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영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  ▲국회의원들이 투표한다고 해서 없던 돈이 새로 생겨날 수 없음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0만원의 돈을 지출했을 때 어떤 좋은 일들이 벌어지겠는가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만일 그 돈을 세금으로 내지 않았을 경우 납세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도 같이 생각하라.    ▲정부의 지출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재배분할 뿐이다.    ▲자칭 미래를 예견한다고 자인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들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해도 괜찮다는 식의 무지한 생각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의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는 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고안해 내고, 그들의 개혁안을 전파하고, 그것을 채택할 것을 설득시키고, 자신들 스스로에게 그것들을 실험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의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법을 통해서, 즉 경찰력과 우리 모두가 낸 세금을 이용해서, 우리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한다.    ▲어제는 하루에 몇 시간 일해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들고, 오늘은 또다시 어떤 직종에 대해서는 얼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 것이다. 입법자들이 그들 자신의 재산처럼 되어 버린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력과 거래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한, 법이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바꾸어 갈지에 대해서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겠는가?    ▲각각의 계획들이 내세우고 있는 의도는 모든 사람에게 번영의 결과를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야 어찌됐든 그 결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가난을 나누어 주는 것일 뿐이다.    ▲무수한 정치이론가들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기심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고 하라. 그들이 남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창한 덕목들을 과연 자기 자신들은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에게 주는 말 같다. 168년 전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법》에서 한 말들이다.⊙

류근일

송영길 의원은 "보수 세력은 북한같이 가난한 나라가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개발 했다고 항상 비판 한다"며 "(그러나) 이번에 (북한에) 가보니깐 여명 거리나 신과학자 거리는 사진을 찍어 봐도 홍콩·싱가포르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고층 빌딩이 올라가 있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다.    평양 여명 거리와 신과학자 거리에 선 고층빌딩으로 보아 “북한같이 가난한 나라가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개발 했다”는 보수 세력의 비난은 틀린 것이란 의미인가? 그렇다면 여명거리의 모습이 북한 경제 발전의 표지(標識)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리면 될 것이다.    송영길 의원의 견해에 대해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반박했다. ’북한의 권력기관과 돈주라고 하는 자본가들이 손잡고 군인들과 청년 돌격대를 인건비 한 푼 안 주고 동원해서 현대식 아파트를 짓고 특권층끼리 나눠 가졌다. 아파트 한 채 가격이 30만 달러(약 3억원)까지 치솟아 일반 주민은 100년 동안 돈을 모아도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송 의원은 여명 거리, 과학자 거리 뒤편 절대다수 북한 주민의 비참한 삶의 현장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자 그럼 이 두 상반된 견해를 놓고 어느 것이 사실과 진실에 가까운지 전 국민이 한 번 박 터지게 붙어봤으면 한다. 팩트 체킹을 하는 것이니 피차 감정은 빼고 냉정한 객관적 자료들만 갖다 대면 된다.    그러나 우리끼리 기다 아니다 10년을 두고 입씨름을 한다 해도 끝이 안 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보기로 했다, 어쩔래?”로 내뻗으면 토론이 안 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 토론엔  해외 연구자들도 초치해서 참여시켰으면 한다. 각종 국제기구의 통계들이 북한경제를 이렇게 수치적으로 보는지도 알아보고.    어떤가? 유명 언론사나 학회가 주도해서 “여명 거리, 신과학자 거리는 북한 경제발전의 지표(指標)인가 아닌가?”란 논제로 국제학술대회라도 한 번 여는 게? 왜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일정한 관점(觀点)만으로 북한을 볼 게 아니라 과학적-사실(寫實)적-객관적으로 북한의 사실과 진실을 봐야 하겠기 때문이다. 주장만 하지 말고 검증을 하자.    한 가지 더. 송영길 의원은 북한 체제를 '유교사회주의'라고 이름붙였다. 개념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체제를 '가족' 개념을 포함한 공맹(孔孟) 윤리의 틀로 설명하기보다는, 반(反)인륜범죄 집단  김가(金家) 마피아의 세습 사교(邪敎) 체제로 바라보는 게 더 맞을 듯 싶은데, 어화 벗님네들, 어찌들 생각하시나뇨?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쏴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하는 근친살해 집단에 '가족'이나 '유교'란 개념은 어째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김성동

 《月刊朝鮮》 2001년 2월호에 “엽기 실록/‘살육의 배’ 페스카마 15호의 船上(선상)반란”이라는 기사를 쓴 일이 있었습니다.    6명의 조선족이 선상에서 칼, 도끼 등으로 한국인 등 11명의 선원을 처참하게 죽인 참치잡이 어선의 비극을 추적한 기사였습니다.    당시 조선족의 변호를 맡은 분이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권 변호사 문재인’이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사기록 등 방대한 자료들을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재인 변호사가 복사를 하고 있는 제 곁에 다가와 “우리 직원이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커피라도 드릴까요?”라고 했죠. 저는 “복사기를 이용하게 해 주시는 것만도 고맙습니다”라고 답했고요. 저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바빠 보이는 그 사무실의 다른 직원이 저를 도와줄 처지도 못 되었고요. 저는 지금도 제 곁으로 다가와 “커피라도 드릴까요?” 하던 문재인 변호사의 선한 눈빛을 기억합니다.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이죠.    이번 10월호에는 “2016년 문재인 대통령이 봉사활동을 한 네팔의 슈리 아루카르카 공립 중등학교에 가다”라는 현지 르포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 대통령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그 학교를 찾아가 벽돌을 직접 나르며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저는 요즘 이 두 가지 직접적, 간접적 체험을 통해 좋은 사람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년 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저는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념과 주변 사람에 포위되어 있어 현 집권 여당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그토록 비난했던 ‘불통’의 이미지가 문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으니까요.    左든 右든 정권이 실패해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이라고 치부하면서 변명할 수는 있을 겁니다. 좌는 보수 기득권 세력 때문에, 우는 기득권 귀족 노동운동 때문에라는 말로 실패의 명분을 만들겠지요.    하지만 역사는 핑계가 아닌 실패만을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감히 권합니다. 과거의 동지들은 그저 가슴으로 안고 가시고 냉철한 이성이 선택하는 인재들을 쓰시기를 권합니다. ‘국가’와 ‘애국’을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주변을 버리십시오. ‘좋은 분 문재인’이 ‘좋은 대통령 문재인’으로 역사에 남는 방법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류근일

한-미 동맹이 ‘정식으로’ 금가고 있다. 수면 아래서 진행되던 한-미 균열이 수면 위로 데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당이 그 점을 숨기지 않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부장관도 그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강경화 외무부장관은 이번 국회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이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불만을 표해 왔다고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정부의 일방적 조치 가능성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승인(approve) 없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안보특보 문정인도 미국이 무엇이라도 줘야 북한이 무엇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 제주도에서는 일부 계열이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의 입항을 반대했다.   지금의 정부가 1980년대에 생긴 반(反)서구적-반미(反美)적 민족주의 세대의 권력인 점을 상기한다면 이런 현상은 조금도 이상하달 게 없다. 오히려 사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해야 맞는다. 설마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거나 잡소리거나 잠꼬대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선 1980년대 당시의 운동권 단체들의 문건들을 조회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한-미 동맹은 그들에겐 친일행위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악(惡)으로 규정된다. 이게 이른바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관과 역사관을 쇼윈도에 진열하는 데는 여러 단계들을 거쳐 왔다. ”우린 이런 걸 믿는다“며 한꺼번에 신앙고백을 했다가는 감옥에 가게 생겼을 때는 앞다리만 조금 보인다. 그러면서 우린 그저 민족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누가 ”너희들 이런 자들이지?“ 하고 물으면 펄쩍 뛰며 ”생사람 잡지 말라“ ”조작하지 말라“며 핏대를 올린다. 그러다가 세상이 조금 달리지면 허리까지 내보이고, 더 달라지면 비로소 뒷다리까지 내보인다. 지금은 아예 ”그래 우린 이런 사람들이다, 어쩔래?“ 하며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정확하게 말하자. 한-미 동맹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죽게 내버려 수만은 없다. 우선 대한민국 자유민주 국민이 먼저 ”우린 한-미 동맹 절대 지지라고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명색이 힌국 야당도 이 민의를 집약해 “한-미 동맹 되살려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야당의원들이 미국 대사관 고위관계자를 초치해 그 뜻을 명백히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야당 대표가 미국 프레스 센터에서 연설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학회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럴 능력 있나?   그런 다음 미국 군부, 행정부, 의회의 다수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러시아-중국-북한 3각 동맹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천명해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자유민주 진영이 작용해야 한다.   이런 필요에선 민주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하원만이라도 장악하면 좋릏 것 같다. 민주당이라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해도 그들은 적어도 트럼프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자의적인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저 희망론일 뿐이다.   문정인 같은 ‘학자적 관점’에도 문제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김정은 다루기에도 문제가 많다. 외교와 안보를 어떻게 그렇게 기분 내키는 널뛰듯 다루나? 트럼프는 국가이기주의로 나가기로 작심한 것 같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전(前)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돈 아까운 줄 몰라 베를린에 가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고르바초프 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을까? 미국이라는 세계국가를 경영하는 데 트럼프 같은 협량으로 어쩌겠다는 소린가? 그까짓 돈만 펑펑 드는 세계국가 그만 하겠다고? 그럼 중국에 그 자리 내줘야지 뭐.   대한민국 자유민주 국민 여러분, 휴전선과 태평양에서 동시에 쓰나미가 파도쳐 올 때 임들께선 과연 어디로들 갈 참이시오? 아, 대답 좀 해보시라구요.

정장열

요즘 같은 환절기가 되면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 얼마나 빨리 바뀌느냐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가을 문턱 어쩌구 얘기만 나와도 바로 가을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날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냥 반팔 차림을 고수합니다. 저는 날씨 변화에 둔감한 쪽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도 꽤 쌀쌀했지만 여름 내내 입던 반팔 셔츠를 그냥 입고 나왔습니다.      변화에 느리고 둔감하다는 점에서 저는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느리고 변화에 앞장서는 것은 거의 젬병입니다. 좀 한심한 얘기지만, 대학 다닐 때 공산권 국가들의 인민복이 좋아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 옷을 고르는 고민이나 수고를 하지 않고 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쓸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는 인간입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개성을 속박하고 속박받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는 온갖 사안들을 두고 서로 툭탁거리지만 그 구분은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그렇게 접근하는 흥미로운 분석들이 더러 있습니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막사에서 미군이 보던 플레이보이지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야한’ 잡지에 난데없이 일상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조사 결과가 실렸습니다. 예컨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보 같은 것들입니다. 잠잘 때 잠옷을 걸치면 보수, 벗고 자는 걸 좋아하면 진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진짜 취향의 문제일까요. 고양이와 개의 구분은 꽤 유용한 듯싶습니다. 2012년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애완동물 소유와 인구통계 자료집(US Pet Ownership & Demographics Sourcebook)’이라는 조사인데 실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별로 어떤 후보한테 표를 던졌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여기서도 결과는 ‘개=보수, 고양이=진보’였습니다. 개를 키우는 가정이 많은 상위 10개 주 중 9개 주가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에게 표를 더 많이 던졌습니다. 대선 당시 롬니 후보가 애완견 시머스를 차 지붕 캐리어에 매달고 12시간이나 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학대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반면 뉴욕, 로드아일랜드, 미네소타주처럼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10개 주 중 상위 9개 주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이는 고양이를 대입시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몬트, 메인, 오리건, 워싱턴 등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주들에서는 개를 키우는 사람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았다는 겁니다.      저는 개를 키우고 변화에 늦게 반응하긴 하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진 않습니다. 날씨가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변화를 따릅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쪽입니다. 북한이, 김정은이 변한다고들 난리입니다. 저 같은 느림보는 진짜 북한이 변하는지 이것저것을 따져본 후에 판단을 내리려고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이춘근

▲ 2015년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북한 청년 수천 명이 참여한 대규모 횃불 퍼포먼스가 열렸다. 횃불 공연 참석자들이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이라는 글자를 선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반도 문제가 세계 정치의 고약한 문제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이 2차 대전 종전 무렵의 일이었으니 한반도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75년 이상이 되었다.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고 미국, 영국, 중국(당시 장제스의 중국)의 수뇌들은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에 유념(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하여 ‘한국을 적당한 절차를 거쳐 자유독립국가로 만들어줄 것을 결심했다(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부, 그리고 북한의 지도층 전부와 이들의 선전에 세뇌당한 북한 주민들 다수는 김일성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사실 오늘의 한국 문제를 규정하는 분단, 전쟁, 갈등은 그 대부분이 국제정치적 원인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도출해냈다는 사실이 한국의 광복을 가져온 결정적 요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분단의 역사는 제대로 살펴보면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그림이 나오지만, 종북 좌파인사들 전부와 상당수의 한국 국민들은 한반도의 분단 원인에 대해 입버릇처럼 ‘미국 놈들이 잘랐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 역사상 가장 처절한 재난이었던 6·25전쟁도 국제적인 문제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침략전쟁을 시작하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당시 기준 최신형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도 20개국에 이른다. 당대 세계의 강대국들이 모두 싸웠다. 처음에는 극구 부인했지만 소련 조종사들의 참전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일본 자위대 병사들도 소해(掃海)작전에 참여했던 세계적 전쟁이었다.       아무튼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위한 남침 전쟁은, 중국(당시 중공)과 소련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 및 소련 국제공산당이 신생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을 방치할 수 없는 미국과 자유진영은 전쟁 발발 단 일주일 만에 군사력을 한반도에 다시 배치, 공산군과 전투를 벌일 정도로 신속히 대처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군대를 파견, 한반도는 세계 각국에서 온 군인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공산주의 침략의 예봉을 꺾은 유엔군은 한반도를 자유 통일시킬 목적으로 38선 이북으로 밀고 올라갔다. 북한 공산정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진 1950년 10월 하순, 중국은 처음에는 은밀하게 그리고 곧바로 공개적으로 무려 130만명의 중공군을 한국 전역(戰域)에 투입했다. 중공은 음흉하게도 이들 군사력이 중국의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이 아니라 미국에 대항해서 싸우는 북한을 돕기 위해 스스로 파견된 군대, 즉 인민지원군(人民支援軍)이라고 불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불렀다. 한국전쟁이 지속되는 약 3년1개월 동안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남북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소련, 중국, 유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휴전을 끝끝내 반대했던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체결을 조건으로 휴전에 동의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북한 역시 한국전쟁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휴전 후 65년이 지난 2018년 현재 한반도 문제는 별로 나은 방향으로 진전하지 못했다. 2018년 4월 27일 열린 문재인·김정은 판문점회담, 6월 12일 열린 트럼프·김정은 회담 이후 피상적인 측면에서 일시적인 평화무드가 형성되기는 했지만 한반도 국제정세의 저변에는 남북한 중 한 편이 붕괴되어야 끝나는 본질적이고도 궁극적인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미·일 개입 않는 상황      한반도 문제가 도무지 풀리지 않고 교착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 사회 일각에 북한의 입장을 긍정하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반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의 연원이 소련·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진영의 잘못이기보다는 미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원인이 소련이기보다는 미국에 있다고 보는 수정주의 좌파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좌익 세력들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 방안은 제국주의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미군 철수’라는 구호가 6·25전쟁을 통해 공산주의 학정(虐政)을 경험한 한국 국민정서와 도무지 맞지 않는 과격한 구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한국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적어도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는 힘든 방법과 구호를 찾아내었다. 그 구호가 바로 ‘우리민족끼리’라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논리는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열정적이다. 한민족의 고통은 분단에서 유래한 것이고, 분단을 초래하고 고착화시킨 것은 외세(外勢)이니 그 외세를 제거하면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처럼 간단한 논리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에게 쉽게 먹혀들어간다. 우파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이 같은 논리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같은 논리는 깔끔하기는 하지만 함정이 많다. 우선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외세는 오로지 미국과 일본을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성향의 나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민족끼리’란 다른 말로 미국과 일본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은 외세가 이미 빠져나가버린 ‘주체의 나라’인 반면 한국은 미군에 의해 주둔, 점령, 착취당하고 있는 ‘식민지 국가’다. 그래서 남한의 시대는 미제강점기인 것이다. 남한 지역은 일장기가 펄럭이던 일제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성조기가 펄럭이는 미제강점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집요하게 외쳤고, 이들의 선전은 대단한 효과를 보았다. 반공·보수를 표방한다는 김영삼 대통령조차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민족끼리’라는 주장은 감성적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은 아니다. 우선 이들이 말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편협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이란 동양적 개념도 아니고 더더욱 우리나라의 개념도 아니다. 근대 서양에서 유래한 개념을 빌려온 것인데 우선 민족이란 언어, 문화, 역사, 관습, 종교, 사상 및 혈통이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이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민족의 요소는 혈통이다. 이들은 북한과 남한이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극도로 강조한다.       ▲ 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취소 트럼프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중민주당 당원들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은 ‘같은 생각’을 더 중시한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서양 사람들이 민족을 말할 때 가장 나중에 거론되는 요소가 ‘같은 혈통’이며 가장 강조되는 요소는 ‘같은 생각’을 나누고 있느냐 여부다. 즉 흑인과 백인이라도 역사와 언어, 관습, 종교, 사상이 같은 경우 그들은 하나의 민족이 된다. 오늘날의 미국이 그런 사례다. 서양인들은 피가 달라도 생각이 같으면 한민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도 피가 같으면 같은 민족이 될 수 있으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북한과 남한은 피가 같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고 우리끼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왜 세상에서 한국인과 피가 제일 가까운 일본을 그토록 배척할까? 사상이 달라도 피가 같아서 함께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일본은 한국과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지만 북한은 스스로를 ‘김일성 민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한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칭하는 용어인 ‘한민족’은 ‘김일성 민족’과 같은 민족인가, 다른 민족인가?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피가 달라서가 아니라 생각이 달라서다. 피가 같아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김일성 집단이 보기에 ‘반동분자’들일 뿐이다.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족속들인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김일성의 언급으로도 증명된다.      남북대화가 막 시작되던 무렵인 1970년대 초반 남북회담을 위해 사상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온 북한 대표들은 서울의 발전상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서울 사람들의 환대에 감정이 들떠 있었을 것이다. 노련한 전략가 김일성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남조선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만반의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일단 유사시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게 되면 남조선의 발전된 경제가 다 우리 것이 된다.”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 통일을 이룩하기 이전에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고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다른 한국 사람들, 즉 그들이 ‘꼴통 극우파’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지 묻고 싶다. 피가 같다는 사실이 민족의 본질이고, 그래서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 사람들도 다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니까 꼴통들, 자본주의자들도 포용해주기를 바란다.         ‘한민족’과 ‘김일성 민족’은 같은가 다른가      필자가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를 강의할 때 “우리끼리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풀면 될 문제 아니냐?”며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앞에서 말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들 중 오순도순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먼저 북한이 60년 이상 줄기차게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체제는 사실상 하나의 체제이며 주한미군에 대해 똑같은 하나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이 없어져야 남한을 무력 점령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인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주한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쟁을 억제(抑制)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위협이 없어질 때까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 문자 그대로 정치적 재앙을 불어올 수 있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를 끌어내리자는 촛불시위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군 나가라’는 촛불시위는 태극기 부대와 충돌을 피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촛불을 그대로 방치할 국민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반도 그 자체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민족끼리’ 주창자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떠드는 것과 달리 주한미군의 존재를 원하는 외세가 있으니 바로 일본과 중국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아시아 주둔 미군, 특히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시키려 했을 때 놀란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일본도 놀라고 중국도 놀랐다. 미군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일본이 채울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그래서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일본이 채우는 최악의 상황에 당면하기보다는 차라리 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은 언제라도 이 말을 그럴듯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리(중국)는 한반도의 안정을 원한다”고.      ‘우리민족끼리’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통일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필자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끼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듣기 싫은 말이 될 것이지만 한반도 주변 외세 중 한반도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는 나라는 단 한 나라 미국뿐이다. 왜 그런지 설명해보자.      국제정치학의 무서운 논리는 이웃에 힘센 나라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북한이 통일을 이룩할 경우 통일한국은 중국과 일본이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권력정치적(Power Politics) 이유에서 찬성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나라(남·북한)가 통일을 이룩해서 강한 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원할 이웃은 없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고려사항은 더욱 처절하다. 중국인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중국의 뒤통수에 붙어 있는 망치와 같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短刀)로 인식한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도무지 찬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남한이 통일하는 것도, 북한이 통일하는 것도 모두 원치 않는다. 통일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일본과 대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가 통일에 가장 근접했던 1950년 늦가을, 130만 대군을 파견, 이를 막았다. 한반도 통일을 막기 위해 중국은 약 20만명의 전사자, 60만명의 부상자를 감수했다. 중국군 사망자 명단에는 마오쩌둥의 아들 이름도 들어가 있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각각 종합국력 세계 2위, 3위의 나라다.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세계 2, 3위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민족끼리 오순도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이기보다는 환상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외세가 미국인데, 바로 미국만이 한반도 통일을 권력정치적·지정학적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솔직히 미국은 지정학적 이유에서 한반도 통일을 원하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는 남한, 북한 중 누가 통일하든 미국 편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운명이 그렇다는 말이다.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적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민족끼리’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원하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류근일

 린지 그레이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의 트윗을 읽어보자.    “나는 남한 (정권)의 북한 방문이 북한 정권에 최대압박을 가하려는 폼페이오 장관과 니키 헤일리 대사의 노력을 약화시킬까 걱정한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 장치 실험은 중단했지만 비핵화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 남한은 북한에 놀아나선 안 된다,”    그레이엄 의원의 이 말은 미국 보수 정계의 아주 일부만이 가지고 있는 소회일까, 아니면 상당수 인사들이 공유하는 의견일까? 더 눈에 띄는 대목은 폼페이오 장관과 니키 헤일리 대사 등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다시 의도하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 니키 대사는 유엔에서 러시아의 대북 제재 허물기를 최근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다.     이번 3차 남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핵 폐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 채 ‘조선반도의 비핵화’란 ‘그들의 수사학’만을 되풀이했다. 미국이 과연 이에 만족스럽게 생각할까? 11월 중간 선거를 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전에는 정치적으로 손해 갈 소리를 절대로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중간 선거 이후에는, 그리고 그가 만약 김정은에 대한 더 이상의 인내심을 잃을 경우엔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북한에 대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전망은 아직은 속단 할 건 못된다. 그리고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서기에는 트럼프는 이미 너무 많이 나간 측면도 있다. 강경책으로 전환할 경우 그는 자신의 그간의 대북정책이 실패였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직은 신중하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트럼프의 성품이 워낙 예측불허의 즉흥성 자체라서, 그가 잠시 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조야에 김정은이 미국 방식의 핵 폐기로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그런 기류를 가장 직설적으로 대변한 것이 그레이엄 의원의 트윗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흐름이 만약 강경한 대북정책 재개(再開)로 나타날 경우, 그 때의 미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다. “저런 것도 동맹국인가?” 하면서, 북한과 거래한 우리 기업-기관-은행에 대해서도 제재를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선택해야 한다. 한-미 동맹인가, 이른바 ‘민족공조’인가? 우파도 답해야 하고 좌파도 답해야 한다. 이른바 ‘중간파’도 답해야 한다. 지금이 1948년이라고 가정할 경우, 여러분은 평양 남북협상으로 달려갈 참인가, 대한민국 건국노선으로 달려갈 참인가? 응답하라, 대한민국 국민이여. 이건지 저건지 불분명한 채 국제정치에서 무소속으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개입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도희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귀국했다. 그리고 촛불정부는 평양으로 날아갔다.   홍 전 대표의 달라진 모습은 마이크 앞에 선채 수첩을 꺼내 드는 모습을 국민들께 보였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변화하려는 몸부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말들이 많다. 아직 상처가 채 가시기 전임에도 무슨 욕심에서 또다시 정치일선에 복귀하느냐 하는 비아냥과, 지난 지방선거에 대한 패배의 분위기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 등등 우려의 이야기도 있다. 사실 이 모든 질타는 현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미친 질주에 질려버린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의 발로라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홍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촛불세력의 反 대한민국 행보가 빤히 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만약 홍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反 대한민국 촛불세력은 부정선거 운운하며 대규모 불복종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을 테고, 지금까지 촛불이 켜져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촛불을 이어감과 동시에 보궐선거였으므로 올해 다시 선거를 해야 한다고 국회에서, 노동현장에서, 광화문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현재 자유진영이 비교적 점잖게 태극기 집회를 지속하고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었을 게 분명하다.   촛불세력이 그런 상황이라면 자유진영에서는 우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아래 혹독한 정치탄압을 받은 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석방되었으리라 본다.  이것은 촛불세력의 오만하고 잔혹한 정치탄압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점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지금쯤 김정은은 두손, 두발 모두 들고 말로만의 평화가 아니라 살기위해 평화의 광장으로 나왔을 터이다.   자유진영으로서는 촛불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이 천추의 한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지난 보궐대선 당시 필자는 홍대표의 유세현장을 시간이 나면 찾아가 연설을 듣고 함께 웃고 흥겨워한 적이 있다. 예전의 선거 때는 찾아볼 수없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절박함도 있었고 즐거움도 있었다. 홍대표의 거친 말투와 연설은 듣는 국민들에게 그런 재미를 던지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으로 일단 실패했다.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패배했고 당대표로 치른 지방선거는 전무후무한 참패로 끝났다. 여기에 무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 홍대표가 다시 대한민국 격전의 정치현장으로 돌아왔다. 정치는 현실이다. 국민들에게 표와 마음을 얻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귀국한 홍대표가 대통령이 되든 무엇이 되든 대한민국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국민의 한사람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홍대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리라 본다.   첫째, 촛불세력이 덧씌운 막말 프레임과 부패이미지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거기에는 가장 먼저 스스로가 변해야하고 국민들 또한 왜곡된 프로파간다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막말 프레임의 작전이 먹혀드는 데는 말투 외에 가벼움의 문제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촛불세력이 장난질 하는 것은 알겠는데, 거기에 자꾸 빌미를 제공하는 것에 짜증이 나고 품위가 떨어져 보이는 게 국민은 싫은 거다. 그래서 주어진 역사의 무거움 책무를 느끼고 진중하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정치인, 정당으로 보여 지는 게 중요하다.   둘째, 소위 친박세력과 상처받은 애국우파 진영을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나 태극기를 드는 국민들을 친박세력으로만 보면 안된다. 태극기를 든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애국자들이다. 친박이어서가 아니라 나라가 걱정되어 자기돈 내고 시간들여 싸우고 있는 거다. 이런 애국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애국심과 자긍심에 상처받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 하고 들고 일어선 것을 부패한 친박팔이들과 같이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길이다.   셋째, 측근정치를 걷어치워야 한다. 정치인에게 적극 지지자들이 있는 것은 좋다. 또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갇히는 순간 모든 것은 거기서 멈춘다. 항상 국민들을 봐야한다. 아프고 힘들어서 숨어 지내거나 나서지 못하는 국민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홍대표도 경비원의 아들이었고 천막당사의 고난을 겪었던 자유한국당 아닌가.   넷째, 청년, 청년 하지 마라. 청년을 찾는다고 청년은 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일을 하면 청년들은 저절로 온다. 촛불세력에 왜 청년들이 많은 거 같은가. 그들은 생태구조와 먹이사슬이라는 유인책으로 청년들을 모았다. 거기에 가면 소위 먹을 것이 생긴다. 자유한국당에서 수많은 고생을 한 청년들은 지금 모두 빈사상태다. 스스로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청년팔이로는 절대 청년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자유진영의 비전으로 차근차근 새로운 메카니즘을 만들어야한다.   다섯째, 강성노조와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임을 잊지 말라. 대통령이 되면, 정권을 가져오면 전부 청소하겠다는 생각은 지금 당장 버리는 게 좋다. 그거 기다리다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당권, 대권은 뒤로하고, 강성노조가 나라를 말아먹기 때문에 이들과 진짜 싸움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당권도 대권도 모두 보일 것이다.   필자는 정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게 대통령 선거라는 것에 참여해 보았다. 길거리에서 춤도 춰본 것은 대학 다닐 때 운동권 시절에도 없었던 추억이다. 이렇게 신명나는 대한민국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를 바란다.   국민 누가 봐도 아름답고 자랑스러워할 정치를 보이는 것은 정치인과 그 정당의 몫이다.     뿌리까지 썩어 문드러졌고 그나마 얼기설기 세워둔 기둥마저 흔들리는데 누가 거기에 새집을 지으려 하겠는가. 성체 솔개의 재탄생처럼 다시 창공을 원하거든 순교자의 정신으로 조국 대한민국의 엄중한 현실에 자신을 바치기를 당부드린다.   자유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권력은 원한다고 그저 오는 것이 아니기에...

류근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40%선이 무너졌다. 평균 37~8% 정도다. 필자는 이걸 낭보(朗報)라고 본다. 민주당이 하원 하나만 장악해도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민주당의 견제로 얼어붙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현재 시점에서 대한민국 자유우파 진영에 해롭다. 이 판단이 맞는다면 트럼프 지지율 하락은 대한민국 자유 우파 진영에 낭보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지지율 하락은 미국을 위해서도 당연한 낭보다. 미국 여론이 지도자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인격적 측면에서 미국의 수치다. 힐러리 클린턴도 도덕성 문제로 패배한 측면이 있지만, 그 대신 들어선 트럼프의 됨됨이는 그야말로 ‘막가는’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인지, 미국정치가 중우(衆愚)정치의 최악의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할 만하다.    트럼프는 독재자를 좋아한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그는 김정은을 치켜세우는 모양이다. “우리(트럼프와 김정은)는 환상적인 관계에 있다”고? 그래 많이 환상해라, 고결한 철학적 신념에 투철했던 미국독립 혁명의 선구자들이 지하에서 꺼이꺼이 통곡할 일이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경솔한 대북한 정책을 철저하게 좌절시켜야 한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청년 5만 명이 전사했다. 그 희생의 결과가 고작 트럼프의 한-미 동맹 내팽개치기란 말인가? 한-미 동맹이 삐거덕거리는 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 탓인 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역시 “주한민군을 왜 주둔시키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으니, 그의 천박한 국제정치 인식에도 한-미 동맹 악화의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법안을 내야 한다.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트럼프가 김정은과 임의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 어떤 구속력 있는 합의를 못하게 할 법안 말이다.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는 김정은과 멋대로 합의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뭘 하고 있나? 빨리 미국 의회 지도자와 만나 이런 걸 로비해야 할 것 아닌가? 애당초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의 호항을 자랑하며 “내가 탄핵당하면 가난해진다”고 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응답하라 미국, 어디로 갈 작정인가? 미국 독립혁명  정신인가, 뉴욕 부동산 업자 정신인가?    

류근일

▲ 사진출처=뉴시스9월 10월 11월 12월. 앞으로 연말까지 4개월. 이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문재인 대통령-김정은-트럼프-시진핑 이 네 사람이 아무래도 서로 죽이 맞아 무슨 일 낼 것 같다. 북한이 무슨 카드를 미국에 내밀지는 몰라도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종전선언은 물론 평화협정 논의도 약속해줄 것 같다. 이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시진핑도 적극 지지할 것임은 물론이다. 한국 우파만 낭떠러지 끝에 서 개 될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한-미 동맹에 대해 아무런 애착이 없다는 것을 밥 우드워드의 책 ‘백악관의 골포’는 전하고 있다. 주한 미군을 왜 주둔시켜야 하는지 모겠다, 주한미군 가족의 철수를 명령하려 했다, 한-미 FTA를 폐기할 뻔도 했다, 그 똥 덩어리 같은 땅에서 사드를 철거하라...어쩌고 한 걸 보면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어떤 고약한 안목을 가진 위인인지를 단적으로 간파할 수 있다. 그런 그가 국내에서 몰리는 나머지 김정은의 뜻에 맞춰줄 것만 같다.    김정은의 북한은 종전선언만 됐다 하면 그 날로 주한미군 철수, ‘남조선 보수패당’을 제외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소집, 일체의 북한 비판 언동 금지, 우익에 대한 마지막 궤멸작업을 요구해 올 것이다.   서을 거리에는 본격적인 극좌 언동이 홍수를 이룰 것이다. 누가 바랐듯이, 광화문 광장에 김일성 만세 현수막이 걸린대도 누구 하나 그겋 감히 떼려고 하질 못할 것이다. 공포분위기 때문에.    이 내리막 추세를 막을 힘이란 지금 남한 땅에 보이질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죽은 당이다. 바른미래당은 좌(左)를 향해 “우리도 보수반동만은 아니다”라고 설득하는 데 더 열심인 부류다. “니도 진보성이 있다니까. 아 글쎄 우리를 수구냉전과 일시동인(一視同仁) 하지 말아달라고”   자유한국당 복당파, 잔류파 중 웰빙 족, 그리고 김병준 비대위도 바른미래당과 대동소이한 체질-다시 말해 투철한 자유우파 신념에 살고 신념에 죽겠다는 전사상(戰士像)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 쇠망의 추세에 온몸으로 막아서고 나설까? 그렇게 묻는 너부터 나서라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글이나 쓰는 걸로 할 일 다 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70 넘으면 마이크 잡지 말라는 노혐(老嫌)의 목소리도 높고, 실제로 죽을 나이에 이르니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기도 하고, 꼰대가 주책없이 주제파악 못하고 얼굴 내밀어봤자 구박이나 받기 딱일 것 같아 칩거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데, 꼰대가 싫으면 우리가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203040이 목숨 걸고 나서야 할 터인데 몇몇을 빼곤 그런 건 또 보이질 않는다. 203040에 우파가 있는지조차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하긴, 있기야 하지. 트루스 포럼도 있고 자유의 새벽도 있지. 그러나 목숨 던져 희생하는 203040 순교자, 양심수, 행동대원, 전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게 보이면 우리 세대도 미소 지으며 눈 감을 수 있을 터인데.    꼰대가 자리를 내주지 않아 젊은이들이 진출 못한다고? 우리 젊었을 때는 누가 키워줘서 운동했나? 그냥 맨 땅에 헤딩 했지. 안중근은 누가 인큐베이터에서 길러냈나? 본인이 영웅이었지.     필자는 그 어떤 단체의 어떤 직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걸 아울러 밝혀둔다. 그 누구의 진출도 막고 있지 않단 말이다. 앞으로 숨 거두는 날까지 이럴 것이다.     한 집단이 망하는 그물에 걸려들면 그 운명적 추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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