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연애하기 좋은 계절이다. 살결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도 마냥 기분이 좋으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요즘같은 때의 늦은 저녁, 어스름한 불빛 아래, 열렬히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을 가끔 발견한다. 그럴때면 공연히 나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게도 분명 그런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헤어지기는 싫고, 그래서 1분 1초가 살을 깎아 먹는 것처럼 아프게 흘러갈 때가 있었다. 같이 있고 싶은데 밤은 깊었고, 하늘에는 둥그렇게 엄마 얼굴이 떠 있다.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세상이 몽롱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나는 요즘도 그 시절 꿈을 꾼다. 꿈속의 나는 이른 새벽,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분명 초췌한 모습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이 나인데, 또 그 모습을 내가 관찰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만 꿈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하다. 대문 앞의 나는 겨우 심호흡을 마치고 벨을 누르기 위해 앞으로 손을 뻗는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며 내 등짝에 불덩이를 꽂는다. “야! 너 오늘 학교 안가?” 역시, 언니다. 언제나 악역은 언니다. 나와 여섯 살 터울인 언니는 내 여고시절 결혼을 했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나의 대학시절 스토리에 등장해 내 등짝을 스메싱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내 꿈속의 악역은 단 한 사람, 언니로 캐스팅된 까닭에, 얄미운 일에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수시로 그녀가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었듯 그러한, 그저 좋아서 못 견디는 연애에도 갑과 을이 존재할까? 물론이다. 그런 연애에도 갑과 을은 존재한다. 다만 사랑이 깊어지면서 서로의 마음이 함께 묶여 갑이 을의 방향으로, 을이 갑의 방향으로 좌표이동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이동하는 좌표는 때때로 가속도가 붙어 접점을 놓치고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이랬던 그가, 처음엔 그랬던 그녀가,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은 이미 을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애의 출발점이 갑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을의 좌표라는 것.   ‘벌거벗은 내 마음’이라는 산문집에서 보들레르가 말했다. ‘서로에게 홀딱 반한 두 연인이 욕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라도, 그들 중 한 사람은 더 침착하고 덜 몰두해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수술 집도의 또는 사형집행인의 역할이고 나머지 사람이 환자이며 희생자가 된다.’   을이 되는 일은 재미없는 일이다. 그리고 슬픈 일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내 판단으로 모든 일이 결정되는 갑이 되고 싶다. 더구나 연애에 있어선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좋아해 주는 일, 그건 누구나 꿈꾸는 연애 유토피아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아니 위치는 갑의 좌표다. 하지만 나는 재미없고 슬픈 ‘을’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우리 누구나 내 속에 몇 개의 기억들이 있다. 내가 을이었을 때의 이야기. 갑인 경우의 기억은 그저 흘러갈 뿐이지만 을의 경우 흘러가지 못하고 세 번째 갈비뼈 쯤이나 췌장 정도에 걸려 이유 없이 한 번씩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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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6)   인공지능 비서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   조선DB 아시다시피 법률사무소에서도 이제 인공지능의 활용이 최대의 화두이다. 무엇보다도 사무자동화를 통한 효율성의 증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리서치 분야에서는 자료만 확보된다면 간단한 인공지능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아니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필자의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법률시장에서의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현실적 문제가 되었고, 다만 관건이 되는 것은 어떠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그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각계에서 인공지능 비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집에서 인공지능 스피커에 대하여 달콤한 음악을 들려달라고 말로써 명령하기도 하고 오늘의 스케줄과 날씨 등을 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의 명령과 그 역할 수행은 상당히 일반화되어 달리 특별한 특이점은 없어 보이기도 하다. 물론 이와 같은 기능을 글이 아니라 말로써 명령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혁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에 컴퓨터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과거의 키보드에 입력 내지 타이핑하는 대신에 말로서 명령어를 하달하여 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PC의 기능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윈도 10에 장착된 인공지능 코타나가 음성명령어에 의한 인공지능 비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글로는 서비스가 지원이 되지 아니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필자의 컴퓨터는 미국에서 구입한 제품이어서 영어로 실제로 명령을 내려보니 의외로 인식률이 높았다.   음성인식에서 자체적인 교정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다소 불확실한 발음을 하여도 스스로 알아서 적절하게 교정을 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였다. 불필요한 고정인력을 줄이고 모든 업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나아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가성비를 높이고자 전면적인 사무실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시점에 코타나는 실로 반가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실제 운용하는 과정에서 명령어는 나름대로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일부 영역에서는 아예 명령어를 이해하지 못하여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나래이터 기능까지 가세하여 이 둘을 잘 융합하여 사용한다면 그런대로 사용할만한 효율적인 시스템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 제대로 보완할 것인지에 달렸었다. 어쨌든 필자는 음성에 의한 사무자동화 환경을 구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키보드의 타이핑이 아니라 음성으로 컴퓨터를 켜서 기본적인 이메일을 체크하고 나아가 워드 문서를 작성하고 나아가 검색창에서 일정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기능은 상당히 업무효율성을 제고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타나에서 컴퓨터의 일부 탑재 기능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워드를 작성하면서 음성인식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아니하여 좀 고민스러웠다. 이를 위하여서는 에버노트나 기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이를 같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달리 연결프로그램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간단한 기능이나마 음성으로 코타나를 통하여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물론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만간 극복이 될 것이다. 현재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만이라도 이를 활용하고 나아가 시간을 두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DB 조만간 무인점포 내지 온라인로펌의 시대에 열려 실제 일을 하고 나아가 사무실에서 상호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은 인간 동료나 직원보다는 오히려 인공지능밖에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필자 역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쨌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코타나는 컴퓨터 시대에 또 다른 혁명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지금부터라도 코나타와는 좀더 친한 동료 사이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코타나를 많이 활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공 비서기능에 좀더 친숙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와의 대화를 위하여 낮은 단계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작업 즉 코딩작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무엇보다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에 좀 더 집중하고 나아가 이를 배우기 위하여 상당한 성실함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좀더 기울이겠다고 필자 스스로에게도 다짐해본다. 이제 감성 역시 오히려 인간보다는 인공지능에 좀더 특화하여 인공지능과의 상호 친밀감과 공감대의 형성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에 유의할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다소 씁스레한 느낌마저 들었다.    막스 프랑크 일기(87)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으로서의 새로운 출발   조선DB 지난 2년간 국내 1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으로 활동하여 오던 중 올해에 들어와서도 운 좋게 다시 임기가 연임되어 상당히 기뻤다. 사실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라는 직책이 어쩌면 단순한 명예직임에도 필자 스스로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버켓리스트 중의 하나에 세계 10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서는 국내 골프장 선정위원회가 그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프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골프에 대하여 좀더 공부하면서 배우고 가능하면 국내 골프장의 발전에도 나름대로 이바지를 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인생 후반기의 음미체 중에서 체육항목에서 골프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어서 골프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선정위원회라는 직책이 나름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처럼 골프에 대한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 있게 되면 무엇보다도 필자가 골프에 대한 모든 궁금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들 전문위원 중에는 프로골프선수에서부터 각 골프장의 아마추어 챔피언, 골프설계, 골프장건설 그리고 골프장관련 연예인 그리고 관련 산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기적인 세미나를 통하여 그간 제대로 모르는 골프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배워나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사하다.   사실 골프는 자연의 모든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만이 그 때에 비로소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다고 본다. 바람의 세기, 방향, 그리고 잔디의 상태. 잔디의 결, 그린 등에 있어서 수분의 정도, 잔디가 뿌리 내린 토양의 상태 그리고 공기의 밀도 등등이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골퍼는 이미 식물전문가이고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다고 본다. 이와 같이 세심한 사물과 자연에 대한 점검 분석 작업이 없이는 골프스코어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사실 필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이다. 너무 주제넘게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10대 골프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를 점검하기도 하고 나아가 이로부터 얻은 많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100대 골프장의 평가에 참여해보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10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이 되기 위하여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의 3분의 2 이상의 골프장에서의 실제 라운딩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역시 나름대로 도전이어서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10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 되었다고 하는 결과의 달성보다는 그 과정에서 경험하고 나아가는 도전의 여정이 더 짜릿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러한 꿈은 나에게 무한한 자극을 제공하여 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버켓리스트만으로도 개인적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범하는 제3대 국내 10대 골프장선정위원들 간에 좀더 우의를 다지면서 국내 좋은 골프장도 다 같이 많이 가서 라운딩하면서 평가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나아가 골프의 본고장인 영국과 기타 100대 골프장이 있는 해외 골프장을 방문하여 그 감흥을 느껴 보고 이를 칼럼 등을 통하여 여러 분에게 그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50대 중후반에 들어서 골프는 이제 또다시 새롭게 와 닿고 있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지난 1-2년 동안 다소 소원한 점이 있지만 이에 새롭게 골프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약간의 당뇨기가 있는 필자에게는 골프가 거의 보약과 같다고 본다. 문자 그대로 좋은 잔디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또한 좋은 햇빛을 받으면서 걷는 운동이니 그 얼마나 좋고 축복받은 운동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러한 골프를 즐김에서도 좀 더 정확히 골프규칙에 충실하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성적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라운딩을 통한 힐링하는 과정과정 들은 그 자체가 감사와 행복일 것이다.    제3기 선정위원들과의 출범식에서 이루어진 선정위원 분들과의 라운딩은 아주 소중한 추억거리를 제공하여 주었으며 필자 스스로에게는 큰 힐링이 된 멋진 시간이었다. 올해 들어서 두 번째를 맞이하는 라운딩이어서 더욱이 반가웠다. 50 대에 들어와서는 달리 어떠한 오락이나 운동을 통한 즐거움보다도 골프라운딩을 즐기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면이 많다. 어쩌면 자신과 골프코스만의 은밀한 상호 교감과 대화와 같은 라운딩은 때로는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나아가 자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컴퓨터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필자로서는 무한한 해방의 순간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설렘의 순간임에 틀림이 없다. 겸허하게 자연의 법리를 수용하면서 가능한 안의 범위에서 이를 분석하여 잔디, 공기 기타 골프코스와 선의의 경기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멋진 삶의 과정이고 나아가 축복의 순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국영수”가 중요하지만 후반에 들어와서는 “국영수”보다는 “음미체”가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음미체”라고 하면 음악, 미술 그리고 체육을 필자 나름대로 지칭하는 것이니 이에 대한 먼저 깊은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이 “음미체”과정을 제대로 따라가면서 즐기지 못한다면 중장년대의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를 통하여 중장년층의 인생의 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냥 달리 특별한 결실이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고 다만 골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골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한 골프장에서 자연과 인간이 가꾸어 놓은 나름의 아름다운 창작물 등을 감상하고 싶다. 또한 여러 골프장의 나름의 매력을 한껏 접하면서 가끔은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과 상호 교감하고 또한 토의를 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그간 숨어 있었던 클럽챔피언에로의 도전에 다시 시동을 걸고 싶어졌다. 사실 그간 과거에 필자보다도 골프를 잘 치지도 못하게 생각되었던 많은 사람이 거의 다 챔피언이 되어 이에 화가 나 의도적으로 골프를 잠시 중단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업무 못지않게 다시 골프에 좀 더 친화된 삶을 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주어진 안의 범위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각오로 클럽챔피언 등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혹자는 비난할지 모르지만 좌충우돌하면서 그냥 철이 전혀 없는 중장년으로서 특히 마음은 한없이 젊고 의욕만이 앞선 그저 그런 자유로운 철부지 중의 하나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4) 또 다른 세상으로서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의미   독일 태생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  뮌헨 등을 비롯한 독일 전역은 음악이 생활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뮌헨에서 가까운 지역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음악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주변의 환경 자체가 고전음악이나 낭만적인 음악이 그대로 흘러나오는듯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취에 취하여서인지 최근에 필자는 지금 바흐의 Invention 1과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309번에 도전하고 있다. 피아노는 거의 왕초보인 필자가 이런 도전을 한다고 하니 모두다 기가 막히는 모습이다. 무리하지 마시고 정신을 차리라는 표정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절실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치지는 못하지만 그 선율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흐의 Invention은 피아노 연습을 위한 곡이기도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피아노를 위한 곡이어서인지 모르나 좀 묘한 느낌이 나는 곡이다.   이에 반하여 모차르트 곡은 좀더 멋지고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 물론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도전이고 어쩌면 너무 무식하고 어이없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소 어이없는 몸짓일지는 모르지만 그냥 도전하는 필자 자신이 대견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평생의 도전과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성취동기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그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   물론 이 도전이 미완성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도전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늦은 밤 이른 새벽이 마냥 즐기기만 하다면 그 자체로서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삶에서 목표를 발견하는 것도 그 자체가 행복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그 자체도 축복이다. 그간 필자가 항상 외쳐온 인생 후반기의 ‘음미체’에서 음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아서 너무 좋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는 있다.   음악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음치에 박치에 리듬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필자에게는 음악 세상만큼 경이롭고 또한 두려운 세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마음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음악이 주는 새로운 세상의 아름다움은 필자에게는 구원이기도 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음악 세상은 창작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가는 진정한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숭고한 직업군이다. 그리고 여러 악기의 음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지휘자 역시 너무나도 매력적인 직업임이 분명하다. 지휘자의 지휘봉과 표정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에 음악 세상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간 왜 이렇게 경이로운 세상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그렇지만 지금도 결코 늦지 아니하다고 본다. 필자가 어느 날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거나 아니면 지휘자로 서지 못한다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 정 안되면 카네기홀이나 이에 준하는 홀을 빌려서 가까운 몇 사람의 지인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연주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고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필자가 이에 대하여 만족해하고 행복해 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즐기는 음악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필자 스스로만이 즐기는 음악은 활짝 열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에 집중하면서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필자 자신도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연주자, 작곡가 나아가 지휘자로서의 기초작업에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을 것인지……. 그렇지만 필자 스스로 자위해 본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 스스로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면 모든 것을 무시하고서라도 그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더 흥미로운 점은 음악의 세계에는 법률과 같은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 음악의 세계에는 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또한 골프에서도 리듬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골프와 음악이 또한 묘하게 엮여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법률과 골프 그리고 음악이 가진 묘한 인연에 감사를 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창작의 세계인 소설도 더 없이 매력적이다. 결코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심은 누구나 있는 것인데 소설이라는 창작의 세계에서 일상에서 가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현재는 미래의 목표라는 방향성이 있어야 그 빛을 더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꿈은 그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비록 그 꿈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꿈 너머 꿈’이 있기 때문에 필자에게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그 어떤 의미 이상으로 와 닿는다.   막스 프랑크 일기(85)   차량 공유산업의 체험과 그 의미   조선DB 최근에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다음날 제3회 10대 골프장선정위원회의 출범식 행사가 있는데 갑자기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급히 연락을 해 보니 아무래도 서비스센터에서 정밀점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내일 차를 사용하여야 하는 데 여의치 않게 되어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여러 가지 옵션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사무실의 컴퓨터컨설턴트인 직원이 차량공유를 언급하였다. 사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차량공유가 널리 일반화되어 있어서 차렌트나 리스보다도 많이 사용되는 실정이라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차량 공유가 많이 이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던 차에 국내 차량 공유업의 실태가 갑자기 궁금하여 졌다. 그래서 이를 좀 알아보라고 하니 생각보다 매력적인 면이 많이 있었다.   먼저 무엇보다도 부름 서비스가 가능하여 원하는 장소에 차를 가져다주고 반납 시는 해당 장소에 그냥 놔두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름 서비스 비용은 마케팅차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부담이 되지 아니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차의 공유비용은 거의 30분 단위로 계산되면 또한 그 이용시간에 비하여 그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운전하기에 편한 SUV 차량도 있었고 비싼 외제 차량도 상당한 할인행사를 하여서인지 그리 부담이 되지 아니하였다. 유류비도 별도로 나중에 가득 채울 필요도 없이 주행거리별 일정한 가격만을 추가로 부담하면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자동차 보험도 기본적인 종합보험에 가입하도록 선택되어 있었고 그 보험료도 그리 높지 않게 책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차를 가져다주고 이를 주차한 다음에 이를 카톡 등으로 통지하며 줌으로써 달리 복잡한 절차가 없었다. 아침에 약속된 시간 10여분 전에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차로 가니 해당 차량공유업체에 가입하여 회원 가입된 핸드폰상 앱 회면 상에 있는 스마트키 화면을 켜서 ‘문열음’이라는 항목을 작동하니 문이 열렸다. 다만 자동차 안에 있는 자동차의 키는 스마트키가 아니고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일반 수동 키가 부착되어 있었다. 어쨌든 휴대전화기로 차의 문을 열고 골프가방 등을 실어 차의 시동을 걸고 행사장으로 운전하였다.   내비게이션도 잘 작동을 하여 행사장으로 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안 것이지만 차를 타기 전에 차의 외부와 내부 등에 대한 사진을 스마트키 아래에 있는 차량상태확인란에 있는 카메라로 이를 찍어 전송하여야 나중에 면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라도 늦었지만 사진을 전송하였다.   물론 차는 일류 렌터카 회사와는 달리 상당히 사용한 차량이기는 하였으나, 그 기능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별도로 차 키를 받거나 복잡한 절차 없이 문을 열 수 있어서 좋았다. 즉 그냥 내 핸드폰으로 차의 문을 그냥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행사를 잘 마치고 귀가하면서 이를 아파트 주위의 주차장에 세워두고 내 핸드폰상의 스마트키 아래에 잇는 반납항목을 클릭하고 나아가 주차장소 주변 사진을 촬영하여 이를 발송하였다. 이로써 모든 반납절차는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렌터카에 비하여 주유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통행료 등은 후지급제여서 이 역시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어쩌면 더는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내의 사무실로의 출퇴근 시는 전철 등 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하고 다만 갑자기 차가 필요하거나 특히 장거리 여행 등 필요한 경우에 차량공유업체의 차량을 이용한다면 너무나 편리하고 가성비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량공유의 개념은 집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의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즉 이는 차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24시간 중 극히 일부의 시간만을 사용하는 소유자의 여유시간과 차량이 없어서 일정한 경우에 차량을 분내지 시간단위로 잠시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상호 매칭시켜 상호 윈윈하는 사업모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 너무나도 앞서고 편리하며 소비자의 수요에 들어맞는 사업모델임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차량공유업체에서 차량을 사서 이를 소유한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원래의 개념에 의하면 차량공유업체는 단지 소유자와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단지 연결하는 역할만을 중개할 수도 있다. 앞으로 국내 차량공유산업이 좀더 발전하게 되면 이러한 서비스도 제공될 것이다.   어쨌든 실로 색다른 경험을 하여 너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의 차량의 이용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사물을 혼자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다 같이 이용함으로써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서로 윈윈하는 공유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논리를 너무 확대한다면 미래는 끔찍할 정도로 모든 부문 등에서 공유가 일반화될 것으로 보여 한편으로는 갑자기 섬뜩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대의 전체 흐름은 대세여서 달리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의 공유개념은 좀 더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장점을 취하는 것일 뿐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차량 공유업체로부터 다소 신기로운 체험에 놀라면서도 이처럼 앞선 시스템을 법률시장에서도 이를 구현하고 싶다는 의욕과 함께 새로운 부담감이 들어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또 다른 세상의 체험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내가 앞으로 희망하는 온라인로펌 역시 선진화된 공유시스템개념을 응용하여 집단지성을 통한 좀더 경쟁력 있는 사무실을 계획•준비하고자 한다.  

김병헌

인터넷에서 '김정숙'을 검색하면 첨부한 자료와 같이 뜬다. 그런데 이름 옆의 직업을 표시하는 곳에는 ‘영부인’이라 하고 경력에는 ‘대통령 영부인’이라 하였다.   다소 어이가 없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 매체나 기타 소소한 잡기(雜記)에서도 대통령 부인을 으레 영부인이라 부르고 또 쓴다. 이는 대부분 '영부인'이 곧 '대통령 부인'의 줄임말이라는 오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이다. '영부인'을 한자로 쓰면 '令夫人'이다. 국립국어원의 에는 '영부인(令夫人)'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더하여,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를 때는 '영식(令息)', 남의 딸을 높여 부를 때는 '영애(令愛)'라고 한다. 이때 영(令)은 존칭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따라서 자신이 정말 존경하는 분의 부인이라면 누구든 '영부인'이라 할 수 있다. 그게 '영부인' 본래의 뜻이다.   권위주의가 남아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영부인으로 부르자 주변 사람들이 영부인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대통령 부인에게만 부르는 것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이제 대통령에게 각하(閣下)라는 말도 쓰지 않는 마당에 영부인이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다. 그냥 ‘대통령 부인’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김정숙 영부인’의 경우는 권위주의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영부인’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쓰는 가운데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뜻으로 굳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낯 뜨거운 일이다. 청와대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수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르기는 매일반인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이유는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 없이 한글로만 써놓으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쓰는 사람도 자의적으로 쓰고, 읽는 사람도 자의적으로 읽는다. 그러면서 차츰 엉뚱한 단어로 굳어져버린다.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자를 무시하면서 우리의 언어생활은 점차 흐리멍텅해지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다.

이상근

보스톤 미술관의 한국전시실 모습, 사진 김정윤전 세계 곳곳의 재외교민을 보유한 나라를 꼽으면 한국이 빠지지 않는다. 2017년 외교부의 재외동포현황 자료를 보면, 194개국에 7,430,659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2018년 유엔 가입국 191개국 중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은 쿠바(33명), 마케도니아(15명), 시리아(2011년, 162명)에도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 일본의 조선족 등이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민족으로 깊은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북부지역에 사는 라후족 등이 고구려의 후예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가 있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는 2014년 발간한 저서 '우리 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 민족이다: 멕시코 편)'에서 상당수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3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건너간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민족(韓民族)의 뿌리는 깊고 넓으며 이들은 문화적 전통과 풍습을 계승하고 있으며, 상당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향후 남북협력과 평화가 도래하고 동북아에서 한민족의 위상이 높아져 부산, 목포에서 평양을 거쳐 중국, 러시아를 거쳐 인도, 터키까지 철도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시대를 열린다는 가정할 때, 재외교민, 동포, 민족의 뿌리 찾기는 문화유산의 회복과정을 통해 서로 공유하고 공감되는 속에서 진행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외소재 문화유산 조사와 환수 등에 재외 교민 참여 필수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국외문화재 현황(2018년 4월 1일)을 보면 20개국에 172,316점으로 2017년 발표 168,330점보다 3,986점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08년 발표와 비교하면 96,173점 증가한 것으로 2배가 넘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결과에도 전수 조사는 하세월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74,742점이 있다고 하나, 일본의 학계 등에서는 30만점 이상을 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공기관보다 개인 비장(秘藏)이 9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환수되는 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경매 등에 나온 개인소장품으로 구입 등을 통해 귀환하고 있다.   정부의 실태조사는 약 40%에 달했다고 하나, 정작 소장 경위 등이 포함된 출처조사는 십수건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대단히 미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력과 시공간, 재정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재가 소재한 국가의 재외 교민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효과도 높다. 몇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조창수 선생, 일본의 최서면 선생, 독일의 유준영 유학생, 프랑스의 박병선 선생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교민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적극 요청하지 않음으로 정작 살고 있는 소재지에서 조차, 한국문화재의 존재여부를 모르고 지내는 교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에 소개된 불상들. 사진 김정윤 미 보스턴 유학생, 최고의 한국 문화재 소장 사실 알려와   외교부에 따르면 보스턴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50,204명(2017년 기준)으로 이 중에 유학생은 4,641명이고 미국 시민권자가 25,929명이다. 보스턴에는 하버드대학교와 보스턴 미술관 등에 한국 문화재가 있다.   소장기관 건 점 대표 문화재 보스턴 미술관 1,013 1,286 고려 은제 주전자 외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 587 636 신라 금동여래입상 외 하버드대학 포그박물관 167 173 고려 불화 외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 1,767 5,310 조선 대동여지도 외 하버드대학 하우터도서관 1 2 조선 천로역정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연구한 김정윤 유학생은 유학기간 내내 보스턴에 있는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였다. 한국관의 규모와 전시물 현황, 소장품대비 전시율과 교체율 등 박물관의 운영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상황을 알려왔다. 이런 관심이 결국 석사 논문 주제를 “Exploring Approaches to Facilitate the Process of Repatriation of Korea's Lost Cultural Artifacts(잃어버린 문화재의 복원 과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연구)”로 하였다. 이에 지도 교수는 “대단히 흥미롭고 중대한 내용”이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한다. 논문에는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에 대한 한국과 미술관 측이 실태조사는 물론 출처조사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보스턴 미술관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도굴에 의한 반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고려 사리함’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 불교계로부터 반환을 요청받고 있다.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에는 1950년대와 60년대 외교관 그레고리 핸더슨이 반출해 간 도자기, 불상, 그림 등이 미망인이 기증하여 보관되어 있고, 옌칭 도서관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 고서 약 1만 2천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2)   끊임없는 도전의 묘미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60세에 언론인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실크로드 길을 걸으며 쓴 책이 바로 “나는 걷는다”이다. 그 책에서 필자에게 특히 인상적인 문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필요성 때문에 항상 군중의 물결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끝없이 움직이고 더 빨리 뛰어다녀야 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평소의 필자의 글쓰기를 지켜보면서 문장 솜씨에 못마땅하게 느낀(?) 후배가 필자에게 글 쓰는 법을 배우라는 차원에서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한 것이 계기다. 이러한 강권에 못 이겨 그 책을 사기는 하였으나 필자의 스타일과는 다른 책이어서 처음에는 그리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팽개쳐 둔 책이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그 책을 다시 읽는 순간 특히 위 두 구절이 필자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너무 공감이 갔다. 필자 역시 무한한 도전이 그립고 새로운 만남 그리고 어제와 다른 새롭고 설레는 하루를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필자 마음속에 갈등이 되었던 부분 즉 바로 “나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어쩌면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는 다소 두려움이 섞인 자조와 의아심이 항상 미해결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책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필자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필자가 최근에 우연히 소설을 쓰는 데에 새로운 관심과 의미를 가지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다. 사실 지금까지 필자는 부의 축척에 대하여 다소 둔감하였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한 면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소 건방지고 뜬금없어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호감’으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악성댓글이 나올 만큼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 스스로의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사실 부를 축적하여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비교적 희박하였고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한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게 된 데에는 필자 스스로 돈을 버는 데에 그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스스로 합리화하고자 하는 면도 있었고,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자조의 탄식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필자는 그간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심각하게 로또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요행으로 얻는 그런 일확천금이 필자에게는 달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심지어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이 싫을 정도로 독특한 자기 결벽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스스로 놀랍게도 이처럼 요행을 바라거나 행여 운 좋게 돈벼락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로또와 같은 일확천금의 기대 같은 것은 필자에게는 평소에 상상조차 하지도 못하였고 동시에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심지어 더 나아가 이에 대한 거부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물론 필자의 본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이를 제대로 인정하여 이를 통하여 이왕이면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변호사업무는 전문영역이기는 하지만 전문성의 부각보다는 좀더 사업적인 측면이 많은 특성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달리 적법과 위법의 경계에 서서 사업적인 융통성을 가지고 리스크를 안고자 하는 용기가 없으면 무수히 능력이 뛰어난 다른 법률전문가와 경쟁을 하여 이들을 이겨서 큰돈을 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온다는 것은 상당한 노련함이 필요한 종합예술이고 그리고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유수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인 클라이언트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받아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아니하다는 점은 명백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그간 큰돈을 벌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돈과는 그리 인연이 없는 것으로 보여 스스로 미리 이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필자의 인생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즉 필자는 평소의 소신이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그냥 나름대로 멋있게 살자”, 그중에서도 “만인에게 당당하게 살고 그리고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살하고 일 한만큼만 벌자”라는 자기합리화적인 자기 고집 내지 신념이 강하였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를 하고는 있다. 따라서 당연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는 벌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회에서의 성적표인 재무제표라는 부문에서 아주 탁월한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클라이언트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업무관계에서 불편함을 강요하거나 다소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면 필자의 경우는 필자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그냥 무심코 참거나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지 못하여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영락없이 필자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수임료를 즉시 전액 환불하고 해당 사건에서 사임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변호사라는 자유직업이 가지는 장점은 자신의 자존심을 가지고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이언트가 기업체가 아닌 일반 개인인 사건의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당사자가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너무 무리하고 또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그간 필자의 경우에는 클라이언트가 기업체가 아닌 일반 개인 클라이언트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클라이언트가 개인이 아닌 기업체여서 상호 합리적인 기대하에서의 업무수행을 나름 충실하게 진행했었다. 물론 클라이언트 기업체로부터 부탁받은 해당 법인의 이사나 직원들의 송무나 자문에 대하여는 거의 실비수준의 비용을 받거나 아니면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사실 그간의 변호사로서의 삶은 나름대로 의미는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보기에 따라서는 거의 소설과 같이 드라마틱한 부분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다소 황당한 분쟁경험 부분은 필자가 보기에도 거의 드라마와 같이 박진감과 긴장감이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영국 히드로 공항. 최근에 “나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는 강연을 접하면서 이에 자극이 되어 불현듯 필자의 자서전과 같은 내용의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위 강의를 한 교수분께서 소설은 자기의 경험을 써야 그 진정성이 있어서 그 의미가 있다고 강조를 하셔서 더 용기백배한 점이 있다. 그와 같은 말씀에 자극을 받고 나아가 또한 큰 힘이 되어 조만간 소설 2편 정도를 써서 이를 발표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필자에게는 현실이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이와 같이 소설화될 현실세상이 다이나믹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소 독특한 경험은 필자만이 개인적으로만 이를 간직할 것이 아니라 주위의 분들과 같이 공유하고 또한 공감을 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기 때문에 한번 시험 삼아 도전해보고자 한다.    최근에 그동안 같이 골프를 친 동료나 후배가 클럽 챔피언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또한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장관이 되고 국내 굴지 기업체의 사장이 되는 등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이 신문지상에 자주 보도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한때에는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고 그간 열심히 살아온 면이 있었는데 그와 같이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게 되니 왠지 더없이 부럽고 심지어 그 정도가 지나쳐 약간의 시기의 마음마저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왔다가 지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아서 그러한 친구들의 성공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의 박수와 갈채를 보내게 된다. 모두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이니까 하는 스스로 위안과 자위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는 인생을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이 도움되었다. 한편으로는 그간의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위 분들의 그러한 성공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이 있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친구나 선배 후배들의 멋진 성공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 더 멋진 성공의 순간들을 충분하게 즐기기를 조언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후부터는 사실 주위 분들의 세속적인 성취와 성공이 그리 부럽지가 아니하였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프로젝트가 주는 설렘 등이 가져다주는 감동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적으로 멋지게 보이는 소위 그와 같은 성공한 삶이 오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공 그 이후의 삶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대다수가 조만간 그러한 전성기의 삶에 대한 향수 때문에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현재의 삶에 대하여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에 성공 시절만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면서 과거의 시간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간 연구한 세계의 유명한 재벌 2, 3세의 삶을 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즉 그들은 선천적으로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춘 축복을 받은 자들로서 선택의 폭이 아주 넓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런 축복을 받아서 멋지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모든 여건이 갖추진 그들이 추구하여 온 삶이 궁금하여 필자는 시간이 되는 대로 이들의 삶과 생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또한 연구하여 왔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세속적인 사회적인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를 마냥 좋아해서 여기에 몰입하여 연구하는 삶을 살면서 이의 결과물로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2~3개를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특히 스포츠분야에서는 남다른 열정을 쏟아 자신들이 좋아하는 해당 스포츠 분야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하여 온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면에서 거의 다 가졌기 때문에 달리 세속적인 지위 등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무엇보다도 건강을 소중하게 여겨 이를 위한 스포츠 활동을 즐겨온 것으로 보였다. 이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와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채 그냥 그들만의 나름대로 개성 있는 멋진 인생을 설계하면서 살아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즐거움과 행복 그 자체라고 본다. 특히 필자에게는 음악, 미술, 체육 그리고 문예 예술 활동 그리고 사회 강연활동이나 칼럼 활동 등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그 자체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활동은 다소 밋밋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권태로움과 복잡함에서 해방시켜 준다. 어쩌면 이와 같이 비영리적인 활동은 비즈니스 업무와 적정한 조화를 이루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는 금상첨화라고 생각된다. 즉 어쩌면 단순한 일상에서도 가끔 맛볼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고 행복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돈이 필요한 이유를 이제야 어느 정도 명확하게 알게도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만의 방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 여행을 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정도의 부유함이 필요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문구가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필자가 느낀 감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 젊은이들도 이와 같이 느끼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보기가 좋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간 필자의 경우는 부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최근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수행을 통하여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즉 필자만의 멋진 삶 즉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도전의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서는 어느 정도의 부의 축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제 부에 대한 올바른(?) 목표의식이 생겼으니 현재의 현실적인 삶에서 좀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해 보고 싶다. 가능하면 앞으로 전 세계의 모든 지역을 탐방하면서 현지의 전문가들과 대화를 하고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 제대로 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인 음악, 미술, 체육, 시, 소설 등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하여 필자 나름대로 소박한 버겟리스트를 구상해보고 나아가 이의 실행을 위한 멋진 도전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런던 소재 코트라. 도전하고 배우는 삶이야말로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인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야말로 객관적인 평가와 관계없이 필자에게 가장 멋지고 성공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외부가 너무나도 멋진 불란서 집(?)을 꿈꾸기보다는 외관은 투박하여 멋스러움이 전혀 없는 거의 군대 막사 수준일지 모르지만 반면에 안의 내부는 외부와는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고 실용적이어서 실제로 필자만의 멋진 삶의 공간을 설계하고 이를 실천하는 그런 시간을 꿈꾸고 싶다.   결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필자 스스로만이 진실로 아름답게 느끼는 행복한 공간과 시간의 도전 여행을 은밀하게 기획하고 나아가 이에 무한히 빠져들고 싶다. 다른 일상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마냥 그 꿈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필자만의 소박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신비스러운(?) 그런 삶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 자체만으로도 오늘 다소 지친 일상에서도 오아시스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멋진 상상이 현실에서 실천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축복 그 자체가 아닐까? 비록 현실에서 다 구현되지 못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꿈은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꿈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로벌 프로젝트하에서의 수없이 사소한 버겟리스트는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빛과 소금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꿈은 자신이 포기하지 아니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이 되고 나아가 꿈 자체만으로도 영원한 축복이라는 평범하지만 친근하면서도 소박하고 소중한 진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새로운 감동으로 가슴깊이 와 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시간에도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고자 한다.     막스 프랑크 일기(83)   소설에 도전하다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본문 가운데. 지금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 중의 하나가 소설이다. 물론 한국어로 작성하여야 한다. 물론 이를 중국어나 영어로 번역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특히 정서가 비슷한 중국시장을 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성취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달 말 안으로 2편의 소설을 써야 한다. 그간 미국 유학시절부터 이후의 앤아버, 홍콩, 프랑크푸르트, 런던, 제네바, 뮌헨, 타이페이, 심천, 가고시마를 비롯하여 잘츠부르크, 부다페스트, 자그레브,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 남부 프랑스 해안뿐만이 아니라 오래전에 다녀온 모스크바, 미국 대륙횡단, 사웅파울러, 호주, 싱가포르, 북경 등등에서의 각종 일기 형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대장정이 남아 있지만 일단 중간 편집형태의 글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남은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도전일정에 참조하려고 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이다. 일상적인 업무도 해야 하는 사정하에서 다소 벅찬 도전이기는 하지만 나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위기의 중년 변호사의 인생을 조명해보는 소설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아날로그 관념에서 그냥 지나쳐온 평범한 삶에서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애환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는 새로운 삶을 또한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간 프랑크푸르트일기, 런던일기, 제네바일기, 막스프랑크일기 등을 비롯하여 앤아버일기 내지 홍콩일기 형식으로 칼럼을 써왔다. 이런 칼럼이 필자에게는 더 없는 자극이었고 행복 그 자체였다. 이제 퀸메리일기를 통하여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남미일기에 도전하고 나아가 일본일기, 중국일기 그리고 동남아 일기를 준비해보고자 한다. 그 와중에 세계 100대 골프장 시리즈도 감히 구상해 본다. 문제는 시간과 돈일 것이다.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남은 일기에서의 가장 큰 숙제이다.   그러나 세상에 풀리지 아니하는 숙제는 없다고 본다. 나머지 일기가 끝나는 날에 필자는 마침내 한편의 장편 소설 “나는 도전한다”를 완성할 것이다. 법률가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지식재산 분야, 금융 그리고 분쟁의 조정과 중재 또한 골프와 문화예술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도전한다”라는 소설 아닌 소설은 완성 자체가 목표가 결코 아니다. 전 세계를 상세하게 비교분석하고 이에 대한 느낌을 기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도전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고 달리 완성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또한 달리 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드레스덴. 그냥 그 도전 과정을 즐기고 이를 기록화하고 싶은 소망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한도 달리 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름대로 기한을 설정하기는 하였지만 굳이 이러한 설정에 집착하게 되면 쉬게 지치고 피곤해질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냥 시간이 되고 여건이 되는 대로 도전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또한 이 도전의 과정에서 추가할 도구가 바로 컴퓨터와 음악이다. 법률, 골프, 컴퓨터와 음악이라는 관점에서 일기를 써보고 싶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여 하나의 서사시를 만들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이를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이고 중간 점검이 바로 “나는 도전한다” 라는 미완성의 소설이다. 현재의 스케줄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년 변호사의 일상과 도전”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에도 도전해 보고자 한다. 이 칼럼 글이 발표될 시점에는 이미 두 권의 소설이 출판되었기를 소망해 본다.

이상근

대마도에서 소개되는 한국 문화재.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2012년 대마도에서 한국인 절도단이 반입한 두 점의 불상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하고 사회 일각에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논쟁은 ‘절도품이니 돌려주자, 절도 이전에 강도당했으니 돌려주면 안 된다’에서 ‘왜구의 약탈은 가능성에 불과하다.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돌려줘야 한다. 문화재반환 소탐대실 주장’까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이 문제는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졌고 정부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2013.09.30. 연합뉴스. 유진룡 “부석사 불상 반환…사법부 판단 존중해야”)로 정리되었다.    2017년 1월 대전지법은 부석사의 불상 인도소송에서 ‘부석사의 소유로 넉넉히 추정할 수 있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일본으로 운반되어 봉안되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 후 피고 대한민국은 불복, 항소하였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 판결이후 왜구에 의한 약탈 주장은 추측일 뿐이라는 주장은 사라졌지만, 판결에 대한 평석은 법조계의 핫 이슈이다. 특히 국제법 전문가들은 국제협약이나 문화재보호법 등을 들어 일본에 ’환부‘하면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표적인 논문을 소개한다.    유네스코 협약은 일본의 반환 요구에 불리    서울대 이근관 교수는 ”대마도 불상 도난사건에 대한 국제법적 고찰“ 발표문에서 ”1970년 (유네스코)협약은 자기집행적 효력이 결여된 조약으로서 그 국내적 이행을 위해서는 개별국에 의한 이행입법이 필요하다. 일본이 수용한 협약상의 의무도 결국 일본의 2002년 이행입법의 분석을 통해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① 협약 제7조(b)(ii)와 상호주의 원칙   국제법의 일반원칙인 상호주의에 따르면, 협약 제7조(b)를 매우 미약하게 이행하고 있는 일본은 대마도 불상 사건에서와 같이 자국에서 도난당한 문화재가 이미 외국으로 반입된 경우 도난당한 문화재가 현재 소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 제7조(b)(ii)에 기초해 회수 및 반환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해석된다.    ② 2002년 법률 제5조와 동조여래좌상   2012년 10월 대마도로부터 도난당한 두 불상 중 (신라여래)입상은 법률 제2조 2. 항상의 ‘국내문화재’의 정의에 부합하여 2012년 11월 관보 제5937호에 게재되었다. (부석사)동조여래좌상과 고려대장경은 국가에 의해 지정된 중요문화재가 아니었기에 관보 게재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따라서 게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02년 이행법률상 (부석사관음)좌상은 1970년 협약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이는 일본 국내법의 미비, 달리 말해 일본에 귀책되는 사유로 인해 초래된 결과다”이며 따라서 “대마도 불상과 관련하여 법적인 차원에서는 그 반환을 거부할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협약이 부과하는 의무는 한일 양국 간에는 양국이 수용한 의무가 합치하는 범위 내에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단지 ‘상징적’ 수용을 하고 있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제7조(b)(ii)를 원용하여 대마도 불상을 반환하는 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특히 (부석사관음)좌상과 관련하여 2002년 이행법률 제5조가 이 불상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970년 협약의 적용에 장애가 존재한다. 2002년 이행법률의 문제점으로 인해 일본은 1970년 협약 제7조를 원용하는 데 큰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 발표하였다.     김경임 전 튀니지대사는 ”약탈 문화재 환수에 관한 국제사회의 논의 경향: 부석사 관음상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제언“에서 유네스코 협약 7조 (a)에 따라 소장품 취득에 관한 국내입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립박물관 및 소규모 문화기관 등은 이 협약상의 취득 금지 의무는 지지 않게 될 것” “무엇보다도 이 유네스코 협약의 해석에 있어 7조 (b) (ii)의 반환대상은 “정당한 소유권(valid title)을 가진 자”라는 점에서 대마도 간논지에서 불법 반출되어 한국에 반입된 부석사 관음상은 유네스코 협약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해석되며, 정당한 소유권을 입증하지 못한 간논지는 협약 상 반환의 대상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 하였다.     서울대 석광현 교수는 “대마도에서 훔쳐 온 고려불상의 서산 부석사 반환을 명한 제1심 판결의 평석 : 국제문화재법의 제문제” 논문에서 “유네스코 협약 상 한국에 선의의 매수인이나 그 문화재의 ‘정당한 권리자’가 있다면 일본은 그에게 공정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제7조(b)(ii)단서)”에 근거하여 “만일 원고가 소유자라고 인정된다면 한국 정부로서는, 일본정부로부터 부석사가 공정한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부석사에게 지급할 금원을 한국 정부가 수령하기 전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문화재보호법으로도 일본으로 돌려 줄 근거 없어   한양대 박선아 교수는 “약탈문화재의 환수와 원소유자 반환의 원칙-대전지방법원 2016가합102119 서산부석사 불상인도청구사건을 중심으로-” 발표문에서 “(한국) 문화재보호법 제20조는 외국 정부가 정당하게 취득한 소유자라는 점이 인정될 때에만 ‘외국문화재로서 보호’한다. 문화재 보호법은 외국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화재가 약탈 문화재인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라며 ”일본은 금동관음보살상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보관하면서도 2009년 세계박물관협회(ICOM, International Code of Ethics For Museums, 2009) 윤리규정에 따라 취득 경위를 조사하거나 밝히는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원고인 부석사는 일본에 대하여 취득경위와 상당한 주의를 다하여 자국 문화재로 지정하였는지에 대해서 일본에 입증을 요구할 수 있다. 증거에 의하여 원소유자를 확정하고, 약탈당한 명확한 시기와 함께 약탈 사실을 확정하여 원소유자 반환의 원칙을 관철하고 있는 이 사건 판결은 결론에 있어서 정당하다‘고 하였다.     2012년 한국인 절도단에 의해 국내로 반입된 두 점의 불상 중 일본정부가 국보로 지정한 신라여래불은 형사 재판이 종료된 후 일본으로 “환부”조치되었고, 고려관세음불인 부석사불상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은 2018년 6월 15일 대전고법에서 진행된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0)   동서양문명의 융합도시로서 발전하였으나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홍콩을 다시 방문하다   홍콩 공항  동서양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는 홍콩은 필자에게는 여러 가지 감흥을 일으켜 준다. 역사적이며 또한 세계적 시장인 중국의 관문으로서 너무나도 크게 와 닿았던 홍콩이었기에 홍콩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또한 홍콩은 동서양문화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홍콩은 비행기로 3시간 전후 걸리는 거리이다. 그리 멀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너무 가까워 보이지마는 아니한다. 지난번 홍콩 방문 시에 만난 한국계 변호사가 생각난다.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법과대학을 졸업한 한국계 홍콩계 변호사인데 의외로 푸념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풀이 죽어 있는 모습으로 보여서 물어보니 홍콩은 실제로 세계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 같은 사람은 제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여서 상당히 놀란 기억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전혀 되지 아니하였다. 충분하게 자부심을 가질 학력, 경력 및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콩을 점차 가까이 접하면서 이곳이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이국적인 정취를 원하는 많은 파워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생겼다.   그러 저런 이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홍콩에 대하여 좀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래서 가능하면 필자가 한번 홍콩대 법대에서 강의하거나 아니면 학자로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애초의 계획이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라인로펌의 가능성 들을 모색할 겸 해서 겸사겸사 홍콩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사무실에서 아침에 급한 일을 마치고 공항철도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였다. 공항에서는 금감원에 다니면서 중국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있어서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제는 중국통으로 통하는 후배가 바쁜 걸음으로 가다가 나를 발견하고 황급하게 인사를 하고 바쁜 표정으로 급히 지나간다. 역시 중국 부분에 많은 투자를 하더니 이제 이를 잘 활용하여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이다.   갑자기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평정심을 찾기로 했다. 이제는 남과 비교하지는 말자. 필자 나름대로 인생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행복함을 가지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방책이라는 것을 최근에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후배가 더욱더 성공하고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뜻밖에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편의 비용이 그리 높지 아니하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저가 항공사의 경우는 왕복 비행기 값이 대략 20만원대이고 국내 대형항공사 역시 거의 30만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착한 가격이 홍콩에 대한 느낌을 더욱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여 주었다. 모닝캄 회원이어서 다행히 자리는 여유가 있는 곳으로 배정되어 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영화 1편을 보고 다른 영화의 반편을 보니 벌써 홍콩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그런데 이번 안내방송은 특히 필자의 주의를 끌었다. 홍콩공항항공인데 현재 홍콩공항의 트래픽이 심하여 착륙허가를 기다리고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역시 홍콩이 아시아지역에서 교통의 가장 중심지인 모양이다.    홍콩에 도착하니 홍콩 도시는 아무래도 영국과 중국을 혼합한 혼성도시라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리 등에서 지나치게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많아 다소 눈과 귀에 거슬렸다. 먼저 미리 예정된 업무상 만남을 간단하게 마치고 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 지나갔다.   저녁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마침 수요일에 야간 경마장이 연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경마문화가 다시 한 번 신기롭게 느껴져 홍콩의 해피밸리에 있는 자키 클럽으로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해피밸리는 과거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낙후된 곳이었으나 경마장 등의 건립으로 인하여 새로운 중심지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개발의 일환으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선이 폐광으로 버려진 상태에서 카지노사업을 허가하여 나름 경기가 활발한 관광 지역으로 재탄생한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에게 경마를 즐기느냐고 하자 자기는 경마를 좋아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실감이 나고 충분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면서 사용한 무기가 마약과 도박이었다. 이런 마약과 도박으로 현지 식민지 사람으로 하여금 단기적인 흥미 위주의 삶을 즐기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현지 식민지 사람을 타락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결코 제국주의라든지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정치이념이나 사회개혁의 관심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경마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부감을 이야기할 수 있는 택시기사가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홍콩의 잘 나가는 부자나 지배계층은 말을 소유하거나 경마장 등에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엄청난 부를 더 창출하고 이를 충분하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홍콩식민지 역사에 비추어 보면 홍콩은 좀 비극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홍콩은 결코 세계의 식민지를 거느리는 자부심과 이로 인한 혜택만을 누리는 런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서양에 지배당한 식민지의 아픔과 식민지에서의 피지배계층인 동양의 슬픔과 애환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자키클럽의 경마장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향락적이거나 도박적인 느낌이 강한 그런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고급사교장을 옮겨놓은 것처럼 밝고 찬란하고 고상하기만 하였다. 말들의 주인으로 구성된 마주들의 그룹들은 별도의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모두 고급드레스와 고급정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자신이 아니라 말들이 돈을 벌어 주고 있으니 그냥 말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샴페인만 마시면 되는 것처럼 여유 있고 즐거워 보였다. 이런 여유 자적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부가 축적되는 것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즐기는 듯한 분위기이다.   어쩌면 비행기와 경마장 역시 빈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상호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홍콩에서는 경마장의 식당 등이 고급사교장이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박장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급스럽고 밝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낮보다는 밤의 경마장의 분위기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다만 야간 경마는 일주일에 수요일 저녁에 한 번에 한하여 야간 경마장을 개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멋진 대리석이 깔린 복도 그리고 정장차림의 근무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밝고 화려한 실내 장식과 조명 등등…. 어쩌면 자본주의국가에서 가장 화려한 고급사교장으로 보인다. 깔끔한 매너를 보여주고 이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   어쩌면 우리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이지만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의 연출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이 클 것이다. 다만 대영제국의 최고중심지인 런던의 고급사교장에 비하여 홍콩의 경우 홍콩에 파견된 영국인 그리고 파견 고급 귀족들과 이와 대비되는 홍콩현지인들이 같이 어울려 이루어지는 다소 애매하게 풍기는 고급사교장의 분위기는 서로 좀 다를 것으로 보였다.   즉 해피밸리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였다는 점 그리고 경마 수입에서 얻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자선기금으로 사용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여전히 홍콩식민지의 어두운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 무엇이 있어 보였다.   영국 식민지지배의 철학이 배여 있고 나아가 식민지를 통치하는 가진 자들의 사교장이며 나아가 식민지 현지인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하여 약간은 씁쓰레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이국 땅에서 자투리 시간에 색다른 문화를 접해보고자 시도하였다가 오히려 이런 다소 복잡미묘한 느낌이 그저 불편하기만 하였다. 시간이 늦었지만 서둘러 심천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놀랍게도 전철 편으로도 심천으로 갈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전철로 가는 심천행 길은 나름대로 흥미진진하였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전철의 시스템과 전철 안 등은 잘 꾸며져 있었고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바로 런던 전철과 유사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홍콩전철역이 좀 더 동양적이어서 인지 좀 더 친근감이 들어 더 좋았다.   막스 프랑크 일기(81)   홍콩에 인접하여 국제적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한 심천에 있는 북경대 법대를 방문하다   심천 소재 북경대 법대.  늦은 사간에 전철에 타고 심천에 있는 Lu Wu에 도착하니 별도의 출입국절차가 진행되었다. 다행스럽게 비자를 서울에서 받아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으나 의외로 분위기가 다소 고압적이었다. 과거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친절한 면이 적지 아니하였다. 다만 이에 익숙하지 아니한 이방인으로서는 다소 긴장되게 하는 면이 있었다.   호텔까지는 택시로 얼마 되지 아니하여 타고 가니 생각보다는 호텔이 보기가 아주 나쁘지 아니하고 또한 가성비가 좋아 보였다. 거의 12시가 넘어서인데도 호텔 주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호기심에 늦은 시간에 혼자 다녀도 안전상에 문제가 없느냐고 호텔직원에게 물었더니 전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의외로 경찰 등이 많아서 오히려 범죄율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심천 북경대 법대. 간단하게 요기를 하려고 호텔주변으로 살펴보니 젊은 사람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늦은 시간에도 많이 왕래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요기할 것을 사서 호텔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그냥 잠이 쏟아졌다. 깜박 잠이 들어서 다시 일어나니 아침 8시 30분이다.   급히 조찬을 하러 내려가니 간단하게 급히 먹고 북경대 법대를 향하여 길을 나셨다. 관광 겸해서 전철을 타고 갈려고 티켓을 발급하려고 하니 티켓발급은 카운터에서는 안 되고 오직 기계로만 된다고 한다. 신기할 정도이다. 그만큼 무인화 내지 컴퓨터화가 잘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머신에서는 티켓의 보수인식에 있어서 지폐는 안 되고 동전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티켓을 구입하기 위하여 실랑이를 벌이느라고 시간을 다소 낭비하였다.   북경대 법대는 University Town이라는 전철역주변에 있었는데 안내 표지판 등에 이에 대한 표기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찾기가 다소 애매하였다. 북경대 법대의 법학 및 경영대 석사과정이 심천대학교의 구석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캠퍼스가 의외로 아담하고 아름답다. 다만 전철역의 약도나 심천대학교의 안내표지판에도 달리 북경대 법대에 대하여 크게 기재한 안내도면이 거의 없어서 찾기가 조금 애매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구글맵은 의외로 작동을 잘하였다. 전해 들은 바로는 구글이 중국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날은 의외로 잘 작동되어 큰 도움을 받았다.   휴게실. 구글맵이 일부 지역은 차단이 되어 있었는데 업그레이드가 어려워서인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좀 헤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안내를 해주어 마침내 북경대 법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구글의 위대함에 놀라고 감사할 뿐이다.   막상 가보니 북경대 법대와 경영대 건물은 크고 웅장하고 멋있었다. 때마침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법대 건물에 대하여 물어보니 아주 친절하고 밝게 잘 이야기 해주었다. 법대는 아주 멋진 건물에 소재하면서 그 주변의 경관 역시 조용하고 은은하였다.   마침 법대에 한국계 교수님들도 계시고 한국인 학생도 있다고 하여 법대 건물을 한번 방문하기로 하였다. 때마침 그리고 점심때여서 경영대 구내식당에서 가서 한번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교수실은 5층에 좋은 위치에 잘 자리 잡고 있고 전망도 좋아서 연구가 저절로 잘 될 것 같았다.   교수실. 이어 경영대 건물로 가니 이 건물이 전 세계에서 경영대 단독 건물로는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한다. 밖에서 일견 보기에는 의외로 아담하게 보였는데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니 그 큰 규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역시 중국의 스케일이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가 어려운 진리인 것 같았다.   북경대 법대 내에는 한국계 교수님이 두 분 계시는 데 한 분은 정교수로서 한국인 교수이시고 또 다른 한 분은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강사분이시라고 한다. 그리고 법대 석사과정에도 한국인 학생이 한 분이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각자 너무 바빠서 공식적인 모임 외에는 서로 잘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그러면 좀 외롭지 아니하느냐고 물어보자 교수분들은 강의 준비, 세미나 준비 그리고 석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지도 등을 하게 되면 시간이 여전히 너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해외 대학에서 나오는 책의 한 부분에 대한 원고를 마쳤는데 실제 페이지 수는 30여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의외로 바쁜 교수일정에 대하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북경대 경영대 건물. 교수님분들은 글 쓰는 작업을 성형외과수술에 비교하였다. 초기에는 뼈대를 만드는 정형외과와 비슷하나 시간이 지나면 성형외과에 비슷하고 나아가 자주 하면 중독이 되는 점에서 거의 유사하다고 하였다. 흥미롭고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교수분들의 원고작성 과정에서 퇴고의 어려운 작업을 실감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논문상 성공보수금을 나타내는 영어표현에 관하여 살펴보자. 예를 들어 Contingent Fee와 Contingency Fee 중 어느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가 궁금하여 상당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기재 또는 표현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간의 리서치 결과에 의하면 문헌상으로 두 개의 표현 모두가 논문 등에 자주 보여서 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인 교수에게 이 부분에 대하여 물어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미국인 교수는 즉 문법적으로는 형용사와 명사가 있는 Contingent Fee가 더 적절할 것 같지만 명사를 사용하여 형용사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무적으로 Contingency Fee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교수 분들이 치밀하게 논문을 준비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세계적인 교수 분들이라면 자신들의 표현에 대하여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책임감 하에 치밀하게 논문을 준비하는 모습이 더 없이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이어 경영대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시간관계상으로 급히 홍콩으로 귀환하였다. 홍콩으로 가는 심천의 출입국관리사무실의 분위기가 의외로 다소 권위적이어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친절한 편이었다. 앞으로 중국을 알기 위하여 좀 더 중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마음속으로 스스로 약속하면서 아쉽지만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상인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발걸음-여행은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설렌다. 김포 공항 출국장은 이른 시각부터 셀레임으로 기분이 업 된 여행객들이 가득 했다. 지난 11일의 일이다.   필자는 색소폰과 커다란 가방을 끌고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서울 아트 앙상블(ensemble)과 합류했다. 김포를 떠난 비행기는 1시간 20분 여 만에 간사이(關西) 공항에 덜커덩 내려앉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미세먼지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도 행복 만점이었다.   마중 나온 버스를 타고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버스 안에서 서울 아트 앙상블(ensemble) 성세경(62) 단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자 생업에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주신 단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힘입어서 드디어 첫 일본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아트 앙상블은 올해로 10년이 된 순수 아마추어들의 모임이다. 직업도 각양각색. 대학 교수, 의사, 출판업, 건설업, 금융업...등 총천연색이다.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버스는 한 시간 여 만에 천년 고도(古都) 교토(京都)의 후미진 골목길에 자리한 요양원에 도착했다.   색소폰의 아름다운 선율(旋律)로 日 노인들을 위로해   요양원의 이름은 ‘Regalore Confort’-   이나가키 고로(稻垣吾郞·34)씨에게 요양원의 명칭의 의미에 대해서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장엄함과 귀함의 ‘Regal’과 풍요로움과 안위를 의미하는 ‘Galore’의 합성어입니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요양원 곳곳에서 귀함과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연주회는 오후 두 시부터 시작됐다. 장소 등의 문제로 ‘서울 팀’과 ‘아트 팀’으로 나뉘어서 진행됐다.   서울 팀의 연주 아트 팀의 연주이날 참석한 노인 관객들은 40여명. 휠체어에 의지한 고령자들도 많았다. 그래도 한국에서 건너온 음악 전도사들의 열연에 감동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연주에 맞춰서 여윈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노인들에게는 정치도, 이념도, 국경도 없었다.   “감동입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마 요시코(大馬房子·88)할머니의 말이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연주회는 잔잔한 감동으로 마감됐다. 이 요양원의 최고령자는 99세. 나이의 무게가 세월만큼 무거웠다.   “내년의 연주회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뭔가를 기다리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99세 할아버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필자는 작가 무라마쓰 토모미(村松友視)가 쓴 라는 책이 생각났다. 극의(極意)의 사전적 의미는 ‘지극한 뜻’ ‘마음을 한 곳에만 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은 누구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노인이 된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고 전제하고, 노인들에 관한 체험담을 실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과 이날 연주회 청중으로 참여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오버랩 됐다.   “나의 먼 친척의 할머니는 93세의 천수를 누리고 있다. 할머니는 생일 때 마다 가족들과 만나서 오렌지 주스로 건배를 하면서, 또 일 년을 기다리고 있다.”   요양원 청중(?)들은 “내년에 또 만나요!”하면서 기약 없는 약속을 기대하며 각기 풍요하면서도 쓸쓸한 공간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색소폰의 아름다운 선율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요양원을 나섰다.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젊음이 넘치는 유스호스텔에서 밤의 정적을 깨트려   교토 도심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나카야마초(中山町)에 위치한 우다노(宇多野) 유스호스텔에서 두 번째 연주회를 가진 서울 아트 앙상블(ensemble). 모이는 것보다 흩어지기에 바쁜 서울과는 달리 일박 이일 동안 다져진 팀워크가 더욱 단단해 보였다.   나이든 사람들보다는 젊은이들이 많이 투숙하는 유스호스텔이어서 인지 로비의 공기도 젊고 신선했다.   안내문“오늘의 이벤트, 색소폰 앙상블 콘서트. From 한국! 참가비 무료.”   익살스러운 안내문들이 호텔 곳곳에 붙어 있었다.   유스호스텔은 독일에서 생겨난 세계 최대의 여행 네트워크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0여 개의 유스호스텔이 있으나, 이 호텔은 보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투숙객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수시로 전개하고 있다. 이 호텔은 처음 만난 투숙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이러한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투숙객들을 위한 연주 “저희 호텔에 한국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마침 색소폰 앙상블이 저희 호텔에 예약을 하셨기에 특별히 부탁해서 오늘의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세이리키 기요미(勢力淸美·45) 소장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밤 8시가 되자 서울 아트 앙상블(ensemble)팀의 색소폰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작은 공간(룸)에 들어있던 투숙객들을 로비로 불러냈다. 투숙객들의 얼굴마다 즐거움이 넘쳤다. 투숙객들은 ‘앙상블이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멀리 아키다(秋田)에서 왔다는 투숙객의 말을 들어 봤다.   “앙상블의 연주를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감동입니다. 내일 돌아갈 때 차에서 들으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잉글랜드의 옛 가요 그린슬리브스(Greensleeves)를 연주할 때는 참석자들의 박수갈채가 끊이질 않았다. 앙코르 송은 당연히 아리랑. 우연히 만난 여행객들이 음악이란 연결 고리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가운데 교토의 밤은 우아하게 깊어 갔다.   비에 젖어 색소폰에 젖어   연주곡을 선곡하는 성세경단장(좌)과 장하늘 선생(우)봄의 경계선을 넘어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던 교토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서울 아트 앙상블의 연주 일정은 원래대로 진행됐다. 세 번째 연주 장소는 교토의 한인 교회.   아담하고 소박한 교회에는 한국인과 일본인 신자들이 반반 씩 섞여 있었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설교는 한국어로 동시통역하는 형태였다.   예배가 끝나자 12시 정각부터 연주회가 시작됐다. 이날의 연주는 찬송가도 곁들였다. 일본인 한국인 모두 리듬에 맞춰 흔들며 박수를 쳤다.   앙코르 곡 ‘라데스키 행진곡(Raderzky Marsch)’을 연주할 때는 다 같이 하늘을 날을 태세로 활력이 넘쳤다.     권영환(53) 목사는 “음악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회복 시켜준다”면서 “오늘의 연주를 위해서 서울에서 와 주신 모든 분들에게 영광이 깃드시기를 바란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인사를 하는 권영환 목사‘6년 째 이교회를 다닌다’는 82세의 할머니는 “일본까지 오셔서 이토록 좋은 음악을 선물해 주신 앙상블 단원 여러분께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 성세경 단장세 번의 연주회를 마친 성세경 단장은 “프로를 추구하는 아마추어가 돼야 한다”면서 “더욱 더 열심히 연습하자”고 했다.   이 앙상블을 지도하는 장하늘(35) 선생도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단원들이 자랑스럽다”면서 “단장님의 말씀처럼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으나, 서울 아트 앙상블 단원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듬뿍 안고서 귀국길에 올랐다.   민간인들의 이러한 노력이 쌓이다보면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진정으로 가까운 이웃나라가 될 것이다.

박상융

조선DB동거녀를 폭행한 남자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불까지 질렀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었다. 피해자인 동거녀가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거녀가 처벌을 원치 않는 이유를 조사해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필자가 경찰재직 시 취급한  가정폭력사건의 경우 처음에는 거의 겁도 나고, 피해를 면하기 위하기 위해  신고하지만 경찰이 출동한 후 조사단계에서 처벌을 원치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경찰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사건을 종결하고 돌아온다.     왜 처벌을 원치 않는 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처벌의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보복 폭행을 당하기 때문에 두렵기도하고 처벌의사를 표시해도 구속되는 경우가 희박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해진단서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상해진단이 나올 정도가 아닌  단지 피해가 가볍다는 이유로 구속이 안된다.   불구속이 되면 가해자는 집에 귀가한 후 신고를 한 피해자를 찾아가  다시 폭행을 한다. 그러한 가운데 상습폭행에 가정이 멍이 든다. 흔히 가정폭력의 경우 매 맞는 배우자, 부모, 자녀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매맞는 장면을 지켜본 자녀와 그 가족(부모)의 정신적 충격이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매맞는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가출과 범죄, 나아가 정신적 상처를 입어 자신들도 폭력범죄자가 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매 맞는 피해자들이 집에서 쫓겨나 쉼터 등으로 피하는 반면에 오히려 폭행을 한 가해자는 집에서 머무르는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번 사건의 경우 폭행을 당한 동거녀는 처벌의사를 철회했을 뿐 아니라 경찰의 신변보호조치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왜 동거녀는 처벌의사를 철회하고 신변보호조치를 거부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철회하지 않으면 동거남이 자신에게 보복을 할까 봐 두려워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동거남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의사와 신변보호조치를 요청하면서 혼자서 독자적으로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신변보호조치를 거부한 경우 경찰은 더는 조치를 해 줄 수 없는 것일까? 방화까지 하고 상습적으로 폭행을 가해놓고도 법원의 영장기각에 의해 석방된 동거남이 또다시 재범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을까?    신변보호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석방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왜 신고했느냐고 다그치면서 보복 폭행을 할 우려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과연 경찰서 어느 부서에서 해야 할까? 가정폭력이 야간에 이루어지다 보니 이를 처리한 파출소, 여성청소년 수사팀, 형사팀, 강력팀의 경우 자신의 당직 교대근무 시간이 끝나면 사건이 제대로 인수인계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지와 보복을 하는지에 대해 현장을 방문하여 가해자에게 재범하지 않도록 강력히 경고하고 피해자를 안심시켜 주는 조치를 할 수는 없었을까?   말로만 신변보호조치, 긴급접근금지 조치를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와 관계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아울러 가정폭력사건은 불구속된 상태에서 검찰을 거쳐 법원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기까지 길게는 3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러한 상태에서 재 폭행이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대로 신고조차 되지 않는다. 사건접수단계에서부터 재판까지 시간이 너무 길게 걸린다. 신고 또한 신고 후 자녀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처벌을 철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에 대한 쉼터 또한 부족하고 쉼터에 머무르는 것을 꺼리기도 할 뿐 아니라 쉼터 자체에 경찰관이 배치되지 못해 신변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가정폭력 현장을 지켜본 자녀들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가정폭력상담소, 가정법률상담소,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많은 기관과 시설이 있지만 제대로 내실 있게 운영되지 않는다. 법과 현실이 따로따로다.     경찰, 검찰, 법원단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상담, 그리고 경제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성, 학교폭력 등과 더불어 4대 사회악으로 가정폭력 근절을 외쳤지만 현실적으로 폭력발생 후 조치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치료와 가해자의 재범을 막기위한 접근금지조치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재범율이 높아졌고 가정폭력은 오히려 늘어만 갔다.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다른 나라 법규정을 인용하여 만들어진 법률은 장식에 불과하다. 왜 이 땅에서는 매 맞는 피해자는 집에서 도피하고 있고 가해자는 도리어 집에서 당당히 머무르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국회의원, 대법관, 여성가족부장관, 법무부장관, 경찰청장, 검찰총장 등 관련기관장들이 가정폭력 피해당사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들어보아야 한다.   5월 가정의 달이다. 생활고에 시달려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 처벌의사를 철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거녀를 살해한 사건을 보면서 서글픈 현실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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