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가 사무실에서 무릎을 꿇린 채 쌓인 책더미 위에 고개를 묻고 죽어 있었다. 팬티 차림에 양팔은 뒤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배 쪽의 살이 일부 잘려나간 처참한 죽음이었다. 변호사를 살해한 범인은 피로 벽에다가 ‘탐욕’이라고 써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돈독이 올라 강간범을 무죄로 조작한 변호사에 대한 응징이었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방에서 혼자 본 명화 ‘세븐’의 한 장면이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른세 살부터 예순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변호사 생활을 해 왔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직업을 보는 시각이 많이 변해왔다는 걸 느꼈다. 가난한 변호사로 혼자 막 개업을 했을 때는 찬바람 부는 어두운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벌어서 가족이 먹고 살아야 했다. 돈만 준다면 뭘 못하겠어? 악마의 그런 속삭임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돈 몇 푼을 받고 살인사건도 맡았고 또 조직폭력배들의 변호도 맡았다. 그들 중에는 이미 영혼이 빠져버린 좀비같이 변질된 자들이 많았다. 본능만 남아 다른 이의 피를 빨고 살을 뜯어먹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전염되어 가는 것 같았다.     살인범을 변호하는 한 법정에서였다. 방청석 뒤에 앉았던 죽은 여인의 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 법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가 피가 다 빠진 듯한 하얗고 무서운 표정으로 내게 손가락을 쳐들면서 소리쳤다.    “당신 그렇게 살인범을 두둔하는 거 아니야. 재판장님 내 딸을 죽인 저 놈도 사형에 처해 주세요.”     법정 앞에서 죽은 아버지와 동료들이 나를 둘러쌌다. 곧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올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였다. 나는 억울했다. 법은 살인범이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변호사라는 내 길을 간다고 생각했다. 그날 잠이 오지 않았다. 한밤중에 일어나 곰곰 생각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 그 살인범을 왜 변호했는지 내면의 나에게 솔직히 물어봤다.     그랬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변호를 했다. 돈이란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만 일단 받으면 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정의에 둔감해지고 승부욕에만 집착했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고용된 양심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악마의 낚시미끼를 탐내다가 아가미가 꿰어져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 같았다.     어느 날 민사법정에서 상대편 변호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로펌에서 나온 세 명의 변호사가 나와 싸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화려한 경력을 가진 허여멀건 미남들이었다. 검은 법복을 입고 법대 위의 붉은 의자에 앉았을 때는 전능해 보이던 사람이다. 재판이 시작됐다. 그들의 입에서 녹음이 된 듯 화려한 수사의 변론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보기에 그들이 받들어 모시는 분은 정말 나쁜 놈이었다. 몇 년을 뼈가 빠지게 혹사당하고도 임금을 한 푼 주지 않은 악덕 기업주였다.     하나님은 일꾼의 품삯을 넉넉히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주라고 했다. 그들이 변호하는 기업주는 대형로펌에 큰돈은 줘도 노동을 한 사람의 품값은 주지 않았다. 상대편 세 사람의 변호사를 보는 순간 착시현상이 왔다. 사람이 아니라 잘 생긴 마네킹들이 와서 입을 벙긋벙긋 하면서 속에 있는 녹음된 소리들을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내남없이 변호사들이 영혼을 되찾으면 조금은 좋은 세상을 만들 텐데.

오봉학

노고단 산장의 아침은 일찍부터 분주하다.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리산 10경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노고단 운해는 장관으로 꼽힌다. 이를 보려는 기대감으로 산행을 서두른다.      학생들도 긴장하고 있었는지 깨우지 않았는데도 모두 일찍 일어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서로 조심하면서 부산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에 주변 청소까지 미리 나눈 각자의 역할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요즘 청소년들이 어른 말을 잘 안 듣고 스스로 할 줄 모른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늘의 목적지인 벽소령 산장은 학생들 걸음으로 11시간에서 12시간 정도 걸린다.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매우 가파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배낭의 무게도 무겁게 느껴지고, 길을 올려다보면 마치 땅이 하늘로 훅 들어올려진 것 같아 아찔하다. 학생들은 아무리 주의를 줘도 연신 물을 들이켜며 제자리에서 도무지 발을 떼려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속았다” “왜 왔지?” 하는 후회의 말들을 내뱉는다.      모두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 준범이가 보란 듯이 혼자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평소 체력이 약하고 체육시간에 운동능력이 떨어져 힘들어했던 준범이다. 산행이 결정됐을 때 준범이와 부모님에게는 특별 부탁까지 했었다. 그런 준범이가 당당하게 앞서서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본 다른 학생들은 경쟁하듯 손으로 배낭의 밑을 받쳐 올리며 힘을 내서 올라갔다. 드디어 노고단에 도착했다. 발밑으로 넓게 펼쳐진 노고단 구름바다는 학생들을 시인으로 만든다.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감탄사들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소중한 땀방울로 얻어낸 훌륭한 경치를 즐기는 귀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을 몸에 담고 있다. 이 길에 오기까지 준범이의 역할이 컸다.      준범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준범아, 너는 체력이 약하니 특별히 더 잘 준비해야 한다. 꼭 함께 종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준범이는 저녁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버지와 함께 동네 낙산 성곽 길을 걸었고, 집에서도 배낭을 메고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고 한다.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데에는 아버지의 응원이 있었다. 준범이 아버지는 힘든 훈련을 함께하면서 “너는 해낼 수 있다”는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후 준범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반 학생들도 준범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체력이 좋은 학생으로 통해 체육시간에도 활동적이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 있게 도전하는 학생이 되었다. 성적도 올랐다.      부모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해도 위축되지 않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급함’은 버리고 ‘느긋함’을 갖는 거다. 학생 스스로 도전하고 이루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이상흔

경북 안동과 예천 경계지역에 들어선 경북도청 신청사. 크기나 규모가 경복궁이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울 정도다. / 경북도청농촌 인구는 30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도 농어촌 지역 공무원들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반면 행정업무는 최첨단화되었다. 과거 100명이 해도 모자랄 서류작성과 분류, 증명서 발급 작업을 컴퓨터 한 대가 다 처리할 수 있다.   도청, 군청, 면사무소, 동사무소마다 상위 기관에 있는 부서가 거의 다 조직돼 있다. SNS 홍보, 유투브 TV 제작, 소식지 제작 같은 대민지원에서 별로 시급하지 않은 행정 업무도 늘어나고 있다.    농촌에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이듬해 봄까지 공무원들이 마이크가 달린 차를 몰고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산불을 감시하러 다닌다. 주말도 휴일도 없다. 전국적으로 치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산불조심 예방활동에 투입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앞으로는 여름에 “물조심하라”며 순찰을 다니는 공무원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취재차 전국을 다녀보면 지방에서 가장 번쩍번쩍한 건물은 죄다 관공서라고 보면 틀림없다. 지금도 수많은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군청, 도청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필자의 고향이 있는 경북의 도청사는 거의 아방궁 수준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관공서 연수시설이 들어차 있다.   지방 유지들 감투 놀이터로 전락한 지자체   명색이 30년이 다 돼가는 지방자치제의 실상은 어떠한가? 국회의원들의 갑질 무대와 지방 유지들 감투 놀이터가 된 것 외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이런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세금을 써가며 선거를 하고, 연봉 수천만원에 상전 노릇하는 지방 의원들을 뽑아야 한다는 것인가?    도대체 지자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주민들이 스스로 무보수 대표를 뽑아 자기들 지역의 술집 숫자를 정하고, 유해업소를 감시하고, 금연 구역을 지정하는 등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일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합의된 의견을 따르는 것이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 아닌가? 이런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유급 선출직 공무원이 필요하단 말인가? 우선 광역 지자체는 남겨두고 전부 새로 손을 볼 때가 됐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의 시군구동(市郡區洞)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 대부분은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500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서초구와 강남구나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에 별도의 행정조직을 두고 그 많은 공무원이 동원되어 사무를 봐야 하는가?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언제까지 이런 신라시대의 행정 구역과 조선시대의 관료 만능주의 시스템으로 나라가 굴러가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류근일

2017년 3월 1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열린 탄핵무효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탄핵무효주장 집회에서 보수성향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조선DB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여의도연구소 주관으로 지식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앉아 보수 가치를 어떻게 재정립하고 보수 정치세력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논의가 끝나면 아마 일정한 테제가 발표될 모양이다. 건설적이고 유익한 작업이 되길 희망한다. 필자 역시 오래 전부터 보수 정치세력이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한 전사(戰士) 집단이 아니라 마치 대기업 사원들 같다... 매사에 보수 정체성과는 무관한 기회주의 집단 같다... 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논의 과정을 미디어 상으로 간간이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역시 쟁점은 보수가 보수 정체성을 더 확고히 다져야 하느냐, 아니면 중도 쪽으로 더 좌(左)클릭을 해야 하느냐의 것으로 모아졌다. 필자는 그 동안 보수 정체성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왔다. 이유는,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두고 보았을 때 적잖은 보수 원내(院內) 구성원들이 좌파 전업(專業) 투사들의 투철한 정신무장-세계관-역사관, 그리고 희생정신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오합지졸들이거나 맹물-날탕-엉터리-날날이 출세주의자들임을 확인하였기에, 그런 가짜 보수들로서는 가열한 이념 싸움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결코 중도 우파, 심지어는 중도좌파와 관련해서도 의회민주주의 정치지형에서 그들의 자리와 역할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식민지 종속국 취급하는 극단적 변혁론만 아니면 중도-중도우파-중도좌파는 다 그 나름의 몫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필자 자신은 자유주의에 몸담고 있고자 할 따름이다. 그런데 중도나 중도우파, 중도좌파는 소시 적부터 그쪽에 가서 해야 할 일이지, 몸은 줄곧 보수 프리미엄 석(席)에 두어왔으면서도 입만 중도요, 중도우파요, 중도좌파요 하는 건 얌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자가 배척하는 건 그런 얌체족이 보수정당에 들어와 보수 국회의원 노릇을 하면서 실제로는 보수 탈색(脫色), 보수 해체, 보수 약화, 보수 몽롱 화(化) 짓을 한 그 사기성과 파괴성이다.  보수도 폭은 매우 넓다. 전통적 보수도 있는가 하면, 중도 우파적 보수, 리버럴 우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이 보수 전체의 풍요로움을 더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명분 하에 보수를 싸우지 않는 보수, 기회주의-투항주의-대중영합주의-좌파 콤플렉스-사이비 보수로 타락 시키는 퇴행성 질환이 마치 신식 보수인 양 행세 하는 오류와 일탈이다. 이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이른바 ‘중도실용주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보수의 철학적-가치론적 정체성과 전투력을 해체시켰던 얍삽한 속류(俗流) 경제주의 포퓰리즘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누가 중도와 실용의 사전적 의미를 나무라겠는가? 문제는 그걸 내세운 ‘광우병 난동에 대한 두 손 두 발 다 들기‘다.  이런 유(類)의 ‘중도를 내세운 보수 해체주의’는 지금도 있다. 이들이 보수를 먹으면 보수는 없어진다. 우선 보수라는 영토와 스펙트럼을 확고히 잡아놓고 그 터전에서 보수라는 집을 시대적 요구와 취향에 맞게 리모델링 하고 리셋 라는 건 얼마든지 좋다. 이런 쇄신과 혁신에는 그 누가 반대할 것인가?  ‘반공주의’만 해도 그렇다. 깁정은에 반대하는 건 반공주의인가 아닌가? 지난 시절 ‘막걸리 반공법’ 같은 것으로 인권을 침해한 전례가 있어서 ‘반공주의’를 배척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김정은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를 편의상 ‘반공’으로 이름 붙여 배척하는 것도 안 되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종북몰이’를 한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일부 세력의 ‘수구꼴통 몰이’는 어떤가? 이 둘을 같은 수준에 대등하게 놓고 똑같이 적대시하는 게 과연 대한민국적 절박성의 기준에서 ‘합리적’ 보수일까?  국가주의를 보수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가폭력, 국가가 매사 간섭하는 것, 관료 독주 같은 걸 말하는 것이라면 수긍할 수 없는 말도 아니다. 자유 사회는 시민사회가 큰 역할을 하는 사회다. 그러나 국가 공권력이 너무 무시당하고 위혁(威嚇)적인 시위대에 벌벌 기는 것도 문제다. 시민사회만 강조하다가 무정부상태를 초래하는 역효과는 바람작하지 않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해야 할 일이다. 전경이 폭력 시위대에게 포로(?)가 돼 옷을 벗기고 지갑까지 빼앗긴 사례를 돌아봐야 한다. 그게 나라인가?  토론이 너무 강단(講壇)의 서생(書生)들 위주로, 성균관 유생들 위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자칫 당위론과 교과서적 논리와 명분론에 치우처 현장감각을 잃을 소지도 있으니 이점 참작하기 바란다. 실제로 항상 하던 이야기들이 또 되풀이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직 논의 중이기 때문에 단정적인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다. 추이를 더 지켜보면서 추후 다시 논평을 이어가기로 하겠다.

이상흔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오전10시,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청사 앞에서 민주노총의 주도아래 최저임금 1만원을 촉구하는 2090인 선언 만원행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선DB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전년대비 16.4%인상)으로 결정되자 경영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언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미칠 영향을 분석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이 소상공인의 부담을 우려하는 내용이다. 반면 노동계는 자신들이 주장한 1만원에는 못 미치지만, 역대 최대의 인상액에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이번에 인상된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원 정도로 전년대비 22만원 정도 상승한 금액이다. 이는 9급 공무원 임금(1호봉 152만원)을 추월한 금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최근 5년간 매년 7%가 넘게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0년 기준으로 봐도 올해(2016년)까지 3.5배가량 뛰었다.   최근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을 OECD 국가 자료(2015년)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9위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라마다 소득수준과 최저임금 산출법이 천차만별이라 이를 단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미국과 일본에 사는 지인에게 시급을 알아보았다. 미국(오하이오주)의 경우 식당 주방에서 일할 경우 10달러(1만1280원) 정도의 시급을 받는다. 홀에서 서빙을 할 경우는 시급이 5달러 정도 책정되는데 이는 미국의 독특한 팁(Tip)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시급과 팁을 합칠 경우 평균 20달러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팁에도 세금이 붙는다. 주유소나, 편의점처럼 팁이 없는 곳에서는 9~10달러 정도의 시급이 책정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시급은 1000엔(1만원)이 기본이지만, 업종이나 지역, 시간대, 종업원의 나이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주유소의 경우 아침 일찍과 밤늦은 시간에는 25% 정도 가산되는 시급을 지급한다. 요식업의 경우 이자카야(술집) 같은 곳에서는 100엔을 더 책정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 음식점에서 성인 아르바이트를 쓰려면 1200엔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편의점은 800엔 정도에 책정되어 있고, 지방에서 가장 적게 주는 곳이 750엔 정도다. 고등학생의 경우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850엔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노동법은 최저임금 보장위한 울타리 역할 다해야   사용자와 근로자, 공익위원들이 참여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이 뒤엎어질 가능성은 ‘제로(0) 퍼센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용자 측이 제시한 730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12.8%가 인상된 것으로, 인상률 자체만 보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이를 돌려서 보면 우리 경제개발 수준이나 국민소득에 비해 그동안 최저임금이 너무 낮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지난 10년간 우리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우리의 경제규모와, 개발속도, 소득수준에 맞는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 계층 간 위화감이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생활비 지급이 없으면 생계 자체가 불가능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167만명인데, 차상위계층까지 포함하면 400만명에 이른다.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을 포함, 빈곤층이 7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과연 7530원이라는 파격적인 시급 인상이 이들 절대 빈곤층의 숫자를 줄이거나, 저임금의 늪에 허덕이는 수백만 명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을 향상시켜줄까? 나아가 정부 바람대로 소비증가→내수증가→경제활성화로 이어질까?   필자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가장 큰 이유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00만원 정도이지만, 약 300만 명의 근로자가 이 수준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 자체를 지키고 있지 않은 업체가 너무나 많다는 의미이다. 노동법이 정말 힘없는 노동자들의 방파제가 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2012년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사장에게 성폭행당해 자살로 젊은 생을 마감한 대학생은 하루 9시간을 일하고 월 60~70만원을 받았다. 당시 언론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나라 아르바이트직의 문제점을 쏟아냈지만, 그때뿐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알바’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대학생이나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노동법은 먼 나라 이야기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노동법은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합법적 노동자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노동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고용주 임의로 적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노동시장 왜곡하는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해야   두 번째 이유는 불법체류자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왜곡시키는 가장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거주 외국인 숫자가 100만 명을 돌파한 후 10년 만에 그 숫자가 두 배를 넘었다.   특히 식당 서비스업종은 거의 제한 없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당국의 단속은 사실상 미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의 무제한 고용은 비단 식당 서비스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모든 중소제조업, 공사장 등 육체노동 현장에서 불법체류자 고용이 만연하지만, 누구도 이를 범법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상황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값싼 외국인 인력을 언제라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비싼 임금을 주고 내국인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당 서비스업이나 기타 제조업 근로자들의 임금은 10년 전과 비교해도 별로 오른 것은 없는데 물가는 몇 배가 뛰었다.   당장 불편하다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조금이라도 더 싼 저임금 외국인만 찾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질 뿐이다. 실제로 이번 최저임금 상승으로 외국인 노동자들만 혜택을 볼 것이라는 경제전문가의 분석도 있었다.   저임금에 의존한 경제구조 바꿔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최근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7.4%)을 넘는 초과인상분을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그 돈이 약 4조원이다. 한마디로 일단 최저임금을 올려놓고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세금으로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내야 하는 월급을 대신 주겠다는 소리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직접 월급을 주는 것은 사회주의이지 시장경제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기계화 설비 융자금을 지원하거나, 다른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560만명 중 30%가 최저 생계비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치킨집이나 피자집 같은 일부 자영업은 경쟁이 심해지면서 서로 죽는 길로 치닫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은 무차별적인 자영업 시장 진입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한계기업(좀비 기업)도 정리돼야 한다.   일단 올라간 최저임금이 다시 내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의 왜곡된 노동구조와 저임금에 의존한 경제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조성관

장맛비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던 칠월 첫날, 토요일 아침이었다. 한 뼘쯤 열어놓은 창문 틈 사이로 새어들어온 ‘소음’에 잠을 깼다. 소음은 아파트 옆 중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숲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볼륨감이 압도적이었다. 황소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나팔을 불어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난해 이맘때쯤 산동네에서 처음 맞은 여름철에는 이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 맹꽁이였다.      맹꽁이들은 하루종일 경연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밤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꼭, 남아공월드컵 때 들었던 부부젤라 소리 같았다. 일요일에도 맹꽁이들은 멈추지 않고 맹렬히, 정말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도시에 살면서 오랫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리운 소음이었다.      보이진 않지만 소리로 분명 존재하는 맹꽁이들. 일요일 해질녘, 소리가 울려나오는 숲속을 바라다보았다. 이 반가운 소음을 다시 듣게 되다니! 어딘가에 있을 숲속 서식지를 생각하다가 스마트폰을 가져와 녹음했다. 그리고 짧은 메모와 함께 페이스북에 올렸다.      올해 가뭄은 정말 끔찍했다. 간신히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농작물들은 단맛은커녕 쓰고 떫었다. 앞산을 오르며 걸음걸음 풀풀 날리는 황톳가루를 뒤집어써야 했다. 돈황의 사막을 걷는 것도 아닌데. 흙길에서 발자국을 타고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가 역겨웠다. 송장 냄새 같기도 했다. 산은 그렇게 타들어갔다. 윤기를 잃고 축축 늘어져가는 잎사귀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만 했을 뿐이다. 산길을 오르내리면서도 야트막한 산에 맹꽁이가 서식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맹꽁이가 울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맹꽁이 노래는 가뭄의 끝을 알리는 축가(祝歌)다. 맹꽁이는 앞발이 짧아 행동이 굼뜨다. 그래서 행동이 느려터진 사람을 가리켜 맹꽁이 같다고 한다. 맹꽁이는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이지만 앞발에 물갈퀴가 없어 물속에서 살지 못한다. 일 년 중 대부분을 흙속에 숨어 있다가 장마철에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만일 장맛비가 끝내 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시나브로, 어둠에 잠겨가는 산을 보면서 생각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맹꽁이가 비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렸을 인고(忍苦)의 시간을, 메마른 흙 속에서 감긴 눈꺼풀로 맹꽁이가 꾸었을 황홀한 꿈을, 살가죽이 타들어가면서도 장맛비를 그리며 상상했을 은밀한 행복을. 살짝만 비틀어도 물기가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찐득한 공기는 설렘이며 청춘의 울렁거림이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은 축제의 서곡이다.      대지가 장맛비에 흥건해지면 맹꽁이의 꿈은 대지를 뚫고 찬란하게 솟아오른다. 짝짓기와 산란! 모든 동물의 생애는, 결국 짝짓기와 산란으로 수렴된다. 어둠 속에서 비탈길을 짝을 찾아 어기적어기적 기어가고 있을 맹꽁이들. 장대비 내리는 이 밤 숲속 맹꽁이들은 짝짓기의 황홀감을 누릴 것이다. 누가 맹꽁이들이 부르는 생명의 찬가를 운다고 말했나. 열락(悅樂)의 시어(詩語)를 가리켜 어찌 시끄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기다려 기어코 나오고야마는 맹꽁이. 장마가 그치고 땡볕이 내리쬐면 이제 매미가 맹꽁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우주를 향해 장엄한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미물(微物)조차 우주의 섭리에 따라 때를 기다려 자신을 드러낸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군상만이 나서야 할 때를 모르고 나타나 불쾌한 소음을 일으킨다.

엄상익

북악스카이웨이 꼭대기 정자에 있는 레스토랑 구석의 탁자에 여든 살의 노(老)스승과 예순 다섯 살의 제자가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 처음 고등학교 1학년 영어선생으로 부임한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삼십대 초였다. 나는 주눅이 든 채 교실의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열등생이었다.    “영어 단어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야. 경쟁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달려가고 일등을 하는 게 좋은 게 아니야. 너희들은 계산하지 말고 정(情)을 나누고 살아. 다음에 내가 선생을 그만두고 늙어 지팡이를 짚고 너희들을 찾아가 볼 거야. 어떻게 살았나. 꼭 찾아가 볼 거야.”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특이한 선생이었다. 그 시절 영어선생으로 저녁에 과외를 하면 별도의 큰 수입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개인의 수입을 위한 과외지도를 거절했다. 대신 나 같은 열등생들을 방과 후에 따로 불러놓고 말했다.    “나는 너희한테 공부를 가르치는 게 아니야.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알려줘야겠어. 집에 돈이 있어 그때그때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건 일시적일 뿐이야. 끝까지 성공하려면 꼭 필요한,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야.”    선생님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심혈을 기울여 좋은 영어참고서를 구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 책에 나와 있는 수많은 문장들을 스스로 암기하고 음미하게 했다. 교무실에서 교사들 회의 때 선생은 모순점이 있으면 바로 교장·교감 앞에서 직격탄을 날렸다.    “학생 하나하나가 모두 그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입니다. 교사 위주가 아니라 그리고 서울대에 몇 명이나 합격했나 그런 실적 위주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선생들은 학교에서 적당히 수업하고 저녁 때 있는 집 아이들 과외를 해서 주머니나 채우는 그런 짓을 하지 맙시다.”    선생은 돈키호테 같이 나서서 다른 교사들의 양심을 쿡쿡 찌르는 발언을 대차게 했었다. 그런 열정적인 선생이었다. 몰래 체육복을 사서 가난해서 그걸 구입하지 못하는 학생의 가방에 몰래 넣어주기도 했다. 대학 입시 무렵이었다. 나는 성적이 모자라 원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로 보이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로 인생의 승부가 이미 나 버린 느낌이었다. 선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야.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는 거야. 꼭 일류가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마지막까지 하면 그게 좋은 인생이야.”    그 말에 나는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 분은 타고난 선생이었다.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지나고 어느새 오십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팔십의 노스승은 이따금씩 기억에 남는 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그 나이에도 꼭 가지고 있는 돈으로 제자들에게 베풀려고 한다.     “삶에서 어떤 때가 기쁘세요?”  내가 물었다.     “반듯하게 된 제자들이 있는 게 기쁨이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이는 내가 담임을 할 때 반장이었지. 제자중에 총리가 세 명이 나왔는데 모두 당당하고 바른 길을 갔다고 생각해. 서울시장을 하는 박원순이도 제자고. 왕규창이도 서울의대 학장을 지냈지. 그래도 잊지들 않고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 줄 몰라. 그런 세상에서의 돈이나 직책보다 더 기쁜 건 영혼이 자유롭게 된 제자들이 많다는 거야. 평생 변호사를 하면서 글을 쓰는 자네도 자유인 아닌가? 그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바꾸어 주려는 것도 보람 있는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토요일 오후 팔각정 레스토랑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자락의 푸른 숲으로 안개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인이 되어 방문하겠다는 50년 전 교실에서의 젊은 선생의 얘기가 불쑥 떠올랐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밀알이 되어 썩으면 수많은 좋은 제자들이 나오는 것 같다.

엄상익

참 이상한 판결문이었다. 노총각 의사가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카페 마담과 사귀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병원장이 된 의사에게 인지(認知) 소송이 걸려왔다. 카페 마담이 낳은 아이가 아버지를 확인하고 그 호적에 올라 나중에 상속자가 되겠다는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피 속의 DNA 검사를 했다. 부자관계가 맞다는 의학적 결론이 났다. 그러나 판결은 달랐다. 의학적 감정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판사가 보기에 그 아이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그런 결론이 난 명확한 근거도 없었다. 그 판사는 오랫동안 법관을 하면서 법원장으로 성공을 했다. 그는 대법관 후보에 오르고 법관으로서는 사다리의 마지막까지 갔다. 나는 그 판사와 더러 만나는 사이였다. 한번은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요즈음은 사법부에 저항하는 이상한 놈들이 많아. 어떤 놈은 손가락을 잘라 보냈더라구. 재판이 불리해지니까 회칼을 보낸 놈두 있구. 그걸 알리면 신문에 나고 시끄러워지니까 조용히 했지. 직접 말은 안했지만 대신 판결로 골로 보냈지. 직접 얘기는 안했지만 판결 이유를 말할 때 본인이 알 수 있도록 메시지는 보냈지.”    엘리트 출신으로 오랫동안 판사를 한 사람을 보면 겉은 아주 예의바르고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의 본체에서는 온통 얼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느낌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그 성공한 법관의 철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그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적 진실과 법원이 보는 진실은 달라요.”    “진실이 두 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법원이 보는 진실이 따로 있어요.”    “법원이 보는 진실이란 뭡니까?”  “기록을 통해 스크린한 사실에 논리와 추론으로 법원이 만든 결론이죠.”     “논리적으로 법관이 그가 살인범이라고 하면 그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도 그는 살인범이어야 하는 게 절대적 진실 말고 또 있는 법원의 진실이란 말이죠?”  “이 보세요. 법원의 업무에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절대적 진실을 다 파헤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젊어서부터 법관생활 평생 해오면서 느낀 건 법원은 진실을 규명하는 데가 아니라는 겁니다.”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뭘 하는 건가요?”  “판사는 진실보다는 사회의 갈등을 조절하고 매듭을 짓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잘못 매듭이 지어지는 일이 현실에서 많은데 잘 됐던 못 됐건 그냥 뚜껑을 덮어 묶어버리면 되는 건가요? 사회의 갈등 원인을 매듭을 짓는다고 생사람을 살인범으로 사형에 처하면 그것도 갈등을 종결시키는 건가요?”    그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나에게 그는 짜증이 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러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한 사건을 가지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끊임없이 절대적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겁니까? 나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실은 없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도 엔지니어 출신으로 원칙론자인 사람이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으러 왔어요. 내가 더 버티면 징역형을 주겠다고 하면서 잘못했다고 하라고 했는데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거예요. 참 답답한 친구더라구. 나는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판사의 오판도 그러려니 하고 감수하라는 것이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가도 힘이 약해서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였다. 그게 판사들의 인식이라면 차라리 인공지능을 재판장 자리에 앉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함과 고통을 당한 사람은 진실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예민하다. 평생을 법관으로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턱없는 자기 기만 속에서 진실에 둔감한 것 같다. 수많은 법서보다 아픔을 당한 경험이 훨씬 좋은 법관들을 만들어 낼 것 같다.

신상목

고등학교 때 휴게시간만 되면 워크맨을 꺼내 헤드폰을 끼고 뭔가를 열심히 듣는 친구가 있었다.   나 : “뭘 그렇게 열심히 듣냐?” 걔 : “안전지대” 나 : “뭐?” 걔 : “안전지대. 일본 밴드야. 진짜 죽여. 들어볼래?”   친구가 내민 헤드폰을 귀에 대자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일본노래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때였다. 일본 노래는 북한 노래만큼이나 생경한 존재였다.   당시 헤비메탈, 락에 빠져 기타치고 밴드 만들어 공연 한답시고 껍죽대던 때였다. 한국 가요는 유치해서 웬만해선 무시하고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정도나 들을만 하다고 잘난 척 하곤했다. 나름 음악 듣는 수준이 높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들은 일본 노래. 아아.. 인상적이었다. 이제껏 미영의 팝송이건 국내 가요건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감성과 세련됨이 있었다. 그 노래가 “유메노 츠즈키”라는 노래였다. 안전지대의 초기 대표작이다. 멜로디의 서정성과 보컬인 다마키 코지의 절묘한 보이스 콘트롤, 연주의 완성도는 지금 들어도 감동적이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안전지대의 앨범을 구해 나도 들었다. 들을수록 매력적이었다. 듣고 또 들었다. 아니 이건 팝송과는 또 다른 차원의 완성도였다. 이런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호감을 느꼈다.   같은 반에 아주 불량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허구헌날 애들 삥뜯고, 어디 나이트 다닌다고(진짠지 뻥인지도 모르지만)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어느 날 교실 뒤쪽에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본노래 듣는 ××들이 제일 재수없어. 다 죽여버려도 시원찮은 쪽발이 노래 듣는 쓰레기 ××들.”   뭔 맥락도 없이 그냥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라 누구한테 한 말인지도 몰랐다. 아마 반에 일본 노래 듣는 애들이 모여 일본 밴드 누가 좋다, 어느 가수가 예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걔네들 들으라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한 얘기인 듯했다.   그때 뭔가 이상한 부조리 같은 것을 느꼈다. 자신의 행동거지와 삶은 개차반이면서 일본노래를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를 재수 없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뭐 이런 생각이었다.   당시 일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안전지대’ 라는 밴드의 음악성과 실력에 매료되어서 일본 노래를 듣기 시작한 나로서는 내 생각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정리되지 않은 희미한 한 줄기 생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민족적 원한이 있으면 음악을 음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인가? 문화는 정치의 하위개념인가? 예술은 국민 정서에 종속되어야 하는가? 등등의 의문이었다.   그와 함께 느낀 또 하나의 위화감은, 국가·민족이 전제되면 타자를 비난하는 것에는 자격이 필요없는가?.. 라는 것이었다. 일본 노래를 듣는다는 것만으로 개차반같은 녀석한테 쓰레기라고 욕을 먹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웠다.   안전지대의 노래는 내게는 ‘일본노래’이기 이전에 ‘노래’였다. 아름다운 선율, 목소리, 연주가 담긴 예술정신의 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어떠한 울림이 전해지건, 그 울림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니.. 더구나 나보다 사회에 더 도움이 안되어 보이는 놈도 이때만큼은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니..   한일관계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민감성, 복잡성, 모순을 희미하게나마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어린 고교생이지만,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한 덕분에 그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나름의 답이 머리 속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역사는 역사대로 외교는 외교대로 챙길건 챙기고 따질건 따지되, 사람이기에 사람을 향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공감대, 호감, 유대감의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서로를 향한 감정을 분노와 적개심의 포로로 만드는 사람들이야말로 비난의 대상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일 양국에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   이후 실제 한일관계의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직업을 갖기도 했지만, 고교 때 내린 답 이상 가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나름 조숙한 아이?)

강재남

형제가 서너 명 이상이던 50~60대 어른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아이들이 아예 없거나 한둘인 가정이 대세다. 사회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귀하다 보니 학교에서의 학생들 ‘위상’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옛날 학교 문화를 생각하면서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혀를 차고, 아이들은 그런 교사나 어른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하소연한다. 중국의 어린 소황제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 되다 보니 매일 소황제와 그 부모들을 상대해야 하는 교사들은 감정노동자가 되어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학교에서 예의 바르고 성실하다는 남학생 하나가 교무실에 급하게 들어왔다. 그 학생은 선생님이 나눠주신 학습지를 잃어버렸으니 친구 것을 복사해 달라고 떼를 썼다. 시험문제 출제와 학생 생활지도로 바쁜 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 학생은 부장 선생님께 가서 복사물 민원을 처리해 달라고 했다. 그 선생님이 “학교 프린터기는 공적인 일에 쓰는 것이니 학교 앞 문구점에 가라”면서 돌려보냈다. 그 학생은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하자 교무실을 나가면서 문을 세차게 걷어차고는 가버렸다. 그 학생을 평소 알고 있던 선생님이 나중에 불러서 왜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타일렀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들은 교사들을 자신들의 보모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자기 앞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책상 앞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달라고도 하고, 어떤 아이는 자신은 바쁘니 교실에 있는 수업용 재료를 미술실로 갖다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교실 열쇠가 달린 출석부의 행방을 찾느라고 아침부터 교무실이 시끌벅적했다. 출석부를 각 반에 나눠주려고 들고 가던 선생님이 복도에서 만난 한 학생에게 그중 몇 개를 갖다주라고 했는데 이 학생이 선생님의 지시를 무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학생은 자신의 교실에 들어가서는 담임 선생님에게 “어떤 선생님이 이거 각 반에 갖다주라고 했는데 저는 지금 힘드니 담임샘이 갖다주세요” 하고는 교탁에 휙 던져놓더란다.       학생들의 버릇없음과 이기심이 점점 심각해지는 이유가 가정에서의 과보호일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을 다니면서 어른들의 보살핌과 배려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선생님들 역시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겨주고, 먹여주고, 낮잠을 재워주던’ 익숙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학교에서 웬만한 학습 준비물은 다 나눠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간단한 준비물도 잊어버리기 일쑤이며, 선생님이 정성껏 만든 학습 프린트들도 받자마자 바닥에 버리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의 권위도, 학교 선생님의 권위도 ‘고리타분한 것’이 된 지 오래다. 아이들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 그동안 제대로 된 어른 역할을 기성세대들이 못 했기 때문이다. 공부는 알아서 시킬 것이니 지각하든 화장하든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학부모, 선생님들을 온갖 행정업무와 쓸데없는 절차에 가둬놓고 학원 강사보다 못 가르치게 만드는 교육기관, 인성에는 무관심하고 조직의 부품만을 요구하는 사회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소황제들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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