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는 분명 정치인이 아니라 불장난을 즐기는 불망나니, 깡패임이 틀림없다...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 이 말은 김정은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 성명의 한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하면 “완전히 부숴버리겠다”고 한 것에 대한 멍군인 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부숴버리겠다”고 하고 아베 일본 총리가 미국입장에 전폭 동조하겠다고 하고 김정은이 “불로 다스리겠다”고 하는 판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가 설 자리가 과연 있을까? 남들이 아무리 격렬한 분노를 토로해도 나만은 고고한 가치와 이상을 견지하겠다는 건 물론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가치는 있어도 현실성이 없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국제정치는 ‘레알 폴리티크’ 즉 현실주의적 접근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은 북한이 어떤 존재냐 하는 정확한 인식에 기초해야 헛물을 켜지 않을 수 있다. 현재의 김정은 북한은 분명 남북대화를 우선순위 상 아주 낮게 치고 있다. 수소폭탄-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한 김정은은 남한을 1대1의 대화 상대방으로 치지 않고 제압의 대상으로 치고 있다. 김정일과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때만 해도 북한은 남한을 위장평화공세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북한은 남한을 그 안의 ‘진보’ 정권까지를 포함해 자기들보다 저 하위(下位)에 있는,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백수로 치고 자기들은 미국과만 상대하겠다고 하고 있다. 자기들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때릴 수 있는 핵보유국이란 뜻이다. 이 판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에 와 달라‘ ’800만 달러 주겠다” ‘대화하자“고 한들, 그게 김정은 귓가엔들 들릴까? ”아 남조선이 말랑말랑하게 나오는데“ 하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럴수록 저들은 ”그럼 좀 더 높게 대접해 주지“하기 보다는, 더 기고만장해지고 우쭐해질 수도 있다.   미국-일본은 지금 최고도의 강력한 대북 봉쇄작전에 임하려 하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도 곧 발동될 기세다. 북한의 돈줄을 한껏 죄서 김정은의 내탕금을 텅텅 빌 때까지 몰고 갈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김정은을 간부들로부터도 고립시켜 마침내는 레짐 체인지로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정권교체,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던 미국의 약속은 더 이상 있지 않다. 이젠 김정은에 대한 끝장 제재로 접어든 형국이다. 그런데 이 판에 한국만 ‘대화’?  대북 대화는 청(請)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북한에 대해선 오직 월등한 힘만이 통한다. 대화의 정신과 취지는 좋다. 그러나 세상에는 되는 일이 있고,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제의가 되는 일인지 되지 않는 일('코리아 패싱')인지, 조만간 분명하게 가려질 것이다.

조갑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사실, 헌법, 상식에 반하는 점이 너무 많다.   1.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촛불혁명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헌법위반의 소지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쿠데타이든 혁명이든 선거 이외의 방식에 의한 정권 교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명은 초헌법적 발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이 아닌 대통령 선거로 탄생하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수십만, 수백만의 불빛들, 노래와 춤과 그림이 어우러진 거리 곳곳에서 저마다 자유롭게 발언하고 평등하게 토론하는 사람들, 아이들과 손잡고 집회장을 찾는 부모들의 환한 표정, 집회가 끝난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청년들에게서 느껴지는 긍지, 그 모든 장면들이 바로 민주주의였고, 또 평화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어진 광장이었습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나 자신도 오직 시민의 한 사람으로 그 광장에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실체인 국민주권의 힘을 증명했고, 폭력보다 평화의 힘이 세상을 더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든 정부입니다. 민주적인 선거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국민들의 주인의식, 참여와 열망이 출범시킨 정부라는 뜻입니다. 나는 지금 그 정부를 대표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시작은 늦었지만 세계 민주주의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2. 그의 6·25 남침 전쟁에 대한 언급은 사실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좌파적이다. 그는 북한정권을 침략자로 규정, 유엔군을 보내 한국을 살려주었던 그 유엔에서 한 번도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남침에 의하여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국전을 내전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완상 류의 좌파적 인사의 왜곡이다. 6·25 남침 전쟁은 내전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업고 일으킨 침략전쟁이란 사실이 세계적으로 확정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브루스 커밍스 류의 反역사적, 反국가적, 反사실적 전쟁관을 갖고 있다는 게 놀랍다.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그 전쟁’이라는 말은 김일성의 전쟁범죄 책임을 덮기 위하여 냉전 구조에 책임을 轉嫁한 용서할 수 없는 억지이다.        그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그 전쟁은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64년이 지난 지금에도, 불안정한 정전체제와 동북아의 마지막 냉전 질서로 남아 있습니다.>      3.   이는 헌법위반이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인위적 자유통일을 명령한 것이다.      4.   유엔이 촛불 되면 어떻게 되나? 불타 없어지란 뜻인가? 비유도 분위기를 봐서 해야 할 것 아닌가? 9·11 테러로 폭파된 세계무역회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유엔건물이다.

이춘근

 이 세상 어느 나라도 자신의 힘만으로 국가안보라는 최고의 임무를 달성할 수 없다. 이 같은 국제정치학적 상식은 약소국들은 물론 강대국에도 맞는 말이다. 미국처럼 막강한 나라도 국가안보를 혼자만의 힘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않는다고 말하기보다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미국도 혼자의 힘만으로 국가안보를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 위의 모든 국가는 자신과 국가안보 이익이 일치하는 국가들과 동맹을 맺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안보협력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대한민국은 당연히 외국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안보를 보장 받아야 한다.     특히 주변의 국가들이 모두 우리나라 영토에 대해 이해관계(territorial interest)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은 당연히 더욱 정교한 국제적 안보협력 체계를 만들고 이를 잘 꾸려 가야 할 필요가 있는 나라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와 국가안보 이익이 상호 보완적인 나라인지, 그리고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나라인지에 대해 냉엄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를 적처럼 생각해서도 안 되고 사실상 적국들을 전략적 동반자라고 착각해도 안 된다.      원교근공(遠交近攻)    그렇다면 어떤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국가안보 이익이 같은 나라일까? 우리나라의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은 1차적으로 북한, 2차적으로는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나온다. 일본, 중국, 러시아는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지정학적 속성을 가진 나라다. 결국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한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나라들이다.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북아메리카 대륙이지만 세계의 패권국(覇權國)인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우리나라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 현재(顯在)하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은 우리가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일본과,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는 나라다. 중국은 구조적으로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통일을 결코 허락할 수 없다. 6·25 당시 이미 증명된 바 있지만 중국은 북한을 결코 버릴 수 없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 중 오로지 미국만이 한반도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미국의 대전략은 한국의 통일을 내심 바라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과 한편을 이룰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구조 아래 있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국은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안보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 먼 곳에 있는 미국과 안보협력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정치학의 영원한 진리 중 하나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원리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까운 이웃(중국, 일본)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먼 곳의 친구(미국)를 활용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적 원리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한국에 중요하다. 지난 7월 7일 주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에서 한·미·일 정상 만찬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앞에서 우리나라와 ‘진정한’ 안보협력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 국제정치학 이론과, 1945년 이래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안보구조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전향적(前向的)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우선 현대 국제정치 이론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은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고 가르쳐 준다. 1980년대 중반 이래 국제정치학 최대의 이론으로 자리매김한 민주주의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은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결코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즉 대한민국과 일본은 현재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한 서로 전쟁에 빠져들 가능성이 결코 없는 나라다. 그런 일본을 적대시하고 우리나라 안보를 위한 우군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국가전략이 아니다.    일본을 전향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은 한국과 동맹국인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긴밀한 동맹국이라는 점이다. 민주국가인 일본이 민주국가인 미국과 다시 전쟁에 빠져들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며 두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밀접한 동맹관계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오래된 원한이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한미-미일 동맹을 통해 간접적인 안보협력 국가가 된 지 오래다. 북한의 위협이 보다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두둔하고 나서는 이 마당에 우리는 일본과의 안보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처럼 한국의 국가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또 행동으로 옮긴 한국의 지도자가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보수든 진보든 거의 모든 한국의 지도자들은 한국 국민들에 내재한 반일 민족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정치적인 지지를 얻는 데 급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 중요한 안보협력 국가인 일본을 배제한 채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풀어 나갈 수 없다.     그동안 한미동맹의 틀 속에 안주한 상태에서 한국은 마음 놓고 반일적 행동을 취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 결과 만약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소멸될 경우 한일관계는 즉각 심각한 적대관계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일본이 한국을 적대시할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응할 힘은 가지고 있는가?       중국은 전략적 협력국가가 될 수 있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반미·반일 주의자들이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중국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국 국민들이 특히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순수한 방어용인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면서도 이를 반대한 사람들이 항상 제시하는 이유는 중국의 분노 때문이다. 현재 집권당인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사드 문제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이들은 사드를 배치하는 이유를 중국에 설득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의 분노에 동조했고 그들의 분노를 더 키운 꼴이 되었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라이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나라이다.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그러하며, 지정학은 사실상 영구불변의 요소다. 전쟁을 연구한 학자들은 역사상 나타난 수많은 전쟁들 중의 90%를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벌였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경찰들이 피살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조사하기 마련인 것처럼 범죄적인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국제정치에서 이웃은 친구라기보다는 가장 위험한 가해자다.    중국은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웃에 강한 나라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국제정치의 기초적 상식이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를 위험한 이웃으로 간주하는 중국을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고 믿었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의 전략적 오류는 오늘의 한중관계를 더욱 나쁘게 만들고 말았다. 중국은 6차 핵실험 이후 마지못해 사드배치를 완료한 한국을 향해 “김치를 많이 먹어 머리가 나빠졌다”라는 악담을 해 대고 있다. 이 같은 저질 수준의 언급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을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중국이 앞에서 아양 떠는 한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을지 말해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안보협력 관계를 잘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기에 앞서 과거의 정부들도 대부분이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되겠다. 특히 박근혜 정권의 주변국 관계는 최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고,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북한 및 북한을 지원하는 세력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를 지키고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안보정책의 기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유명한 논설위원의 말처럼 중국에는 굴종적(屈從的), 일본에는 적대적, 그리고 미국을 사무적으로 대함으로써 국가안보 정책상 대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문재인, 대미정책 일단 잘 적응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한미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후보 시절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할 수 있다고 공언했고, 과거 의원 시절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했고, 사드배치에 반대했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미국을 방문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2020년으로 늦추고 돌아온 국방장관에게 ‘창피하지도 않으냐’며 힐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미정책은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라기보다 적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아 보인다. 국제정치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약한 나라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애초에 분단도 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분단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제정치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강대국들이며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들은 강대국들이 설정한 구조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약한 나라들이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노력할 경우 자칫하면 국가존망의 조건 그 자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존망을 위한 사활적(死活的)인 안전장치이기 때문에 이를 건드리는 정책은 극도로 위험하다. 위에서 말한 사드문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문제 그리고 FTA마저도 한미동맹의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이들 요소에 대폭 변화를 주겠다는 문재인 후보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외국 국가 원수들 중 첫 번째 전화 통화를 했다. 당연히 덕담 수준이었겠지만 문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한미동맹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일하게 되었음에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한미동맹은 “보통 동맹이 아니라 위대한 동맹”이라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장 빠른 시일에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미국 워싱턴DC 방문 중 근교 해병대기지의 장진호전투 기념비에 헌화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미국의 흥남철수 작전에 대해 감동적으로 설명하며, 미국이 자신의 부모를 태워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오늘처럼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한 후 사드를 1년에 걸친 환경평가 이후에 배치할 것, 혹은 국회의 동의를 얻을 것 등을 논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9월 초 6대의 발사대로 구성된 사드 1개 포대의 배치를 완료했다. 문재인 행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문제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달성 시기를 ‘대통령 임기 내’로 설정했었지만 지금은 ‘조속한 시일’이라는 불특정한 시간으로 완화시켰다.     FTA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한미 FTA를 성사시킨 동일 인물을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기용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매끄러워졌다, 혹은 한미동맹이 더욱 막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동맹을 맺었을 경우, 항상 나타나는 고민은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들의 싸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고, 약한 나라는 강대국이 자신을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한미동맹 64년 역사에 지금처럼 한국 국민들이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적은 별로 없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이 우려는 미국이 한국을 빼놓고 북한 및 관련국들과 직접 거래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가능성은 희박한 최악의 우려이겠지만 미국이 베트남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즉 미국이 말도 잘 듣지 않는 한국을 포기하고 북한과 모종의 약속을 통해 북한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통일하도록 허락하는 경우도 가능하다는 두려움이다.      한미동맹 이상 징후들    사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궁극적인 전략목표는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미국에 반대하는 동시 친중(親中) 성향을 보인다면 그 경우 미국은 반중(反中) 성향이 강한 북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오히려 미국에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한국은 ‘친미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결코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의심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신뢰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오늘처럼 한반도의 안보가 위중한 상황에서 미국 장성들이 입으로 늘 말하는 것처럼 강철동맹(Ironclad Alliance)을 유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주관적인 질문이며 그 답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미국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들으면 한미동맹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아베 수상과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비하해서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진위와 관계없이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이 대북 강경제재 전선에서 한국이 적극적 협력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선언했는데 반해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언제라도 가능한 옵션으로 간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쟁 불가론은 사실 ‘같은 편에 서서 함께 전쟁을 벌일 수 있음’을 기본 가정으로 삼고 있는 동맹의 근저를 흔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이 공통의 적에 대해 함께 군사작전을 벌일 것을 약속한 것이다. 동맹이란 본시 같은 편에 서서 전쟁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규범적 언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쟁을 굳이 하지 않고도 북한 핵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말하기 어렵다. 비록 결코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략적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해 더 유용하다.      브레진스키, “한국, 일본과 연합해 중국에 대처해야”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 행보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다고 보인다. 놀라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험악한 말로 문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회의원은 ‘문 대통령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라며 ‘기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 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글을 공개하는가 하면 또 다른 국회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완전히 아베(일본 총리)처럼 돼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대통령의 외교정책 변화를 이런 말로 비하하면 안 된다. 사드배치를 완료한 대통령은 그것이 현재 상태에서 가장 올바른 대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것은 이미 오래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학자와 이론가들이 말했던 바이다.     대일관계 역시 표피적인 현상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박근혜 정부 당시보다는 많이 개선되었다. 비록 오래된 원한이 해소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 역시 일본과의 관계에 각을 세우고 있지만 최근 양국 정상의 빈번한 접촉은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의 전진이라고 말해도 된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5월 11일, 5월 30일, 8월 7일과 25일에 이어 8월 30일까지 아베 총리와 다섯 번 통화를 했다.    일본은 한반도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국가였지만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더불어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런 일본과 척지고 살 수는 없는 일이며 일본을 배제한 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최근 작고한 브레진스키 교수는 가정법이기는 하지만 만약 미국의 힘이 약해질 경우, 중국의 막강한 힘 앞에 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한국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책은 ‘일본과 연합’해서 중국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인들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브레진스키 교수의 언급은 국제정치의 원리를 말한 것이며 새겨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대미 정책은 불안한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노력이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이 확실해짐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대미, 대일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진화보다는 적응이라는 말이 더 옳을 것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시간이 지연되었다, 혹은 노력이 허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미 국제정치학은 한국이 당면한 상황에서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를 일찍이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한미동맹의 대폭 강화, 한일 협력의 대폭 강화는 한국 안보의 확립,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올바른 일임을 확신하고 굳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태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윗에서 북한 김정은을 처음 ‘로켓맨(Rocket Man)’이라고 부른데 이어 19일 유엔연설에서도 또다시 ‘로켓맨’이라고 불렀다. 17일 트윗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로켓맨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Asked him how Rocket Man is doing...)”고 했다. 19일 연설에서는 “로켓맨이 자신과 자신의 체제를 위하여 자살임무를 수행중(Rocket man is on a suicide mission for himself and his regime)”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에 트윗을 통해 과장된 내용이나 장난기있는 발언을 자주한다. 그러므로 17일의 트윗에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러도 별로 놀라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단지 김정은의 협박이 가소롭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19일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 공식적인 행사인 유엔 연설에서도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단순한 장난기를 넘어선 중요한 의도를 내포한 신중한 용어선택으로 보인다. 도대체  트럼프 대통령은 왜 ‘로켓맨’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을까?   ‘로켓맨’이라는 말은 영국의 가수 엘튼 존이 1972년에 히트시킨 노래 ‘로켓맨’을 통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노래 가사는 공상과학소설 ‘로켓맨’에서 비롯되었다. 노래는 화성에서 살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우주비행을 앞두고 가족을 떠날 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았다. 우주비행사는 더 이상 영웅도 아니며, 우주비행도 단지 먹고살기 위한 생활의 방편일뿐이다. 가사의 주요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제밤 비행하기 전에 아내가 내 짐을 챙겨주었다네. 출발시간은 오전 9시. 나는 그 때까지는 연처럼 높이 솟아오를 것이라네. (And I'm gonna be high as a kite by then.)”     나는 지구가 그리워, 아내도 그리워 멀리 우주 밖은 외롭다네 이처럼 끝없는 비행을 하자면  아주 오래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착륙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는  집에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네 오, 안돼, 안돼, 안돼. 나는 로켓맨 로켓맨은 우주에 홀로 있는데 퓨즈를 태워먹었네. ........  화성은 아이들을 키울만한 장소가 못된다네 사실은 무지막지하게 추워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려해도 키울 사람들이 없다네  그리고 나는 과학에는 젬병이라네 일주일에 닷새 일하는 게 나의 직업일 뿐 나는 그냥 로켓맨, 로켓맨 ......  ”   위 가사를 보면 우주비행사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우주에 홀로 나가 있는데 우주선의 퓨즈가 타버린 상황. 그런데 과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 사람살기 어려운 화성에서 춥게 살고 있는 가족에도 돌아갈 수가 없는 딱한 처지이다. 또 가사 초반부의 ‘연처럼 높이 솟아오른다(high as a kite)’는 말은 당시 마약중독자들이 자주 쓰던 말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엘튼 존의 노래 가사에서 착안해 ‘로켓맨’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김정은에게 “형편 어려운 거 안다. 미치지 않고는 핵 미사일 개발하겠는가? 계속 그러다가는 죽는다”고 경고하는 것 같다.   엘튼 존의 노래 가사는 1951년 출판된 미국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 ‘로켓맨(The Rocket Man)’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설의 배경은 화성이 아니라 지구이다. 우주비행사가 귀하기 때문에 돈도 잘 번다. 우주비행사는 3개월에 한 차례 우주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지구로 귀환하여 3일을 쉰다. 소설은 아내와 아들 더그(Doug)를 둔 우주비행사 이야기이다. 소설은 아버지처럼 로켓맨이 되고 싶어하는 아들 더그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더그는 이버지가 지구에 있을 때는 우주로 가고 싶어하고, 우주에서는 지구로 귀환하고 싶어하는 심리상태임을 잘 알고 있다. 직업 때문에 아내와의 관계가 파탄상태에 빠진 아버지는 우주비행사를 그만두려 한다. 마지막 우주비행을 떠나기 직전 아들 더그에게 절대 아버지같은 우주비행사가 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우주비행를 떠난 아버지는 탑승했던 우주선이 태양에 추락하면서 사망한다. 지구에 남겨진 모자(母子)는 비탄에 빠진 나머지 태양을 피하는 야행성 인간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소설에서 ‘로켓맨’을 차용했다면 김정은은 해서는 안되는 핵미사일을 개발하다가 결국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듯 하다. 문맥상으로는 자멸할 가능성을 더 크게 보여주는 듯 하다. 어떤 경우든 로켓맨은 죽는다.

주대환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와서 말씀을 드리게 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주영 의원님?) 기왕이면 여당일 때 불러주시지요. 그랬으면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텐데요. 저를 부르신 취지는 쓴소리를 듣자는 데 있는 것으로 알고, 제가 오늘은 조금 마음대로 떠들겠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먼저 미안한 말씀이지만, 저가 자유한국당을 잘 모르고 특별한 애정도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가장 위험한 것은 저에 대해서 너무 많은 애정을 가진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저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따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저야말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있으면 골라 취하시기 바랍니다.   (1) 호남 혐오   먼저 여러분에게 정말 간곡하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호남 혐오’와 선을 분명하게 그어달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펄쩍 뛰실 겁니다. 이정현 의원이 대표를 한 적도 있다고, 손을 휘저으면서 말을 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다수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을 호남 혐오주의자들의 정당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그런 극우적 성향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때문입니다. 싸우고 갈라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같은 편으로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당을 86세대의 정당이라 하고 청와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여당이나 청와대가 수긍하겠습니까? 아마 웃을 겁니다. 또 무슨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 메카시즘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할 겁니다. 일부 그런 경력 가진 사람 소수가 있지만, 수십 년 전 일이라고 하겠죠. 그러나 여러분 역시 그들의 해명을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서로 싸워서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통합진보당이라도 있어서 역할 분담을 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호남 혐오주의자들과 싸우십시오. 제발 그들과 일선을 확실하게 그어주십시오. 류석춘 혁신위원장님, 아무리 일베에 기특한 청년 보수논객들이 많아도 그렇지, 일베를 하라고 하시지 마십시오. 일베에는 호남 혐오주의자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고 비하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준길 대변인,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또 5.18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고, 헬기 사격을 포함한 발포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하더라도,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의혹도 함께 밝혀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하여 흡사 자유한국당이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발 호남 혐오, 호남 차별주의자들과는 철저히 투쟁하십시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저는 그 당시 이미 결혼을 한 성인이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수백 년 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경험한 일이고,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일입니다. 그런데 새삼 우리가 모르는 대단한 일이라도 발견되었다는 말입니까? 저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 같은 경우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믿는 사람들과 싸우고 그들과 일선을 긋지 않으면, 어떤 혁신을 하고 어떤 이벤트를 하고, 아무리 박근혜 정부와 차별화를 하고, 전 정권의 핵심을 다 몰아내더라도 자유한국당의 미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는 국민의당 평당원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 호남에는 이념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호남이 언제까지 중앙정부가 주는 보조금이나 따와서 먹고 살아야 하느냐, 호남도 산업을 발전시키고 공장을 유치하자, 그 ‘민주화의 성지’라는 말도 지겹다, 호남이 무슨 장례식장이냐, 세월호가 목포항에 들어오니 인근 지방자치단체가 축제를 다 취소하고, 새만금에 기업이 투자를 하려니 시민단체들이 반대를 하는데, 그런 친노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에게 언제까지 지역 여론을 대변하게 할 거냐, 그런 밑바닥 민심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국민의당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징후였습니다.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호남 민심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의 생각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 같은 데 흥미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깊은 역사의 성찰에서 나오는 진정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사실을 말하면 많은 경상도 사람들 그리고 중산층들, 어린 학생들이 악마 전두환을 몰아내자고 투쟁할 때 못 본 척하면서 돈벌이에 열중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들 대학교 1학년, 2학년 학생들, 82학번, 83학번, 이런 친구들이 전두환이라는 악마 같은 독재자를 상대로 목숨 걸고 투쟁을 하면서, 스무 살에 책 몇 권 읽고서 대단한 혁명가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고, 그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여당과 청와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건방지고 무식한 86세대들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친노 좌파가 이런 단순하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당시에 모른 척하고 돈벌이에 열중하여 중산층이 된 선배 세대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이제 전두환의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바로 보수가 책임이 있음을 깊이 성찰하고, 전두환 등을 옹호하는 사람들과는 일선을 긋고, 그들이 새누리당이라고 하든, 무어라고 하든 딴 살림을 차리라고 내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자유한국당에 미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김문수 지사님, 보셨습니까? 아직도 안 보셨다고요?) 물론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200명이 죽고, 6.25 한국전쟁은 200만 명이 죽었으니 6.25가 1만 배 큰 사건입니다. 하지만 태양은 달보다 400만 배 크지만 달과 비슷한 크기로 보입니다. 달보다 400만 배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가진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지 마시고, 깊이 연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2) 10대 90의 프레임   남들이 자유한국당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자유한국당은 상위 1%의 특권층의 당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시 반론을 펼치고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구구한 반론은 효과가 없습니다.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애를 쓰기 보다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역공을 펼치는 것이 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대 99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당이 이 프레임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99%를 대변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 프레임이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11.3%, 2010년 12.7%, 2015년 14.2%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프레임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제가 2017년 2월 5일자 한국일보 기사에서 베껴온 그림을 보십시오.   이 그림을 보면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와 지금 우리나라가 아주 딴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 규모가 수십 배 커지고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아들, 손자 세대에서는 우리가 책에서 배운 ‘계급’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따라 인생의 출발점이 크게 달라져서 이른바 ‘수저론’이 나오고 ‘세습 자본주의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OECD 평균이거나 조금 심한 편이고, 중국이나 브라질, 멕시코 같은 중진국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빈부격차를 이렇게 불편해 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바로 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시절이 불과 한 세대 전이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남들이 아닌 사촌 간에, 초등학교 동창생끼리 빈부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래 대한민국은 후진국 가운데 매우 희귀한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평등이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의 평등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래서 저는 국민의 절반을 넘었던 소작농을 일소한 농지개혁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희년(禧年)의 효과는 사라지고 다시 토지개혁을 해야 하는 시점, 새로운 희년이 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6년 10월 27일자 연합뉴스 기사에서 베껴온 이 그림은 좀 다른 수치를 보여줍니다. 1995년의 상위 10% 소득 집중도를 위 그림에서는 34.7%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29.2%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연구기관에 따라 계산 방법이 다르겠죠. 여하튼 그 당시까지는 양호한 편이었는데, 그 후로 급증한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상위 10% 소득집중도를 말할 때는 20세 이상의 모든 개인을 줄 세우기 때문에 성인이 된 자식을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돌보는 우리나라 가정의 모습을 고려한다든지, 그래서 20대, 심지어 30대 초반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정규직 등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하여 간혹 알바를 하면서 취업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정, 즉 캥거루족이라는 사회 현상, 그리고 남편이 돈을 잘 버는 경우, 전업주부 아내가 경제권을 쥐고서 자녀 교육, 사교육 등을 전담하는 문화 등을 감안한다면 상위 10%에 쏠려 있는 소득의 혜택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 아마 국민의 20%쯤은 보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상위 10%든 20%든 이들이 너무 많이 차지하고 나머지 국민들이 가난하다는 현실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국민들이 서민이며, 그들 다수 서민, 즉 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건국 당시의 소작농과 같은 처지에 있고, 다시 그의 자식들이 ‘흙수저’라고 자신을 비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도 초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당이었을 때 무엇을 하셨나요? 사실 이런 현상은 비단 노무현 정부 때뿐만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에도 쉬지 않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산업이 발달하여 경제 대국이 되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다시 자유와 평등의 나라로 돌아갈 것인가를 자유한국당은 얼마나 고민하고 있습니까? 어차피 앞으로 모든 정치 세력이 이 문제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겁니다. 야 3당끼리도, 진정으로 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당이 야권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제 1야당이 되고 싶다면 10대 90의 프레임으로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를 보세요.   (3) 임금   그러면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이 이렇게 많아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 개혁은 너무나 잘 아시는 문제라서 말씀드리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서는 민망하게도 노동운동의 대부니 뭐니 하면서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저가 한 이야기를 인용했더군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개혁하는 일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웃 나라 일본은 아베 총리가 앞장서서 상당한 부분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선다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자유한국당이 그런 정부를 세우는 데 앞장을 선다면 아마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꼭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입니다. 사실 복지국가를 만들든 기본소득제를 하든 그 많은 좋은 주장들이란, 도대체 외국인 노동자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장 필요하다고 마구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고 심지어 불법 체류자를 법대로 단속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숫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하층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심각함에 비추어서 너무나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른바 진보라는 진영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인권 문제로만 다루고 있으며, 하층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불법 체류자 단속을 주장하면 바로 극우 인종주의자로 몰릴 위험에 처합니다. 반면 이른바 보수라는 진영에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 운영하는 분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공장 문 닫을 수밖에 없다는 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쉬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층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나라도 아닙니다. 건설 현장의 일용직들의 임금,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용접이나 금형 같은 기술직도 20년째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청년들은 그런 일들, 육체노동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두가 사무직 공무원이 되려고 합니다. 아예 고대 아테네가 노예를 부렸듯이 육체노동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육체노동의 임금이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배관공과 의사의 임금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선진국처럼 될 수는 없을까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청년들이 몸을 쓰는 노동을 하고 손으로 배우는 기술을 익혀서 당당한 시민으로 결혼도 하도 아이도 낳아 기를 수 있어야죠. 그러면 대학진학률이 80%라는 낭비도, 갖가지 교육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적절하게 관리하여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올라가면 굳이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리지 않아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업의 구조 조정이 일어나고 외국으로 옮기는 기업이 있더라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한국의 중산층은 외국인 노동자 200만 명 덕분에 유지되는 낮은 서비스 요금과 외식비 등으로 인하여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고, 최고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면서 사실은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폭로해 마땅한 위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연금   공무원 연금과 사학 연금의 ‘사수’를 외치는 공무원 노조이나 전교조의 기득권 지키기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장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구를 다니면서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요즘 해외여행 고객들이 주로 교사, 공무원 출신 은퇴자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급 상품일수록 더욱 교사와 공무원 출신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정치권에서는 이를 이슈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조직된 상층 노동자, 특히 공무원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인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여론 주도층과 지식인들이 바로 특수직역 연금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기왕 정권을 잃은 자유한국당이 과감하게 이를 치고 나간다면 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어차피 찍어주지도 않는 공무원 눈치 보지 마시고요).   저는 특수직역 연금을 폐지해서 국민연금으로 통합해 연금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기초연금은 두 배로 늘려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직역별 별도 연금이 존재하면서 일반 국민과 수령액에 있어 심각한 격차를 보이는 연금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 같은 경우에도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했지만 오랜 논의와 준비 끝에 몇 년 전에 국민연금으로 통합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공적연금 구조에서 연금액의 ‘편중’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2013년 기준으로 60세 이상 인구의 5.3%에 불과한 공무원 등 특수직역 연금 수령자가 전체 공적연금의 47%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연금 체계 때문에 한국의 공적연금은 국민의 노후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공무원 연금 등을 국민연금에 흡수시켜 연금체계를 ‘하나로’ 통합한다면, 소득수준이 높고 안정적으로 연금을 납부할 수 있는 특수직역 연금 가입자 150만 명이 국민연금에 추가로 편입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민연급 가입자 평균소득’은 상승하고 국민 전체의 연금 액수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과거 공무원 연금 퇴직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를 냈지만, 퇴직 전 소득의 76%라는 높은 연금을 보장받았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월 300내지 400만 원이 넘는 연금을 받고 있으며, 월 700만 원이 넘는 연금수령자도 있습니다. 이는 현재 공적연금 적자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수급자가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머지 분들에게 기초연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2015년에 편성된 기초연금 총 예산(국비)은 7조 5824억 원이고, 여기에 지자체 부담분이 더해지므로 실제 지급액수는 10조 원을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공무원 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을 이와 비교해보면, 2015년 편성된 공무원 군인연금 적자 보전액(정부 부담 보험료를 제외하고)만 4조 2564억 원에 달합니다.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430만 명이 넘는 노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생명줄인 20만 원 짜리 기초연금을 위해 10조 원 정도 쓰는 반면, 퇴직한 공무원과 군인 등 41만 명에게 주는 매월 수 백 만 원의 연금을 보장하기 위해 4조 원이 넘는 추가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폭로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공무원 눈치 보지 말고 개혁에 앞장서서 ‘공무원의 나라’를 ‘국민의 나라’로 만들어주세요.   (5) 2030세대와 40대   2030세대가 자유한국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가 보기에 2030세대는 민주당도 별로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86세대도 그들에게는 어디서나 자기들을 가르치려는 꼰대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직장에서 일은 많이 안하고 자기들보다 2배, 3배씩 연봉을 받아가는, 영어도 잘 못하고, 컴퓨터 프로그램도 잘 다룰 줄 모르는 직장 상사들이기도 합니다.   6, 70대가 후진국 사람이라면 86세대 4, 50대는 중진국 사람, 2030세대는 선진국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 간의 생각의 차이, 문화적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2030세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고 실용주의자들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쓰는 말 중에서 ‘한남’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한우, 한돈, 한남… 한국 남자라는 말인데요, 지난 몇 년 사이에 제 친구와 제 아내의 친구의 딸들이 여러 사람 외국 남자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왜 한국 처녀들이 한남과 결혼하기를 꺼리는가? 한남들이 가사노동을 잘 안하기 때문입니다. 마마보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악의 남편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는 “밥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밥은 여자가 하라고 하늘이 정해준 거라고 대답을 하셨죠?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 정말 많이 득표하신 겁니다. 그런 말씀까지 하셨는데 말입니다. 2030세대 여성들은 홍 후보를 바로 한남의 아버지, 최악의 시아버지 감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부탁을 드립니다. 전 당 간부들이 페미니즘 교육을 받으세요. 개과천선하시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선진국 사람으로 거듭 나시기 바랍니다.   40대 인재를 많이 발굴하여 내년 지방 선거 후보로 내세우십시오. 86세대가 지나치게 정치화된 세대로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30대부터 국회의원도 하고 지도자 행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5살이나 10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 밑에서 보좌관 노릇을 해 왔습니다. 이제 그들이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1974년생을 예로 들면 44살입니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또래가 전부 보좌관, 실무자 노릇을 하면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들 40대의 억눌린 에너지, 힘을 불러일으켜서 86세대의 독점 구조를 뒤집어엎으십시오. 그것은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서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입니다. 기왕 야당이 된 김에 자유한국당이 바로 그것을 하십시오. 그러면 청년들의 호응을 받을 겁니다.   (6) 신보수주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에서 발표한 선언문에서 당의 새로운 이념으로 ‘신보수주의’를 내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부터 ‘보수’를 자처하게 되었습니까? ‘보수’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예를 자처한다면, 여러분이 ‘보수’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 규정과는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한민당이라는 보수 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공산당 출신 조봉암까지 끌어들여 농지개혁을 밀어붙일 때 이승만이 보수였습니까? 윤보선 후보가 집요하게 빨갱이라고 몰아붙여도 그에 굴하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의 박정희가 보수입니까? 제가 알기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자칭 타칭 보수라고 불린지는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보수라는 말의 뜻은 친미노선을 지킨다는 뜻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점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친미노선은 독립협회 이후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본 노선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세계 최대의 나라 중국 바로 옆에서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어렵게 발견한 노선입니다. 지도를 펼쳐서 보십시오, 북경에서 티벳의 거리와 우리나라의 거리를 비교해보십시오, 서너 배는 더 됩니다. 또 티벳 가는 길은 얼마나 험난합니까? 그런데도 청나라 턱 밑에서 우리나라는 독립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채택한 것이 사대주의 외교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대청풍운’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강희제를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황제로 묘사하는 작품이고, 다분히 티벳과 대만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어용 영화라는 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매우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은, 대만의 정성공이 청나라에게 휴전을 청하면서 대만을 조선과 같이 인정해달라고 하는데, 청나라가 이를 불허하고 엄청난 비용과 대가를 치르면서 끝내 점령해서 직할 영토로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은 형식적으로는 제후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독립적인 나라였습니다(그것이 바로 시진핑이 말하는 번속국이죠). 그런데 이런 중화제국이 무너지면서 우리 조상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교 노선을 찾아서 고민하였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독립협회 시절부터 친미노선을 확립하였던 것입니다. 120년 전, 그러니까 1897년에 세운 독립문이 바로 친미노선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친미노선은 보수의 노선이기는커녕 문명개화파, 진보파의 노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는 두 번 친미노선이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1920년대 독립운동에 3.1운동 세대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3.1운동은 친소노선을 대안으로 제시하여 결국 우여곡절 끝에 분단을 자초하고 북한이란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수만 명의 86세대가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면서 흔들렸습니다.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인류 보편의 문명과, 자유, 평등과 인권이라는 가치보다는 동아시아 중세 절대 왕정 시대의 문화에 미련을 가진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흐름인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대한제국의 멸망으로 끊어진 조선 귀족 정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어쩌면 완고한 성리학자 양반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의 사상과 언어가 위정척사파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까? 반일과 반미를 선동하고, 은연중에 친중, 친북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한국당이 스스로를 보수라는 울타리에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 보수라는 정체성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외국 책에서 보고서 하는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영국에서 보수정당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귀족 정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수라고 불릴 수 있는 흐름은 중화제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해서 개화를 반대했던 사대당, 위정척사파 성리학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맥은 조선,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한국당이 ‘신보수주의’에 머물지 마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설마 80세가 넘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기붕이라는 아첨꾼의 말만 듣던 이승만을 이어받으시려는 것은 아니죠? 독재자로 전락한 말기의 박정희를 계승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들에게 쫓겨나거나 모든 국민들이 물러나라고 외치는 가운데 측근에게 죽임을 당한 이승만과 박정희를 계승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그 분들의 집권 초기 모습은 결코 어떤 의미에서도 단순한 보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승만은 농지개혁으로 자영농이 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서 국회에서는 소수였지만 직선제로 개헌하여 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박정희는 군사정변을 일으켰다는 원죄에도 불구하고 빈농들의 지지를 받아서 1963년 선거에서 신승(辛勝)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건국 이전으로 돌아간 듯이, 마치 초기화된 듯이 불평등이 심화되어 국민이 분열되고, 이런 상태로는 과연 통일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이 시점에 필요한 이승만과 박정희는 초심(初心)의 이승만이요, 박정희이지, 나중에 장기 집권한 독재자는 아닐 것입니다.   왼쪽부터 김홍집, 안창호, 조봉암, 김대중(7) 아버지와 어머니   정체성은 결국 “니 아버지가 누구냐?”라는 질문입니다. 예수에게 동네 사람들이 물었을 때 어린 예수는 “목수 요셉입니다.”라고 대답했다면, 광야에서 40일을 고행하고 돌아와서는 “내 아버지는 하늘에 있다”라고 답했던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요? 아마 여러분은 자유한국당의 아버지가 박정희, 할아버지가 이승만, 증조 할아버지가 김옥균이라고 답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김옥균의 라이벌로서 김홍집이 있었고요, 이승만은 독립운동 시기에 안창호라는 걸출한 라이벌이 있었고, 건국 후에는 조봉암이라는 도전적인 후배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박정희에게는 김대중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인격적으로는 더 훌륭한 분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큰 흐름은 일곱 분의 지도자가 이어져 왔습니다. 결국 ‘김옥균-이승만-박정희’ 라는 흐름에는 ‘김홍집-안창호-조봉암-김대중’ 라는 훌륭한 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보면 같은 흐름입니다. 그러니까 문명과 개화, 진보의 흐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김옥균과 김홍집이야 워낙 오래된 인물이라 그렇다 치고라도, 이승만은 알지만 안창호와 조봉암은 관심 없고, 박정희는 알지만 김대중은 알고 싶지 않다면 대한민국 정치 주류의 족보를 온전하게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할아버지만 알고 어머니, 할머니는 모르는 셈입니다.   특히 김대중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깊이 연구하면 여러분에게 큰 이득이 있을 줄로 압니다. 김대중 연구를 깊이 하신 분을 당 고문으로 모셔서 항상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십시오. 특히 김대중이 동지들로부터 ‘사쿠라’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1965년 한일회담을 찬성한 이유, 김대중이 김구 선생을 비판한 이유, 김대중이 일관되게 친미노선을 걸었다는 사실(그는 80년대에도 항상 ‘비반미’를 고수하였죠) 등을 연구하면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저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드리는 말씀인데요, 제발 조봉암 선생에 대한 건국훈장 추서를 앞장서서 주장해주십시오. 서울 형무소 자리 독립공원 위편 안산 자락길을 가 보십시오. 대한제국을 지키려고 싸운 의병장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헌 국회의원, 헌법기초위원, 초대 농림부장관, 첫 직선 대통령 선거 차점 낙선자를, 바로 대한민국을 세우고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사람을 건국훈장을 주지 않고 있다면 말이 됩니까? (김진태 의원, 어디 계십니까? 저하고 공개 토론 한 번 하십시다!)   그런데 김진태 의원처럼 북한에서 나온 책을 근거로 하여 조봉암이 김일성의 돈을 받고 간첩질 한 것은 사실이고, 다만 수사를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군 수사기관에서 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시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보훈처의 보훈심사위원회에서는 또 1941년, 조선일보도 동아일보도 다 폐간된 후에 나왔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사를 근거로 조봉암을 친일파로 몰고 있습니다. 북한을 그토록 미워하면서 북한이 낸 책을 믿고, 일제를 그토록 싫어하면서 총독부 기관지를 믿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를 바로잡는 데 앞장을 선다면 자유한국당의 이미지를 얼마나 개선하겠습니까? 나중에 남이 주도하는 데 마지못해 찬성한다면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김대중, 네 분의 사진을 자유한국당 당사 어딘가에 걸어놓으신다면 여러분은 이 시대가 원하는 정당을 만들고, 나아가 위대한 통일 한국을 만드는 대업을 이루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태영

▲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월 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극동- 새로운 현실 창조’란 제목으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일본 등 세계의 많은 나라가 출산율이 줄어들어 고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핵폭탄보다 무서운 것이 인구절벽이라며 젊은 세대의 출산율 감소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인구 격감으로 고심하던 러시아의 경우는 최근 들어 출산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좋아진 경제 때문이다. 푸틴이 서방 언론들로부터는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인색한 평가를 받지만, 인구증가 등 경제호황을 이끌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      소련 붕괴 직후 1억5000만명에 달했던 러시아 인구는 그후 매년 100만명씩 감소하였다. 감소의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젊은 남성들의 사망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러시아의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국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러시아의 인구는 1억4600만명으로 2008년의 1억4200만명보다 400만명이나 증가하였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여 얻은 인구 220만명을 더하면 증가폭은 더욱 늘어난다.       인구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푸틴 집권 기간 동안 경제가 호조를 띠면서 러시아인들은 비로소 아기를 갖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러시아 주요 도시의 공원에 가 보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가 좋아진 원인은 물론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주 수출품인 원유와 가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석유회사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수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푸틴이 1999년 처음 총리에 취임할 당시 60억달러도 안 되던 국가 세입은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800억달러나 되었다. 옐친 대통령 시절에도 석유와 가스를 수출했지만 국부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수입의 대부분을 부패한 정치인이나 이들과 결탁한 ‘올리가르히’가 챙겼기 때문이다. 푸틴이 집권하여 국가 기능이 강화되고 법질서가 회복되면서 국부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푸틴의 개혁조치들도 러시아의 경제회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취임 직후 단일소득세를 도입하여 개인소득세는 13%로 정했다. 법인세는 35%에서 24%로 낮추었다. 그는 낮은 세율을 고수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일반 국민과 기업 모두 반드시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 토지거래법도 만들어 토지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하였다. 유가 회복과 푸틴의 친기업적인 경제정책 덕분에 러시아 경제는 2000년대에는 연평균 7%씩 착실한 성장세를 보였다. 서방 언론들은 이러한 성장은 오로지 원유와 가스 수출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포템킨미라지’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석유 수출로 인한 과실을 푸틴이 독식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층의 출산율 증가 등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 경제는 2014년부터 국제적인 유가 하락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측의 경제보복으로 정체 상태에 빠져들긴 했지만 외환보유고는 5000억달러 수준을 넘는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데에는 푸틴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해온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푸틴의 리더십은 소련을 해체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나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과는 사뭇 다르다. 고르바초프나 옐친은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반면 푸틴은 서구적이라기보다는 아시아의 개발독재자들의 리더십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상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공주의자 푸틴      첫째,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國是)로 했듯, 푸틴도 반공주의자에 가깝다.      푸틴은 2016년 1월 스타브로폴에서 가진 지지자들과의 모임에서 과거 소련과 공산주의 정권, 그리고 레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공산주의를 성실하게 믿었다고 말했다. 푸틴은 KGB 중령으로 동독에서 근무하다 베를린장벽 붕괴 사건을 겪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하는 것은 “성경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덧붙이면서도, “실상은 달랐다”고 말했다. 사회주의가 약속하던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푸틴은 특히 공산혁명의 지도자였던 레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레닌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일가와 그 신하들, 그리고 성직자 등 수천 명을 무참하게 살육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소련 내 경계선을 인종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장래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행위나 다름없었다고 맹비난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분쟁도 결국은 레닌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비판은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푸틴은 또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자이다. 푸틴은 집권하면서도 전임 옐친 대통령 시절 국민들이 취득한 사유재산은 존중한다고 발표하였다.      아직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앞에 레닌의 묘가 있고, 그 안에 레닌 미라가 엄숙하게 전시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대통령이 레닌과 공산주의를 비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소련 시절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소련 붕괴를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고, 소련을 옛날 모습 그대로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뇌가 없다.”      둘째, 박정희 대통령이 서구와 다른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면, 푸틴은 러시아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푸틴이 ‘러시아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옐친이 추구하던 서구적 민주주의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러시아 국민도 옐친 시절 겪었던 무질서와 범죄, 부정부패, 그리고 민주세력의 지원을 받은 올리가르히들이 국가재산을 마음대로 해외로 빼돌려 축재를 일삼는 행위 등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옐친 대통령 집권 시절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의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7% 수준이었다. 러시아 국민은 국가권력 강화를 통한 질서회복, 군사력 강화를 통한 국가적 위상제고 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푸틴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푸틴은 러시아의 민주주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는 국민의 뜻에 의해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지정학적 고려 및, 다른 여러 특성을 고려하고, 우리의 기본적인 민주규범을 존중하면서 어떤 길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 정해 나가야 합니다.”      푸틴은 2004년 베슬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로 385명이 사망한 사건 직후 외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민은 후진적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나라에서 하는 식의 민주주의에는 적응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좌) 이반 일린. (우) 푸틴이 그려진 T셔츠. 경제 호조로 러시아에서 푸틴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반공 철학자 이반 일린의 복권      푸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반공 정치철학자 이반 일린(1883~1954)이 각광받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러시아 공산혁명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the most terrible catsatroph)”이라고 평가한다. 혁명 이후 반공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수차례 투옥되다가 1920년에 마침내 독일로 추방되었다. 일린은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보수적인 정치철학자로 러시아를 공산혁명이라는 비극으로 이끈 요인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일린은 러시아인들의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존감”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 간에 상호불신이 발생하였다고 본다. 권력자들은 늘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단결을 해쳤다. 일린은 어느 나라에나 국민들 사이에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교육받은 상위계층이 교육받지 못한 하위계층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이것이 잘 안 됐다는 것이다. 일린은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한 또 하나의 원인을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재산은 부정직한 행동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러시아인들 가운데 만연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존감”과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러시아를 평등주의와 공산혁명으로 이끌었다고 일린은 분석했다. 일린은 대안으로 러시아인들이 종교와 도덕성에 바탕을 둔 법치와 양심을 회복할 것을 제시하였다. 전체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 모두에 반대하는 제3의 길을 추구한 것이었다. 러시아정교, 애국주의, 법치주의, 사유재산제 등이 일린이 제시한 대안이었다.      이러한 일린의 생각은 소련 시절 반체제 작가인 솔제니친과 민족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솔제니친은 옐친 시절 추진된 민주화 조치들이 러시아를 파괴하는 재앙이라고 비판하였다. 푸틴의 배려로 2005년에는 일린의 저작집이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다. 일린의 유해는 2009년 제네바에서 모스크바로 귀환되어 돈스코이 수도원에 다시 매장되었다.      셋째, 박정희처럼 푸틴도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소련 말기와 옐친 대통령 시절 러시아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생하였다. 일상생활에 위협이 되는 크고 작은 범죄뿐만 아니라 국유재산의 매각 과정에도 모두 범죄조직이 개입하였다. 러시아인들은 국가를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체첸 마피아는 도난차량의 밀수출입, 그루지아 마피아는 무역, 농산물 거래는 중앙아시아 마피아가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유재산의 매각 등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에는 전직 공산당원, 옐친 대통령의 후원을 받는 민주세력, 유대인 등이 국제적인 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른바 올리가르히들의 세상이었다. 1990년에는 정부가 “경제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수감하기 위하여 비폭력사범 9만4000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푸틴은 집권하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늘어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연방보안국(FSB), 경찰 등 공안기관과 군의 인력과 장비를 크게 개선하였다.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다니다 보면 과거에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제복경찰들이 도처에서 검문을 하는 모습을 쉽게 대할 수 있다.      옐친의 지원을 받던 올리가르히와의 전쟁도 푸틴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이는 정적 제거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 2000년 푸틴은 대통령 취임 직후 미디어모스트그룹을 운영하던 유대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를 전격 체포하였다. 그리고 “특권계층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39세였던 석유재벌 유코스오일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차례로 제거한다. 호도르코프스키도 유대인이었다. 유코스오일은 사실상 국유화하기에 이른다. 호도르코프스키는 10년형을 살다가 국외로 추방되었다. 호도르코프스키 제거는 국제적으로는 비난을 받았지만,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를 선물하는 푸틴.    20년 대통령 되나      넷째, 박정희에게 군이 있었다면, 푸틴에게는 실로비키가 있다.      박정희는 5·16군사정변 이후에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푸틴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권력의 핵심부는 자신의 출신 부서인 FSB와 군 출신 등 이른바 ‘실로비키’들이 장악하고 있다. 실로비키는 군이나 보안기관 출신들이라는 말이다. 푸틴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다. 당초 옐친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요구한 것은 바로 “신뢰, 권위, 그리고 국민이 갈망하는 군인다운 태도”였다.      다섯째,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다.       푸틴은 베슬란사태 직후 러시아연방 내 자치지역과 공화국들에서 실시되었던 대통령, 주지사, 시장 선출을 위한 지방선거를 모두 폐지하였다. 지방 대표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지역의회에서 임명동의를 받도록 하였다. 전임자인 옐친이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한다“며 반발할 정도로 충격적인 조치였다.      2012년 대통령직에 다시 복귀하는 선거를 치를 때도 반대파들의 시위가 빈발했다. 푸틴은 이를 단호히 진압했다. 푸틴 취임 직후 의회는 불법시위 참가자에 부과하는 벌금을 5000루블에서 30만루블(600만원)로 인상하였다.      푸틴은 러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여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닥친 고유가 시대를 맞아 주로 유럽 수출을 통해 러시아 경제의 활황을 이끌었다. 푸틴은 수출다변화, 즉 한국·중국·일본으로의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에 미래 러시아 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다.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러시아는 안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유가하락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측의 제재가 쉽게 풀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푸틴은 2018년까지 재임하고 한 번 더 연임하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20년 대통령이 된다. 그보다 더 오래 권좌에 머물렀던 인물은 스탈린뿐이다. 하지만 20년 대통령을 해도 푸틴의 나이는 72세에 불과하다.

조갑제

한국의 당면 과제는 북한의 핵위협을 극복하고 자유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교양 있는 국민과 용감한 국가 지도층이 힘을 합쳐 일류(一流)국가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핵무장한 깡패집단의 존재, 사대주의적 노예근성을 극복하지 못한 국가 지도층, 그리고 한글 전용(專用)에 의한 한국어(韓國語)의 파괴 및 국민교양의 붕괴이다.     1. “한글이 국어(國語)다”는 오해. 한글은 한자(漢字)와 함께 극어(國語)를 표기하는 문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한글 사전’ ‘한글 번역’이란 말은 잘못 되었다. 알파벳이 영어는 아니다.      2. “한자(漢字)가 외국어”라는 오해. 한자(漢字)는 한글과 함께 모국어(母國語)를 표기하는 국자(國字)이다. 영국 사람이 알파벳을 외국어라고 생각하면 영어(英語)도 영국 사람 것이 아닌 게 된다.      3. “한자는 어렵고 한글은 쉽다”는 오해. 한글은 읽을 줄 알게 되기까지가 쉽다. 한글은 읽게는 하지만 70%의 한자어(漢字語)의 경우, 뜻을 알게는 하지 못한다. 읽는다고 아는 게 아니다. 전기, 아성, 우미가라고 읽을 줄 알아도 뜻은 전기(轉機), 아성(牙城), 우미가(優味家)라고 써야 안다.      4. 한글전용(專用)이 민족적이고, 한자혼용(漢字混用)은 사대주의란 오해. 한글전용은 폐쇄적이고 국어파괴이며, 한자혼용이 개방적이고 국어(國語) 살리기이다. 한자전용(漢字專用)도 한글전용(專用)도 한국어를 반신 불수로 만든다.     5. 한글이 세계 최고(最高)의 문자라는 오해. 알파벳과 한자(漢字)도 한글에 못지 않다. 한글전용(專用)으로 나아가면 문해력(文解力)이 떨어져, 읽을 줄 알지만 뜻을 모르는, 신종(新種) 문맹화(文盲化)된다.      6. 한글전용(專用)을 해도 불편하지 않다는 오해. 세상을 대충 대충 살아간다든지, 지식이나 정보를 그럭저럭 알려고 한다든지, 만화와 대중소설만 읽으려고 하는 이들에겐 그럴 것이다.      7. 국어는 한국인이 만든 것이란 오해. 한국어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 등이 만든 어휘(語彙)의 종합이다. 영어는 라틴, 앵글로-색슨, 브리턴, 프랑스, 바이킹족들의 말들이 융합된 것이다.      8. 어린이는 가정에서 한자(漢字)를 열심히 공부하지만 학교에선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어른이 한자(漢字)를 쓰지 않아 배운 것도 잊어버린다. 어른이 무식(無識)하고 어린이가 유식(有識)한 나라, 학교가 포기한 국어 교육을 가정이 대신해주고 있는 나라이다.      9. 한글의 교조화(敎條化), 한글의 우상숭배가 국어를 파괴, 문명을 망친다. 국어가 조국(祖國)이다. 한자말살 및 한글전용으로 한국인의 어휘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여, 집단 치매화 되고 있다. 고급 학문의 쇠퇴, 교양의 붕괴.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 선동과 깽판의 일상화가 여기서 비롯된다. 한민족(韓民族)의 쇠퇴이고 국가적 자살의 길이다.     10. 가장 훌륭한 표의(表意)문자인 한자(漢字)와 가장 훌륭한 표음(表音)문자인 한글을 같이 쓰면 한국어는 정확하고, 풍성하고, 다양한 표현력을 갖게 된다. 표현력 만큼 사고력(思考力)도 정확, 풍성, 다양해진다. 개인과 나라도, 그리고 행동도 그렇게 된다. 한글전용(專用)은 이런 축복을 걷어차는 자해(自害)행위이다.      *교양은 교양어이다.     민주주의가 선동과 무례(無禮)를 부추기는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간형(人間型)이 있다. 균형감각이 좋은 사람, 너그러운 사람, 교양(敎養) 있는 시민들이다.          교양(敎養)이란 지식(知識)을 가르치고 기른다는 뜻이다.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 지식을 길러서 인간의 품격(品格)으로 승화(昇華)시킨다는 뜻이다. 지식이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자라나 행동으로, 습관으로, 인격화(人格化)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양(敎養)은 실천을 전제로 하는 지식 체계이다.          교육(敎育)은 가르치고 육성한다는 의미이다. 교육의 방법론은 지덕체(智德體)이다. 지혜(智慧)를 키우고, 덕성(德性)을 키우고, 체력(體力)을 키운다. 구체적으론 인문(人文), 예술, 스포츠를 통한 교육이다. 인문적(人文的) 교육을 통하여 인간과 역사, 그리고 사물의 원리를 알게 한다. 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감성이 풍부하게 되고 심미안(審美眼)을 갖춘다. 체육(體育)을 통하여 건전한 육체를 갖게 하여 당당한 승부와 투지(鬪志)를 몸에 익힌다. 교양은 전인적(全人的)인 것이다. 교양인의 모습은 원공친체(圓空神體)라는 말로 표현된다. 속을 담백하게 비우고 겉으론 원만한 인간이다. 외유내걍(外柔內剛)한 사람, 서양의 신사(紳士)이고 동양의 무사(武士)나 화랑도, 또는 선비이다.       1. 독서(讀書)는 교양의 기본이다. 문학, 역사, 예술, 종교, 철학, 지질, 천문서(天文書)를 읽으면 인간, 역사, 우주를 이해하게 된다. 어휘력(語彙力)이 풍부해지고, 대국관(大局觀)을 갖게 되며 겸허해진다.       2. 뿌리의식은 인간 심리의 지주(支柱)이다. 조국, 고향, 가문(家門), 모교(母校)는 정서와 인격(人格)을 안정시킨다.       3. 스포츠와 예술(미술, 공연, 영화 등)은 쉼과 즐거움을 통한 재충전(再充塡)이다.       4. 야외(野外)활동은 인간본성 속의 야성(野性)을 일깨운다.          5. 교양은 균형 감각이다.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의 균형과 종합이다. 엄격과 관용의 균형, 자유와 민주(民主)의 균형, 문무(文武)의 균형은 일류(一流)의 조건이다. 고구려는 야성(野性)이 너무 강해 망했고, 조선은 지성(知性)이 너무 강해 망했으며, 신라는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을 두루 갖추어 장수(長壽)했다.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김유신(金庾信), 트루먼, 레이건, 처칠 같은 인물이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을 겸한 교양인이었다. 일류(一流)국가, 조직, 인간은 상반된 요소를 융합시켜 더 큰 에너지를 내도록 하는 포용력과 종합력의 소유자이다. 로마, 몽골, 신라가 그런 나라였다. 균형감각이 공적(公的)으로 표현될 때는 공정성(公正性)과 객관성이다.       6. 교양은 절도이고 정확성이다. 말은 정확하게 행동은 씩씩하게 한다. 교양인은 실수와 사고(事故)가 적다.          7. 교양(敎養)은 정의감(正義感)이고 용기이다. 교양인은 공정성과 공평성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 분노한다.          8. 교양(敎養)은 주체성이고, 조용한 너그러움이다.          9. 교양은 이해력이다. 자신과 타인(他人), 그리고 인간, 역사, 국가, 조직에 대한 이해력이 크면 다른 것, 틀린 것에 대한 포용이 가능하다. 자신을 알면 남을 이해한다. 자신이 있으면 남을 용서, 관용한다. 이해력과 포용력은 비례한다.          9. 교양인은 천재를 알아본다. 범인(凡人)에게 침을, 바보에겐 존경을, 천재(天才)에겐 감사를!         10. 교양(敎養)은 사회성이다. 즉 남에 대한 배려이다. 낮은 사람에게 뻐기지 않고, 높은 사람에게 굽히지 않는다. 특히 약자(弱者)에 대한 관심이 깊다.          11. 교양(敎養)은 인생관이다. 교양인(敎養人)은 인간존재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끊임 없이 탐구하면서 보람된 삶을 지향(志向)한다.          12. 교양(敎養)은 인간의 기본 토양(土壤)이다. 이 토양이 기름지고 풍요로우면 여기에 심는 전문성이란 나무도 잘 자란다. 밑변이 길어야 꼭지점이 높다.          13. 교양인은 교양어(敎養語)이다. 교양인의 대화는 격조(格調) 있고 즐겁다. 막말과 욕설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을 파괴한다.          14. 한국인의 교양(敎養)을 막고 있는 것은, 첫째 한자(漢字)말살-한글전용(專用)에 의한 민족문화, 미풍(美風)양속, 민족혼의 파괴이다. 둘째로는 민주주의를 악용한 선동이 무례(無禮)와 억지를 합리화해준다. 셋째로는 방송과 신문 등 대중매체가 흥미위주의 저질프로를 집중적으로 양산, 배포한다. 넷째 인격 없는 기능 교육이다. “인격 없는 전문가는 잘 훈련된 개와 같다.”(아인슈타인)      15.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 한국 지도층의 무례(無禮)와 무법(無法)과 無교양이 한국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16. 대중 민주 사회에선 교양 있는 국민만이 국익(國益)과 국격(國格)을 수호하는 국가 엘리트를 만든다.

배진영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4일 “2년 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면서 “대한민국 건국 100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100년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을 1919년이라고 단정 짓고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식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국가의 3요소는 국민·영토·주권이다. 이는 헌법학개론 책만 봐도 나오는 얘기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반도 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주권을 온전히 행사한 적이 있나? 국내에서 징세권과 징병권, 행정권을 행사했나? 임시정부가 단 한 나라로부터도 국가승인을 받았나? 국제법적 의미에서의 주권국가였나?    1919년 3월 1일 건국됐다면, 이 땅의 아들딸이 군함도에 징용으로, 전선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갈 때, 대한민국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둘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독립운동가들의 인식과도 배치(背馳)된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포함해서 누구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1년 11월 발표한 〈건국강령〉이다. 이 〈건국강령〉은 임시정부의 활동시기를 ‘복국기(復國期)’와 ‘건국기’, 즉 독립운동 단계와 건국 단계로 구분하면서 매 단계에서 임시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있다.    여운형은 1945년 8·15 직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1947년 3월에는 이승만 박사를 명예소장, 김구 선생을 소장으로 하는 건국실천요원양성소가 만들어졌다. 모두 ‘해방’은 되었으니, 이제는 ‘건국’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의 소산이었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후 건국 단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던 후대인들이 1919년 3월 1일 혹은 그 후 임시정부 수립으로 건국했다고 하면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이 웃을 것이다.      중국,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했다고 봐  1950년에 나온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1주년 기념우표(왼쪽)와 2009년에 나온 중화인민공화국성립 60주년 기념우표. 표현은 다르지만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1931년 11월 7일 장시성 루이진(瑞金)에서 수립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그것이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이 1929년 이후 무력으로 점거한 장시성 남부와 푸젠성 서부를 비롯해 저장성, 후난성, 후베이성, 허난성, 안후이성, 산시성, 간쑤성의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이들 ‘혁명근거지’에서 통치기구를 만들어 인민들을 지배하면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정부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군사위원회 주석 겸 홍군(紅軍) 총사령관은 주더(朱德)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헌법대강, 노동법, 토지법 등도 공포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제2차 국공합작 이후인 1937년까지 존속했다. 이념적으로나 인적 구성으로나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분명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태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보다 훨씬 실제적인 ‘국가’에 근접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정부나 국민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1931년 11월 7일에 건국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국경절(國慶節)로 기리고 있다.    2009년에는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 영화의 제목은 〈건국대업(建國大業)〉이었다. 기자는 10년 전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창사에서 마오쩌둥 흉상을 하나 샀다. 그 흉상에는 ‘개국영수 마오쩌둥 동지(開國領袖 毛澤東 同志)’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독립기념일’이 ‘해방절’로 둔갑  1948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전. 이날 대한민국은 주권을 회복했다.   정부가 올해를 ‘광복(光復) 72주년’으로 기념하는 것도 잘못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음’이라는 뜻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이다. 이후 3년간의 미군정(美軍政)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으로 주권을 되찾았다. 올해는 마땅히 광복 69주년인 것이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올해는 광복 98주년이어야 한다.    흔히 광복절을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광복절’은 원래 ‘해방절’이 아니라 ‘독립기념일’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1949년 5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에 의하면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 7월 17일은 헌법공포기념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광복절, 제헌절로 바뀐 것이다.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광복=독립=건국으로 인식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사에서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인 오늘을 우리는 제4회 해방일과 같이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한국민주당을 이끌던 김성수도 “금(今)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만 4주년이 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지 1주년이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950년 광복절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장 출신인 신익희 국회의장도 “대한민국 독립 2주년 기념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은 ‘광복=해방’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대구매일신문》은 1950년 전쟁 중에 치러진 광복절 행사를 ‘6회 광복절 기념식’이라고 보도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이런 오인이 확산되어, 신문은 물론 정부조차도 광복절을 1945년부터 기산(起算)하기 시작했다.    1948년 8월 15일에는 ‘정부수립’을 한 것이지 건국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8월 15일 건국 행사의 이름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엔감시하의 5·10총선, 제헌국회 구성, 제헌헌법 제정, 대통령 선출, 초대 내각 조각(組閣), 정부 수립, 유엔에서의 유일 합법정부 승인, 우방국들의 국가승인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건국 과정이었다. 그중에서 주권 회복을 내외에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상징적인 단계가 정부수립 선포였기에 1948년 8월 15일에 정부수립기념식을 한 것이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몇 대 대통령인가? 제19대 대통령인가? 이승만·박은식 임시대통령을 포함해 21대 대통령인가? 임시정부 대통령(2대) 외에, 국무령(10대), 주석(10대)를 포함해 41대 대통령인가?⊙

조화유

인천상륙작전 67주년   Victory has many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승리는 아버지가 많고 패배는 고아다”라는 말이니까, 성공한 일에는 공로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패한 일에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천 앞바다 작은 섬 팔미도에는 하얀 등대가 있고 그 아래 사진과 같은 기념비 하나가 있다. 거기에는 Douglas MacArthur(다글러스 매카앗서) 장군의 상반신 모습이 좀 어설프게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는 "등대에 불을 밝혀라!"라는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MacArthur의 비교적 정확한 발음은 “매카앗서”이므로 이 글에서는 맥아더 대신 매카앗서를 쓰기로 한다. 단, 아래 기념비 글은 적힌 그대로 옮긴다).   “1950년 9월15일 한국동란 승리의 전기를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작전으로서 세계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 작전을 성공하려면 팔미도 등대를 탈환, 점등해야 하므로 이를 위해 조직된 특공대는 유진 F. 클라크 미해군대위, F. 클락혼 미육군소령, 존 포스터 미육군중위, 계인주 육군대령, 연정 해군소령, 최규봉 KLO 고우트부대장 등 6명이었다.   9월14일 19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라는 다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9월14일 22시 격전 끝에 등대는 점령하였으나 점등장치의 나사못이 빠져 점화불능 상태,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기진맥진 엎드려 있던 중 우연히 등대 바닥에서 최규봉의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나사못이었다. 그래서 특공대는 드디어 등대의 불을 밝히는데 성공하였고 성조기를 높이 게양하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다 등대불과 성조기를 확인한 맥아더 사령관은 연합국함대 261척에게 인천앞바다로 진격명령을 내렸다. 이렇듯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한 특공대 중 군인 5명에게는 미 은성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최규봉 부대장에게는 등대에 게양했던 성조기와 맥아더 장군이 친필서명한 사진이 증정되었다. 그 성조기는 최규봉부대장의 기증으로 현재 맥아더장군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사진과 감사장은 우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제 6.25동란 50주년을 맞아 팔미도 등대가 간직한 희귀한 역사와 특공대원의 빛나는 공적과 아울러 이 작전에서 희생된 KLO대원들의 젊은 넋을 기리고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발자취가 깃들어 있는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는 바이다."   이 기념비는 인천상륙작전 50주년인 2000년에 새워진 것인데, 기념비에 새겨진 글은 당시 국방부 신문 ‘승리일보’ 주간이었던 시인 구상 씨가 쓴 것이라는데 우선 문인의 글 치고는 문장이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글의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팔미도 등대 불은 최규봉을 비롯한 6명으로 조직된 특공대가 켰다고 했는데, 최씨는 트루디 잭슨 작전(Operation Trudy Jackson) 즉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사전 준비작전의 멤버가 아니었다. 매카앗서 장군의 정보참모였던 차알스 윌로비 소장이 쓴 책 ‘MacArthur 1941-1951’에 의하면, 트루디 잭슨 작전 멤버는 클라크 해군 대위를 비롯해서 한국 해군중령 연정, 한국 육군대령 계인주, 미국 육군소령 노버그, CIA요원 클락혼 그리고 2명의 통신부대 위관급 미육군장교 2명 등 도합 7명으로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규봉은 자기도 트루디 잭슨 팀 소속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 7명 중 4명은 일찍 인천을 떠나고 팔미도 등대 점등에 참가한 트루디 잭슨 팀 멤버는 클라크, 연정, 계인주 셋 뿐이었다. 그러나 클라크는 최규봉씨가 팀 멤버는 아니지만 팔미도에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다. 클라크 회고록에는 최규봉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나 1957년 최씨가 성조기를 매카앗서 장군에게 선물하는 과정에서 미육군성이 클라크에게 물어서 최씨도 팔미도에 있었던 사실은 확인했다.   기념비에는 또 최규봉이 어둠 속에서 나사못을 찾았기 때문에 팔미도 등대 불을 켤 수 있었다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최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트루디 잭슨 작전 지휘관 클라크 대위가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등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최씨는 등이 전기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클라크는 등에 새겨진 글을 보고 프랑스제 석유등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또 최규봉은 등대에 불이 켜진 후 미국 국기 성조기를 자기가 등대에 게양했다고 했는데, 지휘관 클라크 대위의 회고록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그러나 미육군성 문서에는 팔미도에 성조기가 게양되었으며(누가 기를 게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 기는 나중에 최규봉씨가 가지고 있었다고만 기록 되어있다. 미육군성이 최씨의 말만 듣고 쓴 것인지 클라크의 확인을 받고 그렇게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팔미도에 정말 성조기가 게양되었다면 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있을 법 한데 현재까지는 그런 사진은 발견되지 못했다. 어쨌든 최씨는 이 성조기를 전쟁이 끝난 후 매카앗서 장군한테 기념품으로 보낸다.   그리고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 참가 군인 5명에겐 Silver Star(은성무공훈장)가 수여되었으나 민간인 최규봉은 등대에 게양되었던 성조기와 매카앗서 장군이 친필로 서명한 사진을 받았다고 기념비에 적혀있지만, 그것도 사실과 좀 다르다. 클라크 대위와 연정 소령이 나중에 은성훈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최규봉이 매카앗서 장군으로부터 친필서명 사진을 받은 것은 인천상륙작전 7년 후인 1957년 얘기며 그가 그것을 받게 된 것은 최씨가 취한 어떤 행동 때문이다.   그 어떤 행동은 이러하다. 최규봉은 1957년 8월 서울의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무관(웰즈육군대령)을 만난다. 그리고 매카앗서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본인이 직접 쓴 건지 번역사가 쓴건지 분명치 않지만 영어가 좀 서툴다)와 자기가 7년 전 인천상륙작전 때 팔미도 등대에 꽂았다는 성조기를 고급스런 자개무늬 상자에 넣어서 웰즈 대령에게 맡기면서 그 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인천에 매카앗서 장군 동상 제막식을 거행할 때 장군에게 좀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장군의 방한 계획이 없음을 알게 된 무관은 최씨의 편지와 성조기를 뉴우욕에 거주 중인 매카앗서 장군한테 보내기로 결정한다.   성조기와 최씨의 편지를 받은 매카앗서 장군 측근은 파티를 열어 그 선물을 장군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77세의 퇴역 장군 매카앗서는 뉴우욕의 한 호텔에 기거하며 적적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그를 위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여튼 측근들은 그해 11월6일 파티를 연다. 파티에는 약 30명의 현역 또는 퇴역 장성들과 민간인 몇 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최규봉은 파티에 초청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장군의 친필서명 사진과 감사편지를 서울의 미국 대사관 무관 웰즈 대령에게 보내고 최규봉에게 전해주라고만 했다.(1957 미육군성 문서) **이기붕 국회의장이 최규봉씨(오른쪽)와 악수를 하고 있다. 이 때만해도 최씨는 출세길로 들어섰다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 선물을 받은 최씨는 당시 한국 이승만 대통령에게 아들을 양자로 바친 국회의장 이기붕 측근과 접촉, 매카앗서 장군의 편지와 사진을 이 의장을 통해 전달받는 형식을 취하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증정식은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렸다. 그런데 최씨의 행운은 거기서 일단 정지한다.   이 전달식에서 최씨를 본 이기붕 의장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그러자 거기 참석한 한 사람이 최규봉을 이범석 장군의 측근이라고 소개한다. 이범석은 당시 이기붕이 싫어하는 정적의 한 사람이었다. 이기붕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이 사라졌다. 고위공직 자리 하나 줄 것이라는 귀띔까지 받았던 최씨에게는 날벼락이었다. (“국경 없는 기자단” 서울 특파원 김비태가 Bridge(가교) 잡지 1997년 3월호에 쓴 기사 참조) 이 행사는 주요 한국 신문이나 방송이 보도하지는 않은 것 같고 영자신문 The Korean Republic과 The Korea Times만 보도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최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그는 1962년 8월5일자로 매카앗서 장군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때는 장군이 별세하기 2년 전이라 그 편지가 전달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매카앗서 기념관에는 최씨의 편지만 보관되어 있다. 최씨는 자기가 팔미도 등대에 꽂았다는 성조기를 10만불(요즘 가치로는 100만불쯤 될듯)에 사겠다고 한 미국 신문사도 있었으나 거절하고 그 기를 장군에게 보냈다고 했다. 어쨌든 최규봉씨는 성조기를 매카앗서 장군에게 보내고 그 답례로 받은 장군의 친필서명 사진과 편지 덕분에 한국에서 영웅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신문, 방송들에 많이 그를 소개했다. 그 사진과 감사편지를 최씨가 받게 된 경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매카앗서 장군이 인정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다. 서울의 전쟁기념관에도 그 사진과 편지가 전시되었다.(지금은 전시가 되지 않고 있다 한다.) 필자는 2016년 10월15일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미국 버지니아 주 노옵호오크 시에 가서 MacArthur Memorial을 방문했다. 그곳의 curator(관리인) Corey Thornton 씨는 내가 미리 부탁한대로 최규봉씨와 관련 서류 뭉치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성조기도 보여주었는데 그 기는 지금은 전시장에 있지 않고 창고에 들어있다고 했다. 그와 함께 성조기를 자세히 보았지만 최씨가 말한 작전명령 번호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기의 가로 세로 길이와 기념관 자료번호(F6 139)만 적혀있는 평범한 성조기였다. 그곳의 archivist(고문서 전문가) James Zobel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최규봉 씨가 2002년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를 요청하자 응했는데 녹음기를 켜니까 갑자기 인터뷰를 중단했다고 말해주었다. 왜 그가 인터뷰를 중단했는지 알 길이 없다.   최씨가 KLO (Korea Liaison Office) 대원으로 한국전쟁에서 대공 첩보활동을 통해 유엔군을 도운 전공은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인천상륙작전 당일 매카앗서 장군을 기함에서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또 팔미도 등대와 성조기에 관한 그의 말이 과장되었거나 일부는 허위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역사는 가능한 한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필자는 최규봉씨를 만난 적이 없을뿐 아니라 그에게 아무런 개인감정도 없다. 솔직히 이런 글을 쓰는 걸 망서리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가 가능하면 정확하게 기록되어 후세에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클라크도 최규봉도 매카앗서 장군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조선일보, 월간조선 등의 한국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최규봉씨가 수십년 동안 계속 주장해온 것과 인천상륙작전 직전 2주 동안 인천 앞바다 섬들에서 정보수집 작전을 전개한 미해군대위 유진 클라크의 수기 내용을 비교해보기로 한다.   최규봉은 1950년 8월18일 인천 앞바다의 덕적도 섬에서 클라크 대위를 처음 만났으며 그때 클라크로부터 Operation Chromite(인천상륙작전의 공식명칭)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8월18일에 일본 토오쿄에 있었으며 8월26일에야 유엔군사령부 소속 육군소장 홈즈 대거와 해군대령 에드워드 피어슨으로부터 Operation Trudy Jackson(트루디 잭슨 작전 즉 인천상륙사전준비작전)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최씨는 9월9일 매카앗서 사령부로부터 팔미도를 장악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섬에 있던 북한군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클라크 대위는 한국 해군중령 연정과 두 차례 팔미도에 들어가 보았으나 그 섬에 적군은 없었으며 등대의 석유등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그의 수기에 썼다.   최씨는 9뤌15일 오전 0시 40분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켜라는 명령을 자신이 직접 매카앗서 사령부로부터 무전으로 받았으나 작은 나사 하나를 3시간 동안 찾느라 100분이나 늦은 오전 2시 20분에야 점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라크 대위는 사령부로부터 오전 0시30에 점등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그 섬에 미리 가 있던 한국인 협조자들이 클라크와 연정을 적으로 오인하고 발포를 하는 바람에 20분 늦은 오전 0시 50분에야 등대불을 켰다고 기록했다. 하필 그때 클라크가 2주 동안 작전본부로 쓰고 있던 영흥도를 향해 북한군이 처들어오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영흥도에서 머지 않은 팔미도에서 그런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이 있었던 것 같다.   최규봉은 자신이 팔미도 등대불을 켠 후 자기와 클라크, 연정, 계인주, 클락혼이 작은배를 타고 매카앗서 장군이 타고있는 함정 Mount McKinley호로 가서 매카앗서 장군의 정보참모 윌로비 소장을 만났으며 그의 소개로 매카앗서 장군도 만났다고 주장했다. 위 사진이 그날 찍은 사진이라고 최씨는 주장했다.  그러나. 후에 한국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함명수 제독은 위 사진이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인 9월15일 찍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사진에 보이는 두 미육군장교는 9월초에 이미 인천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함 제독과 그의 선배 이성호 제독은 ROKPC 703호 함정으로 클라크 팀을 지원했다. 이 제독도 후에 해군참모총장이 된다.) 위 사진에서 미육군 군복을 입고있는 한국인은 얼굴 한쪽만 보여서 그게 최규봉(당시 28세)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위 사진은 인천상륙작전 직전의 2주동안 클라크 팀을 도와준 한국인 지원자들과 찍은 사진이다. 최규봉은 이 유명한 사진에 자기가 들어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른쪽으로부터 클라크 대위, 한 사람 건너 계인주 대령과 연정 중령이다. 최씨가 클라크와 같이 찍은 게 확실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클라크 대위는 수기에서 오직 자기와 연정 중령 그리고 계인주 대령만이 상륙작전 시작 직후 작은 통봉배를 타고 매카앗서 장군이 타고있는 함정을 찾아가 그 배에 탔다고 수기에 적었다. 이 부분에 대해 그가 쓴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클라크는 망원경으로 매카앗서 장군이 타고 있을 기함(旗艦) 마운트 매킨리 호(號)를 찾아냈다. 그리고 통통배를 타고 연정, 계인주와 함께 기함 쪽으로 접근해갔다. 기함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그의 해군 장교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매킨리호 함상에서 누군가가 메가폰을 입에 대고 "접근하지 말고 정지하라!"고 소리쳤다. 매킨리호에서는 클라크 등이 타고있는 디젤엔진 통통선을 적의 자살특공 선박으로 의심한 것 같았다.   클라크는 통통선 선장(李씨로만 밝혀짐)에게 엔진을 끄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기함으로부터 소형 상륙정 한 척이 접근해 왔다. 거기에 탄 해군소위가 기관단총을 클라크 대위에게 겨누었다. "누구냐?" 소위가 물었다. "나는 미해군 대위 유진 클라크다. 사람 다치기 전에 총을 치워라!" 클라크가 대꾸했다. 소위는 기함으로 돌아가 함장에게 미해군 대위라는 자가 이상하게 생긴 작은 발동선에 타고 있다고 보고했다. 함장이 "그 자가 우리 해군 장교라는 걸 어떻게 믿을수 있나?"고 묻자 소위는 "우리 해군 장교모자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클라크가 먼저 기함에 승선, 신분이 확인되자 통통배에 남아있던 두 한국군 장교 연정과 계인주도 매킨리호에 올라갈수 있었다.   매카앗서 장군은 팔미도 등대 불켜는 것 몰랐다   클라크 수기에는 자기 혼자 또는 연정과 계인주를 데리고 함상에서 매카앗서 장군을 만다는 말이 없다. 만일 만났다면, 수기에서 반드시 언급했을 것이다. 일개 해군 대위가 전설적인 5성 장군 매카앗서를 만났다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데도 수기에 전혀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가 장군을 직접 대면한 일이 없다는게 나의 판단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의 판단을 뒷받침해 준다. 사실은 매카앗서 장군도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고, 오직 클라크 대위의 직속 상관들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65년에 출판된 매카앗서 장군 회고록 "Reminiscences"(회고)를 보면,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비밀이 적에게 누설되지 않았음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썼을 뿐, 팔미도 등대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저 멀리 바다 위에서 불이 하나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인천항구로 들어가는 길목인) 비어수로에 항해등이 켜져 있었다. 적은 우리에게 완전이 기습을 당한 것이다. 적은 항해등도 끄지 않았다."   또 상륙 당일 장군을 바로 옆에서 취재한 미국 종군기자 칼 마이던도 TIME지(1950년 9월25일자)에 이렇게 썼다. "인천 항구쪽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도일 해군 제독이 매카앗서 장군에게 "적이 (고맙게도) 항해등까지 켜놓았군요"라고 말하자 장군은 "(그 놈들) 예의 한번 바르군"이라고 말했다." 장군이 타고 있던 군함에서 팔미도 등대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으므로 등대불이 항해등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권위있는 한국전쟁사로 유명한 In Mortal Combat (John Toland 씀) 187쪽에도 매카앗서 장군은 팔미도 등대 점등 보고를 받은 바가 없다고 기록되어있다. 또 매카앗서 비평서인 MacArthur: The Naked Emperor (벌거벗은 황제 매카앗서)에도 매카앗서는 details(지엽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는 지휘관이라고 말하고, 팔미도 점등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최규봉은 그 바쁜 상륙작전 첫날 그것도 오전 10시경에 자기가 다른 5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매카앗서 장군을 함상에서 만났고, 소원이 뭐냐고 해서 팔미도에 게양된 미국국기를 선물로 달라고 했더니 장군이 허락하더라고 주장했다.   최씨가 매카앗서 장군을 면전에서 만난 일이 없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그가 장군의 키가 175cm에 불과했다고 월간조선 기자에게 말한 것이다,(2003년 9월호 월간조선) 그러나 장군의 키는 6 feet 즉 182cm여서 아이젠하워 대통령보다도 5cm가 더 컸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하여   2016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면 클라크 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임병래와 홍시욱을 포함한 한국인 17명이 모든 첩보활동과 전투를 도맡아 했으며, 팔미도 등대 점등도 한국인들만 9월 14일 밤 팔미도에 들어가서 인민군과 싸워 이기고 등에 불을 킨 것으로 그려져 있다. 영화니까 스토리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어버리면 클라크 대위 같은 진짜 영웅들을 잊어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천상륙작전 준비작전의 최고지휘자는 유엔군 최고사령부가 직접 보낸 클라크 대위였다. 그는 그의 한국인 전우 연정이나 계인주와는 달리 전쟁이 끝난 후 자기 선전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인천에서 2주 동안 적어둔 일기를 50년 동안 벽장에 넣어두고 출판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작고한 후 가족이 그 수기를 기억하고 그가 별세한지 2년 후 겨우 햇볕을 보게된 것이다. 이런 겸손한 영웅의 솔직한 일기가 책으로 발간된 것이 바로 The Secrets of Inchon이다. MacArthur Memorial 본관 정문에서 필자

류근일

 “MBC 파업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력 기자 중심으로 구성된 MBC노동조합(제 3노조=파업 반대 측)에서 현 시기를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에 비유,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해 주목된다.”-뉴데일리 9/14  인간에게 가장 절망하는 때는 우세한 쪽의 갑(甲)질을 목격할 때다. 약한 쪽이 강한 쪽에 대드는 게 아니라, 한창 득세하고 있는 쪽 ‘쫄따구’들이 ‘형’ 빽 믿고 약한 쪽에 알통자랑 하는 건 정말 보기 메스껍고 추하다. 세상이 바뀌면 그런 완장부대가 의례 나타나 상대방에 집단 스토킹을 해대고 행패를 부린다.  반면에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잃을 뻔 했다가도 되찾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MBC 제3 노조 성명처럼, 자신들에게 썩 이롭지 않은 상황을 의연한 마음가짐으로 견뎌내려는 사례를 목격할 때 바로 그렇다. MBC 제3 노조의 ‘위기=전화위복의 기회’란 말은 그 래서, 오늘을 사는 우울한 마음들에겐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흑사병이 돌 당시 유럽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MBC 제3 노조 성명대로라면 그 당시 유럽인들은 그 황폐한 시대가 던져주고 있던 이면(裏面)의 교훈-즉 “인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읽고 새로운 희망의 출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런 흑사병 시기 유럽인들의 통찰력이야말로 오늘을 아파하는 암울한 심정들에게도 큰 위안과 치유가 되고 남는다.      직장과 직무의 계속성을 지키려 애쓰는 MBC 제3 노조로서는 지금 누구보다도 위안과 치유의 말을 가장 필요로 하는 당사자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히려 바깥의 동병상련(同病相憐)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치유가 될 메시지를 던졌으니, 그 만큼 그들이 정신적으로 건재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 마음이라면 이 어려운 국면을 능히 잘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패하는 자는 누구인가? 인간본성에 배치되는 자는 한 때 득세할 수 있어도 결국은 무너진다. 실존주의자 메를로 퐁띠가 내비친 생각이다. 스탈린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스탈린은 한 때 강자였으나, 결국은 그의 사후에 후르시초프에게 격하 당했다. 그는 인간본성을 너무 거역했다. 같은 공산주의자도 견딜 수 없었을 만큼. 이걸 믿는다면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운 정서와 보편적인 느낌을 위배해선 안 될 일이다.  인간이 그런 자연스러움과 보편적 느낌을 가장 잃기 쉬운 때가 바로 전쟁, 내전, 혁명 같은 환란의 시기다. 프랑스 혁명 때, 혁명 진영은 너도 나도 급진과격 경쟁을 벌이다가 혁명 전체가 괴물처럼 타락하고 말았다. 스페인 내란 때도, 중국 홍위병 사태 때도, 십자군 전쟁 때도, 중세기 종교재판 때도, 크메르의 폴 포트 혁명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완전히 미쳐 돌아갔던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MBC 제3 노조의 성찰적 발언에 각별히 주목한다. “흑사병 환란 때처럼 인간의 소중함을 깨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 힘겨운 싸움의 현장에서도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움과 보편적 느낌을 잃지 말자는 다짐으로 들린다. 가장 시끄러운 때 가장 온유하게, 가장 차분하게 말한 그들에게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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