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월간조선 뉴스 룸에 실린 권세진 기자의 기사를 읽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새누리당 공천으로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됐던 친구들이 요즘 갑자기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공천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선거철이면 항상 있는 철새들의 대이동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정치 바닥의 천박성에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와 선거는 물론 반대의 여지가 없는 선(善)으로 정착해 있다. 그러나 천사가 타락하면 마귀(devil)가 되듯,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협잡(挾雜) 정치가 된다. 협잡에는 여러 유형이 있겠으나 이 경우는 “어떤 일관된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벼슬을 한다”가 아니라 “벼슬을 얻기 위해선 원칙이고 나발이고 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겠다”는 타입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선출직을 한 번 하면 그것 외는 다 직업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다시 한 번 하기 위해선 얼굴에 철판 깔고 대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론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당연히 더 불어났을 것이다. 그 직업이 그리도 좋다는 소문이 났는지, 이번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서도 정말 감도 안 되는 지망생들이 너도 나도 공천해달라고 몰려든다는 소문도 있다. 공천에서 배제되면 그 길로 탈당을 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린다고도 한다.  정당들이 공천기준을 엄정하게 정해야 한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건달, 얌체, 무식꾼, 함량미달들일랑 칼로 무 베듯 잘라버려야 한다. 그러나 정당들이 이미 먼저 타락해 있으면 그 방법도 소용없을 터, 결국 민주주의는 일정한 정도의 협잡은 항상 끼고 다닐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좌-우를 막론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변질했다. 지적(知的) 엘리트 리더십이 붕괴하고 포퓰리즘 기술에 숙달한 잡상인들이 제도정치권 충원(充員) 시장과 과정을 장악했다. 이런 타락한 민주주의로는 로마제국도 망할 것이다. 그렇다고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 정치도 불가능하다. 있더라도 또 다른 독재의 방패박이로 그 역시 타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려봤자 그땐 이미 날 새겠지만. 별것 아닌 이 세상 그냥저냥 적당히 살다가 죽지 뭘...  어쨌든 그러나-민중당이 어떤 정당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당이 이런 논평을 냈다고 권세진 기자는 인용하고 있다. "지금 곳곳에서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정치했던 인물들이 민주당에 들어가려고 기웃거리고 그중 많은 인물이 민주당에 입당했다"며 "민주당은 적폐철새의 도래지가 되려고 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런 인용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도 당선가능성만 보고 기준 없이 입당을 받아들인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일고 있다"며 "성실하게 지역에서 선거를 준비해 온 예비후보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말인즉 옳지 않은가?

조갑제(趙甲濟)

▲ 1973년 파리 평화협정 1973년 미국 대표 헨리 키신저(오른쪽)와 북베트남 대표 레둑토가 파리 평화협정 합의 후 악수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박정희의 예언       1973년 노벨평화상은 美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월맹의 정치국원 레둑토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파리 평화협상 때 양국을 대표해 베트남전의 휴전문제를 놓고 3년간 협상한 관계였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키신저와 레둑토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된 1년 반 뒤 베트남의 평화협정은 월맹의 일방적인 남침으로 깨지고 베트남은 공산화 통일되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들의 전략도 모르고,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생리도 모르는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두 사람에 대해 알프레드 노벨의 이상을 구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은 차라리 코미디이다.       두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레둑토는 미국이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키신저는 수상을 수락하기는 했으나 반전 시위대의 출현을 겁내 수상식엔 불참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냈다.       키신저와 레둑토가 합의한 베트남 휴전 협상안을 미리 읽어 본 박정희 대통령은 유양수 주월대사에게 『이런 문안에 합의하면 베트남은 1년 안으로 공산화된다』면서 귀임하면 티우 대통령을 만나 충고해 주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유양수 대사에게 티우 대통령은, 자신도 박 대통령과 동감이라면서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키신저와 레둑토는 월남정부를 빼돌리고 월남(越南) 국민의 운명을 결정할 비밀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그 협상안이란 것이 가관이었다.          버림받은 월남       그때 17도선 이남의 남베트남 땅에는 약 14만 명의 월맹 정규군이 침투해 있었다. 이들이 남베트남 출신의 베트콩을 지휘하고 있었다. 월남 정부를 따돌리고 미국과 월맹이 합의한 휴전안에 따르면 이 월맹군의 현 위치 주둔을 허용하면서 주월미군의 전면 철수를 규정했다.       더구나 월남에 세워질 연립정부는 월남과 월맹, 베트콩 3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구성된다고 되어 있었다. 이런 연립정부는 공산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정부가 될 것임을 티우 대통령도 간파했다. 티우 대통령에게 이 휴전안을 수용하도록 강요한 것은 키신저였다. 그는 재선된 닉슨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기 전에 베트남평화협정을 발효시키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결국 티우 대통령은 키신저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티우 대통령이 요구한 보장책으로서 미국은 닉슨 대통령이 『월맹이 휴전협정을 깰 때는 미국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때웠다. 그 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고 미국 의회가 월남에 대한 일체의 원조를 동결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월남은 버림받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1975년 봄 월맹은 정규군을 앞세운 남침으로써 베트남을 적화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포드 대통령 아래에서 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 그는 베트남에 있던 미국인들과 베트남인 협조자들을 사이공 함락 전에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상대로 「월맹 측에게 잘 이야기하여 탄손누트 공항을 포격하지 말도록 부탁해 달라」는 간청까지 했다. 강대국 미국의 체면을 좀 세워 달라는 당부였다.          키신저의 때늦은 후회         자신이 합의해 준 평화협정을 미국 측이 지키지 못한 바람에 베트남이 무너져 내리고 있던 그날 키신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1999년에 나온 그의 회고록 「Years of Renewal」에서 인용).             그러나 티우는 미국을 증오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를 미워했다. 내가 베트남에 있어서 미군 개입을 종결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용기와 명예심으로써 조국을 위해 일한 그를 존경했다.       반전(反戰) 운동가들이 주장한 것과는 달리 그는 결코 평화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와 그의 조국은 이런 운명을 맞기엔 억울했다. 내가 만약 가련한 처지가 된 우방국에게 우리 의회가 원조를 중단하는 결의를 할 것이라고 예견했더라면 나는 1972년 마지막 단계의 협상에서 (그에게) 무리한 압력을 넣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후회를 했다>       키신저의 때늦은 후회는 사치라고 하겠다. 그의 판단착오 때문에 월남이 공산화되고 수천만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수십만 명의 보트피플이 동중국海와 남중국海에서 상어의 밥이 될 운명이었으니까. 키신저의 후회는 자신의 양심을 증명하는 것이 될지언정 亡國의 국민들을 달랠 수는 없었다. 키신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월남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것은 미국內의 소위 평화운동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美 전쟁 의지 약화시킨 평화운동      反기성, 反전통문화의 성격도 띠고 있었던 평화운동은 언론과 의회에 큰 영향을 끼쳐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973년 6월 미국 의회는 인도지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기간, 즉 휴전협정 서명 후 1년 반 동안 월맹은 새로이 13만 명의 정규군과 탱크·대포를 17도선 이남으로 침투시켰다. 이 명백한 휴전협정 위반에 대해서 닉슨은 의회의 지원금지 결의로 해서 티우에 대한 약속(휴전협정을 어기면 월맹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편지)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월남에 대한 경제지원도 1973회계연도의 21억 달러에서 다음해에는 10억 달러, 1975년엔 7억 달러로 줄었다. 키신저도 월맹이 휴전협정을 준수할 마음이 없고 휴전기간을 공산화로 가는 과도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국내정치 불안 때문에 효과적인 대응수단을 동원할 수 없었다. 어떤 외교정책도 국내 정치의 사보타주에 직면하면 실천될 수 없는 것이다.       월남에서 미국이 진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도, 경제력이 약해서도 아니다. 전쟁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다. 17도선 이북 월맹에 육군을 투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폭격으로 월맹의 전쟁의지를 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敵 군사력의 원천을 온존시키고 월맹의 수족인 베트남內의 월맹 정규군 및 베트콩하고만 싸우는 데 미군을 투입했으니, 미국은 결전을 포기하고 지엽적인 전투에 매달린 셈이다. 이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 즉 미국의 전쟁의지를 약화시킨 것이 미국內의 反戰운동·평화운동,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언론과 의회의 제동이었다.         1973년의 월남평화협정과 1953년의 한국 휴전협정은 다른 점이 많다.       1. 월남평화협정으로 주월(駐越)미군은 철군했는데 월남에 있던 월맹군은 철군하지 않았다.    2. 남한에서 미군은 남았고, 북한에선 중공군이 철수했다.    3. 월남에서 17도선은 군사분계선으로 지켜지지 않았으나 휴전선은 지켜졌다. 한미(韓美)동맹이 완강했기 때문이다. 월남에선 17도선 관리를 베트콩과 월맹군이 장악했다.    4. 휴전 이후 한국에서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권력이 강화되었으나 월남에선 티우 정권이 약해졌다.    5. 월남에선 닉슨 대통령이 월남방어를 공약(空約)만 했으나 이승만(李承晩)은 한미(韓美)상호방위조약을 맺어 강제화했다.    6. 협정 이후 미국은 월남에서 발을 뺐으나 미국은 한국을 더욱 깊게 지원하게 되었다.       이런 차이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한국엔 이승만이 있었고 월남엔 없었다는 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016년 2월 베이징에서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비록 한반도 핵 문제는 중국에 (책임이) 있지 않지만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비핵화를 실현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협상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추진을 공식 제안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보도되었다. 중국은 북한이 핵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면 한미군사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쌍중단’도 제의하였는데 문 대통령 특보 문정인 씨도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정상적인 평화협정은 전쟁에서 승패(勝敗)가 난 뒤 패전국과 승전국 사이에서 이뤄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평화 협정, 태평양 전쟁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협정이 좋은 예이다. 평화가 정착되지 않고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평화협정을 맺은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은 성공적이고, 월남 평화협정은 실패작이 되었다. 한반도에선 평화가 정착되기는커녕 北의 핵무장과 핵위협으로 위기가 고조되었는데,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온다. 분쟁 그 자체를 해결하지 않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원수지간의 남녀(男女)가 화해하지 않고 결혼하는 격이다.      평화가 아니라 재앙을 부르는 평화협정     통일연구원의 최진욱 연구원(당시)은 2007년에 쓴 논문에서 이런 지적을 하였다.       그는 고 경고한다.    한국, 미국, 북한, 중국 등 4자 간이든 3자간이든 미북 간이든 일단 평화협정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한국은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소외될 것이다. 핵무장한 세 나라가 핵무장하지 않은 한국을 존중할 리가 없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논의 자체를 반대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는 신뢰 구축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구경꾼 입장이 되어 미국과 월맹에 평화협상을 맡겼다가 망한 월남의 사례는 한국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전쟁 자체를 해결하지 않은 채 맺은 평화협정은 월맹에 의하여 2년 뒤 휴지가 되고 협정 정신을 믿었던 월남은 망하고 수십 만 명의 월남인들은 보트 피플이 되어 남중국해를 떠돌다가 상어 밥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적의 말을 믿는 자는 삼족을 멸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담당 보좌관은 지난 해 2월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미북 간 평화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서면 증언에서 “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평화 기구를 구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한(美韓)동맹을 해체시키기 위해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기범 연구위원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논의의 위험성’이란 논문에서 평화협정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제도가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월남 공산화의 길을 연 파리 평화협정을 비판한다.         1953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된다면 이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개발 포기 또는 한반도 비핵화가 명시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민족자결권 존중 등이 포함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남한 공산화를 민족문제로 공식화하여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범 연구위원은 북한이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라고 본다. 북한의 핵 문제는 북한이 의도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 對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對 북한의 문제이며,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무’인 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핵 포기와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를 맞바꾼다면 북한의 불법행위를 대한민국 해체로 보상해주는 형식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가연합 혹은 낮은단계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였다. 이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 위반인데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위헌적 통일방안이 끼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 6월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김정일은 ‘주한미군의 중립화’에 공감하였는데 이는 한미동맹 해체의 다른 말이다. 평화협정 논의에 북핵 폐기, 주한미군 중립화, 중립화 통일이 한 세트로 거론될지도 모른다.    중국-북한-한국의 좌파 세력이 주도하는 중립화 통일 논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진로를 동시에 바꿀 것이다. 북핵 위기는 종결 단계에서 대한민국의 좌표를 해양문화권에서 대륙권으로 옮겨놓을지 모른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은 해양문화권의 자유진영 편에 섰기에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동서양의 국가적 자살 사례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1. 敵을 앞에 두고도 위선적 평화론이 득세한다. 이 평화론은 내부 분열을 재촉하여 자주국방 의지를 무너뜨린다(1930년대 프랑스, 南베트남).       2. 外敵의 조종을 받는 「내부의 敵」이 집권하거나 득세한다(南베트남).       3. 집권세력이 「내부의 敵」을 막지 못하거나 잇단 정책 착오를 일으켜 기존의 동맹관계가 무너지거나 약화된다(南베트남, 宋).       4. 내부의 계급적 분열로 내전 또는 내전적 상태가 조성되며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외세가 개입하거나 외세를 불러들이려 한다(조선조, 프랑스, 南베트남).       5. 체제수호 세력이 단결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南베트남, 조선조, 프랑스).          세계사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가 자살하는 사례는 집권세력이 내부의 敵을 막지 못한 경우, 내부분열이 외세를 불러들인 경우, 동맹관계가 무너진 경우, 적전(敵前)평화운동이 자주국방과 체제수호 의지를 무력화시킨 경우이다.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월남식 평화협정 공세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호응,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민들에게 생존차원의 결단을 강요하게 될 것다.

김주덕

지방선거가 코 앞에 닥쳤다. 전국에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 다 자기 자신이 가장 사명감 있는 단체장이 될 거라고 강조하면서, 커다란 인물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정당은 파랗고 붉은 색깔로 상징하고 있다.   물론 선거는 중요하다. 국민 입장에서는 정말 괜찮은 사람을 시장 군수로 뽑아야 한다. 결국 그 사람들이 우리가 내는 세금을 가지고 살림살이를 하기 때문에, 무능한 사람, 부정부패한 사람, 위선적인 사람을 뽑으면 우리가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십년간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선거때마다 자기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선거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책임한 선거브로커에 의해 농락을 당한다.   나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 검사 시절에도 그랬고, 변호사로 개업한 후에도 그랬다. 정치전문가라고 하면서, 나에게 국회의원 나가면 당선될 것이라고 하면서 부추긴다. ‘당신처럼 실력있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자신이 도와주면 무조건 당선될 것이니 이번 선거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해라.’ 식으로 나를 유혹한다.   물론 나는 이런 유혹을 지금까지 다 뿌리쳤다. 나 스스로 내 자신의 분수와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정치브로커의 제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일종의 과대망상증세를 일으켜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갔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르면서, 무조건 브로커의 말만 듣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다가 공천도 받지 못하거나 본선에서 형편 없이 낙선한다. 일부 사람들은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수사를 받고 처벌까지 받는다.   설사 기적이 일어나서 뜻하지 않게 당선이 된 사람도 정치를 처음 해봐서 그런지 서툴고 그 다음 번에는 또 나갔다가 낙선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정치판에서 떠나지 못한다. 도박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과 똑 같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 마약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정치에 중독증세를 보인다.   선거란 선거운동을 해주는 사람들이 모두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이다. 당장 선거운동에 대한 대가나 보수를 바란다. 당선되면 취직을 부탁하거나 이권에 관여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떨어진 반대파에서는 끊임없는 뒷조사를 해서 당선자를 괴롭힌다. 때문에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번 선거에 나가려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① ‘나는 왜 단체장이 되려고 하는가?’, ② ‘내가 시장 군수가 될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가?’. ③ ‘선거를 치루고 떨어져도 먹고 살 돈은 있는가?’, ④ ‘공직선거에 관한 법령은 충분히 알고 있는가?’, ⑤ ‘내가 당선되면 시민이나 군민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⑥ ‘me too 운동 같은 폭풍이 불어와도 살아남을 만큼 도덕적으로 문제 없이 살아왔는가?’ ⑦ ‘시장 군수가 되면, 돈을 안 먹고 깨끗한 행정을 할 수 있는가?’, ⑧ ‘선거 때문에 수사를 받아도 감당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⑨ ‘평소 소신과 달리 가식과 위선으로 많은 치장을 할 것이 아닌가?’, ⑩ ‘선거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사례는 충분히 보았는가?’   후보자들은 이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고, 적어도 한 가지라도 자신이 없거나 부족하면 오늘 즉시 후보를 그만 두고, 조용히 사는 것이 좋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돈도 손해보고, 낙오자가 되고, 위험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조갑제(趙甲濟)

  김정일의 최후를 보지 못한 신상옥 추억(2006년)    “대담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느냐 못가느냐의 문제였죠”     지난 4월11일에 만80세로 별세한 영화감독 申相玉(신상옥) 씨의 殯所(빈소)가 모셔진 서울대학 병원 장례예식장에 다녀왔다. 별실에는 부인 崔銀姬(최은희) 여사와 장례위원장을 맡은 申榮均(신영균) 씨가 있었다.       崔 여사는 전날 申 감독을 간호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여보, 내일 다시 올게요”라고 말했다. 申 감독은 문으로 향하는 부인에게 곁으로 오라는 눈신호를 보냈다. 申 감독은 누운 채 말 없이 崔 여사의 손을 꼭 잡더라고 한다. 崔 여사가 “이왕 손을 잡으려면 꽉 잡으세요”라고 했더니 손에 힘을 주더란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내가 “申 감독님은 김정일이의 최후를 보고 가셔야 했는데…”라고 했더니 崔 여사도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申 감독과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되었던 崔 여사가 회고록에서 납치되어온 한 마카오 여성에 대해서 썼는데 일본의 납치자 구출단체에서 이 여성의 實體(실체)를 확인한 뒤 崔 여사와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 부탁을 전하려고 申 감독과 통화했을 때 목소리는 쇠약했으나 아직도 김정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은 생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申 감독과 만나고 지낸 지난 17년간 한국에서 김정일을 가장 미워한 사람은 아마도 그와 黃長燁(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내면과 실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申 감독은 김정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그의 증오심과 복수심은 뼈에 사무친 것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김정일은 申相玉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그를 납치해간 이유에 대해서 미안한 듯이 떠듬떠듬 실토했고 이 대화는 崔 여사에 의해 녹음되었다. 김정일은 申 감독을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로 崔銀姬 씨를 먼저 홍콩에서 납치했던 것이다. 申 감독은 1978년에 납북된 뒤 崔 여사와 만나지 못하고 세뇌교육만 받고 있던 중 두 번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였다. 그는 약 5년간 사회안전부 및 국가보위부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 김정일의 개인적 후원하에 영화를 만들었다. 申 감독은 ‘한참 일할 나이에 근 10년간 거기 가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는 점을 아쉬워했고 거기서 느꼈던 인간 본성에 대한 억압을 잊지 못했다. 그는 자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의 억압이 얼마나 지독한지, 여기 서울에 앉아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해서 탈출할 때 가져온 것을 의심했다. 申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녹음은 보다 절실한 문제였다.    “대담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느냐 못가느냐의 문제였죠.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반공법이란 게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납치되었다는 증거 없이는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처지였거든요. 우린 신체검사도 안 받았어요. 또 들키면 ‘우린 적을 수가 없기 때문에 녹음했다’고 변명하려고 했고 통했을 겁니다.”      崔銀姬 씨가 핸드백에 녹음기를 넣고 녹음했는데 45분짜리 테이프를 썼기 때문에 다 녹음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요한 성격의 申 감독은 곁에 앉은 崔 여사에게 눈짓으로 화장실에 가서 바꿔 끼우라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申 감독은 “녹음을 하면서도 이것이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김정일의 육성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申 감독과 崔 여사는 1986년에 비엔나를 통해서 탈출한 뒤 미국 CIA의 보호 아래서 생활했다.    “다행히 미 CIA가 김정일의 목소리를 녹음한 게 있었습니다. 동생 김경희가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있다가 김정일의 전화를 받는 것을 녹음해두었지요. 이것과 대조해서 저희가 가져온 것이 진짜임을 확인한 겁니다. 그게 없었으면 우리는 미국으로도 못갈 뻔했습니다.”      申, 崔 두 사람의 증언과 녹음에 의해서 김정일에 대한 많은 정보가 알려졌다. 月刊朝鮮(월간조선)은 1995년 10월호 부록으로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발행한 적이 있다. 김정일을 연구하려는 북한 전문가들은 이 녹음 테이프를 듣지 않으면 안된다.       申 감독은 탈출하여 별세할 때까지의 20년간 회고록이나 좌담, 기고문 등을 통해서 줄기차게 김정일을 비판했다. 그를 알고 지낸 지난 17년간 필자에게는 申 씨가 영화감독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속성과 본성을 꿰뚫어보는 북한 전문가였다. 1989년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가까이서 본 김정일 정권의 성격을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마적단이죠. 북한이란 마을을 점령하고 노략질하여 주민들을 굶겨죽이면서도 하나도 양심의 가책이 없이 파티를 즐기는 마적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북한을 알면 알수록 그의 마적단論(론) 이상 가는 관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을 북한産(산) 문서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관념 속에 근사한 그림을 그려놓고, 그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을 상대로 굴욕적인 정책을 펴다가 파탄해가고 있는 이종석類(류)의 자칭 전문가들을 가장 경멸한 것이 黃長燁 씨와 申 감독이었다.       申 감독의 요청에 의해 필자는 1999년 초 黃長燁-申相玉 對談(대담)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1999년 3월호 월간조선). 이 對談의 사회를 필자가 보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申 선생께서는 김정일 측근들이 남한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셨죠? 그 심리가 남한을 동경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고 경멸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黃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옮은 말씀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김정일이가 현대감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또 남한 것을 다 알고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이죠. 우리에게도 남한 영화를 새벽까지 보여주곤 했습니다.”   申 감독이, 북한 사람들은 세뇌되어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몇만 명은 산 속으로 들어가 저항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黃 선생은 즉각 반박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들이 밤낮 義理(의리)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그것은 도둑집단의 의리일 뿐이지 원칙에 기초한 의리가 아니거든요.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무너져요. 대장인 김정일이가 무너지면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아무런 사상적 바탕이 없기 때문이죠.”      申相玉 씨가 김정일보다 더 미워하게 된 것은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햇볕정책이란 詐術(사술)로써 무너지는 김정일을 도와주어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연장했다는 것이다. 申 감독은 金大中 집권기에도 월간조선을 통해서 비판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편집장이던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식으로 글을 쓰고싶다고 의논했다. 미국시민권자인 申 감독은 “이런 글을 써놓으면 입국을 허가해줄까”하고 걱정하는 척하다가 신랄한 글을 써오곤 했다.       특히 2000년 6월 소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2001년 10월호 월간조선에 기고한 ‘김대중 앞 공개장’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申 감독은 또 나를 설득하여, 국민들이 김정일-김대중 야합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崔 여사와 함께 썼던 회고록을 손질하여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으로 출판하도록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있던 2003년 초에는 ‘金大中 대통령 앞 마지막 편지’라는 글을 갖고 왔다. 3월호에 실렸는데 제목은 ‘노벨賞을 위해 민족을 판 당신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였다.       이 편지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申相玉 감독이 딱 한번 북한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남한에 있을 때는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 이런 거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일이가 나에게 정치적 영화를 만들라는 주문을 안해요. 그런 강압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들이나, 과거 카프(일제시대 사회주의 문학 조직) 계열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고 어느 정도 사회적 開眼(개안)을 했습니다. 그런 걸 두 개 만들었죠. ‘소금’하고 ‘탈출기’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공부가 너무 값이 비쌌지요.”      예술 이외엔 통 관심도 잡기도 없었다는 申 감독이지만 김정일, 김대중 두 사람 때문에 말년엔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話題(화제)를 영화 쪽으로 돌리려 해도 그는 자꾸 남북문제로 돌아왔다. 영화 속의 주인공 같은 일생을 산 申 감독은 영화인으로서 평가받는 만큼 또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다. 김정일의 본질을 폭로함으로써 오고야 말 그의 파멸을 앞당긴 인물로서 말이다. 김정일의 최후를 보고 가지 못한 그의 冥福(명복)을 빈다.

김대호

는 2010년 10월 14일 1차 프로젝트, 2011년 5월 29일 2차 프로젝트로 두 번에 걸쳐 나뉘어 발표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청년고용 대책이 단기적으로 청년실업 급증을 막는 데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고용개선 효과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근본적으로는 민간의 고용 창출력을 높이되 동시에 청년의 직업경쟁력을 높이고 민⋅관 공동으로 청년이 하고싶어 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차 프로젝트에서는 청년일자리 7만1,000+개 창출을 목표로 공공부문 일자리 증원, 취업 연계성이 높은 청년인턴사업 활성화, 해외 취업 및 창업 지원 등 일자리 창출 관련 사업들, 그리고 특성화고 졸업자 취업 촉진, 취업 아카데미, 대학의 취업 책임 강화 등 학교-직장 이행과정 지원 관련 사업들을 포함했다. 2차 프로젝트는 기업대학 및 계약학과 확산,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NCS)에 따른 직업교육⋅훈련과정 개편 등 노동시장 진입 후 교육 및 훈련을 통한 재도약 기회 제공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미스매치 해소를 위해 일자리 종합정보망 구축, 청년인턴 참여자 취업지원금 확대, 취약계층 대상 내일 배움카드사업 확대 등을, 지방대생의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지방인재 채용목표제 시한 연장, 공공기관 청년인턴 채용 시 지역인재 우선 선발, 권역별 대기업 채용설명회 개최 지원 등의 사업들을 추진하였다.   2013년 12월에 발표된 은 청년실업의 개인적⋅사회적 비용을 인식하고 청년일자리 문제에 관한 청년과 기업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가운데, 주요 원인으로 교육과 산업현장 간의 괴리, 열악한 중소기업 근무여건,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 접근성 낮은 취업지원서비스 등에 기인한 미스매치와 진학 및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기업의 경력직 채용 선호 관행, 창업 열기 정체등을 지적하였다.   노동시장 진입 촉진을 위해 고졸자 취업지원 강화, 일•학습 병행제 확산, 진로교육 강화 등의 정책과, 일자리 창출 및 보상체계 개선을 위해서 청년고용지수 도입, 스펙 초월 채용문화 확산, 중소기업 취업 인센티브 강화, 지역 내 청년일자리 활성화, 청년 해외진출 활성화(K-Move) 등의 정책 및 청년 창업 열기를 되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창업지원 확대 및 창업 재기시스템 구축 등의 정책을 포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은 “청년취업 관련 통계⋅실태조사 등을 기초로 일자리 단계별 ‘약한 고리’ 발굴 및 수요자가 희망하는 대책 파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육⋅훈련 단계에서 형식적이거나 질 낮은 직업교육의 문제를, 구직⋅취업 단계에서 취업목표와 정보취득 및 희망의 미스매치 문제를, 근속⋅전직 단계에서 청년인턴제의 한계, 잦은 전직 및 경력단절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마이스터고⋅특성화고에서 기업 맞춤형반 확대와 일•학습 병행제 활성화, 선취업-후진학 경로 확대와 5대 유망서비스업(보건의료⋅금융⋅교육⋅관광⋅소프트웨어) 및 청년고용 우수기업(‘청년 가젤형 기업’) 지원 확대, 그리고 청년인턴제에서 근속연수에 비례한 취업지원금 지급과 중소기업 재직 청년들에 대한 보상(성과보상기금 세제혜택 및 청년희망키움통장 도입)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2015년 7월 27일자로 발표된 은 20대 인구의 단기적 증가 및 2016년부터 정년연장 의무화가 시행됨에 따라 “기존의 경제⋅구조적 요인에 단기 인구⋅제도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향후 3~4년 간 청년 고용절벽이 현실화할 우려”가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단기간 증원 여력과 수요가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향후 3~4년간 20만 개(공공 4만, 민간 16만) 이상의 청년일자리 확대를 목표로 하였으며, 지금까지의 구조적 대응을 가속화하고 유사⋅중복 일자리 사업 통폐합⋅재정비를 통한 정책효과성을 제고하는 과제들 또한 포함되었다.   단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으로는 교원 명예퇴직 확대, 간호인력 및 보육⋅유치원 교사 채용 확대, 공공기관 채용 확대를 비롯하여,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상의 공공기관 의무청년고용비율(3%)의 일몰기한 연장, 청년고용증대세제 및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제도 도입 등이 추진되었다. 그 밖에도 직업훈련 및 인턴 분야 청년일자리 사업을 통폐합하고, 특히 기존의 취업성공 패키지에 더하여 청년 내 일 찾기 패키지(청년 취업성공 패키지)를 신설하고 대학 내 취업지원기능을 연계⋅강화하는 등의 시도를 하였다. 이와 더불어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시행령 개정 추진을 통해 청년고용대책을 통한 지원 가능 연령을 30~34세까지 확대하였다(제8조의2 신설).   세계적 보편성이 아니라 한국적 특수성   청년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다. 다시 말해 고학력 청년이 선망하는 ‘괜찮은 일자리’의 절대적•상대적 부족이다. 청년일자리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최고, 최대의 현안이다. 모든 문제들이 그렇듯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이 중첩돼 있다. 전자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자동화, 중국과 인도의 세계시장 참여, 해외 아웃소싱과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증대 등이다. 저 멀리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청년일자리 문제는 한국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훨씬 크다. 괜찮은 일자리의 실체와 수요공급 여건(상품서비스 시장과 노동시장의 사정)을 살펴보면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과 OECD 평균에 비해 연 300~400시간이나 긴 장시간 근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식과 숙련 집약 산업의 비중으로 보면 한국의 대학생 수가 일본, 독일보다 특별히 많을 이유가 없지만 인구 5,100만 명의 한국은 대학생 수가 330만 명, 인구 8,200만 명의 독일은 261만 명, 인구 1억2,800만 명의 일본은 257만명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인 비교우위 산업과 잘 나가는 기업의 인색한 고용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득권 노동의 기회(일자리와 근로시간)와 임금의 과잉이다.   단적으로 2010년 기준 한국의 제조업 부가가치는 30.7%인데 취업자는 16.6%다. OECD 평균은 제조업 부가가치는 14.9%인데 취업자는 13.9%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은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취업자 비중과 부가가치 비중이 대체로 엇비슷하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노동시장에 수요와 공급 원리가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흐름이 막히면서, 비교우위 산업과 잘 나가는 기업들이 국내 투자와 고용을 몹시 꺼린다.   자동차 산업의 강국인 독일, 일본,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생산성은 가장 낮지만 미국 달러화 기준 근로자 임금은 가장 높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이 월등히 높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도 가장 높다. 제조업 1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년 미만 근속자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근속연수 20~30년 미만의 임금은 한국이 313, 일본 241.6, 독일 191.2, 프랑스 146.3, 영국 156.7이다. 임금을 생산성과 철저하게 연동시킨 스웨덴은 10~15년 미만이 116.1이고, 20~30년 미만은 오히려 줄어 110.8이다. 장기근속자 편향의 임금 체계가 청년일자리 문제를 얼마나 악화시키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제조업, 건설업, 도매 및 소매업 등 17개 산업별로 월평균 임금을 집계하면, 2016년 1~3월 기준 임금 1위는 전기·가스·증기·수도사업(6,187천원)이고, 2위는 금융·보험업(6,145천원)이다. 취업자 기준 생산성이 무려 세계 3위인 제조업(3,988천원)은 5위다. 1위 전기·가스·수도업은 공기업이 주도하는 산업이며, 2위는 시장참여 자격과 상품·가격(수수료, 이자) 등에 대한 국가규제가 심한 규제산업이다. 그런데 한국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장은 공기업과 은행, 방송, 통신 등 규제산업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과점(국내적으로는 수요독점) 기업이다.   물론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배타적 독점권이 부여되는 면허 직업과 공무원이다. 지난 2월 29일 JTBC 탐사플러스 취재팀이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 8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이고,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2015년 이상적 배우자상(像)’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이상형은 연소득 5,417만 원, 4년제 대졸, 공무원·공사직 남성이다. 남성의 이상형은 연소득 4,631만 원, 4년제 대졸, 공무원·공사직 여성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공무원과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정규직원은 130만 명을 넘지 않고, 연소득 5,417만 원은 1인당 명목 GDP(2014년 2,945만원)의 1.84배로, 20세 이상 인구의 상위 10%, 근로소득세를 내는 1,619만 명의 상위 20%다. 공무원은 임금의 원천이 세금이고, 공기업은 국가독점 업역과 규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임금은 그리 높지 않고, 고용 안정성도 민간에 비해 월등하지 않다. 공기업과 규제산업 자체가 적기도 하거니와 임금도 민간기업과 비규제(완전경쟁) 산업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인 청년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고용체제는 가히 세계 최악이다. 두터운 지대(렌트)를 깔고 앉은 공무원, 공기업, 규제산업, 독과점기업과 높은 생산성에 지대까지 겸비한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끌어올린 임금 등 근로조건이 여간 높은 게 아니다. 이런 곳은 대체로 직무성과와 상관없이 근속연수와 단체교섭에 따라 임금이 올라간다. 한 번 정규직이 되면 중도 퇴출도 곤란하다.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처럼 기업이 사경을 헤매게 돼 정리해고라도 할라치면 ‘해고는 살인’이라는 함성이 광장을 메운다. 하는 일에 비해 근로조건이 워낙 높아 그곳을 나와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곳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괜찮은 일자리는 들어가는 입구는 있는데 내보내는 출구가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과 안정성이 주어진다.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 즉 산업, 기업, 직업, 기술, 기계, 상품의 수명이 짧아진 시장 환경에서 이런 지독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니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평균값의 눈속임   한국에서 불평등, 양극화, 청년일자리 문제가 거론되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과 노동소득분배율은 정체되고, 가계소득 비중은 기업소득에 비해 줄고, 대기업 사내유보금은 700조가 넘고,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독일, 일본 보다 낮고….’ 한마디로 자본, 기업, 재벌 대기업의 불법적이고 과도한 탐욕이 원흉이니 사법적 수단과 세금 및 규제(청년 고용할당 등), 공공부문 고용 확대로 풀자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모든 힘센 존재들이 그렇듯 이들이 청정무구할 리가 없다. 엄단할 불법과 편법도 있고, 더 내야 할 세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약방의 감초’ 논리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다. 거론된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값이다. 세분화시켜 보면,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은행 등 규제산업과 공공부문의 실질임금은 경제성장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고, 그 결과 하는 일에 비해 임금도 월등히 높다. 글로벌 경쟁력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그 못지않게 국민(세금), 소비자, 협력업체, 비정규직, 청년세대의 몫을 빨아간 데서 기인한 바도 많을 것이다.   사실 불평등, 양극화의 징표로 거론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유노조와 무노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고용임금 격차도, 제조업의 과소고용·높은 생산성과 서비스업의 과잉고용·낮은 생산성도 동전의 양면이다. 전자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 후자의 형편없는 수준을 만든 주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자를 정상, 후자를 비정상으로 여기며 오직 자본, 기업 재벌 쪽으로만 손가락질한다. 청년 대학생들이 유난히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한 이유다.   토마 피케티의 출간을 계기로 주요국의 분위별 소득점유율 통계가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에서, 세계 최악이라는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상위 1%의 소득과점(19.34%)이 소득불평등의 핵심 원흉이다. 하지만 한국의 1%는 12.23%를, 그 아래 9%가 32.64%로 독보적으로 높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상위 10%는 실제 생산성이 높은 존재들이 많지만, 한국의 상위 10%는 세금, 국가독점(공공기관), 규제, 민간독과점, 부동산을 소득원으로 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세금과 복지로 해결할 문제지만, 한국은 그와 더불어 시장, 개방, 경쟁과 민주적 통제로써 해결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세금과 국가독점 업역을 가진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할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아니라 고용임금의 공평성, 연대성, 유연안정성이다. 예컨대 호봉제를 대폭 축소하고, 더 세분화되고 더 합리적인 직무급을 도입하고, 개방직·계약직·정무직을 확대하고, 종신직(정년직)이 아니라 3년, 5년, 10년 계약직을 도입하는 것이다. 공공예산이 주된 재원인 전 분야(관급 건설공사, 어린이집 등)는 중간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파견용역 업체의 실지급 통장까지 살펴야 한다.   민간부문도 기업이 고용을 지금보다 덜 부담스럽게 늘리도록, 시간제, 기간제, 파견제 등을 오히려 폭넓게 인정하고, 이들의 부담을 국가가 떠안아줘야 한다. 비정규직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비정규직에 대해 7년 일하면 1년은 쉴 수 있는 두터운 특별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들이 떨쳐 일어나야 할 이유   한국의 소득분배 구조가 나쁘고 고용임금 격차가 큰 것은 단지 소수의 과점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의 실력과 생산성에 따라 지위와 처우가 결정되고 또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소속 직장의 지불능력에 따라 사람의 계급이 결정되고 연공에 따라 지위와 역할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직장계급 사회, 연공계급 사회, ‘공공 양반’ 사회에서는 청년의 직장, 직업 선택의 기준은 소명, 꿈, 직무적성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임금, 복지, 안정성이다.   그러니 용케 선망하는 직장 진입에 성공한 엘리트는 직무적성이 맞지 않아, 뒤늦게 마음이 떠나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실패한 사람은 그 모멸감과 억울함 때문에 마음이 떠난다. 종종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염불보다 잿밥이 먼저인 본말전도 사회, 가치 창조가 아니라 쟁취가 중심인 지대추구 사회는 하층, 말단, 실무자는 선진국보다 유능할지 몰라도 상층, 중심, 결정자로 갈수록 점점 무능해진다. 사회는 정체하다가 퇴보한다.   ※ 해당 칼럼은 '제 3의 길'에 공동기고된 것임

김주덕

법치국가에서 법의 해석은 법집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된다. 모든 법은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법의 내용이 명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법률가들의 몫이다.   유권해석(有權解釋)이라 함은, 한 국가기관이 주어진 권한에 근거해서 하는 구속력 있는 법해석을 말한다. 공권적 해석 또는 강제적 해석이라고도 한다.   법해석에는 법원이 하는 사법해석, 입법부에서 하는 입법해석, 행정기관이 통보 등으로 해석하는 행정해석이 있다.   최근에 이러한 법령의 유권해석과 관련해서 이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청와대는 김기식 의혹과 관련하여 질의를 했고, 그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았다. 매우 이례적인 질의와 답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일부 질의사항에 대하여 공직선거법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국회의원이 시민단체 또는 비영리법인의 구성원으로서 당해 단체의 정관·규약 또는 운영관례상의 의무에 기해 종전의 범위 안에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같은 법 제113조에 위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정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 법집행기관의 최고 정점에 있다. 법집행에 있어서 문제가 있으면, 법무부장관이나 법제처장에게 법령검토를 시키면 된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가장 기본적인 법령의 해석 문제를 이상하게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를 한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어 뜨거운 감자로 된 김기식 의혹사건에 대해 갑자기 청와대가 나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그에 따라 중립적 위치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며칠 안에 즉각적인 유권해석을 통보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이 좋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을 하게 되면, 법의 존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이번 사안에서도 청와대는 김기식 의혹이 제기되고, 언론에서 사퇴요구가 강하게 일어났다고 해도, 스스로 판단해서 사퇴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면, 그냥 입장을 유지하고,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렸으면 된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금융감독원장의 의혹이나 비리는 이미 고발장의 접수에 따라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에 있었으므로 검찰에서 모든 문제에 대해 법령에 대한 일차적인 해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검찰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통해 유리한 방향으로 사퇴압력을 피해나가려고 했다면 잘못이다.

김대호

◊이 글은 2018년 4월 14일 [제3의길]과 정치미래연합, 사회디자인연구소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공동 주최한 [21세기 대한민국 위기와 활로 토론회 :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한다] 연속 토론회 첫번째 순서 ‘청년 일자리와 최저임금 이대로 좋은가’의 발제문(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입니다.    정책적 상식의 무덤, 성찰과 반성의 실종   문재인 부의 청년일자리 정책과 최저임금 정책은 눈물과 한숨과 분노없이 논할 수없다. 특히 지난 10년간 총 21회(2018.1.25 청와대 일자리 점검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에 걸쳐 시행되었다는 정부의 청년일자리 대책은 한국 정치와 정부의 혼미 무능의 기념비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 거대한 블랙코메디의 끝판 왕이자, 정책의 기본 상식과 논리의 무덤이다. 이 중요한 정책에 대한 성찰도, 반성도 도무지 없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다.   “지난 10여년간 정부가 총 21회에 걸쳐 청년 고용 대책을 마련했지만 결과적으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민간과 시장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랫동안 실패해왔고, 정부의 대책도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지금 정부 각 부처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고정관념이 청년일자리 대책을 더 과감하게 구상하고 추진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 “향후 3~4년 특단의 청년일자리 정책 마련” 촉구   문재인 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7,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이 제시한 중에서 청년일자리 관련 부분은 ‘목표2 :더불어 잘사는 경제’>>   ‘전략 1: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국정과제 ’16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과 ’18 성별ㆍ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에 주로 서술되어 있다.   최저임금 관련 부분은 ‘목표 3: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전략 4 노동존중ㆍ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 ‘64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에 주로 서술되어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의 철학적 원칙은 다음과 같다.    ㅇ “더불어 성장의 핵심과제는 ‘좋은 일자리가 마련된 대한민국’으로, 일자리 창출로 가계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를 확대하여 내수 활성화 및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 구조’ 구축.   ㅇ 일자리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을 줄이며, 고용의 질을 높이는 ‘늘리고, 줄이고, 높이는’ 전략. 이를 위해 정부가 81만개의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앞장서고, 기업과 노동자는 사회적 대타협과 강력한 산업혁신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    이는 한마디로 결과(좋은 일자리 창출)를 원인(내수 활성화 및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선순환 구조’ 구축)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마차(고용)를 움직여 말(경제)을 움직인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16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2022년까지)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이다. 문재인정부가 말하는 국민은 5100만 국민이나 2700만 취업자가 아니라, 취업자의 20% 미만인 공공부문과 대기업 영구직인 것이 분명하다.   ’18 성별ㆍ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ㅇ (청년고용의무제 확대) ’18년부터 공공기관 청년고용 의무비율 상향(매년 정원의 3% → 5%), 민간부문 청년 신규채용 권고(인센티브 검토) ㅇ (추가고용장려금 신설) 중소기업이 청년 3명 정규직 채용 시 1명분 임금 지원(’17년 5천명, ’18년~’20년은 매년 신규 2만명) ㅇ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 취성패 3단계와 연계한 구직촉진수당(30만원, 3개월) 신설ㆍ지급(’17년~’18년)    그런데 이 바로 아래는 청년일자리 창출과 정면 충돌하는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ㅇ(정년일자리 보장) 희망퇴직 남용 방지, 경영상 해고제도 개선방안 등 근로계약 종료 전반에 관한 개선방안 마련(’17년)으로 정년제도 실효성 제고 ㅇ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등) 적용사업장 확대, 남녀고용평등법 전 사업장 적용     최저임금 정책도 임금격차 해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한계 기업이 문을 닫거나, 고용과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취약근로자의 처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정책적 상식이 온 데 간 데 없다.  ㅇ (임금격차 해소) ’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과 소상공인 등 부담 완화방안 마련, 공정임금 구축 등 임금격차 해소 추진   최저임금 1만원은 고용 대학살극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 정부가 ‘5100만 국민’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한국의 산업고용 현실을 알지 못하여 벌인 고용 대학살극이다. 문 정부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임금 수준(중위, 평균)과 체계(낮은 기본급과 연공임금, 주휴수당, 상여금과 식대 산입 배제)를 오판하였다. 그래서 기본급, 상여금, 연장근로수당 등을 합치면 연봉 4천만~4천5백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최저임금 선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최대의 수혜자는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 땅에서 소비지출에 지독하게 인색하기에 소득주도성장론의 거대한 구멍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미 충분히 높다. 주휴수당 등 연봉으로 환산한 최저임금은 OECD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http://stats.oecd.org >> Labour>> Earnings>> Minimum wages at current prices in NCU). 한국은 2017년 기준 1,622만6,760원(6,470*209시간*12개월)이고, 독일 1만7,976유로(2017), 프랑스 1만7,599유로(2016), 일본167만2,840엔(2015) 영국 1만4,612파운드(2017), 호주 3만4,570호주달러(2016), 미국 1만5,080달러(2017)이다. 한국은 2018년에 1,888만5,240원이 된다. 문 정부가 공약한대로 2020년에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연봉은 2,508만원이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 사실 우리의 생산력(1인당 GDP나 GNI) 수준을 감안하면 2017년 최저임금(6030원)조차도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최저임금의 성격상 (근로자 평균임금이 아니라) 중위임금 대비 수준이 중요한데, 최신 2015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최저임금이 5,580원(연봉 1399만4,640원)일 때, 중위임금의 48%였다. 같은 시기 미국 36%, 일본 40%, 독일 48%, 영국 49%, 프랑스 62%였다. 주요국 중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2005년 67%까지 갔다가 지금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한국의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은 중위임금의 60%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절대 수준도 높지만, 인상 속도는 엄청난 과속이다.   문 정부는 최저임금제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라면 몰라도 40%나 50%를 돌파하면 최저임금은 더이상 최저생계비 보장 수단도, 가계소득 증대 수단도 아니다. 임금은 임율*노동시간인데, 노동시간이나 근로기회(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취업과 실업, 영업과 폐업을 가르는 선으로 산업구조 고도화 수단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수준은 산업과 고용의 퇴출•존치 여부가 기준이기에, 사회안전망 수준(실업급여, 기초생활보호 관련 지출, 기초연금, 근로장려금과 각종 사회수당 등)과 생산성 낮은 자본•노동의 구조조정, 재교육•재배치 전략 등과 연계해서 책정해야 한다. 산업•업종별 경영 사정, 산업•지역별 노동시장 사정(임금 분포와 고용 수요와 공급), 노동이동성과 고용유연성 수준 등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소득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민간 소비지출을 늘리는 방식은 최저임금 외에도, 조세감면, 공공부문의 적정임금제도, 사회임금(근로장려금, 각종 사회수당, 기초생활급여, 실업급여 등), 노조의 단체행동에 의한 임금인상 등 다양한데, 오로지 최저임금으로만 이를 달성하려고 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적정임금제도를 도입하고, 사회임금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아야 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청년 대학생에 대한 포퓰리즘이다. 2015년 전후한 시기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세계적 유행이었기에(선진국들은 한국과 달리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급상향하지 않았다) 정책적 유행을 탄 측면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알바와 저임금 직장(직종)을 전전하며 사는 20~30대 청년및 대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다. 한국 20~30대 청년 대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의 배경에는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이수한 이들의 당혹, 좌절, 불만, 절망이 깔려있다.   이들이 부모(50~60대), 대학, TV, 사회문화 등의 영향으로 몸에 배인 높은 소비지출 성향과 알바나 비정규직으로 접한 현실의 근로조건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일자리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많지도 않고, 점점 줄어드는 계층 상승 사다리 아래서는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당연히 이들 청년 대부분은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고학력 청년백수의 양산, 취업이나 창업을 통한 계층 이동성의 약화(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시장생태계의  불건전 등), 저임금 문제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적정임금과 사회임금 논의의 저조) 등이 합작한 기형이다.   누수율 90%짜리 청년일자리 특단의 대책   2018년 3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의 주재 ‘청년일자리 대책 보고대회 및 제5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0년 통산 22번째 청년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정부 대책의 핵심은 청년들이 고용 절벽에 아우성인데 중소·중견기업들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이 모순된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청년일자리 18만~22만개 추가고용’, ‘중소∙중견기업 정규직 신규채용시 연봉 900만 원 지원’, ‘중소기업 취업 청년 및 청년 창업기업 5년간 소득세 전액 면제’, ‘청년 채용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 ‘졸업 후 구직활동하는 청년에 6개월간 50만 원 지원’ 등을 발표했다.   즉 중소기업에 이미 취업한 34세 이하 청년에게 4년간 매년 1인당 1035만 원 이상 지급하고, 신규 채용하는 기업의 경우 청년 1인당 중소기업은 3년간 매년 1000만∼1,100만 원, 중견기업은 3년간 매년 700만 원, 대기업은 2년간 매년 300만 원 세금을 감면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면서 문 정부는 4월 국회에서 4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정책에 대해 윤희숙(KDI연구위원)은 “OECD 국가들의 경험에 따르면 누수율 90%에 육박”한다고 평가했다. OECD국가의 정책시행 경험에 따르면 고용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어차피 채용할 인력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윤희숙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불황 때문에 생긴 일자리 부족 문제라면, 고용보조금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질 수 있으나, 구조적 문제(노동시장 이중구조)일 경우는 고용보조금이 구조 개혁 필요를 가리기 때문에, 일찍 수술하면 좋을 중증(구조적 문제)을 더욱 악화시켜 후대로 미룬다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청년 일자리 정책   한국 청년일자리 정책의 긴 흑역사는 한요셉(2017.12, KDI)의 의 ‘표 6-1 우리나라의 청년고용대책’과 부록의 ‘4. 역대 청년고용대책 개괄’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청년일자리 문제의 핵심 원인(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등)을 제대로 천착하지 않았기에 대부분 대증요법에 머물고, 그나마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정책들이 끊임없이 변형되어 제시되고 있다.   2003년 9월 22일에 발표된 은 우리나라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첫 종합 일자리정책이다. 당시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으며, 이미 급격한 대졸자 증가와 ‘버젓한 일자리(decent job)’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정부는 청년실업의 원인을 ‘경제성장 둔화 및 인력수급의 미스매치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정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산학협력 강화, 학교에서 직장까지의 원활한 이행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었고, 단기적으로는 공공부문 일자리제공, 직장체험 프로그램, 청년 개인별 맞춤형 취업알선 및 워크넷(WorkNet)의 모바일 접근성 강화 등의 대책을 통해 노동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였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 상황에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2005년 1월 발표된 에서는 가장 부정적 평가를 받던 단기적 일자리 사업은 “한시적⋅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으며, 청년의 학교 졸업부터 첫 직장까지의 이행기간 장기화가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기존의 중장기적 대책에 더하여, 공급 측면에서는 각급 학교진로⋅직업 지도 강화, 수요 중심적 직업교육 시스템 강화 그리고 대학의 자발적인 취업경쟁력 강화를 추구하였으며, 특히 노동시장 인프라 측면에서는 영국의 청년 뉴딜(New Deal for Young People)의 사례와 유사하게 취약계층의 청년에 대한 3단계 종합취업지원서비스(youth employmentservice: YES)를 2006년 시범실시 및 2007년 시행을 목표로 도입하고 청년을 위한 워크넷 홈페이지를 신설하였다.   이후 2007년 4월에는 을 보완하는 성격의 이 발표되었다.   2008년 8월 29일에 발표된 은 기존 청년고용 대책과 문제의 인식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청년실업자 외에 구직 단념자 및 취업 준비자 등 ‘청년취업 애로층’에 주목하였으며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주요 단기 대책으로는 정부 주도의 청년인턴제 및 민간경제단체 주도의 인턴 모집 확대, 분야별 우량 중소기업 선정, 청년기업가 지원, 한국형 마이스터 양성사업, 기존 취약청년층 종합취업지원서비스(YES)를 확대한 청년 뉴스타트(New Start) 프로젝트, 대학별⋅학과별 취업률 공표 확대 및 건강보험DB와 연계한 신뢰성 제고사업 등이 포함되었다.   이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2009년 3월 이 발표되었다. 은 중소기업 및 공공부문 청년인턴, 국가사업 단기근로자, 농촌현장 인턴, 인턴교사 등 다양한 인턴 및 단기 일자리 사업 확대를 비롯하여 취업 장려수당 도입, 청년신규고용촉진장려금 인상 등 취약청년 취업 지원사업을 통해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완화하고자 했다.   ※ 해당 칼럼은 '제 3의 길'에 공동기고된 것임

문근찬

2016년 11월 서울 광화문의 촛불집회.내가 참여하는 한 세미나 모임에서 어느 정치철학을 전공한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주제는 ‘민주주의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나: 국가철학’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발제자는 얼마 전 자신이 출간했다는 책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방식으로 토의를 진행했다. 아마도 그 책은 오늘날의 한국 정치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 내용인 듯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명예 시민혁명이라 칭하며, 당시 촛불 시위자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표현을 쓴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라는 표현은 중립적인 국가 제도를 표현하는 단어지만 ‘나라’는 정서적 울림이 큰 표현이며, 촛불이 이 표현을 쓴 것은 폭력을 독점하는 권력 주체인 국권의 시대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하고, 더 나아가 복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기관으로 국권이 정당화되는 민권의 시대로 불가역적으로 이행했음을 보이는 상징이라 했다.   즉 촛불은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 지상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가 끝나고 나면 그 많은 군중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모습에서 고도의 시민 의식을 볼 수 있었는데, 여름철 해운대 해수욕장에 버려지는 쓰레기 더미와 비교가 된다며 두 군중을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고도의 정치적 사건에 참여한 군중과 휴식을 즐기며 다소 풀어진 시민을 왜 비교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 촛불 참가자는 해운대에는 안 간다는 것인지, 혹은 해운대에 가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는 것인지 발표자의 의도를 확인해 본 바는 없다. 아무튼, 발표자는 이번 촛불 사태를 과거 유럽 대륙의 역사에 나오는 혁명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그 세미나 모임 후에 내 뇌리에 떠나지 않던 질문들에 관해 확인해 본 내용이다. 그 질문이란 “오늘의 한국은 250년 전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정도의 수준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보인가 퇴보인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당시의 여러 혁명 사조의 근원을 다시 살펴봤다.   정치철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에 그 뿌리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은 19세기 사회 질서의 기반이 된 자유를 구축하는 데 어떠한 공헌도 한 것이 없고, 사실은 그 반대다. 프랑스 혁명이 자유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은 이성주의적 좌파들이 자유(liberty)라는 단어를 독점하고는 자신들을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고 명명해서 생겨난 오류일 뿐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주의적 좌파는 전체주의적 독재자에 길을 내어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이성주의적 좌파는 인간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갖고 전통과 역사를 쉽게 부정하는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에서 생겨난 패러다임이다. 이들은 철학적으로 구성주의적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데, 데카르트, 루소, 홉스로 이어지는 전통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구성주의적 합리론은 현실 세계에 부딪히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고, 정치적으로 기존 체제에 반대만을 할 수 있을 뿐 그 스스로는 철저히 무능하다. 그런 실패의 틈에서 전체주의가 자라며, 역사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법칙으로 포장한 혁명가에게 길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300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모든 전체주의 혁명은 각 시대에 등장했던 이성주의적 좌파 이념에서 발전했다. 이성주의 좌파 혁명의 계보는 장 자크 루소에서부터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로 이어지고, 그 연장 선상에 마르크스와 스탈린이 있다. 그들 모두는 프랑스 계몽주의에 그 뿌리를 둔, 인간의 이성을 무한히 신뢰하는 철학 사조를 뿌리를 두고 있다.   계몽사상은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발견한 점에서 위대한 공헌을 했지만, 이 발견은 여러 종류의 전체주의적 신조들이 형성되는 데 기초를 제공했다. 그들 개개인은 선의와 양심에 따라 자신들이 자유를 위해 독재와 맞서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전체주의적 혁명자가 이용하는 배경이 되었다.   루소는 모든 사람이 공동선을 추구하는 도덕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서 이를 일반의지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일반의지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냥 그것은 완전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주 만물에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선언될 뿐이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체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했지만, 18세기 중엽 루소의 시대를 생각하면 동물이 우글거리는 자연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고, 그런 주장은 그저 선동가의 미사여구일 뿐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혁명 내내 급진적 공포 정치의 중심이 있다가 자신도 군중의 냉소 속에 처형되었다.   루소의 일반의지와 유사하게 마르크스도 이성주의적 단순성으로 사회를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합리적 경제인으로 인식하는 경제적 결정론에다가 인간의 행동은 개개인이 속해 있는 계급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는 계급 결정론을 선언했다. 그의 이론에 사회 발전을 위해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차 나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계급 결정론은 인간 개개인의 창의적 행동, 사고, 분석 능력 모두를 부정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인간의 의지와 이해의 차원을 초월하는 계급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궁극적 인간 완성의 실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국한하면서, 지상천국으로 가는 혁명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오늘날 ‘국민’ 대신 ‘사람’이라는 말을 굳이 쓰려고 하는 의도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찰스 다윈과 더불어 시작된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인간 사회를 단순화 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후 60여 년 동안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 또는 심리학적 존재로 해석하는 철학이 유럽의 이성주의적 사조가 되었다. 우생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을 인간에 적용할 때 개인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히틀러는 이를 민족적 기반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로파간다와 같은 심리학의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를 관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이성주의자는 이전의 이성주의자들이 했던 것처럼 인간 본성에 대해 절대적 개념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인간을 유전자, 염색체, 선(線)의 창조물로 형성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인간이 완전해질 가능성을 ‘객관적 진리’로 선언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보자면, 이성주의적 좌파의 절대주의로 변모되기 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다양성이나 개성, 나아가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무시되고, 인간 존재의 정의를 단순한 과학 이론이나 권위를 내세운 결정론으로 짜 맞춘 후, 그 신념을 진리인 것처럼 퍼뜨리는 전체주의자에게 길을 내 준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그동안 가꾸어온 자유의 유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건이었다. 왕을 비롯한 수만 명의 사람이 처형되었고 혁명을 완수하려고 공포정치를 동원한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전제정치를 끝내고 공화정을 하겠다며 시작한 혁명이었지만 수년 뒤 권좌에 오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스스로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가 일으킨 유럽 전쟁으로 또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대비하여 볼 때, 실제로 자유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1776년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명기한 독립선언서에서 출발하는 미국의 독립혁명이었다. 역사가들은 프랑스 혁명이 미국 독립혁명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고 같은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기술하지만,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두 혁명은 오히려 반대되는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이성주의적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미국 혁명은 영국 전통의 경험주의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 혁명이었다. 정치 체제 면에서 미국 혁명은 프랑스 혁명에 따른 국민 의회, 공포 정치, 그리고 나폴레옹의 체제보다 몇 단계 진보한 체제다. 미국 혁명에서 비로소 자유의 이름으로 이성주의나 계몽주의 독재에 맞서 싸운 정치이념이 정치 체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영국이 프랑스 혁명의 파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조지 3세 국왕이 식민지와의 전쟁에서 패퇴한 후 영국 정부의 권력이 윌리엄 피트와 에그먼드 버크 같은 휘그당으로 넘어가,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전통에 기반을 둔 정부를 세우면서 가능했다. 그들은 과거의 전통을 혁명에 의해 제거한 것이 아니라, 전통의 기반 위에 가능한 수준에서 하나씩 쌓는 식으로 내각 제도를 확립했고, 내각의 의회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했으며, 국왕과 의회 사이의 관계도 새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유당과 보수당이라는, 둘 다 자유 사회라는 동일한 이념에 기반을 둔 양 당 체제를 확립했다. 두 정당은 자유의 유무에 의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한계, 즉 권위주의와 개인주의의 스펙트럼 차이를 조정하는 주도권을 다투는 정당일 뿐이었다. 이렇게 미국과 영국에서는 자유가 중요하고 당연한 존재로 인식되는 정치 체제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철학적으로는 이성주의보다 덜 멋있을지라도 현실 세계에서 오랜 전통에 의해 정착된 제도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새로운 변화는 하나씩 조심스럽게 지식과 사실을 바탕으로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해야 한다는 경험주의적 전통을 정치 체제에 반영했다.   이에 비교해 19세기 유럽 대륙이 누린 자유란 이성주의적 절대주의가 맹위를 떨치다가 잠시 힘을 잃었을 때 누리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유럽 대륙의 구성주의적 합리론 전통은 인간의 완전성을 추구한다는 이성에 대한 오만으로 자유를 자주 희생했다. 마르크스, 히틀러,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자는 하나같이 전체의 이상을 추구한다며 개인의 재산권을 빼앗았다.   이 글은 서두에 밝혔듯이 어느 정치철학자가 촛불을 프랑스 혁명을 염두에 둔 듯한 논조로 예찬을 했을 때 느꼈던 불편한 심기의 근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당시 질문을 고루 다 받겠다는 발표자의 말에 나는 단지 “내 성향은 이성주의자라기보다는 경험주의 쪽에 가까워서, 인과의 배열보다는 실질적인 사실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는 취지의 말만을 했었다.   내 말의 속뜻은, 촛불이 민권의 나라 즉 자유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사실로써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촛불은 구성주의적 합리론이 지녔던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나 오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 즉 비록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짧은 역사 때문에 그 원리대로 잘 구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어렵사리 세워 나가던 것을 촛불이 일거에 역 주행시킨 반동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퇴행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류지태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 정책의 골자는 이러하다. 개인이 20만 원, 기업이 10만 원을 적립하면 국가가 10만 원을 지원하여 40만 원이 국내 여행에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2만 명의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범실시해본다고 한다. 20억 원의 국고를 휴가자들에게 푸는 것. 중소기업도 도합 20억 원의 자본을 근로자의 휴가비로 지급하게 된다.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착안한 구역질 나오는 정책이다.   첫 번째 전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 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 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내 휴가가 그만한 값어치를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여행지의 물가에 심각한 버블이 끼어있는 것이 문제다. 이 상태에서 국내로 휴가가는 것은 자본의 비효율적 사용이 되어 국부가 증가하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전제는 다양한 산업군 중 국내 여행지의 관광 산업이 내수경제 활성화에 유의미한 효과를 줄 것이라는 전제다. 하지만 그 정책은 단기적 GDP 뻥튀기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국내 관광산업에선 자본이 축적되지 못하고 생산성이 늘지 않기 때문에.   예상되는 문제점은 다양하다. 국내 여행지 물가에 낀 거품은 유지되거나 단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자본 축적을 저해한다. 기업은 혁신해야 유지된다. 낮은 생산성이 문제가 되고있는 요즈음은 혁신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기업들이 반강제적으로 20억 원의 자본을 근로자 후생 증진에 써야 한다는 건데, 국내여행한다고 근로자 후생이 증진될지 의문이다. 차라리 기업이 혁신해서 성장하고 월급을 더 주는게 낫다. 마지막으로, 우수참가기업은 포상하고 현판을 준다고 한다. 그 돈도 세금일진데, 국민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었다고 그 돈을 포상하는데 쓴다는 것일까.   정책의 목표도 명확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상충되고(내수 경제성장과 자본축적 저해) 수단도 포퓰리스틱하다. 차라리 20억 원의 돈을 지자체별로 순천만같은 ‘여행 핫플레이스 개발사업’을 공모해서 수상 지자체에 지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모든 지자체의 제안이 효과가 없어보이면 그냥 국고에 고이 뒀다가 더 좋은 데 쓰는 게 좋을 것이다.   PS. 지금 상태에서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이 시행된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여행지 상인들은 이대로 관광상품을 팔아도 장사가 되는구나 하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에서는 점점 소비자들(국민)의 행복과 유리된 여행지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국내 여행지는 정부 지원금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게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결국 정부는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서 국내 관광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내의 구매력 있는 여행객들을 해외로 몰아내는 짓을 하는 셈이다.   ※ 해당 기사는 '제 3의 길'에 공동기고된 것임

류근일

“한미동맹 파기하라!”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 실현하자.” “미국은 한반도에서 물러나라.” 주말인 7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대규모 반미(反美)집회가 열렸다. 집회 주최 측은 △한미동맹 파기 △한미합동군사연습 영구중단 △적대적 대북(對北)정책 폐기 등을 주장했다.  이상은 어제(4/7) 날자 조선닷컴 기사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다 간 것 아닌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는 부류를 어떤 부류라고 불러야 하는가? 자칭 ‘진보적’인 정치인은 말할 것이다.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자칭 ‘진보적’인 법관은 말할 것이다. “미국과 한-미 동맹을 배척하는 것도 표현과 양심의 자유다”라고, 아무렴 어련들 하실까. 그러나 부탁 좀 하자. 이젠 더 이상 그렇게 ‘눈 가리고 아옹’ 하지 말고 아주 속내 톡 까놓고, 화투장 확 까고 싸우는 게 어떤가?  그럼 그들은 이렇게 속으로 말할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속내를 다 털어놔? 우리가 머저리인 줄 알아?” 그리고 겉으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 입장에서 외세를 배척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민주-민족-민중 항쟁, 민주주의 민족전선’ ‘민족자주통일’아란 말만 써왔지, 자신들의 아념적 정체와 본색을 외부론 다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런 위장전술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 지금도 한다하는 인텔리들과 군중이 그들의 ‘속이 뻔한’ 감상적 민족담론에 잘도 놀아난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사회운동은 8. 15 해방공간 이래의 그런 위장된 ‘민족’ 담론, 궤변적 '평화'담론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민주화 이후엔 그 흐름이 맥아더 동상 철거, 평택 미군기지 반대, 효순이-미순이 사태, 광우병 소동, 한-미 FTA 반대, 사드 배치 반대로 드러났다(소박한 주민들 아닌 운동꾼들이 그렇다). 그러더니 요 며칠 사이엔 아주 정공법(正攻法)적인 반미투쟁으로 표출되고 있다.  야금야금 작전인 셈이다. 아라비아 사람의 천막 안으로 처음엔 앞다리만 넣자고 하다가 나중엔 네 다리 다 넣고 끝내는 주인을 아예 천막 밖으로 내쫓은 말(馬)의 우화가 꼭 그랬다. 처음엔 저들은 자신들은 반미는 아니고 그냥 ‘비미(미국 비판)’라고만 했다. 그 다음엔 “반미면 어떠냐?”며 반쯤 시인했다. 그러더니 이젠 “그래 우리 100% 반미다, 어쩔래?”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 나라는 스스로 지킬 줄을 모른 채 적(敵)을 한 발 한 발 불러들이고 키워주었다. 일부 강남좌파는 그 자해(自害)의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는 그것을 파괴하려는 입장까지 포용하는 것”이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걸었다. 세계 어떤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도 적(敵)의 국가파괴 기도를 마냥 방치하진 않는다.   6. 25 남침 때 한-미 동맹으로 살아남고, 북한 핵 공갈 앞에서 그것을 안보의 지렛대로 삼는 대한민국에서 김정은보다 미국을 적으로 친다? 이보시오, 김정은 편 아닌 대한민국 편 있으시면 들어보시오. 이 기막힌 상황 또한 그냥 무덤덤하게 넘겨야 하겠소이까?  대한민국은 이미 두 동강 났다. 한반도가 두 동강 나더니 남한 지역마저 또 두 동강 났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이제 한반도의 3분의 1 밖엔 차지하지 못한 꼴이다. 광화문 광장이 근본주의적-이데올로기적 반미세력의 놀이터가 되기 시작했다. 지방정부들의 연방국가로 가자는 개헌안이 만약 통과되면 기존의 대한민국은 경순왕 때의 신라처럼 3분의 1보다 더 작게 쪼그라들 것이고, 결국은 뻔할 뻔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이건 다 말하는 사람의 입만 아픈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니 말을 더 이상 해 뭘 하나?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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