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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의 예술, 프랑스 만화의 힘

▲ 프랑스 만화 장르인 ‘방드 데시네(BD)’의 대표 작품 ‘틴틴의 모험’. 크레타섬의 미로라고나 할까? 루브르박물관에 갈 때마다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잃게 된다. 실내 지도를 보면서 걸어도 워낙 넓어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특히 전시물에 몰두하다 보면 안테나를 잃게 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골목이 실외 미로라면 루브르는 실내 미로다. 모바일폰으로 구글 지도를 켜놓고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루브르박물관에 들렀다가 미로 찾기에서 잠시 벗어나려고 박물관 구석 책방에 들렀다. 최하 한 권에 50유로 정도 하는 초대형 미술화보들이 진열돼 있다. 온통 모나리자 얼굴이다. 내용을 들춰보려고 책을 드는데 무거워서 감당할 수가 없다. ‘예술=무게’라는 것이 유럽의 대국 프랑스가 자랑하는 심미안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루브르의 규모가 그러하듯, 박물관 책방의 책 역시 크고 무겁다. 루브르 전체를 소개하는 화보는 5㎏은 될 듯한 무게다. 기념으로라도 사고 싶지만 들고 다닐 힘이 없다.      프랑스식 심미안에 대한 불만을 삭이다가 낯익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틴틴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이다. 달나라와 티베트, 피라미드를 종횡무진 여행하는 틴틴의 깜짝 놀란 듯한 얼굴 모습이 전시대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다른 화보와는 달리 책이 가벼워서 사기로 마음먹었다. 크기는 미술화보들과 비슷하고 30쪽 정도의 분량이다. 양에 비해서는 비싸지만 가격도 15유로 정도로 화보보다는 싸다.      틴틴의 모험을 사면서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이하 BD)’와 첫 번째 연(緣)을 맺었다. BD는 프랑스 만화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넓게 보면 애니메이션도 포함하지만 보통은 최대 50쪽 정도에 그치는 사각형 속의 만화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벨기에·스위스·룩셈부르크 등 프랑스 언어권 만화는 모두 BD라 불린다. 이 중에서도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만화 천국이다. 출간량, 판매량, 종사자 모두 유럽 1위다.         루브르가 인정하는 프랑스 만화      필자가 최초로 구입한 BD ‘틴틴의 모험’ 판매처는 루브르다. 박물관 책방 매대에는 수십여 종의 다른 BD들도 진열돼 있었다. 꼰대의 세계관일지 모르지만 ‘유서 깊은 루브르가 만화를 판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BD가 ‘제9의 예술(Le Neuvieme Art)’로 통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프랑스에서 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은 크게 10개로 나눠진다. 건축·조각·회화·음악·문학·무대예술·영화·미디어예술·비디오게임, 그리고 BD다. 아직 루브르에서 비디오게임 전시회가 열린 적은 없다. 그러나 BD의 경우 이미 2005년에 ‘루브르 BD 프로젝트’란 전시회가 열렸다. 루브르가 인정하는 예술이 BD이고 BD 종사자들도 예술가로 불린다.      ‘틴틴의 모험’을 구입한 후 책방에 갈 때마다 BD코너를 유심히 관찰했다. 보통 파리 책방에서 BD코너는 비디오·음악·애니메이션 매장과 함께 운영된다. 손님의 연령으로 치자면 가장 어린 손님들이 북적이는 코너다. 필자는 프랑스어는 잘 모른다. 그러나 만화 그림과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에서 유추한 단어를 통해 대략적인 줄거리 파악은 할 수 있다. 필자가 갖고 있는 한국·미국·일본 만화 지식을 총동원해 보면, BD만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해낼 수 있다.      첫째, 눈이 아니라 머리로 읽는 만화라는 점이다. 텍스트로 나타나는 지문이 엄청 길다. 한꺼번에 많은 텍스트를 넣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자 크기도 작다. 장면 하나하나에 나타나는 글의 길이가 거의 소설 수준이다. 1쪽 정도의 분량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엄청 길 수밖에 없다.      둘째, 그림의 수준이다. 아련한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작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의 극치가 BD의 특징이다. 과학이 가미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사진과 같은 디테일은 아니다. 상상력이 가미된, 무한한 공간 속의 디테일이다.       셋째는 BD가 다루는 영역이다. 대중적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만이 아니라 역사·문학·과학·철학·수학에 이르기까지 인류문명 모든 것을 다룬다. 재미만이 아니라 객관적 팩트와 사실(史實)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한 BD를 보면 철학가의 얼굴은 물론 건축, 의상, 심지어 음식조차도 당대 고증하에 묘사되고 있다.       ▲ 파리 서점의 BD 코너. BD 전문점도 곳곳에 있다. photo 유민호   곳곳에 BD 전문 책방      프랑스에는 BD 전문 책방도 따로 있다. 이곳에서는 문학서나 실용서가 아닌 BD만 다룬다. 작고 허름하지만 도시 주변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마주친다. 신간뿐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에 발간된 BD도 고가로 판매한다. 이번에 파리에 들렀을 때도 노트르담대성당 근처를 돌아다니다 작은 BD 책방 하나를 발견했다. 신서보다 고서 BD가 주종인 책방이다. 6.6㎡(2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과 부딪쳤다. 대충 훑어보고 나가려는데, 30대 프랑스 남성이 180유로짜리 BD 한 권을 구입하고 있다. 우주과학에 관한 BD로 ‘1955년판’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궁금했던 BD에 관해서도 물을 겸 함께 근처 카페로 갔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100% 파리지앵이다. 모든 것에 소심한 프랑스인답게, 익명을 전제로 물음에 응해줬다.      그는 “9000편의 BD를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부터 했다. 재산목록 1호라는 것이다. 2500편은 아날로그 책으로, 나머지 6500권은 모바일에 저장돼 있다고 한다. 운 좋게도 진짜 BD 매니아를 만난 셈이다. 아이폰을 열어 저장된 BD 중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작을 몇 개 보여줬다. 19세기 말 제작된 고전부터 최신판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컬러판이다. 100년 전 BD가 어떻게 컬러판일 수 있냐고 물으니까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디지털 컬러 공정이 이뤄졌다고 답한다. 이 30대 프랑스 남성은 BD 매니아인 동시에 자신을 ‘다다미제(Tatamiser)’라 지칭했다. 다다미제란 일본의 다다미(畳)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간단히 말해 일본 서브컬처(Sub-Culture)에 빠진 오타쿠(オタク)를 지칭하는 말이다. 프랑스인으로 망가(漫畵)나 애니메이션 같은 일본 문화에 정통한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BD의 특징이나 캐릭터가 어떤지 묻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논리적으로 설명해줬다. “BD는 모든 예술세계를 총괄하는 영역이다. 공간·시간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 다른 예술세계를 객관적·주관적으로 다룰 수 있다.”      원래 어린이용 취미 정도로 활용됐지만, 현재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가 즐기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용에 관한 분석이다. “일본 만화를 비롯한 아시아권 카툰의 경우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이어진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결론으로 나아가는 식이다. 영역에 따라 다르지만, BD의 경우 스토리보다 메시지에 무게중심을 둔다. 다른 장면으로 바뀔 때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체적인 텍스트 묘사보다 소설적 구도에서 읽는 것이 BD의 맛이다. 일본 만화의 경우 한 장면 뒤 다음 장면에 대한 예상이 가능하지만 BD는 다르다. 뒷장에 무슨 그림과 텍스트가 등장할지 알기 어렵다. 예측 불가능은 BD를 대하는 재미 중 하나다.”      프랑스 BD 전문점을 돌아다니는 동안 알아낸 것이지만 ‘일본 망가’에 대한 프랑스인의 관심사가 엄청나다. BD 전문점은 물론 조금만 큰 서점에도 망가 코너가 따로 설치돼 있다. 2017년 기준 프랑스에서 판매된 일본 망가 규모는 전부 1500만부에 달한다. BD를 포함한 만화 전체 시장의 35%가 일본 망가다. 매년 성장세이기 때문에 일본 망가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 위한 전문학교가 들어설 정도다.         일본 망가 열풍이 다다미제로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더불어 1970년대 초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도입한 나라다. 유럽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10분의 1 수준의 가격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량 수입해서 어린이용 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저작권 시효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지금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TV를 틀면 기억에도 새로운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 반복 방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망가 열풍은 1970년대 어린이였던 어른들이 배경이다. 이미 50대에 접어든 당시 세대들이 1980년대부터 만들어온 망가 열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0대만이 아니라 현재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가 즐기는 ‘오리엔탈 BD’가 바로 일본 망가다. ‘도라에몽’은 기본이고 ‘슬램덩크’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등 일본 망가 히트작들이 BD매장 바로 옆에서 팔리고 있다. 1970년대 방영된 애니메이션이 일본에 호감을 갖는 이른바 ‘다다미제’ 탄생의 배경이 된 셈이다.      같은 배경이지만 이탈리아보다 프랑스가 일본 망가에 더 빠지게 된 흥미로운 이유도 있다. 프랑스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문제다. 일본 망가는 단일민족·단일문화권에 기초한 것이다. 프랑스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에 기초한, 유럽판 ‘멜팅포트(Melting Pot)’ 문화를 자랑한다. BD 그림이나 글이 다양한 배경하의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기사항이 많고 소재로 다루기 어려운 분야도 많다. 잘못 다뤘다가는 큰 화를 당하기 십상이다. 2015년 1월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극단적인 본보기다. 일본 망가는 그 같은 금기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종적 고려 없이 아무거나 소재로 담는 것이 일본 망가의 세계다. 문제가 생겨도 일본 탓으로 돌리면 된다. 일본 망가와 달리 프랑스 BD의 세계화는 거의 제로 수준이다. 문화교류 차원에서 일본도 프랑스 BD를 적극적으로 번역·출간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히트작에 오른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프랑스 특유의 섬세한 유머와 사투리, 역사적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프랑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BD의 기원      BD의 기원은 1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화가 루돌프 도플러(Rodolphe Topffer)가 고안한 사각형 만화가 원조다. 이후 소재·주제·양식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지만 대중과 본격적으로 마주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크게 볼 때 분야별로 세 개의 시기로 나눠져 발전했다.         1. 어린이용 BD      1950년대부터 30여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전부 24권으로 이어진 연재물 ‘틴틴의 모험’이 대표적 작품이다. ‘틴틴의 모험’은 원래 1929년부터 어린이신문에 연재됐던 것으로 전 세계 80여개국에서 번역됐다. 어린이 BD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틴틴의 모험’의 작가가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벨기에 기자로 나오는 틴틴 본인이 그러하듯, 벨기에인 조르주 프로스페르 레미(Georges Prosper Remi)가 원작자다.         2. 성인용 BD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발전했다. 프랑스 BD의 대부 격인 작가 메비우스(Mœbius)가 집필한 ‘블루베리(Blueberry)’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1963년부터 1986년까지 20년간 이어진 장편 BD다. 전 시리즈가 무려 28권에 이른다. 일본 망가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3. BD의 춘추전국시대      1990년대 이후 작가의 개성을 내세운 작품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했다. 전 시대에 비해 오락성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원래부터 BD 작가는 돈과 무관한 직업이었지만,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생계형 BD 작가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본래 BD 작가들은 춥고 배고픈 직업이다. 오타쿠처럼 혼자 틀어박혀, 혼자 기획하고, 혼자 스토리를 만들어 출판하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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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출처 = tvN 공식사이트 드라마 이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구한말 바람 앞 등불의 운명인 한성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청년들이 누구는 펜으로, 누구는 총으로, 누구는 회의와 관망으로 각자의 세계를 마주한다. 주옥 같은 명대사가 많다. 극 중 미국 해병대 대위로 분한 이병헌의 대사다. “전쟁을 하다 보면 말입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적국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 해 멸망한 역사 속 수많은 나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드라마가 우리들의 민족감정을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각색한 역사왜곡이 여기저기 거슬리긴 해도, 나 역시 간만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다. 캐릭터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에서 주목하고픈 인물이 있다. 조선땅에서 임금 다음으로 돈이 많다는 만석꾼 집안의 3대 독자 김희성(변요한 분)이다. 김희성은 동경 유학을 마치고 마지못해 돌아온 한성에서, 그저 도박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철부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신을 설정한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그의 집안이 대를 이어 쌓아온 악행 때문이다. 타고난 착한 천성 때문에 집안의 탐욕을 대물림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집안을 배신하고 망국의 현실과 싸우기에는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이 김희성이다. 그런 그가 극의 후반부에 달해서는 민족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신문사를 차린다. 순 우리말로 펴내는 신문이다. 희성은 밤마다 의병으로 변신하는 옛 정혼녀를 남몰래 후원하기도 한다. 희성 집안의 부유함 역시 조선 땅 곳곳을 넘어서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의병들의 간이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김희성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극중에서 다소 가볍게 그린 점이 없지 않지만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중앙학원, 동아일보를 설립한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이다. 인촌은 전라북도 고창에 터를 잡은 거부(巨富)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 집안의 든든한 지원으로 청년 시절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 해로부터 4년 후, 일본 최고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한다. 김성수의 가문이 드라마 속 김희성 집안처럼 대를 이으며 소작인들을 착취해 부를 쌓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동경 유학을 마친 청년 김성수는 의 김희성보다는 적극적으로 ‘식민지 조선’ 이라는 조건 앞에 맞선다. 그 결과가 전술했듯 한민족의 청년 지식인들을 길러낸 민족 학교 설립이었으며,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조선인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민족지 동아일보의 창간이었다.   이 인촌이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김성수의 친일행위 인정과 이에 따른 건국훈장 박탈이 결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고려대학교 앞 도로명인 인촌로와 전북 고창의 인촌로 명칭을 각 지자체가 직권으로 변경했다는 내용이 주요 언론을 탔기 때문이다. 이 소란은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살아계셨다면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날 일이며, 식민지 시대 한성의 역사를 살아낸 분 들어도 웃을 일이다.   독립운동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1930년 전까지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개한 항일 게릴라 무장투쟁이 있었으며, 이승만·안창호 등 미국에서 공부하고 국제사회에 우리 민족 독립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설파한 언론․외교투쟁이 있었고, 진정한 대한의 독립은 조선인의 근대화와 실력 양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실력양성운동이 있었다. 대개 외교투쟁과 실력양성운동은 동시에 진행 됐는데, 김성수는 특히 후자였다. 인촌은 중앙학교(現 중앙중․고등학교)를 경영하며 낮에는 학도를 길러냈고 밤에는  학교의 숙직실을 3.1운동 준비 공간으로 제공했다. 일제 치하 동안 뒤로는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줄을 대주었으며 청년 지식인들의 유학길을 후원 했다. 일제 패망 직전에 친일에 가담한 경력이 있다고 하지만 식민지 기업인의 한계였다. 만약 김성수가 내놓고 일제에 부역질을 했다면 해방 후 조선인들로부터 가장 먼저 돌을 맞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해방정국에서 그 누구도 김성수를 친일행위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범 김구 선생 산하의 한 단체는 인촌의 1945년 행적을 두고 ‘부득이 끌려다닌 자’로 구분했다.   인촌의 건국 이후의 행적도 살펴보자. 김성수는 호남 지주들을 기반으로 해 현재 민주당의 원류격이 되는 한민당을 창당한다.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의 과제는 농지개혁이었는데, 골자는 제헌 헌법에 명시됐듯 ‘국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재산권 갖게 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좌파인 죽산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사회주의식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지주들로부터 빼앗듯 사들인 농지를 농민들에 분배하듯 되판 것이다. 헐값에 사들인 농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준 뒤 5년에 걸쳐 상환토록 했다. 당연히 기득권을 가진 호남 지주들이 결사 반대 했다. 이때 김성수가 나선다. 지주들로 하여금 일신의 부귀보다는 건국 초기 혼란한 조국에 민족적 결단을 유도한 것이다. 지주들의 불만을 정리한 김성수 덕분에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 농지개혁을 통한 지주들의 경제적 기득권 해체는 훗날 산업화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다른 제3세계 국가의 경우 농지개혁에 실패하여 국가가 경제 성장을 주도할 수 없었다. 경제권이 지주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그랬고 남미 국가들이 그랬다.    역사는 후대의 사람들이 일차원적으로 선과 악을 단순하게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시대에 누가 친일을 했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식민지 시대의 인촌이 어떠한 역할을 했고 어떠한 몫을 짊어졌는지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난도질을 그만 멈춰야 할 때다. 이것은 선대의 지난한 노력 끝에 물려받은 이 땅과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염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동운

최근 한 지자체가 출산 장려책으로 ‘25세 때 결혼시키자’며 ‘대학별로 만남의 행사 추진, 대학생 때 결혼하면 취업 1순위 추천’을 내놓았다. 한낱 우스개로 끝난 한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회의는 출산 장려책이 얼마나 빈곤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취업이 안 되고 살 집 마련이 어려워 결혼이 늦어지고, 결혼한다 해도 아이 기르는 비용이 워낙 많아 아이 낳기가 쉽지 않다. 어른 세대가 저지른 큰 잘못이다.   저출산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고, 급기야 세계 제1의 저출산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3%대 안팎이다. 잠재성장률이란 생산요소를 풀 가동하여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GDP의 최고 성장률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노동과 자본 투입량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을 늘리기 어렵게 되면 우리나라는 저성장의 덫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는 한 마디로, 참혹하다.   리콴유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이유는 다르지만 앞에서 언급한 ‘한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회의’ 같은 사례를 만났다. 리콴유는 1983년 8월 14일 밤,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대졸 남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신들만큼 우수한 아이를 원한다면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아내를 고르는 것은 어리석다.” 언론은 이를 ‘대 결혼 논쟁(Great Marriage Debate)’라고 이름 붙였다. 이 연설 때문에 다음 해 총선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인민행동당 지지율이 12%나 떨어졌다.   리콴유가 ‘대 결혼 논쟁’ 연설을 하게 된 것은 1980년 인구조사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 보고서에는 싱가포르의 똑똑한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있고, 후손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싱가포르 최고의 여성들이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는 그들과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성들이 그들과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대졸생의 절반가량은 여성들이었는데, 그들 중 3분의 2 정도는 미혼이었다. 싱가포르에서 1983년에는 대졸 남성의 38%만이 대졸 여성과 결혼했다. 다행히도 1997년에는 63%로 증가했다.   리콴유는 미혼 대졸 여성들의 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대졸 남녀 간의 교제활동을 도와주는 사교개발기구(SDU)를 설립했다. 세계 신문사들은 싱가포르정부의 짝짓기 노력과 사교개발기구 설립을 비웃었다. 그러나 당시 대졸 미혼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은 미혼녀의 부모들이었다.   리콴유는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세 명의 자녀를 둔 대졸 여성에게는 세 아이 모두를 위해 부모들이 높게 평가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반론과 비난이 들끓자 이 정책은 곧 폐기되었다. 대신 세 번째와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할 경우 부부의 수입에서 소득세를 감면하는 특혜를 주었다. 이런 특권으로 말미암아 세 번째 아이나 네 번째 아이를 갖는 가정이 늘어났다.   우리도 리콴유가 시행한 것과 같은 정책을 도입하면 어떨까? 태어난 아이에게만 혜택을 줄 것이 아니라 태어날 아이에게도 혜택을 주는 제도. 즉, 결혼한 가정에게는 어떤 조건하에서 내 집 마련을 쉽게 해주고, 지금은 맞벌이 부부가 대세이므로 ‘아이를 출산할 경우 부부의 수입에서 소득세를 감면하는 특혜’를 주는 것.

이춘근

▲ 2015년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북한 청년 수천 명이 참여한 대규모 횃불 퍼포먼스가 열렸다. 횃불 공연 참석자들이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이라는 글자를 선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반도 문제가 세계 정치의 고약한 문제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이 2차 대전 종전 무렵의 일이었으니 한반도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75년 이상이 되었다.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고 미국, 영국, 중국(당시 장제스의 중국)의 수뇌들은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에 유념(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하여 ‘한국을 적당한 절차를 거쳐 자유독립국가로 만들어줄 것을 결심했다(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부, 그리고 북한의 지도층 전부와 이들의 선전에 세뇌당한 북한 주민들 다수는 김일성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사실 오늘의 한국 문제를 규정하는 분단, 전쟁, 갈등은 그 대부분이 국제정치적 원인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도출해냈다는 사실이 한국의 광복을 가져온 결정적 요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분단의 역사는 제대로 살펴보면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그림이 나오지만, 종북 좌파인사들 전부와 상당수의 한국 국민들은 한반도의 분단 원인에 대해 입버릇처럼 ‘미국 놈들이 잘랐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 역사상 가장 처절한 재난이었던 6·25전쟁도 국제적인 문제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침략전쟁을 시작하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당시 기준 최신형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도 20개국에 이른다. 당대 세계의 강대국들이 모두 싸웠다. 처음에는 극구 부인했지만 소련 조종사들의 참전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일본 자위대 병사들도 소해(掃海)작전에 참여했던 세계적 전쟁이었다.       아무튼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위한 남침 전쟁은, 중국(당시 중공)과 소련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 및 소련 국제공산당이 신생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을 방치할 수 없는 미국과 자유진영은 전쟁 발발 단 일주일 만에 군사력을 한반도에 다시 배치, 공산군과 전투를 벌일 정도로 신속히 대처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군대를 파견, 한반도는 세계 각국에서 온 군인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공산주의 침략의 예봉을 꺾은 유엔군은 한반도를 자유 통일시킬 목적으로 38선 이북으로 밀고 올라갔다. 북한 공산정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진 1950년 10월 하순, 중국은 처음에는 은밀하게 그리고 곧바로 공개적으로 무려 130만명의 중공군을 한국 전역(戰域)에 투입했다. 중공은 음흉하게도 이들 군사력이 중국의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이 아니라 미국에 대항해서 싸우는 북한을 돕기 위해 스스로 파견된 군대, 즉 인민지원군(人民支援軍)이라고 불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불렀다. 한국전쟁이 지속되는 약 3년1개월 동안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남북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소련, 중국, 유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휴전을 끝끝내 반대했던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체결을 조건으로 휴전에 동의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북한 역시 한국전쟁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휴전 후 65년이 지난 2018년 현재 한반도 문제는 별로 나은 방향으로 진전하지 못했다. 2018년 4월 27일 열린 문재인·김정은 판문점회담, 6월 12일 열린 트럼프·김정은 회담 이후 피상적인 측면에서 일시적인 평화무드가 형성되기는 했지만 한반도 국제정세의 저변에는 남북한 중 한 편이 붕괴되어야 끝나는 본질적이고도 궁극적인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미·일 개입 않는 상황      한반도 문제가 도무지 풀리지 않고 교착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 사회 일각에 북한의 입장을 긍정하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반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의 연원이 소련·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진영의 잘못이기보다는 미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원인이 소련이기보다는 미국에 있다고 보는 수정주의 좌파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좌익 세력들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 방안은 제국주의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미군 철수’라는 구호가 6·25전쟁을 통해 공산주의 학정(虐政)을 경험한 한국 국민정서와 도무지 맞지 않는 과격한 구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한국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적어도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는 힘든 방법과 구호를 찾아내었다. 그 구호가 바로 ‘우리민족끼리’라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논리는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열정적이다. 한민족의 고통은 분단에서 유래한 것이고, 분단을 초래하고 고착화시킨 것은 외세(外勢)이니 그 외세를 제거하면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처럼 간단한 논리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에게 쉽게 먹혀들어간다. 우파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이 같은 논리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같은 논리는 깔끔하기는 하지만 함정이 많다. 우선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외세는 오로지 미국과 일본을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성향의 나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민족끼리’란 다른 말로 미국과 일본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은 외세가 이미 빠져나가버린 ‘주체의 나라’인 반면 한국은 미군에 의해 주둔, 점령, 착취당하고 있는 ‘식민지 국가’다. 그래서 남한의 시대는 미제강점기인 것이다. 남한 지역은 일장기가 펄럭이던 일제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성조기가 펄럭이는 미제강점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집요하게 외쳤고, 이들의 선전은 대단한 효과를 보았다. 반공·보수를 표방한다는 김영삼 대통령조차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민족끼리’라는 주장은 감성적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은 아니다. 우선 이들이 말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편협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이란 동양적 개념도 아니고 더더욱 우리나라의 개념도 아니다. 근대 서양에서 유래한 개념을 빌려온 것인데 우선 민족이란 언어, 문화, 역사, 관습, 종교, 사상 및 혈통이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이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민족의 요소는 혈통이다. 이들은 북한과 남한이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극도로 강조한다.       ▲ 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취소 트럼프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중민주당 당원들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은 ‘같은 생각’을 더 중시한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서양 사람들이 민족을 말할 때 가장 나중에 거론되는 요소가 ‘같은 혈통’이며 가장 강조되는 요소는 ‘같은 생각’을 나누고 있느냐 여부다. 즉 흑인과 백인이라도 역사와 언어, 관습, 종교, 사상이 같은 경우 그들은 하나의 민족이 된다. 오늘날의 미국이 그런 사례다. 서양인들은 피가 달라도 생각이 같으면 한민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도 피가 같으면 같은 민족이 될 수 있으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북한과 남한은 피가 같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고 우리끼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왜 세상에서 한국인과 피가 제일 가까운 일본을 그토록 배척할까? 사상이 달라도 피가 같아서 함께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일본은 한국과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지만 북한은 스스로를 ‘김일성 민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한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칭하는 용어인 ‘한민족’은 ‘김일성 민족’과 같은 민족인가, 다른 민족인가?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피가 달라서가 아니라 생각이 달라서다. 피가 같아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김일성 집단이 보기에 ‘반동분자’들일 뿐이다.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족속들인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김일성의 언급으로도 증명된다.      남북대화가 막 시작되던 무렵인 1970년대 초반 남북회담을 위해 사상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온 북한 대표들은 서울의 발전상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서울 사람들의 환대에 감정이 들떠 있었을 것이다. 노련한 전략가 김일성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남조선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만반의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일단 유사시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게 되면 남조선의 발전된 경제가 다 우리 것이 된다.”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 통일을 이룩하기 이전에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고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다른 한국 사람들, 즉 그들이 ‘꼴통 극우파’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지 묻고 싶다. 피가 같다는 사실이 민족의 본질이고, 그래서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 사람들도 다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니까 꼴통들, 자본주의자들도 포용해주기를 바란다.         ‘한민족’과 ‘김일성 민족’은 같은가 다른가      필자가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를 강의할 때 “우리끼리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풀면 될 문제 아니냐?”며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앞에서 말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들 중 오순도순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먼저 북한이 60년 이상 줄기차게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체제는 사실상 하나의 체제이며 주한미군에 대해 똑같은 하나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이 없어져야 남한을 무력 점령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인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주한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쟁을 억제(抑制)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위협이 없어질 때까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 문자 그대로 정치적 재앙을 불어올 수 있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를 끌어내리자는 촛불시위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군 나가라’는 촛불시위는 태극기 부대와 충돌을 피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촛불을 그대로 방치할 국민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반도 그 자체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민족끼리’ 주창자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떠드는 것과 달리 주한미군의 존재를 원하는 외세가 있으니 바로 일본과 중국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아시아 주둔 미군, 특히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시키려 했을 때 놀란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일본도 놀라고 중국도 놀랐다. 미군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일본이 채울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그래서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일본이 채우는 최악의 상황에 당면하기보다는 차라리 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은 언제라도 이 말을 그럴듯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리(중국)는 한반도의 안정을 원한다”고.      ‘우리민족끼리’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통일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필자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끼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듣기 싫은 말이 될 것이지만 한반도 주변 외세 중 한반도의 통일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는 나라는 단 한 나라 미국뿐이다. 왜 그런지 설명해보자.      국제정치학의 무서운 논리는 이웃에 힘센 나라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북한이 통일을 이룩할 경우 통일한국은 중국과 일본이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권력정치적(Power Politics) 이유에서 찬성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나라(남·북한)가 통일을 이룩해서 강한 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원할 이웃은 없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고려사항은 더욱 처절하다. 중국인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중국의 뒤통수에 붙어 있는 망치와 같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短刀)로 인식한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도무지 찬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남한이 통일하는 것도, 북한이 통일하는 것도 모두 원치 않는다. 통일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일본과 대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가 통일에 가장 근접했던 1950년 늦가을, 130만 대군을 파견, 이를 막았다. 한반도 통일을 막기 위해 중국은 약 20만명의 전사자, 60만명의 부상자를 감수했다. 중국군 사망자 명단에는 마오쩌둥의 아들 이름도 들어가 있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각각 종합국력 세계 2위, 3위의 나라다.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세계 2, 3위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민족끼리 오순도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이기보다는 환상이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외세가 미국인데, 바로 미국만이 한반도 통일을 권력정치적·지정학적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솔직히 미국은 지정학적 이유에서 한반도 통일을 원하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는 남한, 북한 중 누가 통일하든 미국 편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운명이 그렇다는 말이다.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적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민족끼리’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원하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류근일

 린지 그레이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의 트윗을 읽어보자.    “나는 남한 (정권)의 북한 방문이 북한 정권에 최대압박을 가하려는 폼페이오 장관과 니키 헤일리 대사의 노력을 약화시킬까 걱정한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 장치 실험은 중단했지만 비핵화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 남한은 북한에 놀아나선 안 된다,”    그레이엄 의원의 이 말은 미국 보수 정계의 아주 일부만이 가지고 있는 소회일까, 아니면 상당수 인사들이 공유하는 의견일까? 더 눈에 띄는 대목은 폼페이오 장관과 니키 헤일리 대사 등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다시 의도하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 니키 대사는 유엔에서 러시아의 대북 제재 허물기를 최근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다.     이번 3차 남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핵 폐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 채 ‘조선반도의 비핵화’란 ‘그들의 수사학’만을 되풀이했다. 미국이 과연 이에 만족스럽게 생각할까? 11월 중간 선거를 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전에는 정치적으로 손해 갈 소리를 절대로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중간 선거 이후에는, 그리고 그가 만약 김정은에 대한 더 이상의 인내심을 잃을 경우엔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북한에 대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전망은 아직은 속단 할 건 못된다. 그리고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서기에는 트럼프는 이미 너무 많이 나간 측면도 있다. 강경책으로 전환할 경우 그는 자신의 그간의 대북정책이 실패였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직은 신중하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트럼프의 성품이 워낙 예측불허의 즉흥성 자체라서, 그가 잠시 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조야에 김정은이 미국 방식의 핵 폐기로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그런 기류를 가장 직설적으로 대변한 것이 그레이엄 의원의 트윗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흐름이 만약 강경한 대북정책 재개(再開)로 나타날 경우, 그 때의 미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다. “저런 것도 동맹국인가?” 하면서, 북한과 거래한 우리 기업-기관-은행에 대해서도 제재를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선택해야 한다. 한-미 동맹인가, 이른바 ‘민족공조’인가? 우파도 답해야 하고 좌파도 답해야 한다. 이른바 ‘중간파’도 답해야 한다. 지금이 1948년이라고 가정할 경우, 여러분은 평양 남북협상으로 달려갈 참인가, 대한민국 건국노선으로 달려갈 참인가? 응답하라, 대한민국 국민이여. 이건지 저건지 불분명한 채 국제정치에서 무소속으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개입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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