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덕

건강한 사랑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사랑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삶의 본질적인 요소다.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행복을 주고 불행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현실에 있어 사랑은 구체적으로 따지고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그 이유는 사랑을 잘 모르고 사랑에 빠져서는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함부로 사랑했다가는 인생을 망칠 수 있다. 한 사람을 잘못 만나면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다가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사랑에는 많은 함정이 있고, 덫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정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공짜로 좋은 사랑을 얻으려고만 한다. 더군다나 사랑의 가변성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상대성, 제3자의 침투가능성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일단 사랑하면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고, 결혼하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줄 착각한다. 상대에 대한 인격적 배려 없이 달라들었다가 성범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사랑을 돈으로 사려는 무모한 행동은 성매매사범으로 망신을 당하게 된다. 사랑을 육체적으로만 시도하는 사람들은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고, 성병에 걸려 고생을 한다.   기존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성문화와 성도덕에서 해방된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는 성적 무질서와 성적 일탈현상이 상당히 심화된 듯하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편으로는 성에 관한 법적, 사회적 규제가 엄격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성에 대해 관대하고, 성에 관한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만, 반면에 사랑이나 성에 있어서는 능력 있는 사람과 능력 없는 사람 사이에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사랑과 성에 있어서 능력 있는 사람은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와 같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능력 없는 사람은 사랑과 성의 상대를 전혀 구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매매현상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종래와 같은 눈에 보이는 공창제도는 사라졌지만,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은밀한 성매매는 순식간에 성매매시장을 장악해버렸다.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에이즈에 무방비상태가 되고, 수많은 범죄인을 양산하고 있다. 성매매로 인한 수익은 대부분 소득세를 내지 않고 탈세로 끝이 난다. 젊은 여성들이 힘들게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성을 팔고 있는 것도 커다란 사회적 문제다.   이처럼 사랑의 병리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결혼은 줄어들고, 이혼은 크게 늘고 있다. 이혼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와 가정의 붕괴현상이 심각한 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하는 일이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성에 관한 수요와 공급이 엄청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성을 규제하는 법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엄격하게 제정하거나 개정하고 법만 집행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사랑과 성에 관한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성매매사범만 단속하고, 성범죄자에 대해서도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엄하게 형사처벌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혼전 사랑이 깨지지 않도록 한다든가. 결혼할 때도 완전히 두 사람에게만 맡긴다든가. 결혼생활이 원만하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다.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제는 개인의 사랑과 성에 관해서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하고, 건강한 성문화가 정착하고, 사랑이 완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주덕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한다. 상대방에 집착한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왜 집착하고 소유하려고 하는가? 그건 사랑의 본질에서 유래되는 속성이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하고 가변성이 있는 실존이다. 그래서 두 실존이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애정관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여자와 남자 모두 이런 점에서 똑같다. 일단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에게 집중하게 되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자에게는 모든 다른 남자가 적이 되고, 여자에게는 모든 다른 여자가 적이 된다.   적이란 눈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의심스러운 존재가 나타나면 일단 경계태세를 갖추고 암구호를 던져 동지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거부하고 배척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군대에서는 일단 발포하여 사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동지와 조직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가 조심해야 한다. 공연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해하고 예상치 못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애정관계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자신 혼자만이 들어가 있기를 바란다. 상대방이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있기를 소망한다. 그게 사랑이다. 만인의 연인이고 만인의 애인인 사람은 바람둥이에 불과하다. 사랑이 아니라 한낱 유희에 불과한 게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질투심을 느끼게 하지 말라. 상처를 주지 말라. 그 사람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빗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을 느껴라. 비가 올 때 해가 함께 뜨지 않는 법이다.

우태영

요즘 사람들은 멘탈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멘탈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나누는가 하면, 멘탈이 강해지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음은 심리학자 에이미 모린이 정리한 멘탈이 강한 사람을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 13가지. 온라인에서 무려 3,200여만 명이 공유한 내용이다.   1. 자기연민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일이 없다. 모린은 “자기연민은 자기파괴”라며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 어렵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또 자기연민은 시간낭비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고 대인관계를 망친다. “세상에서 선의를 확인하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된다”고 모린은 강조한다. 자기연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2. 자신의 능력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체적, 감정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자기자신에 맞서서 한계를 거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통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성공과 가치를 규정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며 목표달성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린은 자신의 능력을 철저하게 관리 통제한 사람으로 오프라 윈프리를 꼽았다. 가난하게 자라면서 성적인 학대를 받았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를 선택했다.”   3. 변화를 피하지 않는다.   변화를 대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 사전숙고, 숙고, 준비, 행동, 유지 등이다. 각각의 단계를 완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변화하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변화를 피하면 성장할 수 없다. 오래 기다릴수록 변화를 이루기는 어렵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보다 더 빨리 성장한다.   4,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모든 사안을 통제할 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모든 사안을 통제할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은 모든 걱정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걱정을 해결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주위 상황을 통제하려 노력하는 게 낫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끊으면, 행복은 늘어나고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새로운 기회도 늘어나고, 더 많는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된다.    5.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두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멘탈이 약한 사람들의 버릇이다.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 시간낭비이다. 둘째, 다른사람들에 의해 쉽게 조종된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데 관대하다. 그리고 넷째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는 없다. 타인을 즐겁게 만들려는 마음가짐을 버리면, 멘탈이 강해지고 자기확신도 강해진다.   6. 계산된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위험이든 감수하기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지식의 문제이다. 리스크를 계산해내는 방법을 모르면 두려움은 커진다. 위험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고 답해야 한다.   - 잠재적인 비용은 얼마나 되는가?- 잠재적인 이익은 얼마나 되는가?- 내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다른 대안은 있는가?- 최선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어떻게 좋은가?- 최악의 상황은 무엇이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위험성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면 얼마나 나쁜가?  - 5년 이내에 이번 결정은 얼마나 중요한가?   7.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에 안주하는 것은 자기파괴이며,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 과거만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고, 우울해진다.   과거를 생각할 때에는 지나간 일에서 얻은 교훈을 생각하고,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사실에 대해 숙고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8.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생각을 깊이 하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는가,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는가 등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책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방지하게 위한 사려깊은 기획서를 작성한다.   9.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마음 속에 꼭꼭 숨겨져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배아파 한다고 자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야할 길에 혼선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항상 배아파 한다면, 아무리 성공해도 만족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 가치, 대인관계도 놓치게 된다.   10.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성공은 일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패란 거의 항상 누구나가 극복해야만 하는 장애물이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실패를 저지른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멘탈이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실패 후에 일어서는 사람들은 훨씬 더 강해진다고 모린은 강조한다.        11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멘탈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업무에서 벗어나 성장을 위하여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고독이 주는 잇점은 다음과 같다.   - 사무실에서 혼자 있으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공감능력이 강화된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창의성이 증강된다. - 고독은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 - 고독은 정신적 회복을 제공한다.   12.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실패를 하거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때 세상을 향하여 분노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진실은 그 누구도 날 때부터 어떤 것을 성공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성공은 사람이 획득하는 것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더 많은 행복과 성공을 누린다 하여도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중요한 것은 더욱 노력하고, 비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지는 말라. 자기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13. 성급하게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기대수준을 현실적으로 조절하고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조급하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변화가 일어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를 무시한다.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당장 결과를 가져오라고 재촉한다.   장기적인 목표를 행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실패도 있겠지만, 큰 그림을 보면서 진행과정을 평가하면, 성공에 다다르게 된다.

김주덕

무작정 사랑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고민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수 있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을 사로잡으면, 그냥 그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에 빠진다.   그런 방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랑을 하면 대부분 실패하고, 사람을 잘못 선택하고, 오래 가지 않아 헤어진다. 사랑 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의심증 환자로 몰리기까지 한다. 결혼했다가 이혼한다.   그것은 사랑을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공부보다 어렵다. 운동 선수가 되는 것보다 지난한 일이다. 공부나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것도 혼자 하는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대부분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언제나 두 사람이 한다. 혼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짝사랑이나 스토킹 같은 이상한 행동이고,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다.   사랑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많은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계획서의 타당성, 실행가능성, 성공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러한 사랑의 계획(love Plan)에 따라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실행의 중간 중간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성과분석을 해야 한다.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아니면 도중에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실패한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계획을 수정보완해서 다시 재도전할 것인지 분명하게 결정하여야 한다. 사랑에 성공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 사랑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어떻게 아름답게 관리하고 멋있는 사랑의 금자탑을 세울 것인지 고민하여야 한다.   모든 사업을 할 때는 매우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중요한 사업은 절대로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없다.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수없이 뜯어고치고,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친다.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수시로 중간 중간 성과분석을 하고 궤도를 재수정한다. 그런 사람만이 사업에 성공한다. 전쟁을 할 때도 전략을 잘 세워야 승리한다.   이런 이야기가 매우 우습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지 않고 무대포로 사랑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거의 100% 실패한다. 첫사랑부터 실패하고, 잘못하면 성범죄자로 고소나 당할 위험이 있다. 결혼사기를 당해 고통을 받는다.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는 어려운 상대를 옛날 방식으로 육체를 정복해서 결혼했다가 몇 년 안에 쫓겨난다. 사랑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고, 아무 준비나 계획도 없는 사람은 그냥 편한 사랑, 맞지 않지만 성관계나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인생이 불행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사랑을 얻어도 곧 상대가 바람이 나서 배신을 당하거나 의처증과 의부증에 빠져 우울증에 걸린다.   사랑의 계획서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들어가야 한다. ① 자신의 나이, 환경 및 객관적 조건의 분석, ② 대상자의 나이, 환경 및 조건, 외모, 가정환경, 학력, 재산정도 등의 파악, ③ 상대의 성격, 취미, 지적 수준 등의 파악, ④ 상대의 종교, 건강상태 등 파악, ⑤ 어떻게 프로포즈를 할 것인지 연구, ⑥ 데이트 비용에 드는 자금의 규모 및 조달 방법 연구, ⑦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인지 여부, ⑧ 성관계를 할 것인지 여부, 성관계의 시기 결정, ⑨ 상대의 태도 파악 및 변화 시 대응방안, ⑩ 결혼을 추진하는 경우 구체적인 방안, ⑪ 본인이 헤어지려고 할 때의 방법, ⑫ 상대가 변심했을 때의 대응방안 등을 충분히 검토해서 계획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계획서가 작성되면 구체적인 실행과정을 기록하고, 문제점을 기재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랑을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대하면 훨씬 시행착오를 적게 겪는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불행해지나 사랑에 실패하는 확률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어진다.   더 나아가 결혼을 할 때에도 부부는 이런 저런 두 사람의 합의를 서면으로 적어 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이혼을 할 가능성이 적어질 것이다.

엄상익

 얼마 전 있었던 사건이다. 벤처 기업의 사장이 사기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됐다. 감옥을 찾아간 내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를 고소한 회장이 경고했어요. 최고의 로펌을 사서 너를 감옥에 쳐 넣겠다구요.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 두고 보라고 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그는 법의 추악한 이면을 보았다는 듯 허탈한 표정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40년 가까이 법의 밥을 먹고 살아왔다. 특정인을 법으로 파괴시켜 달라는 청부가 흔했다. 검사 출신이 많은 대형로펌이 재미를 보는 사건이었다. 그런 청부 사건은 정치권이나 기업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한 대형교회의 분쟁에서 목사의 사회적 생명을 법으로 죽여주는데 거액의 보수가 약속된 걸 보기도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검사에게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절벽 같았어요. 사기꾼이라는 범죄 프레임에 나를 강제로 우겨넣는 것 같았어요.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면 묵살해 버렸어요. 뒤에서 저를 죽이기 위한 어떤 거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회사에서 일해오던 기술이사가 갑자기 검찰과 법원에 나타나 제 등에 칼을 꽂았어요. 제가 사기꾼이라는 거죠. 뒤늦게 알았는데 저를 고소한 기업 회장님을 여러 번 만났어요. 그쪽에 증인으로 포섭당한 것 같아요”    재판에서 증인들은 캐스팅된 배우 같았다. 거액의 출연료나 좋은 자리가 뒤에서 대가로 거래되기도 했다.    “법원에서는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최종적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건 법원이다.    “정말 이상했어요. 저는 그래도 삼십 년 이상을 첨단과학 기술을 연구한 학자로서 또 공과대학 교수로 살았습니다. 제가 사기꾼인가 아닌가 보려면 제 특허기술이 이용된 시판되는 전자제품을 확인하면 됩니다. 학회나 제가 기계를 납품한 재벌기업에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판사들은 수사기록만 보고 저는 기술이 하나도 없는 사기꾼이라는 거예요. 판사들은 진실이 안보이고 검사가 쓴 삼류 소설 같은 기록만 보이나 봐요.”    그의 가족은 일심법원의 판결문을 공과대학 교수들에게 돌리며 호소했다. 과학자인 교수들이 분노했다. 어떻게 비전문가의 말만 듣고 한 과학자의 삶을 그렇게 뭉개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정서를 써가지고 법정에 교수들이 찾아갔다. 항소심 법정에 증인을 서겠다는 과학자들이 줄을 섰다. 마침내 그는 무죄로 석방이 됐다.     지위가 있는 사람도 이렇게 법의 그물에 걸릴 때가 많았다. 사회적 약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짜장면 배달 소년을 살인범으로 만든 ‘약촌 오거리사건’이 그 예다. 살인현장을 지나갔다는 이유로 한 소년이 십년간 징역을 살았다. 도중에 진범이 잡혔는데도 수사기관은 의도적으로 묵살했다. 법원은 시신의 상처와 증거로 제출된 칼끝의 형태만 비교해 보았어도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다. 당연히 확인해야 할 걸 하지 않았다. 판사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의심으로 가득 찬 기록만 본다.     범죄는 논리가 아닐 때가 많다. 그런데 법원은 논리라는 자를 가지고 들이댄다. 판례라는 형틀을 통해서 기록만 본다. 그래서 판사들은 법이 보는 진실과 실체적 진실이 다르다고 한다. 그건 오판이 많다는 사실을 호도하는 위선이다. 생사람을 잡으면 법원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조갑제(趙甲濟)

에스토니아호 / 위키백과발틱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선사(船社) 소속의 The Estonia(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건은 1994년 9월28일 발틱해에서 일어났다. 자체무게가 2800톤이고 길이 156, 너비 28미터의 페리船(선)이었다. 무게는 작지만 크기는 세월호와 비슷하였다. 803명의 승객과 186명의 선원을 합쳐서 989명이 승선했다. 배는 9월27일 저녁 7시에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출발,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배는 화물을 적재 허용량까지 가득 실었다.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항해했는데, 화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거셌다. 초속 15~25 미터에 파고(波高)는 4~6 미터나 되었지만 출항 금지를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페리들도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발틱海는 늘 2000척 정도의 배가 떠 있는 분주한 곳이다. 새벽 1시쯤 금속이 선수(船首)의 문을 치는 소리가 났다. 10분 동안 소리가 계속 나더니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선수 쪽 문이 열리고 물이 들어와 자동차가 주차해 있던 갑판을 덮었다. 1시15분, 배는 처음엔 오른쪽으로 30~40도 기울었다가, 1시30분엔 90도로 기울었다. 에스토니아호는 왼쪽으로 돌다가 네 개의 엔진이 꺼지면서 멈추었다.   1시20분, 선내(船內) 방송으로 여자 목소리가 “비상, 비상, 비상”이라고 소리쳤다. 선원들에게도 비상벨이 울리고, 구명정을 타라는 경보도 울렸다. 배가 너무 기울어 승선자들은 구명정이 있는 갑판으로 올라가기 힘들었다. 이것도 세월호와 비슷한 점이다. 1시22분, 선원이 구조신호를 발신했다. 너무 서둘렀는지 국제구조 신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호는 발틱해를 항해하는 실자 유로파 호를 불렀다. 에스토니아호는, ‘메이데이(긴급상황)’라고 했다. 유로파 호의 1등 항해사는 영어로 “에스토니아, 긴급상황인가?”라고 되물었다. 에스토니아호의 교신자가 바뀌더니 핀란드 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하다가 정전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자 에스토니아호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에스토니아호는 1시50분에 다른 선박의 레이다에서 사라졌다. 수심은 약 80미터. 기울기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만에 전복, 침몰한 것이다.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지 22분이 지난 2시12분에 마리엘라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배는 구명벌을 바다로 던졌다. 에스토니아호의 구명벌에 타고 있던 탈출자 13명이 던져진 구명벌에 옮겨탔다. 이들은 다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어디 있는지를 알렸다. 마리엘라호는 에스토니아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떠 있는 위치를 스웨덴과 핀란드 헬리콥터들에 알렸다. 스웨덴 헬기는 승선객들이 탈출을 시작한 지 90분 뒤에 날아와 생존자들을 육지로 옮겼다(세월호의 경우는 신고를 받고 30분 만에 해경 헬기가 도착했다). 핀란드 헬기 두 대는 구조하러 온 다른 페리호에 내렸다. 한밤중에 아주 위험한 착륙이었다. 이 헬기는 44명을 구조했다. 이사벨라호는 구조 슬라이드를 내려 16명을 살렸다.   989명의 승선자중 137명이 구조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죽었다. 배가 건진 이들이 34명, 헬기가 구조한 인원은 104명. 852명이 죽었는데, 93구(軀)의 시신은 33일 안에 수습되었다. 배를 탈출한 이들중 반이 구조되었다. 상당수는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저(低)체온증으로 죽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온은 맹골수로와 비슷한 섭씨 10~11도였다. 젊은 남자들이 많이 살았다. 55세 이상 중엔 7명만 살았다. 12세 이하에선 한 명도 없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310명의 승선자들이 외부 갑판으로 올라왔으며, 그중 160명은 구명벌과 구명정에 탔다고 계산하였다. 이들이 주로 구조된 것이다. 757명의 실종자 중 650명은 배 안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월호도 그러했지만 배가 급하게 기울면 배 안에서 이동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고의 主원인은, 선수에 있는 門의 잠금장치가 파도를 맞고 이탈하면서 문이 열려 물이 주차 공간 안으로 들어와 배를 기울게 하였다는 점으로 확인되었다. 문에 이상이 생겨도 조타실(브릿지)에선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선원들은 비상벨을 너무 늦게 눌렀다. 승객들을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페리의 주차 데크로 일단 물이 들어오면 물이 표면을 쓸고 다니면서 배의 복원성을 약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침몰한 에스토니아 호를 인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시신(屍身)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水域(수역)으로 설정했다. 수년 전 독일 함부르그의 유체역학(力學) 연구소와 함부르그 기술대학의 연구팀은 에스토니아호의 침몰 과정을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연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토니아호의 승선자들은 약 40분간의 탈출 가능 시간대가 있었다. 선수 문짝이 떨어져 나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서 전복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국제해사(海事)기구의 규정대로라면 선실(船室)에서 갑판으로 다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여 실험 결과는 승선자 989명중 278명만이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 이유는 배가 일단 기울면 탈출로는 사람이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급해진다든지 쏟아져 내린 물건이 막는다든지 하는 이유에서였다. 넘어가는 선체(船體)에선 구명정을 제대로 내릴 수가 없음도 확인되었다. 기울어져가는 에스토니아號는 일종의 관(棺)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서 많은 승선자들이 갑판으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김주덕

이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년도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 이혼 건수는 전년보다 1.2% 감소한 10만6천 건이라고 한다. 다만, 황혼 부부의 이혼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가 이혼한 경우는 3만3100건이나 된다.   이혼은 어쨌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혼인관계에 관해 법률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이혼할 수밖에 없는데, 이혼할 때 법적인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 주된 질문사항이다.   변호사인 나로서는 답변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직 법적인 문제에 국한해서 답변해야 한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꼭 이혼해야 하는가?’ ‘이혼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자녀들 생각을 해서라도 이혼은 하지 않는게 어떤가?’ 등등의 대화를 하는 것을 상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법으로만 따지면 이혼절차는 아주 간단하다. ① 이혼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 ② 협의이혼의 절차, ③ 재판으로 하는 강제이혼의 절차 및 방법, ④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 지정, ⑤ 위자료 지급 책임 및 금액, ⑥ 재산분할의 비율 및 방법, ⑦ 재판에 관한 증거자료 수집방법, ⑦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 등등의 문제를 주로 상의한다.   많은 경우 이미 부부 간에 사이가 나빠지고 골이 너무 깊어져서 이혼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일방으로부터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소송을 해보면 한쪽 이야기만 듣고 있다가, 상대가 써낸 준비서면을 보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부부 사이의 입장은 너무 다르고, 각자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혼을 생각하면, 우리 자녀들이 결혼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결혼하면 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살면서 서로 이해하고 참고 타협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녀에 대한 인간적인 책임은 무엇인지, 이혼한 다음 어떻게 될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자녀들에게, ① 배우자의 선택의 중요성 및 선택 방법, ② 혼인생활에서 각자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의 중요성, ③ 어떤 경우이든 이혼은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의 인식, ④ 부득이 이혼할 때에는 쿨하게 빨리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⑤ 이혼 후에도 자녀양육 등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김주덕

망각된 사랑의 회복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겹쳐지는 경계선에는 항상 슬픈 추억이 자리잡고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 다음에 밀려오는 현실의 행복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있는 삶에는 언제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은 과거의 사랑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의 모순이고 불행이다.   떠나간 사랑을 회복하는 것!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감정을 다시 뜨겁게 사랑의 불을 지피는 것은 어렵다. 떠난 사랑은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것이 떠난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여기가 마침 시간이 정지해 버린 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12쪽에서 -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사랑 때문에 인생을 망치기는 것일까? 인간에게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랑은 과연 오래 가는 것일까?   일시적인 욕망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을 성적 관계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단계에서는 사랑의 의미가 왜곡된다. 사랑은 성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서로에 대한 이해, 관심과 배려, 위로를 하면서 용기를 나누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 사랑을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가? 추상적인 사랑의 기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사랑의 예술을 학습해 나가야 한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다. 상대방과의 일치를 위해, 완전한 합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거부감을 소멸시켜 준다. 그래서 물들어가는 것이다.

조갑제(趙甲濟)

2014년 8월 17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옆 북측 개성공단 총국사무소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마중 나온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2000년과 2007년 열린 평양 회담 주역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단과의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원로자문단 좌장을 맡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은 현 정부 對北정책 기조가 김대중 정부의 對北정책과 “같은 맥락”이라고 평가했다. 임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그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는 지난날 김대중 정부가 화해 협력 정책을 통해서 남북이 평화 공존하며 서로 오고 가고 돕고 나누며, 정치적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는 통일이 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 사항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장 시절 對北(대북)불법송금 사건에 가담,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국정원 직원으로 하여금 수억 달러를 보내도록 시켰던 임동원 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이 核(핵)의혹을 조작, 제네바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미국이 北의 우라늄 농축 의혹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이 스스로 '우리가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국측에 자백하였던 것인데, 임 씨는 김정일보다 더 김정일을 편든 것이다. 前 미국 유엔 대사 볼튼씨는 그를 '북한정권의 진짜 변명가'라고 불렀다.       존 볼튼은 미국 부시 정부 시절 국무부의 군축 담당 차관보 및 유엔대사를 지냈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안보리의 對北제재를 이끌어낸 사람이다. 사치품의 對北수출을 금지시키면서 그가 한 말은 "김정일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였다.       그가 2007년 11월에 쓴 회고록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엔 2002년 가을에 있었던, 북한정권의 불법적인 우라늄 농축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해 여름 북한이 파키스탄 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確證(확증)을 잡았다. 2002년 10월3일, 이 증거를 가지고 訪北(방북)한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추궁에 북한의 외교부 副相(부상) 김계관은 "反北세력의 조작"이라고 반박하였다. 다음날 강석주 제1副相은 켈리 특사에게 폭탄 선언을 하였다. 그 요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惡(악)의 軸(축)'이라 부른 데 대한 직접적인 조치라는 것이었다.       강석주는 미리 정리한 내용을 읽어가면서 "이는 黨(당)과 정부의 입장에 의거한 것이다"고 몇 차례 강조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미국 관리 8명은 대화록의 정확성을 확인한 뒤 워싱턴으로 보고하였다. 나중에 한국과 미국에선 북한정권이 자신들의 불법활동을 인정할 리가 없다면서 이는 통역의 잘못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등장한다.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한 북한은 제네바 합의가 금지한 불법활동을 자백한 것이 되어 합의를 깬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위 햇볕정책의 실무책임자였던 임동원은 회고록에서 "미국이 核의혹을 조작,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고 거짓말하였다. 북한정권의 자백이 제네바 합의 파기로 이어진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 것이다.       켈리 팀은 평양에서 서울로 와서 한국측에 訪北 결과를 설명하였다. 임동원은 이들의 설명을 들은 뒤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사람들의 과장되고 격앙된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 우린들 핵무기를 가질 수 없느냐'는 식의 표현이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시인하는 것인지,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북한은 최고당국자와의 회담을 통하여 일괄타결을 바라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미국의 네오콘 강경파들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 첩보를 과장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북한측이 명백하게 우라늄 농축 추진 사실을 인정하였는데도 임동원은 미국을 의심하고 김정일 정권을 감쌌다.       이런 임동원에 대하여 존 볼튼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진짜 북한정권 변명가'(real DPRK apologist)라는 경멸적 표현을 했다. 'apologist'는 변명을 대신해주는 이를 가리킨다. '변호'와 '변명'은 語感(어감)이 다르다. 변호는 억울한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설명하는 것이고, '辨明(변명)'은 '잘못에 대하여 구실을 대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2010년 미국 전문가에게 영변에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공개하였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것 말고도 지하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농축 시설을 갖고 있으며 농축된 우라늄으로 매년 1~2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임동원이 고의든 실수든 정보 판단을 엉터리로 했다는 이야기이다. 고의로 북의 우라늄 농축 정보를 무시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에 작고한 黃長燁(황장엽) 선생의 生前(생전) 증언에 따르면, 199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미국과 한국과 북한 등이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과 그 代價(대가)로 경수로 건설 제공에 합의한 직후 평양 심장부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고 한다.      강석주(북한측 대표): 과거의 核개발이 걱정이었는데 그건 미국의 칼루치가 덮어주기로 하여 해결이 되었습니다.    황장엽: 5년쯤 지나면 과거 核개발을 미국이 사찰하겠다고 할 터인데 어떡하지요.    강석주: 그건 지도자 동지와 토론했습니다. 그때 가서는 우리가 다른 걸 가지고 나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전병호(무기개발 담당 책임 비서가 황장엽 비서에게): 核폐기물을 땅에 파묻어놓았는데 그 위에 아무리 나무를 심어도 말라죽어버립니다. 그 근처에만 가도 계기판이 작동해서 숨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에서 플루토늄을 더 들여와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좀 도와주실 수 없습니까?      1996년에 전병호는 黃長燁 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해결이 되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우라늄 농축 기자재를 수입할 수 있게 합의되었습니다.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의 대화로 미뤄보아 북한정권은 1994년 제네바 협정을 맺을 때부터 다른 카드를 준비중이었던 것 같다. 2011년 北으로 우라늄 농축 기자재를 팔아넘긴 파키스탄의 核개발 책임자 칸 박사가 전병호의 편지를 공개하였다. 편지는 북한이 파키스탄 군부의 두 실력자에게 뇌물을 주었으니 평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편으로 서류와 설비들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黃長燁 선생의 증언과 부합된다. 그런데도 임동원은 미국이 北의 핵 의혹을 조작하였다고 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      국정원이 작년 공개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김만복 : 예 건강합니다.>      김정일이 安否(안부)를 물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正體(정체)에 대하여 전 합참의장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2012년 12월5일 부산역 광장에서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열린 NLL 반역 규탄 집회 때 연사로 나온 金辰浩(김진호) 전 합참의장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세 가지 수상한 행적을 폭로하였다.            임동원 당시 청와대 안보 수석 비서관은 1998년 무렵에 이미 북한군의 입장에 서서 주한미군을 對北억지戰力이 아니라 평화유지군으로 無力化(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뜻이다. 이런 구상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통하여 密約(밀약)으로 굳어진다. 김대중은 이 사실을 숨기고 국민들에게 지금의 주한미군 주둔을 김정일이 양해하였다고 허위 보고하였다.       두 번째 수상한 점에 대하여 김진호 예비역 대장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원래 잠수정은 해저를 통해 은밀히 침투하는 공격용 무기입니다. 북한 잠수정이 우리의 영해에 침범한 ‘잠수정 침투사건’인데 북한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임동원의 思想(사상)의 배경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제 정신인가 분노"      金 전 합참의장은 고 했다.          이 작전의 결과로 우리 해군은 경미한 배 파손과 6명의 경상자가 발생한 반면 북한군은 30명 이상의 사망, 실종자와 경비정 1척 침몰, 경비정 4~5척 대파 및 어뢰정 반 침몰 등 참담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우리 군에는 1953년도 휴전 이래 남북 정규군 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가장 완벽하게 승리한 전투 사례로 기록되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제1차 연평해전으로 인해 局地戰(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 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를 말살하기 위해 미국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핵잠수함의 한반도 戰力전개를 연합사령관과 제가 합의하고 이를 공표하는 등 사태를 진정시켜 나가는 중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던 통일부 장관 임동원이 합참의 서해 연평해전 작전 경과보고를 받으면서 “우리 군이 꼭 그렇게(대응사격으로 敵 경비정을 침몰시킨 것)뿐이 할 수 없었는가?”라고 질책하는 투의 질문을 했었습니다.    敵이 NLL을 침범하고 이를 저지하는 우리 경비정을 향해 선제공격하여 우리 장병이 부상당하고 배가 파손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위권 발동을 위해 대응사격을 한 것인데 “그렇게 뿐이 할 수 없었냐?”라면 우리가 敵의 공격으로 격침이라도 당해야 했단 말입니까? 국가 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NSC 사무처장의 직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제 정신인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利敵행위가 역력"      김진호 장군은 전 국정원장을 利敵(이적)행위자라고 규정하였다.            조갑제닷컴은 김진호 장군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임동원 씨의 반론이나 설명을 들으려고 연락을 취하였으나 응답이 없었다. 임동원 씨는 국정원장이던 시절 현대그룹이 조성한 2억 달러의 불법자금을, 국정원을 시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로 보내게 한 사람이다. 김대중-김정일 사이의 주한미군 중립화 密約(밀약)에도 깊이 간여하였다. 김정일은 그런 사람의 건강을 물은 것이다.        국군포로 송환요구를 '냉전수구세력의 방해'라고 표현       햇볕정책의 핵심 집행자 중 한 사람이고 對北불법송금 사건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는 林東源(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수년 전 '피스메이커'라는 회고록을 썼다. 중앙books에서 나온 이 책의 474 페이지엔 이런 대목이 있다.          당연히 냉전수구세력의 송환반대와 방해가 극심했는데, 이들은 '가치관의 혼란 우려' '북측의 체제선전에 이용당할 우려' 등을 들먹이며 '탈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송환 반대 여론을 조성했다. 7년 전 이인모 노인을 비롯한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반대할 때 들고나온 논리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씨의 용어선택에 문제가 있다. 63명은 비전향 장기수이기도 했지만 북한정권을 위해 복무한 간첩과 빨치산 등이었다. 양심수가 아니었다. '화해의 상징'이란 말도 맞지 않다. 간첩과 빨치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것은 한국과 국민이다. 가해자는 이들과 북한정권이다. 화해는 가해자가 사과함으로써 시작된다.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서비스하는 것은 화해가 아니라 굴종이다. '화해의 상징'이 아니라 '굴종의 상징'이란 말이 정확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분단 피해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면 분단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定義(정의)할 필요가 있다. 임씨는 간첩질과 빨치산 행위를 하여 조국을 뒤엎고 적화혁명을 하려 했던 반역자들을 '분단 피해자'로 보고 있다. 이는 북한정권이나 남한 좌익들의 시각과 비슷하다. 정상적인 국민들중 간첩과 빨치산들을 '분단의 피해자'로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건전한 국민들은 6·25 납북자들, 휴전 이후의 납북어부들,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을 북한정권의 피해자로 본다. 임씨는 이 피해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이들을 '냉전수구세력'이라고 호칭했다. 그는, 간첩 빨치산을 북송하려면 국군포로를 송환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을 한 국민을 '냉전수구세력'이라고 불렀다. 이런 용어사용법은 북한정권이나 남한좌익과 일치한다.        간첩은 동정하고, 국군포로는 외면하고      한편,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 自國民(자국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主敵의 부하들 인권만 챙겨주는 행위를 임씨는 '인권을 존중하는 정부의 성숙한 자세'라고 정의했다. 김정일 편에 선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임동원씨가 '냉전수구세력'이라고 표현한 국민들은 자유와 헌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국자들이다. 임씨는 이 애국자들에 대하여 냉소적인, 아주 감정적 표현을 했다. '들먹이며' '방해가 극심' '고스란히 반복'이라는 말이다. 특히 '들먹이며'라는 단어는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다. 북한이 불법으로 억류하고 있는 국군포로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애국자들을 비아냥거리고 있는 사람이 체제수호 기관의 책임자였다! 좌익들이 쓰는 용어로써 애국자를 비난한 사람이 對共정보수사기관인 국정원의 원장이었다.       임씨가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한 애국자를 비아냥거리려면 최소한 북한으로부터 국군포로를 한 사람이라도 데리고 나왔어야 했다. 김대중 정부와 임동원씨는 김정일한테 국군포로를 돌려달라는 말 자체를 꺼내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북송한 63명 중엔 일본인을 납치해갔던 辛光洙(신광수)라는 거물 공작원도 있었다. 일본 정부는 2002년에 그 2년 전에 북송된 辛光洙를 인터폴을 통하여 국제수배했다. 신광수는 일본인을 납치한 범인임이 밝혀진 유일한 경우이다. 신광수는 안기부 조사에서 김정일로부터 직접 납치 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했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신광수를 일본으로 넘기지 않고 김정일 품안으로 보내준 것은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범행 物證(물증)을 인멸한 셈이다. 김대중, 임동원씨가 양심이 있다면 납치범 신광수를 보내주면서 납치된 일본인을 돌려 달라고 하든지 生死라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 윤리가 아닌가?       임동원씨의 논법에 따르면 납치된 사람은 외면하고 그 납치범을 돌려보낸 행위가 '인권을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의 과시'가 된다. 그는 김정일을 기쁘게 하고 애국자의 가슴에 피 눈물이 흐르게 한 행위를 '인권 존중' '성숙한 자세'라고 미화하는 사람이다.       임동원씨가 국정원장 시절이던 2000년 6월 모 국정원 직원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거액의 不法자금을 보냈다. 간첩 잡는 기관을 간첩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전락시킨 임동원씨는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기소되었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2007년 연말,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갑자기 상고를 취하한 지 나흘 만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의하여 사면복권되었다.         미국이 北의 核의혹 조작했다고 조작한 임동원      북한당국은 2009년 9월 핵폭탄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플루토늄을 무기용으로 재처리중이라고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통고하였다. 그 뒤 미국 전문가 팀을 초청, 영변의 농축시설을 보여주었다.              위의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북한정권의 선전원이든지 조총련이나 從北좌익 인사일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우선 용어가 북한식이다. '네오콘들의 방해책동' '북침의 공포증' '핵의혹 조작' 등의 용어는 대한민국의 건전한 국민이면 절대로 쓰지 않는 낱말이다.       이 글의 필자는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林東源(임동원)씨이다. 이 글은 '피스메이커'라는 그의 회고록에 실려 있다. 북한정권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의 안전을 지켜내는 일의 사령탑격인 국정원장 자리에 북한식 용어를 구사하는 인물을 앉힌 것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었다. 세종재단은 日海(일해)재단의 후신이다. 日海재단은 김정일이 지령한 아웅산 테러로 죽은 17명의 엘리트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성금을 모아 만든 재단이다. 그 재단 이사회가, 사사건건 김정일을 칭찬하고 그의 정책을 옹호하며 미국을 공격하는 林씨를 이사장으로 뽑은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미국이 핵의혹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조작이고 악질적인 모함이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파키스탄의 핵기술자 칸 박사가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과 장비를 넘겨주었다고 시인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무기 개발 계획이 발각됨으로써 제네바 협정이 파기된 것이지 미국이 核의혹을 조작하여 일방적으로 폐기했다는 주장은 엄청난 거짓 선동이다. 더구나 임동원씨가 그렇게 비호하여준 그 북한당국이 스스로 '우리는 우라늄 농축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자백하였고 시설까지 공개하였다. 임동원씨가 인간으로서, 公職者(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회고록을 회수하였어야 했다.       그의 회고록중 이란 대목의 의미는 김대중과 김정일 정권이 反美공조했다는 뜻이다. 敵軍(적군)과 손 잡고 동맹국을 반대하였다고 자랑한다. 林씨는 이를 '우리 민족은 힘을 합쳐'라고 표현했다. 700만 同族(동족)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 정권이 민족반역자인가, '우리 민족'인가? 민족반역자와 손을 잡는 것은 민족공조인가 민족반역공조인가?       이런 사람이니까 김정일이 노무현을 만났을 때 안부를 물은 것 같다.       *임동원 씨의 영향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르몽드와 한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상한 이념의 포로가 되니 진실을 보는 눈이 흐려진 것이다. 

엄상익

 1.      존경하는 검사님.   변호사인 저는 30년간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려놓고 평범한 변호사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 세월을 거쳐 오면서 뇌리에 깊이 각인된 모자(母子)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사건으로 입건되어 검사님 앞에 배당된 백순희와 그 아들입니다. 대략 십오 년 전 일이었을 겁니다. 악덕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모자는 삶의 마지막에 몰려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작은 미용실을 하던 박순희는 사채업자에게 남편의 빚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이단종교에 빠진 남편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단체 속에 들어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모자는 악덕 사채업자에게 쫓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서민에게 주는 고통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대충은 짐작하실 겁니다. 더 이상 미용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는 찜질방을 전전했습니다. 몇푼 가지고 있던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찜질방에서 어린 아들은 라면을 먹이고 엄마는 건빵 한 봉지를 찬 물에 타서 불려 먹었습니다. 모자의 삶은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모자는 마지막에 서울역 앞의 노숙자 센터를 찾아가게 됐습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모자는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모자를 만난 가장의 광기어린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장은 노숙자가 된 아내와 아들의 뺨을 때리며 욕을 했습니다. 감성이 예민해 보이시는 여검사님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가족이라는 게 뭔지를 회의하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의 절벽 꼭대기에 섰던 모자는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약을 사먹고 죽을 돈도 없었습니다. 번개탄을 피워놓고 목숨을 끊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모자는 지난날 기억 속에 있던 퇴계로의 대한극장이 있는 빌딩의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면 실패 없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어린 아들이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마지막으로 미용실 단골손님이던 그 사모님 집을 한번 찾아가 보자. 계시면 도와달라고 해 보자.”    아들의 말에 엄마는 단골손님이던 한 오십대 여자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자식들한테 갔는데 집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아들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돈을 찾아보았습니다. 천원짜리 지폐 세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거면 버스비는 간신히 될 것 같았습니다. 모자는 버스를 타고 단골손님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모자는 골목 안의 그 집 대문에 달린 인터폰의 벨을 눌렀습니다. 다행히도 그 여자는 집에 있었습니다. 전날 미국에서 귀국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십만 원권 수표 한 장을 주머니 속에 살짝 넣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사채업자 문제만 해결되면 내가 미용실 내는 보증금은 빌려 줄께요.”    변호사인 저는 이 무렵 우연히 이들 모자의 사연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채업자를 상대로 법원에 이미 빚이 없다는 채무 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갚은 이자만 해도 원금의 몇배가 넘었습니다. 법정에서도 사채업자의 독기는 대단했습니다. 판사 앞에서도 드러누워 거품을 품으면서 자해행위를 했습니다. 당황한 판사가 법정 경비원을 부르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변호사인 저에게 하는 패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린 모자가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요즈음 같으면 장기(臟器)라도 요구했을 악마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변호인은 이 모자에 대해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 가족으로서의 마음의 연대가 끊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이혼판결을 받아 주었습니다. 가장의 존재 때문에 극빈자에게 국가에서 주는 도움조차 받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작은 미용실을 하면서 모자는 다시 안정을 찾았습니다. 사채업자에게 쫓길 때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들은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청화대학에서 중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아들은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다시 미용실을 차린 엄마에게는 찾아오는 고객들이 이제는 신(神) 같이 보였습니다. 뼈를 깎아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정성으로 대했습니다. 미용실에 점점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몸이 부서져라 미용실 안에서 일만 해 왔습니다. 고객들은 모자에게 밥을 먹게 해 주고 아들의 공부를 하게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미용사인 엄마는 여성들의 피부 마사지로 전문미용 분야를 바꾸었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정성스러운 마사지는 고객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부유층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유층 손님을 받다 보니 운전면허증이 필요했습니다. 요즈음의 고객들은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가서 모셔 와야 하는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운전면허증을 딴 아들이 차를 운전해서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엄마는 틈틈이 운전면허 필기 시험 책을 구해 공부했습니다.      2.     2014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인지 모자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자는 함께 서울 강남의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아들도 가는 길에 1종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등록절차를 밟았습니다. 취업시험을 볼 때 자격증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유리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자는 면허시험장에서 학과교육을 받고 확인증을 받았습니다.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모자는 면허시험장 근처의 작은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된장찌개와 밥을 시켜 놓고 먹으면서 엄마가 아들에게 걱정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마사지 일은 고객들이 낮에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행시험을 치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오십대 쯤의 마르고 얼굴이 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모자의 얘기를 옆에서 들은 듯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강남의 운전면허 시험장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행시험도 어려워요. 직장인들은 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운전면허를 따려고 들 합니다. 하루에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데가 있어요. 알려드릴까요?”    모자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러나 수상했습니다. 시험장 근처에서 배회하는 엉터리 사설학원 수강생을 불법으로 모집하는 삐끼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거 혹시 불법 아니예요?”  박순희가 경계하면서 물었습니다.    “불법이라뇨? 절대 그건 아니죠. 정식으로 인가된 인천의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필기시험과 주행시험을 보고 면허증을 따는 건데 그게 무슨 불법입니까. 다만 지방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아서 하루에 된다는 거죠. 인천에서 일단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중에 서울로 적을 옮기면 됩니다. 서울에서 시험을 치나 인천에서 치나 면허증의 효력은 마찬가지예요. 바쁜 직장인들이 다 이렇게 땁니다.”  그 남자의 말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에서 면허증을 따려면 어떻게 해야죠?”  박순희가 물었습니다.    “여기 쪽지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연락을 하세요. 그러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겁니다. 언제 가실 겁니까?”  남자는 번호가 적힌 쪽지를 한 장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사흘 후쯤 가죠. 저희가 그 분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잘 해주면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돈을 약간 주시면 될 거예요.”     사흘 후 모자는 인천에 있는 면허시험장 근처로 가서 쪽지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 후 반팔 초록색 셔츠로 된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박순희는 시험장 이층에 가서 필기시험을 치렀습니다. 63점으로 합격했다는 통보가 나왔습니다. 박순희는 시험장 일층으로 내려가 절차에 따라 장내 기능시험과 주행시험의 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오자 장내 기능시험에서 통과했습니다. 1종 대형으로 면허를 바꾸려는 아들 김주용은 코스테스트에서 실수 없이 합격했습니다. 그 다음이 주행시험이었습니다.    대기실에 있다가 순서가 되자 박순희는 면허시험장의 차에 탑승했습니다. 동승한 시험관 앞에서 주행을 했습니다. 박순희는 긴장을 한 채 핸들을 잡고 주행코스를 돌았습니다. 주행에서 합격을 하자 시험관은 도장이 찍힌 확인증을 주면서 이제 면허증을 발급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박순희는 안내를 해주었던 초록색 반팔티를 입은 남자에게 식사나 하라고 건물 밖에서 십오만 원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날 있었던 일의 전부입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8년 3월의 어느 날입니다. 박순희씨한테서 변호사인 저에게 핸드폰이 왔습니다.    “경찰서에서 불러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우리가 불법으로 운전면허증을 땄다는 거예요.”  “주행시험을 볼 때 시험관이 봐줬어요?”    “저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주행시험시간이 돼서 차에 올랐는데 워낙 긴장을 해서 핸들을 잡고 차를 움직이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차에 시험관인 사람이 올라탔어요. 나중에 도장이 찍힌 확인증을 줬어요. 그게 다인데 모르겠어요.”  박순희의 대답이었습니다.    “혹시 실수를 했는데 봐주지는 않았어요?”  “긴장해서 운전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모르겠어요.”    변호사인 저는 박순희의 아들 김주용을 바꾸어 달라고 해서 물었습니다.    “주용이, 너는 그날 무슨 테스트를 받았지?”  “코스 테스트를 받았어요. 군대에서 버스도 몰고 그래서 다 통과했어요. 특별히 다른 건 없었어요.”    “담당 경찰관이 무슨 죄라고 하는 말이 없었어?”  “엄마와 제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라고 했어요.”     미세먼지가 안개같이 도심의 빌딩 사이를 가득 채우던 2018년 3월29일 오후 2시경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서부검찰청에 도착했습니다. 일층 민원실에서 변호인 선임계에 날짜도장을 받은 후 검찰청 입구에서 전자출입증을 교환하고 918호 최근영 검사실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수사관에게 선임계를 제출했습니다.    “기록에 잘 편철하겠습니다.”  친절하고 밝은 수사공무원의 태도였습니다. 전에는 종종 검사실에 선임계를 제출해도 직원의 부주의로 그게 도중에 없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검사실의 가운데 최근영 검사님의 명패가 보였습니다.    “박순희와 김주용 사건이 오늘 배당된 것으로 통보가 왔는데 무슨 죄로 입건이 된 겁니까?”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의 사람들은 공무원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뇌물을 먹은 겁니다. 뇌물을 먹고 주행시험에서 감점을 할 걸 하지 않은 거죠.”     3.     변호사인 저는 아직 기록을 보지 못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박순희와 김주용을 통해 그날 있었던 일만 대충 들었을 뿐입니다. 십여 년 동안 박순희 모자를 보아 오면서 그들은 정직한 성격의 사람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피의자가 된 박순희 모자에게 정말 뇌물을 준다는 범죄적 고의나 그게 아니라면 막연하더라도 그런 인식이 있었나 변호인으로서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 사건은 운전면허 시험장 주변의 불법한 조직이 속칭 삐끼를 이용해서 던진 낚시 바늘에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간 모자가 걸려들었다고 보여집니다. 박순희는 불법이 아니냐고 하면서 의심을 했습니다. 불법이면 거절할 명확한 태도였습니다.     면허시험장에서 본 초록색 반팔 티의 남자에게 박순희 모자는 봐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모자는 지금도 자신들의 실력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녁이나 드시라고 준 십오만 원의 성격도 그게 과연 뇌물성을 가진 것일까 의문입니다. 박순희 모자는 범의가 없거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극히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박순희 모자는 불법조직의 유혹에 걸려든 피해자인 면이 있습니다. 아들인 김주용은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시작부터 먹구름이 낄까 심하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검사님,  한번 이 모자에게 법의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법의 여신은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 저울로 정의와 죄를 달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그 저울에 한 가지를 더 달아보시면 어떻겠나 건의드리고 싶습니다. 이 모자의 순수한 영혼의 무게를 한번 측량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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