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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60세 건강상태는 30년 전 50세와 비슷"

사진=연합대법원이 21일 손해배상액 계산에 기준이 되는 '노동가동연한'(노동에 종사해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높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현행 '60세 이상'인 정년 규정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과거에 노인으로 여겨졌던 '60세'라는 나이가 이제 더는 노인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으로 본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의학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현대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60세가 넘어 65세까지도 육체노동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사실 의료계에서는 노인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일찌감치 제기됐다. 이는 특이 질환이 없는 60대 연령의 경우 신체의 각 기능이 매우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같은 '노쇠' 현상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통상 노쇠는 나이를 떠나 실제 노인에 해당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의도하지 않은 체중감소, 피로(활력 감소), 신체 활동 저하, 악력 저하, 느린 보행속도의 5가지 항목 가운데 3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노쇠한 것으로 본다. 증상이 1∼2개만 있다면 '노쇠 전 단계'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런 노쇠 현상이 요즘에는 70세를 넘어서야 조금씩 관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원장원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약 30년 전만 해도 60세에 도달하면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져 '뒷방 노인'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요즘 60세는 젊은층과 같은 노동 활동을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라며 "이는 바람직한 식생활습관을 실천하고, 건강검진 등으로 질환을 조기에 예방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원 교수는 "지금 60세를 30년 전으로 치면 50세의 건강나이에 견줄만하다"고 비유했다. 이런 이유로 의학계에서는 같은 노인이라도 중고령층(65∼80세 미만)과 초고령층(80세 이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실제 노인들의 생각도 전문가들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노인 1만29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6.3%가 노인 연령으로 '70세 이상'을 꼽았다. 이는 2008년 조사 때의 68.3%보다 18%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세부적으로는 '70~74세'라고 답한 사람이 59.4%였고, '75~79세'가 14.8%였다. 80세 이상부터 노인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12.1%나 됐다. 고대안암병원 노인병센터 조경환 교수는 "과거 60세가 노인으로 평가받던 시절에는 일상생활 중 육체노동이 많았고, 노동 중 손상이 생겨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서 노동 활동이 힘들 정도의 노쇠가 일찍 찾아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노동에 따른 신체 손상이 거의 없고, 퇴행도 늦어지면서 노동연령의 상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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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지난주 방콕에서 무역학회와 중재학회 등 여러 학회가 공동 개최하는 국제세미나에서 필자가 ‘한국의 중재산업의 현황과 미래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바 있었다. 당초 이 곳에서의 주제발표 제의는 의외로 필자에게 여러 가지 감회를 느끼게 하였다. 그간 미국. 유럽 등의 경우 비교적 활발한 해외활동을 하였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동남아지역의 방문 내지 이곳에서의 세미나 참여 등은 그간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필자 스스로도 놀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살펴보니 동남아에 대한 그간의 편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그간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에서 실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가 바로 동남아 지역임에도 필자 스스로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미흡하였다는 점에서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어느 지역보다도 직접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이번 주제발표요청은 필자에게는 유독 신선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잠시 여러 가지 생각도 들었으나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실 태국은 동남아 중에서도 여러 면에서 특이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달리 근대 역사에 있어서 달리 서양 선진 국가로 부터의 식민지를 겪는 아픈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지정학적인 이점 즉 영국과 프랑스에서 서로 치열한 식민지 전쟁의 상호 충돌지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째든 태국으로서는 운좋게(?) 달리 식민지 역사를 가지지 아니하는 행운을 가진 것이다. 이에 따라 태국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서양 강대국으로 부터의 오욕의 식민지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한 면이 있다.   또한 태국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국민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 들 중의 하나이다. 연간 국민소득이 거의 8,000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점은 전 국민의 상당수가 불교 신자라는 점이다. 불교 법리에 따라서인지 일견 보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온순하게 느껴졌다. 또한 사소한 일상에도 감사함을 표시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이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들의 얼굴마져 다 깨끗하고 맑아 보이기 까지 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지는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방콕이 디지털 노마드 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점이 디지털 유목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도 저렴한 물가수준이 한 몫을 하였겠지만 그 와중에도 비교적 인터넷 속도가 빠르다는 등 상대적으로 사회인프라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점 등이 기여하였을 것이다.   다만 필자에게는 또 다른 매력을 방콕의 강변 가의 야시장에서도 찾을 수가 있었다. 처음에 방콕의 야시장을 방문한다고 알려주어 다소 주저한 것이 사실이었다. 지저분한 전통적인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방콕의 야시장은 그간의 기대치와는 다른 새로운 야시장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방콕의 야시장은 의외로 밝고 아름다우며 강변이 보이는 아주 멋지고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상상해온 일반적인 후진국의 전통적인 야시장과는 차이가 있었다. 의외로 현대화되어 있어서 보기에 따라서는 유럽의 광장과도 같은 분위기도 연출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시장의 주변이 상당히 잘 정리정돈이 되어 꺠끗하였으며 또한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가에 위치한 아시아티크 (Asiatique) 야시장은 방콕의 색다른 멋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변가의 어느 조용한 펍 식당에 도착하여 생맥주에 감자튀김을 시키니 이국적이면서도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마져 연출해 주었다. 그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이곳 야시장만큼 편안하고 부담없으며 밝고 아주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온 경우가 그리 많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광장문화를 배경으로 아시아의 편안한 펍식당의 분위기를 가미한 듯한 이국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나아가 시원한 강변 바람과 멋진 강변의 전경들, 그밝은 조명 그리고 딱 트인 테이블 등 모든 경취가 다 편안하고 부담감 없이 다가왔다. 왠지 모를 자유로움과 편안함, 여유 그리고 가벼운 들떰 등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주변 자연과 어울려 편안하고 너무 각박하지 않으면서도 나름 잔잔한 낭만이 있었다. 또한 가성비 등도 좋아 경계감을 풀면서 많은 사람이 같이 즐기되 서로에 대하여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 대중적이고 또한 각자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냥 스쳐져 가는 이방인 들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마치 조용한 선물과도 같이 느겨졌다.   방콕이 지정학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동남아의 가장 중심도시이다가 보니 동양과 서양의 여러 요소를 잘 포용하여 방콕 나름대로의 멋진 야시장문화를 만들어 온 것으로 보였다. 동.서양의 수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가능한 범위내에서 나름 여유와 낭만과 멋을 느끼게 해주었다. 방콕의 국제공항에 내릴 때부터 태국현지인 들의 얼굴로부터 왠지 모를 소소한 행복한 표정이 인상적인 것처럼.......  이어 대학 캠퍼스 내에 소재한 숙소 호텔에 와서 가볍게 2차를 할려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일체의 주류가 판매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캠퍼스 외곽에 소재한 편의점으로 나아가야 했다. 즉 맥주를 사기 위하여서는 주류판매가 허용되는 지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으로 가기 위하여서는 넓은 자동차 대로 위에 설치된 육교를 건너야 하였다. 그런데 육교가 다소 위험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육교로 올라가는 계단은 지나칠 정도로 급경사였고, 육교 위에 놓여진 난간은 특이할 정도로 낮게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에 취하여 약간 중심을 잃으면 육교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행여장난이라도 치게 되면 잘못하여 차가 다니는 아래의 도로에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국가차원의 사회인프라 건설자금이 부족하니 당장 급한 육교는 건설하였으나 이에 대한 안전문제는 다소 방치된 것이다. 조금 전 야시장에서 느낀 감정과는 다소 차원의 불안감이 다가왔다.   그 다음날 이어진 연합 세미나에서는 필자 역시 모처럼 나름 의욕적으로 한국의 중재산업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Best Paper Award“라는 다소 생소한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다른 세션에서는 의외로 농업의 디지털화에 관한 주제가 많이 발표되어 새롭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동남아 지역의 특성상 농업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도 많이 제기되어 세미나 장은 상당히 뜨거운 토론의 장이 되었다. 법학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 이슈를 다 같이 다루는 연합 세미나의 장점과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주제 등이 필자 역시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어서 적극적으로 토론의 장에 깊이 관여하자 세미나장이 아주 즐겁고 새로운 배움의 광장이 되었다.   갑자기 구태의연한 논어의 문구가 생각났다. ”배우고 또 익히면 그 역시 즐겁지 아니한가?”..... 이국땅에서 현지 교수 들과의 열띤 토론이 가져다 주는 새롭고도 소소한 배움의 즐거움을 필자 스스로 진실로 만끽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고 가장 현명한 사람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라는 문구마져 새롭게 와닿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앞으로 해외에서 많은 현지의 학자나 전문가와 관심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세미나야 말로 그 어떤 것 보다도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라는 새로운 깨우침을 일깨워 준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를 느끼다니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것으로 아쉬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늦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적기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필자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해외세미나에서의 적극적인 주제발표와 토론”이야말로 필자가 앞으로 주력하여야 할 “또 다른 행복의 신천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를 발견한 깨달음 역시 필자에게는 무한한 행복과 뿌듯함을 선사하여 주었다. 이번 방콕에서의 세미나 주제발표와 토론 경험은 그간 필자가 경험하거나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의 지평”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또 다른 미지의 행복 세계에 대한 참신한 자극과 도전의지를 고취시켜 주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경석

작가 지망생 시절, 내게 소설 작법을 가르쳐준 원종국 소설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악마에게 신체의 일부를 내어주는 대신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재능을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부위를 얼마나 내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는 거다. 그는 아마도 손가락 정도는 내어줄 수 있지 않겠냐면서, 여러 개가 없으면 타이핑을 못할 테니 기껏해야 두세 개 정도가 아니겠냐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가에게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재능이란 축복이자 욕망이다.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으니 이미 소설가가 됐겠지만, 좋은 걸 넘어 시샘을 일으키는 다른 작가의 소설이나 걸작으로 불리는 고전을 마주했을 때, 또는 소설이 써지질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면 스스로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며 신을 원망하게 되곤 한다. 이러니 악마와의 거래일지언정 덥석 붙들 수밖에.  비단 문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거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생명을 덜어내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을지언정, 영혼을 팔고 사랑하는 이를 버릴지언정 그 눈부신 재능을 내 것으로 만들어 역사에 남을 걸작을 창조하고픈 욕망을 떨쳐낼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궁극의 예술을 향한 욕망은 종종 광기에 비견되는 게 아닐까.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의 단편소설 「미지의 걸작」은 미술, 그 중에서도 회화를 소재로 전에 없던 걸작을 완성하고자 하는 노화가 프렌호퍼의 욕망과 광기를 다룬다. 발자크가 프렌호퍼의 입을 빌어 풀어놓는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흥미롭다.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화풍이 설명되며, 프렌호퍼가 가상의 인물인 것과는 달리 16~17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푸생과 포르뷔스는 아예 등장인물로 그려냈다.  천재 화가 프렌호퍼는 그림을 넘어선 그림, 생명력을 품고 살아 숨 쉬는 그림, 완벽한 형태와 본질에 도달한 그림을 꿈꾼다. 그림은 평면을 넘어, 영혼을 품고 감각을 입어 현세에 실존한다.  “자네는 생명의 겉모습을 그리지, 그것의 넘쳐흐르는 충만함을 표현하지는 못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영혼인 그것, 육체 위를 구름처럼 떠다니는 그것을 표현하지는 못하지. 티치아노와 라파엘로가 간과했던 그 ‘생명의 꽃’ 말이야.” 86p 그렇게 위대한, 세상에 없던 걸작을 완성키 위한 작업은 십 년간 이어지고, 그는 결국 추구해온 ‘미지의 걸작’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그림 속 여인 ‘카트린 레스코’는 그에게 그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여인이다.  “우리가 라파엘로의 인물들과 아리오스트의 안젤리카,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실제로 가질 수 있겠는가? 아닐세! 우리는 그저 그 모델들의 형상만을 볼 뿐이지. 그렇지만 내가 저기에 빗장을 걸어놓은 작품은 우리 예술에서도 하나의 예외야.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야! 나와 함께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여자이지 …… 이 여자는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나의 창조물이야.” 116p “내 작품은 완벽하네. 나는 이제 자랑스럽게 그걸 보여줄 수 있지. 그 어떤 화가도, 붓도, 색깔도, 화폭도, 빛도 ‘카트린 레스코’와 경쟁할 수 없을 걸세.” 124p 광기는 종종 파국으로 이어진다. 발자크의 뛰어난 상상력 또한 소설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이야기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천재의 손끝에서 완성된 욕망, 강렬하고 억누를 수 없는 그 욕망의 끝은 창조자를 비롯해 이를 마주한 이들 모두에게 강한 충격을 안긴다.  「미지의 걸작」은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폴 세잔은 이 소설을 읽고 “프렌호퍼가 바로 나다!”라고 외쳤고 피카소는 기꺼이 삽화를 그려 넣었다. 칼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유쾌한 역설로 가득한 소설’이라며 이 책을 권했고 엥겔스는 ‘발자크론’을 집필했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의 1991년 작 「누드모델」은 이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다.       녹색광선이 펴낸 『미지의 걸작』에는 표제작인 「미지의 걸작」 외에 발자크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영생의 묘약」이 함께 실려 있다. 영생, 또 한 번의 삶을 가능케 하는 묘약을 둘러싼 이야기로 인간의 깊은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닮아있다. 책의 말미에는 옮긴이인 김호영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의 해설과 영화 「누드모델」의 주요 장면 및 줄거리, 소설 속에 언급된 화가들의 소개와 대표작을 부록으로 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을 흔히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소설 읽기에는 꽤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과 집중이 요구된다. 19세기에 쓰인 고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반면 『미지의 걸작』에 실린 두 작품은 짧은 분량과 깔끔한 번역을 통해 부담 없이 읽어볼 만하다. 우리의, 인간의 내면 깊숙이 이글거리는 욕망과 마주하는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누려보시길.    『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녹색광선 펴냄

장상인

-짧은 생(生)에 512편의 시(詩)를 남겨   일본 내해의 관문인 시모노세키(下關)의 간몬대교(關門大橋) 상공을 하얀 구름들이 무리지어 어디론가 몰려갔다.     구름들의 흐름을 보면서 ‘겨울이 달아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던 필자는 ‘가메야마하치만구(亀山八幡宮)’ 앞길을 걸었다. 바람은 거셌으나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도 맑았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가네코 미스즈(金子みすゞ)의 시비(詩碑)와 눈이 마주쳤다. 발걸음을 멈추고서 시(詩)를 읽었다. 제목은 였다.     두루미야.     네가 보면  세계의 모든 것은  무엇이든, 그물코가 쳐져 있겠지     저렇게 맑은 하늘에도  자그마한 나의 얼굴에도     신사 연못의    두루미가   그물 속에서 조용히   깃을 칠 때에     산 너머 저 쪽을   기차가 갔다.>     가네코 미스즈와 시모노세키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가네코 미스즈’는 1903년 4월 11일 태어나서 1930년  3월 10일 사망한 일본의 동요 시인이다. 그녀는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512편의 시를 썼다. 1923년 9월 ‘동화’ ‘여성 클럽’ ‘부인 화보’ ‘돈의 별’ 등 네 개의 잡지에 시를 게재해 이름을 날렸다.   ‘미스즈’의 시비가 ‘가메야마하치만구’ 앞에 세워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망 전날인 3월 9일 ‘가메야마하치만구’ 옆에 있던 미요시(三好)사진관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란다.   시비 옆에는 또 다른 시 가 있었다.       가네코 미스즈(사진: JULA 출판사/도쿄)   풍선,  가스 등불 비치네.     그림자 등롱(燈籠)속  사람처럼,  얼음장수 목소리가 사무치도다.     희읍스름  은하수,  여름나기 축제의 밤이 깊도다.     네거리를 돌아서면  풍선,  별밤에 어두워 지누나.>   가네코는 야마쿠치현(山口県) 나가토시(長門市)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녀가 3살 때 청나라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았다. 청나라 국영 서점(上山文英堂) 시모노세키 지점장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시모노세키에 이주해서 살았다.   1926년 삼촌이 경영하는 서점의 점장 격인 남자와 결혼하고서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은 삼촌과의 불화로 서점에서 해고됐다. 자포자기(自暴自棄)한 남편의 방탕한 생활을 참다못해 1930년 2월 이혼했다. 딸의 양육문제로 이혼한 남편과 다투다가 반항하는 의미에서 음독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어머니! 아이를 부탁합니다.”는 유서를 남기고서.   마음이 따뜻한 시인으로 사후(死後)에 더 유명해   대표작으로는 와 등이 있다. 그녀의 고향은 예로부터 어부의 마을이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동요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살 때부터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가네코의 작품은 아동 문학가 야자키 세쓰오(矢崎節夫·72)씨에 의해서 알려졌다. 그는 나가토시에 있는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관장 직을 맡고 있다. 그의 열정에 의해 ‘미스즈’의 시(詩)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됐던 것이다.   “미스즈는 천재 동요 시인입니다. 자연의 풍경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시절  미스즈의라는 시에 강렬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자키 세쓰오 씨의 말이다. 그가 매료됐다는 시 를 소개한다.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다 속에서는   몇 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겠지.>   야자키(矢崎) 관장은 2월을 맞아 기념관의 홈페이지에 라는 ‘미스즈’의 시와 함께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야자키 세쓰오 관장(사진: JULA 출판사/도쿄)   쌀은 사람이 만들어 주지  소는 목장에서 길러주지  잉어도 연못에서 길러주지  잉어도 연못에서 밀기울을 받아먹는다.     그렇지만 바다의 물고기는  아무한테도 신세지지 않고  심술 한 번 부리지 않는데  이렇게 나에게 먹힌다.  정말로 물고기는 가엾다.>   “가네코 미즈즈의 ‘물고기’를 읽으면 같은 야마구치 출신인 마도 미치오(본명, 石田 道雄1909-2014)씨의 이 기억납니다...미스즈 씨는 ‘사람이 싫어하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고 여자 동창생들이 말했다고 합니다. 마도 씨도 언제나 상대를 염려하는 말을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무심코 ‘건강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도 씨는 ‘변함이 없네?’라고 말합니다. ‘건강’과 ‘변함없는’의 말은 같은 듯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변함없는’이 훨씬 폭이 넓고 기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추운 2월입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변함없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고, 심술 한 번 부리지 않았는데 잡아먹히는 물고기 같은 억울한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도 많다. 억울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말 한마디라도.

이동윤

초보자든 경험자든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은 장거리 달리기 훈련을 마친 저녁 시간대부터 다음 수 일간 지속되는 근육통을 경험하는 것에 익숙하다. 통증은 장거리 달리기 훈련이나 마라톤 대회의 일부라 할 수도 있다. 준비  및 정리 운동, 잦은 스트레칭, 자가 마사지 및 회복기의 속도 조절은 제대로 훈련을 받고, 지연성 근육통 같은 염증 부상을 예방하는 데 중요하며, 훈련 주기 동안 섭취하는 식품과도 관련이 있다. 근육이 다음 훈련에 대비해 빨리 회복하도록 적절한 연료 공급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연구들에 의하면 운동을 마친 후 30분 이내에 근육을 재충전하고 근육을 키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운동 후 좋은 간식에는 섬유질이나 지방은 많지 않은 대신 고 단백, 고 탄수화물 식사가 좋다는 말이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 후 아픔과 염증을 이겨내는 방법에 혼자 속으로 불편감을 참는 것은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운동 중에 잃어버린 글리코겐과 저장된 에너지를 대체하는 복합 탄수화물은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 C와 전해질 균형을 유지하고 보충하는 칼륨의 원천이 된다. 고구마와 바나나, 땅콩과 아몬드가 대표적인 식품이며, 해바라기 씨와 버터 같은 너트버터도 탄수화물, 단백질 및 건강한 단일 불포화 지방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항염증 작용으로 운동 후에 근육통을 감소시키고 회복을 개선시키는 식품으로 생강이 추천된다. 블루 베리, 오렌지, 피망, 토마토, 딸기 등 항산화 물질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운동이나 운동 후에 통증과 염증과 싸울 수 있다. 충분한 양의 항산화제인 비타민 C와 E 를 섭취하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우리 몸의 천연 물질인 자유 라디칼을 중화시켜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마라톤 대회를 완주 한 후에 메달을 받고 나서 옷을 바꿔 입고 나와 가방에서 초콜렛 우유를 한 벙 꺼내 마실 때의 쾌적한 느낌을 알 것이다. 운동 후 초콜릿 우유 한 잔은 특정 탄수화물과 단백질 함량 비율 때문에 운동 후 회복에 아주 이상적인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간단한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모든 조합은 운동 후 연료 보급을 최적화하고, 단백질과 쌍을 이루면 탄수화물은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시켜 탄수화물과 단백질 모두의 섭취를 증가시킨다. 탄수화물은 운동 후 글리코겐 축적을 도와 주며 단백질은 운동 후 근육을 복구하고 근력을 강화한다. 운동 후 식사는 빠를수록 더 좋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운동 종료 후 30분 이내 하는 것으로 권유되지만, 8시간 이내에 운동을 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체내 저장 글리코겐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고혈당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다. 한 번의 달리기는 운동 완료와 정리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연료를 공급해야 끝나는 것이다. 그래야 적절한 영양 섭취로 열심히, 멀리, 더 잘 훈련을 할 수 있다. 거시적 영양소와 미세 영양소를 적절하게 혼합하면 글리코겐 재합성을 촉진하고 근육과 신체, 정신을 강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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