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컴퓨터의 아버지 폰 노이만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존 폰 노이만 오늘날의 컴퓨터를 만든 사람은 컴퓨터 공학자가 아니라 컴퓨터 개발을 먼발치로 지켜보던 한 수학자였다. ‘존 폰 노이만’    컴퓨터와 인터넷 역사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연구기관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평생 아무 책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꿈의 연구소이다. 그 첫 종신교수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존 폰 노이만이다. 둘 다 유대인이다. 일반대중에게는 아인슈타인이 유명하겠지만, 컴퓨터와 인터넷 역사에서는 폰 노이만이 훨씬 중요하다.    2차 대전 때 폰 노이만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다. 그의 천재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프로젝트 책임자인 유대인 오펜하이머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에 개입하면서 컴퓨터 개발의 역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공동연구 중 수소폭탄의 효율계산을 위해 페르미는 대형 계산자, 파인먼은 탁상계산기로, 노이만은 천정을 바라보며 암산했지만, 노이만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값을 냈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그는 미 육군이 초대형 계산기 ‘에니악’을 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니악은 18,000여 개의 진공관과 1,500개의 계전기를 사용했고, 무게가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였다. '컴퓨터'(Computer)라는 명칭은 계산한다는 뜻의 라틴어 'Computare'에서 유래했다. 이 초기 컴퓨터는 말 그대로 계산만 할 줄 알았지 기억능력이 없었다. 에니악은 주로 군사용 계산에 쓰였다. 미사일의 궤적과 비행거리, 수소폭탄의 폭발력, 암호해독 등 인간의 머리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복잡한 계산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노이만은 에니악에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 이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외부 프로그램 방식이라 배선판 전기회로를 모두 바꿔주어야 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사람이 수천 개의 배선판을 며칠 걸려 다시 세팅해야 했다.    당시 에니악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세계적 수학자 노이만이 후견인이 되자 분위기가 단번에 반전되었다. 노이만은 수학자였음에도 컴퓨터 공학자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획기적인 이론을 개발했는데 바로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가 그것이다.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기억장치(Memory)를 붙여,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저장해 ‘기억시켜’ 놓았다가 사람이 실행시키는 명령에 따라 작업을 차례로 불러내어 처리하는 개념이었다. 이로써 그는 계산 기능만 있는 멍텅구리에 뇌를 만들어 붙여 컴퓨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는 컴퓨터가 계산 능력밖에 없는 멍청한 기계가 아니라, 뛰어난 ‘논리기계’(logic machine)라는 개념을 최초로 창안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에드박(EDVAC)으로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였다. 이것이 1세대 컴퓨터다.    현재 존재하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대부분의 컴퓨터를 '노이만 방식'이라 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194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발명이었다. 노이만 방식 컴퓨터 등장은 그 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케 했다. 1951년에는 유니박 I(UNIVAC-I)을 만들어 상품화에 성공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이다. 이렇게 많은 과학기술이 전쟁으로 인해 탄생했다. 2차 대전은 과학기술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트랜지스터의 아버지 윌리엄 쇼클리와 페어차일드의 탄생   윌리암 쇼클리 이렇게 초창기 컴퓨터는 부피가 너무 컸다. 컴퓨터의 기억장치를 이루는 회로소자로서 수 천, 수 만개의 진공관을 사용해 연산을 했기 때문이다. 전력소비가 많다보니 열이 많이 났다. 따라서 고장도 자주 나고,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장치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부피가 너무 커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번 계산할 때마다 이 진공관들을 새 것으로 교체해주어야 했다. 과학계는 이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때 이를 해결한 인물이 있었다. 능력은 뛰어난데 성격이 괴팍하고 까다로운 천재. 현대 소형컴퓨터 기술의 출발점이이라 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개발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쇼클리가 바로 그다.    쇼클리는 1910년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그는 22세인 1932년 캘리포니아공대를 졸업하고, 불과 3년 뒤 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클린턴 데이비슨의 눈에 띄어 26세 나이에 당대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벨연구소 연구원이 된다.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당시 학계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전자증폭기의 개발이었다. 진공관은 20세기 초반에 개발되어 당시 컴퓨터와 대부분 전자기기의 핵심부품으로 쓰였다. 하지만 부피가 커 회로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발열이나 전력소모 문제도 심각했지만 그 보다 내구력이 취약했고 값이 비쌌다. 때문에 컴퓨터의 소형화와 대중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쇼클리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에 몰입해 반도체 기반의 증폭기 곧 '트랜지스터'의 기본개념을 고안해내어 그 개발에 전력했다. 참고로 트랜지스터(transistor)라는 이름은 transfer(전송) + resistor(저항)의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그는 마침내 1951년 7월 새로운 개념의 ‘접합형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기억장치를 이루는 회로소자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등 반도체 소자로 대체되어 크기가 작아지고, 소비전력이 적게 들고, 냉각기의 필요성이 감소되었으며, 무엇보다 고장이 적어 신뢰성이 높아졌다. 대성공이었다.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2세대 컴퓨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뒤 쇼클리는 벨연구소를 떠나 1955년 벡맨인스트루먼트의 지원 아래 자신의 이름을 딴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를 세웠다. 쇼클리 반도체연구소에는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는 나중에 인텔을 세운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도 있었다.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는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재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쇼클리의 까다로운 성격과 고압적인 운영방식이었다. 결국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등 8명의 연구원이 쇼클리의 운영 방침에 반발해 1957년 연구소를 떠났다. 그들은 ‘페어차일드 카메라 & 인스트루먼트’로 옮겨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설립했다. 쇼클리는 이들을 ‘8인의 배신자들’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출처; 김영우, IT동아 기자)      8인의 배신자들부터 시작된 실리콘밸리 반도체산업    배신자 8인이 만든 페어차일드는 트랜지스터 제조 선두기업이 되었다. 이른바 플래너 공정은 트랜지스터를 보다 싸고 쉽게 제조하면서도 성능은 크게 향상시킨 뛰어난 혁명이었다. 이로써 배신자 8 명의 플래너 트랜지스터는 크게 성공했다.    그 뒤에도 반도체 혁명은 계속되었다. 2년 뒤 이들은 4개 트랜지스터 회로를 하나의 실리콘웨이퍼에 집적시키는데 성공했다. ‘실리콘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가 탄생된 것이다. 이 집적회로를 기억장치 구성소자로 사용한 IBM사는 1964년 4월 'system 360'이라는 새로운 기종을 발표했다. 이때부터를 제3세대라고 부른다.    컴퓨터에 IC를 사용함으로써 중앙처리장치는 소형화되면서도 기억용량은 더 커졌다. 따라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구사할 수 있어 기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후 페어차일드는 집적회로 개발로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별이 되면서 직원도 12,000명으로 늘어나 대기업이 되었다.    그러자 초기의 창립자들은 페어차일드를 떠나 다시 새로운 창업을 시작했다. 초기 창립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은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로 이들이 1968년에 인텔을 창업했다. 그리고 유진 클라이너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로 성장하게 되는 KPCB를 설립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실리콘밸리의 거물이 되었다. 내셔널 세미컨덕터와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 등의 회사도 페어차일드에서 갈라져 나온 회사들이다.    이들 8인이 실리콘밸리에 반도체산업을 부흥시킨 초창기 멥버들로 이로써 IT 생태계는 혁명적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이런 반도체회사의 급성장으로 실리콘을 재료로 하는 반도체 산업이 샌프란시스코 남쪽 밸리를 번영케 했다. 그 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실리콘밸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유대인 앤디 그로브 등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 모은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로 승부를 걸었다. 1969년 첫 메모리칩을 출시한 이래 10여 년간 메모리 시장은 인텔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일본 반도체가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위기가 닥쳐왔다. 그때 앤디 그로브의 진가가 발휘됐다. 메모리를 포기하고 CPU만을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텔= CPU’의 등식이 성립하는 새로운 인텔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참고; 이병철의 도전, 반도체)    그 무렵 실리콘밸리를 둘러보던 동방의 작은 나라 기업가가 있었다. 이병철이었다. 18년만의 처음 미국 나들이였다.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휴렛팩커드 사무실이었다. 직원들이 컴퓨터 하나로 계산, 기획, 보고까지 거의 모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는 컴퓨터와 반도체에 관해서는 늘 신문기사를 놓치지 않고 많은 자료를 보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정신이 확 들었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리라 직감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병철은 반도체사업 기획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기획안에는 반도체 중 메모리 분야는 오히려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한 개 라인을 건설하는 데 무려 1조 원이나 들었다. 그에게 일본은 경제발전 단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교과서였다. 일본은 이전 해보다 100억 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불과 2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일본이 이런 성장을 한 것은 반도체 덕분이었다.    1983년 3월 15일자 중앙일보에는 삼성의 새로운 도전을 밝힌 기사가 실렸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인텔’은 이병철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꼬았다. 이병철은 담담하게 반도체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바로 그해 64KD램 개발을 완료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개발이었다.  12월 12일 삼성은 64KD램을 처음으로 수출했다. 공장도 지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의 나이 74세 때였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도체는 바로 수익을 볼 수 있는 산업은 아니었다. 이병철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삼성을 글로벌기업으로 만들었다. 2017년 삼성전자는 반도체분야에서 인텔을 추월하고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로 자리매김했다.(출처; 중앙일보, 이병철 이야기, 2013.3.6 등)

박동운

마거릿 대처, 문재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쓴 글?   마거릿 대처가 쓴 『국가경영』(원명: Statecraft, 2002)을 읽노라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좌파정치가들은 처음부터 ‘왜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추가로 돈을 더 가져와야 하는가?’라고 묻는 대신 ‘그게 왜 안 돼?’라고 말한다. 도처에 존재하는 그런 정치가들의 눈에 부(富)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이며, 우리의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다.”(번역서 553쪽)   인용 글은 마치 마거릿 대처가 문재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원전 중단 비용 1,000억 원도 세금 풀어 충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을 3개월 동안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최종 결정은 3개월 후에 나온다. 그런데 3개월 동안의 중단 비용이 무려 1,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당연히 세금으로 충당하게 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부작용’을 세금 4조 원 풀어 해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현행 6,470원을 1만 원으로 올리기로 한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일차적으로 2018년 최저임금을 16.4% 오른 7,530원으로 확정했다. 최저임금이 2020년에 1만 원이 되는 것은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최저임금이 이렇게 많이 오르면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이 저임금 일자리를 줄이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모든 정책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내포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그 대표적 예다. 문재인 후보는 표를 얻기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만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엄청 줄어들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은 1894년 뉴질랜드가 맨처음 도입한 후로 인상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쓴 나라는 한국뿐이다.     정부는 세금 4조 원을 풀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은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이렇게 오르게 될 것이므로 정부는 앞으로도 4조 원, 또 4조 원을 풀어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을 지원할 것이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올까?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기 위해 연 소득 5억 원 이상에 적용되던 소득세 최고세율 40%를 3억 원 이상으로 낮게 조정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여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기본철학이다.   문재인 대통령, 세금 풀어 공무원도 늘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4조 원을 풀어 공무원과 공기업 일자리 80만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놓고, 나는 세금 4조 원이 아니라 40조 원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금 풀어 공무원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김진표 기획위원장의 말대로 ‘정부가 고용주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더 가져오는 것이 왜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더 가져오는 것이 왜 안 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부자들은 소비를 줄여 경제는 침체에 빠질 것이다. 최저임금총액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임금총액의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 소득주도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것은 헛된 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저임금 근로자가 실직하고, 세금만 낭비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시작에서 인용한 글의 내용은 마거릿 대처가 문재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맞는 것 같다.   

홍익희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느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중략)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신명기 33장 1, 19)   여기서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모래를 콕 찍어 가르쳐주며 그의 후손들을 축복했다. 모세는 세상의 하고 많은 물질 가운데 왜 모래를 지목해 후손들에게 모래로부터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라고 했을까? 그런데 실제로 모래는 이후 많은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모래로 유리 만들어   가나안 사람들은 모래를 갖고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들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 가나안 사람들을 페니키아인이라 불렀다.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고대의 유리는 금보다 더 귀한 보물이었다.    유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플리니우스의 제36권에 쓰여 있다. "어느 날 천연소다를 교역하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시리아의 베리우스 하구 모래밭에서 천연 소다석을 솥의 받침대로 사용하여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불을 피웠다. 불길이 너무 강해 소다석과 흰 모래가 한꺼번에 녹았다. 이게 다시 굳으면서 투명한 물체 유리가 만들어 졌다."    그 뒤 페니키아는 유리제품 수출로 번영을 누렸다. 이는 모세가 말한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는 축복의 첫 실현이었다. 로마 시대 베네치아 유리세공업자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유리, 안경과 거울 그리고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진화    그 뒤에도 모래로 만든 유리가 우리 인간에게 베푼 축복은 많았다. 유리는 유리창 이외에도 용도가 참으로 많다. 1세기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에오스는 유리로 물건을 확대시켜 볼 수 있는 돋보기를 만들었다.    그 뒤 13세기에 이탈리아 수도사에 의해 유리를 이용해 안경이 만들어졌다. 이후 안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좀 더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레가 인간에게 건네 준 큰 축복의 하나였다.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난 스피노자도 안경알 만드는 게 직업이었다.    이후 유리는 거울로도 진화했다. 1317년에 베네치아의 유리공이 수은 아말감을 유리의 이면에 부착시켜 거울을 만들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좀 더 확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16~17세기에 안경 제작자들이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이용해 현미경과 망원경을 만들어내어 그간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많은 걸 보게 해주었다. 이로써 과학과 의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현미경은 육안으로 안보이던 세균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하여 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현대 들어서도 유리와 거울의 활약은 눈부시다. 에디슨에 의해 유리로 만든 전구와 필라멘트가 전기를 빛으로 바꾸었으며 형광등도 유리로 만들어졌다. 유리가 없었으면 밤에 빛을 밝히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도 모두 유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거울 역시 다방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거울과 렌즈를 결합해 탄생한 게 카메라이다. 카메라에서 거울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반사시켜 필름이나 이미지센서에 상이 맺히도록 해준다.    또 거울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전자기파도 반사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레이저'에 거울이 쓰인다. 레이저는 가늘고 긴 레이저 봉 양쪽에 반사거울을 달고 그 사이에 매질을 채운 후 외부에서 에너지를 줘서 빛을 발생시키는 원리이다. 위상과 파장이 같은 빛이 양쪽 거울에 반사돼 무수히 왕복하면서 빛이 증폭돼 강력한 레이저광선이 뿜어져 나온다. 레이저광선은 빛이 주위로 퍼지지 않고 앞으로 멀리 나아가는 직진성이 좋다. 레이저는 바코드, CD플레이어, 프린터, 광통신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거울이 대활약을 하고 있다.     모래에서 추출하는 실리콘, 정보화시대 열어    모래의 축복은 계속되었다.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을 모래에서 추출한 것이다. 실리콘(Silicon)은 모래에 있는 규소(Si)의 영어 이름이다. 규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 중 산소 다음으로 많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다. 이름이 실리콘밸리라고 붙여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 페어차일드 등 반도체 회사와 연구기관들이 이곳에 반도체 제조단지를 형성했다. 반도체재료인 '실리콘'과 산타클라라 '밸리'(계곡)에 위치한다 하여 ‘실리콘밸리’라 이름 지어졌다.    1970년대에는 미국 반도체회사 45개 가운데 40개가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이후 실리콘밸리는 신기술 창업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반도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시대를 열었다. 모세의 축복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 탄생 이면에 6.25 전쟁    실리콘밸리 탄생 이면에는 6.25 전쟁이 크게 한 몫 했다. 당시 스탠포드 대학에는 2차대전 당시 하버드대 전파연구소를 이끌었던 프레데릭 터먼 교수가 있었다. 그는 1944년 스탠포드대로 돌아와 공대학장으로 임명되자 하버드대 전파연구소 연구원들 다수를 스탠포드대로 영입했다. 더구나 스탠포드 대학 인근에는 미 정부가 1930년에 건설한 방위산업단지가 있었다.    이런 연유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탠포드 대학은 동부 유명대학들을 물리치고 대학 내에 군과 협력하는 전파연구소가 설치되었다. 당시 미군은 소련 비행기와 잠수함, 핵무기를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전이 레이더 정보수집 등 전자전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미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자금을 지원 받은 스탠포드대 전파연구소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800명 연구인력으로 커져 레이더 정보수집 연구를 크게 발전시켰다. 연구성과는 대학 인근 군수산업체들을 통해 제품으로 만들어져 군에 공급되었다.    이렇게 군수산업에서 힘을 얻은 스탠포드 대학은 터먼 교수의 정책에 힘입어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첫 발을 내딛는다. 1953년에 80만평 부지의 스탠포드 연구단지가 건립되었다. 이 단지가 하이테크산업 성장과 벤처창업 붐을 일으켰다.    터먼 교수는 학생들에게 창업을 장려했다. 그는 스스로 대학주변 기업들에도 조언을 많이 했다. 대학교수가 관련기업 임원이 되는 것을 적극 권했다. 그는 대학이 소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창업하는 학생에게 과감하게 이양하는 정책을 단행해 학생들이 대학 소유기술을 이용해 창업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냉전시대라는 시대적 조류와 터먼 교수의 정책 덕에, 스탠포드 대학 주위에는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마이크로파 관련기업이 모여들어 마이크로웨이브밸리를 형성했다. 그러자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탈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어울려 함께 성장하면서 반도체회사들과 터먼 교수 제자가 만든 휴렛패커드(HP)를 비롯한 IT기업들이 모여들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시절 한국 정부는 스탠포드 산업단지의 성공을 한국에 이식하기 위해 터먼 교수를 초청했다.  이후 터먼 교수가 중심 역할을 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대덕연구단지가 설립되었다. (출처; 이동희, 테크홀릭 최필식 기자 등)     규소가 태양전지 원료로    재미있는 점은 모래의 규소가 또 다시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는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와 전기를 전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자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부도체처럼 전기가 잘 안 통한다. 하지만 온도의 변화나 혹은 불순물이 섞여있는 경우 전기를 통하게 하는 성질이 증가된다. 특히 규소는 이러한 성질이 강해 반도체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질 때문에 규소가 태양전지 원료로 쓰이고 있다. 태양전지는 빛을 흡수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는 장치로 태양만 있다면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초기 태양전지는 셀레늄을 이용했는데 효율이 1~2%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태양전지 개발은 셀레늄을 실리콘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1954년 벨연구소가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를 만들어 효율을 4%까지 끌어올렸다. 태양전지 효율은 계속 좋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20%대에 머물러 있다.    태양광 발전의 진화는 이제부터이다. 2002년 이래로 발전효율의 향상과 발전량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2년마다 태양광 전기생산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3년 후면 세계태양광 시스템 평균가격이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 곧 태양광 발전단가가 화석연료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시점에 진입할 것이라 한다.    더구나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태양광지붕과 태양광도로, 태양호수와 태양광 논밭. 태양광식물공장 등 그 발전 여지는 이루 다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실리콘 기반 광섬유도 개발됐다. 인간이 광섬유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기가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래학자들은 태양광 발전이 향후 전기요금을 제로로 수렴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마치 그리 비쌌던 국제전화 요금이 이제는 제로로 수렴하듯이.    과연 모래의 축복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신상목

7월 15일 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확정된 가운데 근로자 위원들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그 대책이라며 추가분 정부 지원 방침을 내놓은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정책을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해도 되는가?   최저임금과 정부의 임금 보전을 연동시키는 것은 일종의 보조금 제도 창설이다. 반드시 세금의 사용이 전제되는 제도이다. 농업 종사자에 대한 보조금, 교육기관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 유지, 형평성, 약자 보호의 관점에서 불가피하게 세금 징수로 확보된 자원을 재분배하는 '제도'의 창설이다.   그 구체적 비율이나 액수를 행정부가 위임을 받아 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는 제도를 창설하는 것은 대의기관인 국회에서의 논의와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고 본다.   올해는 16% 이상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지난 5년간 평균 상승율을 초과하는 인상분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질문한다.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10% 올랐다고 하자. 그러면 전년도 (즉 올해)의 대폭 상승분을 반영한 5년 평균치를 내어 차액을 보전해 줄 것인가? 그 다음 해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매출이 계속 제자리인 기업은 언제까지 보전해줄 것이며, 임금 상승을 가격에 반영해 수익에 지장이 없는 기업은 임금 보전으로 초과 수익이 발생하는데 그 기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근 몇 년 세금이 잘 걷혀 (미친듯이 걷어가) 재원에 여유가 있어 그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수가 부족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각종 보조금은 재원 마련을 위해 교육세, 농특세 등의 특별세를 두어 제도의 장기적이고 원활한 시행을 담보하는 조치를 반드시 선결과제로 처리한다. 최저임금 보조금 제도는 어떻게 운용한다는 것인가? 고용주들은 앞으로 어느 기간 동안, 어떠한 규모의 정부 보조를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러한 기대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최저임금 많이 올려 급하니까 불이익 계층 사람들에게 정부가 일단 선심쓰듯 쏜다? 정부 정책이 소꿉 장난인가? 영세 장삿꾼들이 모자라는 돈 보태준다니까 나왔던 입이 들어갈 것 같은가?   실제 시행 과정에서 많은 현실적인 문제와 부작용이 양산될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일거리를 누가 다 처리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각종 물타기, 도덕적 해이, 비리 등등 온갖 추잡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걸 방지하겠다고 행정력을 또 동원하고 낭비할 것이고.   정부 보조금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국정을 이렇게 저지르고 보자 식으로 운영하는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덧붙임) 차라리 최저임금은 그대로 두고 임금 수령자가 고용주한테 증빙서류 발급받아 관청에 가서 직접 신청, 수령하도록 해라. 고용주한테 모든 일처리 다 떠넘기지 말고.(자영업자들은 알바 일한 시간 일일이 계산해 관청에 신고하고 보조금 타먹을 여력도 없다. 아.. 그걸 전문으로 하는 대행 서비스 하면 돈 벌겠네).

박동운

▲ 왼쪽부터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 김현미 국토부장관,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 출처=뉴시스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문 정부 인사들이 발표하는 정책들이 ‘우습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은 세 가지 경우를 언급한다.   1. 김진표 위원장: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일자리 창출을 놓고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자리 창출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1순위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표 위원장의 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 마디로, 자유시장국가 대한민국이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   대표적인 자유시장주의자 밀튼 프리드먼이 사회주의국가 중국을 방문한 후 1981년에 쓴 글이다. 프리드먼은 방문한 공장 어느 곳에서나, 5명 이상의 노동자를 채용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계속 물어봤다. “본부에 요청하면 5명을 보내줍니다.” “5명 채용에 대한 선택권이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고용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실업자가 단 한 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가 고용주이기 때문이다.   2. 김현미 장관: ‘공기업의 기준은 공공성이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공기업의 기준은 공공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교육·공공·금융을 대상으로 추진한 4대개혁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공기업의 기준은 ‘공공성’이라는 김 장관의 말은 세계적인 추세에 어울리지 않는다. 공기업 탄생의 이론적·역사적 배경을 보자.   전기, 고속도로, 물 같은 덩치 큰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상품 생산을 민간에 맡겨 경쟁을 시키면 독점기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 같은 상품 생산을 민간 기업에 맡기는 대신 ‘공공성’이라는 명분으로 내세워 직접 생산한다. 이는 모든 나라에서 국영기업 또는 공기업 탄생의 이론적 배경이다.   1940년대에 들어 유럽 선진국들은 사회주의 열풍에 휘둘려 경쟁적으로 민간 기업을 국유화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한 때 민간 기업을 국유화한 후 민영화했다가 다시 국유화한 기록도 갖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1980년대에 들어와 최초로 추진하여 가장 성공한 경우로 인정받고 있다. 대처는 구조개혁 차원에서 3단계에 걸쳐 공기업 48개를 민영화했다.   공기업은 경쟁할 필요가 없고, 적자가 나도 세금으로 보전되므로 적자를 염려할 필요가 없고, ‘공공성’을 내세워 원가 이하 가격으로 공급하여 국민의 박수만 받으면 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세금이 늘어나고, 정부부채가 늘어나 큰 정부가 등장한다.   그래서 대처는 공기업 민영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는? 효율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 예로, 당시 대처가 추진한 민영화로 ‘영국항공’은 민영화 6개월 만에 생산성이 50%나 뛰어 올랐다. 그래서 대처는 ‘영국을 공기업 민영화를 세계 최초로 수출한 국가로 만든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복지국가 스웨덴을 비롯하여 선진국들은 공기업 민영화에 박차를 가해 오고 있다. 공기업의 기준은 ‘공공성’이라고 말한 김현미 장관은 194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3. 이용섭 부위원장: ‘시장실패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장실패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장실패’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자원배분을 시장에 맡기면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되는데, 시장에 맡겨도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시장실패’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경우는 여섯 가지로 본다. 첫째, 독점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면 자원배분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독점을 규제한다. 둘째, 전기, 고속도로처럼 텅치 큰 사업을 시장에 맡기면 독점기업이 등장하여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 생산하려고 하여 공기업이 등장한다. 셋째, ‘국방’(예: 최첨단 전투기) 같은 상품 생산을 시장에 맡기면 수요는 있어도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여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상품을 ‘공공재’라고 부른다. 그래서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여 직접 생산한다. 넷째, ‘오염’의 경우 오염생산자는 사적비용에만 관심을 갖기 마련이므로 ‘오염’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여 자원배분이 효율화될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오염세를 부과한다. 다섯째, 등록금 대출시장은 수요는 있는데 시장이 불완전하여 공급이 없다. 그래서 정부가 보증을 서고 특정 은행이 대출해준다. 여섯째, 중고차시장은 공급은 있는데 정보가 불완전하여 수요가 없다. 그래서 정부가 ‘인증제’를 실시하여 정보를 완전하게 갖춰준다.   ‘시장실패’ 이론은 ‘시장실패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용섭 부위원장의 말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밝혀준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식으로 국가를 관리하겠다는 뜻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는 김진표 위원장의 말이나, ‘공기업의 기준은 공공성이다’는 김현미 장관의 말이나, '시장실패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용섭 부위원장의 말은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겠다는, 곧 사회주의식으로 국가를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신상목

민주노총 최저임금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등을 촉구하는 총파업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최저임금을 누구보다 올려주고 싶은 것은 나다.   요즘 젊은 세대 어쩌고 하지만, 이렇게 반듯하고 열심인 청년들 세계 어디 가도 없다. 내가 행운아여서 그런 청년들만 나와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규분포 곡선 그려놓고 비교하면 양 끝쪽 짜투리 빼면 가운데 몰려있는 친구들은 자세, 태도, 실력 모두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이 친구들 땀 뻘뻘 흘리며 궂은 일 마다 않고 미래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내가 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싶다. 까짓 시급 만원이 아니라 만오천원이라도 주고 싶다.   우리 가게에서 가장 용량이 크고 빵빵한 에어컨은 주방에 있다. 설비업자가 주방에 에어컨 설치해봐야 도움 안되니 차라리 다른데 설치하라고 하는걸 내가 우겨서 주방에 제일 큰 걸 집어넣었다. 주방안 열기를 다 가시게 할 수는 없지만, 에어컨 송풍구 앞에 서서 잠시 땀이라도 식히고 숨 돌리는 것만으로도 주방 직원들의 근무조건은 크게 향상될 것이라 믿었고 실제 그렇다.   모든 주방은 겨울보다 여름이 힘들다. 우리 직원들은 여름을 겁내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별거 아니지만 제한된 자원의 배분에서 경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을 해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인정받고 싶다.   가게 처음 오픈할 때 직원들 주5일 근무가 목표였다. 주변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코웃음을 쳤다. 주5일 근무 직원들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실제 그랬다. 창업 초기 이건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특급 호텔급이나 되어야 가능한 주5일 근무를 쥐뿔도 없는 개인 식당이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급과 수요의 맥을 잡아 불필요한 일/메뉴 줄이고 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효율을 낼 수 있도록 개선하고 또 개선했다. 창업 4년차가 되면서 노하우가 쌓이고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차츰 주5일제를 시행했다. 지금은 모든 직원들이 주5일 근무가 원칙이다. 직원들이 충분히 휴식 취하고 재충전해가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동계/하계 휴가도 주고, 명절 휴가도 주고.. 등등 일반기업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바닥에서는 쉽지 않았던 일을 어떻게든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모두 팀웍도 느끼고 자부심도 느끼고 그러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나는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한다. 경영자가 그런 입장이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았지만, 막상 현실이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직원들 급여이다. 생각 같아서야 팡팡 올려주고 싶다.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급여 받게 해주고 싶다.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좋은 생활하도록 챙겨주고 싶다. 그러나 급여 문제는 에어컨이나 휴무 문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것은 우리끼리 으쌰으쌰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만, 급여는 내가 주고 싶어도 잔고가 없으면 줄 수가 없다.   매출이 늘어야 급여를 올려줄 수 있다. 매출을 늘리려면 (직원들의 근무조건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미시적으로 보면) 경영자들에게는 엄청난 불확실성이다. 가격을 올려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소비자에게 외면 당해 그대로 망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경영주에게 강요하면서 "한계상황에 있는 기업들은 어차피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이니 도태시켜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함부로 한다. 월급 한 번 줘본 적 없는 교수가, 관료가, 기자가, 활동가가 남의 일이라고 개미 새끼 밟는 것보다 더 아무렇지도 않게 없어질 업체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세상의 부조리를 온 몸으로 체감한다.   가장 직원들 급여 올려주고 싶은 것은 나다. 뭔 권리로 급격한 불확실성을 강요하며 경쟁력이 있느니 없느니 운운하고 도태됨이 마땅하다고 사망 선고를 내리는지 나로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덧)소비자가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는데, 최저임금만 올리면 그만큼의 비용.차액은 누가 지불하는가? 그걸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경영자는 그냥 사라지는게 맞는건가?

우태영

부자 연구가인 미국의 토마스 콜리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의 상당수는 남을 위해 일하는 피고용인들이라며, 비범한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7가지 법칙을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더 온라인에 기고했다.   그는 지난 5년간 233명의 부자들을 상대로 ‘부자들의 습관연구’를 진행했다. 그 중 177명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 백만장자의 기준은 1년 총수입이 16만 달러 이상, 순자산은 320만 달러 이상. 한국으로 치면 1년 세전(稅前) 수입이 대략 1억8천만원, 순자산은 35억원이면 미국 기준으로 보아도 백만장자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라면 흔히 대기업이나 첨단 기업을 일구어낸 정력적이고 천재적인 인물들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콜리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 가운데 39%는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서 성공한 월급쟁이 부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회사생활을 잘 해내서 월급쟁이 부자를 넘어 월급쟁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콜리는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7가지 성공법칙을 찾아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회사에서 남들보다 더 오래 근무한다. 이들은 회사에서 1주일에 평균 51시간을 일한다. 월급쟁이 백만장자의 54%는 다른 월급쟁이들보다 3시간 일찍 출근하여 근무하기 시작한다.   2.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자리에서 일한다. 이들의 일하는 자리는 품이 많이 들고, 난관이 많고, 더 많은 시간과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들이 기피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회사의 의사결정자들과 강력한 유대를 맺고 있다. 이들은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내부의 고위 경영진들뿐만 아니라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나 단체(노동조합, 자선단체, 비영리단체 등)의 고위 인사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4.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책임지는 일을 더 많이 떠맡는다. 자신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거나 기존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다른 고위인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맡아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 지식, 그리고 근로윤리를 회사에서 매일 함께 일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5.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인내와 끈기를 발전시킨다. 월급쟁이들 가운데 승진에 뒤쳐지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자가 된 월급쟁이들은 끝까지 회사생활을 열심히 해서 결국은 소망하는 승진을 하고 만다.   6.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감정을 통제할 줄 안다. 이들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기르며, 절대로 화를 내는 법이 없다.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이 때문에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승진이 빠르다.   7. 월급쟁이 백만장자들은 남을 헐뜯지 않는다. 이들도 회사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 관한 소문을 옮기고 뒷담화를 깐다. 그럴 때도 이들은 다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 사람에 대하여 좋고, 긍정적인 내용을 이야기 한다. 뒷담화는 내용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 대하여 좋은 점만 말하게 되면,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호감이나 신뢰감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우태영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동등하게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는가? 영국 인디펜던트 온라인은 최근 부자가 되는 길에 적신호가 될 수 있는 9가지 습관을 소개하였다.   1, 저축에만 집중한 나머지 돈 버는 데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부자가 되려면 저축을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저축에만 집중하다 보면 돈 버는 일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부자들은 돈 버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시볼드는 “대중은 할인쿠폰을 모으거나 검소하게 사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에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실질적인 저축전략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부자들처럼 생각하려면, “돈 떨어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발 수 있는가를 고민하라”고 그는 충고한다.   일부 재테크 전문가들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번 돈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돈을 가지려면 우선은 벌어들여야 한다. 백만장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수입을 다변화하여 산뜻하게 저축하는 습성을 기른다는 것이다.     2, 투자를 시작하지 않는다.   시간이 경과하여도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인 ‘당신이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의 저자 라미트 세티는 “백만장자들은 매년 가계수입의 20% 정도를 투자한다. 그들의 재산은 연소득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저축하고 투자하는 형태에 따라 측정된다”고 말한다. 투자할 돈을 많이 챙겨놓을수록 좋지만, 복리이자 덕분에 적은 돈으로도 오랫동안 투자할 수 있다.   3, 월급이 꾸준히 들어오는 데 만족한다   보통 사람들은 정기급여나 시간제 수당같이 정해진 때가 되면 급료를 받는다. 그러나 부자들은 성과에 따라 보상받기를 선호하며, 스스로 사업을 일으킨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돈 버는 인물 가운데 근무시간을 기록하고 정해진 급료를 받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가장 안전한 방식이긴 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시볼드는 말한다. 백만장자들은 스스로 사업을 벌이는 것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시볼드는 톱 클래스의 인물들은 계속 사업을 벌이며 돈을 쓸어담지만, “대중들은 적당한 월급과 연례적인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는 직업에 안주하며 재정적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4,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을 사들인다.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생활수준을 높여서는 안된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인 그랜트 카돈은 “나는 사업과 투자가 다양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창출하기 시작한 다음에야 비로소 고급시계와 고급차를 샀다”고 말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된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도요타 캠리를 몰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근로윤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 당신이 무슨 귀중품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5, 당신 자신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추구한다.   성공하고 싶으면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 이는 당신의 열정을 추구하라는 의미이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을 5년간 연구한 토마스 콜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꿈을 추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모의 꿈을 추구하는 것.   그는 ‘습관이 바뀌면 생활도 변한다’는 책에서 “다른 사람의 꿈이나 목표를 추구하면 결국에는 당신이 선택한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신이 이룬 실적과 얻는 보상은 이를 반영하며, 당신은 결국 재정적 겨우 버텨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성공에 필요한 열정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6, 안전한 생활영역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부자가 되려면 남들보다 성공하든지, 앞서 가든지 해야 한다. 이는 불확실하고 불편한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자들은 불확실한 가운데에서 안정감을 얻는 특징이 있다. “육체적, 심리적, 감정적 안정은 중산층의 가장 큰 목표”라고 시볼드는 말한다. 그는 그러나 “세계적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안락함은 일을 망치게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있다. 그들은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고 말한다.   7, 돈에 대한 목표가 없다.   돈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려고 일해야 돈을 벌 수 있다. 부자가 되려면 분명하고 특별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부자가 되려며 집중력, 용기, 그리고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확한 목표와 분명한 비전이 있어야만 이러한 일들이 가능해진다고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인 T.에커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부자들은 자신들이 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고 단언한다.   8, 먼저 소비하고, 남은 돈으로 저축한다.   부자가 되려면, 당신이 가장 먼저 대가를 치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돈 1달러라도 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아무한테나 쓰는 것”이라고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인 데이비드 바크는 저서 ‘자동적인 백만장자’에서 주장한다. “사람들은 토지소유자, 신용카드회사, 통신사, 정부 등에 끊임없이 돈을 지불한다”는 이야기.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저축해야 한다. 세전(稅前) 전체수입에서 최소한 10%는 자동적으로 저축되도록 하라고 바크는 강조한다. 이 돈은 보지도 못하게 될뿐더러, 이 돈 없이도 살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바크는 말한다.   9,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일은 운좋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고 시볼드는 말한다. 그는 이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의지만 있다면 당신도 부자가 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할까?”하고 자문하라고 권한다. 그 다음에는 크게 생각하라(start thinking big)는 것. 부자들은 스스로의 기대치를 높인다. 나라고 1백만달러를 벌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김동연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비의 줄임말로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것을 뜻한다. 물건을 살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자동차처럼 가격이 비싸고, 한번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가성비를 따지는 게 보통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런 가성비 좋은 자동차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산차들은 날이 갈수록 가격이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입차의 경우 해외에서는 동일 모델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음에도 국내에 들어오는 순간 가격이 배가 되는 게 다반사다. 가성비를 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국내와 달리 해외 자동차 시장에서는 가성비가 우수한 차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런 차들을 국내에도 팔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언제 판매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차들이 있는지 알아나 보자.      50만 대 이상 판매한 2인용 후륜구동 오픈카, 마쓰다 MX-5  마쓰다 MX-5 미아타 RF. 사진=미국 마쓰다 홈페이지  첫 번째로 소개할 가성비 갑은 마쓰다의 MX-5다. 미아타(Miata)로도 불리는 이 차는 마쓰다의 역작이자, 최고 히트작이다. MX-5는 2인승 오픈카다. 사실 이런 자동차는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극소수만이 찾는 차다. 마치 미혼의 젊은 남성, 돈 많은 중년의 남성 정도만을 타깃으로 삼고 만든 것 같은 차다. 상품성으로만 보자면, 제작사에서 크게 이윤을 낼 차라기보다는 곁가지로 만들 만한 차다.    그런데 마쓰다는 소수만이 찾을 것 같은 이 차를 단돈 1500만~2000만원에 판매해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고객층까지 끌어모았다. 마쓰다는 이 차를 미국에서 판매해 대히트를 쳤다. 실제 MX-5의 오너들을 보면 나이와 성별이 다양하다. 남녀노소라는 말을 적용해도 될 만큼 갓 면허를 딴 10대 청소년(미국 기준), 20~30대 젊은이에서부터 40대 이상 중년, 60대 이상 백발의 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 차를 탄다.    이 차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일단, 가격적으로 거부감이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지붕이 열린 자동차를 타고 달리고픈 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꿈을 이루기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오픈카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 웬만한 오픈카의 가격은 5000만원 이상이고 럭셔리 브랜드는 1억 원 이상을 한다.    그런데 2000만원 내외라면 ‘한 대 정도 사볼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특히 미국처럼 1인 가구당 소유 차종이 2대 이상이고 용도별로 차를 사는 환경에서 세컨카로 오픈카 한 대 정도는 고려해 볼 만하다. 차량 신차 가격 자체가 저렴하다 보니, 차량의 유지비도 저렴했다.    부품가격과 수리비용이 비싸지도 않았다. 마쓰다 MX-5는 2000년 기네스북에 가장 많이 팔린 2인용 오픈카로 등재되기도 했다. 2000년까지 판매대수는 53만1890대였다. 보통 2인용 오픈카의 경우 연간 판매대수가 1000대 이상 되기 힘들다.    마쓰다는 저렴한 오픈카를 만들었다고 해서, 허접한 오픈카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마쓰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할 만큼 뛰어난 성능의 차를 완성했다. 물론 최고출력이 100마력을 조금 넘는 정도지만 소형의 경량차이기 때문에 공차중량이 1000kg이 넘지 않는다.    고성능 스포츠카라기보다는 데일리 펀카(fun car)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재미있게 몰 수 있는 차를 말한다. 마쓰다의 MX-5가 사실 이러한 펀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장점 때문에 1989년 만들어진 MX-5의 명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MX-5의 4세대 모델(ND)이 2015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것이다. 모델연식은 2016이 붙는다.    새로 선보인 MX-5는 2.0 4기통 엔진의 경우 160마력을 뿜어내 1세대보다는 강해졌지만 2세대나 3세대와는 거의 동일한 출력을 보인다. 무게도 1000kg대로 비슷하게 유지해 여전히 MX-5만의 펀카를 지향한다. 이번에 선보인 모델 중 RF 버전은 하드톱을 가지고 있어 기존 천으로 된 소프트톱과 차별화했다.    새로 출시한 MX-5는 여러 자동차 전문지에서 평가하기를 최고의 명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격은 과거보다는 올랐지만 여전히 2500만~3000만원 정도에서 판매되고 있어 접근장벽이 낮다. 국내에 판매가 되었으면 하는 차 중 하나다.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은 미국에서 직수입하기도 해 국내에도 몇 대가 들어온 상태다. 올해 안에 마쓰다 브랜드가 한국에 문을 열 것이라는 업계 소식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나온 게 없다.      동급 최저가로 최고의 성능을 선사하는 포드 포커스 RS  포드 포커스 RS의 옆모습, 브레이크가 브렘보다. 사진=포드 미국 홈페이지  두 번째 가성비 갑은 포드 포커스 RS다. 국내에 포드가 들어와 있음에도 팔지 않는 모델이다. 그래서 더 끌리는 차다. 언제나 팔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차를 팔지 않는 건 아마도 트랜스미션이 수동 기어박스밖에 없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특이할 정도로 99% 정도가 오토매틱 차량이다. 실제 국내 한 수입차 업체에서 스포츠카 모델을 가져오면서 수동 기어 차량을 들여왔는데, 몇 년 동안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과거 국내 포르쉐에서는 수동차량을 전시장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오토매틱(PDK, 듀얼클러치 타입)만 들여오는 실정이다. 이 포드 포커스 RS의 미국 판매가격은 약 3만7000달러로 한화로는 4000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4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수입차가 많은 거 같지만, 막상 구매를 고려하면 많지도 않다. 대부분 준중형 이하이고 성능으로 봐도 출력도 200마력 내외다.    시동을 걸고 주행을 하기 시작하면 4000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바로 느끼게 된다. 차의 보닛 아래서 맹수가 울부짖기 시작하고 시트 안에 몸이 박힐 듯한 가속력을 느끼게 된다. 포커스 RS는 최고출력이 350마력이고 항시 4륜구동을 탑재하고 있다.    차량의 시트는 이탈리아의 유명 시트 제작사 레카로(Recaro)의 버킷시트가 달려 있고, 브레이크는 ‘멈춤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의 브렘보(Brembo) 브레이크가 탑재되어 있다. 포드 포커스 RS와 비슷한 성능의 차를 찾아보면 아우디 RS3 스포트백, 벤츠 A45 AMG 등이 있다. 이 차들의 가격은 최소 6000만~70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일부분 성능은 오히려 포커스 RS보다 떨어진다. 이 차가 가성비 갑인 이유다. 독일산 차보다 저렴하면서도 동일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내기 때문이다.    그럼 혹자는 말할 것이다. ‘포드는 미국 차니까 당연히 독일 차보다 싼 거지’라고. 그런데 놀라운 비밀 하나가 있다. 포드 포커스 RS는 포드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특수한 모델만은 전량 독일에서 제작한다. 즉 브랜드만 미국일 뿐 생산은 독일이기에 엄연히 ‘Made In Germany’다. 이를 종합하자면 포커스 RS는 독일산 고성능의 바겐세일인 셈이다. 참고로 이 차에는 드리프트 모드도 있다. 모드를 활성화하면 차를 쉽게 미끄러트릴 수 있다.      전륜구동의 최고봉, 혼다 시빅 타입 R  혼다 시빅 타입 R.사진=혼다 영국 홈페이지  마지막 가성비 갑은 혼다 시빅 타입 R이다. 이 차도 앞서 포커스 RS와 유사하게 국내에 혼다가 들어와 있음에도 팔지 않는다. 혼다코리아는 타입 R의 수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역시 타입 R도 수동 기어박스만 탑재하고 있다. 차량의 해외 판매가를 국내 한화로 환산하면 포커스 RS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4000만~4300만원 정도다. 타입 R은 독일의 유명 서킷인 뉘르부르크링에서 양산 전륜차가 깨기 어렵다는 8분대 벽을 깬 차 중 하나다. 무려 7분50초대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출력은 310마력, 최대토크 40.8kg.m이며 제로백은 5초대다. 이번에 만든 타입 R은 2.0 VTEC엔진에 터보차저를 처음으로 장착했다. 이 차는 앞서 포커스 RS와 달리 전륜구동 차량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는 고성능 차다. 이 모델도 특수한 모델로 레이싱카 제작을 잘하는 영국에서 전량 생산한다. 영국산 고성능차를 사려면 배 이상의 돈이 든다. 영국 로터스나 애스턴마틴의 모델은 대부분 억대의 차들이다. 즉 타입 R은 영국산 고성능의 바겐세일이다. 앞으로 가성비 갑인 차들을 국내에서도 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동운

2017년 6월 4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GS건설이 짓는 그랑시티자이 2차 모델하우스. 주말(2~4일) 사흘 동안 5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조선DB  ‘전월세 상한제 도입’은 부작용이 따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본격 추진하신다구요? 현행 ‘2년 계약 기간에 연간 임대료 인상 폭이 5% 이내로 제한 된’ 것을, 계약갱신 청구권을 도입하여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군요. 저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 반대 글을 칼럼과 책에서 열 번 이상 써왔습니다. 그래도 또 씁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가져오게 될 부작용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전월세 임대료가 안정될 때 세입자는 또 피해를 봅니다   첫째,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주택 공급이 수요와 일치하여 전월세 임대료가 안정될 때가 옵니다. 그 때에도 개정된 법에 따라, 전국의 집주인들이 정부가 ‘연간 임대료 인상폭을 5% 이내로 정했다’며 5% 인상을 고집할지도 모릅니다. 임대료가 떨어져야 하는데도 5%에 묶이게 된다면 세입자들은 또 피해를 보게 됩니다. 저는 이를 가장 우려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사유권을 침해합니다   둘째, 계약청구권 도입으로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면 정부가 국민의 사유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어떤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에도 집을 팔 수 없고, 반드시 팔아야 할 경우에는 세입자에게 보상해 주어야 하겠지요. 정부가 국민의 사유권을 이처럼 침해해도 되나요? 집주인이 항상 ‘갑질’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대료 규제는 오히려 임대료 인상을 부추깁니다   셋째, 전월세 임대료 규제는 치킨가격처럼 일시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전월세 계약은 일 년 내내 이뤄지므로 집주인은 4년 동안 20%밖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신규계약 때 많은 임대료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한 ‘영세상인을 위한 임대차보호법’이 그 사례입니다. 이 법이 도입되기도 전에 영세상인 관련 임대료가 85%나 올라버렸으니까요.   수요에 맞는 주택공급 정책 수립이 대안입니다   그래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대안을 제시합니다. 앞으로 주택 수요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예측한 후 주택 공급정책을 세우십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 대신 수요와 공급이 잘 들어맞는 주택정책을 세워 주택 공급을 늘려간다면 문재인 대통령님은 훗날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전월세 상한제 도입’ 제발 그만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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