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흔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 동원된 북한 군인들을 보도한 조선중앙TV. 대화봉 정상(해발 1360여m)의 스키장 건설에 사용될 물과 흙 등을 등짐으로 옮기고 있다.정부가 남북 스키 공동훈련을 하기로 한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의 지시로 2013년 12월 완공됐다. 김정은 식량부족으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속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급하지도 않은 스키장 건설에 집착했다. 김정은은 스키장 건설 현장을 수시로 찾아 “올해 안에 건설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준공식 때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한 김정은은 한손에 담배를 든 채 리프트를 직접 타보면서 만족을 표시했다.   10개의 슬로프와 호텔 등 부대시설을 순전히 인력으로 완공시켰다. 북한 당국이 10년 걸릴 공사를 1년 만에 준공했다고 홍보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군인과 주민들이 고통을 받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14년 1월 북한 노동신문은 마식령 스키장을 ‘세계에 조선을 일깨운 역사적 사변’이라고 치켜세우며 모든 분야에서 ‘마식령 속도전’과 연계해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마식령 속도전’이 유행했다.   극심한 영양실조 상황에서도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북한 군인들. 건설 전문부대 공병들이다./ 사진= 아시아프레스 북한은 군인들과 주민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노예국가’이다. 10년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북한의 군인들은 사실상 김씨 왕조의 개인 노예나 다름없다. 북한의 모든 주민은 철이 들면서 소년단, 청년근위대, 청년돌격대 등 각종 단체에 가입해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모내기 전투’는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애교 수준이며, 어린 학생들까지 각종 위험한 건설현장에 강제 동원되고 있는 현실이다.    김정일이 1974년 청년들이 속도전 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조한 후 온갖 돌격대가 조직되어 학생과 청년, 군인들을 도로, 공장, 산업시설, 문화시설, 아파트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내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 대동강물을 막는 남포 서해갑문 공사다. 이 공사는 김일성의 지시로 1981년 5월 착공하여 1986년 6월 완공하였다. 3년 내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의 군병력과 수만 명의 주민을 동원하였지만, 완공까지 5년이 걸렸다. 쏟아부은 돈이 북한 공식 발표인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6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공사를 실질적으로 총 지도한 이는 김정일이었다. 탈북자들은 의하면 서해갑문의 무리한 공사로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마지막 남은 자원까지 소진하게 만들어 이후 10년간 펼쳐진 ‘고난의 행군’의 발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주 출신인 김민세 데일리NK 기자는 서해갑문에 대해 “북한이 90년대 중반부터 겪은 격심한 경제곤란과 수백만의 대량 아사가 어느 날 한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짐정일의 실정이 쌓이고 쌓인 결과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탈북자들은 “5년간의 사투 끝에 건설된 남포갑문은 사람들의 시체로 쌓였다고 할 정도로 사고가 비일비재했던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건설자들은 서해갑문을 일컬어 ‘시체갑문’이라고도 부른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김정일은 당시 70세인 김일성의 나이를 생각해 “수령님이 살아생전 보지 못하는 공사는 의미가 없다”며 3년, 5년으로 공사단축을 지시했다.   경제가 붕괴되면서 북한 당국은 통치자금 마련을 오로지 주민과 군인의 노동력 착취에 의존한 지 오래다. 수십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시베리아 벌목장, 중동이나 러시아, 중국, 동남아의 건설현장에 파견되어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고, 수만 명의 여성이 해외 식당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추위가 심했던 올해에는 영하 20도의 한파 속에서 건설 현장에 동원된 군인과 돌격대들 가운데 동상환자가 속출했다.   2017년 김일성 탄생 105주년에 맞추기 위해 착공한 지 1년 만에 완공된 여명거리 건설 현장에는 군·청년돌격대, 대학생 등 하루 3만여 명이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동원되었다. 공사에 투입된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명거리’가 아니라 ‘비명거리’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60명의 군인이 매몰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2014년 평양의 아파트가 붕괴해 3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3년 미림승마장 건설 때는 김정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공사설계 책임자가 총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서해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적었다. 이에 앞선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에서는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글을 남겼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우슈비츠에 가서 ‘유대인의 행복이 나오는 전당’이라 쓴 것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 준공식에서 담배를 손에 든 채 혼자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를 오르고 있다./ 노동신문 이번에 남북 스키 공동훈련을 하기로 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작년 1월 미국 NBC 방송은 “북한 주민들은 곡괭이, 막대기로 스키장 진입로의 눈과 얼음을 치웠다. 강추위에 얼굴은 빨갛게 얼어 있다. 11~12세 정도 보이는 어린이를 포함해 10대도 많았다. 이들이 닦은 길로 북한 특권층 가족이 탄 차가 스키장으로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이 최근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되자 통일부는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확인된 바 없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사회는 강제노동이나 아동노동 등 인권유린을 통해 만든 생산품의 소비와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김정은의 체제선전용 스키장을 위해 수만 명의 인권이 짓밟힌 현장에서 공동훈련을 하며, 입에 발린 ‘평화’를 외치는 것은 70년 넘게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과 국제사회의 양심을 기만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김선택

서울 서초구 서울대검찰청./ 조선DB아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자기가 관련된 공직자부패 사건에서 전직 검사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기가 있는데서 변호사가 후배검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무개 검사, 나에게 좋은 선물이 들어 왔는데 빼지 않을 거지...."하면서 전화하였다. 억대의 수임료를 주고 잘 해결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죄를 부당하게 면해주는 거대한 지하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나는 "나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협박"를 한 사람에게 2013년에 고소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사건이 이첩되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피고소인이 전직검사출신을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선임한 것 같았다. 자기 후배가 있는 곳으로 사건을 이첩한 것이다. 담당검사가 나에게 두번 전화하여 합의를 종용하였다. 한번은 내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합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경우에 피고소인이 맞고소를 하게 되고. 당신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러니 합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갑자기 황당한 전화를 받고 "지금 바쁘다. 바로 결정할 수 없다. 생각해보고 답변하겠다고 하였다" 그 다음날 검사가 아침 9시30분경 집으로 전화를 또 하여 합의를 종용하였지만 나는 합의를 거절하였다"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녹음을 하려고 하였지만 집으로 전화하여 녹음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검사는 피고소인에게 벌금 200만원을 구형하였고 확정되었다.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협박범에게 고작 벌금 200만원을 구형한 것에 나는 분노했다. 한국은 사기·협박범은 전직검찰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벌을 받지 않거나 벌을 적게 받는다. 오히려 사기나 협박을 당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병에 걸려 죽는다.   또 나는 정치적 사건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검찰에서 기자에게 내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는 것을 불법으로 알려줘 기자가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내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 것이 기사화 된다면 나는 그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다행이 기자가 나의 설명을 수긍하여 기사가 되지 않았다.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에 보통 정보를 흘린다. 검찰과 특종을 노리는 언론은 서로 상생하는 구조다. 검찰이 법을 어겨도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일부 검사들이 악한 사람을 돋고 선한 사람을 핍박하고, 범죄를 줄이기보다는 범죄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검사가 범죄자들을 도와 선한 국민을 죽이는 미필범 고의에 의한 살인범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누구편인가? 살아 있는 권력편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살아 있는 권력이 자기들의 거대한 밥그릇을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만일 살아있는 권력이더라도 자기 밥그릇을 침범하면 싸울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살아 있는 권력과 검찰조직이 맞짱을 뜨면 누가 이길까?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에 비추어보면 검찰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수많은 악법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법을 지키면 손해보는 사회이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쉽게 범죄자로 만들어 잡아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영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은 미리 검사나 기득권세력들이 죄인으로 만들어 싹을 자르기 때문이다. 영웅이 있으면 자신들의 거대한 지하경제 시장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 참석한적이 있다. 보수시민단체 대표 한분이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였다. 나는 “현정부에서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데, 공정한 법 집행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법이 타당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법 중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법이 너무 많아 국민이 많이 반발하고 있습니다”고 발언하였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보복 운운하는 이명박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법질서의 부정이라면 분노한다고 말했다. 한국 검사는 죄 있는 자를 죄 없는 자로 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정직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나라에서 엄정한 법 집행과 신뢰의 사법질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검사들이 대통령이 시켜서 칼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사건을 윗분들 마음에 들게 잘 처리해야 진급하는 인사시스템과 자기들이 엄청난 돈을 챙기는데 도움이 되는 현재와 같은 불공정 법체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법을 만들고 공정한 법질서가 확립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현 체제에서 가장 많은 돈을 챙기는 사람이다.

신상목

왜구와의 해상 전투를 그린 명나라 시대 그림. 16세기는 동아시아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대항해시대 유럽세력이 바다를 통해 처음으로 동아시아에 다다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세력과 어떻게 조우하고 대처하였는가가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왜구(倭寇)'이다. 한국에서는 노략질이나 일삼던 '일본'의 해상 도적떼 정도로 정체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서양의 동양사 연구자들은 동양 (특히 중국과 한국) 연구자들과 기본적인 인식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왜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왜구라는 존재가 서양문물의 전래 또는 전파의 계기를 마련하는 파일롯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15세기 이전의 왜구와 16세기 이후의 왜구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전자, 즉 전기 왜구는 주로 일본지역에서 발흥한 해적집단이 주를 이루나, 후기 왜구는 국적 구성, 활동 영역, 활동 내용 면에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집단이다.   우선 후기 왜구는 중국인들이 주를 이룬다. 일본인과 동남아인들이 일부 섞여 있었다. 여러 갈래의 집단이 있으며 본거지에 따라 동남아 거점, 중국 해안 거점, 규슈 거점의 왜구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인들이 다수인데 왜 왜구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명의 사가들이 명의 법도에서 벗어난 불법집단을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기존의 멸칭인 왜구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후기 왜구의 발흥 원인은 명의 해금 정책 때문이다. 명은 조공무역 체제의 유지를 원하였기 때문에 바닷길을 통한 사무역을 규제했다. 심지어 연안의 어부들이 고기잡이 출어를 나가는 것도 금지하고 연안의 섬을 무인화하였다. 명은 제국의 위엄과 외적 방어의 명목으로 폐쇄체제를 추구하였고 이 와중에 남중국 연안 주민의 생존권이 심대한 침해를 받는다. 중국의 복건성, 저장성 연안은 토질이 매우 척박한 곳이다.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 더구나 당대, 원대, 송대 시기에 무역으로 경제적 부를 누린 경험이 있는 곳이다. 명 조정의 해금이 이들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압제였다.   먹고 살기 위해 출어와 밀무역에 나서는 상인들이 생겨난다. 바다는 넓고도 넓다. 쾌속정이 단속을 하는 현대에도 바다에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려운데 그 옛날 무동력선으로 관리들이 바다를 엄격히 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무역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 바다에 나가 밀무역으로 입수하는 물건들은 큰 이익을 안겨주었고, 워낙 상업 마인드가 뛰어난 복건과 저장의 상인들은 점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밀무역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 밀무역 상인들의 활동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포르투갈인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를 기점으로 15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진출을 모색한다. 말라카, 자바, 시암, 참파 등에 무역 포스트가 만들어지고 1540년대 들어서는 동중국해에 진입한다.   포르투갈인들은 명과의 무역을 희망했지만, 전술한대로 명은 조공무역 외 사무역을 금하였다. 이 지점에서 중국 밀무역 상인과 포르투갈 상인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동남아 일대의 무역 포스트에서 거래를 트기 시작한 두 세력은 동중국해 일대에서 파트너쉽을 형성한다. 포르투갈인들이 유럽과 동남아에서 운반해 온 물자를 중국 상인들에게 넘기면 중국 상인들이 이를 자신들의 밀무역 루트에 태워 처분하고 그 댓가로 얻은 이익을 포르투갈 상인들과 나누는 형식의 일정의 대리 무역이 성행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배에 승선한 포르투갈인 일부가 태풍의 영향으러 다네가시마에 표착한다. 1543년의 일이었다. 이것이 일본과 유럽의 최초 만남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만남 자체가 왜구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상인들을 왜 왜구, 즉 해적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명 정부가 밀무역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그에 종사하는 상인들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이미 범죄자 신분이 된 이들이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순수한 도적집단인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집단이 그저 밀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으로 출발하였다가 관헌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복귀시 처벌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본거지를 세우고 때로는 상업적 거래를 때로는 무력에 의한 약탈을 병행하는 독립적 집단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이들의 본거지는 일본인들이 용병으로 합류하기도 하고 동남아인들이 참여하기도 하는 등 국제적 또는 무국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과 가장 달랐던 점은 중국인들은 중국에 돌아가면 모두 범죄자로 처벌받는 신세였지만,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들의 이용가치를 높이 사 협력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중국 왜구들의 밀무역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과 명 사이의 공무역인 감합무역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서 생존을 건 부국강병을 추진해야 했던 큐슈의 다이묘들은 중국 왜구의 비호를 통해 대중국 밀무역이 가져댜주는 경제적 이익을 중시했다.   앞서 말한대로 이 과정에 포르투갈인들이 개입함으로써 왜구라는 존재의 가치가 일본 다이묘들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조총과 화약을 비롯한 전략물자를 비롯하여 면포, 비단 등의 생필품, 고가품까지 그간 류큐의 중계를 낀 감합무역으로 힘들게 진행되던 대외무역이 왜구의 존재로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규슈 및 세토 내해 일대의 왜구들이 다이묘들의 해상 전력집단으로 제도적으로 포섭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각 다이묘가 관할하는 운송선의 경비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네이비 또는 코스탈 가드로서의 역할이 부여되고 그에 걸맞는 가신화가 진행된 것이다.   1570년대가 되면서 중국 왜구 세력은 크게 쇠퇴한다. 원인은 포르투갈과의 결별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와 나가사키라는 무역 포스트를 확보함으로써 더 이상 리스크가 높은 중국 왜구들과의 신용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서 공식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 대중, 대일 무역을 시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후기 왜구는 일본인이 아니라 주로 중국인들이었고 이들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라 비공식 무역 종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국은 이들을 끝까지 범죄자 취급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를 국가가 활용하지 못하였으나, 전국시대의 일본은 각 지방이 처한 사정에 따라 이들의 이용 가치를 활용하고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전력화하였다.   16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동남아, 동중국해를 거쳐 일본에 이르는 해역은 서양세력의 진출로 인한 큰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 물결의 첨단을 타고 왜구라는 존재가 묘기 부리듯 서핑을 타고 이곳저곳을 휘젓고 있었다. 제1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해도 좋을 그 변화의 물결에서 오로지 조선만이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축복이라 보는 사람도 있고 저주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덧)서양 학자들의 왜구에 대한 평가가 동양학자들과 다른 것은 유럽의 해양진출사에서 privateer(사략선: 정부로부터 적국의 선박을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민간선박)나 buccaneer(모험적인 사업을 벌이는 해적)의 존재가 갖는 의미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이한상

▲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 / 사진출처=뉴시스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이번 결정의 몸통이구나. 영화 1987을 보며 우리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숙제를 마친 우등생임을 기꺼이 자랑스러워 하는 1인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라는 인권 변호사가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 되어 안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경제분야는 잘 몰라도 잘못된 권력 구조를 바로 잡고 인권을 신장시켜 동아시아 최고의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실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내맘 속에서 삼진 스트라이크 아웃이 될 지경이다.   1. 지난해 7월 13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가 중국 당국의 인권 탄압을 받다 사망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인권 변호사를 현직 대통령으로 가진 대한민국 정부는 입장 표명을 요청 받고, “검토 중”과 “고심 중”을 반복하다 류샤오보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 정부는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는 허망한 멘트를 날렸다.   대조적으로,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애도를 표하고 자유와 기본적 인권 존중, 법의 지배는 보편적 가치이며 이는 중국에서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고 일본은 중국의 인권상황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할 것이라고 명징하게 이야기했다. 양국의 상반된 대응에 엄청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벌인 일을 치우느라 중국 눈치를 봐야 하니 남의 내정 간섭이 될 수 있는 발언은 자제 하는 것이 지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2. 지난해 12월 15일 방중시 베이징 대학에서의 문 대통령의 연설에 나는 쇼크를 받았다. 옥의 티로 봐 넘겨 주기에는, 목에 가시 정도로 불편하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중공과 공동운명체여야 하는가? 왜 중국 공산당의 소강사회의 꿈(이라고 읽지만 이는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의 도구일 뿐)이 한국의 사람중심 경제 목표와 일맥상통하여야 하는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987년 그리고 2017년 우리가 거리에 나와 목이 터져라 외치며 추구했던 가치들은 지금 북조선과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나는 중국몽 따위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최악의 인권 후진국 중국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정치대국이라고 생각한다. 저리까지 아유봉승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의 외교 성과는 다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했으면 외교적 성과를 포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사오보 때는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면, 이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씀을 하시는 경우였다. 물론 당신은 제발 박근혜가 저지른 잘못을 겨우 힘들게 치우고 온 사람에게 타박이 왜 이리 심하냐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자존심의 가치는 0이 아님을 인식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그리고 오늘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팀 남북단일팀 구성 발표다. 나는 지난 몇일간 멀쩡한 총리와 장관들이 왜 저리 멍청하고 엉뚱하며 무모한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집권 세력 중 한줌도 안되는 수구 NL 내시 그룹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펫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원칙을 어기고 일을 진행하는구나 하고 분개했다.   그러나 오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망연 자실이다. 평화 올림픽도 좋고 남북화해도 좋다. 누가 반대하는가? 북한 선수 오는 것도 좋고, 인공기든 한반도기든 마음 껏 휘날리게 하라. 예술단도 오고 김정은과 핵무기 찬양공연도 하게 하라. 대한민국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만방에 과시할 기회일 뿐이다.   하지만 왜 왜 왜 4년 동안 오늘만 바라보고 열심히 뛰어온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에게 북에서 온 낙하산 선수를 꼽아 단일팀을 만드는 무리수를 두어가며 쑈 쑈 쑈를 하려 하는 것인가? 여자아이스하키팀 단일팀 안되면 평화가 망가지고 남북화해에 암운이 드리우는가? 왜 다른 나라도 반대하고 국가대표 감독 사라 머레이가 난감해 하는 무리한 일을 추진하는가? 대통령이 위에서 결정하면 국가대표는 뭐 군대 군인처럼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에 인간 존엄과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은 있는것인가? 양보할 생각은 있는지 선수단과 소통은 해 보셨는가? 이게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가?   선수 개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양보하라 윽박지르며 얻을 수 있는 "남북관계 발전의 단초"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좋은 성적 거두는 것보다 분투하는 모습이 감동줄 것"이라고? 그건 대통령의 생각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국제 프로토콜 다 어겨 가면서 스위스에게 불공정 소리까지 들어가며 떼쓰는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빠져야 하는가? 아랫것들이, 계집들이, 운동이나 하는 것들이, 그나마 잘 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남북관계 발전의 단초"라는 대의를 위해 고작 북조선 선수 몇명과 같이 뛰라는 작은 희생을 감수하라는 데 뭐 그리 토를 다느냐는 것인가?   국가의 최고 존엄인 대통령께서 직접 현장에 가셔서 선수들 손 잡아 주시고, 하키채에 싸인도 해주시고, 간곡히 부탁 말씀까지 하셨는데 마 이제 고마 하자, 통크게 민족의 대의를 위해 넘어가자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들은 나와 민주주의의 적이다.   내가 존경하던 인권 변호사 대통령님은 기대했던 용기 있는 말씀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닫으셨고, 하지 마셔야 할 말씀은 국민의 자존심 내팽개치고 하시더니, 결국은 당신께서 몸 바쳐 지키셔야 할 우리 딸들의 권리를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내세워 너무도 당당하게 빼앗아 가셨다. 자, 다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부로 대통령 당신을 더이상 인권 변호사로 이해할 길은 없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각하,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상흔

1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북한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에 참석한 천해성 통일부 차관 및 대표단과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 및 대표단이 전체회의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지만 정부는 이를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는 “여자아이스하키 올림픽 엔트리 23명에 북한 선수들 몇 명을 추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 대표팀에게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우리나라 세계랭킹이 22위이고 북한이 25위로 경기력이 비슷해 오히려 북한의 우수한 선수를 참가시키면 전력이 보강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우리가 세계랭킹 22위, 북한이 25위로 메달권에 있지 않다”며 “우리 선수들도 (북한 선수 추가에) 큰 피해의식이 있지 않고 오히려 전력 강화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해 야당과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 유의동 수석대변인은 “정권은 평창이 정치판으로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국민 생각은 전혀 다르다”며 “정치판이 아니라 공정한, 아주 정정당당한 스포츠이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새러 머리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새로운 선수들이 추가될 경우 조직력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단일화 논의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머리 감독은 “북한에 우리 대표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선수는 있을지라도, 우리 1~3라인에 들어올 만한 수준의 선수는 없다”며 “나에게 북한 선수를 기용하라는 압박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귀화를 한 선수도 있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스틱을 잡은 이도 있다.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서 올림픽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참으며 힘든 훈련을 견뎌왔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들의 꿈을 빼앗으려는 것이 공정하냐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논란이 계속되자 1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직접 충북 진천에 있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훈련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격려 방문이 단일팀 구성에 대한 차가운 여론과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정부가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이처럼 목을 매는 이유는 통일부 논평에서 잘 드러난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1월 17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고, 그 가운데 평창올림픽을 전 세계 화해와 축제의 장으로 해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북한을 평창 올림픽에 참가시키기 위해 작년 11월 중국에서 물밑접촉을 가졌고, 12월에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문웅 북한 선수단장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런 물밑접촉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정부는 현재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는 한반도기 공동입장도 사전에 이미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 지원특위에서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의 공동 입장이 합의되면 한반도기를 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공식 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한반도기 입장을 기정사실화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20~30 젊은이들에게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허울뿐인 명분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한 이후 쏟아져 나온 수천 건의 관련 기사 가운데 긍정적인 댓글이 순위를 차지한 것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 문제는 이미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난 상태다.   젊은이들은 수년간 피땀 흘려 준비해 온 올림픽에 세계를 상대로 핵위협을 하고 있는 김정은이 올림픽을 체제선전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을 하는 ‘평화쇼’를 벌인다고 해서 진짜 평화가 왔다고 믿는 순진한 국민은 이제 단 한 사람도 없다.   북한은 남북 현상과정에서도 선수 파견 문제는 애당초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예술단 파견이라는 ‘잿밥’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예술단이야말로 남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이라는 잔치를 자신들 체제선전의 마당으로 바꿔버릴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남북협상 과정을 보면 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입맛에 맞는 보따리를 펼치기 바쁜 모습이다. 혹시라도 북한의 심기를 건드려 올림픽 참가 결정을 뒤집을까 노심초사하는 면마저 보인다. 그 일면이 바로 개최국 국기의 지레 포기로 나타난 것이다.   북한을 올림픽에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간·쓸개라도 빼줄 태세니, 딱하다 못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정부는 남은 기간만이라도 최소한의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상융

2018년 1월 14일 조국 민정수석이 경찰 수사권 조정관련 발표를 한 가운데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조선DB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찰, 검찰, 국정원 권력기관 개혁방안 발표가 있었다. 골자는 검찰, 국정원의 힘을 빼고 경찰에게 권한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의 권력비등화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행정경찰의 분리, 그리고 지방자치경찰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본래 기능인 공소유지기능에 충실하고 국정원도 해외정보수집 업무에 전념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업무도 경찰로 이관하고 검찰도 경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리수사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서 담당하되 부수적으로 검찰의 특수수사기능으로 보강한다는 것과 용산참사 등 속칭 5대사건 등 과거 정부에서 수사를 한 사건에 대해 민간인을 조사관으로 채용 재수사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도 있다.   한마디로 경찰은 웃고(표정관리),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기능이 축소로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문제는 이로 인해 권한이 커진 경찰도 웃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공수사의 이관 등으로 경찰의 권한도 커지지만 이로 인한 경찰권한의 비대화로 경찰권한의 집중화를 막겠다는 장치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행정(일반)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다. 경찰 조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경찰에 무슨 행정경찰, 수사경찰이 따로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입건,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 범죄발생 후 실체진실규명을 위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수사이고, 기타 파출소, 지구대 등 방범순찰과 교통시설, 집회시위관리 등의 업무와 이를 지원해 주는 경무(인사, 장비, 예산 등) 기능이 행정경찰업무라고 보면 된다.    불합리한 인사 시스템부터 바꿔야   문제는 현재 경찰의 인사시스템 구조이다. 경찰청장, 지방청장, 수사국장, 서장 등 고위직으로 승진한 사람 중 과연 현장 수사 실무업무에 종사하여 승진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일선에서 고소고발사건조사나 외근형사·교통사고조사 등의 업무에 종사한 사람은 경찰청장, 수사국장은커녕 총경 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수사업무에 종사한 사람들은 야근, 잠복, 조사 등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악성민원 등에 시달려 징계 등의 불이익처분이 누적되어 높은 자리 승진 자체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사례를 보면 화재사건, 강력사건, 과학수사, 추적수사, 교통사고분석조사 등의 전문가는 제대로 승진도 못 하고 많은 이들이 경위 또는 경감으로 퇴직했다.   이들 수사전문가는 업무로 인해 진급 시험공부를 할 시간조차 없고 인사고과평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결국 승진도 하지 못했다. 반면에 잃은 것은 건강이었고, 가족과 지낸 시간이 부족해 쓸쓸하게 정년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은 정년과 승진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사 자체 승진, 복지, 인사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찰의 복잡한 다단계 계급구조를 수사경찰에는 적용시키지 말고 행정경찰과 별도로 자체 승진시스템과 급여체제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지휘기능도 순경부터 입직해서 차근차근 현장 외근, 감식, 분석, 조사업무를 밟아갈 수 있도록 하고 계급에 맞는 경험과 경륜, 인품,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수사지휘가 이루어지고 수사부서 내에 견제가 이루어져서 공정성 등 인권침해시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수사지휘를 받지 말아야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수사권의 핵심내용인 입건, 체포, 구속, 압수수색, 기소, 불기소의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권이 마치 수사관 개인의 독점적인 권한인 것처럼 인식, 칼을 휘두르면 안 된다.    사건의 경중을 불문한 형사입건, 별건수사, 무분별한 압수수색,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없거나 적은데도 체포, 구속, 임의동행이 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때로는 수사과정에 변호사, 시민의 참여와 감시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의 밀행성, 편의성과 공명심을 앞세워 사건을 처리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도 출세를 하려면 특수, 공안, 기획부서를 선호하고 검찰 본래의 기능인 경찰송치 후 보강수사를 담당하는 형사부와 공소유지기능에 소홀히 한 점에 대한 자성도 필요하다. 특수, 공안, 기획부서를 거쳐야 검사장 등 총장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자성도 필요하다.   경찰 역시 기소의견 송치 후 무혐의, 무죄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자성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를 하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박종철 열사 사망 31주기’ 전날 남영동 대공분실에 참배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경찰수사의 잘못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도 필요하다.    인사(예산)와 결부되지 않는 지방자치 경찰은 의미 없어   그다음, 경찰사무 중 방범, 교통 등을 지방자치단체에 이관과 관련하여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경찰 재직 시부터 주간은 물론 야간에 텅 빈 치안센터와 야간에 텅 빈 주민자치센터와 읍면사무소, 기초생활수급자, 장기간 학교결석자 등과 관련 현장방문이 필요한데 인력이 없어 못 가는 주민자치센터를 보면서 이를 통합하여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신호등, 횡단보도, 육교설치, 폐지와 관련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데 설치권한은 경찰이 가지고 있고, 주차위반 등 교통법규단속과 관련 경찰과 지자체의 이원화 체제를 보면서 경찰사무의 재조정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다만 일선의 지방경찰이 느끼는 것은 진정한 지방자치경찰은 채용, 승진, 보직 등 인사권한이 중앙경찰이 아닌 지방경찰로 과감하게 이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단속지시, 교육,  실적평가와 경찰청 등 중앙기획정책부서에서 총경, 경무관 등 승진을 독차지한 후 잠시 지방에 좋은 보직으로 와서 잠깐 머무른 후 다시 중앙으로 이동하는 그런 승진의 독점과 불평등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인사(예산)와 결부되지 않는 단순한 사무이관조정은 의미가 없다. 이번 개혁방안 발표로 검찰과 국정원의 권한은 축소되고 경찰의 권한은 커졌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축소된 권한만큼 인력과 예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간기업이라면 당연히 인원과 예산감축이 이루어진다.    과연 검찰과 국정원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경찰 또한 과감한 인력재배치, 사무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개혁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일선 현장으로 인력재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현장을 기피하고 정책기획부서로 올라가 승진과 자기계발에 전념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지방과 현장 근무도 해보고 다양한 사건, 사고도 경험해 보고, 민생과 현장을 알아야만 승진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약자들의 심정도 알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승진할 수 있도록 입직경로도 개편하여야 한다.   고시제도, 특채제도, 고위직 위주 해외주재관선발파견제도 등이 현장근무경험보다는 단순히 학력평가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역시 폐지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이번 개혁안 발표가 국민들과 일선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러한 방향으로 실행되도록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효정

2007년 12월 27일 저녁, 저는 일본 지바현에 있는 마쿠하리 멧세라는 전시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동방신기의 일본 팬클럽 ‘Bigeast’의 팬미팅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한국에서 바다 건너 일본 지바현까지 간 참이었습니다. 그 해에만 두 번, 동방신기 공연을 보겠다고 일본을 찾아갔었습니다.      공연장 앞에 서서 한국 팬들끼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가오더군요. “사실 저 욘사마 팬이에요.”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욘사마, 배우 배용준씨의 사진이 붙어 있는 열쇠고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저희에게 그 얘기를 했었나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참 반가웠더랬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한류팬들은,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팬 중에도 젊은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국 동방신기 팬과 일본 동방신기 팬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누구든지 국적을 맞힐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20~30대는 한국 팬, 40~50대는 일본 팬이었으니까요.       2017년 12월 15일의 일본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그날 도쿄의 중심지 시부야의 유명 서점, 쓰타야에서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을 찾고 있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한국 팬이 일본 앨범을 하나 사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찾고 있었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방탄소년단의 앨범이었거든요. 앨범을 집으려고 다가가려면 꽤 어린 친구들 사이를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잔뜩 꾸민 10~20대 일본 여성 팬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앨범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정수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연구교수를 비롯해 한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이제 일본에서 한류는 주류 문화 중 하나가 됐다”고 말합니다. 10년 전 한류에 빠졌던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서 저도 모르게 어린 손녀와 딸에게 한류를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별식으로 한류 스타가 추천해준 한국 음식을 먹어 보고 ‘네’ ‘대박’ 같은 한국말을 쓰는 어머니를 통해 한류팬이 된 사이토 유이씨도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 ‘日 한류 3.0 엄마에서 딸로 대물림되고 있었다’는 한국 문화가 일본을 ‘정복했다’는 식으로 우열을 정하려는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전파되고 흡수되는지,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흥미롭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는 끝났다’ ‘한류, 다시 시작’처럼 중계하듯이 보도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합니다.

문성근

‘국민의 법’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법문을 한글로 적는 문제에 대하여 당시 이조판서 허조는 이렇게 말했다.   “간악한 백성들이 율문을 알면 형벌을 피하는 요령만을 터득하여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법을 농단하는 무리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에 임금이 답했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 법을 몰라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백성들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해놓고, 무작정 죄를 준다면 조삼모사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이 태종께서 이두로 법문을 번역하여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법을 알게 하려 하신 것이다”   이런 논쟁이 있은지 어언 700년이 지났다. 그 세월을 거치면서 한글은 백성을 아꼈던 이도(세종대왕의 이름; 왕명보다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의 바람대로 백성들이 자유로이 사용하는 우리 말이 되었다. 그렇지만 법에 대한 사대부의 인식이나 독점욕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법은 국민들과 너무 멀리 있다. 법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어려우며, 법의 운용이 특정 소수에게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이 손들었던 법이 너무 많아 이름도 기억 못하고, 변호사는 물론 검사나 판사도 헷갈리기 일쑤며, 행정공무원은 제 편한대로 법을 들이댄다. 하지만 법의 본질은 일반국민의 상식을 규범으로 만든 것이라 너무 많거나 복잡하거나 어려울 이유가 없다. 또한 소수에게 독점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자연법사상을 이어받은 사법선진국들을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수사와 기소권이 분리되어 있고, 수사와 재판은 물론 사법기관의 구성까지 중요 결정권은 일반국민(배심원이나 선거인)에게 있다. 그래서 수사나 판결에 대한 정당성이나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여지가 거의 없어 판사나 검사는 법논리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밤 세워 논리를 개발하고 말투나 옷차림까지 신경을 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와 너무 다르다. 수사와 기소권이 함께 있다 보니 검찰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 그러다보니 불법수사의 억제나 인권보장이 아니고,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 실현과 법원견제가 검찰 본연의 임무라고 객기를 부리는 이도 있다. 변호사도 의뢰인의 권익보다는 판사나 검사의 눈치를 살피고, 판사도 실체에 몰두하기 보다는 검사와 변호사는 물론 언론 등의 사회적 세력을 의식한다.   이런 현실은 판결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무죄판결문은 논리적이고 상세하게 써야 하지만 유죄판결은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무죄판결에 대한 검사의 반발은 신경 쓰이지만 유죄판결에 대한 피고인의 원통함은 의례 그러려니 여겨서 그런가? 무죄판결은 유죄판결보다 몇 곱절 더 고민스럽다. 그래서 업무가 많다 못해 혹사를 당한다는 판사나 검사들에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격언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것은 섣부른 욕심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법절차에는 일반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이나 상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예측가능성도 없다. 이 때문에 수사와 재판의 과정이나 결과가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져도 이를 바로잡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소동만 벌어질 뿐이다. 이를 보면 우리의 법은 아직 ‘권력의 법’에 머무를 뿐 ‘국민의 법’에 이르지 못했다. 입법은 당연하고 법의 해석과 적용까지 몽땅 가진 사람들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 그런데다 이런 풍토가 당연시 되고, 좀체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 보매 700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글은 우리말이 되었지만 한글을 반대했던 사대부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수는 없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거늘 모든 것이 백성들의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엄상익

호텔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을 통해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회색의 두꺼운 구름을 뚫고 올라와 반쯤 얼굴을 내민 태양은 바다 위에 길다란 빛의 띠를 만들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산책로로 조깅을 하는 백인들이 눈에 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나이프로 크로와쌍에 차가운 버터를 바르고 있다.     내 기억의 서랍 속 바닥에는 ‘코파카바나’라는 단어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해서 무교동의 막걸리 촌을 구경할 때였다. ‘코파카바나’라는 상호를 가진 살롱이 있었다.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중의 하나인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 있는 꿈같은 해변이라고 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에 비키니 미녀들이 오일을 바른 늘씬한 몸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이 되어 현지에 와 보니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낮의 일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노숙자들이 하나씩 둘씩 해변을 찾아와 하루 종일 따뜻해진 모래에 몸을 묻고 잠을 자는 곳이기도 했다. 멋모르고 산책하다가 자는 노숙자를 밟으면 돈을 뺏기는 수가 있다고 했다. 양극화를 해변에서 느낄 수 있는 나라다. 도시도 양극화 된 것 같았다. 수십만이 사는 빈민가가 도시 외곽의 야산 기슭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게딱지 같이 달라붙은 빈민가의 미로 같은 골목들이 보이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옆에서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다.     부유층이 사는 지역은 윤기 흐르는 푸른 수목 사이에 널찍한 고급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버스에 타고 상점가의 고급 빌딩 옆을 지나갈 때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화려한 빌딩 귀퉁이 어둠침침한 공간에 노숙자들이 누워있거나 벽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에 30년 전쯤 브라질로 온 오십대 한국 여성이 함께 타고 있었다. 안경을 쓴 각진 얼굴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직접 몸으로 체험한 브라질의 모습을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이 나라에서는 낙태를 못해요. 생기면 낳아야 하죠. 저도 그래서 애가 셋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한번 빈민층이 되면 도저히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요. 공교육이 붕괴되어 있어요. 엘리트가 되려면 사립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사립대학까지 가야 하는데 교육비가 어마어마해요. 당장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고 해도 서민층의 몇백 불 평균임금으로는 꿈도 꾸지 못해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가지고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데 그게 불가능한 거예요.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어요. 가난한 집 자식들은 열다섯 살만 되면 사회로 나옵니다. 여자아이들도 그때부터 아이들을 자꾸 낳아요. 그렇게 해서 빈민층이 한없이 확대되는 거죠. 그런데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머리가 깨지 못한 거예요. 그냥 앞에 맥주 한 잔만 있어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부정부패가 심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뇌물을 먹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안돼요. 건축허가 신청을 내고 몇 년이 흘러도 뒷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허가가 나오지 않아요. 반면에 조금만 법을 어기면 즉각 벌금딱지가 날아와요. 정치인들은 국민세금을 마음대로 써요. 의원들은 국가 비용으로 자기 전용기를 타고 다녀요.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요.      외국 자동차업계와 결탁해서 심지어 브라질 내에 철도도 부설하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뒷거래의 이권을 위해서 편리한 철도도 놓지 않는 거죠. 경제도 상위 1%의 부자들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어요. 아무 것도 안하고도 자손 대대로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죠.   한국의 한 백화점에서 내부 장식에 사용될 대리석을 사러 직원이 브라질에 온 적이 있어요. 최고 좋은 대리석은 가로 세로 높이 일 미터짜리가 이삼 억이 가는 것도 있어요. 그 직원이 한 산 전체가 그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서 그 소유주인 부자는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 브라질 부자는 자기 재산의 총액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대리석 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요.      도심의 레스토랑이 엄청나게 많아도 그 소유주는 부자 몇 명이에요. 독점이니까 레스토랑을 잘하게 하려는 의욕도 없어요. 경쟁을 벌이지 않으니까 서비스 개선도 없고 맨날 똑같아요. 정경유착이 일상화된 사회인데도 못 배운 빈민층들은 대부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불만을 막아요.      노동자층이 차를 가지고 싶어 하니까 외국의 자동차업체들이 10년 이상의 할부로 차를 팔게 했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불입금조차도 내지 않게 만들었죠. 그러니 한 달에 사백 불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사서 타고 다니게 됐죠. 사웅파울로나 리오데자네이로의 교통체증도 그게 원인이예요. 차를 외상으로 들여오면서 외국의 업계에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고 뒷돈 받아먹고 서민들은 빚더미 위에 오르는 거죠.”    “그런 방만한 국가경영을 하면서도 부도가 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그건 이 나라가 가지는 천부의 혜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브라질은 정말 축복받은 땅입니다.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몇 번째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데 실제로 따지면 최고일 것 같아요. 못 쓰는 땅이 없으니까요. 기후가 좋고 땅이 비옥해서 밀에서 옥수수 커피까지 일 년에 몇 모작들을 합니다. 땅 속도 부유해요. 각종 광물자원과 세계적인 보석들이 다 묻혀 있으니까요. 가로수로 서 있는 과일나무에서 그냥 과일들을 따다 먹으면 될 정도로 풍요한 나라입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도 없어요. 못살래야 못살 수 없는 나라에 빈민층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저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자원이 많은 나라도 부패와 양극화가 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 외국인 서민으로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복지정책은 어때요?”    “한국같이 좋은 나라가 세계에 없는 것 같아요. 여기는 의료도 사보험인데 얼마나 비싼지 도저히 가입할 수 없어요. 좋은 시설에서 진찰을 받기 불가능한 거죠. 대신 동네 보건소가 있는데 하기 싫은 의무봉사를 하러 나온 의사들이 있어요. 마음이 없으니까 와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있다가 출석도장만 찍고 가는 거죠. 만나기도 힘들죠. 어렵게 만났다고 해도 가서 무슨 검사 받고 와라 무슨 검사 받고 와라 하는데 그 검사를 받는다는 게 산 넘어 산이에요.      이 나라도 60세를 넘으면 연금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공짜가 아니고 소년시절부터 일정액의 돈을 납입해야 연금이 나오는 거죠. 빈민층이 많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니까 그 나이가 되면 죽는 사람이 많았어요. 평생 연금을 붓고 막상 탈 때가 되면 죽으니까 그 돈들이 다 정부로 들어가는 거죠. 그런 불만들이 있었어요. 그런대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니까 이곳 정치권에서는 법을 바꾸어 연금을 받는 나이를 높여버려 사람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어요. 여기서 오래 사는 저도 한국과 어떻게든 연관을 맺어서 가족이 아플 때면 한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녀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인터넷 때문에 변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주유를 하는데 기름을 넣어주던 빈민층 청년이 느닷없이 저한테 ‘너희 한국도 정치인이 여기같이 썩었니?’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제 그들의 의식도 깨어나는 거죠. 여기 살아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하고 강점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맨날 그곳에 사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나는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부패가 하나씩 둘씩 청산되어 왔다. 김영란 법은 조그만 뇌물도 용서하지 않는다. 재벌의 독점이나 교만을 용서하지 않는 게 국민정서다. 언론이나 시위를 통해 마음껏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 저변의 보호망도 튼튼하게 되어 있다. 정신적 문화적 한 단계 발전만 이루면 헬조선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슬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검은 일요일이었다. 지난 1월 7일 열린 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검은 옷을 입었다. 이들이 입은 검은 드레스와 검은 턱시도는 하비 웨인스타인으로 드러난 뿌리 깊은 성폭력의 역사, 헐리우드에 만연한 성폭행에 항거하는 의미였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헐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상으로 뮤지컬, 영화, 코미디를 아우른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을 수여한다. 이 자리에서 이 수상자만큼이나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다.   TIMES UP, 새로운 날의 수평선이 열렸다   그는 이번 시상식에서 ‘세실 B. 데밀상’을 수상했다. 흑인 여성 최초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지금까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맞서 진실을 말하려고 하면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을 지켜볼 다음 세대에게 말했다. “새로운 날의 수평선이 열렸다”고. 이 말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골든 그로브 시상식 이후 오프라 윈프리가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오프라윈프리_뉴시스 더불어 그는 이런 ‘새로운 날’이 온 데에는 이 자리에도 함께 한 훌륭한 여성과 남성들이 함께 더 이상 ‘미투(Me too)’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운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미투’ 캠페인은, 자신의 SNS에 성희롱, 성폭행 경험을 공유하며 ‘나도 그런 일을 당했다’, 혹은 ‘나도 당신과 연대하겠다’는 의미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실제로 영국에서는 전체 여성의 절반 이상이 18세와 24세 사이 여성의 3분의 2 정도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한다.   엠마 왓슨과 리즈 위더스푼 등의 배우들은 자신의 SNS에 시상식에 앞서 ‘오늘 내가 검정색 옷을 입는 이유’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들이 함께하는 ‘Times Up’은 헐리우드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 여성 성폭력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1월 1일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여배우, 감독, 작가 등 300명이 함께 연대하고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2017 연말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정려원 이들의 ‘검은 연대기’를 보며 연말시상식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배우 정려원이 떠올랐다. 드라마 마녀의 법정>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그는 수상소감에서 “마녀의 법정>은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범죄는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있지만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법이 강화되어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한 여배우가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한 목소리를 냈으나 이 소리는 소란 속에 사라졌다. 신인 여배우 장자연이 죽음으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9년이 지난 후에야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그는 당시 술접대에 16번, 골프접대에 1번 강요에 의해 불려 나갔다. 당시  9명이 강요와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으로 입건 됐지만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기소 처분 됐다. 당시 검찰의 문건에 따르면 그는 모친의 기일에도 소속사 대표에게 술접대를 강요받았고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고 되어있다. 당시 함께 했던 다른 여배우도 자신 역시 40차례 정도 접대를 요구받았다며 ‘소속사 대표가 다른 이들을 폭행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두려웠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2018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군대 내에서 성폭력피해를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대위사건도 성폭력 피해사건에 대한 사회적 방조와 방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장자연양 사건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투(#Metoo)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을 감내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라고 썼다.   오프라 윈프리는 “아무도 ‘미투’라고 하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검찰의 일을, 기자가 기자의 일을 제대로 할 때 새로운 시대의 수평선이 열린다. 2009년 죽음으로 말하고자 했던 한 피해자의 외침에, 9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한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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