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호

2017년 11월 13일 북한군 병사가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사선을 넘어 귀순했다. 자유를 찾아서다. 경계선을 넘어 남하했는데도 북한군의 사격으로 몸에 수많은 총탄을 맞았다. 패트릭 헨리가 부르짖었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절규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측에서는 북한 저격병들의 월경과 대남 총격에 대응하지 않은 한·미군 관계자를 칭찬하고 표창할 뿐 그 병사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반가워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가치인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찾아온 동포에 대하여 왜 찬사를 하지 않는 것인가?    한편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잇는 좌익 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귀순병사의 뱃속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공개된 것을 “인권 유린”이라면서 매도했다. 북한의 처참한 실상과 북한 수령 김정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에 그가 화가 났으리라고 네티즌들이 추정하고 비판했다.    이들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항의서한에 서명했다. 그 항의서한 작성을 위한 회의에서 임종석은 “미국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탈북자의 급속한 증가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느니, “탈북자 대량 입국은 인권에 반(反)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한다”느니, “탈북자 기획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상업행위이자 대북 적대행위”라느니 하는 발언을 남겼다.    탈북자 대량 입국이 인권에 어긋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북 적대행위”라는 말은 북한 당국이 우리와 미국에 대해 위협하면서 쓰는 용어 그대로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사들로부터 뉴스에 사용한 북한 화면에 대한 비용을 징수하여 북한에 보내는 일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런 자가 자신을 ‘민주화운동’을 했다고는 절대 소개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좌경 인사들이 말하는 인권의 대상은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프랑스 지식인 쥘리앵 방다가 말한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추상적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의 동포들이 처해 있는 인권 참상에 대하여 어찌 그리 냉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문은 임종석이 했던 ‘전대협’의 사상과 활동을 살펴보는 데서 풀어야 할 것이다.      ‘만절필동(萬折必東)’과 ‘만동(萬東)’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1월 초 방한(訪韓) 시 국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상세하게 고발하는 명연설을 해서 양심 있는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또 그는 자유민주체제가 준 자유를 향유하면서 성취한 대한민국의 근대화 ‘기적’에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의 연설은 온화하고 외교 수사적인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뼈가 있었다. 그것이 표출한 정치적 의미의 핵심은 남북한에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체제’ 문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이면서 핵심이 ‘기본권’이다. 이 기본권이 바로 인권이다. 이 기본권이 진짜 문제인데, 북한과 중국은 이 기본권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문재인은 왜 2500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오히려 북한 불량정권에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고 있느냐”고 트럼프는 묻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위급한 북핵에 대하여 한·미·일 3국이 협력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본권 보장도 안 하고 있는 중국에 사대(事大) 굴종하고 있다. 노영민 주중(駐中)대사가 12월 5일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적은 말이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보도되었다. ‘만절필동’은 ‘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조선은 명(明)나라가 망했는데도 만동묘(萬東廟)를 건립하고 숭명사대(崇明事大)를 했다. 그 ‘만동’은 ‘만천동류(萬川東流)’에서 따온 말이었다. ‘모든 강들이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의리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맹세를 표하는 것이었다. ‘만절필동’이건 ‘만천동류’이건 공산 중국에 대한 향념(向念)을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      ‘liberty’와 ‘freedom’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로저 스크러튼.  귀순 병사가 자유를 배우거나 체험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북한 수령독재 전체주의 체제에서 자유는 방탕이나 반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liberty’가 ‘무엇을 할 권리 내지 자유’를 의미한다면 ‘freedom’은 liberty에다가 개인적 영역이 합해진 것을 가리킨다. 귀순 병사가 배우지 않았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았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유에의 경향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으로부터 전해진 자그마한 정보들이 점화장치가 되어 자유에 대한 인간적 갈망에 불을 붙였던 것이리라.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 사상가들은 원래 인간에게 자유의 기본 형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좌경 학자들은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은 유신헌법에서 처음 들어간 표현이기 때문에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 법에는 ‘자유와 민주’라고 돼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제헌헌법은 노동자이익균점권이 표현하듯이 ‘사회민주주의’ 헌법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까지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하든지 ‘자유’를 빼려고 안달이다. 그런 입장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할 뿐이다. 가장 상위의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가 있다. 그리고 그 하위에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이 있다. 따라서 제헌헌법이 경제제도로서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하나도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지우려는 지속적인 시도는 그들의 좌경성을 드러낼 뿐이다.    영국 출신의 보수주의 사상가 로저 스크러튼(Roger Scruton)은 정치적 자유를 보는 입장에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자유주의 입장인데, 밀은 자유는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자신을 주장하는 개인의 힘이라고 했고, 로크는 일정하게 자유를 제한하는 법 아래서 방종하지 않는 자유를 말했다.    둘째는 보수주의 입장인데, 하나의 사회질서에 속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유는 다른 가치들과 균형 잡혀야 한다는 입장에서 밀의 자유주의 입장에 맞섰다.    셋째는 복지사회주의 입장으로, 위의 두 가지 입장이 적극적 자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서 더 만족스러운 분배를 요구한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를 잠재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고 보았다. 이 중에 보수주의는 이성적이고 질서 있는 자유를 옹호한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의 세 사상 중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추론에 의거한다. 그에 비해 가장 사려 깊은 보수주의자는 지속가능한 자유는 자연법의 적절한 목적들, 공동체의 관습들과 공동선(共同善)에 의하여 질서지워진다고 생각하는 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승만은 건국에 즈음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국가에 맞서는 자유’라는 관점에 너무 전염된 것 같다. 좌익들도 표면적으로는 그런 담론을 많이 이용한다. 물론 국가와 정부 내지 정권은 구별되어야 한다. 정부는 그 기관들로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라는 정치체는 추상적인 존재로서 만져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구성원들을 묶어 주는 존재다. 일찍이 홉스는 그런 추상적인 법인(法人) 같은 것으로서의 국가를 ‘인공인(artificial man)’이라고 표현했다.    1946년 6월 북한에는 이미 공산 괴뢰정권이 세워졌고 미국과 소련 간에 한반도 통일정부 협의도 결렬된 상황에서 이승만 박사가 “남한에서도 임시적 중앙정부 같은 것을 세워야 한다”는 독트린을 발표했을 때 ‘민족’의 이름 아래 반대가 비등했다. ‘국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데, 요즘도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을 ‘국가주의’라고 매도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낭만적 민족주의’에다가 ‘미국식 사고방식’이 더해져 생긴 것일 것이다. 미국식 사고방식이란 국가는 뒤로 숨기고 사회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최고의 정치공동체 단위가 ‘국가’다. 국가의 자율성과 목적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 ‘국민국가(nation-state)’다. 다시 말해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국가의 기능이다. 19세기 후진 독일에서도 칸트와 헤겔은 ‘Rechtsstaat’를 내세웠는데, 국가는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Rechtsstaat’는 번역이 또한 쉽지 않은 개념이다. ‘법에 의한 국가’ 내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라는 뜻이겠다.    이 전통이 독일에서도 그 후에 파괴된다. 그리하여 좌익은 국가 대신에 사회를 내세우고, 자유주의자들은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으로서의 국가라는 국가론을 내세우게 되었다.    한국 좌익은 1948년 체제로서의 대한민국 국가를 해체해야 되겠다는 입장에다가 민중론을 더해 왔다. 계급과 사회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부정당하고 있다. 그것들은 유토피아적이고, 시공(時空)을 떠난 관념들이다. 근대국가 만들기라는 것이 ‘건국’임을 모르는 소치다. 봉건적 지배나 노예상태를 벗고 인간의 권리를 확보하자는 것이 근대국가가 탄생된 목적이다.      사라진 자유해방의 전통    대한민국은 그런 권리와 자유를 확보하고 확충해 온 역사를 가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에 즈음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그는 농지개혁으로 예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선사했다. 자유로운 자립적 국민들로서만 자유민주 국민국가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갇힌 민족의 자유 박탈 상태를 해방하기 위한 표현이 그의 ‘북진통일’론이었다.    이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유의 방파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왜 방파제에 머물러야 되느냐? 우리는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들이칠 것이다”라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애국 정치인들은 이렇게 남한의 국민들뿐 아니라 미수복 북한의 민족의 자유와 인권 확보를 국가의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이런 자유해방의 전통이 사라졌다. 대신에 체제전복 세력은 북한 전체주의 권력을 옹위하고 북한 동포의 인권문제는 억눌러 왔다. 이 체제전복 세력이 바로 ‘적폐’다. 문 정부는 이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기본적 자유를 모든 구성원에게 허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이용하여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처하는 데 허약성을 가지는 정치형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당하고 보편성 있는 체제라는 이유로 당연히 전체주의 체제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제1차 대전 때부터 제2차 대전 종전 무렵까지 서유럽 대부분의 자유민주국가의 체제가 전체주의에 의해 무너졌었다. 제2차 대전에서도 전체주의에 질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현존이 자유민주주의를 이 세계에서 구했다. 미국의 능력이라는 우연이 없었으면 세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그 덕에 일제(日帝)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됐다. 그리고 그 후 잠재력을 발현해 ‘기적’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것도 70년째 전쟁 중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한국인들은 자유를 소중히 지키며 향유해야 한다. 그것은 각자가 이성적이어서 다른 모든 가치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조성관

▲ 소련기행 / 이태준 저 소설가 이태준(1904~?)이 ‘소련기행’을 발표한 게 1947년이다. 이태준은 1946년 북조선작가동맹의 일원으로 소련 전역을 70여일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가 황해도 은율의 휘문고보 친구집 사랑방에서 수개월간 기식하며 써낸 책이 ‘소련기행’이다. 조선의 문장가 이태준이 그려낸 ‘사회주의 전범(典範) 국가’ 소련은 눈부신 낙원이었다. 소련은 당시 사회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던 피압박민족 지식인의 눈에 그렇게 비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20세기를 산 세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1·2 차 세계대전이다. 1·2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1929년 뉴욕 증권가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대공황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대공황의 해일(海溢)은 대서양 건너 유럽에까지 밀어닥쳤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대공황의 추이를 지켜봤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몰락의 전조가 아닐까. 동시에 이들이 경이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나라가 소련이었다. 실업자가 없는 완전고용을 이루고 있다는 사회주의 낙원 소련을 향한 연모가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특히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전해지는 소련의 이야기는 천상의 복음(福音)처럼 들렸다. 1930년대 일본으로 유학간 한국 청년의 일부가 좌익운동에 빠졌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작은 할아버지가 집안에서 가장 머리가 좋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글쎄 빨갱이가 되어서….” 이태준 같은 피압박민족 지식인이 소련에 환상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한 개인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지리적 환경과 가정적 환경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대영제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처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트르는 부성 결핍의 열등감을 기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풀었고, 그 이념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20세기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한 두 사람이 작가 조지 오웰과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다. 1956년 2월 흐루시초프는 연설을 통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탈린의 대학살을 고발한다. 자유진영의 좌파 지식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조지 오웰이 옳았구나!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세계의 좌익들은 비로소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1980년대 대학가에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괴질 바이러스를 퍼트렸던 김영환도 이때 미망(迷妄)에서 깨어났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이 갈파했다. “공산체제는 폭력과 거짓으로 유지된다.” 북한은 지구상에 전례가 없는 가장 괴기한 체제다. 말로는 사회주의 운운하지만 실상은 사회주의 근처에도 못 가는 괴물 같은 체제가 북한이다. 북한은 폭력과 거짓말의 일상화로 설명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사람이 누구인가.      한국인은 지난 60년간 신물 나도록 ‘민족끼리’를 내세운 김씨 왕조의 거짓말에 속아왔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맹세를 했던 주사파들 역시 거짓말에 능수능란하다. 천안함을 침몰시켜 장병 46명을 수장(水葬)시킨 자들의 입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나온다. 한민족의 수치다.

류근일

법무부 장관이 비트코인 거래를 폐쇄 하겠다고 하더니, 청와대 눈치를 본 뒤 7 시간 만에 불야불야 철회했다. 비트코인 거래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무슨 정부가 방침을 앞뒤 안 가리고 덜컥 발표해 놓고 지지층이 반발하자 '깨갱‘ 하고 물러서느냔 말이다.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야?  운동권이란 뭐냐? 한 마디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보다, 이른바 ‘민중의 직접 참여’를 호언한다. 그러지니 대중의 욕구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 대중에 영합해 그들의 환심을 산 다음, 그 군중 파워에 의거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그냥 민주주의’ 체제로 변혁하려는 것이다.    ‘그냥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가? 음모가, 선동가, 조직자가 밀실에서 추동하고 견인하는 군중(crowd)이 광장 휘몰이를 통해 영구혁명을 하는 상황이다. 입법 행정 사법 정당 미디어가 모두 그 흥분한 군중 파워에 굴복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금(禁) 한다 ” 했다가 2030이 “뭐? 너희가 우리를 배신해?” 하고 화를 내자 어마 뜨거 꼬랑지를 사타구니에 처박은 코미디는 바로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인 셈이다, 하하하, 잘들 논다. 아주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구나.  데모크라시는 왕, 귀족, 성직자들의 전제(專制)를 몰아낸 공화정(共和政)을 뜻한다. 공화정 에는 따라서 좌익 독재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우익 독재에 이르는 여러 형태의 정체들이 다 포함된다. 스탈린의 소련도 공화정이었고,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도 공화정이고, 히틀러의 나치도 공화정이었다. 이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면 말이다. 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엔 중도-진보의 사회민주주의도 참여할 수 있다.    아, 그런데 이 자유민주주의를 없애고 거기서 ‘자유’를 떼어버린 ‘그냥 민주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자유롭지 않은(illiberal),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로 가려는 낌새다. 우리가 고작 이 꼴 보려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세우고 6. 25 남침을 격퇴하고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를 해왔던가? 죽으려거든 처음부터 태어나지도 말고, 잘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도 말았어야지, 왜 그 숱한 성취를 이룩한 다음 이제 와 자살을 하느냔 말이다.    비트코인 사태에서 전업(專業) 운동가들과 군중의 결합에 의한 ‘그냥 민주주의’의 민낯을 본다.

조성관

▲《로로르(여명)》(L’Aurore)지 1898년 1월 13일자에 실린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 나이 쉰여덟. 작가로서 그는 모든 것을 이룬 상황이었다. 지구상 모든 전업작가의 꿈인 인세수입만으로 그는 중상류 생활을 구가하고 있었다. 파리 근교에 근사한 별장도 있었다.      고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가 극빈자 생활을 전전하다 출판사 직원을 거쳐 전업작가의 길로 뛰어든 게 스물여섯. 1877년 ‘루콩마카르 총서’ 7권째 소설인 ‘목로주점’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그는 비로소 돈걱정에서 해방되었다. 나이 서른일곱.      그는 정진(精進)했다. 총서 20권을 쓰겠다는 약속대로 그는 매년 한 권씩 소설을 발표했다. ‘나나’ ‘제르미날’ ‘인간짐승’ 등이 잇따라 히트를 쳤다. 인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888년에는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의 수상자가 되었다. 같은해 평생의 취미가 되는 사진에 입문하기도 했다. 1891년에는 프랑스 작가협회장에 선출되었다.      1893년 총서의 제20권이자 마지막권인 ‘의사 파스칼’이 출간되었다. 제1권을 시작한 지 22년 만에 대장정을 완성했다. 프랑스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불로뉴숲에 모여 필생의 업(業)을 이룬 작가에게 축하연을 열어주었다. 1897년에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까지 선출된다. 명예와 부(富)를 모두 다 거머쥔 상태였다.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 이야기다.      그런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파리 일간신문 로로르(L’AURORE)에 기고를 했다. 클레망소 편집국장은 제목을 ‘나는 고발한다(J’Acccuse)’로 뽑았다. 부제(副題)는 ‘공화국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독일군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간첩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無罪)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고발한다’는 유대계 드레퓌스 대위에 대한 재심 탄원서였다. 당시 드레퓌스 대위는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에 복역 중이었다.      프랑스가 발칵 뒤집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박탈했다. 국방장관은 에밀 졸라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고, 권력층은 사법부를 조종해 ‘졸라 죽이기’에 나섰다. 군사법정은 졸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럴수록 재심 탄원서 서명자는 늘어났다. 군사법정은 재심 법정을 열어 드레퓌스에게 원심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 재심 결과는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더 이상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정권은 드레퓌스 대위에 대해 사면을 단행한다.      드레퓌스 대위를 국가 반역죄로 몰고간 것은 반(反)유대주의 권력층의 작품이었다. 군부(軍部)·정부·귀족사회가 주류를 이뤘다. 여기에 신문들이 합세해 엉터리 허위보도를 쏟아냈다. 반유대주의 마녀사냥이 프랑스 사회를 휩쓸었다. 기자들은 사실을 외면하고 거짓의 편에 섰다. 드레퓌스의 간첩혐의는 명백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지만 군사법정은 진실에 눈을 감았다.       에밀 졸라 역시 언론보도를 통해 사태를 파악했다. 그러다 사건의 진실에 눈을 뜨게 되었고 증거들을 수집해 나갔다. 마침내 1898년 1월 13일 ‘나는 고발한다’를 기고한다. 에밀 졸라는 진실을 밝히려 58년 인생을 걸었다. 6년간 칠흑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햇빛을 보았다.      1월 13일은 ‘나는 고발한다’라는 세기의 명문(名文)이 탄생한 지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책 한 권 읽지 않은 농사꾼이 진실을 말할 때가 많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실과 거짓의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다.

조갑제(趙甲濟)

1.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문에는 '촛불'이 9회, '평화'가 16회, '자유'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평화보다 더 근본적인 개념인 '자유'를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듯하다. 자유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가치이고 대통령은 촛불정신이 아니라 헌법정신을 수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상하다. 그는 자유를 넣어야 하는 문장에서도 애써 빼고 있다. 친정부 좌파 세력이 개헌안에서 대한민국의 운영 원리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문재인 대통령은 회견문에서 '촛불'을 우상숭배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심지어 '촛불이 바랐던 상식이고 정의입니다'라고 擬仁化(의인화)하기도 하였다. '촛불이 염원했던 대한민국' '촛불을 더 크고 넓게 밝히고' '촛불정신을 국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해야 합니다' 등등. 촛불을 거의 종교적 대상으로 삼는다.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라도 창시해야 할 판이다.    3. '사람중심 경제'가 국정철학이라는데 이는 語法에 맞지 않는다. 모든 경제는 사람 중심이다. '개 중심 경제'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촛불, 국민을 말하지만 정책으로 실천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민중주권론자의 본색을 드러낸다. '민중'으로 분류되는 이들만 사람, 촛불, 국민으로 여기고 이들에게 특혜와 특권을, 거기서 빠진 이들에게는 불평등을 안긴다. 반공자유 전선에서 일하였던 사람, 태극기를 들고 탄핵에 반대하였던 사람들, 기업인, 이승만, 박정희를 '사람 중심' 대상에서 뺀다. 이는 애국자를 차별 대상으로 삼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중심 경제'는 '민중 중심 경제' 또는 '(우리) 사람 중심 경제'로 읽어야 정확하다.    4. 경제정책을 설명한 대목을 읽어보면 거의가 '민중' 우대, 대기업 압박의 기조이다. 노동시간 단축, 장기소액연체자 채무 경감, 노동자에게 국가가 여행경비 지원 등등.   5. 대통령이 절대로 쓰지 않아야 할 '갑질'이란 양극화 선동 용어가 나온다. 운운. 국민 모두를 대표해야 할 대통령이 국민을 갑과 을로 분열시킨다. 대통령은 갑인가, 을인가? 6. 세금 1200억 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하자고 한 대목은 대한민국의 國體변혁을 위한 음모를 의심하게 만든다. 앞으로 다섯 달 사이에 개헌안 확정, 국회 통과가 가능하겠는가? 아파트 구조 변경을 위한 설계 시간보다 더 짧다. 1200억 원 정도의 낭비를 부른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개인 돈으로 배상금을 낸다면 국민투표 예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7.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그런 말이 없는 '평화'는 김정은만 즐겁게 할 것이다. 

류근일

“(개헌) 자문위는 최종보고서에서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은 결론 내지 않았고, 대신 전문(前文)에 있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뺐다.” 조선닷컴 1월 10일자 기사다.  우리 평생 ‘대한민국=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나라’라고 당연시해 온 게 결국은 일장춘몽이었나? 필자는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강의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 유인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들쳐본 필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유인물은 자유주의 타도, 개량주의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보통 사태가 아니라고 느꼈다. 학생운동이 마침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현이나 그 테두리 안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단계를 지나, 전체주의 극좌노선으로 내닫고 있음을 그 문건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타도’는 군사권위주의 반대로만은 안 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세계시장 체제도 타도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개량주의 타도라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진보로는 안 되고 오직 극좌 전체주의 혁명이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 문건에 반영된 당시 학생운동의 트렌드를 목격하면서 필자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제헌헌법 정신의 장래에 짙은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이런 트렌드의 20대 학생들이 향후 40대 50대가 되어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을 접수하면 이 나라는 저절로 ‘그런 그들의 체제’로 변질할 것임이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의 그런 예감은 오늘날 위 조선닷컴 기사대로라면 거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아닐지?  필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면서 추구하는 중도-진보 정책은 그것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떠나,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입장 자체는 헌법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정도를 넘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아예 배척하고 그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전체주의적 변혁으로 넘어가려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이건 필자 개인의 양보할 수 없는 양심의 자유다. 많은 동시대인들깨서 같은 입장에 서계실 것이라 믿는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 하고 있다면 과잉반응일까? 상당수 대중은 이 비상시국을 실감하지 못한 채 그냥 하루하루를 무심히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말 어디로 가시나이까?

신상목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일본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돈 10억엔도 우리 돈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 합의 이행한다고 한 적 없다. 그러니 일본이 엿먹은거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궤변이 어디에서 통할 것이라는 발상이 섬뜻하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다. 10억엔 돌려주고 말고 어쩌구는 일본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재단을 존치시키건 해산시키건 일본한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통해 얻고자 한 최중요 목표는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정부간 어젠다로서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잊은 것이 있는데,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대일외교의 핵심 어젠다로 잡은 것은 정부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때에도 위안부 문제를 내세운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과거사 문제를 임기 중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상황이 일변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부작위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서부터이다.   한일협정과의 관계에서 해결이 안된 사항이라고 정부가 유권해석을 했고, 일본이 그를 부인하는 상황은 한일협정 해석에 분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해석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이다. 헌재가 행정부의 외교적 판단까지 간섭한 행위를 나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정부는 위헌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외교 문제로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본에 외교문제로 제기하더라도 대일관계 관리를 염두에 두면서 강약과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몰빵 외교를 하면서 한일관계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60년간 지켜온 한일협정으로 모두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원칙을 꺾고 합의를 한 것은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였던 것이다.   일본이 전후 기초가 되는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합의에 응한 이유는 딱 하나이다.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정부간 이슈로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게 일본에게는 합의의 목적이고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그리고 그 합의에 기초해서 외교공관 앞 소녀상 문제를 한국 정부에 제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 덤이었다.   한국 정부가 지원금을 자기 예산으로 지급하건 재단을 해산하건 일본측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일본은 합의 상의 의무를 다 이행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들의 의무 이행을 근거로 한국측이 이 문제를 다시는 제기하지 않을 것을 한국의 의무로 규정하고 그 이행을 요구한다. 한국 정부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 언제 합의 이행한다고 했냐? 와 같은 어리석은 발상으로 정신승리하며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론을 내리면,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지 않으려면 일본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면 안된다.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일본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부간 이슈로 위안부 문제만 제기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소녀상 문제는 일본도 어물쩍 넘어갔기 때문에 합의를 근거로 더 강하게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그것은 통한이다.   현 정권은 전 정권의 위안부 합의로 헌재 결정의 족쇄를 풀었다. 정부가 최소한 부작위 위헌 소리는 안들어도 된다. 족쇄가 풀린 현 정권은 위안부 문제로 얼마나 일본과 대립각을 세울 용의가 있는가?   글쎄... 일본에서는 더 이상 나올게 없다. 박근혜 정권 합의보다 진전된 합의는 불가능하다. 잘하면 평생 평행선이고 잘못하면 양국관계는 관리불가이다. 예전부터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일본을 거의 유일한 공짜 돈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여정부에 있었다. 실제 일북수교 등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이기도 하다. 지금 정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권 잡기 전과 잡고 난 후의 상황 변화를 관리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맘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만이 진리다.

김대현

▲ 오는 6월 13일 전국 광역 및 기초단체의 장(長)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2014년 6월 4일 당선 / 7월 1일 취임 / 7월 31일 선관위, 검찰 고발 / 12월 3일 검찰 기소 2015년 3월 16일 법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1심) 7월 20일 법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항소심) 2016년 8월 26일 대법원, 일부 무죄취지 파기환송 2017년 2월 16일 법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파기환송심) 11월 14일 대법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확정      더불어민주당 소속 권선택 전 대전시장의 재판일지입니다. 주요 내용만 간추렸는데도, 꽤 긴 재판이 진행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7월 1일 대전시장에 취임한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시장직을 상실했습니다.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 전 시장에게 징역형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4년여가 흘러 다시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대전시는 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대전지검이 권 전 시장을 기소한 것은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앞서 선거관리위원회는 관련 혐의로 권 전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권 전 시장은 사전 선거운동을 했고 이 과정에서 설립한 조직을 통해 1억6000여만원의 정치자금을 수수했다고 합니다. 1심 징역형, 2심 징역형, 3심 일부 무죄취지 파기환송, 4심 징역형, 5심 징역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판 과정을 보면 법원은 권 전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계속 유죄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권 전 시장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3년5개월간 시장직을 유지했습니다.      재판의 공정성을 기하고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한 3심 제도가 단체장의 현직을 유지하는 데 악용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전시정은 어떻게 운영됐을까요.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전국광역시도정 평가에서 대전시는 17개 시도 가운데 바닥권인 14위로 조사됐습니다. 지방분권은 지방 주민 또는 대표자의 책임하에 지역성과 특수성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역 주민의 기대치를 밑도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물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유권자 주변에 불·탈법한 방법을 동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일찌감치 마음의 투표용지에서 그 이름을 지우시기를 권합니다. 임기 내내 재판을 받는 단체장은 지역을 위해 일할 여력이 없습니다.

박진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얼핏 시장자유주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한다는데, 뭐라 하면 시장자유주의가 아니다. 좌파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강제성을 고려해보면, 코웃음 칠 주장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들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사실상 강제 조세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호가호위일 뿐이다. 국민의 돈을 강제로 걷어 자기들 마음대로 운용하는 것이다.   민간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장려해야 한다. 연금 가입자들이 자율적 판단 하에 재산의 운용권을 민간연금에 맡긴 것이므로, 주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민간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당하다. 민간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잘못하여 수익률이 떨어지면 가입자들은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잘못을 응징한다. 연금의 평판이 나빠져 신규 가입자도 줄어들 것이다.   일부 애국보수 세력들은 기관투자자들이 단기 수익을 추구할 뿐이라며, 주주자본주의를 기업의 장기 성장 모멘텀을 갉아먹는 주범처럼 얘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기관투자자 중엔 단기성 투기세력보다 장기적 안목에 기반을 둔 가치투자자가 더 많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며 수익을 내야만 연금도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주자본주의는 기업과 국민 경제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미국 등에서 주주자본주의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소액 주주에게 낸 돈만큼의 의결권을 뛰어넘는 권한을 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투자 동기는 단기성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에 있다. 의결권 행사를 통한 기업 경영은 별 관심도, 의미도 없다. 그래서 소액주주를 보호하려는 각종 제도들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도움이 됐다기 보단, 투기세력에 의해 악용된 것이다. 이와 달리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어떠한 특별대우도 아니다. 법이 부여하는 특혜와 시장에서의 정당한 권리 행사는 구별해야 한다.   요컨대 주주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고 장려해 마땅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다. 민간연금은 수익률로 심판받기에 의결권 행사에 신중해야 하지만, 오히려 국민연금은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기에 수익률보단 집권세력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의결권을 악용할 공산이 크다. 연금 사회주의다.   국민연금은 폐지하고, 자동차 보험처럼 연금 가입만 의무화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의결권 행사는 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출저: "제3의 길"

조갑제(趙甲濟)

  2016년 1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진행 중일 때 나는 아래 글을 조갑제닷컴에 썼다. 1년이 지나 보니 대충 들어맞은 것 같다.    〈계급투쟁론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한국의 정치가 촛불 정권을 탄생시키면 반공자유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 평등, 합리, 진실, 복지, 안전이란 가치도 보장될 수 없게 된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딘다고 하지만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면 복원력도 잃게 된다. 대선을 통한 ‘촛불혁명 정권’의 등장은 한국을 해양문화권에서 대륙문화권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자유와 개방과 실용의 바다에서 전제와 억압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좌파 정권이 이념적 방향성에 따라, 현금 동원력이 엄청난 중국, 핵무장한 북한 쪽으로 기울면 한미(韓美)동맹과 한일(韓日)우호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핵을 갖지 못한 한국은 계급투쟁론적 세계관을 가진 지도부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중국 및 북한에 예속될 것이다. 한국이 앞장서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고 나올지 모른다(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에게 ‘나는 북핵 문제를 북한의 변호인 입장에서 다루면서 미국과 맞섰다’는 요지의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촛불 정권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밀어붙여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할 것이다. 이는 경제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촛불 정권은 한국 경제가 몰락해야 북한 수준과 근접, 10·4선언이 약속한 ‘유무상통에 의한 남북한 균형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민심이 이반하면 촛불 정권은 선동언론과 검찰권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 탄압에 나설 것이다. 우파 세력은 촛불 정권이 헌법을 위반, 국가 정체성을 변조한다면서 국민저항운동을 벌이고 헌법 제5조에 따른 국군의 역할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민중혁명도 군사 쿠데타도 불가능한 성숙한 민주국가라는 자신감을 흔들어 버린 것이 촛불시위와 태극기시위가 격돌하는 작금의 상황이다. 좌우 대결 구도를 가진 나라는 민중혁명과 군사 쿠데타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곤 한다.    좌우 정치의 본산인 프랑스는 두 번째로 오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1830년 7월, 1848년 2월의 두 차례 혁명과 1871년의 파리 코뮌을 겪었다. 파리 코뮌은 프러시아 군대가 파리를 포위한 가운데 적전(敵前) 분열한 좌우가 서로 학살한 사건이다. 프랑스는 히틀러 등장 이후 1930년대에 다시 한 번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다가 1940년 5월 독일군의 전격전에 걸려 6주 만에 패망하였다.    프랑스는 1958년과 1961년에도 알제리 사태를 둘러싼 위기에 직면, 군사 쿠데타 직전까지 갔다. 1968년 5월엔 학생과 노동자들이 궐기하여 드골 정부를 몰아내려 하였다. 신변의 위기를 느낀 드골은 극비리에 서독 주둔 프랑스 군사령부로 날아가 군대의 충성을 확인한 뒤 귀국, 국회를 해산,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났다.    프랑스형(型) 정치 구조를 가진 한국이 프랑스와 다른 점은 핵무장한 적(敵)의 존재이다. 한국의 내전적(內戰的) 사태는 시리아처럼 주변국의 개입을 부를 뿐 아니라 핵무기 사용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촛불시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문제는 연 세력이 뚜껑을 닫을 힘이 있는가이다.〉       ‘반공자유민주법치체제’에 대한 촛불혁명 정권의 도전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보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내가 한 예측 중 가장 의미 있는 적중(的中)은 ‘촛불혁명 정권’이란 말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하여 공식화된 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공무원 집단이 촛불혁명 정신 구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행태는 ‘반공자유민주법치체제 해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즉 헌법에 담긴 국가 정통성,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부정하고,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국가 진로를 바꾸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를 줄이면 ‘국체(國體) 변경’이다. 국체 변경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무효화시키므로 헌법 개정으로도 불가능하고 오로지 혁명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이란 말은 문재인 정권의 본질에 대한 정직한 표현일 수 있다.    촛불혁명이든 군사혁명이든 민중혁명이든 모든 혁명은 헌법파괴 행위이다. 혁명의 기치를 드는 순간 양자택일(兩者擇一)이다. 혁명이 성공하여 헌정(憲政)질서를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헌법의 힘에 의하여 진압될 것인가이다. ‘진압’의 방식은 무력, 수사, 탄핵, 선거 등이다.    남북한의 대결구도, 그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양식(樣式)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민족사적 정통성 투쟁은 한민족의 챔피언이 대한민국이냐 북한 정권이냐의 싸움이다. 이는 역사관 대결로 전개되는데 서울이 주전장(主戰場)이다. 역사관 대결은 이념대결보다 더 원초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 부분에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편이 아님을 이미 선언한 상태이다. 대한민국 편이 아니면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이든지 북한 편이 된다.      국가 정통성 부정: 대한민국은 사생아(私生兒)?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는 2016년 8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반헌법적 주장,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지 100년이 다가오는데도 우리는 아직 민주공화국을 완성하지 못했고 국민주권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민의 주권행사로 뽑힌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아직도 ‘국민주권’이 실천되는 나라가 아니므로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임시국가’ 정도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이런 생각을 정책화하여 2018년을 대한민국 수립 70주년이 아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기념하겠다고 했다.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주장의 중대한 위헌성(違憲性)은 대한민국이 헌법과 선거를 통하여 수립, 역사적 정통성과 국제적 정당성을 얻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데 있다.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선택한 정부였고, 유엔 총회가 이 점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공인한 점을 무시하는 것은 민주투사를 자칭하는 이들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의 의미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정부 중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자신만이 ‘민주정부’라는 말을 한다. 그가 말한 ‘민주’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다른 민주주의일 가능성이 높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결의안을 왜곡, 대한민국이 38도선 이남에서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한 학자를 대한민국 박물관장에 임명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면 필연적으로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게 되든지 그들의 억지를 강화하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개혁하려 한 가장 큰 이유도 이른바 민중사관으로 획일화된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개혁된 교과서의 폐기를 지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가연합 또는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권력 구축에 자신감을 가진 뒤에는 개헌 등을 통하여 이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연합 통일 방안은 북한 정권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을, 우리의 영토를 불법 점거한 반(反)국가단체로 규정한 헌법뿐 아니라 문제 많은 6·15선언과도 배치된다.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에서도 사실상 위헌(違憲)으로 판시된 적이 있다.      반공(反共)이 범죄인가?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확신에 가득 찬 집단을 상대로 하여 국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킬 수 있나’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정체성 부문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헌법과 역사적 경험에 의하여 구축된 국가 정체성은 ‘반공자유민주법치국가’로 정리된다. 이 정체성은 ‘대한민국만이 민족사의 유일한 정통국가이고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정통성에 기반을 두어야만 지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통성을 부정하므로 자연히 정체성을 훼손하게 된다. 특히 이 정부는 ‘반공’에 대하여 혐오감(嫌惡感) 내지 적대감을 드러내고 이를 이른바 적폐수사에 반영하고 있다.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심리전에 대응한 국정원과 국방부의 댓글 쓰기는 조직 본연의 반공 안보 활동인데도 극히 일부 댓글의 성격을 문제 삼아 ‘정치개입’이나 ‘선거개입’으로 몰고 최고위급(국정원장, 국방장관 등) 반공전사(戰士)들을 구속시켰다. 보수 정부에 대한 수사는 이 댓글의 왜곡에 의하여 확대된 것이다.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국정원의 대공(對共)수사 기능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보안법 무력화(無力化)로 진행될 것이다. 국정원이나 국가보안법으로 생활이 불편한 국민들이 있나? 간첩, 공작원, 종북세력 말고.    *국정원의 숙청을 지휘하는 위원회엔 대한민국보다 북한 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도 있다.    *‘전향(轉向)했다는 증거가 없는 극좌 인사가 반공세력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촛불혁명을 ‘좌익혁명’으로 불러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문재인 정부의 주적(主敵)은 헌법이나 안보상, 핵무기로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이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반공자유민주법치체제(세력)를 주적으로 보는 것 같다.      국회부의장의 문제 제기  문재인 정부가 내란죄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 심재철 국회부의장.  드디어 지난 11월 말 심재철(沈在哲) 국회부의장이 위헌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기자회견문에서 〈현재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여러 행정부처에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벌이고 있는 일은 실질적으로는 조사가 아니라 수사를 하고 있으며 이 같은 기구를 만들려면 모법(母法)에 명백한 위임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기구들이 절차적 정의를 위배하고 있으므로 문재인 정부는 먼저, 불법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며 점령군처럼 국가기밀을 마구 뒤지는 모든 과거사위원회를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검찰은 불법자료에 기초해 과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하고 있는 불법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법원은 과거사위원회의 불법적인 수사권고로 검찰이 수사, 구속한 모든 피의자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과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을 법치파괴의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등으로 형사고발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국회부의장이 이른바 민주투사 정권을 향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파괴의 내란죄를 범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언론과 자유한국당은 극히 소극적인 보도와 대응을 하였다. 촛불혁명 정권이 일종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전희경 의원-임종석 실장의 대결  임종석 비서실장의 이념적 정체성을 따진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모든 혁명은 주체세력의 이념을 반영한다. 교육부 장관 보좌관에는 북한 정권에 동조하여 이적(利敵)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의 간부 출신이, 총리 비서관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부정해 온 운동권 출신이, 대통령비서실장엔 공영방송들로부터 북한 방송 저작권료를 대신 받아 북한으로 보내준 ‘수금 대리인’이, 그리고 청와대, 내각엔 좌경 운동권 출신이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다. ‘주사파 정권’ ‘운동권 정권’이라는 말이 예사로 쓰여도 논리적 반박을 하지 않는다. 국가 정체성과 민족사적 정통성은 대한민국의 영혼에 해당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정신이나 신체는 병들어도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이 망가지면 구제 불능인 경우가 많다. 국가의 영혼을 관리하는 이들이 계급투쟁론에 물든 이들이라면?    2017년 11월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의 풍경이 영혼 문제가 걸린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전희경 위원: 질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략) 주사파·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 과연 그 청와대의 면면과 실력답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님을 비롯해서 신동호, 백원우, 유행렬, 한병도, 이런 분들이 생각이 바뀌어서 간혹 한두 분 들어갈 수 있다고 칩시다. 많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청와대 구성이 전반적으로 저렇게 한 축으로 다 기울어져 있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끝마다 ‘트럼프 방한’ ‘트럼프 방한의 중요성 때문에’ 이런 말씀을 운운하시는 것이 저는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싶습니다.    전대협의 강령과 회칙을 보면 전대협 강령 전문에는 미국을 반대하고 모든 외세의 부당한 등등 해서 반미, 회칙에는 민족과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전대협의 많은 인사가 이런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트럼프 방한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과연 트럼프 방한에 맞춰서 반미 운동하겠다, 시위하겠다고 하는 분들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대협에서 얘기한 이 진보적 민주주의는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해산 판결의 주요 이유였습니다. 이것이 북한식의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서 전혀 입장 정리도 안 되신 분들이 청와대 내에서 일을 하시니까 인사 참사 발생하고 커피 들고 치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그런 것 하느라고 지금 정작 중요한 안보·경제 하나도 못 챙기는 겁니다.    사회부총리는 더 심각합니다. 이분은 온통 반(反)대한민국적인 주의와 주장으로 점철된 길을 걸었고, 국회에서 그렇게 많은 부적격 사유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 강행됐습니다.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위원님 말씀 매우 유감입니다. 5공화국, 6공화국 때 정치군인들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할 때 제가 위원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위원님께서 거론하신 대부분의 그 사람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위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습니다.    전희경 위원: 무슨 말씀 하세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논거에 대해서만 얘기하세요. (장내 소란) 대북관(對北觀)에 대해 설명하세요!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매우 유감입니다.    정용기 위원: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질의한 데 대해서? (장내 소란)  임종석 비서실장은 전희경 의원의 추궁에도 대북관 등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국민의 대표답지 않게 질의하니까 그렇지요!    정용기 위원: 그게 질의냐니!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국민의 대표답지 않게 질의하니까 답변드리는 겁니다.    김정재 위원: 아니, 권력 잡았으면 다예요?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무슨 말씀들을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충분히 국회를 존중하고 저도 최선을 다해서 인내하고 답변해 왔습니다.    정용기 위원: 전향했다고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어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 많은 국민이 최근의 안보 상황과 관련해서 궁금해하고 있어서 국민을 대신해서 그런 것들을 궁금해서 물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게 질의냐’라고, 그게 질의냐… 아니, 답변에 대해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그게 답변입니까?’라고 힐난하는 것은 봤어도 청와대 관계자, 기관 증인으로 나온 증인이 위원을 상대로 ‘그게 질의입니까?’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실장 두 분 다 오히려 위원한테 따지듯이 질문을 하고 이런 식의 수감 태도를 보인다면 더 이상 국정감사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희경 위원: 전대협 문제를 가지고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전대협의 전문(前文)과 강령과 회칙에 있는 대미관(對美觀)에 대해서 아직도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국가라고 인식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그런 견해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국정감사에 와 있기 때문에 마땅히 국회를 존중하고 국회의 지적에 대해서 성실하게 답변을 드려 왔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본 가장 큰 모욕이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무리 국회라고는 하나 위원님들께서는 막 말씀하셔도 되고 저희는 그냥 다 앉아 있기만 해야 한다고는, 그것을 납득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다만, 오늘 여러 위원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서 국정감사를 하고 계시는데 위원회 운영에 누가 된 데 대해서는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반박되지 않은 거짓말은 진실로 통한다는 게 정치권이다. 전희경 의원의 질문에 끝까지 전향 여부를 밝히지 않은 임종석 실장은 주사파라는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각오임이 분명해 보인다. ‘주사파’는 학파가 아니고 김일성 우상 숭배 세력이다. ‘주사파 정권’이라는 말이 맞다면 대한민국도 온전할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해명하든지 정리할 의무가 있다.      ‘적폐청산’ 내걸고 국가성격 바꾸려 들어  지난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반공자유민주법치국가’의 성격을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이라는 두 키워드를 활용하여 바꾸려는 전략을 드러내었다. 적폐청산이라는 기치를 내걸어 검찰과 법원을 ‘촛불혁명의 도구’로 삼고 친정부 언론, 특히 방송을 선전기관으로 장악, ‘반공자유민주법치’ 세력을 약화, 위축시킨 다음 국민 지지를 확보,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민중민주주의”를 담은 개헌(改憲)으로 국체 변경을 공식화하려 들 것이다.    여기에 방해가 되는 세력은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세력이라기보다는 사실, 헌법, 과학이고 대한민국이란 문명(文明)이다. 대한민국은 이승만(李承晩)의 반공자유 노선과 박정희(朴正熙)의 부국강병(富國强兵) 노선, 그리고 합헌적 민주화 세력의 노력이 합쳐져서 위대한 문명 건설에 성공하였다. 문명의 기초는 제도(법치), 경제력, 군사력, 국민교양, 역사와 전통 같은 것들이다.    촛불혁명 세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이 모범 시민으로 평가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같은 분들과 국군, 기업인, 주한미군을 적대적으로 본다. 무비자 국가 수 랭킹에서 꼴찌권인 북한 정권과 그 추종자들, 그리고 북한의 후원자인 중국에 대하여는 우호적이다. 이는 계급투쟁론에 기초한 이념적 가치관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다. 그래서 이념은 감정이라고 한다.      안보주권상납사건    국가진로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해양문화권의 자유 진영에서 이탈, 대륙문화권의 전제(專制) 진영으로 다가가는 노선 변경이다.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중국에 대하여 외교부 장관의 입장표명 형식으로 세 가지를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은 ‘안보주권(主權) 상납사건’이라 부를 만하다.    첫째,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주한미군의 안전은 물론이고 수도권 2500만명 국민의 안전을 포기하여, 김정은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 무장해제 상태로 남겠다는 이야기이다. 북한 정권의 인질 되기를 자원(自願)한 꼴이다. 간접적 대북(對北) 굴종이다.    둘째, 미국 주도의 MD(미사일 방어망) 건설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득을 보는 것은 중국과 북한이고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인과 미국이다. 대북(對北)전략 정보 수집 능력이 제한적인 한국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어도 제대로 운용할 수가 없다.    셋째, 한미일(韓美日) 군사협력 관계 강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건 현실 부정이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신속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미군의 전투기와 함정은 거의가 일본에 있는 일곱 미군기지(유엔군 후방 사령부가 관할)에서 발진한다.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한국 방어에 결정적이다. 이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보다는 적의 수괴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쓴다. 전술핵 재배치 반대한다, 자위적 핵개발도 생각 없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반대한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한다 등등.    건국 이후 어떤 정부도 이 정도의 굴욕적인 외교를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언론과 야당이 거의 비판을 하지 않으니 국민들도 반대 의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서 치명적 국익(國益) 침해가 방치되고 있다.    촛불혁명 세력이 반(反)자유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추구하게 될 탈(脫)한미동맹, 탈해양문화권 전략은 세계사적으로 실패한 것임이 확인된 노선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적 문명 건설은 개방적, 실용적, 해양적 자유노선의 산물인데, 이들은 폐쇄적, 대륙지향적, 억압적 노선으로 돌아가려 한다. 개항 이전의 조선조적 봉건 질서!    촛불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은 언론, 검찰, 법원, 귀족 노조, 국회의원들인데 이들이야말로 신종 양반 특권층이라 불릴 만하다. 이들로부터 집중적으로 당하는 이들은 군인, 기업인, 과학자, 전문가들이다. 전자(前者)는 조선조의 과거시험 합격 지배층과 닮았고 후자(後者)는 대한민국의 문명 건설 과정에서 새로 등장한 실용적 선진 세력이다. 한국은 1948년 이후 70년간 우파적 노선을 걸어왔지만, 조선조 개국 이후 약 600년간 지속된 좌파적(폐쇄, 관념론, 사농공상) 정치생리의 관성과 뿌리를 정리하기엔 너무 짧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역공(逆攻)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촛불혁명의 가공할 점은 북핵 위기로 국가 존망(存亡)의 벼랑에 섰는데도 내부 분열을 부추기고 한미동맹을 약화시켜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부르고 있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문명 건설 세력을 향한 적대감으로 무장한 정권이 공무원들을 혁명의 도구로 삼아 국가 정통성과 반공자유의 정체성과 외교노선을 바꾸는 것, 이것이 촛불혁명의 목표임이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자유 진영의 대응은 미미하다. 전쟁상황, 경제위기, 그리고 집권 세력의 자충수가 활로(活路)를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할 뿐 자력갱생(自力更生)의 모색엔 게으르고 본격적인 반성도 없으며 소아병적 분열상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심화(深化)되고 있다.      심재철, 과거사진상위원들의 전력 공개 요구  지난 9월 28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적폐청산위 긴급회의에서 발언하는 박범계 위원장.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의 혁명 노선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반박하고 나온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자유한국당이 법률 검토를 거쳐 대통령, 국정원장, 비서실장, 서울중앙지검장을 내란죄 혐의로 고발할 것을 촉구한 데 대하여 여권이 반발하자 이렇게 제안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정체성 수호를 요구하는 본 의원의 진정성을 왜곡하고 사퇴 운운의 정치공세를 폈는데 본 의원은 현 정부가 좋아하는 방식인 공론화위원회와 국민대토론회를 거쳐서 국민이 진상을 파악하게 하고 국민의 진정한 여론을 확인할 것을 제안하는바 그리되면 국회부의장직에서 기꺼이 사퇴할 것이다. 아울러 공론화위원회와 국민대토론회로 민주시민 의식에 기초한 건전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재까지의 진행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모든 정보가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1. 각 부처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의 전력과 전과  2.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의 추천과 선발과정  3. 청와대의 개입 정도를 포함한 적폐청산 리스트의 작성과정  4. 적폐청산에 대한 청와대의 모든 회의 자료  5. 적폐청산과 관련된 각 부처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회의내용과 회의자료  6. 적폐청산에 대한 각 부처 행정기구의 협조 정도  7. 적폐청산기구의 운영과 활동에 사용된 예산 액수와 예산의 본래 용도〉    심재철 부의장은, 촛불혁명에 민주적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링컨은 “국민은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진실을 알게 되면 바른 행동을 한다. 문제는 이를 믿고 진실을 알리는 일을 정치인이 할 수 있느냐이다”라고 했다.    ‘선거의 여왕’이 오만해져 선거(2016년 4월)로 파멸하였듯이 (거짓) 선동으로 일어선 정권은 (진실) 선동으로 무너질지 모른다.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와 싸울 때는 같이 광신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반대이다”고 했다. 그는 “머리를 써야 한다”면서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선 진실을 말하는 게 혁명이다”고 했다. 좌익은 조직이 강하고 우파는 개인이 강하다. 국민들은 각자 지켜야 할 진지(陣地)가 있다. 이들이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진실을 쏟아내면 정권이 막기 어렵다. 그리하여 여론이 형성된다. 대한민국은 총구(銃口)가 아니라 여론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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