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덕

최근에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핀다고 의심하고, 아내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리고 잇따라 상대 남자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가해자인 남자는 살인을 한 다음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50대의 중년이다.   아내가 바람을 핀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많은 경우에는 이와 같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말로 싸우거나 폭행을 해도 심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살인을 하거나 중상해를 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격정범이다.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은 바로 이럴 때 나타난다. 간통죄도 없어졌고, 기껏해야 아내가 바람을 핀 사실이 확인되면, 남편으로서는 이혼을 하거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아내를 때리거나 아내의 애인을 폭행하거나 살해할 권리를 없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타인에 대해 신체를 상해할 정당성은 없는 것이다. 아내는 어디까지나 타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법이 그렇다는 것일 뿐, 현실에서는 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살인도 하고 상해도 가하는 일이 벌어진다.   때문에 여자의 입장에서는 바람을 피다 들키면 남편에 의해 살인도 당하고, 심한 상해도 입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애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애인인 유부녀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유부녀를 만나야 한다.   일단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를 당하면, 그 후 유부녀의 남편을 처벌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타인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유부녀를 절대 만나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이런 사건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굳이 유부녀 아닌 사람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위험한 유부녀를 만나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이슬기

나의 사랑스러운 첫 조카 채희는 오늘도 용감하게 실패를 더하고 있다. 고개를 가눌 수 있던 날로부터 끊임없이 뒤집기 연습을 하다 힘이 빠지면 바닥에 코를 박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한 달 새 왼쪽과 오른쪽 모든 방향의 뒤집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더니, 이제는 작은 두 팔로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고 귀여운 얼굴로 그렇게나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채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실패의 두려움보다 가능성의 즐거움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짓궂은 장난꾸러기 이모 역할을 맡은 나는, 아주 몰래, 동생이 보지 않는 틈을 타 6개월이 갓 지난 조카에게 난도 높은 게임을 제안한다. 작은 콧방울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그녀가 맞게 될 환희를 빼앗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스타트! 첫 번째 게임, 모자 벗기! 두 번째 게임, 방석 위에 앉기!세 번째 게임, 두 다리로 오래 버티기!그래, 이 표정이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얼굴을 덮고 있던 커다란 모자를 스스로 벗게 되었을 때, 균형 잡기 어려운 푹신한 방석 위를 오뚝이처럼 움직이다 드디어 균형을 잡게 되었을 때, 그리고 잠깐이지만 몸을 지탱해주던 타인의 두 손에서 벗어나 두 팔을 양옆으로 뻗고,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어 혼자 서게 되었을 때, 채희는 ‘해내고 말았어!’ 하고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나는 의도된 실패를 사랑한다. 그것이 ‘현재의 나’에서 ‘내가 바라는 나’로 성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와 성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짜릿함은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더 스릴 넘친다. 이 즐거움에 매료된 덕분에, 발 사이즈보다 낮은 토익 점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와이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고, 춤이라곤 출처를 알 수 없는 엇박자의 몸 흔들기가 최선이었지만 미국 극단의 연극배우가 될 수 있었고, 엑셀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회사원이었지만 금요일 밤에는 힙한 파티기획자가 되었으며, 첫 전자책 댓글로 방금 산 커피를 쏟아버린 씁쓸함이라는 악플을 받았지만 지금은 출판사에서 함께 작업하길 바라는 4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었다. 원하는 것을 요술 방망이를 휘두르듯 뚝딱 가질 수는 없었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은 시시때때로 찾아왔고, 수만 번 방법을 고민해보아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답이 찾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했다. 밤잠도 못 자도록 처참하게 괴롭히는 ‘내가 바라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 적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비슷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알게 된 비밀 덕분에 오히려 이러한 클라이맥스를 기쁘게 맞이하게 되었다. 괴로움과 슬픔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을 지나면,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 경험이 나를 가보지 않은 다음 단계로 안내한다는 것을 말이다.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절대 걸을 수 없다.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이 가벼워진다. 나는 실패하는 내가 좋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끌어안은 나를 사랑한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심장 벌떡거리는 나를 지지한다. 내 작은 두 발로 더 많은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고 싶다. 한동안 잠잠했던 ‘내가 바라는 나’가 찾아와 마음을 두드린다.“두근거리는 심장의 북소리를 따라 모험을 떠나보시겠습니까?”Yes or No 버튼 앞에 서서 이번에는 어떤 게임인지 살펴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두 가지 문제에, 난도도 상향 조정되었다. 솔직히 말해 곧바로 버튼을 누르진 못했다. 선택을 미루고 미루다, 안정을 추구하는 슬기가 좋아하는 여행도 선물하고, 밤새도록 미드 몰아보기 시청을 도와주면서 어떤 선택을 할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 다음, 일을 저질러 버렸다. 무지하게 어려울 거란 예상에 쫄깃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긴장감과 무서움에 한쪽 눈만 살포시 뜬 채로 Yes 버튼을 꾸욱. 글쓴이 이슬기는 한때 회사원이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이후, 숱한 실험을 통해 평생 하고 싶은 것 두 가지를 찾았다. 하나는 글쓰기, 또 하나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일이다.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며, 직장인 퍼스널 브랜딩 연구소 ‘액션 랩’을 운영 중이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걱정 없이》, 《댄싱 위드 파파》를 썼다.

김주덕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랑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사랑은 반드시 양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혼자 주는 사랑! 그것은 무엇일까? 상대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데, 혼자서만 상대를 좋아하고, 많은 것을 배려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가끔 나이 든 남자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 만나기는 하지만, 정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나이 차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는 때때로 남자와 헤어지자고 한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남자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깊은 정을 주지 않았던 거라고…   남자는 마침내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좋은 관계마저 끝이 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는 처음부터 서로의 나이, 환경, 성격, 취미 등을 잘 따져서 진정한 사랑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애당초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시간이 가면 두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처를 입게 된다. 사랑 때문에 받는 상처처럼 오래 가는 것은 없다. 매우 깊게 아픔을 준다.

은열

“우리, 강원도 여행 갈까?” 얘기가 처음 나온 건 어죽으로 유명한 파주의 한 식당에서였다. “지인이 운영하는 펜션에 연락해볼게.” “운전은 내가 하면 되고.” “그럼 난 맛있는 저녁 쏘겠음!” 순식간에 ‘6월 우정 여행’이 결정됐다. 멤버는 전(前) 직장 선배 A와 친구 B, 그리고 나였다. 갓 입사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햇수로 벌써 19년. 그 사이 셋 다 소속이 바뀌었으며, 어리바리하던 풋내기의 티를 벗고 각자의 업무에서 베테랑이 됐다. 취미도 관심사도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생일을 핑계 삼아 1년에 최소 세 번은 꼬박꼬박 모였고, 매해 고심을 거듭해 진심이 담긴 선물을 건넸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가족의 안부를 묻고 대소사를 챙길 정도의’ 친분도 생겼다. ‘제발 싸우지만 말자!’ 그게 이번 여행에 임하는 우리의 유일한 목표였다. 제아무리 친한 사이라도(심지어 가족끼리도) 함께 여행하다 보면 으레 다투게 마련이란 얘길 너무 자주 들은 터였다. 공교롭게 셋이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숙소는 화장실 말곤 사방이 트여 숨을 곳 하나 없는 스튜디오형 공간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아침잠 없는 A는 이른 새벽 일어나고도 종일 운전하느라 녹초가 된 내가 뒤척이기라도 할까 봐 세면대 물 소리 하나까지 조심했고, 이동하는 내내 조수석에 앉아 한숨도 자지 않고 내 말벗이 돼줬다. 사려 깊은 B는 숙소를 중심으로 갈 만한 곳과 소문난 식당을 살뜰하게 정리, 출력해 왔다.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둘에게 한 줌의 추억이라도 더 남겨주려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것도 B였다. 절연, 잠깐 통쾌하고 오래 헛헛하더라사실 내겐 A와 B 같은 친구가 꽤 여럿 있다(자랑, 맞다). 한동안 그 사실을 훈장처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다. 내심 ‘이 정도도 안 되면서 친구라고 할 수 있어?’란, 일종의 ‘친구부심’이 있었다. 동시에 ‘양질의 인연’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오며 가며 고개 한 번 까딱한 사이, 명함 한 장 주고받은 사이도 소중히 대했다. 일단 안면을 튼 사람에겐 어떻게든 인상적으로 기억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내가 애쓰는 만큼 내 인간관계도 튼실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정반대 경우’에도 똑같은 태도를 고수했단 사실이다. 내가 노력했는데 상대가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다짜고짜 맘이 상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란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생전 연락 한번 없다 자기 아쉬울 때만 ‘이모티콘 작렬’ 메시지를 보내며 뭔가 요구하는 사람, 도움받을 땐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 막상 뭐 좀 부탁하려 하면 함흥차사인 사람, 툭하면 약속에 늦거나 빠지며 딱한 거짓말로 임기응변하기 바쁜 사람….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목구멍까지 차오르게 하는 이가 차고 넘쳤다. 그럴 때마다 내 입장은 단호했다. ‘당신이 내 호의를 이렇게 무시하는데 내가 왜 굳이?’ 그러곤 결연하게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끊었다. 고백하건대 잠깐은 통쾌했다. ‘나랑 친해지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암만!’ 혼자 고개를 주억댔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모든 인연이 내 원칙대로 순탄하게 깊어지진 않았다. 내 태도가 한결같아도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난 ‘정말 좋은 인생의 벗’이 될 수도, ‘굳이 사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단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 사이, 적잖은 인연과 알게 모르게 이별했다. ‘영 아닌’ 이들만 솎아내고 함께 가는 삶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일 자체’보다 ‘대인관계’의 고충을 말한다. 실제로 인간관계는 일이나 공부처럼 미친 듯이 매달린다 해서 풀리지 않는다. 서로의 개성이 맞부딪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말하자면 화학반응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오오력’으로 해결되는 성질의 과제가 아니란 사실만 이해해도 그 이후는 꽤 쉬워진다. 최선을 다하되 영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맘을 접게 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뭐 그럴 수도 있지’로 바뀐다. 무던히 노력했는데도 어떤 이와의 인연이 1년은커녕 한두 달밖에 이어지지 않을 때 속상해하거나 애달파하는 대신 ‘쿨(cool)하게’ 작별을 고할 수도 있게 된다. “당신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그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어디서든 행복하시길!” 허용되는 것만 나열한 후 나머지는 전부 불허하는 규제를 ‘포지티브(positive) 규제’라고 한다. 금지하는 행위를 명기한 후 그걸 제외한 전부를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의 반대 개념이다. 규제의 강도(强度)로 치면 당연히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높다. 이런 분류는 대인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서도 종종 유효하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규정할 때 매사 포지티브 방식을 적용하면 고단하다. 늘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해야 하고, 적이면 가차 없이 철퇴를 내려쳐야 하니까. 그럴 때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만 추려내고 고만고만한 나머지와는 느슨하게 연대하며 지내는 것이다. 둘 다 경험해본 내 결론은 단연 네거티브 쪽이다. 무엇보다 그 편이 정신건강에 훨씬 유익하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의 목가》엔 대인관계와 관련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문장이 나온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김주덕

별이 빛나고 있다. 어두운 밤에 별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아주 작게 느껴진다. 존재라고 하기에도 곤란할 정도로 초라하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 그 초라함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영혼의 고향은 어디인가? 알 수 없다. 누가 그에 대해 자신 있는 결론을 내리고, 근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결국은 불가지론에 빠지고 만다.   영혼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영혼에 빛이 있다는 사실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다.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별이 뿜어내는 빛 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영혼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별과 달리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유기체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한 개의 별이 반짝인다. 별은 출생과 관련이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별 하나가 빛을 잃는다. 별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사랑하면 두 개의 별이 동시에 빛난다. 그 사랑은 어느 하나의 별에서 다른 별로 옮겨간다. 그럼으로써 두 개의 별은 하나가 된다. 사랑은 새로 탄생한 별에 영원한 흔적을 남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별을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찾은 아름다운 별속에 자신들의 사랑을 묻어야 한다. 그래야 변하지 않는다. 평생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그 별에 묻힌 사랑은 영원히 보존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이고 신앙이다.

김주덕

사랑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렸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없다. 사랑이란 정신적인 작용이며, 그 실체를 볼 수 없고 정확하게 인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순히 정신적인 작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육체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고 기능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만드는 가상의 공간에서 형성된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은 그들만의 독점적인 영역을 창조한다. 두 사람만의 탑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동굴을 파놓고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사랑은 두 사람에게 부여된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시간과 공간이며, 그들만이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가 있다. 그들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색깔이 있고 소리가 있다.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촉이 있다. 그들만이 얻을 수 있는 환희와 고통이 있다.   이런 사랑의 전제조건은 진실성과 합일성, 영원성에 있다. 사랑에 빠져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탑을 쌓는다. 그 탑에 자신들의 추상적인 사랑을 각인하고 그 탑을 보면서 항상 사랑을 확인한다.   그 탑 위에 올라가 앉거나 탑 속에 들어가 안주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탑과 비교도 하지만, 그 탑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탑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비교할 능력도 없어진다. 탑속에서는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의식주는 중요치 않다. 사랑의 정신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탑에서는 정신이 중요하다.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탑에서는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놓고 항상 교감한다. 주파수가 맞지 않거나 다른 주파수와 혼선이 생기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24시간 계속되는 이 사랑의 교감작용은 사랑의 본질에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다른 인간행동과 구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교감이 끊어지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사랑은 병들거나 소멸하게 된다.   두 사람이 사랑의 탑을 공고하게 쌓아가면서 더 높아지면 그 사랑은 천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지상에서 영원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금자탑이다.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 된다.   그러나 그 탑은 인간의 교만함 때문에 바벨탑처럼 중간에 모두 무너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 탑을 쌓으면서 항상 신에 도전한다. 신과 같은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의 무모함은 결국 탑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사랑의 탑(tower of love)을 쌓는 일은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고를 필요로 한다. 가만히 편하게 앉아서 탑을 쌓을 수는 없다. 피와 땀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다지 중요한 가치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탑을 잘 쌓아보았자 다른 사람들과 그 효용을 나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이기적인 활동이다. 사랑의 탑은 두 사람만이 노고를 들여 쌓을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가진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그 탑은 중단된다. 중단된 채 이상한 모양으로 변형된다. 녹이 슬고 비를 맞고 풍상에 초라해진다. 그 탑은 사랑의 탑이 아니라 증오의 탑이 되고 그 탑을 쌓던 사람들은 동과 서로 나뉘어 갈라서게 된다.   두 사람은 한때 자신들이 공동으로 탑을 쌓았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 그 형체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나쁜 추억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쌓다가 만 사랑의 탑들이 수 없이 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설픈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이런 탑들은 인간들의 교만함과 불성실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애당초 모든 것을 순종하기로 마음 먹은 동물들은 이런 어설픈 사랑의 탑을 쌓지도 않고 쌓다가 내팽개치지도 않았다. 그들은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할 뿐이어서 사랑의 탑 대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작은 공간을 빌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교미를 하고 종족을 보존한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사랑에 대해 추상적인 논의를 하지 않는다.   사랑의 탑은 쌓기도 어렵지만 관리하기가 더 어렵다. 항상 두 사람이 함께 관리하지 않으면 관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탑의 형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 탑의 주변에 모여든다.   탑의 작업에 허락 없이 끼어들거나 작업중인 한 사람을 내쫓고 대신 작업하려는 꾼들도 있다. 복잡한 애정관계가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면 사랑의 탑은 고요한 산사에서 복잡한 시장이 된다.   탑은 더 이상 올바른 방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변질된다. 주저앉기도 한다. 그들은 헤어져 각자 다른 탑을 새로 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사랑의 탑을 평생 저주하며 외면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의 실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누구와 어떤 사랑의 탑을 쌓아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높이 쌓았는가?   탑의 이름은 무엇이며 얼마나 아름답고 그 안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랑을 나누었는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그 사랑의 탑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우리는 너무 사랑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생을 마감할 때 가장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사랑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후회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해 쏟는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김동연

수리온의 프로토타입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약 10미터 상공에서 추락한 마린온(Marineon) 탑승자 6명 중 5명이 사망했다. 회전익 항공기인 헬리콥터 사고에서 10미터 상공은 사실 그리 높은 고도가 아니다. 이륙직후 발생한 사고인 탓에 상당히 낮은 고도에서 추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탑승자가 사망 및 부상을 당했다. 왜일까. 일단 여기에는 사고 발생상황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고도 10미터밖에 안되었는데, 왜 사상자 피해 컸나? 가장 큰 이유는 사고 당시 마린온의 주동력원인 메인 로터(Main rotor)가 동체에서 분리되어 추락했기 때문이다. 고정익 항공기(여객기, 수송기 등)와 달리 회전익 항공기인 헬기는 공중 비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동력을 메인 로터에서 만들어낸다. 꼬리날개에 부착된 테일 로터(Tail rotor)는 공중 체공을 위한 역할보다는 항공 조향에 필요한 요(yaw)컨트롤 등을 위해 장착된 것이다. 즉 꼬리 날개가 부서지면, 메인로터를 따라서 동체도 같이 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방 꼬리 날개가 부서진 헬기는 계속 제자리를 빙빙 돌면서 추락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메인로터가 부서지는 경우에는 공중 체공조차 어렵다. 모든 고정익 및 회전익 항공기는 유사시 자유낙하(free fall)가 가능하다. 자유낙하란 비행기의 주동력원인 엔진의 힘 없이 비행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익 항공기인 여객기 등은 엔진의 동력이 사라진 경우에도 주익(main wing) 등이 항공기의 동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서히 땅으로 내려간다. 회전익 항공기의 경우 이런 주익의 역할을 메인로터가 겸하게 된다. 유사시 엔진이 고장나면 파일럿은 즉각 메인 로터를 수동전환한다. 그러면 이 메인로터가 자체동력은 없지만,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면서 추락하는 속도를 최대한 줄여주게 된다. 거의 모든 헬기 사고에서 메인로터가 크게 부서지지 않았다면, 생존율은 배가 된다고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마린온은 이런 메인로터 수동전환을 통한 자유낙하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상승고도가 고작 10미터에 불과했음에도 메인로터가 통째로 동체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떨어지는 동체의 추락속도를 완화시켜줄 그 어떤 장치도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10미터 위에 던져진 거대한 고철덩어리와 다를게 없었다. 참고로 마린온(수리온)은 내충격성(crashworthy)프레임을 탑재하여, 외부 충격에도 탑승자의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자의 수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메인로터의 자유낙하 기능이 회전익 항공기의 사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사한 사고인 노르웨이의 AS332L2(EC225) 수퍼푸마(수리온의 원형) 추락 사고때도 메인 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되어 추락, 탑승자 13명 전원이 사망했다.   추락원인의 가능성 3가지: 1.엔진, 2.트랜스미션, 3.블레이드 마린온처럼 동체와 메인로터가 분리되어 추락하는 경우는 헬기 사고에서 비교적 드문경우다. 대부분의 헬기는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부서지는 문제보다는 외부 충격 등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해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물리적인 파손없이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인 전자장비 문제 등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런데 마린온의 경우는 사고 영상을 보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동체와 메인로터가 완전히 분리됐다. 따라서 이 문제는 메인로터와 관련된 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수리온과 동일 계열 엔진 사용한 일본 자위대의 아파치 헬기 추락모습.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1.엔진문제인가? 마린온 엔진 장착한 일본 자위대 아파치 공격헬기의 메인로터 분리 사례 메인로터가 분리된 사고 사례 등을 찾아보면, 문제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엔진. 둘째, 트랜스미션(기어박스).셋째, 블레이드(blade,날개). 혹은 이 세가지의 복합적 문제일 수 있다. 먼저 엔진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마린온의 엔진도 본래 수리온(Surion)의 것과 동일한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엔진은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사의 T700-701K이며 2개를 장착하고 있다. 이 엔진의 성능은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 엔진이다. 단적인 예로 수리온과 동일 엔진뿌리를 가진 T700 계열 엔진을 쓰는 기체를 보면 최고의 공격헬기로 꼽히는 보잉의 아파치(AH-64)와 다목적 헬기인 시콜스키사의 UH-60 블랙호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벨(Bell)사의 유명 공격헬기인 AH-1W 수퍼코브라와 AH-1Z 바이퍼도 동일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그만큼 엔진의 성능의 우수성은 정평이 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수리온과 동일한 엔진을 장착한 헬기의 추락사고가 있었다. 올해 초, 수리온(마린온)의 동일계열 엔진(T700-701C)을 장착한 일본 자위대의 AH-64D(일본 후지중공업 라이선스 생산기종)가 일본 사가현의 민가에 추락, 파일럿 두명이 목숨을 잃은바 있다. 당시 사고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는 메인로터에 장착된 2인치(약 5cm)짜리 볼트 한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고 발생 수초전 이 볼트가 먼저 충격 등으로 부서지면서 블레이드가 파손,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되었고, 공중체공이 불가능해지면서 추락했다. 메인로터가 부서진 경위 등이 이번 마린온과 일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 자위대 측에 당시 사고 경위에 대한 문제를 공유하는 등 협조를 통해 두 사례를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마린온의 사고에서도 메인로터를 보면 4개의 블레이드 중 한 개가 잘려 나갔다. 따라서 메인로터에 장착된 볼트 등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만약 이번 사건이 엔진 문제라면, 이는 단순히 마린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군이 새로 도입하여 올해 초 전력화를 마친 신형 아파치 헬기의 엔진도 동일 파생형 엔진(T700-701D)을 쓰고 있는만큼 전수조사 등을 통한 문제를 파악 및 보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엔진의 문제로 지목되면, 이것은 국내 KAI보다는 엔진 제작사인 GE 사에 문제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고 분석에 GE의 전문가 등도 참여시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시험비행을 위해 급유중인 수리온. 사진=위키미디어 2.증가한 출력 못견뎌 베벨기어 부서진 전례 있는 트랜스미션(기어박스)의 문제인가? 수리온에 장착된 엔진은 강력한 편에 든다. 강한 출력은 유사시 뛰어난 기체 기동성 등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런 엔진의 능력을 십분발휘하기 위해서는 엔진에 걸맞는 트랜스미션 제작을 요한다. 엔진이 강해도 미션이 그 능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동력이 로터로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수리온에 장착된 미션이 T700엔진의 출력을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말이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수리온의 원형인 유로콥터사의 EC225의 추락 사고를 들 수 있다. EC225는 기존대비 엔진출력이 약 14%가량 올라간 프랑스산 터보메카(Turbomeca) 마킬라(Makila) 2A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이후 2012년경 엔진의 높아진 출력을 감당하지 못한 트랜스미션내 베벨기어(Bevel gear)가 부서지면서 2차례 추락한 바 있다. 미션 문제에 따른 사고 이후, 2013년 EC225는 트랜스미션의 성능도 엔진출력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했다. 현재 EC225에 장착된 마킬라 2A 엔진의 축마력(SHP)은 최대 2100 마력에 달한다. 엔진 출력만보면 수리온에 장착된 T700-701K엔진의 축마력 1915 마력과 유사하다. 현재 수리온에 탑재된 트랜스미션도 노르웨이의 유사 추락이후, 문제로 지목된 트랜스미션의 기어를 보강했다고 알려졌다. 올해 4월 발표된 노르웨이 사고 조사위(Norway Accident Investigation Board)의 사고분석에서도 트랜스미션의 기어가 부서지면서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되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번 마린온 사고도 트랜스미션을 유력한 문제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수리온의 원형인 EC225는 프랑스제 엔진과 유럽산 에어버스사의 트랜스미션을 조합하여 만든 기체다. 즉 유럽산끼리 조합하여 제작한 파워트레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산 엔진과 유럽산 트랜스미션을 조합한 수리온의 파워트레인 조합이 잘 맞았는지도 의문이다. 수리온의 트랜스미션에 있어서 한가지 특이점은 또 있다. 바로 최초의 리어드라이브(rear-drve)파워트레인이라는 점이다. 즉 T700계열 엔진을 장착한 헬기중 유일하게 이 방식을 택한 것은 수리온이다. 이말은 메인로터의 설계위치가 기존 여타 T700 계열엔진을 장착한 헬기와 다르다는 말이다. 다른 헬기는 메인로터 뒷부분에 엔진을 장착한다. 이 경우 로터가 회전하면서 엔진에 필요한 인테이크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구조다. 반면, 수리온은 메인로터보다 앞에 엔진이 장착되어 있다. 이 때문에 로터기어가 엔진 내부로 인테이크를 형성하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구조적 차이가 수리온의 진동 유발이나 엔진성능 등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로터를 활용한 인테이크 성능을 발휘할수 없는 수리온의 구조가 여타 T700 계열 엔진을 장착한 기종보다 더 큰 진동을 만들어내는지 등도 확인해볼 필요도 있다.   수리온과 동일계열 엔진을 쓰는 MH-60의 메인로터 블레이드를 도색중인 미 해군. 사진=위키미디어   3.블레이드(날개) 문제인가? 4개로 줄어든 블레이드 개수와 구워만든 블레이드 당 편차때문인가? 메인로터 블레이드(blade)는 업계에서도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운 기술중 하나로 꼽힌다. 고정익 항공기와 달리 헬기는 비행중 거의 모든 움직임을 메인로터에서 만들어내고 이 힘을 블레이드가 전달한다. 블레이드는 헬기제작의 핵심기술이자, 타 제작사에서 공개를 꺼리는 원천기술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헬기의 메인 블레이드는 고정형태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비행중 이 블레이드는 수시로 각도를 바꾸며 움직인다. 이렇게 달라진 블레이드의 각도 등에 따라 헬기의 모든 기동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헬기제작의 후발업체들은 이 블레이드 기술력 확보를 위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KAI도 예외는 아니다. KAI는 소형 민수 및 군용 헬기의 메인로터 블레이드 기술력을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KAI는 2011년 무렵부터 이 블레이드 제작에 관여할 국내 기업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AI는 이 블레이드 제작에 필요한 히트 몰드 (heat mold) 기술력을 가진 업체를 찾아나섰다. 그 이유는 블레이드가 고열로 구워서 만들어지기때문이다. KAI에 따르면 블레이드는 벌집모양의 허니콤코어(honeycomb-core) 형태의 복합물질(카본화이버, 레진, 유리섬유 등)을 특수제작 틀에서 섭씨 약 130도의 온도로 2시간 반가량 구워만든다. 즉 이 블레이드는 구워서 만들어지며, 이 구워지는 정도 등에 따라서 블레이드의 성능이 좌지우지 된다. 블레이드를 구워내는 기술력이 좋지 못할 경우, 수리온에 장착되는 4개의 블레이드당 성능편차가 커진다. 가령 블레이드당 무게편차가 커진다거나, 구워지고 난 이후 모양이 당초 설계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편차 등이 커질수록 수리온의 기동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된다. 기동성은 물론 메인로터와 연결된 파워트레인 전반에 문제를 유발한다. 진동이 커지는 것도 장착된 4개의 블레이드간 편차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가령 3개의 블레이드 대비 1개의 블레이드의 무게가 더 무겁다거나, 블레이드의 모양 등이 차이를 보이면 회전할때마다 진동을 유발할 수 있다. 블레이드 제작 경험이 부족한 KAI가 얼마만큼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어보이는 부분이다. 구워만드는 블레이드는 여타 항공부품 대비 균일한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차량에 사용되는 카본화이버 모노코크 프레임(carbon fiber monocoque frame)도 블레이드처럼 고온에서 장시간 구워만드는데, 구워만들때마다 프레임의 모양이 100% 똑같을 수 없다. 섬유재질의 천조각 등을 잘라서 짜맞춘뒤 사람이 초벌로 구워 고정한뒤 틀에 넣어 구워내기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유수 기업에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장인들이 조립공정에 투입되고, 구워내는 틀(화로)도 특수제작한다. 틀의 기밀성, 온도유지 성능이 떨어지면, 고르지 못한 열로 제작되어 블레이드의 부위별 강성에서도 편차를 보일 수 있다. 공정과정에서 사람이 수작업으로 처리해야하는 부분이 많고, 사람의 숙련도와 직결된 부품 중 하나다. 또다른 문제는 줄어든 블레이드의 개수다. 수리온의 메인 블레이드는 총 4개다. 이는 수리온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로콥터사의 EC225에는 5개의 메인 블레이드를 장착한 것과 대비된다. 혹자는 1개의 블레이드를 줄인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으나, 블레이드의 개수는 수리온의 파워트레인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양력 생성(lift force) 및 로터의 회전 안정성 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블레이드의 수가 많은게 유리하다. 블레이드의 수를 1개 줄이면 개당 블레이드가 감당해야하는 양력 부담 등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수리온의 블레이드 개수가 EC225 대비 더 큰 부담을 떠안는 구조일 수 있다. 기체의 생산 단가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양력 생성과 진동흡수를 위해서는 5개의 블레이드가 더 나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마린온은 본래 수리온(Surion)의 파생형으로 해병대의 임무에 특화된 기체다. 수리온과 달리 몇가지 변경된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중 메인로터와 직결된 문제는 접이식 블레이드(Blade Fold Kit)다. 한마디로 수리온 대비 변경된 기술적 사안을 역추적하여 문제를 잡아낼 수도 있다. 수리온에는 없는데, 마린온에는 추가된 기능이 기존에 확인되지 않은 문제를 만들어 냈을 수 있기때문이다. 수리온의 기술적 평가와 시험에서는 나오지 않은 문제가 마린온에서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경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이 접이식 날개가 그 구조상 원천적으로 블레이드 전체의 내구성이나 구조적 결함을 유발했는지도 검토해봐야한다. 수리온과 동일 계열엔진을 사용하는 기체중 날개를 접는 기종은 마린온만이 아니다. 아파치의 모델 중에서도 해병대 등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로터 블레이드가 접히는 방식을 채택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아파치의 접이식 키트(blade fold kit)와 마린온의 접이식 키트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비교분석할 필요도 있다. 특히 국내에서 헬기 로터를 접이식으로 만든 경우는 드물고, 마린온이 거의 최초다. 그런데 접이식 블레이드에 대한 연구나 시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린온에 장착하면서 문제를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접이식 블레이드의 강성, 구조적 차이, 스트레스 허용치, 탄성 등 다양한 검토를 충분히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수리나 운용의 문제라면, 접혔던 블레이드를 완전히 펼치지 않으면서 문제가 되었는지 등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는 마린온의 증가한 엔진진동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만약 진동이 심하다면, 이러한 엔진의 진동을 완충시켜줄 댐핑(damping)시스템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진동을 방치할 경우 메인로터에 들어간 여러 볼트에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부서지거나 체결을 방해할 수 있다. 진동에 따른 볼트 풀림 등도 얼마든지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증가한 엔진 출력을 염두에 둔 댐핑 보강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확인해야한다. 특히 로터 헤드 부분에는 블레이드 댐핑과 바비큐 플레이트(barbaque plate)등이 충격과 유격을 적절히 잡아주도록 보완이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파워트레인의 종합적 분석 및 검토 미흡 수리온의 파워트레인의 제작은 복합적이다. 엔진은 미국산 GE, 트랜스미션은 유럽산 에어버스(구 유로콥터), 블레이드는 국산 KAI다. 항공기의 주요파츠인 파워트레인은 보통 하나의 제작사에서 도맡아 납품하는게 일반적이다. 가령 엔진, 미션, 블레이드를 모두 에어버스가 다 만드는 식이다. 혹은 단일 국가내 기업들이 함께 제작한다. 왜냐하면 파워트레인은 여러가지 파츠가 복합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하나의 제작사가 종합적으로 검토 및 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의 제작사가 파워트레인을 제작한 수리온의 경우는 주요 핵심파츠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미흡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은 에어버스가 컨소시엄 방식으로 여러 국가와 함께 항공기를 제작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것이다. 컨소시엄 제작의 경우에는 제작에 관여하는 회사들이 함께 제작, 시험평가, 생산에 수시로 참여하기 때문에 문제점 등을 즉각 보완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수리온의 경우에는 각기 다른 제작사(제작국가)가 만든 파츠들이 하나로 합쳤을때,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했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제작된 파워트레인을 항공 선진국의 유수 기업에 종합성능 감수 등을 의뢰했는지 의문이다. 제작사가 다 틀리다는 말은 파츠별 제작사가 생각한 의도가 다르게 맞물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엔진을 만든 GE가 자신들의 엔진을 유럽산 에어버스의 트랜스미션과 조합했을 때 어떤 성능을 만드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해야할 의무가 없다. 이는 에어버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는 3개의 다른 파츠를 조합한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파츠별 제작사가 다른 파츠와의 조합(궁합)까지 고려해서 제작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종합적인 감수와 검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항공 유수 기업 등에 충분한 검토와 시험을 했어야 한다. 수리온의 전력화 시점까지 소요된 시간은 고작 6년이다. 여타 항공 선진국의 헬기 개발기간이 10년 내외인 것에 비해 상당히 짧게 진행됐다. 정부가 국내 부족한 헬기의 공백을 메우는데 급급해 짧은 개발시간을 KAI에 요구한 점도 문제다.   그 밖의 경우, 수리 미흡이나 FOD 당시 기상상황 및 환경을 고려한 조사도 동반되어야 한다. 가령 기체 결함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사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CCTV 영상에는 잘 확인되지 않은 물체 등이 메인로터에 충격을 준 경우다. 가령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나, 활주로 주변 FOD(파편 및 이물질, Foreign Object Debris)다. 고정익 항공기와 달리 회전익 항공기는 엔진의 인테이크(intake)부분이 작고 로터가 회전하고 있어 새와 같은 동물이 엔진 인테이크로 직접 돌진하는 경우는 드물다. 회전하는 로터 주변으로 새가 날아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진 인테이크로 들어가는 고정익 항공기의 버드 스트라이크와 달리 회전하는 로터에 부딪힌 새를 포함한 외부 물체의 충격 가능성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는 엔진 인테이크로 빨려들어간 FOD를 찾아내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초의 리어드라이브 설계인 수리온은 엔진 인테이크가 메인로터보다 앞에 장착되어있다. 이 때문에 인테이크 내부로 FOD 등이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인테이크 부분이 전면에 노출된 구조의 헬기에서 이 부분에 보호망 등을 씌워 이물질의 유입을 막는 경우도 있다. 수리온은 노출된 인테이크를 가지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시험비행 중인 수리온. 사진=위키미디어   KAI 비난하기 전에 정확한 원인 규명이 먼저, 턱없이 짧은 제작기간 요구한 정부도 문제 결과적으로 이번 마린온 사고를 두고 여론은 여러가지 추론과 주장을 하고 있다. 일단 국방기술품질원 배제가 논란이다. 노르웨이의 수퍼푸마 사고전례 등에서도 보았듯이 사고와 연관된 모든 기관이 조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사고 조사결과를 의도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며,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를 포함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방기술품질원의 본래 역할은 방위사업청 출연기관으로서 국방과학기술의 조사와 분석을 주 임무로 담당하는 기관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개발중인 모든 국방제품의 하자 등을 분석하는게 설립의 이유다.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국과기를 배제하고 마치 사고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방기술분야의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고, 수리온의 제작과정 등을 타 기관대비 잘 알고 있는 국과기를 무조건 밀어내는 것은 타 국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없는 행태다. 마린온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탑승자들은 분명 안타깝지만, 순간의 감정이 이성적으로 분석되어야할 조사까지도 영향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고로 인해 마린온의 제작사인 KAI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린온이 국내기술로 제작된 것은 맞지만 엄연히 EC225라는 원형이 존재하는 기체다. 또한 핵심부품의 제작은 모두 미국산 엔진과 유럽산 트랜스미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고와 연관이 깊다. 이런 마당에 섣불리 KAI를 공격하는 것은 맞지않는 처사다. 더군다나 메인로터가 동체에서 분리되는 형태로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는 보기드문 형태의 헬기 사고다. 따라서 파워트레인 제작과 관련된 엔진 및 미션 제조사와 함께 문제를 분석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산 헬기 제작 전례가 없는 KAI에게 단 6년만에 국산 헬기를 만들라는 주문을 한 정부도 분명 이번 사고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김수련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함께 살다가 처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이건 놀라운 체험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 아띠와 레오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온다. 그리고 저 멀리서 고양이 꼬미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온다.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녀석들을 안으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 자태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그 느린 우아한 발걸음.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강아지를 안고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런데 아쉽다. 꼬미도 안고 싶은데 언제나 그냥 도망가 버린다. 가끔 부엌에 서 있으면 자신의 털을 내 다리에 살짝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나마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런 꼬미가 강아지들과 서식하면서 조금씩 개냥이(개+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내가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들과 함께 뛰어나오는 것을 보기도 한다. 고양이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걸까?너무도 다른 강아지와 고양이의 태도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원한 것은 개냥이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강아지가 때로는 귀찮으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는 고양이는 늘 서운하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가까우면 버겁고, 멀면 서운하다.그들을 보고 있으면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가 떠오른다.어느 추운 겨울날, 많은 고슴도치가 체온을 유지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을 느껴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렀고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 Parerga and Paralipomena》 중에서고슴도치 가시 길이만큼의 거리.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으면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걸 반복한다. 외로워서 함께하지만, 함께 있으면 ‘자아(ego)’라는 이름의 가시로 서로를 찌른다. 에고가 강할수록 ‘나’와 ‘너’가 대립하고 마찰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 것이다. 그래서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서 겪을지도 모른다. ‘나’를 강조하면 결국 ‘나’와 ‘너’만이 남고,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자와 마찰이 잦을수록 그의 자아는 더욱 공고해진다. 그만큼 관계에서 오는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어지게 된다. 물론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나’를 주장하는 것이 옅어지면 ‘너’를 받아들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렇게 되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짧아질지도 모른다.꼬미가 개냥이가 되어가는 일. 자신과 다른 강아지의 몸짓언어를 이제 이해한다. 막내 레오가 반갑다며 같이 놀자고 엉덩이를 치세우며 몸을 낮췄을 때, 그것이 고양이의 언어로 공격 자세라고 생각하며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했지만, 이제 각기 다른 객체의 몸짓언어를 익히고 타인을 받아들이면서 경계를 늦추고 조금씩 다가온다. 그렇게 ‘나’를 통해서 ‘너’를 읽는 것이 아니라, ‘너’를 ‘너’로 읽으며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인간도 ‘나’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끊임없이 찔리고 상처받아야만 ‘너’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 속에서 ‘우리’가 되어가는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나가는 일일 것이다.조금만 더 그 가시를 줄이자.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그 온기가 각자의 가시를 뭉툭하게 만들어 찔러도 아프지 않도록.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은열

영국 역사학자 겸 작가 폴 존슨이 쓴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주영사)를 읽다 한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1946년에 17살이던 나는 운 좋게도 처칠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가 있었다. 처칠 아저씨, 아저씨의 성공 비결이 뭔가요? 처칠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에너지 보존이지. 앉을 수 있을 때 절대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을 때 절대 앉지 않는 거란다.”(39~40p) 잠깐 멍했고 이내 풋, 웃음이 났다. 그러곤 아끼는 펜 한 자루를 꺼내 진하게 밑줄을 쳤다.요령부득, 내달리기 바빴던 얼치기 시절신문사에 다닐 때 업무 성격도, 강도도 낯선 부서로 발령이 났다. 덜컥 겁이 났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까짓것, 다 사람 하는 일인데 나라고 못 할 것 없잖아? 일단 부딪쳐보지, 뭐!’ 이후 한동안 악전고투의 시간이 이어졌다. 꾀와 요령이 무슨 말이냐는 듯 종종거리며 아이템을 발제했고, 일단 통과된 아이템은 어떻게든 데드라인을 지켜 송고했다. 퇴고할 땐 조사 하나 구두점 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켰으며, 원고를 보낸 후엔 숨 돌릴 틈 없이 그다음 아이템을 고민했다. 마감 직후 우르르 몰려가는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단 착석한 후엔 권하는 이 하나 없어도 성실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러면서 내심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만하면 너무 잘 해내고 있는 것 아냐?’사달이 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다. 회사에서 1년에 한 번 시켜주는 정기 건강검진차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몸 어딘가에 혹이 있고, 심지어 계속 자라고 있으며, 개복(開腹) 수술이 유일한 제거법이란 사실이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현실 부정과 분노 폭발, 자포자기 단계를 거쳐 결국 40여 일간의 병가(病暇)를 받아 들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입사 후 최장 휴가’를 거지반 병원과 이불 속에서 보냈다.퇴원 후 한동안 고향 부모님 댁에 내려가 지냈다. 매일 아침 ‘엄마표 집밥’으로 속을 채웠고 ‘허해진 몸 보(補)하는 데 최고’라는 보양식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걸을 만하면 아버지와 길지 않은 동네 산책을 다녀왔고, 수술 부위가 당겨 움직이기 힘들면 오래 찜(만) 해놨던 책을 몇 권씩 쌓아놓고 뒤적였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내처 잤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긴 날도 적지 않았다.‘에너지 수도꼭지’ 틀고 잠글 때 알아야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스물다섯 넘으면 웬만해선 안 바뀐다고.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뜻밖의 긴 휴가 후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곤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긴 했다. 일단 야근과 술을 줄였다. 일 없이도 불쑥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쭸다. 바쁘단 이유로 소홀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일부(이긴 하지만) 복원했다. 아무 약속 없는 평일, 아무 계획 없는 주말을 조바심내지 않고 의연하게 맞았다.인간이 평생 쓸 에너지는 유한하다, 고 이제야 생각한다. 살아보니 하루에 쓸 에너지와 1년간 쓸 에너지, 10년에 걸쳐 쓸 에너지가 얼마쯤은 정해져 있었다. 효율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르고 20대 후반의 나, 30대 초반의 나는 내 안의 에너지가 화수분이라도 되는 양 마구 퍼 썼다.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내달렸고 기어이(어쩌면 당연히도!) 탈이 났다. 그러고도 한참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1874년생인 처칠은 92세까지 살았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앉을 수 있을 때 절대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을 때 절대 앉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걸 싫어했지만 살아생전 그가 남긴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노벨문학상이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였고,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 국회를 감동시킨 연설가였다. 10년 넘게 야인으로 떠돌면서도, 좌절할 시간을 쪼개어 아끼는 샴페인과 시가(cigar)를 즐기며 자신이 평생 머물 저택을 손수 짓고 수리했다. 그의 말마따나 에너지 보존의 위력이다.만약 당신이 ‘갓 입사해 이제 막 일의 재미를 알아가는’ 직장인 초년생이라면 내 40일 병가 후기나 처칠의 에너지 보존 법칙 따위,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해한다. 나 역시 직접 맞닥뜨리기 전까진 도무지 와 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은 전부인 듯 보이는 회사 생활도 인생 전체를 놓고 따지면 일부에 불과하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 살다 보면 본인 건강이나 배우자 상황, 자녀 교육 등 생각지 못했던 변수의 등장으로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당신이 지닌 에너지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러니 남은 기간, 소진 계획을 최대한 면밀히 세울 필요가 있다. ‘내 에너지’가 나오는 수도꼭지의 개폐 시점과 횟수를 현명하게 판단, 결정해야 한단 얘기다.오래, 잘 사는 지름길? ‘내 한계’ 깨닫기“힘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힘은 낸다고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슬프다고?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자신이 보유한 힘의 유한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지혜롭게 써야 오래, 그리고 잘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칼럼을 읽느라 소비한 당신의 에너지가 모쪼록 아깝지 않았길.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김주덕

사랑을 하든, 연애를 하든, 사랑이 식어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다면 쿨하게 헤어져라. 그렇지 않고 어느 일방이 집착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A는 B와 연애를 했다. 2년간 연애를 했는데, 둘 사이가 시들해졌다. B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A가 특별한 매력도 없고, 사회적 능력도 없어서다. 그러나 A는 여전히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고 B가 없으면 못 사는 그 정도도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연락을 끊은 B의 태도에 화가 났다.   B는 귀찮게 생각해서 A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A는 계속해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다. 나중에는 B가 A의 전화에 대해 수신 거절, 차단 조치를 해놓자 이메일로 협박성 글을 썼다. 음성메시지로도 남겼다.   그래도 B가 일체 응답을 하지 않자, A는 공중전화로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B를 만나러 일부러 집 근처로 찾아가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B는 A를 상대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A의 의도는 단지 약이 올라서, 화가 나서 B에게 따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B의 자유의사에 반해서 만남을 강요하고,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할 듯한 언행을 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는 이유로 조사를 해서 처벌하려고 한다.   A에게 적용될 처벌법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요죄, 협박죄, 원치 않는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반복해서 범한 죄. 미행행위 처벌조항 등이다.   물론 A는 억울할 수 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충분히 이별의 사유를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A의 사정이다. B는 다르다. 싫어서 그만두는데 왜 꼭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전과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종전에는 남자가 여자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면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끈기를 가지고 어렵게 사랑을 성취한 성공사례라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개인의 완전한 자유보장,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장, 강요행위의 금지, 불법적인 수단에 의한 사랑의 쟁취금지 등이 광범위하게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과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쿨하게 헤어져라. 남자가 싫다고 하면 그냥 떠나라. 상대방에게 미련을 갖지 마라. 싫다는 사람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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