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제대로 보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국민이라면 지금상황을 “나라 망하는 길로 질주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데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 망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막으려면 싸워야 한다. 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못하도록 저지하고 뒤집는 게 곧 싸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싸움의 플랜을 공유해야 한다.    우선 싸움의 순서에 관한 계획을 공유해야 한다. 당장 코앞의 긴급투쟁 과제, 중기과제, 장기과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당장의 과제, 예컨대 김정은 서울 입성(入城)을 ‘백두칭송-위인 방문’이란 개선(凱旋) 형식으로 만들려는 적대 진영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이 밖에도 당장의 투쟁과제는 또 있을 것이다. 협의해서 정할 일이다.    중기적 과제는 2020년의 총선이다. 그 선거에서 개헌저지선을 웃도는 승리를 이룰 수 있어야만 적대 진영의 국체변혁 기도를 막을 수 있다. 적대 잔영이 개헌 선을 넘어서면 마음먹기 따라서는 개헌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민중 민주주의’로 바꾸고, 민중민주주의 제도로서 지역별 기능별 직장별 부문별 ‘민중위원회’ 같은 것을 창설해 그것이 기존 의회와 행정부 기능을 대폭 위임받아 직접민주주주의 또는 만중직접참여란 이름의 꼼뮌(commune)적 통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체제적으로 북한과의 공통영역을 점차 넓혀가려 할 것이다. 사법부에서도 외부 운동권이 사법행정과 재판과정에 감 놓아라 배놓아라 할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한반도 유일합버성과 영토조항도 바꾸려 할 것이다. 어울러 남한 8도를 연방국가로 만들어 향후의 남-북 연방제 또는 연합제로 가는 징검다리를 만들 것이다. 경제는 국가개입 강화, 대기업 경영권 결정과정 참여 또는 장악, 토지와 금융자산을 비롯한 사유재산권 대폭 박탈과 제한, ‘부자 증세’를 빙자한 강제적 ‘따와이’ 방식의 분배, ‘민족경재의 균형발전’란 이름의 막대한 대북 퍼주기를 강제하려 할 것이다. 동맹관계를 ‘우리민족끼리’로 대치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적대 진영은 2022년의 대통령 선거에 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정권재창출을 도모할 것이다. 이에 자유민주주의 잔영이 잘못 대응하면 대한민국 소멸의 날은 급속히 앞당겨질 수 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 진영은 이상과 같은 험난한 싸움을 능히 수행할 수 있을까?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 완수 후에 자유민주주의 진영 국민에게 닥칠 운명은 외국인들의 관광거리로서도 볼 만할 것이다. 한 번 그렇게 살아보면,해봤자 말짱 소용없는 때늦은 후회와 각성과 깨침이 있을 것이다.    이쯤 됐을 무렵 때 월스트리트 저널 특파원은 서울발 기사에서 이렇게 묘사할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한 때 너무 분수에 넘치는 삶을 나태하게 살았다. 지금의 그들의 처지가 오히려 그들에게 더 적합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으니(김정은)‘ 팬클럽 회원이 되어 있었다.”    이게 바라는 바인가? 아니라면 살 궁리를 헤야 한다. 우선 자유보수가 원내와 원외의 두 전선으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한 협업을 해야 한다. 원내외의 자유보수는 지금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아 통합을 억지로 할 방도는 없다. 지금 당장의 싸움을 위해서는 여러 단체가 각기 따로 있어도 공동투쟁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은 서울 개선 저지투쟁을 하는 데는 친박도 응할 수 있고 비박도 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2020년의 총선 투쟁 때는 후보 단일화를 안 하면 자유보수는 그야말로 처참한 공멸을 할 것이다. 이런 걸 죽어 싸다고 한다. 망국공신으로  흑역사(黑歷史)에 이름이 기리 남을 것이다. 대대손손 교과서에 실려 욕을 보게 해야 한다. 당을 합치지 못하면 후보단일화라도 헤야 한다. 불응하는 자에겐 법에 걸리지 않는 절묘한 빙식으로 사회생활애서 철저히 따돌려야 한다.    2022년의 대선투쟁에서는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을 확득했을 경우엔 한 번 붙을 만하다. 그러나 총선에서 대패했을 경우엔 대선은 치르나마나 아닐까?    이런 전략을 숙의하기 위해 40~50대가 모여 청사진을 짰으면 한다. 짜서 두루 의견을 묻고 보완한 다음 그것을 서명을 통해 모두가 존중할 헌장(憲章)으로 삼아야 한다.    말은 거창하나 일손이 없구나. 이게 쓸 데 없는 독백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거기 누구 젊은 사람 없수? 아, 좀 나와서 이런 거라도 들여다보며 논의들 좀 하소. 하 답답해서 씨부린 것이니, 참고들 하시구려...콜록 콜록 콜록,,,또 기침이네...난 그만 들어가 볼라우...추우면 웬 몸이 이리 쑤시는지...늙으면 죽어야..해음 해음...아이구 숨차.  

김기수

사법부(사법권력)독립의 의미   司法을 ‘법’을 개인과 국가에 적용하여 심판하고 그 심판의 결과를 집행하는 일체의 권력적 행위라고 본다면 법의 역사만큼 사법의 역사도 깊다. 따라서 사법은 법이 존재할 때부터 있었다. 사법권력을 누가 행사해왔는지는 인류역사의 전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사법권력은 정치권력과 독립적으로 행사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원시부족국가에서의 제정일치, 고대국가에서의 신정국가에서는 종교와 권력에 법의 집행이 혼합되어 권력자에 의한 사법이 이뤄졌다. 로마공화정시대에는 시민법과 만민법의 적용은 법무관(preator)이 담당했다. 법무관은 소송요건을 심사하고 법정의 절차를 담당했으며 실제 심판절차는 私人인 심판인(index)이 담당했다. 법무관은 시민법의 결함을 요즘의 소송법에 해당되는 고시(ius edicendi)을 이용하여 보충했다.   고대 로마공화정시대에는 이 법무관이 가지는 고시권에 의한 법무관법(ius praetorium)이 형성되었는데 이런 고시권한에 의한 법률을 총칭하여 시민법, 만민법과 구분하여 ‘명예법(ius bonorarium)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점은 사법의 의미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시민의 권리에 대한 쟁송의 개념은 로마시대이후 중세의 암흑기에는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였고 종교재판소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아시아에서도 역시 이러한 쟁송의 개념이나 사법의 개념은 오로지 지배권력의 통치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통치권력으로부터 사법권독립이라는 사상이 다시 싹튼 것은 아마도 영국의 대헌장(마그나 카르타)때문이었다. 대헌장이 선언한 천부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사상이 사법권독립의 출발이었다. 21세기에 있어서는 사법의 독립의 정도가 한 국가의 근대성의 바로미터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초기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사법부 예속(隸屬)의 길      북한은 헌법에 김일성이 유훈이 산사람을 통치하는 지역이다.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고 참배를 통해 통치권력의 정당성이 주어지는 제정일치의 국가이자 사법권력이 계급혁명의 이념에 이바지하는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이다. 북한의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관의 독립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작금의 법관탄핵사태가 초래할 사법예속의 길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김일성은 “우리나라의 법은 우리 국가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무기” “우리국가의 정책은 우리 당의 정책”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법은 주체사상으로 대표되는 유일체제로서의 북한식 사회주의적 질서의 유지수단이다. 그리고 국가는 프로레타리아 독재기능을 수행하는 권력기관으로서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 초월적 존재이다. 북한에도 사법기관으로 검찰소와 재판소가 있기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헌법과 달리 북한헌법은 판사의 신분보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반면에 북한 형법은 재판일군이 부당한 판결, 판정을 한 경우에 1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 헌법 제162조 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1. 재판활동을 통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과 사회주의제도, 국가와 사회협동단체재산, 인민의 헌법적권리와 생명재산을 보호한다.2.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들이 국가의 법을 정확히 지키고 계급적원쑤들과 온갖 법위반자들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도록 한다.3. 재산에 대한 판결, 판정을 집행하며 공증사업을 한다.  또한 검찰소와 재판소는 모두 자기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 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북한은 판사와 검사를 총칭하여 ‘사법검찰일군’으로 부르는데 매년 ‘사법검찰일군회의’를 개최하여 국가적 이익에 봉사하는지를 점검케 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는 ‘다수의 횡포’      법관을 선거로 선출하는 국가가 없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법관은 임명제이다. 사법부의 수장이자 사법행정의 수장인 대법원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판사들이 법원행정과 사법권능에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대법원장이 직접 대법원규칙으로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설하였는데  이는 법원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임은 물론 대법원장의 대법원규칙제정권한을 넘는 월권행위다. 가히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상설화시도만으로도 사법농단이라고 할만하다. 이렇게 판사들이 사법부내에서 민주적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이 사단은  법관 자신들의 존재의 근거에 대한 매우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되었다. 국회나 정부는 민주주의가 최고의 법원리가 될 수 있으나, 법원은 그보다는 법치주의가 더 높은 가치로 구현되어야 한다.   법관이 스스로 민주적정당성이 없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법원내부에서 민주적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자칫 ‘여론재판’이나 ‘인민재판’ ‘민심재판’으로 흐를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판사는 모름지기 소송기록에 의존하여 판결해야함에도 법정 밖의 사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면 이는 법관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망각하는 것이며 그런 법관은 법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 이런 법관들은 자신들이 입은 법복을 ‘슈퍼슈트’ 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민주적정당성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기관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지만 법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사법부가 민주적정당성을 우선시 하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개별법관이 내리는 법원의 판결도 민주적정당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나뉘어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사법 헤게모니 쟁탈전      김명수대법원장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를 통해 대법관회의, 전국법원장회의의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대법원규칙으로 전국 법원의 통일적 사법행정을 지휘할 권한 외에는 개별법원의 사법행정은 개별법원장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운용되는 실태를 살펴보면 더 가관이다. 김명수대법원장의 사조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법원내 사조직이 법관대표자회의를 장악하고 있다. 김명수대법원장은 가진 대법원규칙제정권한에 만족하지 않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장악하여 전국법원과 개별법관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강화하는 사법독재(獨裁)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몇몇의 주도권을 가진 판사들이 산하 각 위원회를 장악하고 거기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안을 내면 몇몇 판사들이 법원의 분위기를 주도한다면 결국 개별법관들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논의되는 사법행정에 대한 전국적 통일적 지침에 대해서도 전국법관대표자회의의 결의와 다르다면 결국 법원장의 권한은 유명무실화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서 주로 논의되는 안건들의 상당수는 대법원에서 추구하는 정책에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선언문 채택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전국의 법관대표들이 모여 앉아 선언문의 문구표현 문제로 핏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적폐청산위원회     문재인정부 들어 국정원, 경찰, 교육부, kbs, mbc, 기무사, 국방부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주요언론사에 이름을 달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적폐청산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각종 ‘적폐청산위원회’는 설치근거가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닌 대부분 기관장이나 행정각부의 지침 등이다. 문재인 정권하에서는 법치주의의 제도적보장인 ‘행정조직법정주의’가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데 전국법관대표회의 역시 설치근거가 없이 법원조직법에 반하는 사실상의 적폐청산위원회다.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이 발생한 후 등장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활동하던 시기를 방불케 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국보위에서는 최소한의 위원회를 통한 입법적조치와 초헌법적인 입법기관임을 스스로 천명하여 민주적정당성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또 국보위 자체 활동에 대한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였다.   따라서 국보위활동으로 인한 정치적 책임이 제3자에게 전가된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각종 적폐청산위원회는 법적근거가 없이 자행되면서도 겉으로는 매우 합법적 조직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실제로는 초헌법적, 초법적, 월권적인 조치와 적폐의 청산이라는 일관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크다. 이러한 행정각부와 산하기관은 물론 주요언론사에까지 펼쳐진 ‘적폐청산’의 작업은 좌파정부 20년 집권 의욕을 보인 현 집권세력의 ‘보수궤멸론’에 근거하고 있음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법관대표자회의의 법관탄핵결의는 법관대표자회의의 본질이 정치적의사표현을 위한 사법부내에 설치된 ‘적폐청산위원회’라는 실체적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법부의 독립을 목숨처럼 지켜내야할 사법부의 수장이 만든 법관대표자회의가 동료법관을 적폐로 몰아 국회에 탄핵을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과정을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법관탄핵이야말로 진성(眞性) 사법농단      법관이 탄핵이 결의된 전국법관대표자회의의 출범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상 김명수대법원장은 법관의 탄핵요구까지 초래하여 삼권분립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태의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코드가 맞지 않는 법관들을 사법부 밖으로 솎아 내려는 것이 법관탄핵파동의 본질이다. 결국 촛불혁명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될 만한 사법부내의 법관들을 사법농단죄로 의율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신속한 방법으로 탄핵제도를 동원하여 다수 정당의 위력으로서 법관들을 숙청하겠다는 것이 법관탄핵결의 사태의 본질이다. 검찰권력을 동원하여 사법축청의 작업을 수행하려다가 난관에 부딪히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설치하고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사법부 숙청작업을 완수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 가장 최선봉에 문재인정부가 임명한 김명수대법원장이 있다.    사법부예속화의 서막은 어떻게 올라가고 있나      양승태 전 대법관의 사법거래의혹을 ‘사법농단’이라고 규정짓고 법관탄핵을 결의한 법관회의의 모습은 마치 2년 전 박근혜대통령이 탄핵되어 가는 과정과 무척 닮아 있다. 명백한 증거도 없이 언론과 사법농단으로 규정하자 검찰이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이미 전 대법관들과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한 강제수사와 기소절차를 통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수사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으며 언론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한 공소장을 가지고 국회가 탄핵을 했는데 양승태대법원장을 비롯한 탄핵대상이 될 법한 법관들은 자신의 범죄혐의와 전혀 상관없이 제3자에 대한 공소장만으로 국회가 탄핵을 먼저 하겠다고 나선 점에서 구조는 동일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검찰의 공소장과 언론기사를 베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만약 이번에 법관탄핵을 국회가 추진한다면 언론기사와 일부 법관에 대한 공소장을 베낄 것이 분명하다. 대의제민주국가인 대한민국 국회가 마치 검찰관이 된 듯 유죄무죄의 판단을 먼저하고 탄핵소추를 헌법재판소에 요구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자신들이 유죄,무죄의 판결을 내리는 법관임을 망각하고 국회에 대하여 자신들이 탄핵대상자로 결정한 법관들에 대한 공소장을 써서 헌법재판소에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이제 법관들은 촛불혁명을 사법부에서도 달성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이제 현실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그 주문에 따라 국회는 탄핵소추안이라고 이름 붙힌 공소장을 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유죄의 평결을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제 헌법재판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낙인을 찍어 단두대로 보내는 역할을 박근혜탄핵 때처럼 해낼 준비를 모두 마친 것 같다. 북한의 검사와 판사의 임무는 국가의 정책과 당의 정책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가 수행한 업무가 국가나 조선노동당의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 검사와 판사는 공소제기와 판결을 잘못한 이유로 처벌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복을 입은 정치판사들은 촛불집권세력, 촛불혁명세력이 부르짓는 사법 적폐청산을 위한 사법일꾼으로서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정치판사들은 법을 해석하여 공정한 판결을 선고하기 보다는 이제 적폐에 몰리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자신이 선고한 판결을 누군가가 감시하고 그 판결의 성향으로 인하여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던 하지 않던간에 사법부의 독립은 땅에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이제 법원에서 조금만 불리한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힘있는 국회의원을 찾아가 호소할 것이다.  ‘저 양심없는 적폐덩어리인 법관을 탄핵해달라’고 말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대한민국체제의 마지노선       잘나가는 연예인으로 kbs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직 코미디언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큰 두 개의 기둥위에 서 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개인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보장되며 국가는 이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원리인 공화주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권리가 보장된다는 국민으로서 누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책임과 의무를 과연 다하고 있는지 또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었는지 여부와 그 구제는 사법부가 담당한다.   따라서 사법부는 모든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세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자유의 공간, 법의 공간에 존재해야한다. 그래야만 나약한 개인의 권리가 강대한 권력에 의해 무차별하게 침해되고 국민이 신민으로 백성으로 강등되지 않게 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사법의 작용이며 그 역할은 직업법관들에게 맡겨져 있다 따라서 법관들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하며 마지막 보루에 서 있는 자들이다. 이런 법관들을 어떤 잣대로 어떤 기준으로 무작위로 선별하여 탄핵시킨다면 국민들은 권력에 예속되고 사회적종속관계에 놓이게 되며 차별대우와 소수자의 보호밖에 놓이게 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 헌법상의 권리를 우리는 행복추구권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국가가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정도에서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표를 줄테니 개인의 행복을 국가가 보장해달라는 아우성으로 혼란스럽다. 정치인들은 ‘너의 행복은 내가 책임져 주겠다’고 현혹하며 표를 구걸한다. 이제 법관들조차 ‘적폐법관을 솎아 내서 너희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국민들을 현혹한다. 그러한 그 적폐청산의 무대를 설계한 자는 국민을 권력에 예속시키겠다는 열정에 가득한 자들일 뿐이다. 지금 우리의 딜레마는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라는 참담한 현실이다. 누구가 행복을 갈구하지만 더 행복해지기를 갈망하는 원초적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사법권력을 손에 쥐고 군림하려는 독재자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국민들의 귀에 속삭인다. ‘너는 나에게 복종해라, 그러면 나는 너에게 행복을 주겠다’

이상일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1월 19일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혜경궁 김씨’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절차를 앞두고 있다. 더디게 굴러가는 수사 과정을 제쳐놓고 장외 공방전은 격렬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혜경궁 김씨’가 자신의 부인 김혜경씨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와 동일인임을 추론하게 하는 사실을 추가로 밝히자 이 지사 측은 네티즌들의 도움을 빌려 트위터 계정주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반박 자료를 모아 게시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지사 쪽은 사법부의 결론에 앞서 여론전 승패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재명’이라는 범여권 유력 차기주자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로 이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불리하게 끝난 온라인 투표 승부수      ‘혜경궁 김씨’ 사건이라 불리는 논란의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라고 판명될 경우 이재명 지사가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법원에서 ‘혜경궁 김씨’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이라는 결론과 함께 유죄 판결이 내려져도 이 지사가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정치인 이재명, 차기주자 이재명’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혜경궁 김씨’가 내뱉은 말들은 아무리 선거 전시(戰時)임을 감안해도 지나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재명 지사는 당시 ‘혜경궁 김씨’와 서로 멘션을 주고받는 등 트윗을 적극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해당 트위터 계정주가 자신의 부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혜경궁 김씨=김혜경씨’라는 결론이 날 경우 사법적 유·무죄 판단을 떠나 이 지사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씨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 상황을 가정할 때 전망은 엇갈리는 것 같다. 한쪽에선 이 지사 부부의 결백과 정치적 수사라는 게 입증되면서 차기주자로서 이 지사의 당내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이미 ‘당심이 이재명을 떠났다’는 점을 근거로 정반대의 전망도 나온다. 결국 여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여타 정치인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의 강력한 팬덤을 형성해왔다. 이 지사의 팬클럽은 ‘손가락 혁명군’이라는 이름 아래 소셜미디어를 주 무대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이런 힘이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성장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지금 ‘혜경궁 김씨’ 논란 역시 소셜미디어상에서 시작된 일이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적으로 소셜미디어, 온라인 생태계에 대해 자신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씨라는 경찰의 발표 직후 이 지사는 경찰의 주장과 이에 맞서는 자신의 변호사의 주장을 대비시키며 직접 온라인 투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하고 공유사진을 캡처해 카스(카카오스토리)에 올리기보다, 원본사진을 바로 공유하는 게 더 쉬우니 동일인 아님’(변호사 주장) vs ‘트위터 공유 직후 곧바로 캡처해 카스에 공유했으니 동일인’(경찰 주장)이라는 주장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네티즌들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이 지사가 직접 작성해 올린 트위터 투표 제안에 하루 사이에 3만6000여명이 참여했다. ‘김혜경 주장’ 공감 19%, ‘경찰 주장’ 공감 81%로 여론은 확연히 기울었다. 그동안 각종 루머와 정치적 공격에 대해 온라인상에서만은 강력한 지지층의 반격과 지지를 등에 업고 우호적 여론을 경험해왔던 이재명 지사 측에서 당혹해할 만한 결과다. 이 투표 이후 경찰은 ‘혜경궁 김씨’가 트위터에 등록했던 이메일 주소와 동일한 포털 메일 주소가 있고, 지금은 삭제된 이메일 계정의 마지막 접속 장소(탈퇴)가 이재명 지사의 자택이라는 점을 다시 밝혔다. 이런 경찰 발표 후 투표를 했다면 아마 여론의 기울기는 8 대 2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손가락 혁명군’들은 어디로?      이 지사가 자신 있게 던진 온라인 투표 카드에 네티즌들은 왜 호응하지 않았을까.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던 ‘손가락 혁명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지사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해 ‘그렇지 않다, 결백하다’는 입장표명으로 일관하면서도 의혹을 푸는 데 필요한 직접적인 문제들은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인 김혜경씨가 사용했던 휴대폰 제출, 트위터 본사에 @08_hkkim 계정주가 김혜경씨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시도 등 직접적인 의혹 해명 노력은 없이 ‘부인’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여론이 먼저 ‘유죄’ 평결을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수사 자체를 음모론 혹은 정치적 수사로 몰아가는 정치 프레임에 대해서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정치적 약자 코스프레’라는 반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치인을 둘러싼 네거티브 이슈에 여론이 작동하는 방식은 팩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팩트 여부보다 문제를 대하는 정치인의 태도가 더 중요한 여론 평결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사법적 유죄 판결을 받고도 정치적으로는 생존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정치인에 대한 평결은 두 차원에서 존재하는 셈이다. 소위 국민정서법으로 불리는 ‘여론법’과 사법부의 잣대가 동일한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투표 참여자들이 전체 국민 여론을 대변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법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압도적 다수가 이재명 지사의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 지사의 홈그라운드라고 알려진 온라인상 여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법부가 트위터 계정주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인지 여부를 확증할 수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평가 기류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영역에서 이재명 지사의 내상이 깊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논란의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으로 명확히 밝혀지고 경찰 수사가 무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여론의 기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인 김혜경씨가 지난 11월 2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 경기남부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팩트가 아닌 태도의 문제      여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승패를 가리고 전쟁을 치르는 데 가장 익숙한 것이 정치인들이지만 그렇다고 여론의 속성을 꼭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재명 지사는 해당 트위터의 글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이미 잘못된 선택을 했다. 공격적인 언사들이 지지층을 환호시키고 상대를 자극하는 데 이용되는 것에 대해 도덕적 경계 경보를 울리지 않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식의 네거티브는 자제되어야 했다. 선거는 물론 정치 전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백보 양보해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와중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면 사후에라도 ‘네거티브를 자제하자’는 입장을 취했어야 했다.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트위터의 글들이 몇 차례 논란이 되었을 때 이재명 당시 후보가 취한 입장은 ‘나와 무관하고 내 아내와 무관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식의 정치는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에는 통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지만 냉정하게 정치인을 바라보는 일반 유권자의 눈에는 다르게 비쳐진다. ‘인물의 정치적 그릇, 도덕성, 됨됨이’를 바라보는 눈에 좋은 모습으로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유불리를 떠나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정치인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커질 때 그 정치인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혜경궁 김씨’에 대한 경찰의 발표 직전 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사는 범여권 차기 대권주자군 중 2위를 기록했다. 이낙연 총리에 이어 2위로 도약한 여론조사 결과에 아마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트위터 사건 논란이 가열되고 경찰의 발표로 이재명 지사의 입지가 위축된 지금 다시 조사를 하면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이 속절없이 무너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사가 주도한 트위터 투표 결과를 보면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재명 지사의 강성 지지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힘에 기반한 지지율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현상에 안도한다면 이재명 지사의 혜경궁 김씨 사건 대응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치열한 여론전에 매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수 국민, 유권자를 포괄하는 넓은 정치적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도 정치의 한 방식이고, 소수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외연 확장을 꾀하는 것도 정치의 다른 방식이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방식인가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상황과 인물, 구도 등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의 강력한 팬덤에 기대는 정치는 그 팬들의 입장이 다수의 견해와 점점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만의 세계’ 속에 갇히기 쉽다. 온라인상에서 ‘혜경궁 김씨’와 김혜경씨 연관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댓글 싸움을 보면 점점 이성적 판단의 틀을 넘어서는 감정대립이 격화되는 것 같다. 서로 자신의 입장을 정해놓고 무조건 다른 쪽을 공격하는 흐름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팬덤에 갇힌 정치      이재명 지사든 다른 정치인이든 큰 정치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이는 숙고해볼 문제다. 정치라는 과정과 방식의 속성상 어디에서든 잡음은 일어나고 예기치 못한 돌발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격렬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는 일탈이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 그런 것들이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가느냐 하는 선택에 있다. 악재를 악재로 남겨두지 않으려면, 더 큰 악재를 작은 것으로 만들어 딛고 넘어서려면, 외면적 당당함이 아니라 (그건 어쩌면 뻔뻔함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합리적 태도를 갖고 대응을 해나가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유불리에 매달리지 않고 긴 호흡으로 국민 감정과 소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 트위터에 쓴 글, 어쩌면 사소해 보였던 문제가 유력 정치인의 앞날을 좌우할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글의 농도와 위법성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를 키운 본질이 아닌가 싶다. 비운에 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대왕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에서 ‘혜경궁 김씨’라는 별명이 착안되었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재기(才氣)에서 시작된 별칭이 참 공교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재명 지사는 정치적 운명을 건 이 여론전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

엄상익

  서초동 네거리에 북의 김정은 환영단을 모집한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출근하는 대법원장 승용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 기사가 나오고 창원에서는 민주노총에게 엊어 맞아 떡이 된 기업체 임원 사진이 사회면 구석에 크게 부각되고 있다. 기업체의 사장은 맞아도 되나 보다. 신고받은 경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현직 국정원장이 남북한 사이를 열심히 왕래하면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이따금씩 보도를 통해 보기도 한다. 국정원장이면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문득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정권의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2018년 8월 2일 오후 4시. 거친 뙤약볕 아래 서울구치소 사동(舍棟)들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폭염 경고가 발령되었다.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이 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기사를 봤다. 서울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의 구석 유리박스 안에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만났다. 나의 앞에는 눈동자가 탁하고 허공에 널린 빨래처럼 힘이 빠져나간 노인이 앉아 있었다. 눈에 눈꼽이 가득 끼어 있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이병호 씨였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몸이 어떠세요?”   나는 건강부터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주위가 빙빙 돌아요. 한참 있어야 좀 괜찮아져요. 의무실에 갔었어요. 온통 몸에 문신한 건달 애들 사이에 줄을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려요. 한나절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는데 그 태도가 너무 냉랭해요. ‘전에 당뇨약이나 고혈압 약을 먹었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내쫓아요. 여기 들어온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몸무게가 5킬로나 줄었어요.”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골짜기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국고 손실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청와대에 예산지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외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시죠?”   내가 권했다.   “수갑을 차고 나가 세상에서 창피를 당하기 싫어요.”   “사동의 몇 층에 계셔요?”   직사열을 받는 구치소 사동의 꼭대기는 폭염 속에 난로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동의 3층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폭염이 계속되니까 구치소 측에서 2층으로 옮겨줬어요. 일층이 더 나은데 거기는 일반죄수들이 많아서 방이 없다고 그러네요.”   이미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약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죽지 마세요. 예전에 변호를 하면서 감옥 안에서 죽는 사람도 봤어요.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구속된 은행장을 변호했었는데 징역을 살던 중에 죽었어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은 7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는 건강을 체크하고 위험할 때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었다. 팔십 노인인 이병호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러나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그는 법의 보호에서 예외일 게 틀림없었다. 권력측에서는 어쩌면 그가 죽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정원장으로 김정은 제거를 시도했던 사람이다.      “칠십대 중반에 왜 국정원장이 되셨습니까? 어떤 철학을 가지고 뭘 하시려고 했습니까?”   그는 단지 관직이 좋아서 갈 사람은 아니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월남전에서 소대장을 마친 후 정보기관에 들어갔다. 그 후 해외 정보요원으로 30년을 보낸 정보전문가였다.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지키려고 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죠. 자유민주주의죠.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한의 좌익들에 대해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체 국정원 요원에게 우리 앞에는 북한과의 ‘마지막 전투’라는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과제가 놓여있다고 선언했어요. 자유민주주의의 최후 승리를 가져오는 체제경쟁의 마지막 과정이었죠. 한반도에서 지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루고 불쌍한 북한 주민을 생지옥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것이 저와 국정원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이라고 인식했어요.”   “지금 정권은 북한과 평화공존으로 가자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틀린 생각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북한의 존재 목적은 김일성 때부터 혁명이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듯이 모든 것의 끝은 남조선 혁명입니다. 그게 북한의 정체성입니다. 김정일 때도 그렇고 김정은도 그렇습니다. 남조선 혁명이 빠지면 북한은 빈껍데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혁명을 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혁명이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고생이 끝난다고 세뇌해 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평화공존이라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의 사고로는 용납될 수 없는 관념이죠.”   “북한의 김정은은 어떤 인물입니까?”   “제가 직접 고모부를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어요. 사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십이 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 버렸어요. 그 형도 공항에서 독극물로 죽였죠. 테러분자를 도주시켜 완전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을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죠. 지금 북한은 화재시 집에 있는 김일성 사진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죽이고 땅에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었다고 때려죽이고 김일성의 어록을 외우지 못했다고 총으로 머리통을 쏘는 지옥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김일성 때부터 김씨가는 단순한 제사장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북한 전체가 광신도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그들의 구원이 되는 길은 남조선 혁명이구요. 이런 구조 속에서 협상하고 평화공존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절대 안 됩니다. 저는 국정원장을 하면서 일단 김정은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다음 김씨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북한경제의 숨통을 트게 하면서 남북의 평화공존 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던 거죠. 그게 거의 다 이루어질 수 있는데 박근혜 정권의 운명이 먼저 끝이 난 거죠. 지금 대한민국의 좌파 정치인들은 북한의 인권은 이웃 국가의 내정 문제니까 간섭하지 말자고 하죠. 그건 껍데기만 본 거예요.”   같은 대한민국에서 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과 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이 백팔십도 다르다. 정보기관은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전 정권의 국정원장과 현 정권의 국정원장이 북한과 김정은을 보는 눈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생각이 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달라지는 것일까.

류근일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 요지로 말한 데 이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다’며 ‘우리의 (한미)동맹은 공고히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11월 27일자 조선닷컴 기사다.    해리 해리스 대사가 어떤 수상식에서 수상소감으로 한 위 발언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단호한 경고로 들린다. 미국은 동맹을 구걸할 나라가 아니다. 일부는 말한다. 미국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이지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웃기는 소리 작작했으면 한다. 한국의 미군기지가 설령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해도 미국은 한국인들이 원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떠날 용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필리핀 정치인들이 ‘민족주의’라면서 미군철수 운운하자 미국은 피나투보 화산폭발을 구실로 클라크 기지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났다. 미군이 떠나자마자 필리핀 해역에는 중국해군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운동권은 때때로 “한-미 동맹은 굳건하다” 어쩌고 하지만 속셈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져 스스로 나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정나미가 떨어질 짓만 골라서 하는 수법을 쓸 수도 있다. “우리가 언제 나가라고 했나, 우리는 그저 자주적이고자 했을 뿐인데 자기들이 공연히 화를 내며 나간 것이지”라는 방식 말이다.    이 방식은  이미 어느 정도 먹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지금 이미 충분히 화가 나있는 상태다. 얼마 전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워싱턴에 갔을 때 어느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은 미국 관료들이 한국의 자세에 무척 화를 내고 있다고 전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거다. 미국이 열받아 “에잇 한국을 떠나겠다”며 보따리를 싸게끔 유도하는 수법. 형식적으로는 한-미 동맹을 끼고 가면서 실제로는 김정은과 ‘우리민족끼리’ 짝짜꿍으로 가는 것, 그래서 미국이 콧털을 뽑히다 뽑히다 못해 한-미 동맹을 끝내는 아작내는 선까지 유도하는 것.    이 꿍꿍이속에 따라 지금 광화문 일대에선 반미꾼들이 연일 미국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왔을 때는 화염병을 던져 차가 역주행을 하게도 만들었다. 한국 당국은 동맹국 국가원수에 대한 그런 행동을 바라만 보고 있었나? 정나미 떨어질 일이다.    한국 자유민주 진영은 이 꼼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미국이 그런 운동권에 저항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바라보고 인내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미국 친구는 망명자 드골 장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사실상의 주체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진영임을 미국은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한-미 동맹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 그 어떤 나라가 자존심을 훼손당하면서까지 동맹관계라는 허울에 매이려 할 것인가? 한국인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 가장 현명한 것인지를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한-미 동맹을 깨고 북-중-러에 흡수되고 난 다음 그 맛이 어떤지 한국인들은 꼭 봐야만 하겠는가?

박승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GDP 총액 규모로 1·2위 국가가 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미 무역전쟁이 불붙고 있는 가운데 만나는 트럼프·시진핑의 ‘트시 미팅(特習會)’에서 과연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인지, 돌연한 화해라는 극적 반전(反轉)이 이뤄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분위기는 극적 반전을 기대하는 편이지만 워싱턴의 분위기는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이라는 예상이라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신냉전이 될 것인지,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증폭되는 가운데 미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가 쓴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 Year Marathon)’이라는 책이 미국 안팎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관점에 따라 “미·중 관계는 앞으로 패권 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마이클 필스버리는 보수 성향의 허드슨연구소의 대표적인 중국전략 전문가로, 미 국방부 중국 전략 담당관을 지냈다.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36계 가운데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Deceive the heavens to cross the ocean.” 바로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강한 적과 싸울 때의 손자병법 제1계는 기만전술로, 적의 눈을 피해 적이 모르는 가운데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계략이다.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은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만천과해 계략에 빠져 속아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중국을 공부하는 많은 미국 학생들은 중국을 서양 제국주의 앞에서 무기력했던 피해자로 보는 시각을 갖도록 교육받아왔다. 1945년생인 나(필스버리)도 1967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국제정치학 교수들이 서양과 일본은 어떻게 중국을 잘못 상대해왔는지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하는 강의를 들었다. 우리 세대는 무언가 중국에 대해 속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우리를 가르치는 많은 교과서들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런 시각은 우리에게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중국을 도와주어야 하며, 중국을 선의의 국가이며, 서양제국주의의 희생 국가로 단정하는 맹목적인 고정관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런 시각은 미 행정부에서 중국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일방적인 견해를 형성했으며,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이 미 대통령과 미국 지도자들에게 제공하는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필스버리는 미국의 중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중국어조차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중국어는 알파벳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있을 뿐이며, 예를 들어 ‘ma’라는 발음을 가진 단어는 성조에 따라 4개의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변화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ma’가 제1성으로 발음되면 ‘mother’라는 뜻을 가진 ‘ma(媽)’가 되고, 제2성으로 발음되면 ‘마비된다’는 뜻의 ‘ma(麻)’가 된다. 또 제3성으로 발음되면 ‘horse’라는 뜻의 ‘ma(馬)’가 되고, 제4성으로 발음되면 ‘욕한다’ ‘비난한다’는 뜻의 ‘ma(罵)’가 된다. 중국어가 미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언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스버리는 “중국어는 너무 복잡해서 마치 비밀 암호코드와 같으며 외국인들은 웬만큼 번역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오판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필스버리는 1983년에 출판된 ‘덩샤오핑 문선(鄧小平文選)’에서 사용된 생략화법을 베이징을 방문하는 미 상원의원 대표단에 설명해주어야 했다고 한다. 또 1987년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주 총리가 사용하는 모호한 표현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한 말은 거의 암호를 해독하듯 풀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화해정책을 펴며 이른바 ‘건설적인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이라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대한 지원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건설적인 개입’ 정책은 학자들과 외교관, 대통령들과 정책 입안자들, 저널리스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필스버리 자신도 수십 년 동안 그런 생각으로 중국에 대한 정책을 입안했다고 고백했다. 그 과정에서 필스버리 자신을 포함한 미국의 중국 정책입안자들은 허약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국을 민주적이고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일방적 생각(wishful thinking)’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필스버리는 자신을 포함한 미국의 중국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그런 잘못된 선입견들은 5가지의 잘못된 견해를 갖도록 만들었다고 정리했다. 첫째 적극적인 개입이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판단, 둘째 미국의 지원이 중국을 민주주의의 길로 안내할 것이라는 판단, 셋째 중국이 허약한 꽃송이라는 판단 등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넷째 중국은 미국과 같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일방적인 판단을 미국이 하게 됐고 마지막으로 다섯째가 중국 내 매파(강경파) 세력이 약하다는 터무니없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필스버리는 미국이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시작 이래 40년 동안 중국을 지원해왔는데, 그 결과 미국의 국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정치적 개입 상황과 마주치게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100년이 되는 2049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을 차지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필스버리는 결국 2049년에는 전 세계의 질서를 중국이 재편하는 판이 짜일지도 모르며,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중국의 계략은 손자병법 36계 가운데 30번째 계략인 ‘The guest becomes the owner(反客爲主·손님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다)’ 계략이라고 진단했다. 필스버리는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을 거쳐 현 시진핑까지 100년간에 걸친 마라톤을 통해 중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10월 4일 “미국은 앞으로 중국을 rebuild(재건축) 하겠다”고 경고한 것이 바로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의 영향이라는 것이 워싱턴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한다.

정장열

이번주 타 매체들로부터 몇 차례 취재를 당했습니다. 몇몇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라미 말렉 인터뷰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10월 29일자 주간조선 ‘할리우드 통신’에 실린 라미 말렉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인 라미 말렉이 들고 찍은 주간조선 표지가 ‘나는 왜 文 정부에 등을 돌렸나’라는 제목이었는데, 이 표지를 들려 사진을 찍은 것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공격들을 하더군요. 한창 주가가 오른 할리우드 배우를 이용해 정권을 공격했다는 일종의 음모론이죠.      실소부터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에야 라미 말렉이 들고 있는 표지가 뭔지를 알았습니다. 제가 그 표지를 골라준 건 아니지만 그 표지를 인터뷰장에 들고 나갔을 필자도 신경을 안 쓰기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LA에서 글을 보내오는 필자 박흥진씨는 한국에서 벌어진 소동을 전해 듣고는 “아무 의도도 없으니 잘 설명해달라”고 점잖게 당부하더군요.      ‘할리우드 통신’은 2016년부터 연재 중인 스타들과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박흥진씨가 벌써 3년째 글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약 60명 정도가 소속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꽤 힘이 센 단체라고 들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 특히 자신이 출연한 신작 개봉을 앞둔 스타들은 외신기자협회와의 인터뷰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스타들에게 주간조선 표지를 들려 사진을 찍자는 건 필자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인터뷰가 어떤 매체에 실리는지를 알려주면서 나름 독특한 세리머니를 한 셈인데 ‘인증 샷’ 정도로 시작한 이 사진이 진즉부터 화제를 낳았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한국 잡지를 들고 등장하니 그 부조합이 흥미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번 라미 말렉 논란도 이 코너를 즐겨 올리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박흥진씨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국제우편으로 주간조선을 보내는데 아무 호나 골라 들고 인터뷰장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라미 말렉 논란을 계기로 30명 이상 등장한 스타들이 도대체 무슨 표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지 훑어봤더니 역시 괴상한 조합이고 흥미진진합니다. 레이디 가가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수상해 보입니다. ‘대통령의 낙하산 친구들’을 들었으니까요. 전설적인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시진핑을 건드렸습니다. 그의 손에는 ‘중국에 대한 3가지 착각’이 들려 있더군요. 휴 잭맨은 김정은이 싫었나 봅니다. ‘핵 인질로 산다는 것’이란 표지를 들었으니까요. 아마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했을 사진은 가수 겸 배우 셰어의 사진이었을 겁니다. 그는 표지가 안 보이도록 주간조선 지면 한가운데를 펼쳐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거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셰어에게 갖고 간 주간조선 표지에 트럼프가 등장하는데, 트럼프의 얼굴과는 죽어도 사진을 찍지 못하겠다고 해서 지면 한가운데를 펼쳐 들고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사실 정치적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반(反)트럼프라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의 정치에 동원됐다는 시선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모든 걸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한국병(病)이 난데없이 주간조선 지면을 통해 도진 듯해 씁쓸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강인선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뽑는 과정이다.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이 물러나고 차기 후보를 찾을 때 트럼프는 언론 반응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트럼프는 당시 두 명의 후보를 면접했다. 허버트 맥매스터와 존 볼턴이었다. 3성 장군 맥매스터는 전쟁영웅이자 학자였고, 볼턴은 유엔대사 출신의 강경파 보수 논객이었다. 맥매스터를 인터뷰한 후 트럼프는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는 교수, 강의, 지식인을 질색하는데, 맥매스터는 그 모든 특성을 다 갖고 있었다. 스티브 배넌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맥매스터에게 면접 때 군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맥매스터는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트럼프는 맥매스터를 만난 후 그가 말이 너무 많은 데다 양복이 싸구려라며 마땅치 않아했다. 트럼프는 볼턴에 대해선 그의 콧수염을 싫어했다고 한다.      당시 트럼프의 선택은 맥매스터였다. 사위 쿠슈너가 언론이 맥매스터를 좋아한다고 알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선택은 꽤 오랫동안 효과가 있었다. 훌륭한 군인이자 학자인 맥매스터가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보좌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결국 가르치기 좋아하는 맥매스터를 견디지 못하고 1년2개월 만에 내보냈다.      트럼프의 세 번째 안보보좌관은 볼턴이다. 콧수염은 여전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고 워싱턴의 제일가는 강경파라는 평도 그대로다. 최근 그는 백악관 내부 갈등과 관련해 자주 거론됐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든지, 그가 뽑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가 해고해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일은 다른 모양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보면, 볼턴은 작은 규모의 회의와 신속한 결정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잡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해 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국방장관과의 관계는 늘 미묘하다. 특히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의 관계는 더 그렇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외교 안보 전체를 이끄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은근 합세해서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도 한다.      트럼프 정부에선 뒤늦게 정부에 들어온 볼턴보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영향력이 돋보인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들어보면 폼페이오는 트럼프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원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 분투한다.       북핵 문제의 경우엔 폼페이오의 프로젝트라고 할 정도로 주도권을 잡고 있다. 볼턴은 거들기만 할 뿐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은 폼페이오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폼페이오호가 흔들릴 경우에 대비해 볼턴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트럼프와 장관들과의 관계는 기업 회장과 각 부문별 사장 관계와 비슷하다고 한다. 실적을 못 내는 사장들은 잘린다는 것이다. 중간선거 후 집권 후반에 들어선 트럼프는 최근 장관을 최대 5명까지 교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TV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처럼 조만간 장관들에게 “당신 해고야”를 외칠 것이다.

류근일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에 "법관회의에서 이뤄진 탄핵 의결은 내용, 절차, 성격, 그 어느 것에서도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로 생각하며, 그러한 의결에 이른 ‘법관회의’의 탄핵을 요구한다" 조선일보 기사다.     사법부가 온통 운동권 판이 된 것 아닌가 하던 차에 김태규 부장판사의 의사표현은 정말 소중한 희소가치를 갖는다. 사법부가 언제 이렇게  집단주의, 정치운동, 패거리 행동, 떼 지어 다니기 판이 되었는가? 이 추세라면 한국 사법부는 앞으로 ‘변혁운동 세력의 법조 지부(支部)’처럼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사법부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운동본부의 하위체계로 전락한다.    2020년에 국회마저 운동권 여당이 장악하면 이 나라의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은 완전히 운동권 1당 지배체제로 변혁될 전망이다. 이런 체제는 개헌을 통해 민중민주주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런 시스템과 북한 시스템의 ‘연합제’가 추진될지도 모를 일이다.   ‘ 전국법관회의’가 양승태 사법부 판사들을 ‘탄핵’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체제변혁으로 가는 과정의 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전북법관회의’라는 대표성이 모호한 ‘떼’를 앞세워 일종의 숙청 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민간부문의 직장 내부에서도 ‘사원 대표자 회의’가 생겨 회사를 ‘혁명화’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삼성, 현대에서도 완장부대가 ”너희들은 물러가고 우리에게 경영권 넘겨라“ 하고 위세를 부리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반(反)자유민주주의 변혁을 막아야 할 최후의 마지노선이 사법부와 판사들이다. 그런데 그 마지노선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이 붕괴 현장에 있는 판사들 중 ” 그래도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은 김태규 부장판사 말고도 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양심, 이성, 지성, 용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엄상익

 검사나 판사의 법 왜곡이 한 인생을 파멸시키는 경우가 있다. 존경받던 한 사회 명사가 횡령죄로 기소된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그는 평생 쌓아온 것을 잃었다. 검사는 한 공익단체를 맡고 있던 그의 사무직원이 공금을 횡령한 사실을 알았다. 이름 없는 잡범 한두 명 잡는 것보다 거물을 잡아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형을 가볍게 해 준다고 유혹하면 잡범들은 무슨 모략이라도 협조한다. 검사의 공명심과 승부욕이 허위를 만들고 과녁이 되어버린 그는 늙은 고목같이 쓰러졌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다. 5·16 혁명 후 당국의 강제노동을 고발했다가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나이 칠십에 그가 처음으로 한 단체의 회장을 맡은 것이 화근이었다. 잘못이 없는 그는 판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 태도가 판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는 괘씸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다른 법률을 적용해 버린 것이다.     그에게 불행은 세 박자로 왔다. 구속될 무렵 아들이 죽었다. 재판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죽었다. 혐의가 풀려 석방된 그는 빈집에서 혼자 지내다가 시신(屍身)으로 발견됐다. 작가였던 그는 빈 집에서 판검사의 법 왜곡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고 했었다. 정권이 바뀌면 법의 해석이 극에서 극으로 가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시절 법원은 광주에서 시위하던 시민들을 폭도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자 사법부는 그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거라고 했다. 다시 시대가 변해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판사는 광주에 모였던 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 도구가 된 정치 판검사에 의해 지난 정권의 사람들이 악(惡)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현재 진행형인 사례도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금으로 걷은 특활비를 대통령, 국정원장, 국회의원, 대법관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 적폐였다. 바뀐 이번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도덕성이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의 비서실장과 국정원장들만 죄인으로 찍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적용할 현실의 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때마침 회계실무자의 횡령을 중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다.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모두 회계실무자로 간주해 그들을 국고손실죄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을 회계직원으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국정원장을 유가증권을 취급하는 회계직원으로 거는 것은 법의 왜곡 같다. 법해석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판사나 검사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살아왔지만 이상하다.     검사와 판사가 찍는 사람만 죄인인 현실도 공평하지 않다. 결정적인 증거를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한쪽에 유리하게 재판을 하는 판사도 봤다. 법의 여신이 든 칼이 녹슬고 저울이 기울면 사법정의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법원과 검찰이 과거 수많은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는데도 정작 판검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독일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을 왜곡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법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판검사가 잘못하면 형사책임도 지고 손해도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뽑은 판검사는 공소시효 없이 나중이라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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