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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선정 '가짜뉴스' 금메달, 뉴욕타임스의 '경제는 망했다' 칼럼 전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18일 가짜뉴스(Fake News) 10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목록을 보면 뉴욕타임스와 CNN의 보도가 대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중 뉴욕타임스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직후 보도한 폴 크루그먼의 ‘경제는 망했다(The Economic Fallout)’라는 제목의 칼럼에 금메달을 선사하였다.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크루그먼은 당선 직후 “시장은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경기후퇴가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재임 1년만에 일자리를 210만개, 7조 달러 이상의 국부를 창출하였다. 법인세를 35%에서 21%로 145포인트나 파격적으로 낮추었다. 근로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했으며, 많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제조업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애플은 해외보유현금 2690억 달러를 들여가고 세금 380억달러를 내기로 하였다. 또 미국에서 5년간 2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경제는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소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할 정도로 크루그먼의 전망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 금메달을 선사한 크루그먼의 1년 전 칼럼 전문을 옮긴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와 시장이 당장 곤두박질칠 것 같지는 않다. 언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솔직히, 이 분야가 내 전공이라고 열심히 연구하지만 정확히 예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과 세계에 불어닥칠 재앙은 워낙 다 방면에 걸쳐 있다. 경제적 결과들을 걱정하는 일은 나중 문제라고 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문제에 답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언제 회복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당장 답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책임하고 무식한 사람이 잘못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를 가진 나라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될 것이다. 특히 당장 더 나쁜 것은 세계경제가 지난 8년간의 엄청난 재정위기를 겪고나서도 여전히 근본적으로 허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일자리창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서 완전고용에 아주 근접한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자율을 극단적으로 낮게 유지한 덕분에 가능하였다.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나쁜 일이 발생하여 경제를 부양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외국의 중앙은행들은 근본적으로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출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적대적인 (경제)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    이제 적대적인 상황들을 모두 합친 듯한 거대한 적대적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그와 함께 경제정책에 무지하고, 경제가 돌아가게 하려는 어떠한 노력에도 적대적인 (트럼프 대통령) 체제가 들어섰다. 중앙은행에 효과적인 재정지원을 한다고? 절대 못할 것이다. 사실,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상실하고, 악당들에 협박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경기후퇴가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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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도 뒤에 가서는 나태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바라건대 그 끝을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하소서.”    평범해 보이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은 말이다. 이 멋진 말은 뜻밖에도 1487년(성종 18년) 11월 14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풍운아 한명회(韓明澮)가 자신이 임금으로 만들어 올렸고 한때 사위이기도 했던 성종(成宗)에게 남긴 유언이다. 이 유언은 마치 당나라 때 명신(名臣) 위징(魏徵)이 당 태종에게 올린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 중에 있는 다음 두 가지 말을 합쳐 놓은 듯하다.    “처음에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능히 끝을 잘 마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나태하고 게을러질까를 두려울 때는 반드시 일의 시작을 신중히 하고 일의 끝을 잘 삼가야 한다[愼始而敬終·신시이경종)]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도학(道學)에 물든 그 후의 조선 성리학은 한명회를 매도했다. 하지만 예(禮)를 그들처럼 가례(家禮)에 국한하지 않고 일이 되어 가는 이치 혹은 일을 만들어 내는 이치[事理]로 넓혀서 접근할 경우 그의 전혀 새로운 면들을 만나게 된다.      경륜과 사업  한명회는 여러 차례 사극의 소재가 됐다. 그중 1984년 MBC가 방송한 〈설중매〉에서 배우 정진이 연기한 한명회가 가장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1415년(태종15년)에 세상에 나온 한명회의 할아버지는 1392년 7월 조선 왕조가 건국되자 예문관학사로서 주문사(奏聞使)를 자청해 명나라에 가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승인받아 이듬해 2월에 돌아온 한상질(韓尙質)이다. 그의 동생 한상경(韓尙敬)은 개국공신이다. 따라서 한명회의 집안 자체는 조선 혹은 조선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아버지 한기(韓起)는 이렇다 할 행적이 없었고 일찍 죽어 한명회는 어려서 고아가 됐다. 의지할 데가 없자 작은할아버지인 참판 한상덕(韓尙德)을 찾아가 몸을 맡겼는데 한상덕은 어린 한명회의 남다른 언행을 주의 깊게 살펴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그릇이 예사롭지 않으니 반드시 우리 가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나이가 장성하도록 여러 차례 낙방(落榜)했다. 그러나 이를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개의하지 않았다. 간혹 위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했다.    “궁달(窮達)은 명(命)이 있는 것인데 사군자(士君子)가 어찌 썩은 유자[腐儒]나 속된 선비[俗士]가 하듯이 낙방에 실망하고 비통해하겠는가?”    어린 나이에 벌써 공자가 말한, 50살에 이르러야 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스승 유방선(柳方善)을 함께 모셨던 서거정(徐居正)이 쓴 한명회의 묘비명이 전하는 젊은 시절 한명회의 모습이다.    〈길창군(吉昌君) 권람(權擥)공과는 사생(死生)의 우의(友誼)를 맺어 서로 좋아함이 옛 관중(管仲)과 포숙(鮑叔)보다도 더했는데 권공과는 뜻이 같고 기개가 합하여 살림살이는 경영하지도 않고 산수간(山水間)에 노닐면서 혹 마음에 맞으면 한 해가 다하도록 돌아올 줄을 몰랐으며 명리(名利)에는 담박(淡泊)했다. 일찍이 길창군에게 농담하기를 “문장과 도덕은 내가 자네에게 자리를 내주지만 경륜(經綸)과 사업(事業)에 있어서는 어찌 많이 모자라겠는가?”라고 했다. 대체로 의론(議論)에 나타나는 것이 고매(高邁)하고 기위(奇偉)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큰 재기(才器)로 지목하였다.〉    권람 또한 유방선의 제자였다. 권람에게 했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한명회의 은근한 포부였다. 그리고 경륜과 사업을 자부했다는 것은 곧 사리(事理)에 그만큼 밝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선에서 과거를 거치지 않고 ‘경륜(經綸)과 사업(事業)’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임금이 되거나 임금을 만들어 그 임금을 도와 경륜과 사업을 펼치는 것!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운명적 만남    서거정의 묘비명은 또 한명회가 권람을 통해 수양대군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마치 오늘날의 신문기사처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한명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며 다시 따라가 보자.    〈임신년(壬申年, 1452년 문종 2년) 공의 나이 38세에 경덕궁(敬德宮)의 궁지기[宮直]가 되었는데 그때에 문종(文宗)이 승하하고 어린 임금이 왕위에 오르자 권간(權姦·김종서)이 집권하여 국세(國勢)가 위태로우니 공은 항상 우분(憂憤)하는 심지(心志)를 가졌었다. 하루는 길창군에게 말했다.    “시국이 이 지경에 이르니 안평(安平·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신기(神器-왕위)를 넘보고 은밀히 대신과 결탁하여 후원(後援)을 삼고 많은 불령(不逞)한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나무뿌리 얽히듯 얽혀 화란(禍亂)의 발생이 조석 간에 있는데 그대는 이런 데에 추호도 생각이 미치지 않는가?”    길창군이 말했다.    “자네의 말이 맞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공이 말했다.    “화란을 평정함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난(亂)을 다스릴 수 있는 군주(君主)가 아니면 할 수 없네. 수양대군(首陽大君)은 활달(豁達)하기가 한 고조(漢高祖)와 같고 영무(英武)하기가 당 태종(唐太宗)과 같으니 천명(天命)이 그분에게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네. 지금 자네는 그분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어찌 조용히 건의하여 일찍 결단하게 하지 않는가?”    길창군이 공의 계책으로 세조(世祖)에게 고하고 또 말했다.    “한생(韓生·한명회)은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서 지금의 관중(管仲)이나 악의(樂毅)라 할 수 있습니다. 공(公)께서 연릉(延陵-춘추시대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의 절조(節操)를 지키시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이 세상을 평치(平治)하시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세조가 급히 공을 부르니 공이 폭건(幅巾)을 쓴 채 들어가 알현했다. 세조가 첫눈에 구면(舊面)처럼 대하고 앞으로 나와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 있는데, 대신이 간교하여 (안평대군) 이용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께서 충자(沖子·어린 아들)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    말을 마치자 눈물을 흘리니 공도 비분강개하여 반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했다. 세조가 말했다.    “형세(形勢)는 고단(孤單)하고 세력은 미약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공이 말했다.    “명공(明公)께서는 종실의 맏이로서 사직(社稷)을 위하여 난적(亂賊)을 치는 것이므로 명분도 바르고 말도 사리에 맞으니 성공하지 못할 리가 만무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입는다’고 하였으니 바라건대 명공께서는 익히 생각해 보소서.”    세조가 말했다.    “경은 더 말하지 말라. 나의 결심이 섰네.”    이로부터 모든 비계(秘計)와 밀모(密謀)는 공의 지휘에 맡겨졌다. 공이 말했다.    “한 고조가 비록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의 계모(計謀)를 쓰기는 했지만 승리로 이끄는 데에는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을 썼고, 당 태종이 비록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를 임용했지만 전벌(戰伐)에는 포공(褒公·단지현(段志玄))과 악공(鄂公·울지경덕(尉遲敬德)의 봉호(封號))을 썼습니다.”    드디어 무신(武臣)으로 용략이 있는 사람 수십 인을 천거했다.〉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를 막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성삼문.  이들은 이미 한나라 유방과 당나라 태종을 모범으로 삼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시 계유정난 직전이다. 〈계유년(癸酉年·1453년 단종 원년) 10월에 곧 의병(義兵)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의심의 단서를 품고 중심(衆心)을 흐리게 하는 몇 사람이 있자 공이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한번 태어났으면 죽는 것은 사람마다 면할 수 없는 일인데 사직(社稷)을 위해 죽으면 그래도 그저 죽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 감히 딴마음을 품은 자가 있으면 이 칼로 베겠다.”    마침내 군심(群心)이 진정되었다. 이에 의사(義士)를 초집하여 마침내 원악(元惡)을 제거하고 추종자를 머리에 빗질하듯 싹을 도려내듯 하여 대난(大難)을 평정했다.〉    1455년 (단종 3년) 6월에 세조가 즉위했다. 이듬해 6월 초하루에 세조가 광연루(廣延樓)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등이 이날 큰일을 일으키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한명회가 글을 올려 광연루는 자리가 좁으니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운검(雲劒)의 제장(諸將)도 입시(入侍)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니 세조가 윤허했다. 이때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자 한명회가 꾸짖어 제지했다. 이에 거사에 참여한 이들은 일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먼저 한명회라도 죽이자고 했는데 성삼문이 제지하며 말했다.    “큰일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한모(韓某)를 죽인들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그 이튿날 일의 전모가 탄로나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사육신의 죽음이었다.    이에 대해 서거정은 찬탄하여 말했다.    〈광연루의 잔치에 세자가 참좌(參坐)하지 않은 것과 무신(武臣)을 들이지 않은 그 심모(深謀)와 원려(遠慮)는 사람의 능력 밖에서 나온 것으로서 원악(元惡)이 과연 그 간계(奸計)를 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는 비록 조종(祖宗)께서 음(蔭)으로 도와주신 힘이었겠으나 또한 공의 충성이 암묵리(暗默裡)에 하늘에 감응되어 하늘 역시 도와주신 것이리라.〉      관중(管仲)에 대한 공자의 평가  제 환공을 도와 패업(覇業)을 이루었던 관중.  관중(管仲)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제나라를 강력한 패권(覇權)국가로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맹자(孟子)를 받드는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관중은 오히려 왕도(王道)정치와는 다른 길로 간 인물로 폄하된다. 그런데 정작 공자(孔子)는 관중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예(禮)를 사리(事理)로 보았던 공자와 가례(家禮)로 좁혀 놓은 주자(朱子)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논어(論語)》 팔일(八佾)편에서 공자는 어떤 사람과 이렇게 대화를 이어 간다.    〈공자는 말했다.    “관중의 그릇은 작았도다!”    이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관중은 검박했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관중은 삼귀(三歸)를 두었고 가신(家臣)의 일을 통합하여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박했다고 하겠는가?”    그 사람이 또 물었다. “그러면 예(禮)는 잘 알았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나라의 임금만이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중도 그렇게 했고 또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이 만났을 때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만들어 놓을 수 있는데 관중도 그렇게 했으니 만일 관중이 예를 안다고 하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삼귀란 해석이 크게 두 가지다. 첩들을 두었다는 해석도 있고 높은 대(臺)를 세 개나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어느 쪽이건 권세를 과시했다는 뜻이다. ‘가신의 일을 통합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가신을 많이 두었다는 말로 역시 권세를 과시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거의 임금에 맞서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명회가 권력을 잡은 후에 보여준 모습들과도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헌문(憲問)편에서 보여주는 공자와 제자 자공(子貢)의 대화는 역사적 인물을 보는 공자의 현실주의적 통찰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솔직하고 소박”    〈공자가 말했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함에 있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관중이 힘쓴 덕분이었으니 누가 그의 어짊[仁]만 하겠는가?”    자공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하셔도) 관중은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환공이 공자 규(糾)를 죽였는데도 기꺼이 따라 죽지 못했고 또 환공을 돕기까지 했습니다.”    공자는 말했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게 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헤쳐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작은 신의[諒]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매 죽어서 시신이 도랑에 뒹굴어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    자로(子路)보다는 뛰어난 제자였던 자공 역시 여전히 도덕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역사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의 유혹은 강하다. 그러나 필자는 공자의 시각을 따랐다. 《성종실록》에 실린 한명회 졸기(卒記)의 마지막 문장이다.    〈비록 여러 번 간관(諫官)이 논박(論駁)하는 바가 있었으나, 소박하고 솔직하여 다른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 훈명(勳名)을 보전(保全)할 수 있었다.〉⊙

이상흔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 동원된 북한 군인들을 보도한 조선중앙TV. 대화봉 정상(해발 1360여m)의 스키장 건설에 사용될 물과 흙 등을 등짐으로 옮기고 있다.정부가 남북 스키 공동훈련을 하기로 한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의 지시로 2013년 12월 완공됐다. 김정은 식량부족으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속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급하지도 않은 스키장 건설에 집착했다. 김정은은 스키장 건설 현장을 수시로 찾아 “올해 안에 건설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준공식 때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한 김정은은 한손에 담배를 든 채 리프트를 직접 타보면서 만족을 표시했다.   10개의 슬로프와 호텔 등 부대시설을 순전히 인력으로 완공시켰다. 북한 당국이 10년 걸릴 공사를 1년 만에 준공했다고 홍보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군인과 주민들이 고통을 받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14년 1월 북한 노동신문은 마식령 스키장을 ‘세계에 조선을 일깨운 역사적 사변’이라고 치켜세우며 모든 분야에서 ‘마식령 속도전’과 연계해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마식령 속도전’이 유행했다.   극심한 영양실조 상황에서도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북한 군인들. 건설 전문부대 공병들이다./ 사진= 아시아프레스 북한은 군인들과 주민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노예국가’이다. 10년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북한의 군인들은 사실상 김씨 왕조의 개인 노예나 다름없다. 북한의 모든 주민은 철이 들면서 소년단, 청년근위대, 청년돌격대 등 각종 단체에 가입해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모내기 전투’는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애교 수준이며, 어린 학생들까지 각종 위험한 건설현장에 강제 동원되고 있는 현실이다.    김정일이 1974년 청년들이 속도전 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조한 후 온갖 돌격대가 조직되어 학생과 청년, 군인들을 도로, 공장, 산업시설, 문화시설, 아파트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내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 대동강물을 막는 남포 서해갑문 공사다. 이 공사는 김일성의 지시로 1981년 5월 착공하여 1986년 6월 완공하였다. 3년 내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의 군병력과 수만 명의 주민을 동원하였지만, 완공까지 5년이 걸렸다. 쏟아부은 돈이 북한 공식 발표인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6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공사를 실질적으로 총 지도한 이는 김정일이었다. 탈북자들은 의하면 서해갑문의 무리한 공사로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마지막 남은 자원까지 소진하게 만들어 이후 10년간 펼쳐진 ‘고난의 행군’의 발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주 출신인 김민세 데일리NK 기자는 서해갑문에 대해 “북한이 90년대 중반부터 겪은 격심한 경제곤란과 수백만의 대량 아사가 어느 날 한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짐정일의 실정이 쌓이고 쌓인 결과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탈북자들은 “5년간의 사투 끝에 건설된 남포갑문은 사람들의 시체로 쌓였다고 할 정도로 사고가 비일비재했던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건설자들은 서해갑문을 일컬어 ‘시체갑문’이라고도 부른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김정일은 당시 70세인 김일성의 나이를 생각해 “수령님이 살아생전 보지 못하는 공사는 의미가 없다”며 3년, 5년으로 공사단축을 지시했다.   경제가 붕괴되면서 북한 당국은 통치자금 마련을 오로지 주민과 군인의 노동력 착취에 의존한 지 오래다. 수십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시베리아 벌목장, 중동이나 러시아, 중국, 동남아의 건설현장에 파견되어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고, 수만 명의 여성이 해외 식당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추위가 심했던 올해에는 영하 20도의 한파 속에서 건설 현장에 동원된 군인과 돌격대들 가운데 동상환자가 속출했다.   2017년 김일성 탄생 105주년에 맞추기 위해 착공한 지 1년 만에 완공된 여명거리 건설 현장에는 군·청년돌격대, 대학생 등 하루 3만여 명이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동원되었다. 공사에 투입된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명거리’가 아니라 ‘비명거리’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60명의 군인이 매몰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2014년 평양의 아파트가 붕괴해 3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3년 미림승마장 건설 때는 김정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공사설계 책임자가 총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서해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적었다. 이에 앞선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에서는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글을 남겼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우슈비츠에 가서 ‘유대인의 행복이 나오는 전당’이라 쓴 것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 준공식에서 담배를 손에 든 채 혼자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를 오르고 있다./ 노동신문 이번에 남북 스키 공동훈련을 하기로 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작년 1월 미국 NBC 방송은 “북한 주민들은 곡괭이, 막대기로 스키장 진입로의 눈과 얼음을 치웠다. 강추위에 얼굴은 빨갛게 얼어 있다. 11~12세 정도 보이는 어린이를 포함해 10대도 많았다. 이들이 닦은 길로 북한 특권층 가족이 탄 차가 스키장으로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이 최근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되자 통일부는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확인된 바 없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사회는 강제노동이나 아동노동 등 인권유린을 통해 만든 생산품의 소비와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김정은의 체제선전용 스키장을 위해 수만 명의 인권이 짓밟힌 현장에서 공동훈련을 하며, 입에 발린 ‘평화’를 외치는 것은 70년 넘게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과 국제사회의 양심을 기만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김승열

막스 프랑크 일기(26)   미래 G3인 EU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그 의미를 생각한다   유럽유엔사무국.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인 기술의 변화시대에 부응하여 잠시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고자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한 지 시간이 제법 지났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EU 국가의 다른 시각과 사고를 접하고자 중장년의 무전여행(?)을 시도한 셈이라고나 할까. 이전 칼럼에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시도는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시대에 글로벌 및 온라인 로펌의 모색과 나아가 스마트 워크의 실현이라는 또 다른 목표도 있었다.   잠시 중간 점검을 해보면 역시 그 과정은 생각보다는 험한 것 같다. 비록 다양한 시각과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는 이점은 있으나. 외국과의 사회문화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 워크 역시 비용이 많이 드는 도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긴 장정을 마칠 시점이면 그 나름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이를 강하게 믿고 싶다.   그간 미국유학 시절과 뉴욕의 10대 로펌에서의 변호사 생활 등으로 영미(英美)문화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여 왔었으나 때늦게 영미문화의 본류인 유럽문화를 접하면서 많은 아쉬움과 함께 깨달음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문화의 기초인 유럽문화를 접하니 이제야 미국문화의 장단점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 25년 전에 독일 함부르크 대학으로부터의 초청장을 받고 사정상 유럽에 가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울 따름이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자위해 본다. 지금 유럽문화를 접하면서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유럽문화는 영미문화권과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물론 영미권보다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낙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럽문화가 가지는 잠재력 부분은 새롭게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의 행복한 삶의 증진과 정부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는 영미문화권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과거의 큰 역사적 잘못으로 대외적인 부분보다는 대내적으로 그 역량을 축적하는 데에 집중하는 모양새이다. 대외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소극적이고 나아가 이방인에 대하여도 초기단계에서는 차가워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복지 등 분야에는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영향으로 정부의 역할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잘 인식하여 행동하고 있다. 영국은 세계를 주름잡은 국가답게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또한 스스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문화의 계승자로서 강한 자긍심과 함께 새로운 경쟁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또한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는 동유럽의 움직임도 만만하지가 않다.   EU유럽집행본부. 우리나라의 경우 유학 등이 영미 문화권에 집중되어 있는 과거의 왜곡현상은 최근에 좀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면 유학이 유럽 등으로 다양하게 확산될 필요가 있다. 사고방식이나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균형감을 가지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현재 유럽 등에서 필자 나름대로 온라인화된 객원연구원활동을 시도하고 있는데 가시적인 성과 여부는 다소 불투명하다. 다만 또 다른 세계로의 도전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글로벌시대에 많은 청년층이 베이스캠프를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등 각국으로 널리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중장년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인 괴테는 자신만의 가든하우스를 만들어 이를 통하여 멋진 인생을 누렸다. 우리도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괴테의 가든하우스 같은 충전소나 자신만의 글로벌 시장의 베이스캠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동남아에 이어 유럽역시 그 장소로서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독일의 드레스덴이나 남부 프랑스의 해변 또는 산악도시 등이 좋은 예라고 본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제 목표시장을 국내시장을 넘어 글로벌시장으로 나아가 한국상품과 서비스의 장점을 해외에서의 현지화를 통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활발한 시도와 노력을 기대해본다.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비즈니스 전반으로 한류가 깊이 확산하는 그런 도약점으로 삼기를 소망한다.    

김선택

서울 서초구 서울대검찰청./ 조선DB아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자기가 관련된 공직자부패 사건에서 전직 검사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기가 있는데서 변호사가 후배검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무개 검사, 나에게 좋은 선물이 들어 왔는데 빼지 않을 거지...."하면서 전화하였다. 억대의 수임료를 주고 잘 해결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죄를 부당하게 면해주는 거대한 지하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나는 "나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협박"를 한 사람에게 2013년에 고소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사건이 이첩되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피고소인이 전직검사출신을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선임한 것 같았다. 자기 후배가 있는 곳으로 사건을 이첩한 것이다. 담당검사가 나에게 두번 전화하여 합의를 종용하였다. 한번은 내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합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경우에 피고소인이 맞고소를 하게 되고. 당신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러니 합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갑자기 황당한 전화를 받고 "지금 바쁘다. 바로 결정할 수 없다. 생각해보고 답변하겠다고 하였다" 그 다음날 검사가 아침 9시30분경 집으로 전화를 또 하여 합의를 종용하였지만 나는 합의를 거절하였다"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녹음을 하려고 하였지만 집으로 전화하여 녹음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검사는 피고소인에게 벌금 200만원을 구형하였고 확정되었다.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협박범에게 고작 벌금 200만원을 구형한 것에 나는 분노했다. 한국은 사기·협박범은 전직검찰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벌을 받지 않거나 벌을 적게 받는다. 오히려 사기나 협박을 당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병에 걸려 죽는다.   또 나는 정치적 사건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검찰에서 기자에게 내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는 것을 불법으로 알려줘 기자가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내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 것이 기사화 된다면 나는 그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다행이 기자가 나의 설명을 수긍하여 기사가 되지 않았다.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에 보통 정보를 흘린다. 검찰과 특종을 노리는 언론은 서로 상생하는 구조다. 검찰이 법을 어겨도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일부 검사들이 악한 사람을 돋고 선한 사람을 핍박하고, 범죄를 줄이기보다는 범죄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검사가 범죄자들을 도와 선한 국민을 죽이는 미필범 고의에 의한 살인범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누구편인가? 살아 있는 권력편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살아 있는 권력이 자기들의 거대한 밥그릇을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만일 살아있는 권력이더라도 자기 밥그릇을 침범하면 싸울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살아 있는 권력과 검찰조직이 맞짱을 뜨면 누가 이길까?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에 비추어보면 검찰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수많은 악법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법을 지키면 손해보는 사회이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쉽게 범죄자로 만들어 잡아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영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은 미리 검사나 기득권세력들이 죄인으로 만들어 싹을 자르기 때문이다. 영웅이 있으면 자신들의 거대한 지하경제 시장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 참석한적이 있다. 보수시민단체 대표 한분이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였다. 나는 “현정부에서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데, 공정한 법 집행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법이 타당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법 중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법이 너무 많아 국민이 많이 반발하고 있습니다”고 발언하였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보복 운운하는 이명박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법질서의 부정이라면 분노한다고 말했다. 한국 검사는 죄 있는 자를 죄 없는 자로 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정직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나라에서 엄정한 법 집행과 신뢰의 사법질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검사들이 대통령이 시켜서 칼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사건을 윗분들 마음에 들게 잘 처리해야 진급하는 인사시스템과 자기들이 엄청난 돈을 챙기는데 도움이 되는 현재와 같은 불공정 법체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법을 만들고 공정한 법질서가 확립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현 체제에서 가장 많은 돈을 챙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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