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영세기업은 이미 올해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사업이 존폐 위기에 몰렸다...경영계가 강력히 주장한 사업별 최저임금 차등화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별다른 대안 없이 최저임금을 다시 올려 우리 사회의 열악한 업종과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더욱 빼앗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됐다” 중소기업 중앙회 성명이다.  소상공인 연합회도 문재인 정부가 내년엔 최저임금을 10.9% 인상해 8350원으로 하겠다고 하자 이에 불복해 '국민 저항권' 발동을 선언했다.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경제계의 중-소 약자들이 계급투쟁을 일으킨 셈이다. 누구를 상대로? 자칭 ‘진보’ 권력을 상대로. 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계급투쟁 하면 그건 무조건 대자본가와 우파정권을 향해서만 일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럽쇼, 그게 요샌 자칭 ‘진보’를 향해 터지고 있다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 이른바 자칭 ‘진보’ 정권의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물건이 어쩌다 소화불량에 토사곽란이라도 일으켰는지, 그놈의 걸 삼켰더니 성장은커녕 그나마 간신히 유지했던 일자리마저 없어지는 등 역효과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런지 도처에서 곡성(哭聲)이 하늘을 찌른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 했다. 신념만 있고 공부는 짧은 선무당이 생사람을 곧잘 잡는다. 이른바, 소위, 자칭 ‘진보’는 젊었을 때 신군부의 권위주의에 깊은 원한과 증오심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거기까지는 작용-반작용의 자연현상이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 원한과 증오심이 그들의 영혼에 씌어버린 것이다. 빙의(憑依) 현상이다. 원한과 증오의 좀비가 된 그들은 자유체제, 시장원칙, 서방세계, 이윤동기, 지구화, 자유기업 특히 대기업으로 표출되는 기성 우파 세상을 극도로 저주하게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그 어떤 종류인가의 레프트(left) 투사가 되었다. 그 투사들은 정교한 공부보다는 투박한 교리(敎理)와 주문(呪文) 몇 개로만 무장해, 자신들이 일단 정권을 잡고 나서는 대번에 그 교리와 주문대로 대한민국의 복잡한 ‘경제 정밀기계’ 핸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등, 미성년자 운전자 노릇 또는 돌팔이 의사 노릇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평등’ 과 ‘해방’을 위해서란 구호로.    차베스가 따로 없다. 경제를 증오심과 메시아 의식과 국가만능주의와 섣부른 기계적 평등론을 가지고 시장의 원칙에 반(反)하여 난폭운전 하듯 운전하면 그게 바로 차베스다. 차베스는 지금 망하고 없다. 자신만 망친 게 아니라, 베네주엘라 국민을 길거리로 내몰아 닭 잡아먹고 개 잡아 먹게 만들어 놓은 다음 자빠졌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한국의 자칭 ‘진보’는 지금 제2의 차베스의 길을 가려 하는가?  그들은 전(前) 정권 탓으로 이 모든 책임을 몽땅 뒤집어씌우려 한다. 삼성이 이윤을 올린 것도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일 뿐이라며 폄하한다. 매사 내 탓은 없다. 모두 남 탓이다. 이게 자칭 ‘진보’의 상투적인 버릇이요 체질이고, 그들의 사는 법이다.  더 두고 보자. 내버려 두자. 하고픈 대로 하라고 그러자. 말리지 말자. 자업자득일 것이다. 그게 인과법칙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저들은 더 한다. 그러니, 더 해라 더 해라 해야 한다. 그래 더 해라, 더 해라, 오이구, 정말 잘하네...자아아아~~알 한다, 얼씨구~. 아무렴. 여부가 있나!!

은열

영국 역사학자 겸 작가 폴 존슨이 쓴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주영사)를 읽다 한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1946년에 17살이던 나는 운 좋게도 처칠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가 있었다. 처칠 아저씨, 아저씨의 성공 비결이 뭔가요? 처칠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에너지 보존이지. 앉을 수 있을 때 절대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을 때 절대 앉지 않는 거란다.”(39~40p) 잠깐 멍했고 이내 풋, 웃음이 났다. 그러곤 아끼는 펜 한 자루를 꺼내 진하게 밑줄을 쳤다.요령부득, 내달리기 바빴던 얼치기 시절신문사에 다닐 때 업무 성격도, 강도도 낯선 부서로 발령이 났다. 덜컥 겁이 났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까짓것, 다 사람 하는 일인데 나라고 못 할 것 없잖아? 일단 부딪쳐보지, 뭐!’ 이후 한동안 악전고투의 시간이 이어졌다. 꾀와 요령이 무슨 말이냐는 듯 종종거리며 아이템을 발제했고, 일단 통과된 아이템은 어떻게든 데드라인을 지켜 송고했다. 퇴고할 땐 조사 하나 구두점 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켰으며, 원고를 보낸 후엔 숨 돌릴 틈 없이 그다음 아이템을 고민했다. 마감 직후 우르르 몰려가는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단 착석한 후엔 권하는 이 하나 없어도 성실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러면서 내심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만하면 너무 잘 해내고 있는 것 아냐?’사달이 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다. 회사에서 1년에 한 번 시켜주는 정기 건강검진차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몸 어딘가에 혹이 있고, 심지어 계속 자라고 있으며, 개복(開腹) 수술이 유일한 제거법이란 사실이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현실 부정과 분노 폭발, 자포자기 단계를 거쳐 결국 40여 일간의 병가(病暇)를 받아 들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입사 후 최장 휴가’를 거지반 병원과 이불 속에서 보냈다.퇴원 후 한동안 고향 부모님 댁에 내려가 지냈다. 매일 아침 ‘엄마표 집밥’으로 속을 채웠고 ‘허해진 몸 보(補)하는 데 최고’라는 보양식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걸을 만하면 아버지와 길지 않은 동네 산책을 다녀왔고, 수술 부위가 당겨 움직이기 힘들면 오래 찜(만) 해놨던 책을 몇 권씩 쌓아놓고 뒤적였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내처 잤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긴 날도 적지 않았다.‘에너지 수도꼭지’ 틀고 잠글 때 알아야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스물다섯 넘으면 웬만해선 안 바뀐다고.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뜻밖의 긴 휴가 후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곤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긴 했다. 일단 야근과 술을 줄였다. 일 없이도 불쑥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쭸다. 바쁘단 이유로 소홀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일부(이긴 하지만) 복원했다. 아무 약속 없는 평일, 아무 계획 없는 주말을 조바심내지 않고 의연하게 맞았다.인간이 평생 쓸 에너지는 유한하다, 고 이제야 생각한다. 살아보니 하루에 쓸 에너지와 1년간 쓸 에너지, 10년에 걸쳐 쓸 에너지가 얼마쯤은 정해져 있었다. 효율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르고 20대 후반의 나, 30대 초반의 나는 내 안의 에너지가 화수분이라도 되는 양 마구 퍼 썼다.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내달렸고 기어이(어쩌면 당연히도!) 탈이 났다. 그러고도 한참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1874년생인 처칠은 92세까지 살았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앉을 수 있을 때 절대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을 때 절대 앉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걸 싫어했지만 살아생전 그가 남긴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노벨문학상이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였고,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 국회를 감동시킨 연설가였다. 10년 넘게 야인으로 떠돌면서도, 좌절할 시간을 쪼개어 아끼는 샴페인과 시가(cigar)를 즐기며 자신이 평생 머물 저택을 손수 짓고 수리했다. 그의 말마따나 에너지 보존의 위력이다.만약 당신이 ‘갓 입사해 이제 막 일의 재미를 알아가는’ 직장인 초년생이라면 내 40일 병가 후기나 처칠의 에너지 보존 법칙 따위,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해한다. 나 역시 직접 맞닥뜨리기 전까진 도무지 와 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은 전부인 듯 보이는 회사 생활도 인생 전체를 놓고 따지면 일부에 불과하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 살다 보면 본인 건강이나 배우자 상황, 자녀 교육 등 생각지 못했던 변수의 등장으로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당신이 지닌 에너지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러니 남은 기간, 소진 계획을 최대한 면밀히 세울 필요가 있다. ‘내 에너지’가 나오는 수도꼭지의 개폐 시점과 횟수를 현명하게 판단, 결정해야 한단 얘기다.오래, 잘 사는 지름길? ‘내 한계’ 깨닫기“힘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힘은 낸다고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슬프다고?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자신이 보유한 힘의 유한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지혜롭게 써야 오래, 그리고 잘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칼럼을 읽느라 소비한 당신의 에너지가 모쪼록 아깝지 않았길.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김승열

톈진에서 필자와 함께 라운딩을 한 패널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다. 오늘은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된 첫날. 오전 6시에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27클럽’으로 향했다. 선수들은 오전과 오후에 각 포볼과 포섬으로 36홀 라운딩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필자는 패널로서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첫 번 째 홀로 향했다. 선수들의 비장한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선수단은 젊어 보이는데다 몸매도 호리호리하여 예사롭지 않았다. 반면 우리 선수들은 50대 후반이나 60대의 중장년층이었다. 신구 세대 간 대결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드라이버 거리부터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선전을 기원하며 응원전을 펼쳤다.   중국 시골 골프장의 추억을 만들어준 톈진 포춘 레이크 골프 클럽장 입구 모습이다. 한편, 필자와 패널들은 톈진의 다른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경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전해들은 말로는 중국의 10대 골프장의 하나라고 해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그런데 도착한 골프장의 입구가 실망스러웠다. 골프하우스도 동네 골프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골프 코스만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락커룸에 갔더니 시골 목욕탕 같은 분위기였다. 또다시 놀라웠으나 그래도 낙관적은 믿음을 놓지 않았다.   캐디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소위 말하는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마져도 통일된 복장이 아니라 제멋대로였다. 더 놀라운 점은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는 점. 또 캐디언니들은 거의 다 중장년층의 아주머니나 할머니로 보였다. 젊은 여성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버린 것일까.   한 가지 더. 4인의 캐디 중 1인은 젊은 남자였다. 이 친구가 팀장이고 4인의 캐디단 전체를 이끈다. 그렇다고 남자 캐디가 낯선 존재는 아니다. 최근 남자 캐디가 국내 골프장에서도 느는 추세이긴 하다. 놀라움의 정점은 주중 라운딩 비용이 800위엔 즉 거의 15만원 수준이라는 사실이었다.   골프 코스 역시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이곳이 어떻게 중국 10대 골프코스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비에 걸린 사진에는 2010년 무렵 중국 10대 골프장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폐쇄된 신코스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글 검색을 통해 확인한 천진 포춘 레이크 골프 클럽(Tianjin Fortune Lake Golf Club). 이 골프장은 18 & 36 개의 홀이 있으며 길이는 7,237 야드, 파 72, 3,500mn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또 폭이 넓고 페어웨이와 모래 구덩이가 있으며 물이 막혀 있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어쨌든 뜨거운 날씨에 열심히 라운딩을 마치고 사워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엔 현지인 팀이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어를 하는 직원이 전혀 없어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맥주를 시키고 국산 라면을 주문, 맛있게 먹고 골프라운딩의 추억을 되새겼다. 숙소로 돌아와서 보니 ‘27클럽’의 품격이 새삼 높게 와 닿았다. 이를 느끼게 하려고 시골 골프장 라운딩을 준비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든 색다르고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동윤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이고 체감온도가 32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계속되면 폭염주의보가,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이면  폭염 경보가 발효된다. 또 오후 6시에서 다음 날 오전 9시까지의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어 더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이 열대야이다. 열대야에 잠을 잘 청하려면 낮에 신체활동을 많이 해 밤에 몸이 피곤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적당한 운동은 숙면에 좋으므로 잠들기 최소 3시간 전 가까운 공원에서 가벼운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것이 좋다. 농구나 배드민턴 등 강도가 높은 운동을 하며 땀을 빼고 나면 잠일 잘 올 것 같지만 격렬한 운동 역시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쫓는 역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벼운 운동을 30분 정도 하는 것이 가장 숙면에 도움이 된다.  덥다고 옷을 벗고 자면 체온유지를 위해 신체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통풍이 잘되는 얇고 시원한 옷을 입고 자는 것이 좋다. 잠들기 전에는 스마트폰, TV, 컴퓨터, 노트북 등 전자기기는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식사는 잠들기 3시간 전에 마치도록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한 두 시간 전에 40℃ 정도의 미지근한 물로 20분간 목욕이나 반신욕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것이 체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목욕뿐 아니라 발과 종아리를 40℃ 정도의 따뜻한 물과 16℃의 찬물에 5분씩 번갈아 담그는 족욕을 4~5회 반복하면 좋다. 몸은 체온을 항상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이 더우면 땀을 흘려서 체온을 낮추며, 추우면 피부 근처에 혈액이 순환하는 양을 줄여서 열을 외부에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찬물 샤워로 체온이 갑자기 내려가면  체내의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이 흥분해 혈관을 수축시킨다. 혈액이 순환하는 양을 줄여서 외부에 열을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혈관이 수축되면 혈압이 올라가고 이는 신체가 긴장하게 된다.  긴장 상태에서는 잠이 잘 올 수 없다. 뜨거운 물도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게 만든다. 외부의 열이 혈액을 통해 몸에 전달되는 것을 줄이려는 자율신경의 반응 때문이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 신체의 긴장을 풀어주고 혈압을 낮춰줄 수 있다.  바나나의 마그네슘 성분은 세로토닌의 생성을 돕고 근육을 이완시켜 숙면을 유도한다. 키위에 함유된 칼륨과 칼슘, 마그네슘은 마음을 진정시킨다. 특히 이노시톨 등의 영양소는 신경전달 기능을 도와 숙면에 효과적이다. 체리는 필수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풍부한 과일이며, 상추 역시 멜라토닌의 함유량이 높다. 특히 줄기 속에 있는 투명한 흰색 수액 속에는 락투세린이 있는데 진정효과와 최면, 진해효과가 있어 숙면에 도움이 된다. 우유에도 멜라토닌의 주성분인 트립토판이 많다. 카페인이 풍부한 커피, 홍차, 초콜릿, 콜라 등은 각성효과가 있어 중추신경을 자극해 숙면을 방해하므로 오후 3시 이후에는 삼가는 것이 좋다. 특히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을 청하는 사람이 많은데, 진정효과로 빨리 잠들게 하지만, 체온을 높여 숙면을 방해한다.

배진영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은 위기 상황이었다. 공화당의 기수(旗手)였던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치욕 속에 사임했다.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닉슨 사면에 대한 비판 여론, 월남 패망, 제1차 오일쇼크 이후의 경제난, 그리고 어딘지 굼떠 보이는 언동으로 인기가 없었다. 대선(大選)에서는 민주당의 승리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은 197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레이건은 소리 높이 보수(保守)의 가치를 외쳤다. 결국 그는 47.4%의 지지를 얻어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에게 석패(惜敗)했다. 안타까워하는 지지자들에게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그것은 긴 전쟁에서 하나의 전투에 불과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정치 신념을 전파(傳播)할 것이다. 낸시와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것으로 우리 일은 끝났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만든 바로 그 믿음과 신념들을 갖고 그곳에 있기 바란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은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타협하지 말라. 편법에 의지하지 말라. 그리고 제발 부탁하건대,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 말라.”    “절대로 냉소적이 되지 말라. 여러분 자신을 보고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보라. 그리고 여러분과 뜻이 같은 수많은 미국인들이 있음을 인식하라. 그들은 우리의 이상을 지지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1976년 대선에서는 지미 카터가 압승했지만, 4년 후 선거에서는 레이건이 완승했다. 그리고 이후 30여년간 이어질 미국의 정치구도를 만들었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레이건혁명’이라고 한다. 그 혁명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레이건이, 그의 지지자들이, 그들의 가치(價値)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투쟁한 덕분이었다.⊙

김주덕

사랑을 하든, 연애를 하든, 사랑이 식어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다면 쿨하게 헤어져라. 그렇지 않고 어느 일방이 집착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A는 B와 연애를 했다. 2년간 연애를 했는데, 둘 사이가 시들해졌다. B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A가 특별한 매력도 없고, 사회적 능력도 없어서다. 그러나 A는 여전히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고 B가 없으면 못 사는 그 정도도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연락을 끊은 B의 태도에 화가 났다.   B는 귀찮게 생각해서 A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A는 계속해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다. 나중에는 B가 A의 전화에 대해 수신 거절, 차단 조치를 해놓자 이메일로 협박성 글을 썼다. 음성메시지로도 남겼다.   그래도 B가 일체 응답을 하지 않자, A는 공중전화로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B를 만나러 일부러 집 근처로 찾아가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B는 A를 상대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A의 의도는 단지 약이 올라서, 화가 나서 B에게 따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B의 자유의사에 반해서 만남을 강요하고,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할 듯한 언행을 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는 이유로 조사를 해서 처벌하려고 한다.   A에게 적용될 처벌법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요죄, 협박죄, 원치 않는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반복해서 범한 죄. 미행행위 처벌조항 등이다.   물론 A는 억울할 수 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충분히 이별의 사유를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A의 사정이다. B는 다르다. 싫어서 그만두는데 왜 꼭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전과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종전에는 남자가 여자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면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끈기를 가지고 어렵게 사랑을 성취한 성공사례라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개인의 완전한 자유보장,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장, 강요행위의 금지, 불법적인 수단에 의한 사랑의 쟁취금지 등이 광범위하게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과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쿨하게 헤어져라. 남자가 싫다고 하면 그냥 떠나라. 상대방에게 미련을 갖지 마라. 싫다는 사람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조화유

자동차로 본 우리 가족 이민사   1973년 7월29일은 필자가 미국 유학을 위해 혼자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에 도착한 날이다. 아내와 두 아이(아들과 딸)은 6개월 후 뒤따라왔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신발이다. 더구나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중소 도시에서는 자가용 차가 없으면 꼼짝을 할수 없는게 미국이다. 나는 유학생이어서 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학생용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기 때문에 처음 6개월은 그럭저럭 차 없이 견뎠으나 가족이 온 뒤에는 차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1974년 여름 첫 차를 샀다.   60불 주고 산 고물차 바로 위 사진이 그 차다. 1965년에 나온 Mercury Monterey란 큰 차인데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 근처에서 샀다. 어느 주유소 백인 주인의 부인이 타던 차라는데, 이미 8만 마일(약 13만km) 가까이 뛴 고물차였으므로 단돈 60불을 주고 샀다. 이 차가 새 차였다면 당시 4000불 정도는 줘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부품 몇개 갈고, 중고 타이어 하나 사 끼우고, 엔진 오일 가는 것 등에 약 90여불이 더 들어가 결국 첫 차 마련에 150여불을 쓴 셈이 되었다. 당시 다섯 살, 세 살이던 우리 아들과 딸은 한국서는 꿈도 꾸지 못할 자가용 생겼다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첫 차를 산지 1년만에 우리는 L.A.로 이사를 가게 되어 이 차를 팔았다. 한국인 미국 대학 교수가 부인이 샤핑하러 갈때만 쓸거라며 80불에 샀다. 60불에 사서 80불에 팔았으니 20불 남은 장사였다고 해야 하나?   L.A.에 가서는 다른 고물차를 300불 주고 샀다, 1965년형 Oldsmobile Cutlass라는 뚜껑을 열 수 있는(convertible) 중형차였다, 이 차는 한국인 자동차 정비 기술자가 타다가 팔려고 내놓은 것인데, 시운전을 하던 중 뒤따라오던 차에 추돌을 당해 뒷 밤퍼가 좀 쭈구려졌다. 상대방 운전자는 미국 흑인 여자였는데, 그녀가 가입한 보험사 직원이 나와 보더니 나에게 수리비 368불을 계산해 주었다. 그래서 차값 300불을 제하고도 68불이 더 생긴 셈이 되었다. 내 차를 뒤에서 박은 그 여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텔 비용을 아끼려고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네 식구기 차안에서 잠을 잤다. 1974년형 Impala 뒷 창문 아래서 자고 있는 네살난 딸.L.A,에서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한 나는 1975년 봄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미시간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1974년형 Chevy Impala 대형차를 4000불에 월부로 샀다.(위 사진) 그러나 미시간에서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다시 L.A.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미시간 주에서 워싱턴 D.C.로 가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남서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테너시주에서 친구 집에 들려 하룻밤 신세를 지고, 그 다음 부터는 계속 밤에는 샤핑센터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네 식구가 잤다. 주머니엔 단돈 300여불 밖에 없었으므로 숙박비를 아끼려고 그랬다. 마침 여름이고 또 차가 커서 차 안에서 네 식구가 잘 수 있었다. 몸이 가냘픈 딸 아이는 뒷 유리창 밑에 들어가 잤다. 가난해서 자동차로 거의 1주일 동안 대륙횡단을 한 덕분에 Grand Canyon, Las Vegas 등에 들려 관광은 많이 했다. L.A.에 되돌아와 Impala를 3년 동안 56,000 마일 달리고, 1978년 9월에 네번째 차 1978년형 Ford Thunderbird를 7500불 주고 샀다. 타던 차 Impala를 1200불로 쳐서 trade in하고 (헌 차를 새차 값의 일부로 쳐주는 것) 나머지 6,300불은 월부로 갚았다. 캐딜랙 다섯번 째 차는 1981년형 Cadillac Fleetwood 하늘색 대형차를 23,000불에 월부로 섰다. 캐릴랙이 비싸긴 하지만 아내와 세 아이(미국에서 막내 아들 출생)를 태우고 다닐 차였으므로 나는 좀 무리를 해도 크고 든든한 차를 샀다. 이 캐딜랙은 5년쯤 탔는데 한번은 집사람이 몰고 가다 L.A. downtown freeway에서 트럭과 옆을 살짝 부딛치는 접촉사고를 당해 팔아버리고 같은 싸이즈의 1986년형 Cadillac Brougham을 에 샀다. 이번엔 검은색 차인데 먼저 캐딜랙보다 조금 더 고급형이었다. 우리의 여섯번째 차다.   그 다음 일곱번째 차가 이번에 팔려간 그 차다. 1995년에 4만9천불 주고 샀는데 가끔 oil change만 해주고 무려 22년을 탔다. 나의 자동차에 대한 상식은 거의 zero 상태라 엔진 오일만 갈아주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정비 스케쥴에 따라 부품도 갈아주지 않고 무식하게 휘발유만 넣고 계속 몰고 다닌 탓에 주행거리 15만 마일이 넘어서자 여기 저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두 달 전 부터는 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배터리 문제인가 해서 새것으로 갈았으나 며칠 가다 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crank up해야 겨우 사동이 걸리더니 마침내 시동이 아주 걸리지 않았다. odometer(오다미터/주행거리판)에 155,576마일(약25만 킬로)이 나타난 작년 7월 8일이었다.   탱크 같이 든든하던 그 차가 우리 식구에겐 정말 고마운 차였다. L.A.에서 4년, 워싱턴에서 18년, 도합 22년을 탄 차, 사고라곤 1999년 워싱턴에서 소형차와 옆을 약간 스친 것 뿐이었다. 그 때 소형차는 많이 찌그러졌으나 우리 차는 멀쩡했다. 그만큼 강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차체였다. 그래서 한번도 body shop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 차 안에만 들어가 앉으면 안정감이 들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수명이 있는 법, 그렇게 든든하던 그 차도 22년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단돈 1500불에 그 차를 인수한 새 주인이 잘 정비만 하면 몇 년은 더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가거라, 정든 차야! 그 차를 떠나보내는 날 내 눈엔 정말 눈물이 고였다. 우리집 앞에 세워둔 차 2대. 검은차가 최근 판 것이고 은색차가 현재 타고 다니는 차다.위 사진은 22년 동안 탄 헌 차와 이번에 새로 산 차를 우리집 앞에 나란히 세우고 찍은 것인데 검은색 차가 팔려간 헌 차이고 은빛 차가 새로 산 차다. 같은 자동차 회사가 만든 이 두 차의 이름을 독자 여러분들이 한번 맞춰보시기를... 2018년 7월 워싱턴에서 조화유

이경희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요?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눈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거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때, 문득 숨을 멈추고 다시 돌아본다.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가, 이게 화양연화인가, 하고. 어린 청춘 시절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고, 내가 바라기만 하면 행복은 내 곁에 머물 것이라고. 그 멍청한 생각이 얼마나 웃긴 것인지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처절한 삶의 논리 같은 것이었다. 행복이란 건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세상을 굴러다니고 있으며, 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취하거나 나를 버리고 달아나는 존재라는 것을. 바람난 연인처럼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아서도 안 되는 손에 쥔 바람 같은 것이란 것을. 2000년대 초반,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생소한 제목에 마음이 팔려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물론 주인공 양조위 때문이었다. 당시 내 눈엔 그의 어떤 모습도 다 좋았지만, 이 영화 스틸컷엔 전에 보이지 않던 색다른 모습이 많아 더욱 가슴이 설렜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멜로임에도, 영화관에 걸린 사진에선 남녀 주인공의 웃음이나 행복한 표정이 전혀 없었다. 음울하고 심오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거기에 단정하게 블랙 수트를 차려입고 담배를 피우는 양조위의 눈빛은, 나 같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을 어두운 관람석으로 밀어넣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빛에 끌려들어 가 처음 알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화양연화’라 일컫는다는 것을.  영화 속에서도 제목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음악 신청을 받는 라디오 DJ가 엽서를 읽어주는 부분이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메이 양과 친구와의 우정을 기린다는 장 부인, 그리고 사업 때문에 일본에 있는 첸 선생도 이 노래를 청했군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입니다” 영화는 제목부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행복한 시절을 말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출발은 외로운 한 남자와 외로운 한 여자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 1960년대 초반, 홍콩의 어느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지역 매일신문 데스크인 차우(양조위)와 그의 부인, 그리고 무역 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리첸(장만옥)과 그녀의 남편. 차우의 아내는 호텔에서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리첸의 남편 또한 일본에 사업체를 두고 있어 출장으로 늘 집을 비우며 사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차우와 리첸은 아파트 좁은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차우와 리첸은 주변의 이웃과 어울려 가끔 마작을 하거나, 가십거리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점차 절친한 친구가 되어가는 두 사람. 차우는 우연히 리첸과 아내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리첸이 가진 그 핸드백은, 그녀의 남편이 해외에서 사온 것이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우는 아내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리첸 역시 남편이 해외에서 사온 넥타이와 똑같은 걸 차우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와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차우와 리첸, 두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들이 서로 외도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 짐작하게 된다. 둘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로부터 외면당한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리첸, 아내의 외도를 짐작하면서 애써 모른 척 가정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차우.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출장 간 남편과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며 쓸쓸하고 외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의 제목은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의미하고 있지만, 차우와 리첸에겐 ‘가장 힘들고 불행한 시절’이 될 수도 있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고통을 제공하는 자는 차우의 아내와 리첸의 남편이지만, 그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의 모든 시선은  배우자의 외도로 쓸쓸하게 남겨진 두 사람만을 조명한다. 외로움으로 불륜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 내용이지만 차우와 리첸, 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매우 인색하기만 하다. “우린 그들과는 다르니까요.” 리첸의 말은,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마음의 공간을 부여한다. 좁은 아파트 복도와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 계단을 오가면서도 두 사람은 늘 사이에 공간을 두고 스칠 듯 말 듯 비껴간다. 함께 택시를 탈 때나, 거리를 걸을 때도 그 공간은 여전하다. 그 공간을 채우는 건 영화 속 아름다운 영상이다. 영화는 말이 없다. 대사가 없는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다. 눈빛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시선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뿐이다. 말 없는 말로 연결되는 드문드문 비어있는 그 공간을 채워주는 건 역시 아름다운 영상과 영혼을 울리는 절절한 음악이다.   눈과 귀가 영화에 흡입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마치 그 순간을 자신의 화양연화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나에게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이미 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인가. 어쩌면 아직 지나치지 않았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기억 속에 그 시절이 묻혔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아직 아름다운 행복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테니까.  화양연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외면당하게 되면서 하필, 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맞게 된 두 주인공에게, 그 시절은 결국 어떤 기억으로 남게되었을까? 잊을 수 없는 을의 기록일까, 아니면 을을 뛰쳐나온 갑의 기록일까. 영화의 결말은 당신이 직접 확인하리라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어쩌면 당신도, 앙코르와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뛰어나갈 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그리했던 것 처럼.

엄상익

아흔 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 얼마 전 어머니는 수표 한 장을 내놓으셨다. 아들이 매달 준 용돈을 평생 모아두었다가 돌려준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 돈이 아들의 피 같아 불고기 한 번 사먹지 못한 것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가 준 수표를 보면서 상속세를 생각했었다. 세금을 피할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반발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내 돈이다. 나는 사실 상속받은 게 아니다. 그런데 왜 껍데기 법을 피하기 위해 술수를 써야 하는 심정이었다. 내 통장에 수표를 그대로 입금시켰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년 후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조사관이 내게 물었다.   “돈을 통장에 그대로 두시지 왜 빼셨어요? 그대로 두면 세금을 할인 받을 수 있는데 말이죠.”   조사관은 탈세를 위해 그 돈을 인출한 것으로 인식했다.   “어머니에게 드린 돈이니까 어머니 마음이죠. 내가 상속세를 줄이려고 막았어야 했나요?”   “수표를 현찰로 바꾸지 않고 왜 자기 통장에 그대로 넣었어요?”   조사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뇌리에 모든 국민은 탈세범이었다.   “내가 땀흘려 번 돈을 돌려받은 건데 왜 죄인같이 그런 비굴한 행동을 해야 하는 거죠? 어머니는 평생 소득이 없던 분이고 집안에서 돈을 버는 건 나뿐이었어요. 국가가 껍데기만 보지 말고 진실을 확인해서 세금을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직하신 마음이 저도 조금 보이기는 하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시려면 그 게 자기 돈이라는 직접증거가 있어야 해요. 도대체 왜 그 수표를 현찰로 바꿔서 추적을 면하지 않고 자기 통장에 입금시키신 거예요? 도대체 법을 아는 변호사 맞아요?”   평생을 해온 변호사라는 직업이 모두에게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법을 배울 때는 모두 정의를 위한다고 했다. 세월이 가면서 정의가 돈으로 바뀌는 걸 봤다. 대법관도 법원장도 장관도 변호사 되면 고용된 양심으로 자본주의 첨병으로 바뀌었다.   “그 돈이 실제로는 변호사님 돈이라고 해도 법대로 할 수 밖에 없어요. 국민이 증거를 대지 못하면 과세처분을 합니다.”   “법정에서는 검찰이 증거를 못 대면 무죄예요. 국민 편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는 거죠. 그런데 세무당국은 모든 국민을 탈세범으로 간주하고 증거를 못 대면 그냥 돈을 뺏어 국민의 눈물을 뽑는다는 겁니까? 왜 그렇게 법이 다르죠?”   “저희 말단공무원은 국민들 사정을 알아도 나중에 감사가 나왔을 때 ‘너 왜 봐줬어? 돈 먹었지?’라고 할까봐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어요.”   “그건 국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고 몸보신 행정이죠. 그렇게 메마르게 할 거면 인공지능한테 맡기면 되겠네?”   세무조사관 앞에서 할 말을 다하고 세금 부과서에 싸인을 하고 나왔다. 어차피 세금을 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거리의 변호사로 나가 탑골공원의 궁색한 노인들을 만나 보았다. 생각보다 사회의 안전망이 정교하게 잘 짜여 진 걸 발견했다. 기부 대신 세금을 내도 그 돈이 밑바닥까지 흘러가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었다. 당당하게 세금 앞에서 떳떳하고 싶은데 법에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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