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비–김태희, 송중기–송혜교. 결혼 당시 화제를 모았던 대표적인 연하남–연상녀 스타 커플이다. 2016년 65세 기준 한국 남자의 기대수명은 83.4세, 여자 87.6세로 여자가 약 4.2년 더 산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것은 인간사회와 동물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연하남–연상녀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커플인 셈이다. 남자들의 수명이 더 짧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남자가 흡연이나 음주 등 건강에 안 좋은 행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부터 사냥 등의 힘든 육체노동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 밖에 여성 세포의 강인함 등 다양한 가설이 있다.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로 남성의 바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바람 잘 피우는 남성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깊은 저음의 목소리를 내며 턱수염이 많아 면도 자국이 유난히 푸르스름하다. 또한 유난히 성욕이 높아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어깨나 팔 등의 근육이 발달한 대신 체지방이 적어 나이가 좀 있어도 몸매는 날씬한 편이다.그들의 이 같은 매력적인 특징을 조절하는 것은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다. 그런데 바람기 많은 남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될수록 수명이 더 짧아지기 때문이다.가장 좋은 예가 호주에 서식하는 ‘북부쿠올’이라는 주머니고양잇과의 유대류다. 이 동물의 암컷은 수명이 3년이지만 수컷은 고작해야 1년이다. 수컷이 빨리 죽는 이유는 일생 단 한 번 겪는 짝짓기 시기에 암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수컷끼리의 싸움과 테스토스테론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방 부족 현상으로 생존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 생태학자는 북부쿠올 수컷들의 짝짓기 행태를 ‘마치 죽음과 섹스를 하는 것 같다’고 비유할 정도다.환관들의 평균수명은? 여러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수명을 단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류학자들이 수컷 새에게 테스토스테론 보충제를 꾸준히 섭취하게 한 결과, 예상대로 보충제를 먹지 않은 개체에 비해 둥지를 더 많이 만들고 경쟁자를 쫓아내는 전투능력이 향상됐다. 그런데 지방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 등으로 인해 그들의 생존력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동물실험 결과만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을 대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변화시키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남성 집단이 있다. 왕을 모신 환관이나 17~18세기 유럽의 소년 합창단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단지 성기만이 아니라 음경과 음낭을 포함한 남성 생식기 전체를 거세당했다. 이들이 일반 남성들과 가장 다른 점은 테스토스테론의 유무이니, 평균수명을 비교하면 테스토스테론이 얼마나 남성 수명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도록 일찍 거세해 소프라노 소리를 내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은 거세하지 않은 다른 가수들과 수명 차이가 없었던 것. 하지만 몇 년 전에 결정적인 자료가 한국에서 나왔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사이에 살았던 조선 환관 385명의 기록이 담긴 ‘양세계보’라는 내시 가문 족보를 조사한 연구결과가 바로 그것이다.조선시대 임금을 비롯해 왕족 남성들의 평균수명은 45~47세다. 또한 당시 궁궐 출입이 잦았던 관직을 많이 배출하는 등 생활환경 면에서 궁궐에서 일한 환관과 비슷했던 3개 가문 남성들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결과 51~55세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양세계보에 기록된 환관 중에서 다른 역사기록에서도 확인된 환관 81명의 평균수명은 70세였던 것. 사대부 남성보다는 15~19년, 임금과 왕족 남성보다는 무려 23~25년을 더 오래 살았다.더욱 놀라운 것은 100세 이상 산 환관이 3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81명 중 3명이니 100세인의 확률이 27명 중 1명꼴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의 일본인(3500명 중 1명)과 미국인(4400명 중 1명)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수밖에 없다. 거세당한 환관 가문에 어떻게 족보가 있나 하는 점이 바로 그것. 족보란 자손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중국 등의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환관들에게도 결혼할 권리와 함께 다른 집안의 거세된 소년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했다. 환관들은 양자 역시 고자에 한해 입양해야 했으므로 같은 성을 찾기가 쉽지 않아 양자들에게 생가에서 쓰던 성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집안의 남자들이 혼합된 족보이기에 ‘양세계보’의 통계는 더욱 신뢰 있는 연구 결과로 전 세계의 연구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다.만약 테스토스테론이 원인이라면 남성들은 좀 억울할 수 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면역기능 강화 및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효과까지 있는데, 남자들만 번식을 위해 수명 단축이라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니 말이다. 그 이유는 번식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근원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바람기 많은 남성의 경우 1년에 100명의 각기 다른 여성과 섹스를 해 100명 이상의 자손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아무리 많은 남성과 섹스를 해도 1년에 낳을 수 있는 자식은 한두 명으로 한정된다. 다시 말해 여성에 비해 남성의 잠재적 번식 이득이 훨씬 큰 셈이다. 따라서 남성을 비롯한 포유류 수컷들은 테스토스테론을 근육처럼 유지하기 힘든 신체기관에 투자하거나 위험한 행동에 사용하기도 한다. 암컷보다 잠재적 번식 이득에 대한 대가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마냥 어리석진 않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적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가 바로 그것이다. 평생 함께할 짝이 있어 자손을 번식시킬 안정된 환경이 마련된다면 남성은 굳이 다른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안정된 환경의 남성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더 낮으며, 결혼한 남성의 심혈관계 질환 위험 및 치사율이 더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또 다른 장치 하나는 부성애다. 자식을 돌보기 위해서는 건강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남성들은 근육과 위험한 행동을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자식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고 체중이 늘어난다. 혹시 오늘도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갈까 다른 데(?)로 샐까 망설이는 남성 가장이 있다면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바로 당신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생명의 은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조갑제(趙甲濟)

  1. 6월 지방선거의 구도는 '김정은 편이냐, 대한민국 편이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구도의 성격은 '자유냐, 억압이냐', '자유민주냐, 사회주의 독재냐'이다.     2. 김정은 정권과 문재인 정권과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세력이므로 대동단결(大同團結)해야 한다. 정치판으로 좁히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대한애국당이 연합전선을 구축,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나라 전체로 넓히면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우리는 김정은이 싫어요"라는 구호 아래 뭉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3. 정치엔 은퇴가 있을 수 있지만 구국(救國)엔 없다. 주권자는 모두 나서야 한다. 이명박, 이회창, 김종필, 박관용, 김황식, 황교안, 정홍원 같은 이들도 대한민국 수호 전선에서 역할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독립운동 하는 것과 공동체의 생명 자유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구국(救國)운동하는 것은 생존투쟁이란 점에서 같다.     4.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41%, 홍준표 후보는 24%, 안철수 후보는 21%, 유승민 후보는 6.8%를 얻었다. 洪, 安, 劉 세 사람이 얻은 52%는 분산되어 좌파 집권 저지에 실패하였지만 이번 6월 선거에서 뭉치면 위험한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핸들을 틀 수 있다.     5.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대한애국당 사이엔 이념 및 안보에서 본질적 차이가 없다. 박지원 세력이 안철수와 결별함으로써 우파가 갖고 있던 의구심도 사라진 셈이다. '반공자유민주법치'에 동의하니 뭉쳐야 한다.     6. 뭉치려면 적어도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단일화 해야 한다. 그 핵심은 서울시장 선거일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인물난이다.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후보가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안철수 지지를 선언한 뒤 다른 지역에서 바른미래당의 도움을 받게 되면 전국적 범위의 단일화를 가능하게 하는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수호 세력(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이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부산시장, 대구시장, 경북지사, 경남지사, 울산시장, 충북지사를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박지원 세력이 떨어져 나가 선거판이 호남-非호남의 성격을 띠는 것도 불리하지 않다.     7.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의석을 합치면 146석, 개헌 저지선으로 충분할 뿐 아니라 이번 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지방선거의 승리와 결합되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김정은 세력에 빼앗기지는 않게 될 것이다.     8.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세 사람은 지난 대선(大選)에서 합치지 못하고 분열함으로써 52%의 잠재력을 갖고도 41% 대통령을 만든 책임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대동단결하지 못하고 적전(敵前)분열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9. 한국의 우파는 현실과 사실을 직시(直視)하고 바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다. 우파 혼자의 힘으로는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하고 공산화를 막을 수 없다. 중도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 특히 우파 시민 세력은 지난 대선 때의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10.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 섰던 구(舊) 새누리당 세력(이른바 非朴)은 문재인 정권 출현의 1등 공신이다. 그들은 박 대통령 탄핵의 명분을 '좌파 집권 저지'에서 찾으려 하였으나 결국 좌파에 이용당하여 일종의 도우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이 백의종군의 자세로 애국세력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가장 실효적인 참회가 될 것이다. 과거의 실수를 덮으려면 미래의 문제에서 잘 하는 수밖에 없다.     11. 태극기로 뭉치자, 헌법으로 싸우자, 진실로 이기자, 자유를 지키자! 김정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우리 편이다. 6월 선거 때는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바른미래당이 아니라, 대한애국당이 아니라, 우파가 아니라, 중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겨야 한다!

유광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마셨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유학준비생 원효가 마시고 대사로 거듭났다는, 해골 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만히 있다가 돌 맞은 것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각난다.    배움에 목말랐던 신라 승려 원효와 의상이 선진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唐)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가던 길에 날이 저물었다. 비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무너진 동굴에 들어가 노숙을 했다. 한밤중에 목이 말랐는데 주변을 더듬어 보니 물이 있어 마셨다. 그야말로 감로수(甘露水)처럼 달콤했다.    날이 밝아서 보니 자신들이 잔 곳은 동굴이 아니라 무너진 무덤 속 썩어 문드러진 시체 옆이었으며 감로수는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충격과 놀람, 역겨움에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에 한참 토악질을 하던 원효가 번개처럼 깨달았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어찌 어제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게 마셨고 오늘은 구토를 한단 말인가? 달라진 것은 해골 물이 아니라 내 마음일 뿐이니, 모든 것이 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술수로구나[一切唯心造].’    깨우친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 같은 불후의 저작을 집필했다.    전해지는 승전(僧傳)에 따라, 해골 물이 아니라 시체 썩은 물이었다고도 하고, 무덤인 것을 확인하고 나자 다음날 귀신이 출몰했다고도 하는 등,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물을 마시고 원효가 깨달았고 유학 대신 돌아와 포교에 힘쓴 고승(高僧)이 되었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의 불편함은 원효의 깨달음이 마뜩잖아서도 아니고, 이야기에 조작의 냄새가 농후하다는 것도 아니며, 해골 물을 마시고 감염되지 않은 것이 도무지 현대의학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어깃장 같은 것도 아니다. 같이 유학 가던 젊은 승려의 처지가 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해골 물을 마셔놓고 한 명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한 명은 아무것도 몰랐단 말처럼 들린다. 한 명은 진각(眞覺)을 이뤄 유학이니 당나라니 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깨달았는데 다른 한 명은 미련하게 당나라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명민하고 활달한 원효와 대조적으로 갑갑하고 답답해 보이는 의상(義湘)의 처지가 무척이나 졸렬해 보인다.    의상도 대단한 고승이다.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고 한국 불교에 끼친 영향은 원효보다 심대하다면 더 심대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을 아무리 늘어놔 봐야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어설픈 하소연으로 들린다. 해골 물 이야기의 강력한 이미지로 인해, 의상은 이미 쫀쫀한 인간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한마디 입도 뻥끗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억울하게 된 의상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변명이 필요한 듯하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의상과 원효 이야기를 살펴봐야 하는데, 일단은 조금 돌아서 〈광덕·엄장〉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섹스리스 광덕과 인간적인 엄장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은 친구였다. 둘이 각각 도(道)를 닦았는데 먼저 득도(得道)하면 서로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저녁 하늘에서 엄장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먼저 서방정토로 가네. 자네도 서둘러 오게.”    약속대로 친구 광덕이 득도하여 서방으로 가면서 알려준 것이다. 이에 엄장이 광덕의 집으로 가보니 정말 광덕이 죽어 있었다. 혼자 살던 엄장과 달리 광덕은 처가 있었는데, 엄장은 광덕의 처와 함께 시신을 거둬 무덤을 만들어 주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떻소?”    광덕의 처가 좋다며 그러자고 했다.    엄장이 밤이 되자 자연스럽게 광덕의 처를 가까이하려 했다. 그러자 광덕의 처가 벌떡 일어나 꾸짖었다.    “당신은 절대로 득도하지 못하겠군요.”    그러고는 정말이지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남편은 저와 십여 년을 함께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침상에 눕지 않았고 몸을 더럽히지도 않았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단정하고 바르게 앉아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정성이 이랬으니 어떻게 득도하지 않겠습니까?”    광덕 처의 말인즉, 광덕이 1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동침은커녕 밤마다 염불을 외며 도를 닦았다는 거였다. 그러려면 뭐 하러 혼인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말을 들은 엄장은 부끄러워 그 길로 그곳을 나와 원효를 찾아갔다. 원효에게서 깨끗하게 바라보는 법[淨觀法]을 배웠고 결국은 득도를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 〈광덕·엄장〉 조에 있는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광덕 때문에 갑갑하다. 대체 이 작자는 왜 결혼해서 부인과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밥해 주고 빨래해 주는 식모를 구하지 말이다.    아무튼 〈광덕·엄장〉의 핵심은 고고하게 정진한 광덕이 먼저 득도했고 속되고 인간적인, 어쩌면 광덕의 처를 탐내 넉살 좋게 같이 살자고 집적댄 엄장의 득도가 요원했다는 거다. 물론 엄장은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원효를 찾아가 깨우침을 얻어 성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러니 우리가 도를 닦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광덕처럼 살아야 할까, 엄장처럼 살아야 할까. 묻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답은 명확하다. 광덕처럼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다음 이야기까지 들어보시라. 그리고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삼국유사》에는 〈광덕·엄장〉과 꼭 닮은 이야기이지만 정확하게 반대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조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역시 친구였다. 역시 득도하려고 각자 암자를 짓고 도를 닦았다. 어느 날 달달박박이 지내는 암자에 스무 살가량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온몸에 난초와 사향 향기를 풍기면서 그의 암자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간청했다. 달달박박은 이대로라면 큰일 나겠다 싶어, “절은 정결한 곳이니 썩 떠나시오”라며 그녀를 내쫓았다.    여인이 이번엔 노힐부득의 암자로 가서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노힐부득은 달달박박과 달랐다. 깊은 산골인 데다 날도 저문 것을 보자 그녀를 받아들여 자고 가게 했다. 노힐부득은 밤새도록 염불을 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려 하자 여인이 그에게 말했다.    “제가 마침 해산할 기미가 있어요. 부탁이니 해산할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여인은 집요했다. 그가 넘어오지 않자 갖은 수선을 피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노힐부득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그녀의 해산을 도왔다. 그러자 이번엔 여인이 목욕을 시켜달라지 않는가. 그는 부끄러움과 난감함, 이러다가 파계(破戒)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교차했다. 어쩔 수 없이 목욕통을 준비해서 그녀를 통 안에 앉히고는 물을 데워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여인이 한술 더 떴다.    “스님도 같이 목욕하시지요.”  결국 그는 그녀의 말대로 한 목욕통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말았다.    아무튼 이러저러해서 아침이 되었다.    여인을 쫓아냈던 달달박박이 노힐부득의 암자를 찾아왔다. 자신에게 쫓겨난 여자에게 친구 노힐부득이 파계를 했을 것 같아서였다. 실컷 비웃어주려고 노힐부득의 암자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을 목격했다.    노힐부득이 미륵부처가 되어 연화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힐부득이 사정을 설명해 주자 달달박박이 크게 탄식했다.    “내가 장애가 많아 부처님을 만나고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셈이 되었구나.”    그러고는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노힐부득이 말했다.    “통 속에 남은 물이 조금 있으니 그걸로 목욕을 하시오.”    그렇게 남은 물로 목욕하자 노힐부득도 결국 득도한 아미타불이 되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산 아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우러러보며 감탄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체를 가르치고는 구름을 타고 서방정토로 떠났다.    〈광덕·엄장〉 이야기와 구조는 꼭 같지만 거꾸로 뒤집혀 있는 인화지와 같은 느낌이다. 여기선 그렇게 엄정한 달달박박이 오히려 나중이 되고, 반대로 엄장처럼 조금 느슨하고 헐렁한 노힐부득이 먼저 득도해서 부처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아리송해진다. 누가 더 나은지, 누가 더 훌륭한지를 따지기가 난감해진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스님은 왜 이렇게 거꾸로 뒤집혀 상충하는 이야기를 써놓으셨는지 알 수가 없다. 대체 어떤 삶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단 말인가?      의상과 낙산사  관세음보살을 만난 후 낙산사를 일으켰다는 의상 대사.   이제 당나라에 유학 갔던 의상과 그동안 신라에서 포교를 벌여 명성을 쌓은 원효가 어떻게 엇갈리는지를 살펴보자. 그들의 이야기가 《삼국유사》 〈낙산이대성 관음・정취, 조신(洛山二大聖 觀音・正趣, 調信)〉 조에 전한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보니,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동해 해변의 동굴에 사신다지 않는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당나라 전역을 다니며 만나 뵈려 했는데, 얼마나 고생고생 불법을 닦았는데 이런…, 그 먼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국 동해안에 계시다니…. 의상의 막막하고 허탈한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하지만 역시 의상이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관음보살이 산다는 서역 보타낙가산(寶陁洛伽山)의 이름을 따서 낙산(洛山)이라 이름 붙인, 그곳의 그 동굴을 찾아갔다.    그리고 성심을 다해 관음보살을 뵙기 위해 정성껏 7일 동안 재계(齋戒)를 한다.    마지막 날 새벽 일찍 의상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물 위로 던졌다. 그랬더니 그 자리가 물 위에 둥둥 떴다. 의상의 신통력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보살께서 허락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더니만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나타나서 굴속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굴로 들어간 의상이 또다시 예를 정성껏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수정염주(水晶念珠) 한 꾸러미가 나타났다. 그가 공손히 염주를 받고 물러나자, 이번엔 동해 용이 나타나 여의주 한 알을 그에게 바쳤다. 그것까지 같이 받아서는 굴 밖으로 나왔다.    의상은 지겹지도 않은지 또다시 재계를 올렸고, 그런 지 7일 만에 굴로 다시 들어가 드디어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났다. 관음이 말했다.    “앉은 자리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절을 짓는 것이 좋겠다.”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났고, 그래서 절을 짓고 관음상까지 만들어 봉안했다. 그러자 그 대나무가 사라졌다. 의상은 그제야 관음의 진신이 이곳에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절을 낙산사(洛山寺)라고 하고, 받은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그곳에 모셔두고 떠났다.    거의 암호처럼 알아듣기 힘든 기이한 상황이 이어진다. 의상의 신통력이 앉은 자리를 물에 띄우질 않나 염주와 여의주를 받질 않나,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신적 존재만 해도 천룡팔부를 만나고 동해 용왕도 만난다. 그리고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관음보살도 만나 그가 하라는 대로 절을 짓기까지 한다. 짧은 글이기에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듯하지만, 절을 짓는 것이 며칠 만에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감안하면, 의상의 행동과 생각이 정말 벽창호처럼 갑갑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아니 그토록 열심히 재계를 올리고 갖은 정성을 다한 후에 관음보살을 만나고도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나타났던 대나무가 사라지자 ‘비로소 관음보살이 이곳에 계신 것을 알았다’니 대체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보통 사람 같으면 신기한 징조 중 하나만 체험해도 대번에 “아이고 보살님, 감사합니다!” 하고 깨달을 텐데, 이 의상은 마지막에 대나무가 사라진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믿다니 말이다. 좋게 말해 진지한 구도자의 모습이지만 막말로 하면 정말 대책 없는 갑갑함의 지존이라 하겠다.      관음보살을 몰라본 원효  의상대사가 세운 낙산사의 의상대. 사진=문화재청   어떻든 의상이 깨달았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그가 대체 뭘 깨달았는지는 요령부득이다. 역시 의상의 이야기는 어렵다. 곧바로 이어지는 원효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쉽다. 헐렁헐렁한 것이 정말 원효답다. 그를 민중불교의 창시자로 지목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의상이 낙산에서 관음을 만나고 낙산사를 창건한 후 시간이 꽤 지났다. 원효가 그런 소리를 듣고 그도 예를 올리려고 했다. 해골 물에서는 앞섰던 원효가 이번엔 한걸음 늦은 셈이다.    아무튼 그가 낙산 남쪽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논에서 흰옷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장난꾸러기답게 원효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 벼 좀 주지 그래.”    단순한 말일 수도 있지만, 원효의 전력이 있기에 문맥상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자를 꾀는 희롱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아직 벼가 영글지 않아 드릴 수 없네요.”    헛물을 켠 원효가 또 시적시적 낙산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다리 밑에서 어떤 여자가 서답을 빨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답은 생리대인데, 1회용이 없던 옛날에는 모두 다 천으로 만들어서 썼다.    옛날 여인네들은 빨래를 꼭 냇가에 가서 했고, 아무리 지독한 시어머니라도 빨래터에 가는 며느리를 못 가게 드잡이질하지는 않았던 거다. 바구니 위로 가득 쌓인 빨랫감 밑에 서답을 숨겨서 가져가는 것이 여자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여인네들의 빨래터는 금남(禁男) 구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더펄거리는 원효가 그 빨래터를 지나시는 거였다. 모른 척하고 그냥 가야 하는데 어디 천하의 원효가 그럴 수 있나, 그가 대뜸 여인을 희롱했다.    “여보시오, 거 물 좀 한 잔 주시오.”    벼 베던 여인처럼 이 여인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말없이 냇물을 떠서 바치는데, 서답을 빨던 불그스름한 더러운 물을 떠서 주는 것이 아닌가. 원효는 받은 물을 엎질러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 순간이었다. 근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靑鳥] 한 마리가 소리쳤다.    “그만! 이런 땡중을 보게나.[休醍醐和尙]”    놀라 돌아보니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든 맥 빠진 원효는 어찌어찌해서 낙산사에 도착했고 의상이 조성해 놓은 관음상 앞에 가서 예를 올렸다. 그런데 그 관음상 앞에 조금 전 본 신발 한 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신발 한 짝’의 존재 증명    ‘신발 한 짝’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모두 다 자신의 존재 증명과 관련 있다.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Theseus)가 아버지의 신발 한 짝을 들고 찾아가서 만나는 것도 그렇고, 영웅 이아손(Iason)이 헤라 여신을 업고 강물을 건너다가 신발을, 그것도 꼭 한 짝만, 잃어버려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부합하게 되는 것도 그렇다.    달마대사가 죽어 묻었는데 먼 나라에서 달마가 여전히 살아서 신발 한 짝만 들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의 관을 열어보니 신발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지금 원효가 본 관음상 앞에 놓인 신발 한 짝은 결국 조금 전 소나무 밑에 있던 신발 한 짝과 합해져야 온전한 켤레가 되는 것으로, 관음이 곧 소나무라는 존재 증명의 증표인 것이다.    그렇게 신발 한 짝을 보고서야, 비로소 원효는 자신이 희롱하고 수작했던 여인들과 소나무가 관음의 진신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자신이 외치는 민중불교의 정수, 매일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곧 부처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달았지만, 역시 원효는 원효다웠다. 그냥 돌아가지 않고 다시 그 신성한 굴로 들어가 관음을 보려 한다. 하지만 풍랑이 거세게 일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미 봐 놓고, 만나 놓고, 대체 뭘 더? 군더더기야, 군더더기.’    이런 의미를 알아들은 원효는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났다.      누가 옳은가?    원효의 행동과 깨달음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도 얼핏 이해가 쉽다. 의상은 도통 뭔 소린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묻자. 원효가 훌륭한가, 의상이 훌륭한가? 섹스리스 광덕처럼 살아야 하는가, 욕망덩어리 엄장처럼 살아야 하는가? 여인을 목욕시켜 준 노힐부득이 옳은가, 물리쳐 버린 달달박박이 옳은가?    답을 아시겠는가? 사실 질문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구분하고 따지고 서열을 세우려는 짓거리 자체가 애초부터 글러먹은 거였다. 모든 것이 옳고 모든 것이 진리였다.    우리가 ‘원효의 해골 물’을 그리도 좋아했던 것은 우리 시각에 쉽게 포착되고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입맛에 짝짝 달라붙기에 원효가 ‘더 나아 보이고’ 그래서 ‘더 옳아 보였던’ 거였다. 자신의 아집(我執) 속에서 판단해 놓고 남들에게 동의해 달라고 멋대로 우기고 강요했던 거다.     고지식한 의상도 탐욕덩어리 광덕도 교활한 달달박박도 모두 다 옳았지만,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폄훼했던 것이다.    해골 물을 마시고 돌아온 원효도 깨달았지만 그걸 마시고 당나라로 갔던 의상도 역시 깨달았던 것이다. 단지 원효의 길과 의상의 길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걸 두고 아둔한 우리가 왈가불가했던 거다. 미련하게도… 말이다.⊙

이동윤

삶의 중심이 도시화되고 실내생활이 보편화되면서 남자와 여자 같은 성별에 관계 없이 잡티 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에 가보고 싶지만 겨울철 자외선에 대한 걱정으로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직,간접적인 모든 방법을 통하여 햇빛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으며, 태양이 방출하고 있는 여러가지 파장의 빛 중에서 자외선(200-400nm), 적외선(800-100,000nm), 가시광선(400-800nm)이 지구까지 도달하여 우리 삶과 환경에 영향을 준다.  우리 눈의 망막을 자극하여 색체나 형상을 구별하게 하는 가시광선은 피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겨울에 양지바른 곳에서 쪼이는 햇빛의 따스함은 일명 열선이라고도 하는 적외선의 영향이다. 자외선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긴 순서대로 자외선A, B, 그리고 C선으로 나눈다. 그 중 가장 유해한 C선은 오존층에서 흡수되고, 실질적으로 지면에 도달하는 자외선A와 B선이 중요하다.  겨울철 자외선은 여름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피부 깊숙이 침투하는 경향이 있고, 그늘에 있거나 흐린 날에도 맑은 날의 절반 정도는 피부에 영향을 미쳐 비가 오거나 흐린 날, 혹은 계절에 상관없이 피부를 항상 자극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키장이나 동계올림픽 야외 경기장처럼 개방된 눈밭에서는 눈에서의 자외선 반사율이 약 85~90%로 여름 바닷가의 반사된 자외선보다 약 4배 이상 더 강하다. 이에 겨울철 눈이나 얼음판에서의 자외선 차단에 신경 쓰지 않을 경우 기미, 주근깨와 주름 같은 피부 노화를 유발할 수 있다. 파장이 가장 짧은 자외선C는 그만큼 에너지도 가장 강해서 피부까지 도달할 경우 피부암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오존층에 흡수되어 지표까지는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오염의 영향으로 오존층이 파괴되어 자외선C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중파장인 자외선B는 짧은 파장 때문에 유리창을 통과하지는 못하지만 피부에 도달하면 표피의 각질층까지는 도달하여 높은 에너지 방출량 때문에 피부에 일광화상과 지연성 색소침착을 유발하고, 또 강력한 피부 표피세포의 파괴와 세포분열을 증진시켜 각질층이 더욱 두꺼워져 깊은 기미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긴 파장인 자외선A는 안전하게 창문이나 커텐도 통과하여 실내까지 침투하여 피부와 접촉하면 진피 층까지 도달하여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단백질을 파괴하여 주름을 만들고 피부의 탄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멜라닌을 생성하여 기미를 유발하지만, 일광화상을 유발할 만큼 에너지가 세지는 않다.  이러한 종류별 자외선의 특징을 이용하여 선탠용 오일은 일광화상을 유발하는 자외선B는 차단하고 멜라닌을 생성하는 자외선A는 투과시켜 피부를 안전하게 그을리게 하기도 하며, 겨울철에도 색소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1시간 이상 눈 속이나 얼음판에서 야외 활동을 할 경우 자외선 차단은 필수다.   겨울철에도 1시간 이상 야외활동을 하는 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노출 부위에 충분히 발라야 하지만, 차단제를 믿고 한낮에 2~3시간 이상 너무 과도하게 야외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이면 햇빛과 차단제 성분 사이의 화학적 반응으로 발생하는 자유라디컬 생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적당한 시간 노출하고 들어와서는 곧 깨끗이 씻는 것이 중요하다.   

이한우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서 언언(言偃)이라는 사람이 공자(孔子)에게 “예(禮)가 이토록 시급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대개 예라는 것은 선왕(先王)이 하늘의 도리를 이어받아 그것으로써 사람의 정(情)을 다스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잃은 자는 죽고 예를 얻은 자는 살아간다.”    사람의 정[人情]을 다스리는 것이 예라면 다스리지 못한 것이 비례(非禮), 무례(無禮)가 된다. 그리고 《예기》에서는 흥미롭게도 사람의 정을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것 7가지, 즉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라고 말한다. 이는 따로 배우지 않고서도 발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마땅함[義]으로 다스려야 한다. 《예기》에서는 사람의 정을 다스리는 마땅함으로 부모의 자애로움[慈=子], 자식의 효도[孝], 형의 사랑[良], 아우의 공순[弟=悌], 지아비의 의로움[義], 지어미의 순종[聽=從], 어른의 베풂[惠]과 아이의 따름[順], 임금의 어짊[仁]과 신하의 충성스러움[忠] 10가지를 제시한다. 몇몇을 제외한다면 현대사회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마땅함으로 사람의 정을 다스리는 것이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곧바로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지인(知人)의 문제로 연결된다.    “사람은 마음을 숨기고 있어 그 속을 헤아릴[測度] 길이 없으며 사람의 좋고 나쁜 점[美惡]은 모두 그 마음 안에 있어 그 얼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알아내고자 한다면 예가 아니고서 무엇으로 할 수 있으랴!”      “곧되 예가 없으면 강퍅해진다”    따라서 먼저 예를 배워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비례, 무례, 결례(缺禮), 실례(失禮) 등을 알아차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 같은 《예기》의 도움을 받게 되면 우리는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단순히 예를 갖추라는 도덕 명령이 아니라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비결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공자는 말했다.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恭而無禮] 몸만 힘들고[勞] 조심하되 예가 없으면[愼而無禮] 두렵고[葸=恐]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勇而無禮] 위아래 없이 문란해질 수 있고[亂] 곧되 예가 없으면[直而無禮] 강퍅해진다[絞].”    날 때부터 공이례(恭而禮), 신이례(愼而禮), 용이례(勇而禮), 직이례(直而禮)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사람이다. 그다음은 그것을 배워서라도 알아야[學而知之] 한다. 여기서 무례(無禮)란 예를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바로 이 예의 자리에 다시 사리분별 혹은 현실감을 집어넣어 다시 해석해 보면 그 뜻은 훨씬 명확하게 드러난다. 때와 장소를 제대로 가려가며 공손하고 조심하고 용맹하고 곧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공손, 조심, 용맹, 곧음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상황에 맞게 행동을 하는지[隨時處變]를 보고서 판단할 때 사이비(似而非)가 아닌, 진짜 그 사람의 진면목을 꿰뚫게 되는 것이다.      정장(亭長)에서 승상에 오른 주박  공자의 제자 자로.  《한서(漢書)》 주박전(朱博傳)에 따르면 주박(朱博)은 두릉(杜陵)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젊은 시절 현(縣)의 급사(給事)로 정장(亭長)이 됐다. 우리 식으로 보면 동장 정도 되는 말직이다. 도적을 잡는 일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나서 피하지를 않았다. 점차 승진해 (현의) 공조(功曹)가 됐고 협객들과 사귀기를 좋아했다. 이때 전장군 소망지(蕭望之)의 아들 소육(蕭育)과 어사대부 진만년(陳萬年)의 아들 진함(陳咸)도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있었는데 박(博)은 이 두 사람 모두와 우정을 나눴다.    그런데 진함이 어사중승으로 있으면서 궐내[省中=禁中]의 일을 누설한 일에 연루돼 수감에 처해졌다. 주박은 관리를 그만두고 몰래 정위(廷尉)의 관아에 들어가 함의 일을 훔쳐보았다. 진함이 고문을 당하며 아주 고생을 하자 주박은 의원(醫員)인 것처럼 꾸며 옥 안에 들어가 진함을 만났고 죄에 걸려든 정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주박은 감옥 밖으로 나와 다시 성과 이름을 바꾸고서 진함이 수백 대나 맞는 등의 고초를 겪고서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것임을 입증하여 감형될 수 있게 해준다. 진함은 정식 논죄를 받아 감옥에서 나왔다. 덕분에 주박은 이름이 났으며 군의 공조가 됐다.    드디어 지방의 행정을 맡아 태수로 나갔다. 성실하고 진취적이었기에 가는 곳마다 잘 다스린다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다만 배움이 짧은 데다가 나아가 유학을 싫어했다. 유리(儒吏)들은 수시로 옛 기록을 운운하며 글을 올렸으나 주박은 그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태수란 한나라 관리이며 3척(짜리 죽간에 실린) 율령이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데 무슨 유생들이 함부로 성인(聖人)의 도리 운운하는가? 정 그런 도리를 따르고 싶거든 훗날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 가서 진설(陳說)하라.”    여기서 우리는 《논어》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자로(子路)를 떠올리게 된다. 한번은 자로가 계씨(季氏)의 가신이 되어 공자의 또 다른 제자인 자고(子羔)를 비읍(費邑)의 책임자로 삼자 공자는 탄식했다.    “남의 자식을 해치는구나!”    이에 자로가 맞섰다.    “백성과 사람이 있고 사직(社稷)이 있으니 어찌 반드시 책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겠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바로 이런 너 때문에 나는 말 잘하는 사람[佞者]을 미워하는 것이다.”    자로는 전형적으로 용이무례(勇而無禮)한 자다. 주박의 말은 자로의 말 그대로다. 영자(佞者)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인 인식은 이 구절만 봐서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수제자인 안연(顔淵)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책에 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라의 책력을 시행하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고 주나라의 면류관을 써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음악은 순임금의 음악인 소무로 하고 정나라의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 잘하는 사람은 위태롭기 때문이다.”    자기는 물론이고 나라를 망칠 사람이 바로 영자인 것이다.      실무 능력이 뛰어났던 주박    한나라 애제.그러나 주박은 이재(吏才), 즉 관리로서 다스리는 재주가 뛰어났다.    “박은 군을 다스리면서 늘 속현(屬縣)들에 명해 각각 자기 현의 호걸들을 써서 대리(大吏-고위관리)로 쓰도록 하고 문재(文才)와 무재(武才)를 감안해 적재적소에 배치토록 했다. 현에 큰 도적이나 그 밖의 다른 비상사태가 있으면 즉각 문서를 보내 엄하게 책망했다. 이에 그들이 온 힘을 다해 효과가 있으면 반드시 큰 상을 주었고 간교함을 품고서 임무를 소홀히 할 경우에는 즉각 주벌을 시행했다. 이 때문에 호강(豪强)한 자들은 두려워하여 복종했다.”    치적이 뛰어나 도성에 들어가 임시 좌풍익(서울시장)이 됐고 임기를 다 채우자 정식 좌풍익이 됐다. 그가 좌풍익을 할 때 법리와 총명(聰明)은 설선(薛宣)에 미치지 못했지만 무략과 계책이 많았고 비밀 연락망을 잘 조직했으며 이익을 별로 탐하지 않았고 과감하게 주살(誅殺)을 시행했다. 그러나 또한 큰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래 관리들은 이로 인해 온 힘을 다했다. 이에 그는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탄탄대로 승진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 애제(哀帝) 때 신하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승상(丞相)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그에 앞서 애제의 할머니 정도(定陶)태후가 존호를 원했을 때 태후의 사촌동생 고무후(高武侯) 부희는 대사마(大司馬)로 있으면서 승상 공광(孔光), 대사공(大司空) 사단(師丹)과 함께 공동으로 바른 의견을 고수했다. 반면에 공향후(孔鄕侯) 부안(傅晏) 또한 태후의 사촌동생이었는데 아첨을 하면서 태후의 뜻을 따르고자 하여 마침 주박이 새롭게 지방에서 불려와 경조윤이 되자 함께 교결을 맺고서 존호를 받게 하려는 계책을 만들어 (애제가) 효도를 넓히게 하려 했다. 이로 말미암아 사단이 먼저 면직됐고 주박이 그를 대신해서 대사공이 되자 여러 차례 애제가 한가한 틈을 타서 봉사를 올려 말했다.    “승상 광의 뜻은 자기 한 몸이나 지키는 데 있어 나라를 제대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사마 희는 지존(至尊)의 지친(至親)이면서 대신에게 아부하여 당파를 이뤘으니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제는 드디어 부희를 파직시켜 내보내 봉국으로 나아가게 했고 공광을 면직시켜 서인으로 삼고서 주박을 광을 대신해 승상으로 삼고서 양향후(陽鄕侯)에 봉하고 식읍은 2000호로 했다. 이에 주박은 글을 올려 사양하며 말했다.    “고사에 따르면 승상을 봉할 때 1000호를 넘지 않았는데 신 홀로 제도를 뛰어넘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1000호를 반납하고자 합니다.”      태후에게 영합하다가 탄핵당해  주박을 탄핵한 좌장군 팽선.  애제는 허락했다. 부(傅)태후는 부희에 대한 원망이 그치지를 않아 공향후 안으로 하여금 은근히 승상에게 눈치를 주어 부희의 후(侯) 작위를 박탈하도록 아뢰게 했다. 주박은 조(詔)를 받고서 어사대부 조현(趙鉉)과 토의를 하니 조현이 말했다.    “그 일은 이미 전에 결정되었는데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박이 말했다.    “이미 공향후가 가져온 (태후의) 뜻에 따르기로 했소. 필부와의 약속이라도 죽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물며 지존이겠습니까? 박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오.”    현은 즉시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박은 오직 희만을 배척하는 글을 아뢸 수가 없어 예전에 대사공이었던 범향후(氾鄕侯) 하무(何武)도 전에 역시 죄에 연루되어 봉국으로 돌아간 적이 있어 일이 부희와 유사하다고 여겨 곧장 함께 아뢰어 말했다.    “희와 무는 예전에 자리에 있으면서 모두 정치에서는 무익했는데 비록 이미 물러나서 면직됐지만 작위와 봉토는 그대로 봉받고 있으니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청컨대 모두 벗겨서 서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상(황제)은 부태후가 평소에 일찍이 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박과 현이 태후의 뜻을 이어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곧바로 현을 불러 상서로 오게 하여 상황을 물어보니 현이 두려워하여 실상을 자백하자 조서를 내려 좌장군 팽선(彭宣)과 중조(中朝)에 있는 신하들이 함께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선(宣) 등이 주박을 탄핵하여 아뢰었다.      자살로 마감한 주박    “박은 재상이고 현은 상경(上卿)이며 안은 외척으로 그 지위가 특진(特進)이니 모두 팔다리와 같은 대신으로 상의 신임을 받고 있는데도 온 정성을 다해 공을 받들고 은혜와 교화를 넓히는 일에 힘써 백료들을 앞서 이끌 생각은 하지 않고서 모두 아는 바와 같이 희와 무의 일은 이미 성은에 따라 결정된 일이며 3번이나 고쳐서 사면되었는데도 박은 그릇된 도리를 고집하며 폐하의 성은을 훼손하고 외척과 신의를 지킨다며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저버리고 정치를 어지럽게 하면서 간사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랫사람에게 붙어 위를 기망하려 하였으니 신하 된 자로서 불충이자 부도입니다. 현은 박이 말한 것이 법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면서도 대의를 굽혀 아첨하고 따라 큰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안과 박이 희를 면직시키자고 토의한 것은 예를 잃은 것이며 불경입니다.    신은 청컨대 알자에게 조서를 내리시어 박, 현, 안을 불러 정위에 이르러 조옥(詔獄)에 가둬야 할 것입니다.”    제(制)하여 말했다.    “장군, 중(中) 2000석, 2000석, 제(諸)대부, 박사, 의랑을 함께 토의하라.”    우장군 교망(蟜望) 등 44인은 “선(宣) 등이 말한 대로 허락하셔야 합니다”라고 했고 간대부 공승(龔勝) 등 14명은 “《춘추(春秋)》의 대의에도 간사하게 임금을 섬길 경우에는 일반 형벌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노(魯)나라 대부 숙손교여(叔孫僑如)는 노나라 공실을 제 마음대로 하려고 그 족형인 계손행보(季孫行父)를 진(晉)나라에 참소했고 진나라에서는 행보를 잡아가두어 노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는데 《춘추》는 이 일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부안은 폐하의 명을 따르지 않아 일족을 패망으로 이끌고 조정의 정사를 어지럽게 만들었으며 대신을 협박해 상을 기망하려 했으며 본래부터 계책을 주도하여 혼란을 빚어냈으니 박, 현과 같은 죄이며 모두 부도(不道)에 해당합니다”라고 말했다.    상은 현의 죽을 죄를 3등급 감형했고 안의 식읍 4분의 1을 삭감했으며 알자에게 지절을 주어 승상을 불러 정위의 조옥에 보내게 했다. 주박은 자살했다.      자로를 닮은 주박    딱히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속된 말로 새로운 줄에 서보려다가 명분에 밀린 경우다. 자로도 위(衛)나라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다. 묘하게도 반고(班固) 또한 다른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주박의 삶을 한 줄로 압축하면서 자로를 끌어들인다.    “박(博)은 열심히 내달려 진취(進取)한 바가 컸으나 도리와 다움[道德]을 생각지 않았으니 이미 뭐라 칭송할 만한 말이 없고, 또 효성(孝成·성제)의 세상을 보았고 대신으로 위임을 받아 이름을 빌려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세상의 주인[世主]이 이미 바뀌었다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예전과 달리하면서 다시 정씨(丁氏)와 부씨(傅氏)에게 붙어 공향후(孔鄕侯)의 뜻에 맞춰 순종했다. 일이 발각돼 힐책을 당했고 드디어 꾐에 빠졌으니 말은 궁하고 사실은 명확해 짐독(鴆毒)을 마셨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오래되었구나! 유(由)의 거짓을 행함이여!’라고 했으니 박 또한 그러했도다.”    반고가 여기서 인용한 것은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의 일부다. 공자가 병이 더 심해지자 자로는 또 다른 제자를 스승의 가신으로 삼았다. 병에 차도가 있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되었구나! 유의 거짓을 행함이여! 가신이 없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가 누구를 속였는가? 내가 하늘을 속였구나!”    공자는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신하를 둘 수 없었다. 그런데도 자로가 하늘을 속이고서 스승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공자에게 가신을 둔 것에 대한 공자의 탄식이다. 세상의 이치, 즉 예를 몰랐던 자로나 주박은 공자의 말대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다.⊙

박상융

서울 정부종합청사./ 조선DB필자는 총경(경찰서장직) 바로 밑에 계급인 경정으로 경찰에 들어왔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경정 계급부터 시작한 것이다. 순경 출신이 대부분인 경찰조직에서 경정부터 시작한 후 9년째 총경으로 승진, 11년 동안 재직한 후 계급 정년으로 50대 초반 나이에 강제로 경찰을 떠나야 했다. 경찰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참회록을 쓰는 심정으로 본 칼럼을 쓴다.   일부 직원들은 젊은 나이에 고시에 합격해 벼락출세를 했다며 시기질투를 하기도 했다. 당시 경정(경찰서 과장)이면서도 자동차와 별도 사무실을 제공받는 등 많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총경이 된 후 파출소 순찰업무, 형사외근, 수사조사업무 등 현장실무 경험이 적은 상태에서 경찰서장 업무를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승진하려고 일선 경찰서 현장업무보다는 본청 등 기획부서로 일찍 들어가서 인사권자인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한 적도 많았다. 경찰재직 20년 중 10년을 본청 수사기획부서에서 근무를 했을 뿐 실제 수사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거나, 조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본청에 일찍 들어가야 일선 현장근무자보다 빨리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본청에 일찍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경찰본연의 업무가 지구대, 파출소, 경찰서 외근 등 순찰과 수사업무가 주된 업무임에도 승진을 위해 일찌감치 본청, 지방청 기획부서를 선호한 것이다. 필자뿐 만 아니라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경쟁적으로 본청, 서울청 등 기획부서에 입성하려고 했다. 일선 지구대, 파출소, 경찰서에 있으면 악성민원과 사건처리에 시달리고, 자칫하면 징계도 받아 위험부담이 많기 때문에 근무를 꺼리기 때문이다.   아니 본청, 지방청에 올라가면 보고와 지시만 내리면 되고, 일선의 보고서를 취합, 보기 좋게 만들어 윗사람에게 보고하면 윗사람이 고생했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곧 승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감찰도 거의 받지 않고 포상, 국내외 유학, 주재관 파견 등 자기계발기회도 본청, 지방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본청근무자들은 자연스럽게 보고서 작성과 편집, 신속한 전파에 목을 매게 되고 현장의 어려운 고충은 등한시하게 된다. 현장의 목소리 전달보다는 인사권자인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현장업무와 동떨어진 지시, 보고서 작성에 매진하게 된다. 본청의 업무도 기획회의, 간담회, 워크숍 등 회의업무에 매달리게 된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소모적인 노력   본격적인 인사고과 평정이 이루어지는 하반기에는 국회업무 등으로 인해 윗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혈안이 된다. 쓸데없는 보고서작성, 업무지시하달, 혁신사업보고와 추진을 하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모습을 윗사람에게 문서를 만들어 대면결재를 하는 등 잘 보이려고 한다.   별로 할 일이 없는데도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사무실에 대기하고 공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온다. 윗사람의 전화를 잘 받고 언론보도에 나오기 전에 예상보도 등을 하면 윗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나아가 윗사람의 식사도 챙기면 금상첨화다.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이고 별 지시내용이 없어도 수첩에 쓰는 척을 하여야 한다. 별 내용도 없는 회의가 길게는 3시간 이상 진행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승진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일과 승진은 별개이면서 일도 별로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사람들이 지역 안배, 출신 안배(경찰대, 간부후보생, 고시 등)에 의해 승진하기도 한다. 경찰 본연의 업무가 현장에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것이고,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는 현장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근무자들은 윗사람에게 눈에 띄지 않아 승진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욱 심했다. 그것도 순경에서 경찰을 시작한 사람들이 경찰서장, 경무관, 지방청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근무하면 승진은커녕 격무(윗선의 보고와 지시문서처리)에 시달려 건강도 해치고 때로는 억울하게 징계까지 당하기도 한다. 어렵게 승진을 해도 한곳에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생활 근거지와 거리가 먼 경찰서에 가서 근무하기도 한다. 서울 등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은 본청에서 승진한 속칭 힘 있는 사람들이 와서 1~2년 만에 다시 본청으로 가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지휘관은 참모형과 야전형이 있다. 경찰청장, 지방청장, 경찰청 실, 국장 등의 이력을 보면 야전형 보다는 기획참모형이 많다. 일선에서 수사실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경찰청 수사국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찰에 들어와서 지구대, 파출소, 경찰서 근무는 거의 해보지도 않고 교육기관, 해외유학, 주재관근무, 본청 기획부서만 근무하다가 고위직으로 승진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현장근무 중시하는 공직문화 시급   현장의 어려움을 피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부서만 골라 근무하면서 승진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자격증, 토익점수, 해외주재관 경력이 있어야 승진 가점을 받을 수 있어 현장근무는 하지 않고 본청, 주재관파견을 가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지휘관이 되면 업무도 현장경력도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지휘가 될 리가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법과 규정, 매뉴얼만 내세우면서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현장과 동떨어진 지시와 업무만 내렸다. 실적평가도 기획부서에 유리한 평가항목만 선정,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언론보도실적, 친절도 실적, 징계민원제기건수, 절도범 검거실적, 교육실적 등으로 실적을 부풀리기도 있었다.   산술적으로 수치상 실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항목도 무리하게 항목으로 선정해서 만들어서 평가했다. 평가항목의 문제점과 부당성에 대해 과감하게 이의제기를 하는 경우도 적었다. 아니 이의를 제기해도 잘 반영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기득권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휘관 주도의 격려 회식과 직원간담회에서는 애로사항 청취보다는 자화자찬식 지시일변도의 주입식 교육과 용비어천가식 건배사가 이어졌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고위직으로 살아남으려면 윗사람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고 칭찬일변도의 언행이 필요한 것 같았다. 사업과 지시가 비현실적이고 예산낭비적 요소가 많아도 반대를 하면 속칭 찍힐까 봐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출세하려면 필자가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없어져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현장근무부터 하여야 한다. 경찰의 경우 순경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승진보다 일 자체의 보람, 경험, 경륜, 나아가 봉사와 배려에서 직장생활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본청, 지방청 기획부서의 조직과 인력을 확 줄이고 지구대, 파출소 등 민생현장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출발도 현장에서 하여야 하고 승진하면 반드시 일정기간 현장부서 근무를 반드시 하도록 하여야 한다.   인사권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가능한 일   현장과 기획이 일치되도록 인사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쓸데없는 전시성 회의도 줄이고 간담회도 청취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본청, 지방청의 지휘부서의 근무자들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 외국연수도 어학중심에서 현장중심의 근무자들로 채워져야 하고 그들이 외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봉사와 배려를 가지고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우받고 승진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회의와 교육도 현장에서 토론과 대화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연륜과 경륜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 지휘관이 될 수 있도록 인사보직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현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하여야 한다. 오로지 자기 개발에 조직을 이용, 승진, 유학 등 특혜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국외국비유학 이전에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즉시하고 봉사체험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국비유학을 다녀온 후 교육기관에 근무하고 경찰을 퇴직하고 일반대학교수로 가는 경우도 보았다. 어찌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계발에 치중하고 봉사는 등한시한 것이다. 계급과 승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본청, 지방청의 건물치장보다는 지구대, 파출소 등 현장근무부서의 건물과 사무실을 개선하여야 한다.  윗선으로 올라가면 넓은 집무실, 접견실, 거기에 더해 내실까지 있는 데 비해 민원인들과 씨름하는 일선 경찰서 조사실, 지구대 파출소에는 직원 개개인의 사무공간이 비좁고 협소하다는 것을 자성하여야 한다. 결재와 보고, 지시에 치중한 일하는 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시하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   보고와 결재 때문에 현장처리업무가 등한시되지 않도록 선조지 후보고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현장근무자에게 권한을 주어야 한다. 윗사람들도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모두 인사권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의 미래가 밝아진다.

최광

2018년 1월 7일, 최저임금상승으로 종업원 없는 무인점포가 등장하고 있다. 무인점포로 운영되는 한 편의점에서 셀프계산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DB  어떠한 정책담당자가 유능한가? 어떠한 정책이 훌륭한 정책인가? 왜 수많은 국가정책들이 실패해 정책담당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쥐지 못하는가?   경제영역에서 하나의 제도나 정책은 하나의 효과만 일으키지 않고 일련의 효과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그 일련의 효과들 중에는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효과와 시차를 두고 천천히 나타나거나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다. 통상의 무능한 정책담당자는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효과를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그 정책은 실패한다. 반면에 유능한 정책담당자는 눈에 보이는 효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까지 고려해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한다.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는 좋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중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는 정책담당자의 임기 중에 나타나지 않기에 때문에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사실 무능한 정책담당자와 유능한 정책담당자의 차이는 재앙까지도 초래할지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까지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충실히 정책에 반영하느냐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근의 일련의 경제정책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효과나 결과를 무시하고 있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하나의 구체적 사례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자.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공무원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투입된 예산규모와 채용된 공무원의 숫자이기에 꽤 근사해 보인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은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그 실질적 비용이 참으로 크다는데 있다. 공무원 증원 예산이 조세로 충당될 때 추가 세금은 민간부문 가처분 소득의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경제의 소비감소 생산감소 고용감소로 귀결된다.    소비감소와 생산감소는 경기후퇴를 의미하고 경기후퇴에 따라 고용이 감소된다.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하는 것이지 정부가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정책담당자가 대한민국 말고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는 저절로 창출되는데 경제성장을 막는 온갖 정책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을 줄이겠다고 말하는가?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인데 마차를 말 앞에 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불가피해서 해고를 시작하니 해고를 막기 위해 3조원씩이나 되는 기금을 만들어서 지원하는데 이는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보이는 것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서 오는 잘못된 무지의 정책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경기의 후퇴에 따른 민간부분의 고용감소에 더하여 공공의 고용증대가 민간의 고용감소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최근 만난 현장의 어려움을 전하는 기업인의 하소연은 참으로 절실하다. 10년 이상 근무한 중견 팀장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사표를 쓰고 퇴사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기업 임원의 하소연은 그 자체로서 애절하나 이 호소도 사실 눈에 정책담당자들이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지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것은 당해 직원의 퇴직 전 민간기업 팀장으로서의 사회의 기여 정도와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의 사회에 대한 기여 정도의 차이이다. 기술혁신을 선도하며 세계를 누비는 민간기업 팀장과 철밥통 공무원 중 누가 사회에 더 기여하는가? 우리사회는 둘 중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는가?   사실 실업을 완벽히 해소하는 한 가지 특별 처방이 있긴 하다. 나라 전체의 모든 실업자를 거주지별로 빈 공터에 모두 모이게 해서 국가 예산으로 충분한 일당을 주면서 하루는 구덩이를 파게하고 다음 날은 전날 판 구덩이를 메우게 하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완벽한 실업 해소이다. 그러나 나라는 파멸의 길로 간다. 얼마가 지나면 경제가 망해 실업자에게 일단을 줄 예산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해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일당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산적인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정부의 최근 일자리 창출사업의  대부분이 구덩이를 파고 메우는 식의 효과 없는 세금 낭비적이고 경제 파괴적인 정책이다.   최근 ‘자유’라는 단어가 세삼 주목을 끌고 있다. 평창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청춘을 바쳐 훈련해 온 젊은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태에 대해 당사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 특히 2030 세대의 젊은이들이 비분강개하고 있다. 그리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개헌과 관련하여서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인민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도 수용하려는 시도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잘못된 발상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통상 이념과 연관 지어 생각하나 자유는 결코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주장에서 보듯 모든 사람에게 자유는 천부(天賦)의 권리로 생명만큼 소중하다. 민주화의 긴 여정도 결국 자유의 증대를 위한 국민적 노력이 아니었던가?   명분이 무엇이든 정부의 개입과 간섭은 사회구성원의 자유의 감소와 속박의 증대로 귀결된다. 정부의 각종 정책이 보이지 않게 자유를 크게 제한한다는 사실을 정책담당자들이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그 귀중한 자유를 예사로 무시하고 제한하는 정책을 부지기수로 펼치고 있다. 정부가 간섭하면 개인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상실하게 되고 책임감도 없어진다. 정부가 일단 간섭하면 개인들은 그 다음의 간섭을 기대하기에 정부의 간섭이 많아질수록 간섭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다. 개인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자신을 위해 나서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동안의 정부 간섭과 개입으로 우리 국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오늘날 각자가 바라는 것을 스스로 달성하려 하기보다 정부를 통해 정부를 통해 달성하려 한다. 정부의 간섭이 늘어나면 개인이 무력화된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자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위의 사례에 적용된 것과 같은 논리로 평가하면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수많은 정책들 거의 대부분이 문제가 크게 있는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을 높여 주면 경기도 활성화되고 소득분배도 개선되리라 새 정부는 확신했다. 당국자 모두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한 결과가 작금 우리가 관찰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나타난 혼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무시하고 일반인들 눈에는 다 보이는 것조차도 스스로 눈감아 장님이 된 당국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김주성

영어유치원. 서강SLP 제공최근 영유아의 ‘놀 권리’를 앞세운 영어수업 금지조치는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교육부가 일단 금지조치를 거두고 정책유예기간을 갖기로 하였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영어수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열망이 워낙 큰데다, 정치권에서도 초등 1, 2학년에게 방과 후 영어수업을 부활시키고 영유아에게도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언어교육정책이 정교하게 추진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20년 전에 떠들썩했던 영어공용화론을 기억하고 있다. 화려하게 열렸던 민주화시대에 세계화의 꿈과 좌절을 맛보면서, 무역입국을 해온 우리들이 전 세계를 누비려면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어공용화가 언어정책으로 자리 잡지 못한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의 언어문화에 대한 반성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고려 광종 때 중국어로 치러지기 시작한 과거시험이 우리의 언어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으며, 학술개념어는 거의 100%가 한자어이다. 그동안 아름다운 고유어를 많이 잃어 버렸다. 대표적으로 현대어에 내일(來日)의 고유어가 없다. 그제 어제 오늘 모레 글피가 다 고유어인데, 내일만 한자어이다. 내일의 고유어가 본래 없지 않았다. 우리는 ‘내일’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어국수주의로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고유의 언어문화를 지키면서도 세계와 호흡하고자 언어개방정책을 펴왔다. 원어민 교사를 초청하여 초중고등학교에 배치하고 조기영어교육도 추진했었다. 우리의 언어정책은 제2언어로서 영어를 잘하는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런 정책방향에 대해서 교육부나 학부모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영어교육을 어느 시기에 시작해야 하느냐이다.   최근에 교육학은 뇌과학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인지발달과정이나 도덕발달과정을 살피려면 아이들의 행동밖에 관찰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뇌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뇌과학에 따르면, 아이들의 언어능력은 전두엽이 충분히 성장하고 두정엽과 측두엽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시기에 성숙된다고 한다.   언어생성능력을 관장하는 브로카 영역은 3-6세에 성장하는 전두엽에 자리 잡고 있고, 언어이해능력을 관장하는 베르니케 영역은 7-12세에 성장하는 측두엽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언어자원이 부족한 외국어 교육은 베르니케 영역이 성장하는 초등학생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언어자원이 풍부한 모국어 교육이나 양쪽의 언어자원이 비등한 이중언어 교육은 0세부터 또는 태어나기 이전에 태교로도 수행할 수 있다.   뇌과학의 지식은 설득력이 매우 높지만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뇌과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마다 뇌가 다르고, 사용하기에 따라서 뇌가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뇌과학의 지식을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영아 때부터 아버지의 열망에 따라 음악공부에 몰두해서 크게 성공하지 않았던가?   뇌과학의 지식이 확정적일 수 없는 한, 학부모의 열망이 반영될 수 있는 교육영역을 허용해야 한다. 초등 1, 2학년은 말할 것도 없고, 영유아들에게도 방과 후 프로그램은 교육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잖아도 규제가 많은 교육현장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마저 통제된다면 아이들의 성장환경이 지나치게 획일화 될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확보해주면서 영유아의 언어교육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영어수업을 권장하지는 않더라도 허용은 해야 한다.     이중언어의 교육환경이 아닌 한, 언어능력은 모국어에서 키워진다. 모국어 능력이 뛰어나야 외국어도 쉽게 습득한다. 고유의 언어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든 영어를 잘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든, 교육부는 영유아의 교육현장에서 모국어 교육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한다. 모국어 능력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자칫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좋은 취지의 유아언어교육정책이 교육현장에서 모국어 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흔

2018년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북한 김영남, 김여정 앞에 앉아 있다./ 조선DB예상대로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기회로 북핵과 남북문제를 철저히 자기들 페이스대로 끌고 가고 있다. 김정은은 예술단과 응원단에 이어 자신의 친동생인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외교 무대를 휘젓는 정치술을 보여주었다.   여동생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를 상대로 김씨 왕조가 지상 최악의 악랄한 독재자 가문이 아니라 알고 보니 부드럽고 인간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한국의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북한 내에서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을 한껏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는 이미 예상된 일이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애국 진영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할 때부터 조만간 정상회담 카드를 들고 나와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이를 경고해왔다.   오로지 대남혁명전략의 틀에서 움직이는 북한   북한의 모든 대남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전 한반도를 공산화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에 명시된 사항이다. 소위 ‘남조선혁명’을 완수하기 3대에 걸쳐 집요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북한 정권이다.   북한은 정권 수립 초창기에만 해도 대남혁명전략을 무력해방노선으로 규정했지만, 6·25 전쟁 실패 이후 소위 남조선혁명을 ‘반제반봉건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남한사회의 혁명 역량 강화를 위해 지하당구축전술, 통일전선전술, 대중투쟁전술, 국군와해전술 등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지원해왔다.   애송이 김정은이 남한의 정치인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주무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정권 창립 이래 노동당의 중심이 돼 일관된 전략에 따라 상황에 맞게 다양한 대남전술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수시로 정권이 바뀌는 우리는 북한이 만들어 놓은 테이블 위에서 일희일비하며 북한을 상대해왔다.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은 이제 그 효과를 보려 하고 있다. 전교조는 학교를 장악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교육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으며,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386세대들이 대한민국의 요직을 대부분 장악했고, 문화·예술 전반이 좌파 일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뤄가며 3대에 걸쳐 노력해온 남조선 혁명의 완성이 바로 코앞에 와 있는 상황이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삼지연관현학단 공연도중 흘린 세 번의 눈물은 바로 수령과 함께 남조선 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감회가 묻어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성적이다. 김씨 일족과 함께 수많은 북한 인민을 착취한 대가로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인물이 느닷없이 알량한 동포애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노림수는 남남갈등과 한미갈등 상식을 가진 대북 전문가들은 평창올림픽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내세워 평화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남남갈등과 한미갈등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하고 있다. 벌써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우리가 하루빨리 특사를 파견해야 하며, 한미군사훈련 재개에 대해서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한반도 긴장 책임을 미국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이같이 덮어씌우기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전술 중의 하나다. 북한은 “미국이 군사훈련을 재개하여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를 깬다”고 끊임없이 선동할 것이고, 한국의 좌파 정당과 언론은 북한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반미분위기 조성에 편승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문제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의 기초를 영광스러운 인물로 기록되느냐, 아니면 독재자에게 놀아나다 대한민국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문재인 대통령만큼 민족사의 전환점이 될 큰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 인물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금까지 말과 행동에서는 북한 주민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는 지상 최악의 북한 독재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북한 주민이 당하고 있는 처참한 인권유린에 대해 북한 지도자에게 공개적으로 항의를 한 적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탈북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 주민들이 처한 고통을 함께 느끼려고 해 본 적도 없다.   김여정이든 김영남이든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헌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뒤로는 비수를 감추고, 한 줌도 되지 않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수십년 간 수많은 동포를 희생시킨 이들을 경멸하는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인식 문재인 대통령은 이 대선 직후 자서전 형식으로 펴낸 이란 책에는 현재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스텐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문 대통령은 에서 “비서실장을 하는 동안 가장 큰일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책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잘 해결됐기 때문에 그 흐름 속에서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긴 과정 동안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북한과 신뢰를 쌓아나간 것의 결실이 정상회담”이라며 “남북한 평화라는 건 신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면서 정상 간의 소중한 합의가 내평개쳐지고 말았다”며 남북관계 경색을 이후 등장한 정부 탓으로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북한에 대한 인식은 현재 대북정책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말한 6자 회담은 철저히 북한의 노림수에 국제사회가 걸려들어 북핵 개발의 시간만 벌어준 결과가 되었으며, 10년간 이어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과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핵실험으로 햇볕정책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에 무리한 정상회담 추진과 대북지원 약속은 당시부터 국민들의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현재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남한을 방패막이 삼아 북폭만 잘 막아낼 수 있다면 선대(先代)가 이루지 못한 남조선혁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던진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고 생각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방문했던 특사 일행의 성과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상 최악의 독재자와 한배를 타는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현재 북핵 위기의 본질은 북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사악한 독재정권을 끝내고, 북한 동포들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있으면 김정은의 공갈이 더는 먹히지 않게 된다. 공갈로도 먹히지 않는 핵무기는 힘을 잃은 고철 덩어리가 될 것이고, 김씨 일가의 명줄을 끊은 무기로 기록될 것이다.

박종선

▲ (좌) 호메로스. (우) ‘오디세이아’ 표지.시중에는 ‘아빠의 무관심’이 자식을 잘 키우는 비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빠는 잠자코 돈이나 잘 벌어오고 엄마가 좋은 사교육을 수소문하여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에 관해 대부분 부재(不在) 상태이다.      이러한 부재는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버지가 집을 떠나 부재한 상태에서 자식이 스스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고전이 있다. 바로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Odysseia)’이다. 이 시가(詩歌)는 수백 년 동안 구전(口傳)되다가 기원전 8세기 무렵 비로소 문자로 정착되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이타케의 왕인 오디세우스이다. 그는 막 태어난 아들을 두고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전쟁(기원전 12세기)에 참전한다. 그는 전쟁 중에 출중한 지모(智謀)를 발휘한다. 저 유명한 트로이목마도 그의 아이디어다. 그는 직접 목마 안에 숨어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드디어 10년간의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의 왕들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각자 귀향길에 오른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순조롭게 귀향하지 못한다. 그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미움을 받아 무려 10년 동안이나 바다 위를 떠돌게 된다. 이를 둘러싼 파란만장한 모험담이 ‘오디세이아’인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아’를 펼치면 정작 오디세우스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첫머리(1~4권)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집을 떠나 1년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이어서 중간 부분(5~12권)은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바다를 떠도는 이야기이고, 후반부(13~24권)는 부자(父子)가 협력하여 가정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9년이 지나도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그의 생존에 의구심이 들자 이미 3~4년 전부터 많은 사내들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하러 몰려든다. 그들은 주인 없는 집의 가축을 잡아먹으며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다. 텔레마코스는 10대 중후반부터 이런 난장판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한다.      이때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포세이돈이 멀리 간 사이에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아테네 여신이 나그네로 변신하여 텔레마코스 앞에 나타난다. 여신은 바다 건너 필로스의 네스트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를 찾아가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권한다. 또한 “그대는 더 이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오”라고 격려한다.      이를 통해 텔레마코스는 커다란 용기를 얻는다. 그는 가인(歌人)의 애절한 노래를 제지하려고 밖으로 나온 페넬로페에게 쏘아붙인다.      “어머니께서는 집안으로 드시고…. (이런 일은) 제 소관이에요. 이 집에서는 제가 주인이니까요.”      페넬로페는 깜짝 놀라며 아들의 의젓함에 감동한다. 이튿날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가 떠난 이래 처음으로 주민총회를 소집한다.      그는 구혼자들이 더 이상 자기 집에 대해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요구한다. 아울러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려고 하니 배와 선원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다. 회중은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때 아테네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충직한 부하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항해를 주선하고 동행한다. 이 ‘멘토르’가 오늘날 멘토(mentor)의 어원이 된 것이다.      배는 새벽 무렵 필로스에 닿는다. 마침 거기서는 성대한 제사의식이 열리고 있다. 오랫동안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이타케에서는 보지 못하던 성대한 광경이다. 멘토르는 “이제는 자신을 갖도록 하시오. 지금은 결코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오”라고 격려한다. 네스트로에게 안내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네스트로는 오디세우스를 회상하며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오디세우스의 행방은 모르니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에게 가보라고 권고한다. 그러자 멘토르, 즉 여신은 네스토로에게 텔레마코스를 부탁하고 떠나간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멘토는 적당한 시점에 물러나야 하나 보다. 네스트로는 텔레마코스의 스파르타행을 주선한다.      텔레마코스는 스파르타에 도착하여 메넬라오스를 만난다. 그가 바로 문제의 여인 헬레네의 남편이다. 그녀는 한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달아났다. 메넬라오스가 그의 형인 미케네의 아가멤논에게 이 일을 호소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되찾지만 그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최근에야 9년 만에 가까스로 귀향한 것이다.      메넬라오스 부부도 텔레마코스가 오디세우스를 닮았다고 놀란다. 메넬라오스는 귀향 도중에 오디세우스가 요정 칼립소에게 붙잡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낙담한 텔레마코스 앞에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귀향을 재촉한다. 텔레마코스가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자 헬레네는 “오디세우스가 벌써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덕담을 건넨다.      마침 그때 오디세우스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무려 20년 만에 고향땅을 밟는다. 두 부자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조우한다. 그러나 곧 부자임을 확인하고 뜨겁게 포옹한다.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 밖으로 통하는 문을 걸어잠근 다음 난폭한 구혼자 무리들을 도륙 낸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도 재회의 기쁨을 만끽한다.      텔레마코스는 스무 살이 되도록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다. 10대 중후반부터는 난폭한 구혼자 무리로부터 시달리다 19세부터 1년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그의 1년은 아버지의 20년 축소판이다. 어느새 늠름한 용사로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와 손잡고 집안을 회복한다. 이처럼 ‘오디세이아’는 아버지의 귀향기이자 동시에 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다. 그러나 텔레마코스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생생한 현실이다. 그는 스스로 역경을 헤치며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강요된 허구이다. 그들은 입시교육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성장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만다.      그로 말미암아 성장론은 사라지고 수저론만 난무한다. 흙수저, 금수저도 모자라 핵수저까지 등장한다. 김정은까지 수저론에 힘을 보태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세태가 어떻든 간에 ‘오디세이아’는 변함없이 고전적인 성장론을 역설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아마 강인한 후계자가 되어 이타케를 훌륭하게 다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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