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보수진영이 철저히 망하자 이제는 보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자유한국당도 혁신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보수란 어떤 것인가?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일부는 보수가 보수를 벗어나 중도 쪽으로 좌(左)클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시킨 세력은 사실은 처음부터 보수인 적이 없었다. 늘 진보적이고 변혁적이었다. 공산주의-좌파 민족주의와 대립하다 보니 우파로 자리매김 당했고, 그렇게 되다보니 보수라고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으로선 보수라고 낙인찍히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한국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원류(源流)를 조선왕조 말기의 문명개화 운동에 둘 경우 그 선각자들에겐 당시의 조선왕조 또는 조선사회는 변혁의 대상, 개혁의 대상이지 온존(溫存) 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근대의식은 물론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예컨대 이승만 박사는 조선왕조의 정치 사형수였다. 김구 선생도 동학군 즉 혁명가였다. 그들은 시체 말로 하면 당시의 변혁운동권 즉 진보였던 셈이다. 일제 치하에서도 그들은 반일(反日) 혁명가 즉 진보 인물들이었지, 보수 인사가 아니었다.  1948년의 대한민국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인권-공화-개인-개방-시장 원리에 기초한 근대적 국민국가의 본격 탄생이었다. 이건 보수가 아니라 진보다. 왕조국가-봉건사회-유교 원리주의-중화주의-쇄국주의-사농공상(士農工商)-신분제-양반지주 지배를 타파하고 서양이 선도한 근대국민국로 나아갔다는 것은 ‘진보적’을 넘어 엄청난 혁명적 사태였다. 게다가 그 직후엔 이승만 대통령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있었다. 이것도 대단한 사회혁명이었다.  1960년대~1980년대의 산업화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천지개벽 같은 변혁이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은 시종 모더니티(modernity, 근대성) 혁명의 길을 따라 끊임없이 ‘진보’를 이룩해 온 비(非)보수 혁신세력이었다.  이에 비한다면 대한민국적 근대화를 서구에 종속되는 '식민지 근대화'라고 배척한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주체사상 파는 겉으로는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콘텐츠에 있어서는 근대화-산업화-개방-자유시장에 반대한 수구꼴통이었다. 현대판 척사위정(斥邪衛正) 파였던 셈이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엔 한국의 ‘식민지 반봉건사회’가 망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막상 망가진 건 북한 ‘주체’ 체제였고, 대한민국은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했다.  근대화라고 해서 물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인간 소외(疏外), 양극화,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 타락한 이성의 산물인 좌-우 극단의 전체주의 같은 비극이 파생되었다. 이래서 오늘날엔 이런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성찰적 철학, 사회과학, 정책학들이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북한 김씨 일족의 천황제 파시즘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변혁노선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맞다. 그들이 걸은 길은 수구나 보수라기보다는 변혁적이고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며 끊임없는 변신의 길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진영은 자부심을 가지고 천명해야한다. 우리는 참 진보세력이라고.    오늘의 한국 자유민주 진영의 재기 노력은 바로 이런 진보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재발견과 긍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세력은 밀리고 쫓기고 몰리고 추궁당할 과거의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박차고, 구(舊)를 깨고, 혁신하고, 변동하고, 창출하고, 성취한 미래의 선취(先取)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자임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의 국면에서 한국 자유-민주-공화 진영은 왜 이렇게 참담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는가? 지도층이 공부를 하지 않았고, 나태했고, 이상과 기상(氣像)을 잃었고, 후대를 양상-교육하지 않았으며, 문약(文弱)에 빠졌고, 위기의식이 없었고, 주적(主敵)을 망각했고, 그에 대한 투철한 투쟁의식을 상실했고, 시류(時流)에 영합하고 비겁했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타락과 더불어 대중사회(mass society)도 함께 타락해 갔다.    따라서 대한민국 자유-민주-공화 진영 재활의 길은 선배 세대가 대한민국 네이션 빌딩 과정에서 보인 탁월한 방향선택과 변혁적-진취적 발상 자체는 계승하면서 그것을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좌파보다 앞서(그러나 좌파보다 현명하게) 재조정하는 작업과 함께, 우리가 그 동안 방기했던 시퍼런 윤리적-정신적-미학적 기상과 서슬을 갖추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한반도의 싸움은 정태(靜態)적이고 전(前)근대적이고 수구적인 전통사회를 마치 ‘민족적’인 양 설정하는 쇄국적 반(反)근대문명 세력에 대한, 대한민국적 근대문명 세력의 투쟁이다. 이 투쟁이 오늘의 담당세대가 잘못한 탓으로 궤도에서 탈선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과오를 반성하고 다시 본 궤도에 올라타야 한다. 그리하여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문명개화를 향한 100년래의 변혁투쟁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 이런 화두만 서면 그 다음부터는 실마리가 하나하나 풀릴지 않을까?

문갑식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7월 12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출석해 어머니 최순실과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 냈다. 불출석 사유서까지 내 재판에 안 나올 것으로 보였던 정유라가 작심한 듯 재판 당일 특검(特檢)이 제공한 차를 타고 증언대에 선 것이다.    정유라가 이 부회장 재판에서 한 증언의 요지는 두 가지다. ▲명마(名馬) ‘살시도’의 이름을 바꾼 것은 “삼성에서 지원한 것이 드러나면 안 된다”고 엄마가 지시했기 때문이며 ▲어머니 최순실이 박상진 삼성전자 전 사장 등과 만나 자신이 타던 말을 다른 말과 바꾸는 문제도 얘기했다는 말을 승마코치로부터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유라의 증언은 말 이름을 바꿨다거나 정유라가 타던 말을 다른 말로 교환하는 ‘말 세탁’이 없었다는 삼성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딸로부터 ‘배신’당한 최순실은 조카 장시호로부터 배신당한 데 이어 연타(連打)를 맞게 됐다. 정유라가 ‘살모사(殺母蛇)’ 같다는 말도 나왔다.    딸에게 뒤통수를 강타당한 최순실은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딸의 전날 법정 증언에 대해 묻는 등 관심을 보였으며 “딸에게 연락해서 정말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계속 하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중(意中)을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최순실은 “변호인들이 그 아이의 변호를 그만둔다면 딸이 국선변호사를 써서라도 알아서 자기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변호인들에게 말했다고도 한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올바른 선비의 길(道)을 이르는 것인데 ‘수신제가’의 반대말이 궁금해 논어등반학교 이한우 교장에게 물어보니 ‘패가망신(敗家亡身)’ 아니겠느냐는 답이 왔다. 그래서 다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반대말은 ‘망신패가멸국혼천하(亡身敗家滅國混天下)’ 쯤 되지 않느냐고 묻자 ‘정확히 그대로’라는 답이 온 것이다.    작년 10월부터 《월간조선》은 최태민·최순실·정유라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여러 문헌과 검찰 및 특검 신문조서, 공판기록 등을 꾸준히 보도해 왔다. 그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국정농단 사건’의 골격은 이런 것이다.    최순실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인성(人性)도 그다지 바르지 못한 자기 딸 정유라를 어떻게든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승마를 시켰고 온갖 ‘백’을 동원해 정유라를 국가대표로 만들어 아시안게임에 출전시켜 메달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정유라보다 실력이 낫거나 딸의 ‘신분 세탁’에 문제가 되는 인물은 온갖 갑질을 해서 생매장시켰다.    이렇게 해서 획득한 메달을 들고 이화여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켰으며 그 과정에서도 대학 관계자들에게 특혜와 압력을 동시에 구사했다. 최순실은 딸을 일단 명문여대에 입학시킨 뒤 딸이 평생 먹고살 수 있도록 스포츠기획사를 차려주려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정유라가 덜컥 임신을 한 것이다. 최순실은 이제 급해졌다.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딸’이었기에 제주도로 사람을 딸려보내 아이를 낳게 하고 독일로 보내 다시 승마를 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정유라는 승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최순실은 거의 단말마(斷末魔)처럼 ‘최후의 한탕’을 노렸다. 여러 재벌기업으로부터 강취한 돈으로 K스포츠재단을 설립했고 자기 딸에게는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 비슷한 것을 차려주려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백’을 믿고 한 것이다. 하지만 ‘갑질의 대명사’ 최순실은 그런 거친 행동을 하면서 고영태·노승일 등 수족(手足)들이 흑심(黑心) 혹은 배신(背信)을 기획하고 있는 걸 몰랐다.    반면 삼성그룹의 경영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말(言)이라면 꼼짝 못하는 것을 알고 최순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최순실이 홀딱 넘어갈 만한 최대 약점인 말(馬)로 접근했다. 이런 사실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미리 보고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승마계에 유명한 격언이 있다. ‘말(馬)이 있는 곳에 말(言)이 많다’는 것인데 작년부터 국민들은 그 격언의 실증을 목도하고 있다. 한 욕심 많고 인성 나쁜 중년 여인과 그 못된 딸의 패가(敗家)가 결국 자유경제체제의 세 축을 뒤흔들고 있다. 보수당의 위기와 대표적인 기업에 망신 주기, 그리고 보수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으니 이 어찌 ‘망신패가멸국혼천하(亡身敗家滅國混天下)’가 아니겠는가.⊙

류근일

중국은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1당 독재 국가다. 공산당 이외의 정치결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들은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한계 안에서 놀게 둔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래서 중국의 어떤 체제내(內) 학자나 오피니언 리더가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노선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할 때 그것을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별 의미가 없다는 게 필자의 시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런 이견(異見)들은 일종의 면허증 가진 사람들의 ‘가두리 안 특례' 같은 것일 뿐, 자유세계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이견은 어제 숨진 류샤오보 같은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들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고, 체제 내 저명 학자나 관변인사들이 던지는 ’다른 의견‘은 공산당의 통제와 조정(調整) 하에서 행해지는 ’내부토론의 한 포말(泡沫)‘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난징대학 교수 주펑(Zhu Feng)이 미국 계간지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기고한 글(북한에 대한 중국의 책임-워싱턴은 어떻게 베이징이 평양의 고삐를 죄게(rein) 할 것인가?)에서 “중국의 장기적 이익과 국제사회의 이익을 합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을 선택하는 것 뿐”이라고 주장한 것은 현재로서는 하나의 비주류적인 개인의견으로 띄우는 것이 인가(認可)된 사례일 뿐, 그것이 중국 공산당의 주류담론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주펑 교수의 주장 자체는 물론 옳다. 중국이 비록 공산당 국가라고는 하지만 시장경제를 활용할 줄 아는 실용주의 노선의 강대국인 한에는 한반도의 유의미한 문명국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판단쯤은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할 것이고, 중국 지도부가 정상적인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정상적인 인간들이라면 문명국과 야만국 중 어느 편과 친해야 할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일이라 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완충지대이자 서구적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역(防役) 지대로서 북한의 존속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북한이 아무리 악마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그 서방동맹국이 압록강 건너편에 나타나는 악몽보다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이건 시진핑 유(類)의 ‘공산주의적 중화제국주의’ 보수파의 전형적인 이데올리기이자 안보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펑 같은 소수파의 희망론 같은 것에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다만 주펑 같은 이견은, 현재의 중화제국주의 권력자들의 도덕적 결함이 그들 진영 내부의 다른 견해에 의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란 정도의 의미는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같은 반(反)인륜 범죄자를 비호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부도덕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자초하고 있다. 강대국일록 그 힘에 해당하는 만큼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강대국의 패권을 추구하다라도 정당성의 명분을 갖춰야 한다. 제아무리 국가이익이라 하더라도 김정은 같은 악마를 비호하고 편들어 준다는 것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결코 장기적인 이익이 될 수 없다.    오늘의 공산당 중화제국에 필요한 것은 문명성이다. 공산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돼 있는 패권국가에 문명성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지 몰라도, 중국은 그래도 2천 년 전에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배출한 문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여지없이 말살하려 했지만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은 그 야만적인 광풍을 씻어내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후진타오-시진핑의 공산 중화주의는 왕년의 중원 패권주의를 부활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시진핑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가 자기네 일부였다고 말한 것부터가 중국의 그런 오만과 무례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의 신판 존명사대(尊明事大)의 친중파다. 이들은 왕년의 위정척사(爲正斥 邪) 파처럼 서구가 선도한 근대문명을 배척하고 중국을 사모하며 반(反)서구주의의 쇼비니즘에 갇혀 그것이 마치 ‘자주’이고 ‘민족적’이라는 양 억지를 부린다. 오늘의 반미-친중(反美-親中)론자들은 일종의 현대판 존명사대 파인 셈이다. 이들은 그러나 중화패권주의가 지난 수 천 년 동안 한반도에 대해 얼마나 큰 재앙의 원천이었는지를 알지 못하거나 모른 체 한다.  중국은 한반도엔 침략과 약탈의 원흉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그들은 왜군 못지않게 횡포를 부렸고, 전쟁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일각에선 한반도를 일본과 분할지배 하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일제 36년’에 대해서만 절치부심할 게 아니라, 중원제국주의의 횡포 2천 년에 대해서도 한반도인(人)들은 똑같은 한(恨)을 품어 마땅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더도 덜도 아니게 스트레스 주는 이웃으로 있었다. 이 둘의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선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동맹을 맺고 가까운 나라와 겨룬다)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먼 나라가 다름 아닌 태평양 넘어 있는 자유-민주 국가 미국일 수 있다. 미국은 영토적 야심이 없고, 우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다. 한-미 동맹이 있는 한 중국도 일본도 우리를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 한-미 동맹을 ‘노예계약’이라고까지 비방하는 극렬한 현상이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한-미 동맹을 벗어나 중국과 살자는 주장도 있다. 중국 외교관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국내 정당정치의 틈바구니에 쐐기를 박으려는 현상 하나만 보아도 중국이란 나라가 한반도를 자기들 무엇쯤으로 여기는지 생생히 드러난다. 이런 중국과 왕년의 조공질서를 다시 복원하자고? 한국 정치인들은 이제 제정신 차려야 한다. 중국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과 기대에서 깨어나야 한다. 중국은 전체주의 1당 독재 국가다.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박약한 체제라는 뜻이다. 티베트인들의 민족적 자존에 대해 중화제국주의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가?  중국 인권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고(故) 류샤오보의 명복을 빌며, 한국 조야(朝野)의 대중(對中) 인식의 명료화를 촉구해 마지않는다.

유슬기

국민의당에 입당할 당시 이언주 의원_뉴시스 이언주 의원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91학번. 외교관을 꿈꾸던 그는 외무고시보다는 사법고시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충정, 지평지성 등의 대형로펌에서 근무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상임이사, 한국사내변호사회 감사 등을 거쳤다. 르노삼성의 법무팀장을 지냈고, 에쓰오일의 최연소 여성 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전략공천으로 정치계에 입문   2012년 민주당의 당대표였던 한명숙 전 총리는 여성의원 발탁차원으로 이언주 당시 변호사를 전략공천한다. 30대 젊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대 총선에서 경기 광명에서 광명시장,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의 전재희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이 됐다. 20대 총선에는 재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대선 후보가 지지율 선두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던 지난 4월 6일 이언주 의원은 ‘민주당에서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며 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친정에 온 것 같다’던 이언주 의원은 이후 국민의당의 핵심 인사가 됐다. 때문에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당을 대표하는 발언으로 무게감을 갖게 됐다. 그만큼 논란도 많았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첫 인사였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하자가 많은 물건”이라고 비유하면서 빈축을 샀다. 이후 불특정 다수의 문자 폭탄이 이어지자 “일을 할 수가 없다”면서 “이는 인민독재를 부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하며, 문자를 보낸 이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치매설’을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을 조사하는 건에 대하여는 “유포자 조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과거가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문자는 조사하고 인터넷 글은 조사하면 안 된다는 뜻이냐’며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기자 앞에서 한 발언, 사적 대화인가   이후 외교부 장관으로 거론된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서는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하는 것이 낫다”는 논평을 내놓아 보는 이들을 조금은 놀라게 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지금은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국방 안보에 대한 식견이 있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이 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강 후보자는 개인적으로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외교부 장관을 임명하면 상황을 수습할 수 없다. 지금은 유니세프 대사 같은 '셀러브리티'를 앉혀 멋 부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SBS 뉴스 보도화면_캡처 가장 문제가 된 발언은 최근에 나왔다. 지난 6월 29일 급식 조리 종사원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속수당 인상과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 등을 요구하며 이틀간 파업했다.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들을 두고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칭해 공분을 샀다. 이언주 부대표의 발언을 맨 먼저 보도한 SBS가 지난 10일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솔직히 말해서 조리사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돈 좀 주고 이렇게 하면 되는 것. 그냥 어디 간호조무사보다도 더 못한 그냥 요양사 정도라고 보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발언의 후폭풍은 거셌다. 학교 급식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즉각 항의했다. “쌀이 익는 건지 사람이 익는 건지 모르는 공간에서도 꿋꿋이 최선을 다해 일하는 학교급식 노동자가 있다”면서 “‘헉헉’ 소리가 나는 현장에서도 묵묵히 버티고 일하는 이유를 아시느냐. 학교 급식은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아니면 그런 처우와 조건에서 일할 수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사과 기자회견하는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_뉴시스 또 이들을 ‘간호조무사보다 못한 그냥 요양사’라고 표현한 것도 문제가 됐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여성은 오랜 시간 동안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무급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해왔으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제야 겨우 여성의 돌봄노동을 사회화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의원은 대체 무슨 잣대로 여성의 노동을 어떤 것이 더 비숙련 노동인지, 어떤 노동이 더 낮은 일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등수를 매기는가”라고 비판했다. 한국간호학원협회 역시 “(이언주 부대표의 발언은) 20여만 명의 간호조무사들의 사기를 저하함은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4만여명의 간호학원생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줬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살기 힘든 서민과 약자에게 희망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나라   이언주 부대표는 10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사적인 대화에서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식인터뷰가 아닌 사적인 대화를 이렇게 여과 없이 당사자 입장을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SBS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도 덧붙였다. 11일에는 간호조무사들에게도 공식사과했다.   눈물 흘리는 학교 비정규직 급식 노동자_뉴시스   2012년 민주당 원내대변인이던 이언주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소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1997년 이른바 'IMF사태'로 몰락한 집안에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고생하시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로 평생을 지내다가 뒤늦게 일할 수 있는 길은 박봉과 임금차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살기 힘든 서민과 약자에게 희망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게 초보정치인의 초심이었다. 이언주 부대표는 초심을 잃은 것일까. 은연중에 본심이 나온 것일까.

이동훈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지난해 1월 대만 총통에 당선됐을 때, 대만 국적의 한 화교(華僑) 지인은 한국의 정권교체를 예견했습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의 일입니다. 대만과 한국의 정권교체 주기가 비슷하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한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후, 대만 민진당은 천수이볜(陳水扁)을 앞세워 대만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천수이볜 총통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임기를 같이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집권한 직후 대만 국민당도 마잉주(馬英九)를 앞세워 정권을 재탈환했습니다. 마잉주 총통은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임기를 같이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 집권하는 주기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예견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그 외에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점과 이념으로 인해 분단돼 있는 점도 비슷합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개발독재를 거치며 압축성장을 이뤄낸 점도 비슷합니다. 1인당 GDP는 한국이 대략 2만7000달러, 대만은 2만4000달러로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까닭에 일본을 경쟁자로 보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한국을 경쟁자로 봅니다. 정책도 유사합니다. 천수이볜 총통은 한국의 쓰레기종량제를 도입하더니, 요즘 문재인 정부는 차이잉원 정부의 ‘비핵(非核)’을 모방해 ‘탈핵(脫核)’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의 대안으로 제시한 ‘2030년 신재생에너지 20%’는 차이잉원 정부의 ‘2025년 신재생에너지 20%’에 비해 시기만 5년 늦을 뿐 방법 면에서 거의 흡사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은 에너지 측면에서 사실상 고립된 섬이란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신재생에너지를 추진하는 환경이 다릅니다. 대만은 겨울철 날씨가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조량이 풍부합니다.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 늘어선 야자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풍부한 일조량을 이용해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떻습니까? 봄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뒤덮여 해를 보기 힘들고 겨울은 영하의 추위에 벌벌 떱니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딱히 바람이 많이 부는 것도 아닙니다.      대만은 여차하면 중국과 해저송전선을 연결해 전력을 사올 수도 있습니다. 해저송전선 연결은 중국도 오매불망 원하는 바입니다. 한국은 전기를 사올 만한 주변국이 없습니다. 북한은 전력부족으로 오히려 우리가 전력을 공급해줘야 하는 대상입니다. 개성공단을 열었을 때 경기도 파주의 문산변전소에서 16.8㎞의 송전선을 연결해 전력을 공급했습니다. 향후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려면 남한의 자체 전력수요보다 더 넉넉한 발전설비를 갖추고 언제든지 북에 전력을 공급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대만과 달리 한국이 처한 냉정한 현실입니다. 지난 7월 5일 전국 대학의 이공계 교수 400여명이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재고(再考)를 촉구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겁니다.

류근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혁신위원장에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지명했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자유민주 진영 전체가 궤멸 상태에 들어가 있는 지금 홍준표-류석춘 팀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자유민주 우파가 왜 이렇게 망했느냐?”는 원인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일이다. 홍준표 대표와 류석춘 위원장은 이 분석에 있어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류석춘 위원장이 ‘보수 폭망’의 원인으로 꼽은 사항들이 누구나 공감하고 있던 바였기 때문이다.  류석춘 위원장은 어느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보수적 가치를 구현해야 할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시급히 완수해야 할 과제는 어설픈 중도실용이나 이념적 좌(左)클릭이 아니라 보수정당 본연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좌익에 대한 열등의식과 콤플렉스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일부 ’맹물 우파‘가 범할 수 있는 패배주의-투항주의-청산주의-해체주의를 적절하게 경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상당수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은 몸은 우파 쪽에 담고 있으면서도 “당신 보수 우파지?” 하고 물으면 펄쩍 뛰면서 “내가 보수? 천만에, 나도 나름대로 진보다”라고 진땀 흘리며 변명하곤 한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 보수화 되고 출세파가 됐으면서도 마음속 일각은 아직도 학생 때의 유행적 좌파 풍조에 계속 주눅이 들어 있는, 일종의 심약한 대세 추종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겐 “내가 왜 운동권 정당 아닌 보수우파 정당에 들어와 있느냐?”의 그 절실한 이유가 없다. 그냥 출세 길 달리다 보니 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당에 와있는 것뿐이다. 출세는 이회창-박근혜 인맥 타고 했으면서도, 마이크 잡고 연단에 올라서면 혀끝으론 중도좌파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게 그들 위선적 사이비 우파다.  이 따위 허망한 친구들 가지고는 자유한국당은 골백번 옷을 갈아입어도 절대로 자유의 전사(戰士)집단다운 정당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은 수 십 년 동안 죽음을 각오하고 감옥을 들락거린 싸움꾼들이다. 이런 투사들을 맹물 출세주의 오합지졸들이 무슨 수로 싸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홍준표 대표와 류석춘 위원장이 진실로 무얼 한 번 해보겠다면 당을 완전히 전투 집단으로 환골탈태 하겠다는 의지로 덤벼야 한다. 지금의 원내당원들은 차기 공천에서 거의 반 이상을 물갈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만큼 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바른정당 등은 일종의 대기업 같은 직장에 불과했다. 그런 심장도 머리도 없는 ‘날탕’들을 믿고 표를 줬으니 망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 게 망하지 않으면 누가 망하는가?    자유민주 세력이 가야 할 길은 앞으로 순교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를 고난의 길이다. 이 길은 출세의 길이 아니라 독배를 드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고난을 각오한 자들만 남아라. 그들 ‘정병(精兵) 5천’으로 마지막 기사회생을 도모하는 게 오늘의 자유민주 세력의 소임이다. 홍준표 대표와 류석춘 위원장이 이 시대적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비장한 결전을 준비할 것을 당부한다. 보수 우파는 망했다. 그렇다. “망했다”는 상황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조갑제

▲ 2017년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 조선DB   정부의 신고리 원전(原電)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방침에 대해 삼성물산·두산중공업 등 공사업체들이 '법적인 근거가 뭐냐'며 반발하고 있고 법조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오늘 조선일보가 보도하였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노동조합은 이에 앞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 결정에 참여한 이사진과 정부 관계자 전체를 배임 행위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현행 원자력안전법과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허가 절차나 기준 또는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만 원전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고 한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조선일보에 '법적으로 안전 또는 절차상 문제가 없는 한 원전 건설을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광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진행하던 국책 사업을 중단한 적이 없어 판례도 없다'면서 '실제 공사를 중단하면 손해배상 등 관련 소송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법 4조를 보면 에너지 공급자는 국가 시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면서 '한수원은 공기업이라 정부 시책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규정이 아니다. 법을 어긴 국가 시책엔 협력할 의무가 없다고 봐야 한다.   과학적, 법률적 검토 없이 대통령이 선언한 원전 백지화와 이를 더 악화시킨 공사중단 조치는 이제 대통령의 직권남용 시비를 부를 것 같다. 국가의 안전과 진로, 그리고 경제의 흥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원전 중단을 대통령이 아무런 법적, 기술적 검토 없이 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제왕적 대통령이다. 법률 위반 행위를 강행하면 탄핵감이 된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수원(韓水原)도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관련 절차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9일 '처음 겪는 일이라 이사들이 이런 결정을 그냥 내렸다가 나중에 (배임 등) 책임질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와 일단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이사회를 마쳤다'고 전했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 백지화를 결정함에 있어서 과학도 무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법을 잘 안다는 변호사 출신이 이러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 기념사(2017-06-19)*原文: 낮은 가격과 효율성을 추구했습니다.값싼 발전단가를 최고로 여겼고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습니다.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고려도 경시되었습니다.> *교정: 한국의 原電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가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방사능 유출 및 피폭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原電 사고로 인한 人命 피해가 1명도 없었다는 것 이상의 안전성 증명이 어디 있나?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니? 기술 불모지(不毛地)에서 눈물겨운 고투(苦鬪)로 오늘의 원자력 발전 산업을 이룩한 애국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폭언(暴言)이다. 환경단체 대표도 할 이야기가 아니다.   *원문: 진도 5.8, 1978년 기상청 관측 시작 이후,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한 지진이었습니다.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스물 세 분이 다쳤고총 11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교정: '경주대지진'이란 말은 과장이다. '대지진'이란 말은 보통 수만, 수십만 명이 죽는 지진에 붙는다. 동경대지진, 당산대지진 등. 한 사람도 안 죽은 지진을 이렇게 과장하면 외국인들이 경주를 찾을까?   *원문: 그러나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고,피해복구에 총 2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사고 이후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교정: 사실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노심(爐心) 멜트다운 사고로 죽은 사람은 없다. 방사능이 바깥으로 漏出(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68명은 아마도 소개된 주민들 중에서 발생한 일반적 사망자로 보이는데 이 또한 출처가 불명확하다. 일본 정부가 근거가 없다고 항의하였다. 는 헬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인데 확인된 사망자는 한 사람도 없다.   *원문: 부산 248만 명, 울산 103만 명, 경남 29만 명 등 총 38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월성 원전도 130만 명으로 2위에 올라 있습니다.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30Km 안 인구는 17만 명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무려 22배가 넘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습니다.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지만 혹시라도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상상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교정: 선동적인 환경운동가도 하기 힘든 비교이다. 안전한 고리원전과 사고를 낸 후쿠시마 원전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조국에 불리하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사고를 예상하여 한국에 불리한 비유법으로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은 국익 자해(自害) 행위이다.

조갑제

백령도를 공격한 다음 핵카드를 꺼낸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온 이유에 대하여 자유진영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체제를 보장해주면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 6자 회담, 햇볕정책, 일방적 대북(對北) 지원을 해 보았지만 실패하였다. 북한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핵무장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핵무기로 남한을 공산화, 한반도를 통일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목표가 북한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소위 전문가들은 편리한 대로 해석하였다.   경제력이 거의 50배나 되는 한국이 인접하고 있는 한 북한은 장기적으론 체제 유지를 할 수 없다. 남북한 체제 대결의 본질은 이므로 한반도에서 정통성 있는 국가는 하나여야 한다. 소위 수령 지도 체제의 영속적 유지를 위하여는 한국을 종속화시키거나 공산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현상타파를 결심한다. 지금부터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   그는 백령도에 대한 포격을 명령한다. 군인 및 민간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한다. 한국군은 여러 차례 공언한대로 원점 타격으로 보복에 나선다. 공군 전투기 수십 대가 출격, 백령도 포격을 명령한 군단 사령부와 포대를 공격, 파괴한다. 이번엔 북한 쪽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다음 날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중대 발표를 한다. 요지는, “00월 00일까지, 우리를 공격한 한국군의 책임자들(국방장관, 합참의장, 공군참모총장을 특정)을 처벌하고, 손해를 배상하며, 백령도를 넘겨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의 한 도시에 대하여 핵무기를 쓰겠다”는 최후통첩이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긴급 전화 회담을 갖고 대책을 의논, 미국이 한국에 약속해온 핵우산 정책, 즉 확장된 억지 전략을 적용하기로 하였다고 공동 발표한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한반도로 전개된다. 중국은 이에 대응, 해군에 동원령을 내린다. 북한은 만약 미국이 공격해오면 미국의 서부지역을 핵공격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핵전쟁 반대운동이 일어난다. 대규모 시위대가 평화를 외치면서 서울 시내를 점거하고,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방어적 대응을 비판한다. 많은 국민들도 “일단 핵전쟁은 막아야 한다”면서 한미(韓美)의 강경대응에 반대한다. 갤럽 여론조사에선 70% 이상이 '평화를 위하여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서울을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수 있나?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한국군의 원점 타격이 과잉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주장하는 의견은 목소리가 약하다.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던 미국에서도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서울을 지키기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순 없다”는 여론이 일어난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이나 잠수함 탑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核공격할 때 이를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은 8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인의 안전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대세(大勢)를 이룬다.   미군 기지가 있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일본에서도 “제2의 히로시마를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대북(對北)응징 방침을 비난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난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이 6자 회담을 제의한다. 핵전쟁을 막기 위하여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담판을 짓자는 것이다. 중국은 회담을 제의하면서 중북(中北) 접경 남쪽 50km까지를 '비행 및 무력사용 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는 발표를 한다. 이는 미국의 공격을 피해 북한이 핵심 시설을 옮기려 할 때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5개국은 회담 제안을 수락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을 먼저 이행하라'고 한국을 압박한다. 며칠 뒤 북한 해역(海域)에 있는 무인도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 북한이 잠수함에서 소형 핵폭탄을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고각도로 발사, 낙하시키는 실험을 한 것이다. 폭발력은 히로시마 급으로 추정되었다. 한국이 가진 허술한 방어망으론 이런 고각도 비행 미사일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미국 특사, 김정은에게 평화협정 제의   서울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국제공항은 몰려 든 출국자들로 마비될 지경이다. 核민방위 훈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정부는 뒤늦게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 수 있는 방법”을 홍보하지만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공무원들과 회사원들의 결근 사태로 국가기관과 기업의 일상 업무는 중단된다. 예금 인출 사태로 은행도 흔들린다. 사병 가족들이 연일 국방부와 합참 앞으로 몰려 가서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인다. 드디어 “이런 위기를 부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구속 수사하라”는 주장이 심각하게 등장한다. 그럴수록 미국의 반한(反韓) 여론이 증폭된다.     미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한국 정부 몰래 북한에 밀사로 보낸다. 김정은을 만난 밀사는 “6자 회담에 나오라. 미북(美北) 담판도 동시에 진행하자”는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정은은 강하게 나온다.     “우리는 핵무기를 쓸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국이 공격하면 우리도 미국 본토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국방장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핵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미국이 우리를 겨냥한 적대(敵對) 정책을 포기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고 약속하면 회담에 나가겠습니다. 이 약속은 공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는 데는 2000년 6월 김정일-김대중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진 바가 있습니다.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는 한편 두 나라가 수교합시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대북(對北) 밀사는 워싱턴으로 돌아와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 긴급 회의에서 CIA 부장은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 자료와 2007년 10월의 노무현-김정일 회담록을 찾아내 읽어본 결과를 보고한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 변경, 사실상 한미(韓美)동맹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밀약(密約)을 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보고된다. 대통령 등 지도부가 격분한다.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을 특사 자격으로 한국에 보낸다.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을 만난 미국 부통령은 10쪽짜리 메모를 펴놓고는 작심한 듯 발언을 시작하였다. 상원의원 출신인 부통령은 외교관처럼 말을 둘러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발언록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한미동맹관계를 전면 재검토한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하여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 계획을 검토하였습니다. 검토 단계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반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울이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의 타격을 받게 되니 북폭(北爆) 계획을 포기하라고 우리를 압박하였습니다. 그때 북한을 때렸더라면 핵문제는 해결되었고 아마도 북한정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해공군력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데는 많아야 수십 명 정도의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포격하더라도 한 시간만 견디면 노출된 적의 포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유감이지만 그 뒤에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9·11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정, 압박할 때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요? 김정일과 만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제공하였는데 우리 정보기관의 판단으론 그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회담하면서 주한미군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격하(格下)시켜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로 밀약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러나 평양 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양해하였다. 이게 가장 큰 성과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김정일이 양해한 주한미군은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 평화유지군이지요. 그런 군대를 왜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키나요? 이 밀약은 사실상 한미동맹 해체 음모였다고 봅니다. 각하도 대화록을 읽어보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핵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북한의 입장에 서서 미국과 싸워왔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한 달 뒤 청와대를 예방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씨는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게이츠 장관이 회고록에서 ‘그는 약간 돈 사람이다’는 평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한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부통령의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에 놀란다. '미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일단 화가 나면 무섭다'는 말이 생각 났다. 수십년 간 쌓아두었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하였다.         이 사태의 핵심은 건강문제가 아니라 반미(反美)선동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위험한 물질로 선동하는 데 가담한 한국의 언론, 정치,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한국인의 분별력에 우리는 놀랐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당시의 미국 정부는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내심으론 한국군이 확실한 응징으로 북한정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길 바랐습니다. 북한군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 민간인까지 죽인 그날 한국군이 공군기를 출격시키고도 폭격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주한미군 측 보고에 따르면 합참에 근무하는 한국군의 한 장교가 ‘폭격을 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였다가 상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하였다고 하더군요. 미국은 전통적으로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요청으로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연기하였습니다. 李 대통령은 실용적인 사람이라 오바마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고 일본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임기 말에 왜 한일(韓日) 관계를 그렇게 관리하였는가입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데 꼭 필요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을 직전에 취소한 뒤에 독도를 방문하고 그 직후 천황 폄하 발언을 한 것이 일본의 우파에 의하여 역이용되어 결과적으로 아베 정권의 등장을 돕지 않았습니까?     이 반일(反日)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이어받아 우리가 놀랄 정도로 친중화(親中化) 하니 한미일(韓美日) 삼각 동맹 관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5년 중국의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박 대통령이 자유 진영 지도자로선 유일하게 참석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2016년 초 북한이 네 번째 핵실험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친중반일 노선에서 탈피, 사드 배치를 결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사드 배치 비판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 보고 경악.'   여기까지 말한 미국 부통령은 메모를 옆에 내려놓고는 한국 대통령을 정시(正視)하면서 “각하,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말씀해보시죠?”라고 하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데 왜 한국에선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국 대통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국이 반대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비아냥조의 미소를 띠면서 입을 뗐다.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를 다른 나라에 물어보고 결정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도 미국의 허가를 받고 핵무장을 한 것은 아니죠. 미국 지도부는 속으로는 한국 정부가 핵무장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인도 같은 친미(親美) 민주 국가의 핵무장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막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 카드를 꺼내면 미국은 그것으로 중국을 압박, 북한의 핵개발을 좌절시키는 데 이용하려고 했는데 유감이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부통령은 다시 서류를 들고 설명을 재개(再開)하였다.      사드 배치는 적의 핵미사일을 막겠다는 것이고, 더구나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自國) 부담으로 하겠다는데 이를 막고 나서는 세력이 그토록 강하고 더구나 여당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국방장관을 시위대가 감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은 과연 동맹국인가, 미국이 지켜줄 가치가 있는가 라는 회의(懷疑)가 지도부에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싫어하니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는 한국이 결국은 과거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전통으로 돌아가고 말겠구나 하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늘어 갔습니다. 미국은 군사무기 배치는 비밀로 하는데 한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데도 놀랐습니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그 뒤에도 악영향을 끼쳐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조속히 완성하는 데 실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군은 친북, 친중 여론을 의식하여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과 연결시키지 않는 독자적인 방어망을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좌파가 지배하는 국회가 예산을 거부, 잘 아시다시피 지금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습니다. 한때 미국 정부는 한국의 보수층에서 요구하는 대로 1990년대 초에 철수해간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이를 한미연합사의 관리하에 두어 한국이 사실상 공동사용권을 갖는 방안까지 검토한 적이 있으나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드 배치 비판 경력을 가진 각하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는 포기하였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 순간 한국 대통령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통령이 된 뒤 현실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동맹 강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부통령은 “너무 솔직하게 말씀 드린 점 용서해주십시오. 오늘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진실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 미국의 정보가 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2003년 이라크 공격 때도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오판(誤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CIA의 북핵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면, 즉 북한이 우리의 공격을 받고도 한 두 개의 핵폭탄을 보존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았습니다만 문제는 핵폭탄이란 점이었습니다. 각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한국과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있는 한 미국 단독의 북한 공격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서울을 두고는 미군이 아무리 압도적 전력(戰力)이 있어도 예방공격은 불가능합니다.     이때 한미 양국(兩國)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6년 사드 반대 사태로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완비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 우리의 손발을 묶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사드를 비롯하여 PAC-3, SM-3 등 다층적 방어망을 건설하고 이를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와 연결시켜 두었더라면 설사 북한이 얻어맞은 뒤 남은 핵폭탄으로 보복을 가해와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방어망이 허술한 상태에서도 과연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로 두 나라 지도부가 고민한 사실은 각하가 잘 아시는 바입니다. 각하가 예방 공격에 가장 적극적이셨지만 이 계획이 한국 언론에 유출되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반전(反戰)시위가 일어나고 북한이 핵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가운데 한국 국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군사 조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니 미국도 군사적 해결방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각하, 그게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박승준

▲ 미국 방문 첫날인 지난 6월 28일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photo 연합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방미 첫날인 6월 28일(현지시각) 콴티코 미 해병대국립박물관 앞 공원에 지난 5월 4일 설치된 장진호전투 기념비에 헌화한 후 기념 연설을 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메러디스빅토리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별칭이 윈터 킹(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따르면, 장진호는 개마고원 위를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가는 장진강 중류를 막아 건설된 인공호수로 1934년 일제가 완공했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소속 제1해병사단이 서부전선 제8군단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규모의 병력이 형성한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전개한 철수작전이다.      그해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군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제8군은 서해안을 따라, 그리고 제10군과 한국군 제1군은 동해안을 따라 함흥으로 올라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제10군과 한국군 제1군은 장진강을 따라 압록강으로 진출해서 제8군과 합류한다는 계획이었다. 미군 제10군과 한국군 제1군의 진로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 10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개마고원 일대에 산개해 있다가 장진호 부근에 집결한 중국군 제9병단 소속 7개 사단 규모 병력이었다.      베트남전쟁을 취재해서 퓰리처상(賞)을 탄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 2007년에 출판한 ‘가장 추웠던 겨울: 미국과 한국전쟁(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에 따르면, 장진호전투에서 화력장비가 월등한 미군이 중국군에 패배한 원인은 사상 유례없이 영하 40도 부근으로 떨어진 혹독한 추위였다. 일반적으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진호 부근에는 그해 혹한이 밀어닥쳤다. 혹한은 미군 탱크와 대포들의 윤활유를 얼어붙게 해 곳곳에서 멈추어 섰고, 결국 소총을 기본으로 한 중국군과 같은 조건이 되고 말았다.       핼버스탬의 ‘가장 추웠던 겨울’은 참전 미군들의 인터뷰를 통해 1950년 여름에서 1951년 봄에 이르는 기간 중의 한국전쟁을 그리고 있다. 책의 앞뒤 표지는 미 해병대 1사단을 따라 장진호전투에 종군했던 사진작가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David Douglas Duncan)이 찍은 사진이 장식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도 장진호전투 당시의 추위를 기록해놓았다. “쑹스룬(宋時輪) 중장이 지휘하는 중국 인민지원군 제9병단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 동북지방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장진호 부근에서 알몬드 소장이 지휘하는 미군 제10군과 만나 17일간의 엄한(嚴寒) 기후조건 아래에서 포위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알몬드 소장이 지휘하는 연합군 병력은 6만5000명 정도였고, 중국군 제9병단은 16만명 정도였다. 동상과 보급부족, 그리고 무기의 열세로 미군의 흥남 방향 철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바이두는 미군이 전쟁 후에 발표한 자료들을 취합해서 2주간의 장진호전투에서 미군 측은 사망 2100명, 포로 300명을 포함해서 1만3000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고, 중국군 측은 동사 4000여명을 포함한 전사자 1만1000명에 병력 손실은 5만6000명이었던 것으로 집계했다.      장진호전투의 결과 원산평원 이북의 북한 지역이 중국군에 장악당하게 됐고,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해서 중·북 국경지대로 적을 몰아붙이던 미 10군의 주력이 흥남을 통해 부산으로 빠져나가는 결과가 빚어져서 한국전 전체 전황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바이두는 이 장진호전투에 대해 맥아더 장군은 “전략적 후퇴 작전의 성공”이라고 표현했지만, 1950년 12월 11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군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패배”라고 표현했고, 뉴스위크도 “미국이 진주만 사건 이래 가장 참혹하게 당한 패배”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 측은 당시 압록강을 건너 개마고원으로 산개한 중국군을 ‘인민지원군’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은 대만 수복을 위해 대만해협 건너 푸젠(福建)성에서 대기 중이던 홍군 정예부대였다는 것을 중국인들 가운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의 해군이 일본군에 패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중국이 장진호전투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는 결과를 빚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전투를 자신의 가족사와 관련 지어서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이번 방미를 계기로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역사적 사실을 결코 소홀히 생각하지 않도록, 또 한·미 동맹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외교 흐름을 잘 끌어나가기를 바란다.

우태영

북한이 7월4일 ICBM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미국은 더욱 강력한 조치로 북한의 ICBM 시험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핵 미사일로 타격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도 과연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을까?   ○ 북 김정은에게 이상적인 시나리오-베트남 모델     북한 김정은에게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 미군 철수는 기정사실화 된다. 설사 주한 미군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북한의 핵무기에는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을 하더라도 미국은 한국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미사일이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과 싸우기 위하여 한국을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은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을 통해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한국에 핵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첨단무기나 재래식 무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속수무책이 되는 한국은 북한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이 피땀 흘려 건설한 모든 경제적인 성과물들이 북한 김정은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6백년의 수도 서울,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네이버, KBS...심지어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까지 모두 김정은의 핵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들어간다. 한국의 60만 군대도 핵 위협 앞에서는 멈춰설 수 밖에 없다.   그 다음 한반도를 적화통일한 북한 김정은은 미국을 상대로 중국의 진출을 막아주겠다고 약속한다. 핵 미사일을 모두 중국 북경을 향하여 돌려놓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이는 공산 베트남이 통일된 후에 미국과 협력하여 태평양으로의 중국의 진출을 견제하는 것과 흡사한 경우.   ○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면...   그런데 미국으로서는 한반도를 북한 김정은이 통일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틸러슨 장관도 5일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절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김정은 같은 잔혹한 독재자와의 협력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핵무장이나 한반도의 적화통일은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원자력발전까지 중단하는 등 비핵화를 선언했기 때문에 군(軍)이나 국민이나 핵무장은 별로 상상도 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미국이 북한 김정은의 핵보유를 인정한다면, 일본은 바로 핵무장에 돌입한다. 이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이다. 굳이 아베 총리한테 물어보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북한의 핵 미사일이 미국 뉴욕을 겨냥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이 핵공격을 당하는 일본을 구원하기 위하여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일본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6개월 내에 1천 발의 핵폭탄을 만들어  실전배치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은 핵 무장뿐만 아니라 국가가 총력으로 재무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은 2차대전 초기에 미국보다도 먼저 항공모함을 제작하여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인 하와이를 기습하였다. 일본이 지금의 산업기술력으로 항공모함, 잠수함, 장거리폭격기, 초정밀 장거리 미사일 등을 만들어 핵무기들을 탑재하여 북한은 물론 중국을 겨냥하여 실전배치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중국이 견딜 수 있을까? 핵무장한 일본의 잠수함이나 항공모함 전단이 태평양을 휘젓고 다니는 상황을 미국인들이 견딜 수 있을까? 그러한 상황에서는 미국의 국제적인 패권이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 북한 핵 폐기를 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   결국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의 핵무장을 철폐시키기 위하여 지금 당장 본격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ICBM 발사에 성공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방안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 네가지로 모아진다.   1, 경제적인 제재북한은 이미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제재만으로는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2. 비밀작전전자전,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북한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킨다는 방안이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3. 외교협상미국은 틸러슨 장관이 5일 다시 한번 강조했듯이 북한의 핵보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는 것을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방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지만, 북한 김정은이 이에 응할 리가 없다. 북한의 IOC 위원 장웅이 “천진난만하고, 절망적인”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나? 핵무기탑재 ICBM을 손에 쥔 북한 김정은의 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4.군사작전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 미국-쿠바간의 미사일위기 때처럼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가 시작될 수도 있다. 또 북한 김정은 참수작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작전이 시작된다면 단순히 북한 비핵화가 목표가 아니라, 북한 김정은 정권 붕괴가 최종목표가 될 것이다.   5. 중국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북한의 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중국 단동은행 제재,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전 실시 등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우선 중국에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당장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아직은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은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실제로 원유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은 견뎌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의 산업이나 군사적인 활동은 석유공급이 끊기는 즉시 멈춰서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김정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붕괴 이후 난민의 유입 등을 우려하여 원유공급 등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제재, 대만 재무장,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남중국해에서의 군사력 강화 등으로 통해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 핵 사태는 이제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최후의 국면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파국이든 해피엔딩이든 북한핵사태가 결말이 나는 상황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토록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던 문재인 대통령도 5일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게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미국과 함께 타격 훈련을 실시하도록 지시하였다.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면 야당과 좌파들이 대화로 해결하라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으로서도 이번 북한의 ICBM 발사가 북한 핵문제의 최종해결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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