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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계모 살인혐의 쓴 미 11세 소년, 9년만에 무죄 석방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18일(현지시간) 2009년  11세 때 아버지의 임신한 약혼녀를 엽총으로 쏘아 살해한 혐의로 1급살인죄로 복역중이던 조던 브라운(20)에 대한 판결을 뒤집고 증거불충분으로 그를 석방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정황증거들에 불과하며 어린 브라운은 잘못 한 게 없었다고 판단,  5대 0 만장일치로 기존 판결을 번복하고 브라운을 무죄석방했다고 그의 변호사가 말했다.   브라운은 피살 당시 26세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버지의 약혼녀 켄지 후크가 펜실베이니아 서부의 농촌지역에 있는 이들의 농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후 그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 후 로렌스 카운티의 소년법원을 거쳐 상소심에서도 1급 살인 한 건에 태아에 대한 살인까지 가중되어 성인으로 재판을 받을뻔 하다가 변호사의 노력으로 소년범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종심에서 판사들은 검찰이 브라운의 침실에서 발견했다는 엽총이 살인에 사용된 것이 아니었고  그가 총격을 하는 것을 본 증인도, DNA증거물이나 지문도 나오지 않았으며 브라운의 옷에서도 희생자의 혈흔이나 생물학적 증거가 전혀 나온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판정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후크는 발견당시 뒷머리에 엽총 사격을 받아 피가 흥건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경찰은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에 스쿨 버스를 타려는 어린 브라운을 용의자로 체포했었다.    11세 때 체포 당시부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온, 지금은 20세 청년이 된 브라운은 이제야 "뒤늦은 정의의 심판"을 받았다고 그의 변호사 케이트 버딕은 말했다.  "우리는 그의 어린시절을 되돌려 줄 수는 없지만, 뒤늦게라도 대법원에서 누명을 벗겨줘 이제부터 생산적인 새 삶을 살게 해 준 것을 반갑게 여긴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에 피살된 후크의 부친 잭 후크는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아내는 다른 범인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브라운의 석방에 충격을 받아 울고 있다며 "우리는 지옥을 겪고 있다" 고 말했다.   브라운은 2016년에 판사의 허락으로 오하이오주에 사는 삼촌의 집에 가택 연금하는 조건부 감호처분이 허락되었지만 버딕 변호사는 앞으로 그런 식으로 그를 다시 처벌하는 것은 미국 헌법에 명시된 일사부재리원칙에 어긋 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브라운에 대한 소년법원의 처분은 그러나 몇 주일 더 연장되어 그가 21세가 되는 날까지 효력을 지속한다.     브라운의 변호사들은 브라운의 무죄를 믿고 2014년 대법원에도 상고해 일단 증거불충분에 대한 인정을 받아냈다.  사건 당시 브라운의 아버지 크리스 브라운은 이미 출근을 했고 후크는 4살, 7살의 두 딸과 조던과 함께 집에 있다가 큰 딸은 스쿨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러다가 작은 딸이 엄마의 주검을 발견해서 근처의 정원사들에게 이야기해 경찰이 도착했으며,  조던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죽은 후크는 헤어진 전 남자 친구로부터 여러 차례 폭행과 협박을 받은 적이 있으며,  피살되기 얼마 전에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작은 딸이 친자확인 결과 다른 남자의 딸로 밝혀져 싸움을 해왔던 사실이 얼마 후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피살 전날 이 남자친구는 후크의 부모가 있는 나이트 클럽으로 찾아가 난동을 벌이다가 쫒겨난 사실도 있다.   그러나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 남자친구는 처음부터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고,  검찰은 브라운이 가족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껴 살인을 한 거라며 아이 옷에서 발견된 화약 성분과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던 앞 뜰에서 발견된 탄피 등을 증거로 제시해 그를 용의자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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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태종 무열왕 김춘추 영정. 김춘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외모가 출중하고, 행동거지가 분명하며, 사려 깊은 성품의 소유자로서 삼국통일의 대망을 품고 외교전문가가 되어 나당연합군을 성사시킴으로써 한반도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어려서부터 삼국통일의 대망을 품고 외교전문가가 되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낮은 신분(그때까지 신라의 왕은 모두 성골이지만, 그는 진골이었다)으로 왕이 될 가능성은커녕 젊을 때 왕자대접도 받지 못했고, 국가나 민족은 17,8세기 근대 이후 생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의 인생역정을 본다면 그렇게 말하기는 더 어렵다.   김춘추는 38세 때 대야성전투에서 애지중지하던 딸과 사위를 잃고 절망에 빠졌다. 그럼에도 신라의 현실은 국력이 약해 백제에 보복은커녕 영토 유지도 버거웠다. 이 때문에 김춘추는 목숨을 걸고 적국인 고구려를 찾아 가 군사원조를 애걸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오히려 볼모가 된다.   그럼에도 그는 ‘신라왕실을 설득하여 영토의 일부를 넘겨주겠다’는 구실로 고구려를 탈출한 뒤 백제의 동맹국인 왜로 갔다. 일찍이 신라의 재상 김제상이 왜에 사절로 갔다 죽임을 당하고 부인은 망부석이 된 전설을 지닌 원수의 나라를 찾아가야 할 정도로 나라(신라)의 형편이 위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국 역시 김춘추를 철저히 무시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하는 수 없이 멀리 바다 건너 당(唐)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김춘추는 당으로부터 어리둥절할 정도의 환대를 받았다. 당으로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태종은 형제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현무문 사건(서기 626년)으로 심각한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었고, 정통성 시비를 불식하려고 감행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 태종으로서는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의 후방인 백제를 치자는 김춘추의 제안은 민심이반과 왕조의 몰락을 막는데 더 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수단이라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최초의 나당연합군이 결성되어 대야성탈환전(서기 648년)이 벌어졌고, 이를 기화로 당은 왕조의 안정을 기하고, 신라는 백제를 견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김춘추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신라에 또 다른 기회가 왔다. 당태종의 후궁이던 무조라는 여인이 아들인 당고종의 후궁으로 있다 급기야 황후로 즉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당 조정은 아버지의 후궁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황제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무조가 황후에 오르자 그 불만은 폭발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무조는 뛰어난 정치감각을 발휘하여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여 백제를 전면침공함으로써 당나라 백성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친 김에 고구려까지 정벌함으로써 민심달래기를 넘어 당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 공적을 쌓았다.     그 후 무조는 백제와 고구려의 궁궐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통치자금으로 투입하여 서적편찬기관인 북문학사(北門學士)를 만들어 지지세력을 육성하고, 권력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셋째아들을 황제(중종)로 삼았다가 두 달도 안 돼 막내아들(예종)로 바꾸는가 하면 나중에는 스스로 여황제(측천무후)로 즉위하고, 국호마저 주(周)로 바꾸는 등 역사적 유례없이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이를 보면, 한반도의 삼국통일로 가장 큰 득을 본 사람은 신라나 당의 왕과 백성이 아니라 무조라는 한 여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이념이나 이상보다는 철저히 개인의 욕망이나 돈에 따라 움직인다는 냉엄한 현실을 알 수 있다. 민심을 살펴야 하는 국내정치보다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의 현실인 김씨 일가의 세습정권,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아베의 집권욕, 트럼프의 재선열망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히 연구되고 있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외교가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털어내기 어렵다.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당과의 강력한 동맹을 통해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삼국통일을 이룬 역사를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외교는 국내정치 못잖게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그리고 정치, 경제적 이해가 같을수록 동맹은 결속되고, 체제나 이념이 비슷할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은 세계사의 교훈이다. 특히 동서양과 대륙 및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한반도의 주인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교훈이니 만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김승열

톈진 공항 전경 오늘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한중 골프대회를 마치니 그동안 참고 내리지 않던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창 너머로 거의100층 이상 되는 빌딩이 오늘에야 눈에 나타났다. 호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방송국 카메라도 눈에 띄었다. 주말을 맞아 폴로 경기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비도 잦아 들었다.   그간 중국의 골프와 레저, 리조트 산업이 궁금했는데 직접 현지에서 눈으로 접하니 새롭게 다가왔다. 신개척지인 레저 리조트 산업에 적극적인 중국의 변화도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미래의 먹거리는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산업이 주가 된다”는 어느 미래학자의 말을 빌지 않아도 중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우리나라도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선수단과 패널이 모여 총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는 “1년 전부터 다음 대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패널들도 각 분과를 만들어 대비하면, 대회 브랜드의 질적 성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승마경기와 관련 산업의 문턱이 낮아져 대중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리고 골프장, 승마장, 그리고 폴로 경기 등이 좀 더 대중화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인프라를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레저산업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변화에 부러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한중 골프대회 폐막식 행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필자. 솔직히 이번 중국 출장을 통해 골프와 폴로 등 중국의 스포츠산업을 경험하게 돼 다소 충격이었다. 미래의 먹거리 산업은 스포츠 등 리조트 산업이라고 평소부터 생각하여 온 필자로서는 중국의 스포츠 산업을 현장에서 느끼면서 스포츠와 법, 중국의 레저 틈새시장 등에 대하여 좀 더 연구와 노력을 해야겠다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김수련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함께 살다가 처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이건 놀라운 체험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 아띠와 레오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온다. 그리고 저 멀리서 고양이 꼬미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온다.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녀석들을 안으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 자태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그 느린 우아한 발걸음.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강아지를 안고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런데 아쉽다. 꼬미도 안고 싶은데 언제나 그냥 도망가 버린다. 가끔 부엌에 서 있으면 자신의 털을 내 다리에 살짝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나마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런 꼬미가 강아지들과 서식하면서 조금씩 개냥이(개+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내가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들과 함께 뛰어나오는 것을 보기도 한다. 고양이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걸까?너무도 다른 강아지와 고양이의 태도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원한 것은 개냥이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강아지가 때로는 귀찮으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는 고양이는 늘 서운하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가까우면 버겁고, 멀면 서운하다.그들을 보고 있으면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가 떠오른다.어느 추운 겨울날, 많은 고슴도치가 체온을 유지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을 느껴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렀고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 Parerga and Paralipomena》 중에서고슴도치 가시 길이만큼의 거리.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으면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걸 반복한다. 외로워서 함께하지만, 함께 있으면 ‘자아(ego)’라는 이름의 가시로 서로를 찌른다. 에고가 강할수록 ‘나’와 ‘너’가 대립하고 마찰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 것이다. 그래서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서 겪을지도 모른다. ‘나’를 강조하면 결국 ‘나’와 ‘너’만이 남고,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자와 마찰이 잦을수록 그의 자아는 더욱 공고해진다. 그만큼 관계에서 오는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어지게 된다. 물론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나’를 주장하는 것이 옅어지면 ‘너’를 받아들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렇게 되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짧아질지도 모른다.꼬미가 개냥이가 되어가는 일. 자신과 다른 강아지의 몸짓언어를 이제 이해한다. 막내 레오가 반갑다며 같이 놀자고 엉덩이를 치세우며 몸을 낮췄을 때, 그것이 고양이의 언어로 공격 자세라고 생각하며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했지만, 이제 각기 다른 객체의 몸짓언어를 익히고 타인을 받아들이면서 경계를 늦추고 조금씩 다가온다. 그렇게 ‘나’를 통해서 ‘너’를 읽는 것이 아니라, ‘너’를 ‘너’로 읽으며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인간도 ‘나’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끊임없이 찔리고 상처받아야만 ‘너’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 속에서 ‘우리’가 되어가는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나가는 일일 것이다.조금만 더 그 가시를 줄이자.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그 온기가 각자의 가시를 뭉툭하게 만들어 찔러도 아프지 않도록.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류근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째 막가는 것 같다. 그는 백인 중하층, 비(非)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대통령이 된 이면에는 미국 지식인 사회의 위선적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만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매사 정도 문제다. 지나치면 안 된다. 트럼프의 막가는 언동은 최근 들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평들이다.    유럽을 적(敵)으로 취급하고 나토를 내리깎고 합동기자회견에서 비굴하게 푸틴 편을 들고 북한 핵 폐기의 시간표 따위는 아예 없다고 하는 등, 이 사람이 도무지 무슨 짓을 할 사람인지 알 수가 없게끔 만들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를 편들어 오던 폭스 뉴스까지 “구역질 난다”고 극언했을까?  그가 미국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지켜주고 전 세계 걱정하느라 돈 쓰고 파병하고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는 데야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가 한국을 저처럼 깔아뭉개며 오히려 김정은을 치켜세우는 것 역시 한국이 그 만큼 밉게 굴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결과다. 한국 우파는 쫄딱 망했고, 좌파는 그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화염병을 던졌다. 이런 한국을 그가 뭣 때문에 좋아해야 하는가?  하지만 글로벌 국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기껏 저 정도의 교양수준 밖에 안 되나 하는 건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체를 위해 안 된 일이다. 네까짓 변두리 국가의 일개 서생(書生) 따위가 주제넘게 웬 미국 걱정이냐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저런 미국을 바라보자면 로마의 쇠망기 때도 황제들 수준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못 흥미진진해진다. 후세의 헐리우드 명감독 하나가 오늘의 ‘트럼프 1세’를 두고서 코미디 영화 한 편 끝나게 만들어낼 것 같다.  11월 중간선거 때 미국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트럼프와 푸틴 사이엔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인가? 푸틴은 트럼프의 과거 행실에 관해 어떤 물증이라도 쥐고 있는 것일까? 저런 트럼프에 대해 미국 의회, 민주당, 공화당 내 일부는 이미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미국 지식인 사회의 위선을 폭로한 것이라면, 최근의 그에 대한 혐오는 미국 판 마초(macho)의 ‘막 가기’에 대한 때늦은 환멸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만하다.  트럼프의 미국은 자유인들의 이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대표할 생각도 물론 전혀 없지만 말이다. 한국 우파도 이제는 제 힘으로 살든가 죽든가 하게끔 내몰렸다. 내몰리기 전에 홀로서기 워밍업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이미 한참 늦었다. 늦은 자를 기다려 줄 떡이란 이 세상에 없는 법-굶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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