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 케 브랑리 박물관의 ‘십이류면류관’   2018년 10월 25일, 문화유산회복재단 조사단은 스포츠 토토의 후원을 받아 프랑스 국립박물관인 케 브랑리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박물관은 2006년에 개관한 곳으로 건물 외관부터 특이하였다. 박물관은 에펠탑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은 주로 인류 초기의 문명 유물 30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조사단은 이곳에 19~20세기 수집한 한국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어렵게 열람 허락을 얻어 방문하였다. 한국 유물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십이류면류관’이었다. 조사단을 맞이한 박물관 측은 특별 열람실에 ‘십이류면류관’을 전시하고 관련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컴퓨터도 연결하였다.   십이류면류관은 ‘황제’만이 착용할 수 권위의 상징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황제국을 자칭하면서 자신만의 열두 줄 구슬이 달린 면류관을 사용하였지만 조선은 아홉 줄이 달린 구류면류관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조선은 황제국이 되었고 십이류면류관을 사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순종황제가 십이류면류관을 쓴 사진은 있으나, 고종황제의 십이류면류관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사진조차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다. ■ 1898년 스테낙께르가 수집했다 조사단으로 참여한 김나래 박사는 수집 경위와 관련하여 “면류관의 경우 다른 한국 수집품과 함께 처음에는 1898년에 기메박물관으로 스테낙께르에 의해 기증되었다. 이후 1981년 트로카데로에 있는 인류 박물관(Musée des hommes)으로 다른 아시아 유물들과 함께 옮겨진 후, 다시 2006년에 께 브랑리 인류사 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1904년에 발간된 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기증자 명단에 요코하마의 프랑스 영사였던 스테낙께르가 있으며, ‘돌조각상 하나와 한국의 머리장식 및 모자 컬렉션을 기증했다(Steenackers-Consul de France à Yokohama. Une statue pierre. Une collection de coiffures coréennes)’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여기에서의 하나의 컬렉션이라는 표현이 모호하여 구체적으로 그 수량과 형태를 이 글만으로는 자세히 추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께 브랑리 박물관의 십이류면류관 유물 카달로그에는 기증자에 대한 정보와 함께 아래와 같은 옛 한국 모자의 형태, 왕실용 모자제작 등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Série de chapeaux coréens envoyés au Musée Guimet en 1898 par M. Steenackers le donateur.Les chapeaux doivent se placer sur le sommet de la tête, ils ne sont pas faits pour être enfoncés, ce qui explique la petitesse du tour de tête, il en est de même pour la plupart des bonnets, sauf ceux en crin tressé et ceux formant capuchon, destinés à protéger du froid. Ces derniers se portent toujours sous le chapeau. Dans les couvre-chefs coréens présentant une partie plus haute que l’autre, la plus élevée est destinée à couvrir la tête, cette disposition a pour but de loger le topnot, touffe épaisse de cheveux relevée en forme de chignon, que les hommes portent au sinciput. Les chapeaux et bonnets royaux ne peuvent être confectionnés que par certaines personnes possédant ce droit héréditairement, nul autre ouvrier, sous peine de mort, n’a le droit de fabriquer les coiffures royales. Il est interdit à ceux qui sont autorisés à fabriquer les chapeaux du roi, de vendre ces objets, sous les peines les plus sévères. Les coiffures royales hors d’usage ou ne plaisant plus au souverain, sont détruites au Palais.기증자 스테낙께르에 의해 1898년 기메 박물관에 보내진 한국 모자들모자들은 눌러쓰는 것이 아닌 머리 위에 놓는 스타일로 머리 둘레가 작은 편인데, 말총으로 짜여진 것(탕건)이나 두건형태의 것을 제외한 추위를 막기 위한 대부분의 헝겊 모자들도 이와 같다. 이것들(탕건이나 두건들)은 항상 모자 아래에 쓰여진다. 한국의 두건식 모자들은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높은데 가장 높은 부분은 머리를 덮는 곳이며, 이러한 형태는 남자들이 전두부에 머리를 틀어올린 상투끝을 놓기 위한 것이다. 왕실의 모자들은 대를 이은 특별한 장인들만 제작할 수 있으며, 다른 장인들은 왕실 머리장식이나 모자들을 만들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사형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왕의 모자를 만들거나 심지어 파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일반적인 경우) 사용할 수 없거나 왕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왕실 모자들은 궁에서 파기된다.≫설명대로 왕실에서 사용된 물품들은 궁에서 파기되기 때문에 어떤 경로로 궁 밖으로 유출되었는지, 어디에서 스테낙께르가 구입해서 1898년에 프랑스에 기증하게 되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참고로 이 면류관 외에도 께 브랑리 박물관에는 한국 왕실 의례 때 쓰였던 금관(목록번호 71.1981.93.18 D) 등 관모(官帽)를 소장하고 있는데 역시 같은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십이류면류관은 박물관의 홈페이지(collections.quaibranly.fr)에는 머리쓰개(coiffe)류로 분류되어 있으며, 목록번호(71.1981.93.21 D), 면류관이라는 한국식 발음 명칭, 인류 박물관에서 이전된 유물, 19세기 후반, 재질(종이, 천, 밀랍), 크기와 무게(20x25x20cm, 177g) 등의 기본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오렌지색, 빨간색, 녹색의 12줄 구술 끈과 붉은 술이 특별한데 홈페이지의 첫 줄에 ‘공식의례를 위한 황제의 머리장식’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이후의 설명은 위의 카달로그 내용과 동일하다.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구류 면류관과 구장 면복을 입은데 반해, 황제는 십이류 면류관과 십이 장복을 입었음을 고려할 때 이 면류관이 대한제국 선포 이후 1897년경 제작된 고종황제의 면류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께 브랑리로 이전된 이후 먼지가 제거되고 떨어진 술과 면판의 박락된 모서리부분을 붙여놓았으며, 전체적으로 유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대한제국의 ‘십이류면류관'이 아니다조사단이 촬영한 면류관의 사진을 본 궁중복식전문가들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우선 구술 줄이 앞면에만 있고, 구슬의 배열과 면판도 오동나무면판이 아닌 종이에 천을 배접한 점 등 대한황실의 제작기법, 형태, 재질 등에 있어 상이함으로 유사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참고로 대한제국의 십이류면류관에 대한 기록은 에 있다. 대한예전은 대한제국이 창건됨으로 새롭게 제정한 예전으로 ”시일야방석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이 각고의 노력 끝에 편찬하였다.     ■ 프랑시스 프레데릭 스테낙께르 Francis-Frédéric Steenackers (1858-1917)김나래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프랑시스 스테낙께르는 유명한 행정가이자 조각가, 역사가, 문학가였던 프랑소와 프레데릭 스테낙께르(François-Frédéric Steenackers, 1830-1911)의 아들로 30살 무렵부터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88년 스위스의 프랑스 부영사를 역임했으며, 같은 해 기사훈장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1891년부터 일본의 프랑스 공사관에서 부영사로 일했다. 이 시기 스테낙께르는 일본 미술품 애호가였던 정치가 조르쥬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1841-1929)의 ‘눈’이자 자문 역할으로 그의 많은 일본 미술작품과 민속품 수집을 돕게 된다. 이 시기의 외교관들이 과학조사(mission scientifique)를 목적으로 현지의 민속학 자료 및 유물들을 수집해 프랑스로 보내는 일을 수행했다. 아시아 예술품에 해박했던 스테낙께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과 한국의 민속품 등을 수집해 프랑스로 보냈으며, 1898년에는 기메 박물관에 십이류면류관을 비롯한 한국 민속유물들을 기증했다. 께 브랑리 박물관 카달로그에는 모자(삿갓, 면류관, 사령모자 등)류, 머리장식품, 부채류들의 기증자로 기록되어 있다.1900년부터 1906년까지는 나가사키 및 요코하마 프랑스 영사로 일했으며, 폴 포탕의 군사자문이자 일본 전문가로 유명해졌다. 1908년에 프랑스 공사관이 일본에서 문을 닫게 되며, 스케낙께르는 프랑스로 돌아와 58세의 나이로 파시(Passy)에서 사망한다.저서로는 우에다 토쿠노스께(Uéda Tokunosuké)와 함께 프랑스어로 편찬한 이 있다. 1885년에 파리에서 출간된 이 책은 각 페이지마다 소소한 일본인들의 일상을 그린 삽화들과 수묵화들이 포함되었으며, 각 격언마다 스테낙께르가 상세한 해석과 설명을 한 점이 인상적이다. ■ 대한제국 선포의 역사적 의미와 면류관의 ‘진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박물관에서 기록한 수집시기와 수집가에 대한 내용과 궁중복식연구가들의감정결과에 따라 케 브랑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유물의 출처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십이류면류관이 유사품이라면 이를 박물관에 알리고 바로 잡아야 하고 국내 연구자들의 기술적 범위에서의 감정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자주독립국가의 상징인 ‘십이류면류관’은 ‘만세’운동의 상징성과 함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귀중한 단서가 될 것이다.

박동운

바른사회시민회의·대한민국수호비상국민회의·선진통일건국연합 등 보수 진영 11개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로 1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진영 시국 대토론회’를 갖고 ‘보수 통합’ 기치를 내세웠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반(反)대한민국 세력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보수 우파 자유 진영은 통합과 단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보수 원탁회의를 만들어 보수 대통합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고, 김종석 의원은 “한국당이 플랫폼 정당이 돼서 이념과 가치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치 세력을 단결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토론회에서 등장한 ‘보수 원탁회의(圓卓會議, Conservative Round Table Conference)’를 이야기한다. 원탁회의는 회의 참가자들의 서열에 집착하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발언 할 수 있는 회의로, ‘둥근 테이블’을 이용한다. 원탁회의 아이디어는 아서 왕 전설에서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위한 탁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원탁회의가 위력을 발휘한 사례는 뉴질랜드 노동시장 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데이비드 롱이 총리는 1984년에 정권을 잡자마자 영국의 마가렛 대처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구조개혁은 순조롭게 추진되었으나 노동시장 개혁은 막강한 노조 파워에 막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1984년 이후 10여 년 동안 정권이 세 차례나 바뀌었을 정도로 노조 파워는 막강했다. 뉴질랜드는 두 차례나 노동시장 개혁에 실패한 후 1990년 10월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이 무렵, 1986년에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한 일단의 영향력 있는 기업 인사들이 조직한 ‘뉴질랜드 기업가 원탁회의(New Zealand Business Roundtable)’가 급진적인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1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법’ 개정과 ‘특별법’이 적용되어 온 노동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보통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자유계약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개혁을 선거의 핵심 이슈로 내건 국민당이 1990년 10월 선거에서 재집권한 후 1991년 5월 15일에 ‘고용계약법(Employment Contract Act of 1991)’을 도입함으로써 뉴질랜드 노동시장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 원탁회의’가 한 몫을 했다.‘원탁회의’는 한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1년 7월에 출범한 소위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가 그것이다. 이 내용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에 잘 나타나 있다. ‘2013년체제 만들기’는 백낙청 중심의 좌파들이 당시 이명박 정부가 끝나면 우파를 무너뜨리고 좌파 정부를 세우자는 정치 계획이었다. 이들은 2011년 11월 26일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이해찬 전 총리, 함세웅 신부,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상근 목사, 이창복 민주통합시민행동대표,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이학영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대표 등 20∼30여 명의 좌파 원로들과 시민정치조직 핵심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첫 원탁회의를 가졌다. 이들의 계획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문재인 대선 후보가 이끈 ‘촛불시위’가 박근혜 정부를 조기 퇴진시키고 문재인 정부를 들어서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원탁회의’는 위력을 발휘했다.    최근에 들어와 한국 정계에서도 ‘진보 대 보수’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어 이 기회에 나는 20개 항목에 걸쳐 ‘진보와 보수의 성격’을 비교한다. 내용 자체가 어렵지 않은 데다 지면의 한정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한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는 프랑스혁명(1789∼1794) 때 등장한 말이다. 왕정체제를 무너뜨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 한 공화파가 ‘진보’, 왕정체제를 고수하여 기존체제를 유지하려 한 왕당파가 ‘보수’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미래와 기존체제 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자 변화를 추구하고, 보수는 기존체제 내에서 전통적 가치를 찾아내 이를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정치 이념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은 반시장·친규제·복지·평등·큰정부 등을, 보수정당은 친시장·친기업·반규제·경쟁·작은정부 등을 지향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보수=우파’는 자유한국당이 대변한다. 그 외의 야당은 좌파, 반보수 등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진영 11개 시민단체가 ‘보수 통합’ 기치를 내세웠는데, 그렇다면 ‘보수 원탁회의’도 좌파의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처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보수 원탁회의’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출발’에 그치지 말고 면밀하게 스케줄을 세워 2020년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능력 있는 보수 인사들이 수없이 많다. 11개 시민단체들은 더 많은 보수 단체들을 통합하여 보수 원로들을 원탁회의로 불러내, 문재인 좌파 정부에서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고견(高見)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간의 건실한 이념 논쟁은 대한민국 발전에도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승열

디지털 시대에는 고정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사무실이 필요없다. 컴퓨터가 바로 온라인 사무실이 된다. 사무실의 위치, 크기와 화려한 외관 등이 회사의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 되어 왔다. 지금도 여전히 사무실의 외형은 회사 신뢰성의 척도다. 그러나 문제는 번지르르한 외형에 따른 고비용이 모두가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 정보가 공개·공유되기 어려운 시대에는 어쩌면 불가피한 면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디지털 시대다.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공유되는 블록체인(Blockchain) 시대다. 주된 업무와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처리되어 오프라인 상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도심 번화가에 사무실을 열고 값비싼 기자재를 들여놓아 회사 방문객이나 소비자의 눈을 현혹시킬 필요가 없게 되었고 고정비용 역시 크게 줄이게 되었다.   이른바 온라인 혁명은 직원들의 출퇴근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자의 업무는 컴퓨터만 있으면 되니 컴퓨터가 있는 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노트북과 핸드폰 그리고 약간의 협업을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충분하다. 회의는 온라인상으로 진행되니 별도의 회의실이 불필요하다. 실제 일부 스타트업 회사는 오프라인 사무실이 없고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다만 정기적으로 국내 또는 해외에서 워크숍을 하면서 상호 의사소통의 원활성과 효율성을 도모한다.   물론 현재는 온라인 업무와 오프라인 업무가 상호 공존하면서 상호 보완하는 상태에서 비즈니스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도기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OSO(Online to Offline·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서비스는 비즈니스에서 사무실의 개념 역시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사무실이 아니라 어느 정도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이 있고 이 공간에서 운동 및 음악 등을 즐기면서 필요하면 회의도 하는 그런 공간이면 최상일 것이다. 물론 물품을 저장할 공간은 필요하겠지만 이 역시 창고의 공유화 등을 통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해외 출장을 가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호텔의 비즈니스센터는 의외로 이런 면에서 좋은 공간이 된다. 컴퓨터 시설 등이 제공되며 기타 비서적인 기능도 지원받을 수 있다. 연계된 호텔 내 헬스클럽 역시 운동도 즐기지만 사무실 기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등의 경우 비즈니스센터 내에 있는 회의실은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고 그 호텔의 브랜드만큼의 품격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시설은 공유 시설이기에 한계성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비용 대비 가성비는 엄청나게 높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실제로 호텔 헬스클럽에서 핸드폰과 노트북을 가지고 운동을 하면서 고객들과 연락도 하고 필요하면 비즈니스센터에서 사무실, 컴퓨터 및 비서 등의 지원을 받아 회의 등이 가능하다. 물론 비즈니스의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고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나 적절하게 오프라인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면 최상의 가성비를 가진 사무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을 좀 더 확대해 복합리조트 시설에서 적절한 비서 기능 등의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환상적인 사무실 공간이 될 것이다. 집, 사무실, 여가, 사교활동 등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쾌적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래의 유망산업 중의 하나가 바로 리조트산업일 것이다. 일본의 아베 수상은 리조트 산업의 육성을 미래산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제는 사무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쾌적하며 멋진 온라인 공간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변혁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김승열

독일 바이마르의 도시 전경 몇 해 전 필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독일 로펌에서 방문 변호사로 지내며 인류의 천재인 괴테의 삶을 더듬을 수 있었다. 필자가 찾은 괴테하우스(프랑크푸르트 소재)는4층 정도의, 비교적 아담한 건물이었다. 처음엔 괴테가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어서 한번 쯤 방문해 볼만한 곳이라는 정도의 감흥만 있었다. 그러던 중 괴테가 말년을 보낸 바이마르에도 괴테의 가든하우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도대체 인류가 낳은 최고의 천재는 왜 바이마르에서 장년과 노년을 보냈는지가 궁금하였다. 바로 일정을 잡아 바이마르로 향했다. 알다시피 독일은 기차 교통수단이 잘 발달한데다 중앙기차역으로부터 1시간 반경 내에 모든 시설과 주택이 위치해 있다. 가든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이마르의 괴테 가든하우스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의 가든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보다 조금 화려할지 모르지만 전체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 심은 꽃들 역시 수수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괴테의 수수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할까. 괴테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宰相)으로 초대 받아 말년을 보낸 곳도 이곳이었다. 말년의 애인에게 열렬한 연애편지를 쓰기도 했다. 필자는 가든하우스에서 괴테의 행복한 노년을 떠올려 보았다. 이곳이야 말로 괴테의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 곳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자극과 도전의식은 괴테로 하여금 추호의 주저함이 없이 과감하게 하고 싶은 일을 감행하는 성취동기를 부여했으리라.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경건한 마음으로 재조명하면서 좀 더 도전적이고 배우는 삶으로 승화시키려 애썼을 것이다. 괴테는 일찍이 청년시절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평생 1,000점 이상의 스케치를 남기기도 했다. 재상으로 공적인 성취감을 맛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탈리아로 여행길에 올라 2~3년을 보냈으며 국립극장 단장이자 연출자로서도 활동하고 나아가 배우로 출연한 적도 있다. 의학공부도 즐겨 당시 의학계가 찾지 못한 뇌의 한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필자에게 괴테는 단순히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위의 시선이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깊이 와 닿았다. 그런 과감한 결단과 도전의식이 그의 천재성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괴테는 필자에게는 결코 따라가기 어려운 존재지만 마음으로는 필자의 영원한 롤 모델(?)로 남아있다. 괴테의 삶을 흉내 내 먼저 필자만의 가든하우스를 만들고자 마음먹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2019년이 그 실천의 원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필자의 형편에 맞고 글로벌 시대이자 디지털 시대에 맞는 필자만의 소박하고 현실적인 가든하우스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희망컨대 언젠가 필자만의 가든하우스를 소개하고 이에 따른 칭찬과 동시에 혹한 비난에도 그저 감사하며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상상해 보면 저절로 미소가 감돈다.

김승열

지난해 중국 샤먼(厦門)에서 열린 중국과 EU 간 지적 재산 보호 컨퍼런스 모습이다. 중국의 지식재산권법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의 모습이 느껴진다. 최근 베이징의 지식재산권 법원은 국내 ’미르의 전설‘ 게임업체인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가 중국의 웹게임 '전기패업' 개발사인 37게임즈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에 따른 서비스 금지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간 지식재산권 보호와 관련, 중국 법원이 가지는 불확실성 내지 불투명성 탓에 우려가 컸으나 이제 중국 법원의 태도가 종전과 많이 변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 예로 중국이 지식재산권 전문법원을 설립하고 나아가 기존 특허법을 개정하려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중국의 특허권 출원 건수가 세계에서 거의 제일 많을 정도로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지식재산 권리의 최대 수출국가다. 자국의 지식재산권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중요 이슈 중의 하나가 지식재산권 보호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은 1984년에 제정한 특허법에 대하여 4번째 개정법안을 상정하였다. 개정안에는 손해배상의 산정이 어려운 특허침해의 경우, 법정 손해금의 범위를 현저하게 증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전 1만~100만 위안 정도에서 10만~500만 위안으로 대폭 증액한 것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전의 법정 손해금은 특허 침해자가 매출이나 이익 관련 자료를 폐기하거나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특허권 침해로 인한 실손해 배상금액을 제대로 산정할 수 없어 금액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을 통한 법정 손해금 인상은 물론, 실효성 여부에 관한 부분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중국 자체가 이제는 지식재산 권리의 수출국가로 거듭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여진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온라인사업자에 대한 배상 책임의 부과이다. 즉 플랫폼 사업자가 자신의 플랫폼에 각종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작품이 있을 경우 이를 삭제하거나 봉쇄하여 보이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면 법적 책임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중국 특허법 개정안에는 필터링 업로드 조항(위법한 저작물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자신의 플랫폼에 업로드 하도록 한 조항) 중 특허권 침해 여부에만 한정하고 있어 실효성에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유럽의 저작권법 지침이 많은 논란을 낳고 있지만, 중국의 특허법 개정안은 큰 논란을 낳지 않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개정안이 단지 특허법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특허법이 아닌 저작권법 개정이었다면 EU저작권법 지침과 마찬가지로 파장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저작권법도 조만간 이번 특허법 개정과 같은 맥락으로 개정을 추진하면 그 파장은 생각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중국에서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 정부와 중국 지식재산권 전문법원이 보여주는 태도는 아무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좀 더 중국 지식재산권법에 대한 연구와 자료 축척을 통하여 국내 기업이 중국에서 제대로 된 지식재산권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중 자유무역조항에는 이러한 분쟁을 감독하도록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책이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차제에 범국가 차원에서 대중국 지식재산권보호 시스템 구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동윤

달리면서 즐기는 풍경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이전에 어떤 정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어떤 장소가 자아내는 각각의 느낌들은 주자가 세상을 접촉하는 기분과 심리에 따라 다르며, 물과 숲, 공기와 땅, 그리고 그들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  달리기는 땅과 공기와 물과 숲 등 원초적이고 원소적인 세상과의 만남의 수단이다. 달리기는 사회적인 공간을 세상에 종속시킴으로써 우리 내면에 성서러운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와의 인연을 통해 자신의 근원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감을 느낀다.도시 자연 속에 묻혀 오랫동안 평범한 사물들을 까마득히 잊고 심드렁하게 지내온 도시 사람들에게 이런 메아리 같은 내밀한 울림은 기적마냥 놀라운 감격적 사건이다. 그런 만큼 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뿐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한 겨울에 차가운 냉기 속을 숲속이나 들판을 달리면 그때의 기억은 마음속에 남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찬 바람이나 눈속에 서면 우리는 무한하고 진동하는 어떤 우주 속에 던져진 피조물로 되돌아간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낮과 밤, 더위와 추위, 비와 눈 같은 자연 현상들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대면시킨다. 그에 따른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아쉬움, 또 오늘이나 내일 다시 그런 순간을 되풀이하여 맛보고 싶은 향수에 젖게 된다. 그런 경험은 일상의 지각에서 시작하지만, 자아를 초월하는 피안의 세계와 접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겨울은 더할 수 없는 낭만과 감동의 세계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수한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섬뜩한 두려움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마음의 준비나 의복 등 보온 대책이 부실한 상태에서 출발하면 처음 얼마 동안의 즐거움이 몸이 서서히 부자연스럽게 굳어지는 고통과 불안이 공포로 변하면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주위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요한 겨울 냉기에 기가 꺽여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달리기는 희열을 향한 자기 개방이다. 주변 환경과 몸으로 직접 만나는 일이므로 여러 장소의 감각적 조건에 끊임없이, 거리낌없이 자신을 맡기게 된다. 냉기는 달리기에 소금과도 같은 것이다. 추위가 규칙적 질서를 뒤흔들어 놓기는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보증한다.길은 살아 있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언제나 여유를 가지고 우리를 어디론가로 데려간다. 길이 제 갈 길이나 제 목표를 모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길을 밟는 발의 관능적인 쾌감은 어떤 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미끄러운 길까지도 재미있어한다.달리기는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몸을 맡긴 채 더듬어가는 길을 벗삼아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 매순간 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끼고 배우게 만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거쳐가는 길 위의 숱한 사건들을 골고루 기억하고 즐기게 된다. 

김승열

일러스트=조선일보DB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는 말이 실감난다. 즉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를 뜻한다. 선택이라는 결정은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또는 수천 번의 상황으로 다가온다. 물론 어떤 결정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는 결정하는 사람도 아니,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보면 필자 역시 인생에서 수많은 결정의 순간이 있었고 작지만 의미 있는 순간이 있었다.   먼저 고교에서의 계열 선택이 떠오른다. 문과냐 이과냐는 무척이나 고민스런 문제였다. 글을 읽는 독자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필자의 경우 황당한 동기에서 결정했다. 중학교까지 전교 1등을 했던 필자는 고교에 진학해 선의의 경쟁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가 문과를 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과로 정했다. 사실 필자의 장래 희망은 의사였다. 그러나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가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지만 그때의 결정이 우연이라기보다 계시, 운명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두 번째는 대학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욕심일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최고의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런데 확신이 없었다. 안전한 학과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에다 원서를 냈다. 과감하게 지원하였고 운 좋게 합격했다. 지금도 가끔 지적받는, 이유 없는 자신감의 기초가 되는 행운까지 맛보게 되었다. 스스로의 용기에 대한 과분한 보답 같기도 하다.   미국유학 시절의 일이다. 기왕의 유학길이니 미국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 룸메이트도 미국인으로 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이가 공교롭게도 미국인 여대생이었다. 그 학생은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등하교시켜 주겠다고 친절한 제안까지 했다. 어쩌면 너무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미국의 룸메이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친구가 여자 룸메이트와 생활을 우려하며 “한국에서 이상한 소문이 날수도 있다”는 등 부정적으로 말해 영 신경이 쓰였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혼자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학생들과 같이 룸메이트를 했다면 좀 더 미국문화에 친숙했을지 모르겠다.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뉴욕사무실 뿐만 아니라 워싱턴DC 사무실로 옮겨 좀 더 일해도 좋다는 승인을 로펌 경영진으로부터 마침내 받아냈다. 필자가 재직하던 로펌은 컬럼비아 법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로펌 중 하나였고 톱10 로펌 중의 하나였다. 또 주미 한국대사관의 자문변호사 사무실로 지정되어 국내 및 국제적으로 여러 가지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었다. 향수병에 걸린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종용했다. 당시 신혼초인 데다가 아내 태도가 워낙 강경했다. 필자로선 새로운 기회의 상실뿐만이 아니라 워싱턴DC 사무실로 이전을 도와준 분들까지 난처하게 만드는 등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내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서초동에서 법인을 운영하던 필자는 비교적 운영이 잘되기는 했으나 ‘규모의 경제’에 대한 욕심이 났다. 주위의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강북의 법률사무소와 합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을 합친 이후 문제가 생겼다. 주로 혼자서 업무 결정을 하던 필자에게 다소 이질적인 다른 법률사무소의 환경 내지 문화가 아주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게 느껴졌다. 나아가 필자의 의욕을 완전히 떨어드릴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각하였다. 그간 지시만 했지, 수평적논의에 익숙지 않았던 필자에게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고 아웃사이더로 비쳐졌다. 그래서 결별하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필자가 진행하여 온 핵심 업무가 결별시 새로운 인가가 불가능하도록 갑자기 법 규정이 개정되었다. 그 업무를 중단하게 되면 필자 사무실로서는 기본적인 운영조차 어려울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니 포기할 수도, 추진할 수도 없이 그냥 엉거주춤하게 시간만 낭비하게 되었다. 외도라고 할까, 본연의 변호사 업무보다 자연스럽게 다른 관련 업무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최고경영자 과정, 외국 학위과정, 서울법대 박사과정, 칼럼쓰기, 방송출연, 강연, 그리고 변협과 대한특허변호사 활동 등등으로 대외활동을 활발히 했다. 나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얻고 잃은 것을 따지면 궁극적으로는 거의 제로인 셈이었다. 그때 유․불리를 떠나 과감하게 새로 시작하였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당시에 과감하게 결단을 하였다면 필자의 로펌을 좀 더 알차게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역시 또 다른 결정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고집대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당당하게 대응해, 만약 성공을 하게 되면 큰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실패하면 필자가 감당할 불이익이 너무 크다. 주위에서는 너무 고집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당당하게 정면 대응하는 짜릿함에 마음과 몸을 던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엄청난 불이익을 생각하면 고집 피울 것이 아니라 그저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무식한 용기와 절제된 균형감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곳에다 방점을 둘까. 결과는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차피 운칠복삼(운이 70% 복이 30%)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나름 잠정 결론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중에 덜 후회하는 길”이라는 가르침만이 귓가에 울릴 뿐이다.

이동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업무가 자동화, 디지털화되면서 직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근무하고 퇴근해서도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거나 책을 읽는 등 하루 종일 일어서는 일이 출, 퇴근시 주차장이나 전철역까지, 그리고 식당이나 화장실 갈 때뿐인 경우가 많다.또한 바쁜 일상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이렇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생활습관이 거북목과 요통, 그리고 수핵탈출증과 복부비만 등의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등 전체적으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넘어 짧게 운동하고도 몇 배의 효과를 거두는 '간헐적 급속 운동(인터벌 훈련)'이 바쁜 직장인들의 운동법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무조건 식스팩과 근육을 만들거나 충분히 오래 해야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예를 들어 '5분 건강법'처럼 매일 몇 분간 짬짬이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헬스센터나 운동장에서 땀 흘리면 오래 운동하는 것 못지않는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짧은 시간의 운동이 엉덩이와 허리 살을 빠지게 하고 혈압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미국 스포츠의학저널 발표에 의하면, 혈액 속 저밀도 지방과 중성지방을 줄이는 데는 저녁 식후의 짧은 걷기가 오래 운동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최근 일부 직장에서 서서 일하는 문화가 소개되기도 했다.2016년의 한 연구 발표에 의하면, 서서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도 칼로리 소모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 번에 90초씩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행동이 한 번에 15분씩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행동보다 더 많은 칼로리와 지방을 소모시킬 수 있다.실험 참여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8시간 내내 앉아서 일하고 화장실 갈 때만 일어났다. 두 번째 집단은 15분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 집단은 90초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두 번째 집단은 첫 번째 집단에 비해 10.7% 더 칼로리를 소모했지만 세 번째 집단은 20.4% 더 소모했다. 4주 후 두 번째 집단은 평균 1.2kg을, 세 번째 집단은 2.2kg이 빠졌다. 결론적으로 더 자주 일어서는 행위는 지방의 산화를 촉진해 체중관리에 도움이 되었다.앉았다 일어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근육과 에너지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앉았다 일어나는 시간 간격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더 효과적으로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서서 일하는 방식보다 서 있기와 앉아 있기를 반복하는 행동 습관이 더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일상 속에서 가능한 간헐적 급속 운동으로 바닥에 닿을 만큼 등을 구부렸다 펴기, 높은 선반에 무언가를 올렸다가 내려놓기, 제자리에서 뛰기, 지그재그로 걷기, 뒤로 걷기 등도 근육 강화에 효과적이다. ‘매일 5분은 꼭 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금상첨화의 건강법이다.

엄상익

어릴 적 친구가 사업을 마친 후 인생의 제2막을 ‘빵장수 야곱’으로 변신했다. 광고회사를 하던 그는 일거리를 따내기 위해 평생 ‘을 노릇’을 해왔는데 염증이 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그는 신이 났다. 밤이면 맑은 물에 깨끗하게 씻은 팥을 삶아 체로 쳐 정밀한 앙금을 만들어냈다. 일본영화 ‘도라야끼’의 주인공처럼 좋은 단팥빵 만드는 게 그의 신앙처럼 보였다. 그는 늙은 나이에 일본의 ‘앙꼬’를 만드는 장인을 찾아가 사정을 해서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단팥빵과 원두를 갈아서 막 뽑은 커피를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표정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해 연말 어느날 밤 그의 가게에 들렸다. 그가 오븐에서 바로 나온 단팥빵과 차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나와 마주앉았다. 중학생 시절 삼선교의 어둠침침하고 허름한 빵집에서 둘이 앉아 빵을 먹었었다. 이제 노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단팥빵을 놓고 서로 마주앉아 있다. “야, 이 빵좀 봐라”그가 앞에 있는 자기가 만든 빵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오븐에서 빵이 바로 나왔을 때는 이렇게 반들거리고 빵이 탱탱해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쪼글쪼글해지는 거야. 요즈음 알게 됐는데 큰 제과업체들은 빵이 시간이 흘러도 쭈그러들지 않게 하기 위해 밀가루에다가 다른 걸 섞는다는 거야. 먹는 사람들의 건강보다는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게 목적인 거지.” 그가 말하는 ‘상품’이라는 단어가 화두같이 내 머리에 들어왔다.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을 만들어 경쟁한다. 목적은 돈이다. 돈을 얻기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정직하게 번 돈이 아닐까. 그가 말을 계속했다.“내가 또 다른 것도 발견했어. 국수도 면발이 쫄깃쫄깃 하게 하기 위해서 찬물에 헹구기도 하고 체로 털기도 하거든. 그런데 그런 시간을 들이기 싫어서인지 밀가루에 다른 걸 섞는 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국수가 노릇노릇하고 탱탱해 지는 거지. 그러니까 국수집 가서 국수가 지나치게 탄력이 있고 노르스름하면 한번 의심해 봐.”“먹는 걸 가지고 그렇게 장난을 치나?”나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상추를 한번 봐. 그거 농약을 안치면 벌레가 다 먹지 이파리가 남아있지 않게 돼. 또 따서 몇 시간만 지나도 풀이 다 죽어. 밭에서 나는 식물이라는 게 모두 그래. 그게 자연의 법칙이지. 나뭇가지를 잘라봐. 몇 시간이면 생생하던 게 바로 말라 버리잖아? 그런데 마트의 진열대에 있는 상추를 사다가 이삼일 둬도 그냥 생생해. 신기하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출하하기 직전에 약을 친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라는 거지.”돌아오는 내내 ‘상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농부가 사과나무에 달린 게 돈으로 보이고 밭에서 자라는 게 지폐로 보인다면 그가 농부일까. 내가 오랫동안 해 온 변호사업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의뢰인이 돈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가 아니라 악덕 장사꾼이었다. 상품이 아니라 인품을 파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정직한 노동으로 버는 깨끗한 돈은 거짓이 섞인 많은 돈보다 낫다. 액수로 하지 말고 질의 깨끗함으로 했으면 좋겠다. 돈이 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정직한 노동이 귀중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유혹을 이기고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정직한 돈을 얻어야 막스베버가 말한 것처럼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자본주의의 목적을 이룬 게 아닐까.

김승열

와인과 치즈 (이미지_픽사베이)한국의 저작권법에 의하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한다. 그 예로 음악, 미술, 영상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어느 정도 독창적인 창작물로 음식의 맛이나 향기 등이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예”와 “아니오”다. 적어도 EU법원에서 향기는 저작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음식맛은 저작물이 아닌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표현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논리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   2006년에 화장품회사 랑콤은 케카파(Kecafa)를 상대로 이 회사가 자신의 트레조르(Tresor) 향수를 모방하였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향기를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느냐 였다. 랑콤은 “향기가 지각능력으로 인지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독창성이 있으며, 저작권자의 특징 등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향기는 장미 등 여러 요소를 결합하여 장기간의 노력을 투입한 결정체”라고도 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랑콤의 주장을 받아들여 향기의 저작물성을 인정했다.   반면 EU 법원은 음식맛에 대해선 다른 결론을 내렸다. 네덜란드의 한 크림치즈 생산업체가 경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 주력품의 맛을 베꼈다는 것이 이유였다.  EU의 최종 사법기관인 유럽사법재판소는 고심 끝에 ‘음식맛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기에 저작권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음식맛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선 좀 더 명확하고 객관적인 맛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맛은 음식을 맛보는 사람, 연령과 음식에 대한 선호, 환경 그리고 음식을 먹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향기와 비교하여 볼 때 논란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향기 역시 주관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향수는 일찍이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음식맛은 아직 독자적인 산업화의 과정, 특히 체계적인 맛에 관한 과학적 연구자료가 다소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음식맛에 대한 과학적 분석자료 등이 보강된다면 저작물의 보호대상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음식 역시 상당기간 투자와 노력을 투입하여 이루어진 하나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맛과 향기는 사법제도에서 중요한 주장과 입증 책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법이 상식에 기초한다면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관념에서 보면 상당기간 투자와 노력의 결과물인 맛과 향기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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