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내가 1992년 마드리드무역관 근무할 때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지만 스페인 공영방송들은 올림픽 중계를 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지방 행사를 굳이 전국적 방송망인 공영방송에서 중계할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굳이 경기를 보고 싶은 사람은 유료 스포츠채널을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는 달랐다. 올림픽 보다 10배, 100배 열광하는 게 월드컵이다. 유럽인들과 중남미 사람들의 축구사랑은 상상을 불허한다. 축구가 곧 고향 사랑이자 나라 사랑이다. 축구가 곧 그들의 종교이자 축제의 한마당 한풀이이다.    일례로 중남미에서는 축구 경기하다 전쟁으로 치달은 적도 있다. 유럽의 축구 열기 역시 중남미에 못지않다. 마드리드의 ‘레알 마드리드’ 팀과 바르셀로나의 ‘FC 바르셀로나’ 팀의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도심이 마비된다. 응원단들 간의 패싸움 등 만약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도심지 경비가 삼엄해지고 대중교통조차 통제되어 마드리드 구장 맞은편에 위치한 무역관 직원들은 이런 날은 일찍 퇴근해야 집에 갈 수 있다.    그들에게 축구는 그대로 자기고향의 이미지와 국가이미지를 대변한다. 유럽인들이 축구에 목을 매는 이유이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한국 팀이 4강에 들어간 후, 비록 편파 심판에 대한 야유도 컸지만, 유럽인들에게 한국 이미지가 새롭게 각인되어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크게 올라갔다.    국가브랜드 이미지는 한 국가의 경제적 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에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은 대부분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브랜드 이미지가 받쳐주어야 상품 브랜드 이미지가 더 돋보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브랜드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2002 월드컵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상품이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대우받게 된 계기의 하나였다. 당시 현지에서 무역관장으로 근무하면서 느꼈던 감회이다.    아마 이번에도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과 중남미에서의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2002 월드컵 이상으로 크게 올라갔으리라 짐작된다. 한국이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전차군단을 격파한 것은 비록 탈락했지만 월드컵 역사에 분명한 한 획을 그었다. 두고두고 그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수출상품의 브랜드 가치에도 직결될 것이다. 특히 홍보력이 약한 중소기업 수출상품이 덕을 볼 공산이 크다. 한국산이니까. 게다가 유럽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도 달라질 공산이 크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쉽게 볼 민족이 아니라고.

박동운

자충수(自充手)라는 말이 있다. ‘바둑을 둘 때 자기가 돌을 놓아 자기 수를 줄이는 것’을 뜻한다.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저소득층 소득도 줄어들어, 문재인 정부 출범 1여 년 만에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이 심화되었다고 ‘모든 전문가들’이 아우성치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정책의 긍정 효과가 90%’라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력과 경력으로 볼 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미국에서 정통경제학을 전공한 경제 관료이고, 장하성 정책실장은 역시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전직 교수다. 그런데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을 곁들인다면, ‘최저임금’은 학문의 성격상 경제학의 전유물(專有物)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경제학원론 교과서에는 ‘최저임금’이 들어 있는데,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은 경제이론(구체적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설명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은 ‘단기(短期)에서 저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인다’는 것이 경제학원론의 공통적인 내용이다.   나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경제학원론 내용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얼마 전 노동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대선 공약 실천을 내세워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향해 첫 해에 16.4%를 올린 바람에,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는데도 장하성 실장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아니다’라고 했고, 그러한 장하성 실장의 손을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줬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여 년 만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되었다. 지니계수는 작년보다 0.009 증가했고, 소득 하위 20%의 근로소득은 2015년보다 9.8% 감소했다. 소득양극화나 소득불평등 심화는 더디게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 출범 1여 년 만에 나타난 이 같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하다.   장하성 실장을 제외하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물론 모든 경제 전문가들도 ‘아니다’고 하는데도 장하성 실장은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도 ‘최저임금 정책의 긍정 효과가 90%’나 된다고 주장한 것은 확실히 문제다. 잘못된 장하성 실장의 말만 믿고 ‘자충수’로 국가경제를 관리하는 문재인 대통령,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는가?

홍익희

I. 비트코인 탄생 비화   암호화폐는 그 자체만으로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명색이 화폐임에도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우선 변동성이 심하다보니 교환매체로서의 안정성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가치척도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도 적당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암호화폐는 사기다.”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또 비트코인 같은 경우 아직까지는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다. 결재 때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처리용량이 형편없이 적다든가, 소액지불에도 많은 수수료가 드는 것 등은 굉장히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부당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암호화폐는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다. 1944년 케인즈가 브래튼우즈 회의에서 세계화폐의 사용을 주장한 이래 지난 40년간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암호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어온 결과의 총합이다.    인류사에서 화폐는 세 번에 걸쳐 전환기적 변화를 맞았다. 첫 번째는 ‘실물’화폐의 등장이고, 두 번째는 ‘신용’화폐(명목화폐)의 탄생, 특히 그 가운데 달러는 사상 초유의 글로벌 신용화폐에 해당한다. ‘신뢰’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는 세 번째 화폐혁명에 해당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만큼 의미 있는 변화다. 달러와 세계화폐의 대결 금융위기 속에 탄생한 비트코인   2008년 9월15일, 자본의 탐욕이 만들어낸 투기 버블이 터지던 날, 세계 4대 투자은행 가운데 두 개가 침몰해 세계를 경악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냈으며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팔린 날이다. 이를 기점으로 예금주들이 은행을 못 믿고, 은행이 은행을 못 믿는 신용위기의 공포가 세상을 덥치며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로부터 3개월 여 뒤인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정부나 중앙기관으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사이퍼펑크 운동’에 가담한 암호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돈 거래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일환으로 그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암호화폐를 개발하고 있었다.    서로를 못 믿어 돈이 돌지 않는 신용위기를 맞자 암호학자들은 개발하고 있던 암호화폐 발표 계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현대 통화제도의 모순과 금융자본주의의 적폐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화폐인 달러의 신용경색이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늪으로 떨어트리는 이러한 화폐제도는 이제 변해야 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암호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러한 공포와 혼란 시기가 암호화폐 발표의 적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리먼 쇼크 다음 달인 10월 말에 비트코인 백서를 암호화폐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공개했다. 여기서 그는 "나는 신뢰할 만한 제3의 중개인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히 당사자 간 일대일(P2P)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통화 시스템을 연구해오고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9쪽짜리 백서를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그 통화시스템을 비트코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두 달 후 2009년 정초(1월3일)에 사토시는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무료로 다운 받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공개했다. 사토시는 그가 채굴한 첫 번째 비트코인 일부를 할 피니에게 전송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P2P(peer-to-peer network)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보낸 것이다.    원래 P2P는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어 파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주로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했던 자료공유 방법이었다. 미국의 냅스터(napstar), 토렌트(torrent), 한국의 소리바다 등이 대표적으로 P2P방식을 이용해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고, 중간 서버 없이 파일 공유가 가능하며,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토시는 첫 비트코인을 채굴해 세상에 내놓으며, 제네시스(창세기) 블록이라 불리는 첫 블록에 메시지를 담았다. “The Times 3 January 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더 타임스》 2009년 1월 3일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이는 그가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발표한 날인, 2009년 1월3일 영국 더 타임스지에 실린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수십억 파운드의 긴급 구제자금을 추가로 투입할지를 고려중이라는 기사의 제목이었다. 사토시는 이처럼 기존화폐의 문제를 첫 블록 속에 영원히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해서 개인 간에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 이른바 중앙 집중방식에서 탈피한 ‘탈중앙화’ 화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은행에 귀속되지 않은 ‘세계화폐’가 탄생한 것이다. 그 뒤 동료개발자 할 피니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버그를 수정한 후, 할 피니는 1월 9일 제네시스 블록 다음의 1번 블록을 만들어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그때부터 평균 10분에 하나씩 새로운 블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세계화폐에 대한 생각을 한 사람은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가 처음은 아니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미 세계화폐의 개념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케인즈의 무서운 선견지명   1차 대전 직후인 1918년에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케인즈는 독일에 과도한 배상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는 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치인들이 이기적인 자국 정치논리를 앞세워 경제를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그는 독일에 물린 혹독한 배상금이 전무후무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독일국민들을 빈곤으로 내몰아 ‘극단적인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파시즘 혁명과 새로운 전쟁을 예감한 것이다.    그는 이듬해에 쓴 라는 책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라는 사실을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흐름을 이로운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즈의 예견은 그의 표현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결국 독일에 대한 거액의 전쟁배상금은 화폐발행량 증가→ 초인플레이션→ 히틀러의 등장으로 연결되어 2차 대전을 불러왔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2차 대전이라는 참화는 케인즈의 선견지명이 거부된 결과였다.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정부의 화폐발행량 증가와 은행들의 과도한 신용창출의 결과물이었다. 독일정부는 과도한 전쟁배상금 지급과 경기진작을 위해 수출을 늘려야 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마르크화 평가절하로 수출상품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게 유리해 결국 화폐발행량 증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 초인플레이션의 진정한 막후 조종자는 사실 거대한 신용창출을 일으킨 금융자본세력들과 그들에 의해 움직여진 민간 중앙은행이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기미를 보이자 여기에 마르크화 투기 금융세력들이 가세해 막대한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과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돈값이 휴지조각이 됐을 때 대출을 갚았다. 1923년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물가 2배씩 폭등했다. 이러한 방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독일 최고의 거부가 된 사례가 휴고 스티네스였다. 그는 역사상 인플레이션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으로 대출로 1,535개의 기업과 그에 딸린 2,888개의 공장을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신문사도 60개나 있었다.    그는 언론조차 입맛에 맞추어 조종하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신문을 통해 인플레이션율이 10,000%에 이르던 1922년 중에도 "유통되는 통화가 부족하다. 산업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화량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학자들도 동원되었다. 유럽 최고의 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츠에 의하면 그의 재산은 독일 국부의 1/4이었다고 한다. 1923년 지는 그를 '독일의 새로운 황제'라고 칭했다.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독일 국민들의 파렴치한 투기꾼들과 이를 조장한 유대인 금융가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이러한 시중은행들의 과도한 신용창출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화폐의 유통속도를 가속화시켜, 유동성 곧 시중의 화폐 유통량을 급속도로 늘려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1921년 1월에 0.3마르크 하던 신문 한 부 값이 1922년 11월에는 7000만 마르크가 됐으니 2억 배 오른 것이다. 건전한 시민들이 생활비를 아껴 평생 저축한 돈이 휴지조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참담함을 겪었다. 시민들은 항의의 표시로 기존 화폐를 길거리에 버리거나 불쏘시개로 썼다.   시민들은 두 눈 멀쩡히 뜨고 화폐 발행량을 터무니없이 늘린 정부와 금융세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수탈당한 것이다. 특히 부동산 없이 현금만 보유했던 빈곤계층 서민들이 발가벗겨졌다. 부자들은 부동산, 토지, 주식, 귀금속 등으로 자신의 재산을 포트폴리오 해놓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었지만 저소득층일수록 피해가 컸다. 금융투기세력이 화폐가치 폭락 과정에서 벌어들인 거대한 이익은 바로 국민들이 몇 십 년 동안 힘들게 저축해 얻은 부였다.    케인즈의 예견대로, 이 틈을 파고들어 대중을 선동해 집권한 사람이 히틀러다. 그가 이끄는 나치의 지지율은 1928년 총선에선 2.6%에 불과했으나 2년 후엔 37.4%의 득표율로 원내 1당이 되어 히틀러는 총리에 올랐다. 1934년 대통령이 서거하자 히틀러는 본인이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이 되겠다고 국민투표에 붙였다. 그는 무려 88.1%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최고 권력자가 된다. 이어 홀로코스트와 2차 대전이라는 세계 최대의 비극이 일어난다. 정치를 앞세우고 경제와 금융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 뒤 헝가리에서는 1946년 역사상 최대의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는데 0이 29개나 있어 읽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 국한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내가 1990년대 초 브라질 근무할 때도 초인플레이션은 일어났으며, 러시아도 1992년 2,600%의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엘친 정부 8년 동안 러시아 인플레이션은 608,000%에 달했다. 2007년 나이지리아의 월 796억%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2009년 짐바브웨이는 무려 100조 달러 지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베네주웰라는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나라 사람들은 봉급을 받자마자 뛰어나가 카트 가득이 물건 사기에 바쁘다. 나도 그 대열의 한 명이었다. 조금만 늦으면 지폐가 휴지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초인플레이션은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화폐적 현상’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정책으로 인해 화폐발행량이 최대로 늘어난 요즘의 현실이 위태로운 이유이다.    케인즈의 세계화폐와 달러의 대결   2차 대전이 마무리되던 1944년,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45개국 700여명의 고위 경제 관료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 브래튼우즈에 모였다. 이 회의에서 미국대표 화이트 재무차관과 영국대표 케인즈 간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달러와 세계화폐 ‘방코르’ 가운데 무엇이 더 기축통화에 적합한지를 놓고 다툰 것이다.    케인즈는 우리에게 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1923)과 (1930) 등 화폐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한 화폐경제학자였다. 케인즈가 이런 저서를 집필한 것은 사실 통화교란의 무서움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자본주의의 파괴자로 여기고 혐오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케인즈의 화폐관은 명료했다. 특정국가에 의해 임의로 발행량이 증가하거나 축소되는 일이 없는, 곧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없는 세계화폐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인플레이션은 부당하고 디플레이션은 비효율적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제외하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중에 디플레이션이 더 안 좋다. 빈곤한 세계에서 임대인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실업을 유발하는 것이 더 안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꼭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가 모두 안 좋고, 모두 피해야 한다.”    케인즈가 디플레이션이 더 안 좋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음 달에 물가가 더 싸질 것이라 생각되면 사람들이 소비를 미루어 경기침체에 빠지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이 생산을 줄이고, 그러면 결국 실업이 유발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은 왜 일어날까? 초인플레이션이란 물가상승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월 50% 이상의 인플레이션율을 뜻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만연되면 사람들은 돈이 들어오는 즉시 재화로 바꾸려 든다. 이렇게 되면 통화의 유통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는 통화팽창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은 갈수록 증폭되어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케인즈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화폐가 개발되어야 한다고 믿고 스스로 수년 전부터 그런 화폐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패권 국가가 극단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볼 경우, 무역 분쟁은 물론 환율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고 또한 이는 세계경제를 불경기에 빠트릴 염려가 있어 이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마침내 그는 세계화폐 ‘방코르’(Bancor)를 고안해 냈다. 방코르는 금을 비롯해 30개 상품가격을 기초로 가치가 산정되며 각국은 자국 화폐를 일정한 고정환율로 방코르와 교환할 수 있게 했다.    케인즈는 브래튼 우즈 회의에서 그의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달러 체제에 대항하는 세계화폐 ‘방코르’와 이를 청산해줄 ‘국제청산동맹’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계 각국이 무역에서 각 나라 통화를 사용하지 말고, 이 세계화폐를 공통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었다.    케인즈는 방코르의 발행량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량에 비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각 나라의 과거 3년 간 무역액의 75%를 기준으로 방코르를 미리 각국의 보유자금으로 할당하고, 각 나라는 수출과 수입의 차액을 이 세계화폐를 사용해 조정하자는 것이다. 곧 방코르는 금을 사용하지 않고 무역결제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화폐였다.    방코르는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세계 중앙은행들끼리 결제할 수 있는 화폐로 각국 화폐의 가치는 방코르와의 상대 환율로 표시된다. 케인즈는 무역전쟁과 환율전쟁 예방에 필요한 세계화폐를 고안한 것이다.    여기에 케인즈의 천재적인 면을 볼 수 있는 환율조정시스템을 더했다. 케인즈는 무역수지 적자국의 경우 적자액만큼의 방코르 초과인출(OVERDRAFT)를 계상할 수 있게 하되 각국의 초과인출 상한액은 무역규모에 비례해 설정하도록 고안했다. 각국의 연간 무역수지 적자액이 사전 설정된 방코르 초과인출 상한액의 50%에 달하면 그 나라 화폐는 평가절하를 실시하는 동시에 적자액의 10%를 벌금으로 내게 했다. 벌금제도는 무역흑자 국가에도 적용했다. 벌금을 피하려면 각국이 자연스럽게 사전에 환율을 조정해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케인즈가 우려했던 것은 ‘금과 태환됨으로써 달러의 신용을 유지한다.’는 제도가 미국의 금 보유량이 고갈되면 붕괴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점이다. 만약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세계 경제 역시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걱정한 것이다.    케인즈가 세계화폐를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통상 분쟁과 환율 문제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케인즈의 생각은 세계화폐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안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특정국가의 위기가 다른 국가로 전이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달러가 기축통화일 경우, 미국 내에서 유동성 위기가 일어나면, 경제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전이되지만 세계화폐를 활용할 경우, 경제 위기의 전이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게 케인즈의 생각이었다.    케인즈는 국제청산동맹의 자본금을 260억 달러로 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1년 GDP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케인즈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되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세계경제의 패권을 잡으려 했던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방코르와 국제청산동맹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절충이 이루어져 85억 달러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이 설립되었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부부의 막내로 태어난 화이트는 집안이 가난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나자 화이트는 참전용사 지원프로그램 덕에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는 받은 후 잠시 교수생활을 한 뒤 재무부에 취직했다. 당시 재무부장관이었던 모겐소가 그의 능력을 알아 봤다. 유대인끼리 통하는 면도 많았을 것이다. 화이트는 모겐소 장관 보좌관을 거쳐 승승장구해 차관보에 오른 뒤 브레턴우즈 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화이트는 케인스에 밀리지 않았다. 화이트의 적극적인 공세는 미국이라는 힘과 유대금융자본의 파워를 배경으로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참가국들도 2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미국의 도움이 절실할 때였다. 결국 회의는 여러 나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뜻대로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금 1온스(31.1g)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그 외에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되 1%의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했다. 이것이 이른바 브래튼우즈 체제이다.    드골, 세계화폐 역할 할 수 있는 특별인출권 제안하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외화자산 결제는 주로 달러로 진행되었는데 브래튼우즈 체제의 금환본위제임에도 미국은 암암리에 달러발행을 남발했다. 당연히 달러의 실질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달러에만 모든 결제를 맡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64년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독점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세계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 그러자 드골은 세계화폐 개념은 새로운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통용되던 금이 바로 세계화폐라며 국제체제의 평등성 회복을 위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미국의 금과 바꿀 의향을 밝혔다.    이러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달러의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입장을 바꿔 드골의 특별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 결국 IMF가 케인즈의 세계화폐 아이디어를 차용해 1969년 새로운 국제 준비자산을 만든 것이 특별인출권이다. 특별인출권은 IMF 회원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해 갈 수 있는 권리이다. 쉽게 말해 특별인출권은 IMF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준비통화로 달러를 보완하기 위한 세계화폐이다.    달러의 구조적 한계, 트리핀 딜레마   인플레이션의 근본원인은 재정적자이다. 그런데 미국은 재정적자가 일어나야만 달러가 발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경상수지적자가 되어야 달러가 해외로 공급된다.   1950년대 수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또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960년에 이미 방만하게 공급된 달러는 외환시장에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자 미국 경제학자이자 예일대 교수 로버트 트리핀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운용정책이 지속될 경우 금태환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진 1960년 트리핀은 미 의회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했다.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아 국제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상태가 지속돼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가치가 떨어져 준비자산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고정환율제도도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달러화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태생적 모순을 가리켜 ‘트리핀 딜레마’라고 한다.   세계가 달러를 의심하다   브레튼 우즈 체제 초기인 1947년까지만 해도 미국정부는 전 세계 금의 70% 이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서독과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무역 증대로 세계 무역에서 미국의 위상은 점점 축소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통화팽창 등으로 달러 가치는 1960년대 들어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1966년에 이르러 미국의 금 보유는 전 세계 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미국 이외 나라들의 중앙은행들이 140억 달러 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금 보유는 단지 132억 달러 만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1971년 들어 달러 통화량은 10%나 늘어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서독이 그해 5월 브레튼 우즈 체제를 탈퇴했다. 그러자 달러 가치는 마르크 대비 7.5% 하락했다. 다른 나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 각국은 달러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보유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원했다. 스위스가 가장 먼저 7월에 5천만 달러를 미국의 금으로 태환해 갔다. 이어 프랑스도 1억 9100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갔다. 그러면서 1억5천만 달러를 더 태환할 계획이라 발표했다. 드골은 미국에 해군 함대를 보내 프랑스로 금 운반하는 걸 대내외적으로 과시까지 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어 스페인도 6천만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갔다.    이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달러어치의 금을 교환해 간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금 보유고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달러 가치가 유럽의 통화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자 8월에 스위스도 브레튼 우즈 체제를 떠났다.    1971년 8월 9일, 영국의 경제대표가 재무부에 직접 와서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정부는 잘못하면 국가 부도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비상 국면에 직면한 것이다. 그 다음 주 13일 금요일, 닉슨 대통령은 돌연 행정부 주요 경제정책 담당자 16명에게 헬리콥터를 타고 자신과 함께 캠프데이비드 군사기지로 가자고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함으로써 이 모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금 고갈에 직면한 미국이 자신만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출처; 화폐혁명, 홍익희 홍기대. 엣워크)

박동운

한국경제가 총체적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징조를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 5월 10일에 “임기가 끝날 때 삶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는 4년을 기다리면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뜻이다. 4년 후면 한국경제가 타이타닉호처럼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텐데 한국경제의 수장(首長)으로서 과연 할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 ‘거꾸로 가는 정책’만 추진해 왔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고한다. “문재인 대통령님, 4년 기다려서는 안 되고 당장 정책전환을 시도하세요.” 몇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거꾸로 가는 정책’을 비판한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비전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에 얽매어 과거에 함몰되어 있다. 서울 크기의 섬나라 싱가포르를 세계 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리콴유의 비전이 없다.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貓白貓論)을 정책에 도입하여 굶어죽는 나라 중국을 G2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의 비전이 없다. ‘미국인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나라 미국을 만들고, 세계인이 핵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로날드 레이건의 비전이 없다. 정권을 잃어가면서까지 노동시장과 복지 개혁을 추진하여 11%대의 실업률을 3%대로 이끈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비전이 없다. ‘인종분리정책’ 반대투쟁으로 27년간 감옥생활을 했으면서도 ‘화해와 용서’로 분열된 남아공을 통합의 길로 이끈 넬슨 만델라의 비전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대기업 정책은 경제를 망친다.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을 해체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일부 시민단체는 한진그룹을 향해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촛불집회까지 벌였다. 문재인 정부는 ‘노조 와해’ 증거를 찾겠다고 경총과 삼성전자 본부까지 뒤졌다. 삼성 해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에 등장한 ‘삼성 잡고, 서울대 잡고, 강남 잡고’라는 우스갯소리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남역 삼성타운 입구의 길가에는 ‘삼성의 노조 와해’를 규탄하는 노동계의 빛바랜 현수막이 10년 넘게 걸려 왔다.   대기업이 불법 행위를 저지른다면 정부는 이를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노동계는 약점을 내세워 대기업을 잡으려고 하고 있으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작년에 ‘제조업 분야 세계 1등 기업’으로 등극하지 않았는가! 글로벌경제에서 대기업은 세계경제의 대동맥이다. 세계경제를 보라. 미국, 중국, 독일, 영국 등의 대기업들은 지금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는가. 만일 한국 수출의 5분의 1을 맡고 있는 삼성이 해체된다면 한국경제는 하루아침에 가라앉고 말 것이다. 삼성전자가 해외로 이전하게 되면 10만 개에 이르는 고급 일자리가 사라지고 만다. 포철이 없었다면 한국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될 수 있었겠는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대기업들은 1조 원 이상을 후원하지 않았던가. 문재인 대통령,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멸시키고 있다. 한국의 실업률은 현재 IMF 사태 이후 20여 년 동안에 최고치에 이르렀다. 그 원인의 하나는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2017년에 시급 6,470원이던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0,000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하고, 2018년에 16.4% 올렸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금방 저임금 일자리가 감소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경제원론 교과서에 나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저임금 16.4% 인상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몽땅 사라지고, 영세업자들이 임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줄폐업하고, 최저임금 관련 상품가격이 줄지어 오르고, 실업률이 1997년 IMF 사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정부 대변인이나 전문가 아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고용 부진이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다고 변명을 늘어놓다가 급기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를 시인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16.4%나 또 올릴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실업률 변화 추세를 보자. 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오고 있다. 오로지 한국만 ‘나 홀로’ 증가 추세다.     몇몇 국가들의 실업률 변화     2012∼2018.3, 2 2017.3∼2018.3, 2 한국 3.2%→4.5% (↑) 4.1%→4.5% (↑) 미국 일본 유로지역 독일 영국 프랑스* 8.1%→3.9% (↓) 4.4%→2.5% (↓) 11.4%→8.5% (↓) 5.4%→3.5% (↓) 8.0%→4.2% (↓) 10.3%→9.4% (↓) 5.0%→3.9% (↓) 2.8%→2.5% (↓) 9.4%→8.5% (↓) 3.9%→3.5% (↓) 4.6%→4.2% (↓) 9.6%→9.4% (↓)   주: 프랑스는 2017.3∼2017.12.자료: 한국은행, , 제2018-16호.   한국의 실업률은 2012년에 3.2%였는데 2018년 3월에 4.5%로 증가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2012년에 8.1%였는데 2018년 3월에 3.9%로 감소했다.   일본의 실업률은 2012년에 4.4%였는데 2018년 3월에 2.5%로 감소했다. 유로지역의 실업률은 2012년에 11.4%였는데 2018년 3월에 8.5%로 감소했다. 독일의 실업률은 2012년에 5.4%였는데 2018년 3월에 3.5%로 감소했다.영국의 실업률은 2012년에 8.0%였는데 2018년 3월에 4.2%로 감소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2013년에 10.3%였는데 2017년 말에 9.4%로 감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1년여 동안에도, 실업률이 한국은 0.4%포인트 증가했지만 선진국들은 많게는 0.9%포인트에서 적게는 0.2%포인트나 감소했다.    넷째, 부자와 대기업 잡기 위한 조세정책은 경제를 망친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가격 상승을 놓고, 주택정책을 40여 차례 바꿔가며 주택가격만 상승시킨 노무현 정부처럼, 잘못된 조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은 한 마디로, ‘부자와 대기업 잡기 위한 정책’이다. 여기서는 법인세율 인상의 부작용을 이야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법인세율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권을 잡자마자 법인세율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의 법인세율 자료에 따르면, 세계 170여 개국 가운데 2017∼2018년간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린 나라는 한국, 칠레, 독일, 인도, 스와질랜드, 스위스 여섯 나라뿐이다. 이들 나라 가운데 한국만 3%포인트 올렸을 뿐 나머지 다섯 나라의 인상률은 0.5%포인트 이하다. 미국은 40%에서 27%로(지방세 포함된 수치),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한 마디로, 2018년에 한국만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린 셈이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놓고 2017년 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상위 0.3% 안에 드는 70여 개 기업만이 법인세율 최고세율 25% 대상이니 법인세율 인상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 ‘분식회계’ 같은, 어이없는 변명이다. 한국은 기업 상위 0.5%가 법인세의 75%를 낸다. 상위 1.0%가 법인세의 86%를 낸다. 자료를 입수하지 못해 상위 0.3% 70여 개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몇 %를 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65%는 족히 넘을 것이다. 어떻든 ‘상위 0.3%’란 기업 수로 봐서는 미미하지만 법인세 비중으로 봐서는 엄청나다. 그래서 법인세 최고세율 22%→25% 인상은 앞으로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 부작용은 국내자본의 해외 유출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국내자본의 해외유출 관련 UN 자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은 2006년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자본의 순유출(주: 자본의 유출이 유입을 초과하는 경우)이 증가해오고 있다. 2006년에 처음 기록한 순유출은 36.1억 달러였는데 2015년에는 226.0억 달러로 엄청 증가했다. 2006∼2015년간 순유출을 합하면 1,523.7억 달러, 약 175조 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2014년까지 한국은 24만개의 제조업 고급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되었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이 밝혔다. 또 대한상의에 따르면, 2006∼2015년간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2016년에는 중소기업마저 6조8700억 원이나 해외로 빠져나갔다! 공식적인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한국자본의 해외 유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는 자본 유출이 그치거나 줄어들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렸으니 자료가 발표되고 나면 문제의 심각성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법인세 최고세율을 대폭 낮춘 바람에 미국은 실업률이 2017년 3월에 5.0%였는데 불과 1년 후인 2018년 3월에 3.9%로 낮아졌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다섯째, 한국은 지금 40년 전의 ‘노조천국 영국’을 닮아가고 있다. 1979년 5월에 있을 총선거를 앞두고 영국의 보수당 당수 마거릿 대처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영국의 문제는 노조의 독점과 국유(國有)기업의 독점에 있습니다.” 이 선거에서 보수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마거릿 대처는 같은 해 5월 4일에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되었다. 대처는 다섯 차례에 걸쳐 노동관련법을 제·개정해 가면서 노조파워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마거릿 대처가 40여 년 전에 무너뜨린 ‘노조의 독점’이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한국의 경제, 사회, 정치는 지금 노조의 손안에 들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노조에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민노총 파업 때 광화문 길거리에서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앉아 민노총의 파업 구호에 박수를 치던 광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조의 청구서를 뿌리치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 결과가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 대기업 잡기 위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를 ‘청년·여성·비정규직·소상공인 대표’를 참여시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명, 노동 관련 정부 기구를 모두 친노(親勞)인사로 충원, 등등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노조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아놓았다.   ‘거꾸로 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은 더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열한 내용만으로도 한국경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총체적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권고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하고 싶다.

박동운

1979년 5월에 있을 총선거를 앞두고 영국의 보수당 당수 마거릿 대처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영국의 문제는 노조의 독점과 국유(國有)기업의 독점에 있습니다.” 이 선거에서 보수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마거릿 대처는 같은 해 5월 4일에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되었다.   마거릿 대처가 40여 년 전에 무너뜨린 ‘노조의 독점’이 지금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2017년 3월에 취임한 SRT(수서발 고속철) 이승호 사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이승호 사장은 취임 후 ‘SR과 코레일의 경쟁이 철도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SR과 코레일의 통합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코드인사로 지난 2월에 취임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취임식에서 ‘SR과 코레일과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R과 코레일과의 통합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미 철도노조의 거센 입김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승호 사장이 사임한 처지에서, 지분 41%를 가진 코레일이 SR 사장 추천권을 갖고 있어 SR과 코레일 통합에 적극적인 인사가 SR 사장으로 취임하게 될 것은 뻔하다.   우리나라에서 철도요금은 전기요금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공공요금이다. 역대 정부는 ‘서민보호’와 ‘물가안정’을 내세워 철도요금을 낮은 수준에서 줄곧 규제해 왔다. 이 결과 일반철도는 만성적인 적자행진을 이어 왔으나 2004년에 개통된 KTX는 독점체제로 운영되어 흑자행진을 이어 왔다. 일반철도와 KTX의 영업실적을 합치면 철도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 코레일은 해마다 5천억 원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다.   철도서비스의 적자 문제를 놓고 역대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맨 먼저 철도청의 만성적인 적자 해소를 위해 민영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과제를 노무현 정부에 떠넘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에 출범하자마자 철도청 민영화에 착수했다가 철도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철도청 민영화를 백지화시키고 말았다. 대신 2003년 12월 31일에 제정된 ‘한국철도공사법’에 따라 철도청 업무를 두 부문으로 분할하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그 중 하나는 시설 부문을 맡은 ‘한국철도시설공단(KR; 시설공단)’인데, 이는 2004년 1월 1일에 출범했다. 다른 하나는 운송 부문을 맡은 ‘한국철도공사(KORAIL; 코레일)’인데, 이는 2005년 1월 1일에 출범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세워 2012년 초에 KTX 운행을 일부분 민간에 맡겨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철도운영 경쟁은 당시 2015년에 개통될 수서→부산행·목포행 고속철도 노선에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인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놓고 코레일 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토부는 2013년 1월 9일에 철도산업기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계획은 이명박 정부가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말에 철도노조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서발 부산·목포행 KTX 운행에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여 KTX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SRT가 ‘경쟁’이라는 옷차림으로 개통했다.   그동안 SRT와 KTX 간의 경쟁은 국민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리고 수많은 이용자들이 경험했다시피, 수서발 SRT 요금은 KTX보다 10% 싸고, 각종 서비스, 의자 편의성 등에서 SRT가 KTX에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SRT와 KTX 간의 경쟁’이, 노조의 청구서를 거부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친노정책과 철도노조의 독점욕 때문에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은 지금 ‘노조의 독점’에 시달린 40년 전의 노조천국 영국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다!

박동운

‘소득주도 성장론(기본소득제)’이 허구임이 또 드러났다. 스위스가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2500스위스프랑(한화 약 275만원) 지급’을 놓고 2016년에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부결(찬성 23%)한 데 이어 핀란드가 시험 중인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중단하기로 지난 23일에 발표한 것이다. 핀란드는 기본소득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면 소득세를 30%나 더 올려야 하므로 ‘기본소득제 실험’을 중단하게 되었다. 기본소득제는 이제 캐나다, 미국, 인도의 일부 주(州)에서만 실험 중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게 되자 국제적으로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경제학과의 모(某) 교수가 이를 주장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공약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이론에는 두 가지 치명적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경제정책을 실험의 대상으로 봤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은 ‘긍정과 부정 효과’를 내포하기 마련인데, 만일 부정 효과가 압도적이면 그 경제정책은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경제정책은 신중해야 하고, 그 효과가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으로 밝혀질 경우에만 실시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또 하나는, ‘소득주도 성장’ 실험에 쓰이는 돈은 모두 ‘세금’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일환으로 대선 후보 때 2017년에 시급 6,470원이던 최저임금을 집권 후 3년 동안에 10,000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고, 1차 연도에 16.4% 올렸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모든 경제학원론에 쓰여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최저임금 16.4% 인상 후유증은 실로 엄청나다.   “실업률이 17년 만에 가장 높고, 실업급여는 62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다. 석 달째 실업자가 100만 명을 웃도는 것도 그 한 예다. 눈여겨볼 것은 저임금 고용불안 일자리인 임시직(1년)과 일용직(1개월 미만) 일자리 감소가 크다는 점이다. 1분기(1~3월)에 각각 지난해보다 12만4000명, 5만7000명이 줄었다. 특히 식당·여관 등에서 일하는 여성 일용직의 고용 감소가 컸다. 1분기에 무려 5만6000명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작년 1분기 4000명이 늘었던 것과 비교하면 고용 감소가 충격적일 정도로 크다. 식당 일 등은 저소득층 여성들의 주된 벌이다. 정부는 이런 현상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정부 정책의 후유증일 가능성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이 최저임금 얘기를 한다.”(조선일보 사설(2018.4.26.))   기본소득제는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일찌감치 도입했다. 경기도 지사에 출사표를 낸 이 전 시장은 “경기도민들이 전국에서 가장 최고의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며 성남 시장을 할 때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 청년 배당에 180억 원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모든 게 표를 받기 위해서다”라고 말하고, “그게 왜 나쁘냐.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며 “나는 좋은 표(票)퓰리스트”라고 자신을 치켜세웠다.(조선일보 A10(2018.4.26.))   서울특별시 시장에 출사표를 낸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이재명 전 시장과 다를 바 없이 혈세를 퍼부어 ‘기본소득제’ 실험을 했다. 이재명·박원순 두 전 시장의 ‘기본소득제 실험’은 혈세만 낭비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표(票)퓰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아 표를 얻는 데는 성공할지도 모른다.   ‘소득주도성장’이 빛을 잃은 현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16.4%나 올리시렵니까?”   OECD 34개국 실업률 변화 추세에는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OECD 34개국의 실업률은 2010년과 2014년에 정점을 찍고 그 후로는 한결같이 내리막길이라는 점이다. 2010년의 경우는 OECD 국가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재정지출 증가로 실업문제에 대처했고, 2014년의 경우는 미국과 일본 등처럼 통화량의 양적 완화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거의 모든 OECD 국가들은 지금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실업률 증가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최근에 들어와 OECD 34개국 중 오스트리아, 칠레, 핀란드, 터키, 한국은 실업률이 약간 증가 추세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은 실업률이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의 실업률이 1997년 IMF체제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정책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박진우

기술 개발이 진척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 듯하다. 버스에 자동문과 하차 안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버스 안내양은 일자리를 잃었다. 매일 주판으로 은행의 출납금을 계산하던 여상 출신의 은행원들도 컴퓨터가 도입되며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 있다. “기술 개발은 일자리를 감소시킨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 경제의 고용률은 건국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에 50% 초반 대에 불과하던 한국의 고용률은 2017년 현재 67%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4%p 가량 증가했다. 단순히 고용률의 증가만 볼 것이 아니다. 같은 기간 생산가능인구가 폭증했기에, 절대적인 ‘고용량’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기술 발전 수준이 훨씬 높은 OECD 선진국들의 고용률은 한국보다 더 높다. 사실 한국의 고용률은 그 중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일반인(凡人)들은 보이는 것을 보지만,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진실은 이렇다.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며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었을 것이다. 엔지니어, 생산직, 장비 수리 기사를 떠올릴 수 있다. 버스카드가 등장하면서부터는 한국스마트카드라는 회사에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회계, 재무, 마케팅, 인사 관리 등 운영 조직의 일자리도 생겼을 것이다. 은행원을 대체한 컴퓨터 부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쯤에서 예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반박은 결국 고부가가치 부문의 일자리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열한 일자리들은 모두 대졸이거나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만이 고용될 수 있는 일자리다. 맞다. 저학력, 저기능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실업이라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한 번 더 볼 필요가 있다.   한국스마트카드 본사의 경비와 청소는 누가 할까. 생산 공장에도 경비와 청소가 필요할 것이다. 생산직 중에도 전문 생산직 뿐만 아니라, 단순 조립 노동자가 있을 것이다. 장비를 운반할 화물차는 누가 움직이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부가가치 노동자들은 삶에 여유가 생기며 더 수준 높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본인은 독서와 자동차 튜닝을 취미로 삼고, 다방 커피가 아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 부인은 집에서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다 사교육을 시키고, 시간제 가정부를 고용해 집안 일을 맡긴다. 이렇게 되면 출판사 직원, 카페 알바, 학원 데스크 실장, 가정부 등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긴 일자리들은 다시 같은 과정을 추동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정부가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는 것을 규제로 틀어막아, 일자리와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경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실업난이 해소되길 기대하는 게 한국 정치인들의 저능함이다. 산업 발전이 정체된 상황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실업은 줄일지언정 실질소득은 늘리지 못한다. 국제 경쟁으로 기존 산업마저 퇴보하면 실질소득 자체가 줄어든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산업혁명 시대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만연한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던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으로 물감을 비롯한 그림 도구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결과였다. 그리고 대중들의 소득이 증가하며 예술이라는 사치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 오늘날 ‘피카소’라는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경제 발전이 없었다면 피카소는 평생 집시로나 살았을지 모른다.   최저임금이 기술 발전을 촉진하여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해 첨언하고 글을 마친다. 최저임금이 촉발하는 기술 발전과 시장에서의 생산 경쟁이 촉발하는 기술 발전은 결이 다르다. 전자는 시장 균형 상태에서 노동의 가격이 비싸지 않음에도, ‘굳이’ 노동의 가격을 끌어올려 실업(노동력의 잉여)을 촉발하는 것이다. 반면 후자는 시장 균형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노동의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자본을 키우는 것이다. 후자는 일자리를 늘리지만 전자는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인다.   ※해당 칼럼은 제3의 길에 공동기고된 것임

이익환

고리 원전 전경./한수원 제공  전쟁의 충격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던 1950년대 말, 한국은 미래를 위해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였다. 혜안을 가지신 초대 이승만대통령의 생각은 “이 돈으로 배고픈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국가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개발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은 그만큼 미래지향적이다.   한국의 위상이 오늘 선진국 문턱에 이른 것은 다른 분야의 전진도 꼽을 수 있지만 과학기술에 높은 투자와 함께 연구결과에 의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은 반드시 결과가 성공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 결과에 기대를 걸게 된다. 우리가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인 연구개발과제가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과의 경쟁에도 이겨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평가되어야 한다.   원자력기술은 국제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평가된다.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와 함께 장단점을 평가하여 국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마침 사회 및 경제개발의 이정표와 함께 원자력 또한 이를 적절히 견인해 왔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인력의 개발과 기초연구에 국한해 왔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화 된 중화학공업기조의 국가주도 산업에 걸림돌이 된 것 대량의 전력공급을 해결하는 지혜로운 방안으로 원자력발전 기술을 도입하여 이를 개발하여 왔다.   이미 퇴역의 길로 들어선 고리1호기 준공 시점인 1978년, 우리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300불에 불과하였지만 현재 약 30,000불에 육박한다. 이렇게 된 것은 전력공급의 30%이상을 값싼 원자력에서 공급하여 산업체의 경쟁력을 견인해 왔기 때문에 수출 우위에 설 수 있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 가장 우수한 전기를 공급하면서 또한 가장 안정적임을 인정하고 있다.   연구개발의 뒷받침에 의해 1980년대 말, 자신감을 가진 한국의 연구 인프라는 가장 민감한 원자력기술을 자립하는 데 전력하였다. 한빛원전 3,4호기의 건설과 함께 동형을 표준원전으로 개발하여 OPR1000(기당 1백만kW급)을 세계에 제시하였고 이를 기본으로 안전성과 기술을 향상시킨 APR1400(기당 1,400만kW급)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종전의 설계수명이 40년이었던 것을 60년으로 증대시켜 안전성과 함께 가동성을 향상시켰다. 이 원전이 신고리3,4호기와 신고리5,6호기이다. 또한 2009년 말 UAE에 4기의 수출계약을 맺고 최근에 대통령이 방문하여 바라카1호기 건설완공의 테이프를 끊은 바 있는 노형이다.   AP1400 노형은 개발된 세계 유수 노형들과 경쟁하여 월등하게 돋보인 원전이다. 프랑스의 유럽형차세대원자로(EPR) 및 미국의 차세대원자로(AP1000)과 비교하여 확실하게 기술과 경제성에서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프랑스의 EPR 노형은 핀랜드에 수출 건설되고 있지만 공기가 거의 배가 늘어나 공사비도 배가되어 쌍방간에 국제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직도 준공이 되지 못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제품인 AP1000은 미국 내는 물론, 수출한 중국에서 모두 공기가 늘어나 공사비 증가를 피치 못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한국의 APR1400은 공기를 제대로 지키고 우수한 기술을 인정하여 여러 나라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당장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관심이 많다. 영국에서는 이미 한국전력공사를 우선 협상대상자로 낙점한 바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1차 협상대상자 선정을 진행화고 있는데 그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정부의 분명한 입장표명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원자력수출은 장기사업으로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 전제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꺼꾸로 외국에서 전략산업을 도입하게 될 때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보인다. 첫째 그 나라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는데 문제가 없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건설에 따른 초기투자가 큰 원전구매의 경우 막대한 재원마련이 어려움을 갖게 되어 재원지원을 받으려 한다. 과거 한국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다음은 기술의 수입 관점이다. 원자력기술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만일 도입하는 원전기술의 개발 방향이 불확실하거나 중단된다면 과연 그 기술을 도입하겠는가?   원전수출은 장려한다는 정부방침이지만 한국 내의 사정은 탈 원전기조이다. 당연히 국내의 원자력연구개발이 주춤하거나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일례가 연구기관에서 진행하던 미래의 원전개발인 소듐고속로개발이다. 우여곡절 끝에 예산을 확보하였지만 단서조항인 공론화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어떤 공론화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2020년까지의 연구에 국한하고 실증화 사업은 어렵게 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즉 고속로 개발은 2040년을 내다본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을 전제한 실증연구사업인데 다른 국가와 다르게 재처리공정을 할 수 없는 한국이 유일하게 택한 건식재처리공정이 빠진 것이다. 연구개발 내용이 불확실하게 하는 것은 원전수출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원전수출을 위한 국민통합대회가 대규모로 개최된다고 한다. 매우 뜻있는 의사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원전수출을 말로만 지지할 것이 아니고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바로 국내 탈 원전의 기조를 바꾸어야 하고, 다음은 진행되던 원자력연구개발을 끊임없이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박동운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 겸 제5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안건 보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문재인 정부는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는데도 상식으로는 이해 못 할 정책들만 숱하게 쏟아내고 있다.   “탈원전을 한다며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고, 최저임금을 올려 일자리 손실을 자초한다. 세계와 거꾸로 반기업과 친노동, ‘큰 정부’의 역주행을 치닫고 있다. …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기’는 이 정부의 대표 상품이다. (주: 작년 11조원 추경에 이어) 올해만 청년 일자리 사업에 6조7000억 원을 쓰기로 했다. 그 돈으로 일자리 5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일자리 한 개당 1억3000만 원꼴이다. 연봉 3000만 원짜리 일자리 만드는 데 세금 1억여 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 이 정부 정책엔 4년짜리가 유난히 많다. 탈원전을 해도 4년간은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한다. ‘문재인 케어’에 큰돈 들지만 2021년까진 보험료를 안 올려도 된다고 한다. 건보 적립금 20조원을 깨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위원, 2018.4.13.)   마거릿 대처가 쓴 『국가경영』(원명: Statecraft, 2002)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좌파정치가들은 처음부터 ‘왜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추가로 돈을 더 가져와야 하는가?’라고 묻는 대신 ‘그게 왜 안 돼?’라고 말한다. 도처에 존재하는 그런 정치가들의 눈에는 부(富)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이며, 우리의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다.”(번역서 553쪽.)   마거릿 대처가 문재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인 것 같다. 마거릿 대처는 짧은 글 하나로 문재인 정부를 ‘좌파’로 규정해버린 셈이다.   ‘좌파’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인식되어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1)라는 칼럼을 읽고, 나는 ‘좌파’라는 말을 마음 편히 사용해 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전까지 좌파 세력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정부가 ‘진보 정권’을 자처했고, 그 후 ‘보수’는 자연스레 '진보'와 짝을 이루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보수는 낡은 것을 지킨다’는 나쁜 뜻으로, ‘진보는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는 참으로 불공평한 대우다. 미국을 보자. ‘보수’를 중시하는 공화당과 ‘진보’를 중시하는 민주당은 각각 ‘보수’와 ‘진보’를 내세우며 서로가 이념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보수’를 중시하는 보수당과 ‘진보’를 중시하는 노동당 역시 각각 ‘보수’와 ‘진보’를 내세우며 서로가 이념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과거에서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conservative)’와 ‘미래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진보(progressive)’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가는 국민이 선택한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은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가에서나 써야 어울릴 말이다.   한국에서는 ‘보수’의 뜻을 알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그 뜻을 모른다. 거기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보’라는 말에 홀려 ‘진보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니 좋고 ‘보수는 케케묵은 것을 지키려 하니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은 ‘좌파 사회주의’로 전락했다가 ‘우파 시장경제’로 돌아서는 데 대체로 30∼40년이 걸렸다. 우파 최초 지도자는 1980년대의 영국의 마거릿 대처다. 이어 2000년대에 들어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독일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 정책을 버리고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겠다”며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뒤이어 앙겔라 메르켈이 마무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에 젊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혜성처럼 나타나 좌파 프랑스를 우파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스는 파판드레우 가문 3대가 복지망국병(福祉亡國病)에 걸려 경제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까지 끌고 와 현재 실업률이 20.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세계에서 석유매장량이 가장 많은 베네수엘라는 매장된 석유만 믿고 ‘마구 퍼준’ 덕분에 먹을 것이 없어서 온 국민이 아우성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반면 복지국가의 모델로 불렸던 스칸디나비아 3국은 복지망국병에서 벗어나 ‘작은 정부’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보자. 1960년대에는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얼굴이 누렇게 뜨고 굶어죽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대한민국,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세계 7대 무역대국’, ‘5천-5천 클럽(인구 5천만 명 이상으로 수출 5천억 달러 이상 달성한 국가) 6개국의 하나’가 아닌가! 이렇게 발전해온 나라에서 ‘왜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추가로 돈을 더 가져오지 못해’ 하면서 혈세를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기며 상식으로는 이해 못 할 정책들만 숱하게 쏱아 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 1)홍찬식, , 《동아일보》, 2012. 2. 1.

이병태

일자리를 만들려면, 경제학 식견이 있는 사람들과 국제기구가 누누히 강조한 것들을 하면 된다.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1.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개혁을 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이런 방향과 거꾸로 가고 있고 이런 과제를 노사협상으로 미루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2. 상품 시장 규제 개혁으로 새로운 사업을 누구나 맘대로 하게 해주면 된다.   3. 수월성 위주의 교육에 나서 가격과 평등에 매몰된 짓들을 그만하면 된다.   4. 기업이 신나서 투자하게 하면 된다. 경영권 보호하는 수단을 만들어주고, 재벌 개혁하겠다는 주제넘은 발상, 금산분리 등을 포기하면 된다.   5. 상속세와 법인세를 낮추어서 투자를 활성화하고 가업 승계를 쉽게 해서 탄탄한 기업 경영권을 쉽게 이어가게 해야 한다. 그걸 억지로 가로막으니 기업들이 편법 동원해서 경영권 승계하게 되고 결국 경영자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법은 악법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경영권을 보호하고 기업을 유지하려면 탈법 편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규제 위주의 악법이 우리나라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6. 병원, 학교 등의 영리화 법인을 인정해서 투자 많이 하게 만들어 그들이 시장에서 서비스 품질로 경쟁하게 해주면 된다.   7. 교육시장 개방해서 요리 등 최고 수준의 직업교육을 중고등학교 때 선택해서 미슐링 스타 딸 수 있는 세프 만들고, 아티스트 만들고, 도자기 공, 수제 맥주 장인, 사께 장인, 피자 장인, 바게트 전문가, 치즈 마스터 등을 양성하면 된다.   8. 군대를 모병제로 바꾸고 첨단 무기 위주로 조직과 기구를 재편해서 병역이 억지로 때우는 시간이 아니라 질 좋은 교육을 받는 공간, 좋은 일자리로 바꾸면 된다.   9. 부동산과 금융의 규제를 풀고, 재산권 통제하지 말고 자유롭게 질좋은 집으로 바꿀 수 있게 해서 부동산과 금융 시장을 활성화하면 된다.   10. 대규모 사회적 자본을 투자해서 고속도로를 다층화하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하고, 독일 아우토반 처럼 고속으로 달리는 길을 만들어 물류 비용을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11. 외국인 와서 돈 펑펑 쓰게 송도에 오락산업 유치해서 싱가포르보다 쾌적하고 큰 오락장/마작 산업 유치하면 된다.   12. 의료 크루즈 선 상하이부터 띄워서 배에서 성형수술 해주고 한국와서 관광하다가 예뻐진 얼굴로 돌아가게 하면 된다.   13. 경자유전의 법칙 철폐하고 골프장 마음대로 짓게 하고 그래서 가까이에 싼 골프장 많이 만들어서 치게 하면 된다.   14. 명산에 산악열차/케이블카 놓고 비싼 승차료로 설악산도 가고, 인수봉도 올라가게 하면 된다.   15. 법치 제대로 해서 불법 파업, 점거 농성 못하게 하거나 기업이 대응 수단 활용하게 해주어서 노동 유실을 최소화하면 된다.   16. 주말에 일자리 많이 생기게 주말 연장근로 시간 할증율 폐지하거나 낮추면 된다.   17. 청년들이 신나서 들어갈 스마트 신도시들 개발하면 된다.   18.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판교나 서울로 불러올려서 그 부근에 벤처 창업 클러스터 생기게 하면 된다. 즉 지방균형 발전이라는 미몽을 버리면 된다.   19. 맥주, 냉장고, 컬러TV 등 이미 중산층의 소비재가 된 상품에 붙이는 특별소비세를 폐지해서 물가를 낮추고 소비를 진작시키면 된다.   20. 원자력 발전소를 더 많이 지어서 원유 수입을 확 줄이고 에너지 가격을 낮추면 된다.   기타 등등. 나는 일자리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천 가지도 넘게 낼 수 있다. 고정관념만 버리고 자유만 주면 왜 일자리가 안 생기나? 어려운 개혁과 구조조정에 나설 용기 없고 이념 때문에 강성 노조 편에 서자니 엉뚱한 짓들만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있는 일자리마저 죽고 있는 것이다.     규제 개혁의 경제적 효과   KDI가 최근 발표한 논문 에 따르면 한국의 규제를 OECD 평균 수준으로만 줄여도 2013년 데이타를 가지고 측정해보면 경제 성장을 0.76%-2.47%p까지 더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즉 지금 3% 성장률을 4-6%대로 끌어올린다는 어마어마한 효과가 추정되었다. 그 OECD 평균을 기준으로 규제 비용은 무려 400조 원 가까이로 추정된다.   이것을 OECD 평균이 아니라 Top 수준으로 개혁하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자. 경제 회복의 길이 왜 없나? 경제 개혁을 돌파할 정치적 리더십이 없을 뿐이다.   아래가 논문에서 카피한 요약의 일부 원문이다.   “We find that 9.9 to 36.0 billion USD worth of regulatory cost could be reduced if the regulatory quality in Korea improves to the level of the OECD average considering that the total burden of regulation in Korea is estimated to range from 2.2 to 357.4 billion USD. The estimated reduction in the regulatory cost accounts for roughly 0.76 to 2.47% of Korea’s GDP in 2013, underscoring the importance of regulatory reforms for the Korean economy.”   ※ 해당 기사는 '제 3의 길'에 공동기고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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