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20년 가까이 끈질기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한 여인의 이혼소송을 맡았었다. 미모에 일류대를 나온 그녀는 부잣집에 시집을 가면서 야망이 컸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남편 명의로 등기해 둔 빌딩과 부동산들을 자기의 것으로 간주했다. 시부모의 재산을 빼돌려 따로 미국에 저택을 사기도 했다.     그녀의 욕심을 눈치 챈 시부모는 철저한 방어태세로 들어갔다. 그녀는 변호사인 나를 찾아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재산을 빼앗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큰 댓가를 약속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그녀의 탐욕을 나는 도와주기 싫었다. 사건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증오의 대상이 됐다. 그녀의 적인 남편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내가 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했다는 망상을 가지고 내게 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자기를 불쌍한 여자로 위장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모두가 그녀를 믿었다. 워낙 확신을 가지고 주위에 말하니까 사람들은 다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를 고소하면서 괴롭혔다. 담당 형사가 증오가 전염된 눈빛으로 나를 쏘아 보았다. 검사가 경멸의 눈으로 나를 보면서 모욕했다. 법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정을 하던 대법관 출신 위원은 “법리 설명이든지 뭐든지 하여튼 잘못했으니까 그렇겠지”라면서 나를 힐난했다. 심지어 내가 선임한 변호사까지도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 어디에도 내 편은 없었다. 선입견을 가진 판사들의 오만이라는 둑을 나는 넘어설 수가 없었다. 나는 소송에서 패소하고 그녀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전문가인 의사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환자 측이 집요하게 덤빌 때 법원은 의사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의사 쪽으로 책임을 돌린다. 의사들이 의학교과서를 통째로 들이대고 설명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법원이 그렇다면 그렇게 알라는 것이 현실의 힘의 논리였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불교경전을 보면 부처님도 여자를 겁탈했다는 모함을 받았다. 부처님은 항변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예수님도 조직적인 음모와 선동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했다. 그런 고난을 경험하면서 나는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도 인간이 가져야 할 귀중한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가슴이 아플 때 절실했던 것은 공감해 주는 사람이었다.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신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안다’라는 한 마디만 해 준다면 빙산같이 얼어붙었던 마음이 단숨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변호사 생활에 대한 뼈저린 깊은 반성을 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의 아픔에 진정 공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절망하는 이웃의 모습을 보면서 눈이 촉촉해진 게 언제였었나?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 사람 앞에서 공허한 관념만 늘어놓지는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없이 변호를 한다는 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공감은 고통을 대신 다 짊어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 흐르라는 것이다. 고통을 당해 보니까 남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박상융

서울구치소 정문./ 조선DB변호사로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수감된 사람들과 접견을 할 기회가 많다. 입구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플래카드가 수없이 걸려 있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시국 사범으로 수감된 수감자들의 처우개선과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도 많은 편이다. 구치소를 담당하는 의왕경찰서는 24시간 경찰버스를 대기하면서 별도의 경비를 하고 있다. 서울구치소에는 살인, 절도, 강도, 사기범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전직 국정원장, 안봉근 등 박근혜 정부의 속칭 ‘문고리 3인방’,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정·재계를 주름잡았던 사람들도 다수 수용돼 있다.   변호사들은 별도의 접견실에서 수감자들과 편안하게 시간의 구애 없이 교도소 업무시간 중에는 접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가족이나 친구, 지인 같은 면회객들은 아무리 먼 곳에서도 왔다고 해도 단 10분 내외의 면회 시간밖에 주지 않는다. 면회 시간도 하루 단 한 번에 불과하고, 손도 잡아보지 못한 채 마이크를 통해 안부만 전달할 뿐이다.   그나마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공휴일과 야간에는 면회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검사가 가족면회금지(제한) 조치를 해놓아서,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돌아가는 일도 있다. 평일에는 생계 때문에 면회가 어려운 사람은 일요일 외에는 시간이 없는데 일요일 가족 면회가 안 되고, 평일에도 일과 시간 이후에 도착하면 면회가 안 된다. 가족면회 횟수도 하루 한 번밖에 안 되는 규정을 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가족 등 지인과 면회 시 면회 내용이 기록되고 기록된 내용이 나중에 검찰에 보고되기도 한다고 하여 제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 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변호사와 접견보다는 가족과의 충분한 면회 시간의 보장이 필요한데도 실상은 정반대이다. 변호사들도 업무시간 외인 야간과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는 접견이 허락되지 않는다.    변호사 자격으로 수감자들을 접견하면서 많은 하소연을 들었다. 어떤 수감자들은 변호사보다 법률에도 능통하고 심지어 판사·검사의 스타일도 잘 파악하고 있다. 수감자들은 “어떤 판사는 강성이라 그 재판부에 배당받으면 항소가 기각되거나 심지어 검사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한다”고 말하곤 한다.     형을 낮춰 받기 위해 장기기증 서약도 하고(수감자들 간에는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면 판사가 형을 깎아준다고 알고 있다), 거의 매일 재판부에 탄원서도 작성, 제출하는 이들도 보았다. 또한 어떤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그 변호사가 판사·검사와 친해 형을 적게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며, 법률 지식과 법조계 사정에 훤한 수감자들은 구치소 내에서 속칭 사건소개 알선브로커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감된 방도 독방부터 4인실, 5인실, 7인실 등 다양하다. 고위직 공무원과 관리들은 다른 수감자들과 어울리기를 꺼려 독방수감을 선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입감할 때는 독방에 수감되길 원하다가 나중에는 우울증에 빠져 스스로 독방 수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독방의 경우 누워 있기도 비좁은데, 책상을 놓고 사건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운동도 하루 30분밖에 허용되지 않아 운동할 때 못 만났던 사람끼리 만나 잠시 안부를 묻곤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비록 같은 시설에 수감되어 있지만 구치소 내에서 다른 이들이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일단 구치소에 수감되면 수감자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형사소송절차, 형선고결과예측, 검사와 판사 성향에 대해 거의 박사 수준이 된다. 수감자끼리 나누는 화제는 대부분 어떻게 하면 형량을 적게 받을 수 있는지와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같이 수감된 사람 중 변호사와 검사, 판사 출신이나 유사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받아본 수감자들이 있으면 수사와 재판에서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도움(자문)도 받는다고 한다.     수감자는 변호사보다 의견서, 증인신문조서, 변론 요지서를 더 잘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구치소는 로스쿨의 형법·형사소송법을 가르치는 저명한 교수보다 실무적으로 많은 내용을 알고 토론도 하는 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재력이 많거나 권력을 가졌던 명사들은 날마다 온종일 변호사들이 교대로 접견하여 수감방보다는 접견실에서 변호사와 생활하는 시간이 많을 때도 있다. 이에 비해 돈이 없거나 권력이 없는 일반 속칭 ‘잡범’들은 변호사 접견은커녕 가족이나 지인 면회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력가나 권력자와 같이 수감되어 그들에게 잘 보이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식제공 등 혜택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있고, 구치소 내에서도 유전(권)호강, 무전(권)빈곤도 있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요즘은 독방이 꽉 차서 독방 수감대상자가 다인실로 밀려, 좁은 방에 속칭 ‘칼잠’을 자기도 한다. 무죄, 집행유예, 보석을 받아 석방될 줄 알았는데 석방되지 않아 실망하여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 수감자 대부분은 자신을 수감시킨 검사와 판사가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필자도 많은 수감자로부터 “요즘에는 몸을 때리는 고문이 아니라, 마음을 때리는 말에 의한 강압이나 회유 식의 추궁에 의하여 수사관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그러한 조서를 판사에게 제출하니 판사는 선입견과 편견에 의해 유죄의 심증을 가지고 재판을 하게 되고, 무죄나 억울함을 밝히기가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듣곤 한다.   일부 수감자들은 밤샘 장시간 조사에 지치고, 그 과정에서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는 추궁에 시달려 자괴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을 변호사에게 이야기해보았자 조사과정에서 느낀 심적인 고통은 조서에 기재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한 수감자도 있었다.   실례로 중국에서 마약을 운반한 혐의로 구속된 어느 시골 부녀자는 “자신은 그것이 마약인 줄 모르고 단지 보석운반 심부름만 해주면 심부름값을 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운반한 죄밖에 없는데 마치 자신이 마약인 줄 알면서 운반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 7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정말 한스럽다”며 자신을 수사한 검찰 수사관과 기소한 검사, 중형을 선고한 판사를 원망하였다.    몸과 마음이 아파도 구치소에는 분야별 당직 전문의사도 부족한 실정이다. 구치소 수감 후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하는데 어느 교도소로 보내질지에 대한 걱정도 많다. 가족 면회가 잘되고, 시설이 좋은 교도소로 이감되어 수용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이나 창구를 모르니 답답해한다. 간혹 종교 시설에서 위문을 오기도 하는데 그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운동이 그나마 유일한 낙인데 운동시간도 부족하고 공간도 협소하다. 책 반입도 서신전달도 오래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     구치소에서 수감자를 관리하는 교도관의 얼굴을 보면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여자 수감자들의 변호인 접견실은 남자 수감자들보다 더 협소하다. 사람이 많을 때는 접견실이 아닌 의자에서 접견하기도 한다. 인터넷 화상 면회와 접견이 있다고는 하지만 절차도 까다롭고 화상 면회 시설을 갖춘 가까운 구치소에 가서 미리 예약을 하여야 한다. 왜 미국 등 선진국의 구치소처럼 구치소 안에서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못 하는 것일까?   검찰의 급작스런 구속영장 청구와 구속 후 연이은 조사에 일부 수감자들은 변호사로부터 충분한 조력도 받지 못한 채 재판에 임하게 된다. 헌법, 형사소송법에서 배웠던 평등의 원칙, 무죄추정과 불구속수사원칙, 충분한 방어권보장을 위한 형사소송절차상의 당사자(검사와 피고인과 변호인)주의, 무기대등의 원칙은 구치소에서 볼 때는 딴 세상의 원칙이다.   구치소에 수감자들이 넘쳐나고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이 땅의 경찰, 검사, 법관들이 반드시 한 번쯤 보아야 한다. 휴가 때 골프를 치고, 외유를 하기보다 자신들이 수사하고 단죄를 했던 구치소, 교도소를 찾아가서 수감자들의 목소리를 한번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찰, 검사, 법관도 자신들도 잘못하면 단죄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로스쿨 학생들도 한 번쯤 구치소 시설을 방문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위원들 나아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도 구치소를 방문하여 억울한 사람들은 없는지, 법집행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 수감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경청할 필요가 있다.

진세훈

나의 선친은 일제 강점기 어린나이에 혼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일본 중앙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신 뒤 금융조합이사 시험을 합격하셔서 조선총독부 이재과에 근무하셨던 분이다.   나는 부산에서 항일운동으로 유명한 동래고교를 다닌 관계로 고교 시절 수많은 항일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부산지역 주둔군 일본군 대장 사택을 습격하는 격렬한 항일운동으로 한 학년 전체가 퇴학을 당하여 졸업생이 없는 해도 있었다. 이 같은 선배들의 나라사랑을 들으며 혈기왕성한 청년기를 보냈고, 영웅적인 항일운동의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을 직접 만나고 훈화를 듣는 기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선친께서 나라가 없어진 상황에서 일본제국주의 총독부에 근무했고, 금융조합이사를 하셨다는 것이 독립운동하신 분들께 미안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까지 했다.   더구나 동기동창 아버님은 독도지킴이를 하신 열혈애국자이셨다. 1955년 독도의용군이 일본순시선과 총격전을 하고 불순한 날씨 관계로 고립된 상황에서 악천후를 무릎 쓰고 경비정을 끌고 독도항해를 강행하여 독도의용군을 구출하고 보급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친구 아버님에 대한 존경심과 나의 선친의 일본제국주의 간부역할에 대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선친께서도 생전에 자신이 일본제국주의의 간부였다는 걸 당신도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느끼셨던지, 자신의 과거를 자진해서 밝히신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친일파 색출과 그 후손의 망신주기를 시작하더니 친일파 인명사전을 만들어서 공개하는 세상이 됐다. 친일파 숙청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지금의 혼란과 부정과 부패가 모두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기인하므로 친일청산을 해야만 모든 부조리와 부정부패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에선 연좌제가 가장 비인륜적이고 후진적이며 반문명적이라고 주장하던 분들이 친일파 척결에만은 그 후손에게도 망신과 불이익을 주는 연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항일독립정신이 자신의 염색체에 새겨져 있는 듯 유전적 순결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부터 나는 아버님이 조선총독부 이재과에 근무했었다는 사실이나 농촌수탈의 빨대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금융조합이사였다는 사실이 별로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부끄럽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는 이렇다.   진정으로 독립운동한 분들은 나라사랑과 그 당시 나라 잃은 불쌍한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을 가지고 있건만, 이 분들은 직접 항일운동을 한 적이 물론 없거니와 그 당시 나라 잃은 백성에 대한 사랑은 없을 뿐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본의 관직에 있었던 사람을 식민지배 앞잡이로 몰았다. 그때 가장 격렬히 친일청산을 부르짖던 분은 독립투사의 자손임을 내세웠으나 밝혀진 바로는 독립투사라던 선조는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는 일본군 특무부대원이었고, 다른 한 분의 선조는 금융조합이사는 고사하고 금융조합 서기의 후손이었다. 이러니 금융조합이사였던 선친을 부끄러워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사과를 요구할 땐 상대가 부끄러워하도록 하는 것에 그쳐야지 상대가 분노하도록 하면 부끄러움이 적개심이 된다.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는 지속적으로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건 일반인이라도 아는 기본 지혜다.   베트남은 식민지배와 외침에 시달렸으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과거의 굴욕을 잊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으며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과를 받으면 자신이 과거의 굴욕을 잊을까 두렵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키신저(Kissinger) 박사는 1956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순수한 도덕을 고집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가장 부도덕한 자세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끔 무위(無爲)로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까운 과거를 더럽다하여 순백을 기준으로 재단하면 무위(無爲)에 빠질까 걱정된다.  

신상목

1964년, 월남전에서 비전투요원으로 참전할 주월한국군 군사원조단의 파병을 환송하는 행사가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되고 있다. 이들은 이달 중으로 비둘기부대라는 부대명을 갖고 월남으로 떠난다. /조선DB 지금의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에서 북한이 승리하여 수립된 국가를 상상하면 된다.   남베트남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대대적인 숙청이 자행된다. 월남의 군인, 공무원, 유산계급, 교사 등과 그 가족들은 부역자로 취급되어 즉결 처분을 받거나 교화소에 보내졌다. 공산화 후 처형된 자의 수는 공식 통계가 없다. 적게는 30만에서 많게는 200만이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산될 뿐이다. 한반도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적화 통일 후 당연히 미국과 서방세계는 적이었고,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연명하였다. 국민의 생활 수준은 열악하였고, 인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던 베트남이 냉전 종식 후 개방화 물결에 동승하여 시장경제 절충적 개혁 정책을 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서방과도 화해했고,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시장경제 전환이 가열차게 추진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이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통일에는 성공하였지만, 공산화 통일이 베트남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보태 준 것은 없다. 공산주의를 벗어버리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비로소 먹고 사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치 체제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한국과 유엔군을 패퇴시켰다면 비슷한 경로를 걸었을 것이다.북한이 수립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반도 통일국가가 되었다고 치자. (이하 통일조선) 통일 후 50년이 지나 공산주의 블럭 붕괴에 따라 개혁 개방을 추진하는데, 유엔 참전국들이 통일조선과 국교를 수립하고 교역을 하려고 한다. 참전국들이 수교를 위해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통일조선에 사과를 하여야 하나? 유엔 참전국들이 자국에서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행위를 할 때, 통일조선이 항의를 하면 “우리는 부정한 전쟁에 참여했구나”라고 반성을 하며 그러한 행위를 거둬들여야 하나?   전쟁에 참전했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그것이 원죄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승리한 쪽과 우호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 참전 자체를 ‘불의’라고 인식해야 하는가? 남의 민족 전쟁에 참여했으니 불의의 참전이라는 주장을 계속 한다면 유엔 참전국에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겠다. 사실 북한의 역사인식이 그러하다.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역사는 없다. 역사를 똑바로 보라!

김민희

“기사 앞부분 여자 말야, 꼭 나 같아.”      친구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습니다. 이번주 유독 주변인들에게서 “기사 잘 봤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다들 자신 이야기 같다는 겁니다.      지난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에서 ‘자존감 상실의 시대’를 다뤘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40대 초반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죠. 스펙만으로 보자면 남부러울 것 없는데,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만 이럴까’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여성들입니다.      몇 년 전부터 유독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해 출간된 ‘자존감 수업’은 몇 달간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면서 50만부 넘게 팔렸지요. 잠시 훑고 지나가는 트렌드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자존감. 어찌 보면 구태의연한 개념입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정신건강의 척도로 거론되니 마르고 닳도록 등장하는 말이고요.      그런데 잠시가 아니었습니다. ‘낮은 자존감’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걸 감지했습니다. 2040세대를 중심으로, 그것도 점점 더 강하게 말입니다. 50대 이상 세대에서 ‘자존감’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해 하는 경향과 비교하면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퍼즐처럼 딱딱 맞아들어 가더군요. 전문가들은 자존감이 사회 환경과 밀접하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는 각자 개별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시대의 공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환경에 따라 자존감 높은 사람이 낮아지기도 하고, 낮은 사람이 서서히 회복되기도 합니다.      고도의 경제성장 시대를 뚫고 온 50대 이상 세대는 대체로 자존감이 강합니다. 기회가 많으니 ‘하면 되는’ 짜릿한 성취감을 축적해왔기 때문입니다. 반면 저성장 시대의 2040세대는 다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노력의 배신’을 겹겹이 겪으며 자존감이 점점 하락합니다. 또 하나, 가족 형태의 변화와도 밀접합니다. 핵가족 형태에서 자란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삼촌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간접체험’이 드뭅니다. 그렇다 보니 성장과정의 당연한 통과의례에 대해서도 ‘왜 나만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결국 ‘자존감 상실’이라는 커다란 유행병은 2040세대의 시대적 초상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꼭 나 같아”라던 그 친구와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위로가 돼.”

이상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1월 7일 오후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저희나라”라고 한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김 여사는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에게 “먼길 마다하지 않고 저희나라를 찾아주셔서 마음을 다하여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부 국감의 답변에서 “저희의 방어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 “저희가 주도적으로 많은 안을 내야 한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 저희가 사과할 일은 없다” 등 우리나라나 정부를 지칭할 때 ‘저희’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다.   ‘저희’의 오남용은 비단 김정숙 여사와 강경화 장관 두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일상 언어생활에서 ‘저희’란 말이 ‘우리’란 말을 거의 대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저희라는 말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문제로 칼럼도 많이 썼다.  ‘우리’라는 말이 요즘은 ‘우리나라’란 말을 쓸 때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희귀 단어가 되었을 정도인데, 요즘에는 이 ‘우리나라’ 조차도 저희나라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나라 선수를 ‘저희 선수’ 혹은 ‘저희 팀’이라고 한다. 동계올림픽 중계에서 아나운서가 하도 ‘저희 선수’라고 하기에 도대체 ‘저희’란 말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수첩에 적다가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라고 번역한 전쟁 다큐   필자는 히스토리나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등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 방송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것이 바로 ‘저희’라는 자막이다. 한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海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치열했던 해전을 회고하는 미군(美軍) 노병의 말 중에 ‘우리’를 뜻하는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로 번역해 놓았다.   “저희 전우들은 용감했죠.”“저희 부대는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일본군은 저희 함대가 다가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죠.”   이런 식으로 한 문장 건너 한 문장마다 ‘저희’라는 단어가 나오니 도무지 문장이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다큐멘터리 맛이 나지가 않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적군하고 싸운 이야기를 하는데 말끝마다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으니 그 어감이 참으로 우습게 들렸다. 이 방송에서는 또 미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막의 ‘We’라는 단어도 전부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다.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고찰해 보면 ‘저희’라는 말이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진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10대, 20대의 젊은 연예인들의 방송진출과 생방송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는데 이들은 말끝마다 ‘저희’를 남발했다.    TV나 라디오 진행 방송자나, 아나운서도 예외가 없었는데, 아마 이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서 혹시 모를 말실수를 대비해 ‘안전심리’에 의해 자기들 최대한 낮추려 하다보니 ‘우리’라는 말보다 ‘저희’를 갖다 붙여야 뭔가 마음이 놓이는 심리에서 저희를 남발했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요즘 마트의 판매사원이나 텔레마케터들의 존칭 남발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이들은 심지어 사물에도 존칭을 붙인다).    '저희 팀' '저희 회사'에 이어 '저희 정부' '저희 사회'까지   어쨌거나, 어느 순간 저희라는 말은 일상 속에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 ‘저희 사장’ ‘저희 회사’ ‘저희 삼촌’은 기본이고, 이제는 ‘저희 사회’라는 말까지 보통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저희를 남발하는 것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우리의 언어 감각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맞지도 않은 마구잡이 겸양어 사용으로 말의 품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운 단어가 ‘나’ ‘너’ 다음에 바로 ‘우리’라는 단어였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나’ ‘너’ 다음에 아마 ‘저희’라는 단어를 배워야 할 판이다.   필자는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생각해 봐도 어릴 때 어른들 앞에서 ‘저희’라는 말을 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른이나 선생님이 사는 동네를 물어보면 “우리 동네는 어디에 있어요” 하고 대답을 했다. 동네 노인이 부모님의 이름이나 거처를 물어볼 때도 “우리 아버지는….” 혹은 “우리 엄마 장에 갔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이처럼 어른들이 물을 때 ‘우리 동네’,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 ‘우리 학교’라고 대답을 했지, ‘저희 동네’, ‘저희 아버지’, ‘저희 삼촌’, ‘저희 학교’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이날 노래 가사에서도 ‘5월은 프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작곡된 MBC 로고송에서도 ‘우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저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 여성 국무총리가 국회본회의장에 나와서 북한의 핵실험관련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 “저희는 몰랐다”느니 “저희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이 국무총리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라고 표현한 것이다. 비단 총리뿐 아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운동선수든, 학교 교수든, 회사원이든 가정 주부든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데도 거의 예외없이 ‘우리’ 대신 ‘저희’란 말을 사용한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라고 표현   우리말에서 자기를 낮출 때 ‘나’라는 말 대신 ‘저’란 말을 씁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낮출 때도 ‘저희’를 써야 하지 않는 가”하고 오해를 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라는 말은 낮춤말 높임말이 적용되지 않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낮춤말이 ‘저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은 낮출 필요도 없고 더 높일 필요도 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굳이 우리 고전을 고찰할 것 없이 간단한 예를 들어 본다.   현재 성경은 1950년대 개역(改譯)된 것을 주로 사용하지만, 사실상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번역한 것을 맞춤법 등을 고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일상에서 100년도 훨씬 넘은 번역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서적은 성경밖에 없을 것이다. 성경이 그만큼 번역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경에 ‘저희’란 단어만 보더라도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 아니라, 단지 ‘그들’ 이란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의 주기도문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여섯 번 나온다.   이처럼 당시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저희’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신분 질서가 엄격하던 당시에 임금보다 더 높은 유일신 앞에서 ‘저희’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우리'라는 말에 높임말 낮춤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저희’를 일상에서 추방해야 ‘우리’가 산다   ‘저희’는 ‘저’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저희’에서 ‘희’는 무리를 지칭하는 ‘~들’이라는 접미어와 같은 말로 쓰인다. 구한말에 번역한 성경에서는 ‘저희’를 우리의 낮춤말이 아닌 ‘저들’ 혹은 ‘자기들’ 등의 의미로 쓰고 있다는 데서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밥과 진지’, ‘집과 댁’, ‘보다와 뵙다’, ‘주다와 드리다’ 등은 명백한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리’와 ‘저희’는 이런 식의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아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저희의 남발은 우리 언어감각과도 맞지 않고, 지나친 겸양으로 말의 품위와 품격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저희’라는 말의 남발이 계도 차원으로는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이 말을 의도적으로 언어생활에서 추방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라는 단 한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상익

 1960대 전반 나는 콩나물 교실인 초등학교에 다녔다. 교실 안에 그 사회의 풍경이 다 들어있었다. 부자 집은 기사를 시켜 아이의 점심을 보냈다. 구수한 버터를 발라 구운 빵 사이에 먹음직한 에그프라이와 싱싱한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당시 먹기 힘들었던 따뜻한 미제 우유가 보온병에 담겨있었다. 부잣집 기사는 샌드위치와 우유를 담임선생 교탁에 별도로 올려놓았다. 우리는 특별 취급해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뇌물인 셈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먹는 마요네즈와 버무린 사과조각이 너무나 신기하고 먹고 싶었었다. 가난하게 산 어머니는 ‘마요네즈’라는 식자재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신 김치 조각 몇 개가 들어있는 양철로 만든 나의 도시락을 보면서 나도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샌드위치를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었다.     내 옆에는 파란 눈을 가진 튀기 아이가 있었다. 미군과 한국의 위안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도시락 반찬 그릇에도 거무튀튀한 김치줄거리 조각이 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는 미국 사람인데 왜 빵하고 버터를 안가지고 오고 보리밥을 가져오느냐고 철없이 물었었다. 그 아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점심에 그마저도 먹을 게 없는 아이들은 미국의 원조를 받은 옥수수가루를 쪄서 만든 빵 한 개씩을 배급받았다. 맛은 없었다. 그냥 압축된 옥수수가루 자체였다.     매주 화요일 오전이면 나는 이웃 빌딩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같이 활동하는 변호사들과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소통한다. 젊은 김 변호사의 말 중에 이런 내용이 귀에 들려왔다.    “저는 초등학교 때 영세민의 자식이었어요. 영세민 자식이면 학교에서 점심을 그냥 줬어요. 그런데 처음에 저한테 주는 우유나 빵에는 옆에 작게 ‘무상’이라고 적혀 있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부끄러웠어요. 다른 아이들이 그걸 보고 저에게 ‘무상’이라고 별명을 붙였죠. 그런 현상이 생기니까 다음에는 무상이라는 표시가 없어지고 선생님들 수첩에만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표시가 써 있었어요.   그런데 교사들 중에는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만 해도 선생님이 교사 책상 위에 수첩을 펼쳐놓고 나간 적도 많았어요. 선생님의 수첩 내 이름 옆에 ‘무상’이라고 메모해 놓은 걸 보고 아이들이 또 나를 ‘무상’이라고 불렀어요. 무상으로 밥을 얻어먹던 나 같은 아이들은 콤플렉스가 있는 겁니다. 급식비를 낸 아이들은 우유나 빵이 상한 걸 보면 바꿔달라고 하면서 항의를 하는데 저같이 공짜로 얻어먹는 아이들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복지혜택을 받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도 헤아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이웃의 문제만이 아니다. 변호사로 간첩사건을 맡아 하다가 서류 속에서 우연히 북한의 고위직의 평가가 들어있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남쪽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도와주면 좀 조용히 도와주지 왜 꼭 정치인이나 비슷한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어가고 남쪽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생색을 내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육십년대부터 ‘잘살아보세’라고 하고 내남없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는 게 우리가 잘사는 걸까? 이제는 잘사는 껍데기에만 급급하던 걸 바꾸어 아름다운 내면으로 바꾸어야 진짜 잘사는 게 아닐까.

박상융

2017년 11월 13일 오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소위 상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조선DB국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직 당시 특수활동비의 일부를 지급(상납?)했다는 혐의와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특수활동비를 받은 안봉근,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속 수감되고, 전 국정원장 등이 연이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기재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호기 지침상 ‘정보 및 사건수사,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기재되어 있다. 즉 정보와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정보수집과 수사목적으로 사용하라는 예산이다.   한 해 예산만도 약 8000억원에 달하고 이중 국정원에서 예산의 절반인 4900억원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서도 사용한다. 정보와 수사목적으로 사용하라고 편성한 예산이다 보니 집행 과정에서 영수증을 제대로 받지 않는(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수집과 수사목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속칭 망원(공작원, 정보원)에게 현금을 주어야 할 경우가 많은데 불가피하게 카드지급도 안 되고, 영수증도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특수활동비를 지급받는 망원의 경우 신분 비밀을 유지하여야 하니 수령자도 기밀에 붙여진다. 이처럼 특수활동비의 편성과 집행 내역이 기밀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특수활동비가 본래 목적대로 집행되었는지 감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매년 특수활동비는 늘어나고 있다.   국정원, 경찰청 등 수사정보기관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도 특수활동비가 배정·지급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원내대표, 상임위원장에게도 매월 거액이 지급된다. 일부 국회의원이 이 돈을 쌈짓돈처럼 개인의 생활비, 자녀유학비 등으로 사용하다 발각된 경우도 있다. 특수활동비가 매년 늘어나고 있고, 이처럼 부정하게 사용되는 사례가 적발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예산 편성, 집행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었는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개선의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필자는 만일 특수활동비의 편성·집행단계를 투명화하여 세세한 배정항목, 집행내역을 제출하고 검증한다면 쌈짓돈처럼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돈이 없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수활동비의 편성·집행·검증과정을 투명화하고 엄격하게 하면 기밀을 요하는 국가의 정보수집과 수사활동이 위축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는 일부 사람(의원, 기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산편성·집행과정을 투명화하고 엄격화한다고 해서 국가의 정보수집·수사활동이 위축될까? 반대로 과연 한해 약 8000여억원이 들어가는 정보·수사활동으로 대한민국의 정보수집·분석·수사활동이 나아졌다는 증거가 있는가? 따라서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정원의 대통령에 대한 특수활동비지급(상납) 수사는 사용처에 대하여 엄정하게 수사를 하여야 한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도 국가통치권자로서 정보 및 수사 등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을 위해 지급받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이 그러한 내역으로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특수활동비를 지급받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지급내역 공개를 거부한다면 전직 국가통치권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특수활동비가 정보수집·수사목적이 아닌 측근들과 직원들의 복리후생비차원으로 집행되었거나, 대통령 개인적인 용도로 집행되었다면 이에 대한 엄정한 법적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    다만 형법상 뇌물죄로서의 대가 관계보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국고 등 손실죄를 적용해야 법리에 맞다고 본다. 한편으로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특수활동비의 지원을 강요(지시)하였는지에 대한 측면에서도 조사를 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상납한 국정원장에 대한 형사책임보다는 이를 강요(지시)할 수도 있는 대통령에게 형사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지원(상납)이 이번 박근혜 정부 시절에만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전 정권에서도 청와대에서 속칭 통치권자(대통령)가 정보·수사기관의 장을 총괄하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당연히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중 일부를 받는다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당연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식적인 의구심이다.   그렇다면 검찰의 수사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그 이 전 대통령들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지원(상납)이 어떻게 되었는지 실태에 대한 추적수사를 병행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담보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만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지원)이 이루어졌다고만 발표했을 경우 이를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울러 이번 기회에 특수활동비의 예산항목 자체에 대한 폐지·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수활동비는 편성 목적에 맞게 집행되고 집행과정의 투명성이 제고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특수활동비는 말 그대로 특수활동(정보·수사업무종사)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시기에 따라 적정한 금액이 지급되어야 하고, 그 지급받은 금액이 지급 목적대로 집행되었는지 철저히 감사를 하여야 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불법집행을 수사하는 검찰도 특수활동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 역시 과연 자신들의 특수활동비가 정보수집과 분석, 수사목적으로 집행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용도에 벗어나 식사 값이나 직원격려비 등의 성격으로 집행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실례로 검사장으로 재직했던 이가 검사장 재직 중 특수활동비에서 격려비·식사비로 검사에게 지급한 사실이 밝혀져 조사를 받았던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부처별로 총액만으로 편성되고, 영수증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집행되고 집행내역에 대해 제대로 감사도 받지 않는 특수활동비 항목은 개선되어야 한다. 특수활동비 예산항목을 보유한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청와대 등은 속칭 힘(권력)이 있는 기관이다. 그러한 기관에서 국민의 피땀이 섞인 세금으로 편성된 막대한 예산을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집행된다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국민의 세금이 어떻게 집행되는지 감시하여야 할 감사원, 국회에서조차 특수활동비의 편성·집행과 관련하여 제대로 감사와 결산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검찰수사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번 수사 역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기소와 당시 국가정보원장들의 비리로 마무리되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특수활동비 예산이 엄격하고 투명하게 편성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정보와 수사목적의 예산이라면 굳이 특수활동비라는 명칭을 달기보다는 기존의 사건수사비, 정보수집분석비 등으로 지급목적에 맞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수사와 정보를 담당하는 일선 직원들이 사용하도록 집행주체와 절차가 개선되어야 한다. 속칭 판공비성격의 업무추진비, 관서운영비도 투명하고 엄격히 집행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경찰, 검찰의 사건수사비, 수사활동비, 출장비 등의 항목도 제대로 수사와 출장목적에 사용되는지 이중으로 편성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한 자체감사와 집행과정의 투명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특수활동비집행과 관련 영수증 첨부를 의무화하여 첨부된 영수증의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수활동비를 지급받는 사람(수사,정보관)은 지급받은 것에 대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수사와 정보수집 분석에 전력을 기울이고 성과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단지 이번 수사가 검찰의 국정원 한 기관에 대한 불법집행에 치우쳐 단발성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회차원에서 청문회를 통한 국정원뿐 아니라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국회 등 전기관에 대한 특수활동비 집행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소득)을 세금으로 징수하여 공무원의 개인 치부를 불리는 그러한 불법과 일탈을 막아야 한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이전의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지원(상납)되었는지에 대한 면밀한 추적조사도 이루어져 이번 검찰의 수사가 자칫 박근혜 정부 표적수사와 현 정부의 소위 적폐청산에 부응하는 듯한 검찰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도록 추상과 같은 공정한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김정인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걸까’ 의문을 갖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또한 좋아하는 감정이 강해지면 그것이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사랑과 좋아하는 감정은 별개로 움직이는지도 궁금해진다.이러한 의문을 갖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탐구한 사람이 심리학자 루빈(Rubin)이다. 그는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때 혹은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 태도, 행동 등을 수집해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별개의 차원임을 확인했다. 결과에 따르면 사랑은 애착, 보살핌, 친밀함 3가지 요소가 주를 이루고, 좋아함은 호의적 평가, 존경과 신뢰, 유사성 지각이라는 3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사랑한다고 할 때는 사랑하는 상대와 항상 함께 있고, 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며, 둘 사이에는 비밀이 없고 모든 것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격렬한 생리적인 변화(두근거림 혹은 다양한 떨림)도 동반한다. 좀 더 강렬한 정서적 변화가 수반되는 상대방에 대한 절절함이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좋아한다는 것은 왠지 상대가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되며, 상대방의 결정을 존경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결정을 믿고 따르며, 상대가 항상 이해심이 많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이렇듯 루빈은 사랑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이 별개의 차원임을 확인하고 또 다른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데이트 중인 커플들을 대상으로 이 두 가지 차원을 질문지로 구성하여 성별로 둘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사랑과 좋아함의 상관계수를 0부터 1까지 숫자로 나타내게 한 것이다. ‘0’이면 서로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이고 ‘1’이면 서로 완벽하게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둘 간의 관련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남자는 사랑과 좋아함의 상관계수가 0.56이 나왔고 여성은 0.36이 나왔다. 이 결과가 갖는 의미는 남자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감정·태도가 혼재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남자가 이성의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사랑의 감정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반면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별개로 볼 가능성이 높다. 즉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구분해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남과 여가 상대를 사랑하는 다른 방식 그렇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누가 높을까. 루빈의 연구 결과에 준해서 보자면 좋아함과 사랑을 별개로 바라보는 여성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남자들은 애초에 좋아하는 감정이 들지 않으면 사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종종 ‘왜 나는 영화나 TV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생각 배경에는 대중문화 혹은 매체가 우리에게 ‘사랑은 격정을 수반한 열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사실 낭만적 사랑만이 사랑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은연중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에 존 리(John Lee)는 사랑의 6가지 유형을 제시했다(지면 사정상 일부만 소개하고 자세한 것은 존 리의 사랑의 유형을 검색해보기를 권한다).기본적인 세 가지 유형으로는 첫눈에 반하고 이상적인 연인을 꿈꾸며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에로스(Eros), 강렬한 열정 없이 정이 넘치고 우애적인 우정과 같은 사랑을 하는 스토르게(Storge), 한 사람에 얽매이지 않고 쾌락적이며 상대를 구속하지 않는 바람둥이처럼 유희적 사랑을 하는 루두스(Ludus)가 있다. 이 외에도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헌신하는 아가페(Agape),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해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만나려는 프라그마(Pragma)도 존재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선호하는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과 상대방의 방식을 알면 서로 다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고, 더 나은 사랑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 사회가 심어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자신이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스토르게처럼 친구 같은 우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로,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는 주변에서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척이나 결혼상담소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경우를 본다. 조건을 전제로 하는 만남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상당수이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랑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바람둥이들이 선호하는 루두스는 한 사람과의 관계에 자신을 매어놓지 않고 책임지려 하지 않으면서 쾌락을 탐닉하는 유희적 사랑이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유희적 사랑을 선택한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 시절의 화려함과는 상반되게 나이가 들면서 쇄락하고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마도 젊은 시절 자신의 외모와 능력(?)을 믿고 열정을 유희에 쏟으며 당장의 쾌락만을 탐닉한 탓은 아닐는지. 우리는 TV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사랑과 결혼에 관한 다양한 장면을 보게 된다. 주인공들은 결혼을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왔거나 가진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하지 않지만 출세나 행복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랑과 현실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쪽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연구가 외국에서 실시됐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결혼하겠는가?’라는 것이 연구에서 실시한 질문이었다. 그 결과는 남녀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남학생의 3분의 2가 ‘아니요’라고 답했고, 여학생은 3분의 1 이하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현실적 조건보다는 사랑에 더 큰 비중을 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언뜻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낭만적 사랑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이면이다. 결혼은 남녀 불문하고 성인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혼도 남성과 여성이 처한 사회문화적 현실로 인해 남녀가 결혼이라는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고 결혼 이후에 당면하는 삶의 조건 자체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남자들은 결혼하더라도 삶의 조건에서 변화가 별로 없다. 자신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고, 가족과 떨어져 산 경우에는 식사 준비, 청소 등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여자들은 다르다. 지금은 그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집을 떠나 남자 집의 며느리로서 자리매김해야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직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또한 집안일을 더 떠안아야 하는 여러 가지 생활양식의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여성이 어떤 사람, 즉 누구를 배우자로 만나느냐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고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여성들은 결혼을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양성평등한 사회가 실현된다면, 여성들도 현실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해 본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이별을 당하는 비련의 주인공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이러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으로 여자들이 비련의 주인공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그럴까?미국의 사회학자 커크페트릭과 캐플러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연인관계의 파탄이었다. 관계가 깨지는 주된 이유로 꼽은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것이었으나, 또 다른 사례로 거론된 것이 바로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연인관계가 파탄난 경우였다. 어떻게 보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일방적 이별 통보이다. 서로 관심이 없다면야 이별에 대한 슬픔도 크지 않고 짧은 시간에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아직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상태에서의 일방적 파탄 결정 통보는 상대방에게 큰 슬픔과 상처가 된다.이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자신이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옮겨가 연인관계가 깨진 것은 남자 15%, 여자 32%로 여성이 많았다. 질문을 바꿔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옮겨가면서 깨진 경우는 남자 30%, 여자 15%였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질문을 했는데 결론은 동일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비련의 주인공은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앞서 언급한 사회경제적 혹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만일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반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 연인들이 부모의 반대에 직면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쉽게 인정하고 포기할까 아니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더 열렬한 사랑을 할까.결론부터 말하면 더 강렬해진다. 이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를 토대로 이들이 양 가문의 반대가 거세면 거셀수록 더욱더 불같이 사랑한다는 점을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Romio & Juliet Effect)’라고 부른다.이러한 현상은 왜 벌어질까?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로 설명이 가능하다. 누군가와의 사랑은 내가 이미 선택한 것이고 이것을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리석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한다. 즉 반대에 직면한 연인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을 더 열렬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행동이나 태도의 원인을 잘못 인식하는 오귀인(誤歸因)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결정에 대해 비난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정서적으로 화가 나고 그로 인해 강한 생리적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반대함으로써 유발된 감정이자 흥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과 생리적 흥분을 자신이 그 만큼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대가 격렬해질수록 감정도 격해지고 따라서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부모들은 자녀의 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헤어질 것을 괜스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녀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인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다양성관리연구소 소장으로 남녀소통, 성격과 리더십, 성격과 건강, 남녀 파트너십, 양성평등, 폭력예방 등을 주제로 강의 및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한국여성수련원 교육연수부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여성심리학회 이사, 한국성희롱예방교육 전문강사협회 이사,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연구자문위원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희롱 행동의 이해와 실제》, 《경력개발과 적응(인적자원관리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경영학에 여성은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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