 활용했다. 1920년 알라위 자치 지역은 몇 차례 변화를 겪은 후 1937년 새로운 국가 시리아의 영토로 편입됐다. 알라위 국가로 독립하지 못하고 시리아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알라위는 시리아 서북부와 레바논 북부(약 20만명), 터키 남서부(약 150만명)에 걸쳐 살고 있다.    편견 때문에 무슬림 사회에서 정상적인 출세가 불가능했던 알라위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군인으로 활약했다. 하페즈 알아사드 시대부터 알라위파가 군부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시리아를 장악하게 된 것도 이러한 전통 덕분이다. 박해받던 이들이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자 적극적으로 편승하여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 종결을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오늘날 알라위가 또 어떻게 자신의 앞날을 개척할까? 하나 확실한 것은 이슬람을 정치와 사회적 삶의 원리로 삼는 무슬림형제단에게 조금이라도 시리아를 양보한다면 알라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프랑스 식민지 보호령 이전 전통 무슬림 사회에서 알라위의 삶은 비참했으니까 말이다. 바샤르 알아사드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소수자로서 겪어야 했던 참혹한 과거의 기억이다.⊙

장상인

-막부(幕府)가 막을 내린 교토의 니조(二條)성   “폐하! 이 정권을 모두 천황께 바치옵나이다.”   우리가 역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접한 장면이다.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의 연속인 듯싶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세운 니조성(二條城)이 ‘막부의 종언(終焉)’이라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필자는 교토 여행 세 번 째날, 막부의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明治) 시대를 열었던 그 성(城)에 가기위해서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뒤로 돌아 호텔에서 비닐우산을 빌렸다. 지하철역 입구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서 니조(二條)성에 갔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데도 관광객들이 많았다.   성(城)의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읽어봤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니조성의 안내문   요시노부(慶喜)쇼군 재위 일 년 만에 벌어진 천지개벽이다. 도쿠가와(德川) 시대가 15대에 이르러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에 들어섰다. 입구에 일본어, 영어, 한글, 중국어로 된 팸플릿(pamphlet)이 놓여 있었다. 필자는 일본어와 한글판 두 개를 집었다.   황궁에 버금가는 화려한 궁전   이 성은 동서 500m, 남북 400m의 규모이다. 소문대로 성이 화려했다. 니노마루(二の丸) 궁 앞에 줄이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성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케치(明智)씨를 만났다. 그에게 성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에 대해서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연간 24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오십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간 240만 명이면, 한 달에 20만 명이라?’   계산이 되지 않았다. 필자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면서 천수각 터에 올랐다. 화려한 궁전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산을 들고 가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성에는 3개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에도(江戸) 시대부터 있었던 ‘니노마루(二の丸)’ 정원, 메이지(明治) 시대에 만들어진 ‘혼마루(本丸)’ 정원, 그리고 쇼와(昭和) 시대에 만들어진 ‘세이류엔(清流園)’이다. 정원 모두가 개방돼 있지 않다. 출입 금지 정원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천수각 터에서 바라본 혼마루   니노마루 정원 이 성(城)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본관격인 ‘니노마루(二の丸)궁’이다.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가면 호랑이와 표범의 벽화가 눈에 띈다. 그림이지만 맹수들의 포효(咆哮)하는 모습이 위엄이 있어 보인다. 소나무와 화조(花鳥), 가을 풀(秋草), 공작(孔雀)-하나같이 살아 있는 듯하다.   장벽화(障壁画)와 휘파람새 마루(복도)   니조성의 니노마루 궁 이 성에는 3,000면 이상의 벽화(壁画)가 남겨져 있다. 그중에서 1,016면이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화풍의 원조는 가노파(狩野派)이다.   순로(順路)를 따라가면 안내문에 쓰인 대로 제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와 다이묘(大名), 중신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물론 인형이다. 인형으로 재현된 장면은 1867년 10월 13일의 상황이다. 통치권을 천황에게 헌납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결정하는 심각한 순간이다. 결국, 이 회의를 통해서 일본은 긴 세월의 바쿠후(幕府)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국가로 방향을 트는 메이지 유신(1868-1912)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휘파람새 복도 ‘니노마루(二の丸)궁’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복도이다. 복도를 걸으면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난다. 사람들은 ‘꾀꼬리 마루’, ‘나이팅게일 마루’라고도 한다. 관광객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환호한다. 재미 만점이기 때문이다.   ‘휘파람 새(鳥)의 울음소리가 난다?’   휘파람새는 주로 숲 속에서 서식한다. 우리가 등산이나 계곡으로 가면 울음소리가 종종 들리는 흔한 새다. ‘봄을 알리는 새’라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하루도리(春鳥), 하루쓰게도리(春告鳥)라고도 한다. 딱정벌레·나비·파리 등 곤충을 먹고 살며, 크기는 13-16cm 정도이다. 겨울에는 남쪽으로, 봄에는 한국·일본 등으로 날아다니는 철새다. 밀집해서 다니기 보다는 단독으로 다니거나 가족끼리 다니며, 가끔씩 일부다처를 과시하는 능력(?)있는 새로 알려져 있다.   몸체의 색깔은 대부분 회갈색의 털로 덮여있고, 목덜미와 배는 흰색이다. 부리는 주황색이나 진한 갈색이다. 사람들은 ‘휘파람새’로 오해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성에서 복도를 걸으면 어김없이 소리가 난다. 야간에 침입자가 있으면 바로 알리는 ‘경보 장치’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적(敵)이 굳이 마루를 통해서 침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목조 건물의 특성상 소리가 난다‘는 설이다. ’건물의 노후로 인해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아주 많다. 요즘처럼 못으로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이 지나가면 흔들려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휘파람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다. 복도 아래에 길이 약 12㎝ 꺾쇠가 설치돼 있는 것은 건축 기법이다.   휘파람새(사진: 위키디피아) 관광객들은 건축 구조물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들리는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휘파람새 없는 들길을 걷다보니/ 꽃 한 송이에 바람이 부는 구나./ 노래를 불러도 아는 사람이 없도다.”   일본의 고긴와가슈(古今和歌集)에 들어 있는 휘파람새에 대한 노래다. 노래만으로도 봄의 정취가 저절로 느껴진다.   노래만으로도 절절하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도 재미있는 ‘휘파람새’ 복도- 이름도 좋고, 소리도 일품이다.   우리네 인생,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김동연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 사진=위키미디어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가 시끄럽다. 회담 취소와 재개 등 연이은 변수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국내외 여론의 시선이 외교적 움직임에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 주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간과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4월말 있었던 제1차 남북정상회담 전부터 활발한 군사적 움직임을 보여왔다. 동기간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과거대비 대폭 증가했다. 남북이 회담 분위기로 평화를 운운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군사적으로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온 것이다. 국내외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무드에 젖어 있었지만, 사실 군사적으로는 전례없는 갈등과 도발이 있었다.   미국 7함대의 해상운용 군함수와 동일한 수로 맞대응한 중국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보유한 강력한 해군력에 대항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쏟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항모전단의 구축이다. 지난 4월 12일 시진핑 주석은 직접 구축함에 올라 해상 열병식을 거행했다. 중국 수장의 해상 열병식은 전례가 없는 것이며, 이 열병식은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중국의 랴오닝 항모전단을 포함해 총 48척의 군함이 참가했다. 48척의 군함은 미국의 태평양 관할의 7함대가 운용중인 총 군함의 수 약 50대와 맞먹는 수치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군대를 보유했으며, 항공모함 및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신기술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남동중국해와 대만의 주변국들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고도 말했다. 중국은 해상 열병식 이후 며칠뒤인 18일, 대만해협에서 해군 실사격 훈련도 실시했다. 이후 중국은 항모의 완벽한 전력화를 위해 항모 위 전투기 출격 훈련을 반복해왔다. 항공모함 위에서 전투기를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전술적, 기술적 능력을 요한다. 따라서 항모의 건조보다도 힘든 과제는 항모의 실질적인 운영이다. 그런데 5월말 중국은 항모 야간 출격 훈련도 마쳤다고 복수의 중국 매체들이 소식을 전했다. 이후 중국의 매체들은 랴오닝 항모전단은 기상에 관계없는 전천후 임무준비태세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중국의 항모전단이 완전한 전력화를 마친 셈이다. 시기적으로 현재 한반도의 평화적 대화무드가 무르익어 가는 시점에서 중국이 서둘러 항모의 전력화를 마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미국은 김정은이 처음 방중한 3월 26일에 맞춰 사상 최초로 미국 서부에서 북한을 향해 잠수함발사 핵미사일(SLBM), 트라이던트를 발사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발사한 미사일은 괌 주변에 낙하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항모전단들은 한반도는 물론 중국 전역을 감싼듯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레이건 항모와 더불어 칼빈슨과 루스벨트 항모가 7함대의 관할구역을 담당했으며, 준항모급인 강습상륙함 본 옴므 리차드(LHD-6)와 와스프(LHD-1)도 활동했다. 즉 미국의 해상움직임을 고려해 중국이 여기에 맞불작전을 펼친 것으로 풀이된다.   해상 열병식 중인 시진핑(좌측)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측). 사진=구글검색 편집 북한 공군 제거 위한 실전 훈련 돌입한 미국 공군 항공모함의 움직임뿐 아니라 공군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한국공군을 포함하여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전시를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훈련이 포함된다. 가령 기총사격 훈련이다. 이것은 도그파이트를 염두에 둔 훈련으로 최근에는 그 필요성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다. 최근에는 전투기의 기술이 좋아지면서, ‘슛 엔드 포겟 (Shoot and forget 쏘고 잊어라)’ 형태로 원거리에서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빠지는 기동을 주로 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공군에서는 공대공 미사일(AIM-7, AIM-9)등을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기총을 발사해 적기를 격추시키는 훈련을 진행한다. 이 경우에는 함께 비행하는 편대의 한 전투기 후방에 타켓(target, 표적판)을 부착하고 비행한다. 그러면 다른 전투기 조종사가 이 표적판을 향해 기총을 발사하는 것이다. 자칫 발사를 잘못하면 동료 전투기의 후미를 기총으로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이 훈련을 지속해서 하는 이유는 한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의 특수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투기가 노후된 기종이라 속도가 느리고 저공비행 등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노후된 하급기종의 전투기를 제거하려면 미사일로 잡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따라서 이런 노후된 북한의 공군력을 상대하기 위해 기총사격 훈련 등을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총 훈련과 더불어 적기를 요격하기 위한 기동전술훈련도 진행되는데 보통은 이런 훈련을 아군의 전투기끼리 실시한다. 가령 KF-16 편대 등이 함께 훈련을 시행하는 것이다. 아군의 전투기 중 적기의 역할을 맡은 아군 전투기를 향해 기동을 한뒤 상대방이 모르게 꼬리를 물고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이다. 이런 훈련은 한국뿐 아니라 미군도 수시로 진행하는 훈련이다.   그런데 이 훈련에는 단점이 하나 있다. 이 훈련의 단점은 실제 훈련에 참가하는 전투기가 모두 아군의 전투기라는 점이다. 즉 실제 적이 사용하는 전투기를 상대로 하는 훈련이 아니라, 아군의 전투기끼리 적의 역할을 맡아서 적의 전투기처럼 기동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전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가장 실전적인 훈련은 과거 전쟁중 적으로부터 약탈하거나, 평시 적이 투항 및 망명하면서 타고 온 적의 전투기 등을 활용하여 진행하는 훈련이다. 적의 전투기를 가지고 적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가장 실전과 유사한 전투훈련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의 전투기를 가져오는 것이 어렵고, 또 지속적으로 적 전투기의 성능을 유지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적의 전투기를 활용하는 훈련 다음으로 효과적인 훈련은 적의 전투기와 그 비행특성이 유사한 아군의 전투기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이런 형태로 훈련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전투기를 활용한 미 공군의 훈련이 확인됐다. 영국이 1950년대 생산한 구형 전투기인 호크 헌터(Hawk Hunter)가 괌 기지 등에서 연거푸 출격한 것을 미 공군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 4월 말 남북회담이 있기 전이었다.   약 1개 편대의 호크헌터 전투기가 괌기지를 출격한 배경에 대해 일부 군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의 공군력을 제거하는 실전 훈련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호크헌터는 적기 역할을 수행하는데 가장 실전에 가까운 기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투기다. 이런 호크 헌터를 유사시 한반도 대응을 담당하는 괌 기지에서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이 영국산 호크 헌터의 비행특성과 가장 유사한 기종은 북한이 주로 운영하는 러시아산 IL-28이다. 이 기종은 북한의 주력 폭격기로 알려졌다. 즉 유사시 북한의 주력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한 훈련을 미국이 실전처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이런 훈련에 한국 공군이 함께 참여한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어, 미국의 독자적인 전시 준비로 볼 수 있다. 우리 공군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훈련을 과거 박근혜 정부시절 집중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북한의 주력 특수부대원 수송기인 AN-2기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훈련도중 AN-2기 1대가 엔진결함 등으로 모처에 불시착하면서 훈련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몇 년전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등을 통해 김정은 암살을 준비했다는 사실도 일본과 미국 등 외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항모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분쟁지역에서 영공침범 등 군사적 도발 행위 부쩍 증가한 중국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정기적으로 장거리 폭격기를 한반도로 보낸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리 공군은 중국의 장거리 폭격기 등이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면 경고방송과 함께 우리공군의 전투기를 보내 이들의 영공 침범을 막아낸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이러한 영공침범 행위가 부쩍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과 군사적 대립을 겪고 있는 지역 모두에서 이런 형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만 공군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5월 말 중국의 장거리 폭격기 H-6가 연거푸 대만 영공을 침범했다. 이에 대만공군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이들의 침범을 저지했는데, 이 같은 행위가 하루에만 수차례 반복되는 등 중국의 도발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대만공군이 운용중인 전투기들은 중국의 외교적 압박 등으로 상용엔진(commercial engine)을 장착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본래 중국이나 러시아의 우리 영공침범은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 키리졸브훈련과 을지훈련(UFG) 중에 주로 발생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견제와 감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군사적 행동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와 더불어 대만에도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대만을 향해 심화되자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장 미국은 5월 말 괌 기지에서 B-52H 스트레토포트레스 전략폭격기를 출격시켜 대만 지역으로 급파했다. 중국의 장거리 폭격기가 연이어 대만 영공에 출몰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방어적 성격의 작전으로 볼 수 있다.  괌 기지에 배치된 B-52는 유사시 한반도나 일본으로 전개되어 대북압박 등에 투입될 수 있는 전략자산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움직임은 장기판과 같은 형국이다. 하나의 졸(卒)을 움직이면 상대방도 졸을 움직여 서로의 손발을 자르려 하고 있다. 국내 언론 등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에 대해서만 집중보도했다. 이후 김정은이 회담중 언급한 평양냉면이 국내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부 젊은이들은 김정은을 귀엽게 묘사한 그림 앞에서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드는 등 주적의 수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무드 속 보이지 않는 미중간 군사적 갈등은 그 어느때보다도 치열했다. 특히 김정은의 제2차 방중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치 못했다는 식의 평가를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내린바 있다. 중국과 함께 작전을 짜고 있는 북한이 배후에 어떤 군사적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미국으로서는 파악해야만 하기때문이다.   지난 북중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무렵부터 지금까지 미중간의 군사적 움직임을 보면 이번 미북대화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번 대화의 성패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움직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 대화 실패후 군사적 충돌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정부는 동맹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때다.

장상인

일본에서 크리스천의 순교지라고 하면 대부분 규슈의 나가사키(長崎)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천 년 고도 교토(京都)도 순교에 대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필자는 교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던 가모가와(鴨川)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400년 전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모가와 고조가와라(5条河原)로 갑시다.”   택시 운전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필자의 요구대로 차를 몰았다. 곤도 쇼헤이(近藤聰平·46)라는 씩씩한 운전사였다.   “혹시, 특별한 목적이 있으시나요?”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400여 년 전 처형장(處刑場)의 흔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는 계속적으로 의구심을 표출하면서 “제가 운전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습니다만, 처형장을 찾는 분은 손님이 처음이십니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셨나요?”하고 물었다. 필자가 피식 웃으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그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국인이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도 모르는 처형장을 찾으시려고 합니까?”“그저 궁금해서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가모가와(鴨川)에 다다랐다.   상처의 흔적을 찾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바람도 시원했다. 도로변에 작은 석비(石碑)가 하나 있어서 들여다봤다.   ‘겐나(元和) 크리스천 순교의 지(地)’       겐나(元和, 1615-1624년)는 일본의 연호이다. 에도(江戶) 막부에 의해 당시 크리스천들이 철저히 탄압 당했던 시절이다. 1619년 이 자리에서 55명이 순교를 당했다. 그들은 장작 더미 위해서 27개의 십자가에 겹겹이 묶이어 하늘나라로 갔던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중에서도 가슴 찢어지는 슬픈 사연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 내용은 당시 교토에서 살던 영국 상인 ‘리처드 콕스’가 쓴 편지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또다른 흔적들을 찾기 위해서 강둑을 걸었다. 풀잎 사이에 작은 시비(詩碑) 하나가 숨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의 꽃을 보면서/ 서성대다보면/ 가모강변에 다다르네./(강에는) 물새가 춤을 추도다.”       무라카미 시즈요(村上靜代)의 노래가 새겨진 비(碑)였다.   ‘떨어진 꽃잎들은 저 강물을 따라 흘러갔으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처형당했던 곳   순교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418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 또 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규슈 우도 성터에 있는 고니시(小西)의 동상1600년 10월 1일. 눈에 핏발이 선 이에야스(家康)는 고니시(小西)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할복하라! 장군으로서의 마지막 모습을 거룩하게 보여라!”   “싫소. 나의 목을 치시오. 기리스탄(크리스천)인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가 없소이다.” “저런, 저런, 저자의 목을 쳐라.”   절박한 순간-정토종 승려가 고니시의 머리 위에 경문을 갖다 대려고하자,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크리스천에게 불경을 읊다니...불경 따위는 필요 없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를 불러 달라.”   “안 된다. 사제를 불러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서로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다. 다시 고니시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Margarita de Austria-Estiria)로부터 선물 받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聖像)을 주시오.”   마지못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니시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다. 고니시는 자신의 머리에 성상을 세 번 대고 난 뒤에 참수됐다. 할복자결을 거부하고 효수(梟首) 당했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지막 명(命)을 내렸다.   고니시(小西)가 처형 당했던 강변“고니시의 목을 산조 오하시(三條大橋: 현 교토 시의 동서 통로인 다리)에 걸어라.”   로구조가와라(현, 5条河原)는 예로부터 권력자에 반항한 정치인·종교인들이 처형당했던 곳이다.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 봤다. 강물은 옛 상처를 기억조차 못하는 듯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 따라 유영(遊泳)하는 물새들을 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김동연

한미 정상이 오벌 오피스에서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손모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백악관 영상 캡처 미국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미북회담을 취소할 가능성은 이미 감지됐다. 한미정상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만났을때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회담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으로 또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약 35분 분량의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영상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미북회담 가능성에 대해 먼저 입을 연다. “회담성사가 되던 안되던 일단 지켜보자, 만약 성사되면 좋은 것이다. 특히 북한에게 좋은 것이고, 성사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다. 뭐가 되던지 말이다(See what happens, whether or not it happens. If it does, that will be great. It will be a great thing for North Korea. And if it doesn’t that’s okay too. Whatever it is, it is.).” 이 내용을 보면 미북회담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표현은 전혀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미 모든 기대를 저버린듯한 발언이다. 물론 이것이 회담전 일종의 전술일수도 있지만 내용상 가능성은 낮다는 늬앙스다. 이후 나온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서 재차 확인된다. 여러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던 중 한 미국 기자가 “말로만 이야기 되던 것(회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 감회가 어떠냐”는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한번 회담이 불투명할 수 있음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일단 우리는 추진하고 있고,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우리가 원하는 (회담의) 조건이 있고, 우리는 이 조건을 받아낼 것이다. 만약 이 조건들이 맞지 않는다면 회담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 (회담)기회는 좋은 것이고 북한에게는 아주 아주 좋은 것이다. 또 세계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만약 (회담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중에 (회담을) 해야할 것 이다. 아마도 다른 시점에서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사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알다시피 회담 일정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에 하기로 잡혀있는 상태다. 되던 안되던, 그 여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전 접촉 중이다.(Well, we’re moving along, and we’ll see what happens. There are certain conditions that we want, and I think we’ll get those conditions. And if we don’t we don’t have the meeting. And frankly, it has a chance to be a great, great meeting for North Korea and a great meeting for the world. 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Maybe it will happen at a different time. But we will see. But we are talking. The meeting is scheduled, as you know, on June 12th in Singapore, and whether or not it happens, you’ll be knowing pretty soon. But we’re talking right now).”  이 부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원하는 회담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를 제시한다. 그것은 미국의 조건을 북한이 필히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협상은 없다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회담이 아니면 나중에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말미에는 회담 성사여부를 곧 알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북회담을 취소했다.   한미정상이 백악관에서 기자들 앞에서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영상 캡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미 미북회담 가능성 낮게 말한 백악관 한미정상간 만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회담 가능성을 낮게 표현한 것과는 달리, 국내 여론은 미북회담이 마치 당연히 열릴듯이 말했다. 장소와 날짜가 정해졌고 사전에 미국측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정은을 수차례 만났기때문이다. 미북회담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정부의 발표내용때문이기도 했다. 해외순방후 지난 13일 귀국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북회담 가능성은 “99.9%“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정 실장과 상반된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협상(deal)은 그 가능성을 100%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것도 막상 성사가 안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매우 성사되기 어렵다고 점쳐지던 협상도 실제로는 너무 쉽게 술술 풀리기도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만큼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없고, 수많은 협상을 통해 자신(트럼프)을 협상의 달인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즉 정의용 실장이 미북 회담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는 점은 트럼프의 관점에서는 반대로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 실장의 해당 발언이 과연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직위에 걸맞는 처사였는지도 의문이다. 최초로 열릴 중대한 회담에 앞서 그 성공여부를 미리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당사국들의 입장을 고려치 않는 언행일 수도 있다. 워싱턴의 소식통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폼페이오(Pompeo) 국무장관은 김정은을 만나고 온 뒤 양국 정상간 만남 추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와 백악관 수뇌부에 북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이 만남을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미국이 원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마치 냉전시대 종결과 같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정보기관 등이 예상했던 것보다 회담을 통한 목적 달성에 높은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무렵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이러한 우호적인 태도는 전형적인 북한의 화전양면전술로 판단, 폼페이오의 낙관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백악관은 볼턴의 입김보다 실제로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폼페이오쪽으로 기우는듯 했다. 이 상태대로였다면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원활하게 풀어갈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회담에서 기자들 앞에서 말했듯이, “김정은의 2차 방중은 뜻밖이었고 그 이후부터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1차에 이은 2차 방중은 약 40일만에 있었다. 3월말에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이 만났고, 5월초 둘은 다시 만났다. 시기적으로는 남북정상회담 직후다. 두번째 방중이후 실제로 북한은 지난 5월 11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을 비판하는 등 미북정상회담에 앞서 남한과 미국을 향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또 회담에 관한 사전 대화에 있어서도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과거 북한이 주로 펼친 “회담전 몸값 올리기”전술의 일부였지만, 이 부분이 미국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따라서 백악관은 폼페이오에서 다시 볼턴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의 방북이후 혹시나 하며 기대를 가졌던 미국이 북한의 돌변한 태도에 역시나 하며 회담 취소를 결정한 것이다.   트럼프 앞에서 동맹보다 적국을 먼저 부른 문 대통령  한편, 두 정상이 만난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의 수장인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미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이라고 세차례 가량 말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국내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조미(朝美)회담이라고 칭하는 순서와 동일한 것이다. 적국(敵國)을 동맹국보다 앞에 배치하여 표현한 것은 외교상 큰 결례일 수 있다. 다행히 통역은 US-North Korea(미북) 라고 순서를 바꿔 전달했다. 앞서 정부는 방중이후 “한중관계”를 “중한관계”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당시 중국측 정부인사가 한 발언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차원에서 중한이라고 한 것인데, 이번 방미이후에는 미국측 인사의 내용을 발표할때는 정부는 한미라고 칭했고, 미국식 표현을 그대로 살린 미한이란 표현은 사용한 바 없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한 말이다. “예, 감사합니다. 국내일정이 매우 바쁘고, 또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 내주시고 또 따뜻하게 환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략… 텍사스 총기사고 관련 위로) 또한 미국민 억류자들이 북한으로부터 무사하게 귀환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대통령님의 강력한 비전과 리더십 덕분에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세계 평화라는 꿈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시기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바로 트럼프 대통령께서 해내시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에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저도 최선을 다해서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돕고 또 트럼프 대통령님과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메르켈 총리의 손동작은 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하다. 사진=위키미디어 트럼프의 전매특허, 역삼각형 손동작 따라한 문 대통령 오벌오피스에서 만난 두 정상의 손모양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습관 중 하나인 다리사이에 역삼각형 모양의 손동작을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 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도 백악관이 공개한 영상에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하는 앉은 자세에서 다리사이에 역삼각형 모양의 손동작을 과거에 취한 적이 없다. 문 대통령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동작이지만, 이번 회담에서 이 동작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방미때는 오벌오피스에서 하지않았던 손동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손동작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역삼각형 동작은 트럼프만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손동작에 대해 바디 랭귀지 전문가 마리 씨비엘로(Mary Civiello)씨가 BBC에서 분석한 적이 있다. 연설 중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취하는 오케이 모양의 검지와 엄지를 붙이고 내미는 동작과 검지와 엄지만 펼친 알파벳 L자와 같은 동작은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다. 정확하게 무언가를 지목하면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즉 흐지부지 하지 않고 나는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의 자신감을 표현한 바디 랭귀지다.   그 다음으로 자주 쓰는 손모양은 두 손바닥을 펴고 내미는 자세다. 이런 자세는 보통 위험요소가 있을 때 타인에게 알리는 손동작이다. 사람들에게 조심해라(look out!) 라는 형태로 취한다. 즉 이목을 끌기에 유용한 자세다. 트럼프는 이 손바닥 제스처를 하여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식으로 주위를 끌고 그 다음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핵심을 말한다.   종합하자면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동작이다. 또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끄는데 유용하다고 바디랭귀지 전문가는 설명한다. 그 다음은 손날 동작이다. 무언가 자르는 것처럼 손바닥을 펼치고 내리는 동작이다. 이것은 혼란스런 내용을 하다가 정확하게 무언가를 꼬집어 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이런 제스처가 특정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닌것 같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트 대통령의 역삼각형 손모양에 대해서는 그 분석이 다양하다.영국 인디펜던트는 행동전문가 페티 우드(Patti Wood)씨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직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손동작을 두고 무언가 불편할 때 나오는 손동작이라는 분석을 했다.   또 다른 행동전문가 에미엘 존지(Emiel Jonge)는 이 동작을 권위의 표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자신감에 차 있을 때 습관적으로 드러내는 귄위적인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 동작을 고위층의 조직끼리 사용하는 일종의 신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이 손동작은 대통령 당선되기 오래전부터 하던 동작이다. 이 때문에 과거 제이 레노(Jay Leno)의 텔레비전 토크쇼에서도 앉아있을때면 이런 손동작을 취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손모양을 과거에 취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동작과 동일한 손모양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있다.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메르켈의 이 동작을 "메르켈 동작"이라고 말하며, 다양한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한때 이 동작에 대해, "서 있을 때 팔짱을 끼거나 할 수 없고 아무 동작도 취하지 않는 것도 이상해서 나오게 된 동작"이라는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메르켈과 트럼프가 취하는 이 동작에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는 앉아있을 때 이 동작을 주로 취하고, 메르켈은 서 있을때 이 동작을 아랫배나 배꼽 주변에서 취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트럼프 특유의 동작을 이번 한미정상이 만났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취했다. 아마도 우리 정부 외교관련 인사가 양국간의 동질감과 친목을 증진시키기 위해 트럼프의 동작을 따라하라는 조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드렸을지는 의문이다.  

장상인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음 정류장은 도시샤(同志社) 대학 앞입니다."   교토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던 필자는 안내 멘트에 귀가 번쩍 뜨였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도시샤(同志社) 대학은 시인 윤동주(1917-1945)가 다녔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차 확인하자 운전사는 ‘내려서 뒤쪽으로 조금 돌아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서정문에서 바라본 도시샤 대학 도시샤 대학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에서부터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이 대학은 한 청년의 뜻(志)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쇄국의 일본을 개방하려는 의지로 미국에 건너가서 ‘일본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자’가 됐다. 청년의 이름은 니지마 조(新島 襄, 1843-1890). 그가 1875년 도시샤 대학(同志社英學校)을 설립했던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학교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서 캠퍼스는 고즈넉했다. 갑자기 이방인(異邦人)이 된 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신세를 졌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윤동주 시비(詩碑)가 어디 쯤 있나요?”   “똑바로 가시다가 우측으로 돌아가세요. 저기 지붕 끝이 뾰족한 건물 앞에 있습니다.”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 나란히 있어   경비원의 말대로 건물사이로 들어가자 나무아래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의 시비가 나란히 있었다. 비(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일본어와 한글로 쓰여 있었다.  과 을 간행하여 현대시의 확립에 기여하였으며, 유능한 시인을 문단에 등용시키기도 하였다. 1945년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현, 이화여자대학)의 교수와 경향신문의 주간을 역임하였고, 을 비롯한 산문집을 간행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옥천군, 옥천문화원, 정지용 기념사업회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 모교에 시비를 세웠다. 조각된 시는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이다.>   정지용 시비사실을 토대로 한 글이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윤동주 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동주에 대한 글도 일본어와 우리말로 쓰여 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윤동주 시비의 글   다소 어눌한 한글 표현이지만,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필자는 혼자서 시비에 새겨진 빛바랜 서시(序詩)를 읽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비  필자는 읽고 또 읽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詩)였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필자는 ‘주변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필자가 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와 윤동주   “인간의 얼굴은 하나의 줄기위에 핀 일 순간의 꽃이다./ 바람과 새가 날라다 준 종자처럼/ 여기저기 흩어지고, 피고 지는 존재/ 인간도 식물과 별로 다를 게 없느니….”    일본의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가 쓴 라는 수필에 담긴 내용이다. 그 책에도 ‘윤동주에 대하여’라는 글이 있다.     누군가가 그린 윤동주의 작은 액자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1990년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씨를 도쿄에서 만났다고 한다. 시인은 윤인석 씨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함께 ‘아우의 인상화(印象畵)’란 시를 소개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살그머니 작은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슬픈, 진정코 슬픈 대답이다...”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윤인석 씨가 큰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이에 공감한다”고 했다.   윤동주의 시비(詩碑)는 한국산과 교토(京都)산의 돌로 세워졌다. 양국화합의 의미를 두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한일 간의 간극(間隙)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을 윤동주를 추모하면서 뚜벅뚜벅 도시샤 대학 교문을 나섰다.
10개더보기

TODAY`S 칼럼

TODAY`S FUN

TODAY`S 뉴스&이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