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연애하기 좋은 계절이다. 살결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도 마냥 기분이 좋으니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요즘같은 때의 늦은 저녁, 어스름한 불빛 아래, 열렬히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을 가끔 발견한다. 그럴때면 공연히 나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게도 분명 그런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헤어지기는 싫고, 그래서 1분 1초가 살을 깎아 먹는 것처럼 아프게 흘러갈 때가 있었다. 같이 있고 싶은데 밤은 깊었고, 하늘에는 둥그렇게 엄마 얼굴이 떠 있다.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세상이 몽롱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나는 요즘도 그 시절 꿈을 꾼다. 꿈속의 나는 이른 새벽,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분명 초췌한 모습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이 나인데, 또 그 모습을 내가 관찰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만 꿈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하다. 대문 앞의 나는 겨우 심호흡을 마치고 벨을 누르기 위해 앞으로 손을 뻗는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며 내 등짝에 불덩이를 꽂는다. “야! 너 오늘 학교 안가?” 역시, 언니다. 언제나 악역은 언니다. 나와 여섯 살 터울인 언니는 내 여고시절 결혼을 했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나의 대학시절 스토리에 등장해 내 등짝을 스메싱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내 꿈속의 악역은 단 한 사람, 언니로 캐스팅된 까닭에, 얄미운 일에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수시로 그녀가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었듯 그러한, 그저 좋아서 못 견디는 연애에도 갑과 을이 존재할까? 물론이다. 그런 연애에도 갑과 을은 존재한다. 다만 사랑이 깊어지면서 서로의 마음이 함께 묶여 갑이 을의 방향으로, 을이 갑의 방향으로 좌표이동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이동하는 좌표는 때때로 가속도가 붙어 접점을 놓치고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이랬던 그가, 처음엔 그랬던 그녀가,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은 이미 을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애의 출발점이 갑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을의 좌표라는 것.   ‘벌거벗은 내 마음’이라는 산문집에서 보들레르가 말했다. ‘서로에게 홀딱 반한 두 연인이 욕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라도, 그들 중 한 사람은 더 침착하고 덜 몰두해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수술 집도의 또는 사형집행인의 역할이고 나머지 사람이 환자이며 희생자가 된다.’   을이 되는 일은 재미없는 일이다. 그리고 슬픈 일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내 판단으로 모든 일이 결정되는 갑이 되고 싶다. 더구나 연애에 있어선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좋아해 주는 일, 그건 누구나 꿈꾸는 연애 유토피아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아니 위치는 갑의 좌표다. 하지만 나는 재미없고 슬픈 ‘을’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우리 누구나 내 속에 몇 개의 기억들이 있다. 내가 을이었을 때의 이야기. 갑인 경우의 기억은 그저 흘러갈 뿐이지만 을의 경우 흘러가지 못하고 세 번째 갈비뼈 쯤이나 췌장 정도에 걸려 이유 없이 한 번씩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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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6)   인공지능 비서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   조선DB 아시다시피 법률사무소에서도 이제 인공지능의 활용이 최대의 화두이다. 무엇보다도 사무자동화를 통한 효율성의 증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리서치 분야에서는 자료만 확보된다면 간단한 인공지능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아니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필자의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법률시장에서의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현실적 문제가 되었고, 다만 관건이 되는 것은 어떠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그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각계에서 인공지능 비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집에서 인공지능 스피커에 대하여 달콤한 음악을 들려달라고 말로써 명령하기도 하고 오늘의 스케줄과 날씨 등을 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의 명령과 그 역할 수행은 상당히 일반화되어 달리 특별한 특이점은 없어 보이기도 하다. 물론 이와 같은 기능을 글이 아니라 말로써 명령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혁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에 컴퓨터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과거의 키보드에 입력 내지 타이핑하는 대신에 말로서 명령어를 하달하여 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PC의 기능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윈도 10에 장착된 인공지능 코타나가 음성명령어에 의한 인공지능 비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글로는 서비스가 지원이 되지 아니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필자의 컴퓨터는 미국에서 구입한 제품이어서 영어로 실제로 명령을 내려보니 의외로 인식률이 높았다.   음성인식에서 자체적인 교정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다소 불확실한 발음을 하여도 스스로 알아서 적절하게 교정을 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였다. 불필요한 고정인력을 줄이고 모든 업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나아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가성비를 높이고자 전면적인 사무실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시점에 코타나는 실로 반가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실제 운용하는 과정에서 명령어는 나름대로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일부 영역에서는 아예 명령어를 이해하지 못하여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나래이터 기능까지 가세하여 이 둘을 잘 융합하여 사용한다면 그런대로 사용할만한 효율적인 시스템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 제대로 보완할 것인지에 달렸었다. 어쨌든 필자는 음성에 의한 사무자동화 환경을 구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키보드의 타이핑이 아니라 음성으로 컴퓨터를 켜서 기본적인 이메일을 체크하고 나아가 워드 문서를 작성하고 나아가 검색창에서 일정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기능은 상당히 업무효율성을 제고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타나에서 컴퓨터의 일부 탑재 기능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워드를 작성하면서 음성인식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아니하여 좀 고민스러웠다. 이를 위하여서는 에버노트나 기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이를 같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달리 연결프로그램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간단한 기능이나마 음성으로 코타나를 통하여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물론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만간 극복이 될 것이다. 현재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만이라도 이를 활용하고 나아가 시간을 두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DB 조만간 무인점포 내지 온라인로펌의 시대에 열려 실제 일을 하고 나아가 사무실에서 상호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은 인간 동료나 직원보다는 오히려 인공지능밖에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필자 역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쨌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코타나는 컴퓨터 시대에 또 다른 혁명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지금부터라도 코나타와는 좀더 친한 동료 사이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코타나를 많이 활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공 비서기능에 좀더 친숙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와의 대화를 위하여 낮은 단계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작업 즉 코딩작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무엇보다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에 좀 더 집중하고 나아가 이를 배우기 위하여 상당한 성실함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좀더 기울이겠다고 필자 스스로에게도 다짐해본다. 이제 감성 역시 오히려 인간보다는 인공지능에 좀더 특화하여 인공지능과의 상호 친밀감과 공감대의 형성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에 유의할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다소 씁스레한 느낌마저 들었다.    막스 프랑크 일기(87)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으로서의 새로운 출발   조선DB 지난 2년간 국내 1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으로 활동하여 오던 중 올해에 들어와서도 운 좋게 다시 임기가 연임되어 상당히 기뻤다. 사실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라는 직책이 어쩌면 단순한 명예직임에도 필자 스스로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버켓리스트 중의 하나에 세계 10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서는 국내 골프장 선정위원회가 그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프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골프에 대하여 좀더 공부하면서 배우고 가능하면 국내 골프장의 발전에도 나름대로 이바지를 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인생 후반기의 음미체 중에서 체육항목에서 골프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어서 골프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선정위원회라는 직책이 나름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처럼 골프에 대한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 있게 되면 무엇보다도 필자가 골프에 대한 모든 궁금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들 전문위원 중에는 프로골프선수에서부터 각 골프장의 아마추어 챔피언, 골프설계, 골프장건설 그리고 골프장관련 연예인 그리고 관련 산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기적인 세미나를 통하여 그간 제대로 모르는 골프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배워나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사하다.   사실 골프는 자연의 모든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만이 그 때에 비로소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다고 본다. 바람의 세기, 방향, 그리고 잔디의 상태. 잔디의 결, 그린 등에 있어서 수분의 정도, 잔디가 뿌리 내린 토양의 상태 그리고 공기의 밀도 등등이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골퍼는 이미 식물전문가이고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다고 본다. 이와 같이 세심한 사물과 자연에 대한 점검 분석 작업이 없이는 골프스코어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사실 필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이다. 너무 주제넘게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10대 골프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를 점검하기도 하고 나아가 이로부터 얻은 많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100대 골프장의 평가에 참여해보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100대 골프장의 선정위원이 되기 위하여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의 3분의 2 이상의 골프장에서의 실제 라운딩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역시 나름대로 도전이어서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10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 되었다고 하는 결과의 달성보다는 그 과정에서 경험하고 나아가는 도전의 여정이 더 짜릿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러한 꿈은 나에게 무한한 자극을 제공하여 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버켓리스트만으로도 개인적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범하는 제3대 국내 10대 골프장선정위원들 간에 좀더 우의를 다지면서 국내 좋은 골프장도 다 같이 많이 가서 라운딩하면서 평가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나아가 골프의 본고장인 영국과 기타 100대 골프장이 있는 해외 골프장을 방문하여 그 감흥을 느껴 보고 이를 칼럼 등을 통하여 여러 분에게 그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50대 중후반에 들어서 골프는 이제 또다시 새롭게 와 닿고 있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지난 1-2년 동안 다소 소원한 점이 있지만 이에 새롭게 골프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약간의 당뇨기가 있는 필자에게는 골프가 거의 보약과 같다고 본다. 문자 그대로 좋은 잔디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또한 좋은 햇빛을 받으면서 걷는 운동이니 그 얼마나 좋고 축복받은 운동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러한 골프를 즐김에서도 좀 더 정확히 골프규칙에 충실하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성적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라운딩을 통한 힐링하는 과정과정 들은 그 자체가 감사와 행복일 것이다.    제3기 선정위원들과의 출범식에서 이루어진 선정위원 분들과의 라운딩은 아주 소중한 추억거리를 제공하여 주었으며 필자 스스로에게는 큰 힐링이 된 멋진 시간이었다. 올해 들어서 두 번째를 맞이하는 라운딩이어서 더욱이 반가웠다. 50 대에 들어와서는 달리 어떠한 오락이나 운동을 통한 즐거움보다도 골프라운딩을 즐기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면이 많다. 어쩌면 자신과 골프코스만의 은밀한 상호 교감과 대화와 같은 라운딩은 때로는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나아가 자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컴퓨터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필자로서는 무한한 해방의 순간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설렘의 순간임에 틀림이 없다. 겸허하게 자연의 법리를 수용하면서 가능한 안의 범위에서 이를 분석하여 잔디, 공기 기타 골프코스와 선의의 경기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멋진 삶의 과정이고 나아가 축복의 순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국영수”가 중요하지만 후반에 들어와서는 “국영수”보다는 “음미체”가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음미체”라고 하면 음악, 미술 그리고 체육을 필자 나름대로 지칭하는 것이니 이에 대한 먼저 깊은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이 “음미체”과정을 제대로 따라가면서 즐기지 못한다면 중장년대의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를 통하여 중장년층의 인생의 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냥 달리 특별한 결실이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고 다만 골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골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한 골프장에서 자연과 인간이 가꾸어 놓은 나름의 아름다운 창작물 등을 감상하고 싶다. 또한 여러 골프장의 나름의 매력을 한껏 접하면서 가끔은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과 상호 교감하고 또한 토의를 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그간 숨어 있었던 클럽챔피언에로의 도전에 다시 시동을 걸고 싶어졌다. 사실 그간 과거에 필자보다도 골프를 잘 치지도 못하게 생각되었던 많은 사람이 거의 다 챔피언이 되어 이에 화가 나 의도적으로 골프를 잠시 중단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업무 못지않게 다시 골프에 좀 더 친화된 삶을 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주어진 안의 범위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각오로 클럽챔피언 등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혹자는 비난할지 모르지만 좌충우돌하면서 그냥 철이 전혀 없는 중장년으로서 특히 마음은 한없이 젊고 의욕만이 앞선 그저 그런 자유로운 철부지 중의 하나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상융

대한민국은 고소, 고발이 많은 나라다.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몇 십배 이상 많다고 한다. 인터넷, 모바일 등을 통한 범죄가 급증하다 보니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에 편승해 수사를 해야하는 경찰, 검찰의 숫자도 늘어나고, 판결을 하는 법관도 늘어날 것이다.   고소, 고발 중에는 민사성 고소, 고발도 많다.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지 않고 도망간 경우도 많고, 물건을 보내주었는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돈을 받는 게 목적이니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라고 고소장 자체를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인들은 경찰, 검찰에서 고소사건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심지어 단순 차용금 미변제 사건도 차용금 편취 사건으로 둔갑하여 경찰, 검찰에 고소를 제기한다. 경찰에서 고소장을 반려해도 검찰에서 수사를 직접 해 달라고 검찰에 제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지휘라는 명목으로 경찰에 고소장을 내려 보낸다. 고소 민원인은 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검찰이 수사하지 않고 경찰에서 수사하느냐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민사성 고소사건이 많은 데는 원인이 있다. 법원에 제기하려고 해도 피고(예컨대 돈 떼먹고 도주한 사람)의 주소지나 연락처를 잘 모른다. 청구금액인 돈의 액수에 따라 인지대의 금액이 비례하여 돈이 없으면 소송도 못한다. 피고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출석을 기피하고 항소, 상고 등으로 시간을 끌고 그 기간 동안 재산을 빼돌리면 판결문을 받아도 집행이 안 돼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변호사를 선임해도 변호사 비용을 공제하면 승소해도 남는 것이 없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대부분 입증책임을 지니 증거가 없으면 승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돈도 안 들고 증거도 수집해 주고, 피고 소재지도 찾아주는 경찰, 검찰의 고소를 선호한다. 더구나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관이 사실 규명 차원에서 증거를 수집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소인의 소재지도 경찰이 찾아주고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기피하고 안 나오면 수배까지 시켜준다. 어찌 보면 경찰이 국민이 할 수 있는 서비스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민사성 고소사건은 반려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고소인을 설득하여 반려하면 성과평가에 반영도 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이 반려한 고소장을 다시 검찰에 접수시켜 검찰에서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그럴 바에야 반려하지 말고 접수하여 조사를 하는 것이 좋다. 민사성 고소사건은 무혐의 처분이 나면 고소인을 무고죄로 입건하는 것을 검토, 고소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무고죄로 입건되는 고소인이 많지 않다.   고소인의 고소 제기 목적은 피고소인에 대한 처벌도 있지만 경찰과 검찰에서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조정해 달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의 각종 분쟁, 조정, 갈등에 대한 중재조정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갈등 문제를 형사 사건화하여 경찰, 검찰에서 중재조정을 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사회적 약자 층의 경우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 배상을 경찰에서 중재조정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주면 변호사 비용, 감정비용, 증거수집 비용 등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인터넷, 모바일을 통한 명예훼손, 모욕 등의 고소, 진정도 많다. 이들 사건의 경우에는 처벌에 비해 수사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주로 벌금형, 기소유예 등을 처벌되는 것에 비해 출장비 등 수사비와 인력이 많이 든다.   한편 대한민국 법령 규정을 보면 획일적으로 모든 법률에 형벌이 있다. 양벌 규정의 경우에는 기업체도 처벌이 된다. 처벌 규정으로 형벌을 규정해놓아야 법 집행력이 담보된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행정 법규 위반인 경우 지자체 등 각 기관에서 고발을 한다. 기관 감찰조사 결과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에도 또다시 수사의뢰를 한다. 내부 조직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내부 고발자도 많아진다.   심지어 신고보상금을 노린 파파라치 학원도 성업 중이다. 과거 학원비 등 사교육비용이 높아지자 정부는 불법 과외 단속을 빌미로 신고보상금을 대폭 늘렸다. 신고보상금 고발을 확산시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사회와 조직 간에 불신과 감시 풍토가 조장이 된다.  이런 사회나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방송, 신문 보도에 매일 경찰, 검찰의 수사가 등장하고 체포, 검거, 압수수색의 모습이 등장하는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경찰, 검찰이 많아지고 법관이 늘어나고 구치소, 교도소가 과밀화되는 우리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다. 로스쿨 지원자가 많아지고 검사를 선호하고 인력이 늘어나는 나라는 보기 좋지 않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4) 또 다른 세상으로서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의미   독일 태생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  뮌헨 등을 비롯한 독일 전역은 음악이 생활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뮌헨에서 가까운 지역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음악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주변의 환경 자체가 고전음악이나 낭만적인 음악이 그대로 흘러나오는듯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취에 취하여서인지 최근에 필자는 지금 바흐의 Invention 1과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309번에 도전하고 있다. 피아노는 거의 왕초보인 필자가 이런 도전을 한다고 하니 모두다 기가 막히는 모습이다. 무리하지 마시고 정신을 차리라는 표정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절실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치지는 못하지만 그 선율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흐의 Invention은 피아노 연습을 위한 곡이기도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피아노를 위한 곡이어서인지 모르나 좀 묘한 느낌이 나는 곡이다.   이에 반하여 모차르트 곡은 좀더 멋지고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 물론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도전이고 어쩌면 너무 무식하고 어이없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소 어이없는 몸짓일지는 모르지만 그냥 도전하는 필자 자신이 대견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평생의 도전과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성취동기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그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   물론 이 도전이 미완성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도전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늦은 밤 이른 새벽이 마냥 즐기기만 하다면 그 자체로서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삶에서 목표를 발견하는 것도 그 자체가 행복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그 자체도 축복이다. 그간 필자가 항상 외쳐온 인생 후반기의 ‘음미체’에서 음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아서 너무 좋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는 있다.   음악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음치에 박치에 리듬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필자에게는 음악 세상만큼 경이롭고 또한 두려운 세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마음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음악이 주는 새로운 세상의 아름다움은 필자에게는 구원이기도 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음악 세상은 창작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가는 진정한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숭고한 직업군이다. 그리고 여러 악기의 음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지휘자 역시 너무나도 매력적인 직업임이 분명하다. 지휘자의 지휘봉과 표정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에 음악 세상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간 왜 이렇게 경이로운 세상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그렇지만 지금도 결코 늦지 아니하다고 본다. 필자가 어느 날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거나 아니면 지휘자로 서지 못한다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 정 안되면 카네기홀이나 이에 준하는 홀을 빌려서 가까운 몇 사람의 지인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연주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고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필자가 이에 대하여 만족해하고 행복해 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즐기는 음악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필자 스스로만이 즐기는 음악은 활짝 열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에 집중하면서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필자 자신도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연주자, 작곡가 나아가 지휘자로서의 기초작업에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을 것인지……. 그렇지만 필자 스스로 자위해 본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 스스로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면 모든 것을 무시하고서라도 그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더 흥미로운 점은 음악의 세계에는 법률과 같은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 음악의 세계에는 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또한 골프에서도 리듬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골프와 음악이 또한 묘하게 엮여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법률과 골프 그리고 음악이 가진 묘한 인연에 감사를 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창작의 세계인 소설도 더 없이 매력적이다. 결코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심은 누구나 있는 것인데 소설이라는 창작의 세계에서 일상에서 가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현재는 미래의 목표라는 방향성이 있어야 그 빛을 더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꿈은 그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비록 그 꿈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꿈 너머 꿈’이 있기 때문에 필자에게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그 어떤 의미 이상으로 와 닿는다.   막스 프랑크 일기(85)   차량 공유산업의 체험과 그 의미   조선DB 최근에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다음날 제3회 10대 골프장선정위원회의 출범식 행사가 있는데 갑자기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급히 연락을 해 보니 아무래도 서비스센터에서 정밀점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내일 차를 사용하여야 하는 데 여의치 않게 되어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여러 가지 옵션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사무실의 컴퓨터컨설턴트인 직원이 차량공유를 언급하였다. 사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차량공유가 널리 일반화되어 있어서 차렌트나 리스보다도 많이 사용되는 실정이라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차량 공유가 많이 이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던 차에 국내 차량 공유업의 실태가 갑자기 궁금하여 졌다. 그래서 이를 좀 알아보라고 하니 생각보다 매력적인 면이 많이 있었다.   먼저 무엇보다도 부름 서비스가 가능하여 원하는 장소에 차를 가져다주고 반납 시는 해당 장소에 그냥 놔두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름 서비스 비용은 마케팅차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부담이 되지 아니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차의 공유비용은 거의 30분 단위로 계산되면 또한 그 이용시간에 비하여 그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운전하기에 편한 SUV 차량도 있었고 비싼 외제 차량도 상당한 할인행사를 하여서인지 그리 부담이 되지 아니하였다. 유류비도 별도로 나중에 가득 채울 필요도 없이 주행거리별 일정한 가격만을 추가로 부담하면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자동차 보험도 기본적인 종합보험에 가입하도록 선택되어 있었고 그 보험료도 그리 높지 않게 책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차를 가져다주고 이를 주차한 다음에 이를 카톡 등으로 통지하며 줌으로써 달리 복잡한 절차가 없었다. 아침에 약속된 시간 10여분 전에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차로 가니 해당 차량공유업체에 가입하여 회원 가입된 핸드폰상 앱 회면 상에 있는 스마트키 화면을 켜서 ‘문열음’이라는 항목을 작동하니 문이 열렸다. 다만 자동차 안에 있는 자동차의 키는 스마트키가 아니고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일반 수동 키가 부착되어 있었다. 어쨌든 휴대전화기로 차의 문을 열고 골프가방 등을 실어 차의 시동을 걸고 행사장으로 운전하였다.   내비게이션도 잘 작동을 하여 행사장으로 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안 것이지만 차를 타기 전에 차의 외부와 내부 등에 대한 사진을 스마트키 아래에 있는 차량상태확인란에 있는 카메라로 이를 찍어 전송하여야 나중에 면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라도 늦었지만 사진을 전송하였다.   물론 차는 일류 렌터카 회사와는 달리 상당히 사용한 차량이기는 하였으나, 그 기능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별도로 차 키를 받거나 복잡한 절차 없이 문을 열 수 있어서 좋았다. 즉 그냥 내 핸드폰으로 차의 문을 그냥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행사를 잘 마치고 귀가하면서 이를 아파트 주위의 주차장에 세워두고 내 핸드폰상의 스마트키 아래에 잇는 반납항목을 클릭하고 나아가 주차장소 주변 사진을 촬영하여 이를 발송하였다. 이로써 모든 반납절차는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렌터카에 비하여 주유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통행료 등은 후지급제여서 이 역시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어쩌면 더는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내의 사무실로의 출퇴근 시는 전철 등 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하고 다만 갑자기 차가 필요하거나 특히 장거리 여행 등 필요한 경우에 차량공유업체의 차량을 이용한다면 너무나 편리하고 가성비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량공유의 개념은 집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의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즉 이는 차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24시간 중 극히 일부의 시간만을 사용하는 소유자의 여유시간과 차량이 없어서 일정한 경우에 차량을 분내지 시간단위로 잠시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상호 매칭시켜 상호 윈윈하는 사업모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 너무나도 앞서고 편리하며 소비자의 수요에 들어맞는 사업모델임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차량공유업체에서 차량을 사서 이를 소유한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원래의 개념에 의하면 차량공유업체는 단지 소유자와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단지 연결하는 역할만을 중개할 수도 있다. 앞으로 국내 차량공유산업이 좀더 발전하게 되면 이러한 서비스도 제공될 것이다.   어쨌든 실로 색다른 경험을 하여 너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의 차량의 이용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사물을 혼자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다 같이 이용함으로써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서로 윈윈하는 공유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논리를 너무 확대한다면 미래는 끔찍할 정도로 모든 부문 등에서 공유가 일반화될 것으로 보여 한편으로는 갑자기 섬뜩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대의 전체 흐름은 대세여서 달리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의 공유개념은 좀 더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장점을 취하는 것일 뿐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차량 공유업체로부터 다소 신기로운 체험에 놀라면서도 이처럼 앞선 시스템을 법률시장에서도 이를 구현하고 싶다는 의욕과 함께 새로운 부담감이 들어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또 다른 세상의 체험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내가 앞으로 희망하는 온라인로펌 역시 선진화된 공유시스템개념을 응용하여 집단지성을 통한 좀더 경쟁력 있는 사무실을 계획•준비하고자 한다.  

장상인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음 정류장은 도시샤(同志社) 대학 앞입니다."   교토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던 필자는 안내 멘트에 귀가 번쩍 뜨였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도시샤(同志社) 대학은 시인 윤동주(1917-1945)가 다녔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차 확인하자 운전사는 ‘내려서 뒤쪽으로 조금 돌아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서정문에서 바라본 도시샤 대학 도시샤 대학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에서부터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이 대학은 한 청년의 뜻(志)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쇄국의 일본을 개방하려는 의지로 미국에 건너가서 ‘일본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자’가 됐다. 청년의 이름은 니지마 조(新島 襄, 1843-1890). 그가 1875년 도시샤 대학(同志社英學校)을 설립했던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학교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서 캠퍼스는 고즈넉했다. 갑자기 이방인(異邦人)이 된 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신세를 졌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윤동주 시비(詩碑)가 어디 쯤 있나요?”   “똑바로 가시다가 우측으로 돌아가세요. 저기 지붕 끝이 뾰족한 건물 앞에 있습니다.”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 나란히 있어   경비원의 말대로 건물사이로 들어가자 나무아래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의 시비가 나란히 있었다. 비(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일본어와 한글로 쓰여 있었다.  과 을 간행하여 현대시의 확립에 기여하였으며, 유능한 시인을 문단에 등용시키기도 하였다. 1945년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현, 이화여자대학)의 교수와 경향신문의 주간을 역임하였고, 을 비롯한 산문집을 간행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옥천군, 옥천문화원, 정지용 기념사업회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 모교에 시비를 세웠다. 조각된 시는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이다.>   정지용 시비사실을 토대로 한 글이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윤동주 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동주에 대한 글도 일본어와 우리말로 쓰여 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윤동주 시비의 글   다소 어눌한 한글 표현이지만,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필자는 혼자서 시비에 새겨진 빛바랜 서시(序詩)를 읽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비  필자는 읽고 또 읽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詩)였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필자는 ‘주변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필자가 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와 윤동주   “인간의 얼굴은 하나의 줄기위에 핀 일 순간의 꽃이다./ 바람과 새가 날라다 준 종자처럼/ 여기저기 흩어지고, 피고 지는 존재/ 인간도 식물과 별로 다를 게 없느니….”    일본의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가 쓴 라는 수필에 담긴 내용이다. 그 책에도 ‘윤동주에 대하여’라는 글이 있다.     누군가가 그린 윤동주의 작은 액자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1990년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씨를 도쿄에서 만났다고 한다. 시인은 윤인석 씨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함께 ‘아우의 인상화(印象畵)’란 시를 소개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살그머니 작은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슬픈, 진정코 슬픈 대답이다...”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윤인석 씨가 큰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이에 공감한다”고 했다.   윤동주의 시비(詩碑)는 한국산과 교토(京都)산의 돌로 세워졌다. 양국화합의 의미를 두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한일 간의 간극(間隙)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을 윤동주를 추모하면서 뚜벅뚜벅 도시샤 대학 교문을 나섰다.

김병헌

인터넷에서 '김정숙'을 검색하면 첨부한 자료와 같이 뜬다. 그런데 이름 옆의 직업을 표시하는 곳에는 ‘영부인’이라 하고 경력에는 ‘대통령 영부인’이라 하였다.   다소 어이가 없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 매체나 기타 소소한 잡기(雜記)에서도 대통령 부인을 으레 영부인이라 부르고 또 쓴다. 이는 대부분 '영부인'이 곧 '대통령 부인'의 줄임말이라는 오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이다. '영부인'을 한자로 쓰면 '令夫人'이다. 국립국어원의 에는 '영부인(令夫人)'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더하여,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를 때는 '영식(令息)', 남의 딸을 높여 부를 때는 '영애(令愛)'라고 한다. 이때 영(令)은 존칭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따라서 자신이 정말 존경하는 분의 부인이라면 누구든 '영부인'이라 할 수 있다. 그게 '영부인' 본래의 뜻이다.   권위주의가 남아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영부인으로 부르자 주변 사람들이 영부인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대통령 부인에게만 부르는 것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이제 대통령에게 각하(閣下)라는 말도 쓰지 않는 마당에 영부인이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다. 그냥 ‘대통령 부인’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김정숙 영부인’의 경우는 권위주의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영부인’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쓰는 가운데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뜻으로 굳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낯 뜨거운 일이다. 청와대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수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르기는 매일반인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이유는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 없이 한글로만 써놓으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쓰는 사람도 자의적으로 쓰고, 읽는 사람도 자의적으로 읽는다. 그러면서 차츰 엉뚱한 단어로 굳어져버린다.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자를 무시하면서 우리의 언어생활은 점차 흐리멍텅해지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다.

이동윤

평소에 운동처럼 필요한 정보만 선택해서 취하는 집중력 훈련을 통해 뇌의 감정반응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불안감, 두려움 등의 감정과 연관이 있는 소뇌의 편도체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집중력을 요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을수록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게 되어 주변의 불필요한 정보를 무시하고, 필요한 정보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감정처리와 연관된 두뇌의 신경 연결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운동은 신체뿐만 아니라 뇌에도 유익하다. 정기적인 신체활동을 포함한 건강한 생활방식이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품과 결합될 때 뇌에 더 많은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게 되고, 그 결과 지능을 포함한 정신 능력이 증가하게 된다.  또 운동은 기을 좋게 만드는 엔돌핀을 뇌에서 분비시켜 주의력을 떨어뜨리거나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우울증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효과는 명상을 통해서도 집중력을 강화하여 여러 복잡한 생각을 없애고 정신을 평온하게 하여 현재 일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주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은 다음 업무에 대해 미리 생각하거나 이미 끝마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다. 명상을 통해 이런 생각들을 없애고 힘든 업무를 다룰 때 걱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줄일 수 있어서 업무를 끝마칠 때까지 더 오래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 무릎 부상을 막으려면 근육만큼 뇌를 훈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 운동생리학과 스콧 맥클린 교수가 무릎의 전방 십자인대 부상을 연구한 결과,  인대 부상을 야기하는 피로 조절을 위해 뇌와 하체의 반사반응의 조절 훈련이 필요함이 밝혀졌다. 정신을 강화하는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미지 트레이닝, 심상화 훈련이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지금까지 훈련 중 최상의 경험만을 이용하여 가상의 비디오테이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동으로 머릿 속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상상한다. 운동선수의 부상 방지나 성공적 완주를 위한 긍정적 훈련 프로그램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상 요법이나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운동선수들에게 복잡한 운동 경기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상황에 따른 빠른 대응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늘 근육에 저장된다. 근육은 하드디스크나 마찬가지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 근육은 움츠러든다. 자꾸 ‘난 못해’라고 겁먹으면, 흐물흐물해진다. ‘바로 이게 내 한계야’라고 주저앉으면 근육도 금세 늘어져버린다. 근육은 꿈을 먹고 산다. ‘난 할 수 있어’라고 맘먹으면 팽팽해진다. ‘그 까짓것 왜 못해’라고 생각하면 우뚝 일어선다. 근육은 기억력이 뛰어나지만 근육에 기억을 새기는 것은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수천수만 번 되풀이 가르쳐줘야 비로소 기억하게 되지만, 한번 기억하면 평생 잊지 않는다.

김형자

▲ 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 photo Youtube ▲ 바닷물에 분해되는 종이 생수병을 개발한 영국의 사회적 사업가. 제임스 롱크로프트. photo Youtube   지난 5월 1일(현지시각),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사회적 기업가 제임스 롱크로프트(James Longcroft·27)가 개발한 일회용 종이병(Paper Bottle)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더 나은 지구를 위한 생수병(Boxed water is better for earth)’이라는 이름의 이 종이병은 식물 추출물과 종이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바다에 던져 넣으면 불과 3주 만에 분해가 된다.      이 생수병을 만든 롱크로프트는 영국 더럼(Durham)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재원. 그는 대학 졸업 후인 2016년 비영리 생수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를 세운 목적은 단 하나. 생수 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을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에 식수를 제공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선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있었다. 아프리카에 제공할 생수가 담기는 페트병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었다. 플라스틱은 현대 화학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자연분해되는 데는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 특히 생수병은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플라스틱을 대체할 생수병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의 목표는 간단했다. 바다나 토양을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생수만큼은 신선하게 유지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병의 외부는 재활용할 수 있도록 종이로 만들고, 물이 새지 않게 내부는 방수처리를 하기로 했다. 또 병의 형태를 지탱할 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롱크로프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개월간 실험을 반복했지만 실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모든 재료를 나무와 식물 등에서 추출한 후 몇 가지 성분을 섞어 나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물이 새기도 하고 병이 힘 없이 주저앉기도 했다. 그렇게 거듭되는 실패 끝에 어느 날 원하던 종이병이 완성되었다.      실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종이병을 바다에 던져 넣거나 땅에 매립하여 분해되는 과정을 살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몇 시간 지나 분해가 시작됐고 바닷물에서는 3주 만에 완전히 녹았다. 더구나 이 종이 생수병은 90% 이상 재활용이 가능했다. 재활용 비율이 약 14%인 페트병하고는 비교가 안 됐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적 종이병이라서 바다 생물이 먹게 되더라도 안전하고 땅에 버려지거나 매립될 경우 종이가 산성 상태의 토양을 중화시키는 이점도 있었다.          대량생산 위해 크라우드펀딩      롱크로프트는 친환경적 종이병이 생수병 업계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이병의 생산비용은 페트병보다 5%가량 높지만 “플라스틱 물병만이라도 쓰지 않고 줄인다면 자연환경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는 친환경적 일회용 종이병을 상업적 규모로 생산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만5000파운드(약 3700만원)를 모았다.      사실 하루에도 수십t씩 쏟아져 나오는 일회용 페트병은 지구가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원유로 만든 플라스틱은 첨가하는 재료나 방법에 따라 100여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염화비닐(PVC), 폴리스티렌(PS), 페트(PET), 에이비에스(ABS) 등이다. 모두 가열하면 녹는 열가소성 플라스틱들이다.      플라스틱은 수많은 분자들을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다. 탄소 원자의 긴 배열에 약간의 다른 원자들이 붙어 있다. 이 탄소 배열은 자연계에는 없다. 이는 플라스틱이 자연적으로 ‘생체 분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은 녹여서 재사용할 수 있지만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함께 녹여 사용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페트병, 포장지, 기계부품 등을 함께 섞어 녹일 경우 다시 페트병, 포장지, 기계부품 등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각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종류대로 플라스틱을 분류해서 재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재활용쓰레기를 비롯해 환경 관련 이슈가 많은 요즘, 우리나라 환경부도 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음료업체 19곳과 업무 협약을 체결해 제조·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 페트병을 재활용이 쉬운 무색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재활용률을 70%까지 높이기로 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플라스틱 폐기물은 절반으로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상근

보스톤 미술관의 한국전시실 모습, 사진 김정윤전 세계 곳곳의 재외교민을 보유한 나라를 꼽으면 한국이 빠지지 않는다. 2017년 외교부의 재외동포현황 자료를 보면, 194개국에 7,430,659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2018년 유엔 가입국 191개국 중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은 쿠바(33명), 마케도니아(15명), 시리아(2011년, 162명)에도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 일본의 조선족 등이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민족으로 깊은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북부지역에 사는 라후족 등이 고구려의 후예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가 있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는 2014년 발간한 저서 '우리 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 민족이다: 멕시코 편)'에서 상당수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3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건너간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민족(韓民族)의 뿌리는 깊고 넓으며 이들은 문화적 전통과 풍습을 계승하고 있으며, 상당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향후 남북협력과 평화가 도래하고 동북아에서 한민족의 위상이 높아져 부산, 목포에서 평양을 거쳐 중국, 러시아를 거쳐 인도, 터키까지 철도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시대를 열린다는 가정할 때, 재외교민, 동포, 민족의 뿌리 찾기는 문화유산의 회복과정을 통해 서로 공유하고 공감되는 속에서 진행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외소재 문화유산 조사와 환수 등에 재외 교민 참여 필수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국외문화재 현황(2018년 4월 1일)을 보면 20개국에 172,316점으로 2017년 발표 168,330점보다 3,986점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08년 발표와 비교하면 96,173점 증가한 것으로 2배가 넘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결과에도 전수 조사는 하세월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74,742점이 있다고 하나, 일본의 학계 등에서는 30만점 이상을 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공기관보다 개인 비장(秘藏)이 9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환수되는 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경매 등에 나온 개인소장품으로 구입 등을 통해 귀환하고 있다.   정부의 실태조사는 약 40%에 달했다고 하나, 정작 소장 경위 등이 포함된 출처조사는 십수건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대단히 미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력과 시공간, 재정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재가 소재한 국가의 재외 교민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효과도 높다. 몇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조창수 선생, 일본의 최서면 선생, 독일의 유준영 유학생, 프랑스의 박병선 선생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교민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적극 요청하지 않음으로 정작 살고 있는 소재지에서 조차, 한국문화재의 존재여부를 모르고 지내는 교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에 소개된 불상들. 사진 김정윤 미 보스턴 유학생, 최고의 한국 문화재 소장 사실 알려와   외교부에 따르면 보스턴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50,204명(2017년 기준)으로 이 중에 유학생은 4,641명이고 미국 시민권자가 25,929명이다. 보스턴에는 하버드대학교와 보스턴 미술관 등에 한국 문화재가 있다.   소장기관 건 점 대표 문화재 보스턴 미술관 1,013 1,286 고려 은제 주전자 외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 587 636 신라 금동여래입상 외 하버드대학 포그박물관 167 173 고려 불화 외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 1,767 5,310 조선 대동여지도 외 하버드대학 하우터도서관 1 2 조선 천로역정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연구한 김정윤 유학생은 유학기간 내내 보스턴에 있는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였다. 한국관의 규모와 전시물 현황, 소장품대비 전시율과 교체율 등 박물관의 운영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상황을 알려왔다. 이런 관심이 결국 석사 논문 주제를 “Exploring Approaches to Facilitate the Process of Repatriation of Korea's Lost Cultural Artifacts(잃어버린 문화재의 복원 과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연구)”로 하였다. 이에 지도 교수는 “대단히 흥미롭고 중대한 내용”이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한다. 논문에는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에 대한 한국과 미술관 측이 실태조사는 물론 출처조사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보스턴 미술관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도굴에 의한 반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고려 사리함’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 불교계로부터 반환을 요청받고 있다. 하버드대학 세클러박물관에는 1950년대와 60년대 외교관 그레고리 핸더슨이 반출해 간 도자기, 불상, 그림 등이 미망인이 기증하여 보관되어 있고, 옌칭 도서관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 고서 약 1만 2천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82)   끊임없는 도전의 묘미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60세에 언론인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실크로드 길을 걸으며 쓴 책이 바로 “나는 걷는다”이다. 그 책에서 필자에게 특히 인상적인 문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필요성 때문에 항상 군중의 물결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끝없이 움직이고 더 빨리 뛰어다녀야 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평소의 필자의 글쓰기를 지켜보면서 문장 솜씨에 못마땅하게 느낀(?) 후배가 필자에게 글 쓰는 법을 배우라는 차원에서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한 것이 계기다. 이러한 강권에 못 이겨 그 책을 사기는 하였으나 필자의 스타일과는 다른 책이어서 처음에는 그리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팽개쳐 둔 책이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그 책을 다시 읽는 순간 특히 위 두 구절이 필자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너무 공감이 갔다. 필자 역시 무한한 도전이 그립고 새로운 만남 그리고 어제와 다른 새롭고 설레는 하루를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필자 마음속에 갈등이 되었던 부분 즉 바로 “나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어쩌면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는 다소 두려움이 섞인 자조와 의아심이 항상 미해결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책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필자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필자가 최근에 우연히 소설을 쓰는 데에 새로운 관심과 의미를 가지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다. 사실 지금까지 필자는 부의 축척에 대하여 다소 둔감하였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한 면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소 건방지고 뜬금없어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호감’으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악성댓글이 나올 만큼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 스스로의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사실 부를 축적하여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비교적 희박하였고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한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게 된 데에는 필자 스스로 돈을 버는 데에 그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스스로 합리화하고자 하는 면도 있었고,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자조의 탄식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필자는 그간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심각하게 로또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요행으로 얻는 그런 일확천금이 필자에게는 달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심지어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이 싫을 정도로 독특한 자기 결벽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스스로 놀랍게도 이처럼 요행을 바라거나 행여 운 좋게 돈벼락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로또와 같은 일확천금의 기대 같은 것은 필자에게는 평소에 상상조차 하지도 못하였고 동시에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심지어 더 나아가 이에 대한 거부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물론 필자의 본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이를 제대로 인정하여 이를 통하여 이왕이면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변호사업무는 전문영역이기는 하지만 전문성의 부각보다는 좀더 사업적인 측면이 많은 특성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달리 적법과 위법의 경계에 서서 사업적인 융통성을 가지고 리스크를 안고자 하는 용기가 없으면 무수히 능력이 뛰어난 다른 법률전문가와 경쟁을 하여 이들을 이겨서 큰돈을 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온다는 것은 상당한 노련함이 필요한 종합예술이고 그리고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유수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인 클라이언트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받아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아니하다는 점은 명백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그간 큰돈을 벌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돈과는 그리 인연이 없는 것으로 보여 스스로 미리 이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필자의 인생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즉 필자는 평소의 소신이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그냥 나름대로 멋있게 살자”, 그중에서도 “만인에게 당당하게 살고 그리고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살하고 일 한만큼만 벌자”라는 자기합리화적인 자기 고집 내지 신념이 강하였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를 하고는 있다. 따라서 당연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는 벌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회에서의 성적표인 재무제표라는 부문에서 아주 탁월한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클라이언트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업무관계에서 불편함을 강요하거나 다소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면 필자의 경우는 필자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그냥 무심코 참거나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지 못하여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영락없이 필자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수임료를 즉시 전액 환불하고 해당 사건에서 사임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변호사라는 자유직업이 가지는 장점은 자신의 자존심을 가지고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이언트가 기업체가 아닌 일반 개인인 사건의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당사자가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너무 무리하고 또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그간 필자의 경우에는 클라이언트가 기업체가 아닌 일반 개인 클라이언트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클라이언트가 개인이 아닌 기업체여서 상호 합리적인 기대하에서의 업무수행을 나름 충실하게 진행했었다. 물론 클라이언트 기업체로부터 부탁받은 해당 법인의 이사나 직원들의 송무나 자문에 대하여는 거의 실비수준의 비용을 받거나 아니면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사실 그간의 변호사로서의 삶은 나름대로 의미는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보기에 따라서는 거의 소설과 같이 드라마틱한 부분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다소 황당한 분쟁경험 부분은 필자가 보기에도 거의 드라마와 같이 박진감과 긴장감이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영국 히드로 공항. 최근에 “나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는 강연을 접하면서 이에 자극이 되어 불현듯 필자의 자서전과 같은 내용의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위 강의를 한 교수분께서 소설은 자기의 경험을 써야 그 진정성이 있어서 그 의미가 있다고 강조를 하셔서 더 용기백배한 점이 있다. 그와 같은 말씀에 자극을 받고 나아가 또한 큰 힘이 되어 조만간 소설 2편 정도를 써서 이를 발표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필자에게는 현실이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이와 같이 소설화될 현실세상이 다이나믹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소 독특한 경험은 필자만이 개인적으로만 이를 간직할 것이 아니라 주위의 분들과 같이 공유하고 또한 공감을 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기 때문에 한번 시험 삼아 도전해보고자 한다.    최근에 그동안 같이 골프를 친 동료나 후배가 클럽 챔피언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또한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장관이 되고 국내 굴지 기업체의 사장이 되는 등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이 신문지상에 자주 보도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한때에는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고 그간 열심히 살아온 면이 있었는데 그와 같이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게 되니 왠지 더없이 부럽고 심지어 그 정도가 지나쳐 약간의 시기의 마음마저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왔다가 지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아서 그러한 친구들의 성공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의 박수와 갈채를 보내게 된다. 모두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이니까 하는 스스로 위안과 자위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는 인생을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이 도움되었다. 한편으로는 그간의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위 분들의 그러한 성공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이 있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친구나 선배 후배들의 멋진 성공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 더 멋진 성공의 순간들을 충분하게 즐기기를 조언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후부터는 사실 주위 분들의 세속적인 성취와 성공이 그리 부럽지가 아니하였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프로젝트가 주는 설렘 등이 가져다주는 감동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적으로 멋지게 보이는 소위 그와 같은 성공한 삶이 오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공 그 이후의 삶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대다수가 조만간 그러한 전성기의 삶에 대한 향수 때문에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현재의 삶에 대하여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에 성공 시절만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면서 과거의 시간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간 연구한 세계의 유명한 재벌 2, 3세의 삶을 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즉 그들은 선천적으로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춘 축복을 받은 자들로서 선택의 폭이 아주 넓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런 축복을 받아서 멋지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모든 여건이 갖추진 그들이 추구하여 온 삶이 궁금하여 필자는 시간이 되는 대로 이들의 삶과 생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또한 연구하여 왔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세속적인 사회적인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를 마냥 좋아해서 여기에 몰입하여 연구하는 삶을 살면서 이의 결과물로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2~3개를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특히 스포츠분야에서는 남다른 열정을 쏟아 자신들이 좋아하는 해당 스포츠 분야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하여 온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면에서 거의 다 가졌기 때문에 달리 세속적인 지위 등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무엇보다도 건강을 소중하게 여겨 이를 위한 스포츠 활동을 즐겨온 것으로 보였다. 이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와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채 그냥 그들만의 나름대로 개성 있는 멋진 인생을 설계하면서 살아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즐거움과 행복 그 자체라고 본다. 특히 필자에게는 음악, 미술, 체육 그리고 문예 예술 활동 그리고 사회 강연활동이나 칼럼 활동 등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그 자체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활동은 다소 밋밋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권태로움과 복잡함에서 해방시켜 준다. 어쩌면 이와 같이 비영리적인 활동은 비즈니스 업무와 적정한 조화를 이루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는 금상첨화라고 생각된다. 즉 어쩌면 단순한 일상에서도 가끔 맛볼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고 행복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돈이 필요한 이유를 이제야 어느 정도 명확하게 알게도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만의 방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 여행을 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정도의 부유함이 필요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문구가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필자가 느낀 감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 젊은이들도 이와 같이 느끼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보기가 좋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간 필자의 경우는 부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최근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수행을 통하여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즉 필자만의 멋진 삶 즉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도전의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서는 어느 정도의 부의 축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제 부에 대한 올바른(?) 목표의식이 생겼으니 현재의 현실적인 삶에서 좀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해 보고 싶다. 가능하면 앞으로 전 세계의 모든 지역을 탐방하면서 현지의 전문가들과 대화를 하고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 제대로 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인 음악, 미술, 체육, 시, 소설 등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하여 필자 나름대로 소박한 버겟리스트를 구상해보고 나아가 이의 실행을 위한 멋진 도전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런던 소재 코트라. 도전하고 배우는 삶이야말로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인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야말로 객관적인 평가와 관계없이 필자에게 가장 멋지고 성공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외부가 너무나도 멋진 불란서 집(?)을 꿈꾸기보다는 외관은 투박하여 멋스러움이 전혀 없는 거의 군대 막사 수준일지 모르지만 반면에 안의 내부는 외부와는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고 실용적이어서 실제로 필자만의 멋진 삶의 공간을 설계하고 이를 실천하는 그런 시간을 꿈꾸고 싶다.   결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필자 스스로만이 진실로 아름답게 느끼는 행복한 공간과 시간의 도전 여행을 은밀하게 기획하고 나아가 이에 무한히 빠져들고 싶다. 다른 일상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마냥 그 꿈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필자만의 소박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신비스러운(?) 그런 삶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 자체만으로도 오늘 다소 지친 일상에서도 오아시스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멋진 상상이 현실에서 실천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축복 그 자체가 아닐까? 비록 현실에서 다 구현되지 못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꿈은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꿈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로벌 프로젝트하에서의 수없이 사소한 버겟리스트는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빛과 소금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꿈은 자신이 포기하지 아니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이 되고 나아가 꿈 자체만으로도 영원한 축복이라는 평범하지만 친근하면서도 소박하고 소중한 진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새로운 감동으로 가슴깊이 와 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시간에도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고자 한다.     막스 프랑크 일기(83)   소설에 도전하다     배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본문 가운데. 지금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 중의 하나가 소설이다. 물론 한국어로 작성하여야 한다. 물론 이를 중국어나 영어로 번역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특히 정서가 비슷한 중국시장을 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성취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달 말 안으로 2편의 소설을 써야 한다. 그간 미국 유학시절부터 이후의 앤아버, 홍콩, 프랑크푸르트, 런던, 제네바, 뮌헨, 타이페이, 심천, 가고시마를 비롯하여 잘츠부르크, 부다페스트, 자그레브,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 남부 프랑스 해안뿐만이 아니라 오래전에 다녀온 모스크바, 미국 대륙횡단, 사웅파울러, 호주, 싱가포르, 북경 등등에서의 각종 일기 형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대장정이 남아 있지만 일단 중간 편집형태의 글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남은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도전일정에 참조하려고 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이다. 일상적인 업무도 해야 하는 사정하에서 다소 벅찬 도전이기는 하지만 나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위기의 중년 변호사의 인생을 조명해보는 소설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아날로그 관념에서 그냥 지나쳐온 평범한 삶에서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애환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는 새로운 삶을 또한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간 프랑크푸르트일기, 런던일기, 제네바일기, 막스프랑크일기 등을 비롯하여 앤아버일기 내지 홍콩일기 형식으로 칼럼을 써왔다. 이런 칼럼이 필자에게는 더 없는 자극이었고 행복 그 자체였다. 이제 퀸메리일기를 통하여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남미일기에 도전하고 나아가 일본일기, 중국일기 그리고 동남아 일기를 준비해보고자 한다. 그 와중에 세계 100대 골프장 시리즈도 감히 구상해 본다. 문제는 시간과 돈일 것이다.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남은 일기에서의 가장 큰 숙제이다.   그러나 세상에 풀리지 아니하는 숙제는 없다고 본다. 나머지 일기가 끝나는 날에 필자는 마침내 한편의 장편 소설 “나는 도전한다”를 완성할 것이다. 법률가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지식재산 분야, 금융 그리고 분쟁의 조정과 중재 또한 골프와 문화예술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도전한다”라는 소설 아닌 소설은 완성 자체가 목표가 결코 아니다. 전 세계를 상세하게 비교분석하고 이에 대한 느낌을 기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도전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고 달리 완성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또한 달리 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드레스덴. 그냥 그 도전 과정을 즐기고 이를 기록화하고 싶은 소망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한도 달리 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름대로 기한을 설정하기는 하였지만 굳이 이러한 설정에 집착하게 되면 쉬게 지치고 피곤해질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냥 시간이 되고 여건이 되는 대로 도전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또한 이 도전의 과정에서 추가할 도구가 바로 컴퓨터와 음악이다. 법률, 골프, 컴퓨터와 음악이라는 관점에서 일기를 써보고 싶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여 하나의 서사시를 만들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이를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이고 중간 점검이 바로 “나는 도전한다” 라는 미완성의 소설이다. 현재의 스케줄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년 변호사의 일상과 도전”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에도 도전해 보고자 한다. 이 칼럼 글이 발표될 시점에는 이미 두 권의 소설이 출판되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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